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현재 세키나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도망친 루치페르를 견제하는 것.
하지만 이건 지금의 세키나의 능력으로는 힘들다. 마왕이나 마족들이 알아서 할 일.
둘째. 황실을 견제하는 것.
이것 역시 세키나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3살짜리 꼬맹이 몸으로는. 황자가 온다고 했으니 그놈에게 호감을 사 황실을 손아귀에 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것도 일단 보류. 아직 황자가 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모른다.
셋째. 장로 놈들을 견제하는 것.
이거야 뭐, 계획했던 대로 블랙 스피넬을 이용해 그놈들을 조종하면 된다. 인어의 서직지에 가면 되는데, 신관 한 명과 예비신관 한 명이 있으니 인어 놈들의 호감을 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리고 대망의 넷째. 북부성 신전을 견제하는 것.
‘허구한 날 견제만 하다가 뒤지겠네, 아주.’
세키나는 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저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아서, 캘빈, 드한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유리엘은 내보냈다. 지금의 이야기는 ‘마족’으로서 하게 되는 말들이었으니까. 이들이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유리엘에게는 알릴 수 없었다.
“자아, 구래서.”
세키나는 손뼉을 짝 치고 다들 집중하게 만들었다.
“내가 말한 조은 방법이 먼지 다들 궁금할 텐데.”
그러자 아서와 캘빈의 눈이 반짝거렸다. 반면 드한은 무덤덤했다. 어차피 자신은 세키나가 시키는 대로, 명령하는 대로 모두 따를 생각이었으므로 기대하거나 설레거나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자신은 세키나가 이끄는 대로 나아갈 것이다. 드한은 그리 중얼거리며 세키나를 응시했다.
“일딴, 캘빈. 너 정보 조작 능력 쓸 수 이찌?”
“세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웅.”
“뭐…… 할 수 있기는 하지요.”
마족들은 각기의 능력이 다르다.
누군가는 공격형 마법을 다룰 수 있고, 누군가는 치유형 마법을, 또 캘빈과 같은 부류는 정보전에 탁월한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대는 마십시오. 지금 상태로는 많아봤자 둘 정도만 세뇌시킬 수 있습니다. 힘이 부족해서요.”
세키나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접혔다.
“구니까, 그 힘이 채워지면 대는 거잔아. 구럼 얼마든지 세뇌시킬 쑤 이짜나.”
“그렇긴 하죠? 힘을 못 채워서 문제인 거니까.”
마족들이 인간계에서 빌빌거리는 이유.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
이는 마기 농도가 옅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기를 접하지 못한 마족들이기에 원래대로 힘을 낼 수 없다는 것.
반대로 생각해서, 마기만 제대로 갖춰지면 이들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마족이 된다는 뜻이다.
세키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내가 드한이랑 유리엘이랑 같이 블랙 스피넬을 구해 오깨.”
“……예?”
“거기다 마기를 담아 줄 테니까, 그거 가지구 신관 넘들 세뇌 좀 시켜 죠.”
“예에?!”
깜짝 놀라다 못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캘빈을 뒤로하고 아서가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잠깐만요. 마기를 담는다고요? 아니, 블랙 스피넬이 어디 있는지 아신다고요? 어디에요?”
“미안하디만, 아서. 너한테두 못 알려 조. 장로들이 눈독 들이구 이써서 조심해야 하거등.”
“하지만……!”
“마기를 담눈 거는 마계 연결 통로를 만들면 알아서 대는 거니까 걱정할 꺼는 업써. 기다리면 대. 그럼 내가 다 알아서 해 주께.”
“그……. 어…….”
아서는 입을 뻐끔거리며 자신이 들은 말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세키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 지금 한 말이 절대 농담 따위가 아니라는 듯.
“하, 하하. 미치겠네, 진짜.”
아서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 복받치는 감정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 입 안으로 말을 굴리던 아서는 고개를 두어 번 저은 후 다시 세키나를 응시했다.
“언제부터 계획하신 겁니까?”
