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화 (2/259)

2. 반년 치 새경 (1)

“오냐, 아주 살 판이 났구나, 살 판이 났어. 냉큼 일어나라, 인석아!”

휙 소리 귓가 스치더니, 딱 하는 청명한 소리가 법당에 울렸다.

“아!”

얼얼하니 아픈 것은 저의 머리통이요, 낡은 죽비 휘둘러 그 머리통 때린 것은 어째 낯이 익은 초로(初老)의 중이었다.

“이놈의 자식이 어디 부처님 앞에서 낮잠이냐! 좌우지간 사람 구실은 못할 놈이로구나, 쯧쯧.”

꾸짖는 말은 엄하고 말투는 상스럽지만 목소리는 따뜻하니, 머리는 맨들맨들, 세 치 혀는 유들유들. 꺽정이 저의 은인이자 스승인 칠장사 생불 스님 병해(昞海) 대사다.

머리를 다시 한 번 만져본다. 상투는 온데간데없고, 댕기머리 시늉이라 하기도 민망하게 마구 자란 더벅머리만 잡힌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염라대왕 앞에서 내기를 하느니 마느니 실랑이하고 있었던 듯하였는데, 한바탕 꿈이었단 말인가.

꺽정이 제 머리를 만지작대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병해가 재차 꾸짖었다.

“그래, 인석아. 그게 네놈 머리통 맞다. 삼존불 모신 법당에서 당당하게 자빠져 자는 꼬락서니를 보면 과연 그 머리통 주인이 사람인가 쇠새끼인가 싶긴 하지만.”

“...”

작고한 지 오래여야 할 병해대사가 눈앞에 이리 선하게, 그것도 주름 자글자글하던 노인네가 아니라 이제 막 잔주름 두드러지는 나이대 사람으로 서 있으니, 퍽 이상한 일이었다.

허나 암만 고쳐보아도 눈앞의 병해는 허깨비도 귀신도 아니요 살아있는 사람이니, 정말 저 부처님 은덕으로 저의 생사를 한바탕 꿈으로 미리 겪은 것이든, 아니면 정말로 염라대왕과 내기하여 과거로 돌아온 것이든, 꿈인가 생시인가 따져보면 필히 이것이 생시일 터.

머리를 열심히 그렇게 굴리고 있는데, 무슨 영문인지 이 천생 도적놈처럼 생겨먹은 칠장사 골칫덩이가 가만히 서 있는 꼴을 본 병해는 그제야 꾸짖기를 멈추고 자못 진지하게 본론을 꺼내었다.

“그때 약조한 반년 기한이 이제 다 되었기에 내 이리 찾아왔다. 한데 법당에 들자마자 보이는 꼬락서니가 꼬락서니인지라 한심하기 이를 데 없어 죽비가 먼저 나갔다. 내 식언(食言)은 아니할 터이니 너도 마음을 슬슬 정하도록 해라.”

“반년 기한...이오?”

“혹시 꿈에 부처님이라도 현몽하셔서 좀 그놈의 말투 좀 공순하게 바꾸어주실까 했는데 내 헛된 기대였구나. 그래. 반년 기한 말이다. 반년 동안 머슴처럼 내가 부려먹었으니, 이제 새경 챙겨서 어디든지 가야 할 것 아니더냐.”

꺽정이는 우선은 알겠노라 얼버무리고서, 엉거주춤 일어나 저기 보이는 싸리비 들고 절간 구석으로 향했다.

병해는 늘 그렇듯 또 찾는 이 있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선선한 가을바람만 남았다. 꺽정이 그가 병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나 문제의 그 약조를 하게 된 것이 을사년(1545) 봄이었으니, 반년 기한이 다 지났다 한 지금은 필히 같은 해의 가을일 터. 마당 한구석 국화가 마치 그 셈이 맞다는 듯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정녕 돌아왔단 말인가...”

