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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37)화 (138/149)

137화

세키나는 씩씩거리며 모난 눈으로 리아트와 마르틴을 노려보았다.

마족들과 대충 이야기가 끝난 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했던 세키나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아서였다.

-흐어어엉!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두 팔 벌려 세키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엉겁결에 안기게 된 세키나는 코를 후비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한과 유리엘을 찾기 위해서.

-아, 유리엘 님과 드한은 보좌관께 갔습니다. 그들을 찾으시더군요.

아오, 또 왜!

마족은 인간을 싫어한다.

인간 중 신관을 더욱더 싫어한다.

인간도, 신관도 혐오스러워하던 리아트가 그들에게 어떤 짓을 할지 눈에 뻔히 보였다. 전에는 백작의 보좌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성질을 참고 대했을 테지만, 유리엘과 드한은 파문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관. 성질을 참기는커녕 더 지랄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세키나는 곧바로 뛰어온 것이다.

자신의 계획에 유리엘과 드한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야! 드한! 너 내가 성에 오면 바로 나한테 오라 해찌!”

드한은 얼떨떨해하는 표정으로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언제 그런 말을 했는데……?

하지만 드한은 분위기 파악을 얼추 할 줄 아는 아이였고, 그렇기에 곧바로 표정을 정돈했다.

“죄송합니다. 보좌관께서 부르시는 탓에, 급한 일이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마치 리아트 때문에 세키나의 명령을 어겼다고 탓하는 어투.

이것 봐라?

리아트는 헛웃음을 뱉었다.

어린아이가 어른스럽게 군다고 치기에는 과할 정도로 대단한 처세다. 리아트는 묘한 호기심을 느꼈고, 그렇기에 저들을 핍박하는 건 여기서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성에서 지내게 해 주기 전에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은 봐야지 않겠느냐. 그래서 부른 것뿐이니 오해하지 말거라.”

“……지짜?”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리아트를 노려보았지만, 태연자약한 그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을 순 없었다.

“삼쫀. 알지?”

그래서 세키나는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가 다시 리아트를 가리켰다.

“나 지켜보고 이써.”

정말 미치도록 귀여운 모습에 리아트는 히죽히죽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이내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인간을 떠올리고 간신히 표정을 정돈했다.

“그래. 알았다.”

“쪼아.”

그런 리아트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세키나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쟈, 드한.”

우물쭈물하는 드한에게 손을 뻗고, 역시나 우물쭈물하고 있는 유리엘에게 눈짓했다.

“유리엘, 너두.”

“아……!”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유리엘은 힐끗 리아트의 눈치를 살폈다.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리아트가 대답했다.

“별관에서 지내도록. 아이들이 잘 보살펴 줄 것이다.”

아이들, 이라는 말이 이토록 안 어울리는 존재가 있을까. 유리엘은 처음 리아트를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리아트는 정말 오금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의 리아트는 어떠한가?

세키나를 보는 표정에는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아이들’이라는 언급을 할 때에도 어색한 느낌이 아니었다.

과연…….

내가 그간 백작가를 잘못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유리엘은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그렇기에 이후 백작가에 충성을 다 하겠노라는 결심을 가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아, 앞으로…….”

그는 방금 전 드한이 했던 말을 상기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저, 저 역시, 모,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

그거 아닌 거 같은데.

리아트는 대체 애한테 뭘 가르친 거냐며 경악하고 있는 세키나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

제국의 두 번째 주인, 다이애나 황후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중앙성 신전에 난데없이 마물이 나타나 신전이 무너지고 교황이 도망을 쳤기 때문에?

순식간에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된 백성들이 황실 앞에서 농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이 와중에 황제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다이애나에게 관련한 모든 것을 맡기고 있기 때문에?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픈 것은 맞지만 이것이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든 이유는 아니다.

‘다이몬 백작가.’

바로 다이애나의 초대를 보란 듯이 거절하고 수도를 빠져나가 버린 다이몬 백작가 때문이었다.

‘감히……!’

백번 양보해 초대를 거절할 수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노라 변명이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수도를 빠져나가 북부로 돌아갔을 뿐.

