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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36)화 (137/149)

136화

“이야.”

노딜과의 대화 후 방으로 돌아온 세키나는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은 마물을 폭주시킨 장본인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지.

-지금이야 마왕님이 알지 못하고 있지만, 마계에 들어간 순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마왕님이 알게 되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 될 텐데…… 왜 굳이 마계로 돌아가려 하겠느냐?

그러니까, 지금 마계가 폭주한 마물로 인해 미친 상태가 된 것이 장로들 때문이라는 뜻이다.

“지짜 미친넘들이구나.”

이런 중얼거림을 뱉는 건 세키나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다.

마물의 폭주로 인해 피해를 본 마족들이 지척에 널려있었으니까.

이걸 만약 다른 마족들이 알게 된다면…….

‘곱게 살아남진 못하겠네.’

세키나는 흐음 한숨을 뱉으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노딜과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왜 그러한 사실을 공표하지 않느냐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지.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마족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로들을 죽이려 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기존의 체계가 무너진다. 너도 알다시피 마족은 위계가 뚜렷해야 하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 함구하는 수밖에.

지랄하고 있네.

위계 사회 운운할 거면 윗대가리들이 일을 잘했어야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물을 풀어 마계를 개판으로 만들고서 책임을 안 지는 건 부당한 일 아닌가?

“요걸 어떠케 이용하디…….”

세키나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고민을 하고 있는, 그때였다.

“세키나 니이이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세키나 님 오는 거 뻔히 알고 우리를 내보낸 거야. 리아트 돌았나?”

“리아트가 아니라 보좌관. 그러다 걸리면 목 날아간다.”

“응, 난 목 잘려도 안 죽죠?”

바로 1군단 마족들이었다.

그들을 마주친 지 고작 5초밖에 안 됐지만 벌써부터 시끄럽고 피곤해지는 걸 느끼며 세키나는 쓰읍 숨을 들이켰다.

“어어. 오랜마니야.”

“오랜만이라는 말로 표현이 됩니까, 이게?”

“체감상 천 년이었음. 반박 불가.”

“어디 한 번 봐 봐요. 얼굴 좀 봐 봐!”

달려온 그들은 세키나의 양 뺨을 꽉 잡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게 했다.

“이거 봐.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얼굴 핼쑥해진 거 봐. 부단장 뭐 하고 있던 거야, 세키나 님 관리 안 하고?”

“부단장 나쁜 새끼!”

“죽여! 당장 죽여!”

이거 아서가 들었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거 같은데……. 세키나는 코를 킁 훌쩍인 후 자신의 뺨을 잡고 있는 마족의 손을 툭 쳤다.

“구만.”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오랜만에 바서 조은 건 알겠눈디, 쫌 적당히 하면 안대까?”

마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 지금 적당히 하고 있는 건데요?”

“응, 이 정도면 양호하죠?”

“우리가 저기 설산에서 얼마나 뺑이를 쳤는지 세키나 님이 몰라 가지고 이런 말 하는 거야……!”

“미워! 너무해!”

아니, 너희 몇백 년 산 마족들 아니냐.

어째 정신연령이 메르데스보다 못한 것 같아.

제정신인가.

“아라써. 아라쓰니까 쫌 앉아 바. 구래, 착하다. 웅웅.”

세키나는 그들을 메르데스와 똑같은 정신머리라고 생각하며 토닥였다. 그러자 마족들은 새삼 멋쩍은 얼굴을 했다.

“어째 우리가 더 어린 애가 된 느낌인데.”

“응, 우리는 아직 애새끼죠?”

“시끄러워, 좀.”

그들은 입을 비죽이다가 이내 세키나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세키나와 더 가까이 눈을 마주쳤다.

“1장로 만나고 온 거예요?”

“어? 어떠케 아라써?”

세키나는 자신을 찾기 위해 마족들이 마왕성을 쥐잡듯이 샅샅이 뒤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마족들은 저들이 멱살을 잡고 세키나의 행방을 물었던 걸 애써 모르는 척을 했다.

“응, 다 아는 방법이 있죠?”

“그 능구렁이 새끼 만나서 뭐 했어요?”

“별 건 아니구. 구냥 장로들에 대해서 물어바써.”

“아.”

세키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마족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새끼들이 또 뭔 짓 했나요?”

“그때 제대로 뭉개놨어야 했는데…….”

“응, 내가 죽이자고 했는데 안 죽인 너네 탓이죠?”

……이게 뭔 소리지.

세키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너히 먼 짓 했냐?”