누구 듣는 사람 있었더라면, 생긴 건 험상궂어도 아직 앳된 기 가시지 않은 꺽정이 퍽 나이 먹은 사람처럼 혼잣말하는 것을 괴이쩍게 여겼을 것이다. 물론 꺽정이의 생김새를 보고서는 혹 시비라도 걸릴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마저 가겠지만.

꺽정이 돌이켜본바 그때 그가 병해와 약조를 하게 된 내력은 이러하였다.

꺽정이는 태어날 때부터 일신의 힘은 천하장사요, 천성은 고약하여 남의 말은 하늘이 두쪽 나도 곧이 듣지 않으니, 고리백정의 아들이건만 정작 고리 만드는 재주 배우기는 요원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아비 말대가리(末大乫伊)가 다른 고리백정들과 머리 맞대고서 결론짓기를, 저기 황해도 갯벌 오가며 갈대 모아다 오는 일이나 맡아보라 하였다.

고리백정들이 아무리 못 배우고 거칠다 하지만, 고리[柳器] 만드는 것도 나름의 재주인 고로 고리버들이나 싸리채, 갈대 따위를 모을 때도 상하품을 가리곤 하였다. 특히 봉산의 갈대밭에서 나는 갈대는 삿갓이나 광주리 따위를 만드는 데 최고로 쳤다.

그리하여 머리 굵은 뒤로부터 꺽정이가 업으로 삼은 일이란, 그 봉산 갈대밭에 다른 백정이나 일대 백성들보다 먼저 가서는 잘 자란 갈대를 모으고 또 모아 양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당도하기만 하면 지천으로 널린 것이 갈대요, 그 임자라 하면 기러기나 갈매기 따위가 있을 뿐. 바깥바람도 쐬고, 세상 구경도 하고,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여기고 있던 꺽정이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사정이 확 변하였다.

늘 그렇듯 봉산 갈대밭에 향하였건만, 어디 서리같이 생긴 비리비리한 자가 장정 두엇과 함께 나타나서는, 이제 이 갈대밭에 주인이 생겼으니 무명이나 쌀을 내지 않으면 갈대를 취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꺽정이도 하도 성질 죽이고 살라 신신당부하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처음에는 차분하게 – 심지어 반쪽짜리 공대도 하였다 – 타이르며 본디 이쪽 일대에 갈대밭이 한두 군데가 아니므로 혹 다른 곳과 헷갈린 것 아니냐 물었다. 헌데 꺽정이 딴에는 애써서 얌전하게 말해준 것이었는데 그 서리 녀석은 외려 역정을 버럭 내며,

‘이 백정놈의 자식이 어디서 사람 말을 웃음거리로 아느냐! 이 노전(蘆田, 갈대밭)에 임자가 생겼으니, 네놈이 욕심 부리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반드시 관에 고하여 치도곤을 맞히리라.’

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은 몰라도 그놈의 그 백정 소리를 꺼내며 면박을 주니, 꺽정이도 노기가 아니 치솟을 수 없었다.

‘이 갈대밭 임자는 저기 저 날아가는 기러기다, 이놈아.’

하면서, 곧장 그 서리 놈의 양 다리몽둥이를 붙잡아 거꾸로 들었다.

‘뭐라? 이, 이놈아! 놓아라! 놓아!’

‘내 네놈이 그리 좋아하는 임자와 대면을 지켜주마.’

하고서는, 그 자리서 몇 번 빙빙 돌린 뒤 휙 던졌다. 서리는 하늘을 정말 훨훨 날다가 먼발치 갈대밭 속에 푹 떨어지고, 따라온 장정들은 그 꼴을 보고는 기가 죽어 그 자리에서 도망하였다.

별 싱거운 놈들도 다 있다 코웃음 치고는, 늘상 그렇듯 갈대 한 짐 짊어지고서 양주로 돌아와 희한한 일도 다 있었다며 집안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는데, 듣던 아비 낯이 곧장 굳어지더니,

‘꺽정이 네놈은 어째 이름마냥 걱정거리만 몰고 다니느냐? 한동안 여기를 떠나 있는 게 좋겠다. 풍문에 듣기로 어디 한두 군데도 아니고 황해도 바닷가는 모조리 새로 임자가 생겼다던데, 그렇다면 필히 높으신 양반님네들 하는 일 아니겠느냐? 다행히 누가 의심을 하더라도 가까운 봉산이나 재령을 의심하지 양주까지는 한동안 탐문하지 않을 터이니, 얼른 짐 챙겨서 떠나거라.’

