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시간을 되돌려, 세키나가 오기 전.
아서와 캘빈은 유리엘의 방에서 그가 준비를 마치기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방이 좁다 보니 안락의자가 하나뿐이라, 아서가 앉고 캘빈은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유리엘은 그들의 앞에서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고 말이다.
“나 좀 힘들다.”
그런 유리엘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캘빈이 말했다.
“이런 더러운 곳에서 숨 쉬는 바람에 폐가 더러워진 듯한 느낌이 들어. 지금 보이냐? 나 앉은 게 아니고 앉는 척한 거다. 내 소중한 엉덩이 닿으면 안 되니까.”
아직도 고치지 못한 결벽증에 대해 떠들고 있다. 아서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너 그거 병인 건 알고 있겠지?”
“마족 중에 병 안 걸린 놈이 어디 있다고.”
“나.”
“지랄. 넌 집착병 있어. 세키나한테 하는 꼴 보면 딱 각이 나오지.”
“……세나 일주일 압수.”
“야! 우리 세나로 협박하지 말랬지!”
캘빈은 아서의 멱살을 잡아 버릴까 하며 손을 뻗었다가, 이내 그의 셔츠가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손을 거뒀다. 에이 씨. 캘빈은 머리를 헝클었다.
“야. 근데 내가 잘 몰라서 물어 보는데. 원래 그 영상 공유 장치 쓸 때 준비할 게 많냐?”
“우리와는 다르겠지. ……인간이니까.”
“아하.”
마기를 소량 포함시켜 놓은 아티팩트였기에, 마족인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영상을 연결해 펼쳐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인 유리엘에게는 불가한 터.
유리엘은 영상 송신을 할 수 있게끔 수정구에 열심히 신성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캘빈의 붕 뜬 엉덩이가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할 때쯤, 유리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두 주먹을 꼭 쥐고 몸으로 당기며 턱을 들어 올렸다.
“저, 저, 이, 이제 주, 준비 됐습니, 다……!”
아이처럼 기뻐하며 캘빈과 아서를 부른다. 캘빈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튕겨 일어났고, 아서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유리엘에게 다가갔다.
“이, 이제 여, 여길 보시면 되, 됩니다. 이, 일전에 녹화했던 자, 장면도 보여드리면 되, 될까요?”
“오. 그런 것도 가능해?”
“네, 네! 보, 보관을 하고 있어서, 서요.”
“변절한 신관이 역시 최고네.”
“그…….”
캘빈의 말에 유리엘의 얼굴이 흙빛이 됐지만, 캘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정보단의 단장답게 눈을 반짝이며 수정구를 쳐다볼 뿐.
그들이 그렇게 수정구에 집중하고 있을 때, 돌연 아서의 손이 쭉 들어왔다. 그는 수정구 위에 얹은 손을 가볍게 튕기며 그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습니다만.”
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유리엘을 보며 물었다.
“그 새 장식품에 장치가 되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네, 네?”
“마력 감지도 안 됐을 텐데. 웬만해선 절대 못 알아챌 거라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신관님이 알게 된 거지?”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기도 했다. 유리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 아서는 전에 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그, 그게…….”
“뭐야. 왜 대답 못해. 수상한데.”
캘빈이 거들자 유리엘은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 그런 게 아니고…… 드, 드한이 알려 주었습니다. 뭐, 뭔가가 이, 이상한 거, 거 같다고.”
“……드한이요?”
“네…… 가끔…… 그, 그러더라고요. 이, 이질적인 걸 자, 잘 찾는다고 해, 해야 하나…….”
아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한에게서 느껴지는 신성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문의 잠재력이 출중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어린아이, 혹은 아주 조금 재능이 있는 어린아이 정도였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지.’
그 역시 신의 축복일까?
아니면…….
‘기회가 생기면 한번 알아봐야겠군.’
이렇게 아서가 생각에 집중하고 있자, 곁에 있던 캘빈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뭐, 뭐 어떡해? 고문할까? 더 알아내?”
“미친놈.”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정말 유리엘이 고문실에 끌려갈 것 같았기에, 아서는 캘빈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었다.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물어본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자, 이제 북부 신관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봐 볼까요?”
뭔가 말을 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리엘이 항변할 수 있는 처지는 못 된다.
지금의 그는 이들에게 있어 타인일 뿐이니까.
‘의심 살 일을 안 해야겠어…….’
유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수정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다음 순간,
파앗!
[비어 있는 교황 자리를 언제까지 가만둘 겁니까?]
탐욕스러운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
세키나는 팔짱을 낀 채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톡, 톡 건드렸다.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다.
어째 북부성 신전 놈들이 조용하다 했다. 유리엘과 드한을 죽이려 들기까지 했는데 내내 얌전한 게 이상하다 했지.
그런데 아무리 사리사욕에 눈이 돌아가 있다 한들, 수도에서 일어난 사태-마물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고 중앙 신전이 무너진-를 수습하거나 할 생각도 하지 않고 교황 자리만을 노리고 있다니!
“몹쓸 넘들이네.”
정말 눈이 돌아도 제대로 돌아 버린 이들이 아닐 수 없었다.
세키나는 쯧쯧 혀를 차고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구래서, 어떠케 할라구?”
세키나의 말에, 멀뚱멀뚱 앉아 있던 아서와 캘빈, 그리고 유리엘의 시선이 한꺼번에 움찔거렸다.
딱 봐도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었던 거다.
어련히 세키나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하?
세키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머. 세 살쨔리 어린애한테 해결 방법을 알려 듀세여 할려 해써?”
“……그럴 리가요?”
빠르게 부정한 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쪽을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도에서도 계속 압박이 오고 있으니, 북부 신전을 아예 우리 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좋겠지요.”
“웅. 구건 그런데.”
아서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키나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고?
바로 유리엘과 드한 때문에!
“걔네는 얘네 주기려고 했떤 넘들이잔아.”
세키나는 기죽어 있는 유리엘과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드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마자 유리엘이 화들짝 놀라 손을 저었다.
“저, 저희는 괘, 괜찮습니다! 그,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시, 신경 쓰면…….”
“신경 쓸 껀디. 난 졸라 집요하거등.”
“그…….”
“머가 대뜬 너히는 이제 백작성에 들어온 사람들이야. 우리가 책임져야 하지. 근데 우리 좋자고 너네 주기려 했던 넘들이랑 같이 가라구? 시른데?”
“…….”
유리엘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이곳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또 이질적이라고. 언젠가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자기는 영원한 타인이라고…….
그런데 세키나가 말해 준다. 너는 이제 ‘우리’에 들어왔다고.
이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한 말이던가.
유리엘은 북받치는 감정을 겨우 갈무리하며 크흥 코를 마셨다.
“그런데.”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조금도 느끼고 있지 않은 드한이 불쑥 말했다.
“북부에 있는 대신관의 신성력은 대단합니다.”
“얼마나?”
“수도에 필적할 만큼.”
“흐음.”
세키나는 잠시 눈을 찡그리며 기억을 떠올렸다.
게임 속 북부성 신전……. 마왕성에 오기 전에, 드한을 돕는 존재로 아주 잠깐 나온다. 그때 대신관은…… 그래, 나름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 어떻게 한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하테 조은 생각이 이써.”
세키나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