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별…… 뭐? 여우 새끼?
드한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욕을 먹은 것에 대해서도 어안이 벙벙한 건 아니었다. 드한은 목검을 더 바르쥐었다.
“누구십니까?”
“그러는 너는 누군데?”
자신이 말하자마자 바로 들려온 대답이다. 드한은 그 목소리에 절대로 호의가 담겨있지 않다는 걸 느끼며 불안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짐작건대 눈앞에 있는 자는 마족 중 하나일 것이다.
세키나처럼 어린 마족이니…… 형제 중 하나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상황 파악을 마친 드한은 턱을 당겼다.
“드한 아가토입니다. 유리엘 신관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니까 왜.”
율리안은 한 걸음 가까이 드한에게 다가갔다.
“네가 뭔데 여기까지 따라와서 방을 차지하고 있냐는 말이야.”
“…….”
아. 이거 어떻게 말해야 하지.
너네가 마족인 걸 내가 알고 있어서 아서가 날 감시하기 위해 뒀다? 이걸 알게 되면 당장 자신을 죽이려 들 게 뻔하다. 그러니 기각.
북부 신관들에게는 죽임을 당할 뻔하고 중앙에서는 그들의 검은 속내를 밝혀내 쫓기는 처지다? 이걸 말하면 지금보다 더 고압적으로 나올 테다. 기각.
그러면…….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마자 율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놈의 사정. 퍽이나.”
그는 쯧 혀를 찬 뒤 턱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렸다.
“너.”
그는 드한의 두 배는 산 소년이었기 때문에, 드한을 완전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세키나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면서.”
“…….”
“무슨 속셈인지 말해.”
아무래도 이 마족이 자신을 찾아온 건 세키나 때문인 것 같다고, 드한은 생각했다.
아서가 세키나를 끼고 돌고, 쌍둥이들이 세키나 말이면 껌뻑 죽는 건 몇 번 봐 와서 알고 있었는데……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인가.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더 확실히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분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드한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세키나 님 뒤에 서 보려 합니다.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풀 수 있겠죠.”
율리안은 눈에 힘을 바싹 주며 드한을 노려보았다.
평소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상냥하고 다정한 표정은 없었다. 웃음기 없이 완전히 메마른 그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더 무시무시해 보였다.
“이거.”
율리안은 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진짜 미친 새끼네.”
그는 눈 깜짝할 새 드한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쥐었다.
“궁금증? 세키나가 네깟 것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있다는 거야, 뭐야!”
율리안은 드한의 말에서 ‘세키나의 의사’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이건 이놈이 이기적인 성정 때문인가, 하면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애초부터 세키나를 그런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마치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위험해.’
뭔지 모르겠지만 위험하다, 이 새끼는.
“너.”
탁!
드한의 멱살을 거칠게 내팽개친 율리안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세키나가 부를 때 빼고 세키나 옆에 있는 거 보이면 내 손에 죽는다.”
“…….”
“난 쌍둥이들과 다르니까.”
소중한 이를 잃어본 적 없어 우왕좌왕하는 쌍둥이와는 달리, 나는 이미 많은 걸 잃어버렸었으니까.
그래서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
***
음.
세키나는 코코아 잔을 들어 올리며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아침부터 신나게 드한과 마족의 대련을 지켜보다가 점심을 먹은 후 이제 숨을 돌리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아서도 물린 후 진한 코코아를 타 홀짝거리며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그래. 그랬었다.
마왕, 르카이츠가 나타나기 전에는.
갑자기 나타난 르카이츠는 세키나에게 뭐라 말도 하지 않고 맞은편에 앉아 버렸다.
“…….”
그러고는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
왜 왔어.
뭔데.
나가, 너.
……라고 하고 싶지만 세키나는 아직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니까 그럴 수 없었다.
세키나는 코코아를 홀짝인 뒤 르카이츠를 쳐다보았다.
“저, 보쓰.”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여?”
세키나의 질문에 르카이츠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할 말 이써서 온 거 아니에여?”
“할 말…….”
르카이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세키나를 응시했다.
“없는데.”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구럼 왜 와써여……?”
할 말도 없는데 르카이츠가 자신을 찾아올 리 없다. 분명 이 속에 담긴 뜻이 있으리라. 세키나는 눈을 반짝였다.
“머 시킬 일 이쓰면 지금 말하세여. 일정 보구 말씀드릴게여. 저 쫌 지나면 바뿌거든여.”
르카이츠는 헛숨을 뱉었다.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세키나를 찾아왔고, 맞은편에 앉았을 뿐이다.
그런데 왜 방문의 연유를 묻는다는 말인가.
“내가 너를 보는 데에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그렇져, 아무래두?”
“왜?”
“그야…….”
세키나는 잔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언제나 그러셔쓰니까……?”
“…….”
르카이츠의 표정이 와그작 구겨졌다. 그러자마자 세키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 머 잘못했나여?!”
그래!
내가 잘못한 거다!
그래서 너 똑바로 하라고 이렇게 눈치 주는 거다!
왜 이걸 파악 못 했을까!
세키나는 히익 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먼지는 모르게찌만 죄송해여! 저가 막 생각업씨 한 일 아니거든여. 아마 다 나름의 생각이 이써쓸 테니까 이해해 주쎄여. 물어보면 다 말씀드릴게여!”
“…….”
르카이츠는 재차 헛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됐기에,
-같이 이쓰면 체할 거 같은디.
이런 말이나 들으며 내쫓기고,
-왜 와써여?
라고 방문의 목적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가.
르카이츠는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자신을 찾아와 벌벌 떨면서도 세키나를 해치지 말아 달라고 외치던 호문쿨루스들.
감히 제 앞을 가로막고 세키나에게 잘 좀 해 주라며 핀잔을 하던 마족들.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세키나를 의심한 결과가 바로 이것인가.
물론, 세키나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지울 수 없다. 이건 본능적인 거였다. 세키나가 감히 마왕에게조차 숨기는 것이 있으니, 그걸 알아내야 한다는 본능.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키나가 아직도 의뭉스럽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마음이 생길라치면 이 작은 아이가 자신을 위한답시고 피를 철철 흘리며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르카이츠는 세키나를 의심하지 못했다. 아니,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 주어야겠지.’
그리 생각 정리를 마친 르카이츠는 아직도 자신을 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세키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굴 한 번 보러 온 거다.”
“……넹?”
“난 이제 설산으로 가니까.”
“…….”
너 설산 가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갑자기 왜요?
“그러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딴 쿠키 조각 먹지 말고. 밥. 챙겨 먹어라.”
“…….”
“이렇게 말라 가지고, 어디다 써먹겠어?”
쯧.
르카이츠는 그리 혀를 찬 뒤 몸을 일으켜 테라스를 빠져나갔다.
“…….”
휘이잉!
거친 바람이 쏟아지듯 불어온다.
하지만 세키나의 머리칼은 한 가닥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일전에 르카이츠가 걸어 주었던 마법, 전이 마법이 남아 있던 탓이다.
세키나는 자신에게 오는 바람을 대신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르카이츠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머야. 왜 저래……?”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던데.
혹시, 마왕 죽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