하는 것이었다.

동네 백정들도 저들까지 혹 엮여 죄 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동조하고, 꺽정이 역시 저 사는 동리는 퍽 답답하다 여겼으므로, 즉석에서 꺽정이의 정처 없는 유랑이 결정되었다.

하여 이듬해에 일 도우러 돌아오기로 하고서 꺽정은 양주를 떠났다. 비록 짐이라고 해도 무명이나 쌀은커녕 짚신 한 켤레가 전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이 무렵 팔도에 들끓는 것이 도적이었으므로 어디 가서 굶지는 않았다. 그저 목 좋은 고갯길에서 기다리다가 자칭 고개 임자들이 길손 봇짐 가볍게 해주겠노라며 나타나면, 주먹으로 상냥하게 통사정하고 그들의 따뜻한 인정(人情)을 받아 챙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겨울도 그럭저럭 났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서울의 나랏님이 죽었다 하였는데, 어차피 꺽정이 그에게 그리 중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의 밥줄인 고갯길 지키는 도적놈들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 ‘고개 주인’ 하나를 붙잡고 족치던 때였다. 고갯길 지키는 도적놈들도 그 성정이 제각각이라, 팔다리 두엇 부러질 때까지 정신 못 차리고서 악다구니 퍼붓는 종자가 있는가 하면, 저의 나이 반절이나 될 법한 꺽정이에게 곧장 장사님 장사님 말 붙이면서 의뭉스럽게 수작 거는 자도 있었는데, 일전에 고개 넘던 행인이 ‘떨어뜨리고 간’ 무명을 성심껏 바치는 이 도적놈이 여기에 속했다.

크게 가벼워진 그의 봇짐을 주섬주섬 싸면서 능청스레 묻기를,

‘저기, 그런데 장사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는지요?’

하는데, 절로 쌀쌀맞은 대꾸가 나왔다.

‘그게 임자 알 바요? 알려주면 어디서 가마라도 구해오게?’

‘무어...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근래 안성 칠장사에 그렇게 영검스런 중이 하나 있다 하여, 병 고치러, 아니면 근심걱정 덜러 찾아간다는 길손이 적지 않더이다. 요새 국상도 나고, 또 소인네가 할 말은 아니지만 도적도 많고, 역병에 가뭄에, 뭐 그런 근심걱정들이 꽤들 있잖습니까. 혹 장사님께서도 그리 가시는가 궁금하여...’

하는데, 문득 그 고승이란 것은 어찌 생긴 작자인가, 저 양반님네들과는 또 무엇이 다른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할 일은 없고, 돌아갈 곳도 당분간 없은즉, 이왕 집 나온 길에 구경이나 원없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길로 며칠을 걸어 칠현산 칠장사에 찾아가서는, 그 소문난 병해대사 찾으러 왔노라 당당히 밝혔는데, 정말로 본인이 곧장 나왔다. 소문만 들었을 때는 흰수염이 가슴팍까지 닿고 가까이 가기만 해도 향내가 풀풀 날 것 같던 고승이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어째 승복도 어색한 그냥 중이었다.

그런데 그 말주변 하나는 그럴듯하여, 처음에는 이 사람이 그 고승 맞는가 싶던 꺽정이도 어느새 칠장사에 한동안 눌러앉게 되었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통성명하고서, 별 것 아닌 가벼운 이야기나 툭툭 던지더니, 곧장 병해가 묻는 것이었다.

‘먼발치서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거 힘 좀 쓰게 생긴 젊은이로고.’

‘뭐, 어디 가서 약골 소린 아니 듣소.’