“아뇨?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희는 얌전히! 진짜 얌전히 있었어요!”

“……개구라 같은디.”

정말 못 믿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캐낼 수도 없는 것을. 세키나는 애써 나는 모른다를 중얼거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걔네는 왜요?”

“자꾸 거슬리게 하눈데, 어케 조용히 시킬 방법이 업나 시퍼서.”

“아하.”

마족들은 세키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스피넬.”

그러고선 툭, 하고 말을 던진다.

“그걸 찾고 있댔어요.”

뭐라고?

“맞아. 그때 장로 수하들 때리는데 그러더라고요. 너희도 블랙 스피넬을 받기로 했냐? 하면서요. 우린 그런 거 없어도 강한데. 그쵸?”

세키나의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굴러갔다.

블랙 스피넬.

그렇지 않아도 이걸 찾아내기 위해 노딜에게 연결 통로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온 참이다.

“잘 댔네.”

원래는 블랙 스피넬을 소량으로 뿌리며 그들을 회유하려 했지만…….

‘애써 찾고 있다는데 굳이 뿌릴 필요가 없지.’

세키나는 사악하게 웃으며 킬킬거렸다.

“경매가는 얼마루 시작하는 게 조을까?”

다 뒤졌다.

***

“그……. 어……. 음…….”

유리엘은 눈을 도르륵 굴리며 두 손을 꼬옥 맞잡았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드한에게 조금 더 허벅지를 붙인다. 이렇게라도 닿아 있어야 심신에 안정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럴 수밖에 없었다.

유리엘과 드한의 맞은편에는…….

“왜 말을 못 하는 건가?”

“어디, 아픈가?”

만나 본 적은 있지만 언제 봐도 섬찟할 정도로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는 리아트와,

처음 보는…… 거구의 마르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아트도 리아트였지만, 마르틴의 위세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덩치가 큰 것뿐 아니라 얼굴! 그래, 저 얼굴이 정말 무섭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무섭게 생길 수 있지? 무서워!

유리엘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억누르고는 흐읍 숨을 들이켰다.

“마, 말할 줄 아, 압니다. 다, 다만 이 자리가 워낙 어, 어려워서.”

“뭐가 어렵다는 말이지?”

리아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유리엘을 응시했다.

“똑똑히 말하면 되지 않는가. 갈 곳이 없으니 우리가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 그…….”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치러야 할 테지만. 그렇지, 마르틴?”

“당연하다.”

그러니까 그 대가가 무섭다고!

이제라도 그냥 돌아갈까?

뭐, 드한과 나만 책임지면 되는 것이니 어디 변두리 마을에서 소일거리나 하면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유리엘의 두 눈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 수 있습니다.”

그때, 오도카니 앉아 있던 드한이 입을 열었다.

“다만 그 대가가, 훗날 저희가 가져다드릴 영광에 비해 과하면 안 되겠지요.”

리아트의 시선이 드한에게 향했다.

인간의 나이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만…… 어림잡아도 쌍둥이 호문쿨루스 또래일 터다. 한데 꽤나 어른스러운 태도인 게, 어쩐지 미심쩍었다.

“영광이라 하였나?”

“네.”

드한은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유리엘 님은 대신관에 버금갈 만큼의 거대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대로 수행을 계속하면 분명 웬만한 대신관 못지않은 대단한 존재가 되겠지요. 이런 유리엘 님을 백작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건 여러모로 좋은 결정일 겁니다.”

역시나. 어린아이가 할 법한 대답이 아니다.

리아트는 의뭉스러움을 품고 있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는 드한을 직시했다.

“그렇다면 너는? 널 뭘 할 수 있나?”

“……저는.”

잠시 숨을 골랐던 드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신성력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해 검술이 대단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래. 그래 보이는군.”

“하지만.”

드한은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전 세키나 님께 목숨을 바치겠노라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세키나를 떠올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세키나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그리고 결심하게 된다. 지키자고. 이번에는 반드시…….

드한의 눈이 번뜩였다.

“죽으면서까지 세키나 님을 지켜야 할 존재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너……!”

“드, 드한!”

황당해하는 리아트와 체면을 잃은 유리엘이 동시에 입을 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앙!

내내 닫혀 있던 응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머야! 너네 머 하는 거야!”

드한과 유리엘이 리아트에게 호출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겁지겁 뛰어온 세키나가 소리쳤다.

“왜 우리 애들한테 이상한 말 하구 이써! 혼날래?”

아니, 이상한 말은 내가 아니라 쟤가 했는데…….

리아트는 살짝 억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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