“머를?”
“블랙 스피넬에 마기를 담는다는 거요.”
“너히가 내내 굶고 산다눈 이야기를 들어쓸 때.”
세키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블랙 스피넬이나 마기 같은 건 일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서에게는 아니었다. 세키나의 가장 옆에 있으면서도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아서는 복잡미묘한 심정이었다.
“왜 구래?”
아서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 걸 보며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대답한 아서는 애써 웃음을 입가에 걸어 올렸다.
“감사해요, 세키나 님.”
***
탁.
드한과 세키나만을 방에 두고 복도로 나온 아서는 벽에 기대어 주르륵 내려앉았다.
“왜 그러냐?”
멀찌감치 서 있는 캘빈이 말했다.
“뭐 왜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어? 블랙 스피넬에, 마기에. 우리에게 좋은 말만 들었는데.”
캘빈의 말에 아서가 눈을 샐쭉하게 올려 떴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그는 후우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세키나 님은 어려. 아직 아기라고.”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캘빈을 쏘아 본 아서가 소리쳤다.
“세상에 태어난 지 고작 3년밖에 안 된 분이 우리를 위해서 사방팔방 움직이고 있다는 게 쪽팔리지도 않나?”
쪽팔린다고?
뭐가?
캘빈은 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호문쿨루스는 마왕님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
“때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주먹 풀어. 내가 미안해.”
하지만 아서의 날카로운 눈빛에 꼬리를 말고 뒤로 물러섰다. 자신은 정보원일 뿐이지 전투원이 아니었으니까. 맞는 건 아프다. 아픈 건 싫고.
“그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안 고치면 넌 언젠가 내 손에 맞을 거다.”
“아냐. 그것만은 참아 줘. 네 주먹은 더럽단 말야.”
캘빈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아서는 그런 캘빈을 다시 쏘아보다가, 이내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캘빈에게 말한 대로, 아서는 너무나도 창피했다.
-세 살쨔리 어린애한테 해결 방법을 알려 듀세여 할려 해써?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잘못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이.
무슨 일만 생기면 ‘세키나가 해결 방법을 말하지 않을까?’ 하며 1차원적인 생각만 하는 자신이.
그리고…… 블랙 스피넬을 구해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걱정보다 기쁨을 우선으로 느꼈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고,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돼.”
이렇게 세키나에게만 기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마족이다.
그리고, 어른이다.
아이에게 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서는 두 주먹을 바르쥐며 다짐했다.
어른으로서의 행동을 해야겠다고.
***
세키나와 단둘이 방에 남은 드한은 다소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까 전, 세키나의 손을 잡고 세키나에게 충성을 다 하겠노라 맹세한 이후 둘이 있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세키나의 눈치를 살폈다.
“머야. 왜 구러고 바?”
세키나는 어깨를 으쓱 올린 뒤 드한과 마주 앉았다.
“너, 훈련은 잘 하구 이써?”
“잘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씨미 하는 건 안 중요해. 잘 해야디.”
“……잘해 보겠습니다.”
얌전한 그의 태도에 세키나는 피식 웃었다.
“내일 출발하 꺼야. 아까 말한 블랙 스피넬 찾으러.”
“네.”
“유리엘한테눈 잘 말해. 들키지 말구.”
이들이 마족이라는 걸 절대 알리지 말라는 뜻이다.
만약 유리엘이 사실을 알게 되면 혼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 판단한 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엘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숨겨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드한은 슬쩍 운을 띄웠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웅? 머?”
“북부 신관들을 세뇌시키고 난 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떻게 해. 그냥 세뇌시키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들어야지.
질문이 어째 이상해서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구건 왜 무러바?”
“제게 한 명만 양보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요.”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 같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양보를 해 달라구?”
“네.”
드한은 허벅지 위에 올린 손을 꽉 쥐며 말했다.
“그놈은 꼭 죽이고 싶어서요.”
“…….”
너.
용사잖아.
그런데 사람을 왜 죽여…….
돌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