‘사지 멀쩡한 자가 떠돌이로 지낸다 하니 필시 번듯한 사정 있는 건 아니렷다. 내 다른 이들에게 말하여 우리 불목하니로 삼겠노라 할 터이니, 여기서 반년 만 지내볼 생각이 있느냐?’

‘불목하니? 종놈처럼 부려먹겠다는 거 아뇨?’

‘예끼, 네놈 면상으로 불목하니 노릇하며 절간 돌아다니면 들어올 시주도 끊어지지 않겠느냐. 이 절간에 험상궂은 장정은 저기 문간 지키며 서 계시는 사천왕 네 분으로 족하다.

그게 아니라, 내가 이래 봬도 알량한 명성이 조금 생겨서 여기저기 찾는 곳도 있고 또 이리로 찾아오는 이도 적잖이 있는데, 사바세계 인연이라는 게 대개 그러하듯 꼭 그러면 시비를 거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기 마련이라.’

‘해서, 날더러 곁을 지켜달라 그런 거요?’

‘호법(護法)이라면 호법이겠지. 혹시 아느냐. 이렇게 불법을 가까이하다 보면 그놈의 욱하는 성정도 좀 죽을지.’

이만하면 성질머리 죽이고 있는 축에 들었는데, 얼마나 보았다고 마치 저의 행패 벌이던 꼴을 선히 보는 것처럼 툭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열에 아홉은 본디 살던 고장에서 그놈의 성정을 못 죽이고 거하게 일 벌이고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겠지. 어찌 되었든 이왕 세상 구경 나선 길에 무엇 하나 얻어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내 약조하마. 반년만 내 옆을 지켜주면, 힘 닿는 한에서 원하는 것 하나는 들어주지. 이래 봬도 속세에 몸 담고 있을 적 여기저기 인연이 많이 있던 몸이라.’

제 험상궃은 기세에 주눅든 기색은 전혀 없이, 이리 당당하게 대꾸하고 있으니, 꺽정도 이 자에게 뭔가 말 못할 비범함이 있기는 하리라 믿고서는, 그 제의를 받기로 하였다.

‘좋소. 반년이오.’

‘그래. 엊그제가 경칩(驚蟄)이었으니 백로(白露)께 헤어지면 되겠지. 그럼 오늘부터 시작한 것으로 치고 우선 그 말본새부터 고쳐라, 인석아. 어디 가서 안연(顏淵)이처럼 굴어도 생긴 것 때문에 도척(盜跖) 대접 받을 녀석이 말투까지 그 모양이면 어찌하려 그러느냐.’

‘안연이는 누구고 또 도척이는 누구란 말이오? 내 배움이 짧아서 그리 어렵게 말하면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듣소.’

이것이 꺽정이가 반년 동안 칠장사의 명물 병해대사 따라 안성과 그 주변 고을을 부단히 돌아다니게 된 사연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실 ‘병해대사’도 아니고 그냥 병해였다. 더구나 그는 칠장사에서 수계한 박힌 돌도 아니요, 그저 어느 날 어디선가 나타난 떠돌이 중, 그러니까 굴러온 돌이었다.

물론 그것뿐이었다면 딱히 꺽정이가 병해를 지켜야 할 연유는 되지 않았을 터였다. 아직 보우(普雨)가 나타나기 전이라 팔도의 중들은 퍽 억눌려 살고 있었고, 이는 칠장사도 마찬가지라 비구 한 사람 한 사람이 중하였다. 하물며 중답지 않게 글도 읽을 줄 알고 불경뿐 아니라 온갖 경서에 두루 능통한 병해는, 떠돌이라 하여 함부로 내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였다.

그런데 병해는 재주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도술도 조금 부리고, 거기에 말로써 사람 마음 어루만지고 울화와 근심걱정 풀어주는 데도 퍽 솜씨가 좋았기에, 곧장 칠장사 안팎으로 병해를 따르는 사람과 요승 났다며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각각 여럿 생겼다.