기다려도 회신이 오지 않아 다시 한번 사람을 보냈을 때 그들이 이미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에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아무리 황실의 위상이 땅에 떨어져 있다 해도, 이건 아니다.’

다이애나의 곧고 긴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해서, 백작가 일원들은 이미 북부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이애나의 측근이자 황제의 동생, 페르다가 말했다.

다이애나는 예상했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뱉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빛이 돈다.

“그들이 이 나를 무시한 것이 맞지요? 나 따위는 존중해 줄 필요도 가치도 없노라 말한 것이 맞지요?”

“폐하.”

“하! 기가 찹니다. 황제가 나를 끼고돌 때는 그렇게 눈치를 살살 살피며 어떻게든 내 비위를 맞추려 하더니……!”

기실 그들은 다이애나의 눈치를 살핀 것이 아니라, 치마폭에 싸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황제의 손과 발을 만지려 한 것이다.

다만 이런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기에, 페르다는 지금 이 사태에 대한 현명한 답을 내놓았다.

“짐작건대…… 아니, 확신하건대 이번 일은 황자 전하가 포함되며 벌어진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자리에 황자 전하가 함께 한다고 하니, 그쪽에서는 괜한 약혼 소리가 나올까 싶어 황급히 움직인 것이겠지요.”

“그 무슨……!”

다이애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그것 때문에 도망을 쳤다고? 황실에서 어떤 불호령이 내려질지 뻔히 알면서? 그보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치고 떠나는 것이 현명했을 터인데!

다이애나는 까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다소 급하셨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이셨음이 옳았습니다.”

“변방의 백작가 영애를 황자비로 맞아준다는 것이 그렇게 꽁무니를 뺄 만큼 격 떨어지는 일이란 말입니까!”

다이애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페르다는 여전히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딸 가진 아비의 마음은 다 똑같지요. 제 인생 앞길은 잘 살펴볼 수 있어도, 자식 앞길은 어떻게 해서든 저가 지켜 주려고 발버둥을 치니까요.”

“아무리 그러해도……!”

“폐하. 폐하의 부친을 떠올려 보십시오.”

“…….”

다이애나의 부친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의 아비를 떠올린 다이애나는 쯧 혀를 차며 노기를 가라앉혔다.

“그 다이몬 백작이 막내딸을 끼고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이애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때에 맞춰 페르다는 준비해 두었던 말을 했다.

“하니,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턱을 당기며 눈을 부릅떴다.

“당당히 황자 전하를 북부로 보내시지요.”

“……뭐라 하셨습니까?”

“황자 전하와 세키나 다이몬이 자연스러운 친분을 만들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친분을 빌미 삼아 더 가까운 관계의 약속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꿀꺽.

다이애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것이 성공할 거라 생각합니까?”

“실패할 리 없도록 만들어야지요.”

그리 말하는 페르다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은 성공 확률이 높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왜일까?

이 묘하게 찝찝한 기분은.

다이애나는 살짝 머뭇거렸고, 페르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폐하.”

페르다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다이애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백작가의 힘을 얻는다면, 폐하의 야망은 더욱 쉽게 이루어질 겁니다.”

그는 다이애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

“황제를 몰아내야지요.”

다이애나는 제게 건네진 그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이내 스스로의 다짐을 읊조리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나는, 반드시 제국의 첫 번째 주인이 되리라.

다이애나의 눈이 번뜩였다.

***

“저, 세키나 님.”

드한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방을 안내받기도 전에 바깥으로 끌려 나와 연무장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드한은 눈을 도로록 굴리며 세키나와,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목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지금 뭘 하라는 말씀이실까요……?”

조심스레 묻는 드한을 보며, 세키나는 씨익 웃었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세키나의 뒤편에서 마족 한 명이 나타났다.

“응, 이게 내 상대인 거죠?”

그는 기다란 목검을 휘휘 휘두르며 드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세키나 님?”

당황한 드한이 엉거주춤 뒷걸음을 칠 때, 세키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워 바.”

5살이랑 성인이랑 싸우라고요?

“지면 너 오늘 못 드러온다.”

……이 추위에?

제정신이신지?

드한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겨우 삼키며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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