꺽정이가 병해를 따라다니며 하는 일은 바로 개중 후자에 속하는 이들이 경거망동 못 하도록, 병해의 말을 빌리면 ‘깨우침을 주는’ 것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주먹질은 머리통 깨뜨리는 것이지 누굴 깨우치는 것은 아닌 듯하여 한 번은 병해에게 물어보았는데, 늘 그렇듯 청산유수처럼 답변하기를,

‘공자께서도 이르시기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 남을 흠씬 두들겨 패려는 자는 저부터 흠씬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이 귀한 깨우침을 주는 것이니 어찌 꺽정이 너의 공덕이 적다 하겠느냐?’

하였다.

그 반년이 흐르는 사이, 병해는 이제 거리낄 것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절에 가서 이름난 노승도 만나고, 안성 일대의 무슨무슨 생원과 진사 무리와도 어울리고, 치성드리러 온 양반님네 가솔들 응대도 하고, 무척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그동안 꺽정이가 ‘깨우침을 주는’ 일도 적지 않게 있었다. 도성에서는 국상 치른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한 차례 국상이 나고, 무슨 대윤(大尹)이니 소윤(小尹)이니 하는 무리끼리 대판 싸우고 있다고도 하고, 대충 그렇게 시국이 뒤숭숭하였기에, 경기도 끝자락에 있는 안성 일대도 덩달아 뒤숭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반년이 다 지났다 하니,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며칠 전 전해진 소식으로, 한양에서 벌어지던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 마침내 한차례 피바람으로 이어져 높은 양반들이 줄초상이 나고 있다 하였다. 국상 때에는 눈에 띄는 불사 따위를 일으키지 않고 그저 사람만 만나러 다녔지만, 지금처럼 흉흉한 시국에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인 고로, 병해는 외유를 딱 끊었고, 꺽정이도 요 며칠간은 칠장사 안에서 소일하며 잡일이나 조금 거드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병해는 이제 설령 칠장사 주지나 안성군수가 직접 나서서 찍어내려 한들 어지간히 작정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만큼 일대의 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꺽정이 덕에 거리낌 없이 횡행하며 여기저기 인연 만들고자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꺽정이는 그 힘만 셀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병해가 마음만 먹는다면 반년 전 약조를 무른다던가, 농담이었다며 없던 일로 한다던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무명이나 조금 쥐어주고 만다던가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사실 그런 일 면하고자 꺽정이 그가 백정의 아들임을 숨기고 다녔던 것이기도 했다.)

허나 병해는 개의치 않고서, 이제 와서 그 품삯을, 반년 치 호법 내지는 머슴 노릇 새경을 약조한 대로 치루겠노라 하였으니, 과연 꺽정이 그가 기억하는 생불 스님은 생불 스님이 맞다 싶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새경 삼아 도와달라고 병해에게 청해야 하는가. 그제야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쓰는 시늉만 하려고 가지고 나온 싸리비는 도통 흙먼지를 만나지 못한 채, 법당 기둥에 기댄 채로 석양을 마주하고 있었다.

꺽정이는 배움이 짧아서 그렇지, 머리로만 따지면 결코 범상하다고는 못할 것이었다. 허나 마음 먹으면 곧장 일을 벌이곤 하였기에,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며 고민하는 일은 꽤 드물었다.

하여 꺽정이는 도통 하지 않던 일을 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고, 싸리비가 드리운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는데, 병해가 그때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땅을 노려보고 있으면 절로 먼지며 자갈이며 사라지는 모양이로구나. 어느 세월에 그런 도술을 다 터득하였는지, 참으로 대견타.”

“재미 없소. 아까 툭 던지고 간 그 물음 때문에 아직도 골머리를 앓고 있단 말요.”

“아니, 그걸 고민할 세월이 반년이나 있었는데, 마음을 아직도 못 정했단 말이더냐? 얼른 정하는 게 좋을 게다.”

하고는, 주변을 스리슬쩍 둘러보더니 바짝 다가와 소곤거렸다.

“절간 안의 귀 밝은 치들이 마침 모레 밤에 이곳 본찰(本刹)을 잠깐 비우게 되었다. 그때까지 마음을 정해서, 밤에 달 질 무렵 활터로 나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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