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4화 (4/259)

3. 파문 (1)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전우치, 아니, 병해에게 하직인사 올리고서 꺽정이는 곧장 하산하였다. 칠장사에 반년을 있었지만, 병해 외에 친하게 지낸 이는 없고, 또 생김새도 마음씨도 험상궂은 꺽정이에게 곰살맞게 구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길 나서기로 마음 먹은 이상 따로 구질구질하게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개성을 가려면 어차피 양주 쪽을 지나 파주에서 임진강 건너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고, 또 마침 처음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말했던 일 년 기한도 이제 거의 다 되었기에, 안부인사나 하고 갈 심산으로 꺽정은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정말로 나라가 더 어지러워지기는 하였는지, 사람들 인심은 더 사나워진 듯하였다. 아니면 세상에 걱정 하나 없던 옛날과는 달리, 지난 몇십 년 삶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들어 있기에 일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인심 사납지 않고 도리어 후한 이들이 종종 있으니, 바로 꺽정이 자신이 반년 전 경기 일원 유랑할 무렵 맞닥뜨리곤 하였던 산적 놈들이었다. 몸뚱이 가운데 머릿골로만 배우는 것이 글이라면, 온몸으로 배우는 것은 주먹맛이니, 어찌 그렇게 배운 교훈이 쉽게 잊히겠는가.

하여, 다리몽둥이 분지르거나 생나무를 뿌리째 뽑아 위압할 필요도 없이 도적들에게 편히 대접받으며 양주 집까지 왔다.

처음에는 그저, 저는 잘 살아 있고 이제 송도 구경하러 가니 내년에 또 얼굴이나 비추러 오겠노라 말 한 마디만 툭 던지고서 가던 길 마저 갈 심산이었는데, 꺽정이도 사람인지라 아버지 말대가리와 큰형 가도치(加都致)를 오랜만에 보고서 마음이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던지라 끝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하룻밤 자고 떠나기로 하였는데, 이게 웬걸. 닭이 울 때부터 날이 영 꾸물거리더니, 아침이 되자 가을비답지 않은 장대비가 마구 쏟아졌다.

“어, 거 비 잘도 온다.”

“이리 된 것 배도치(裵都致) 너도 와서 일이나 좀 도와라. 아버님께서 아직 손을 못 쓰시니 일손 하나가 급하다고.”

마치 제 일 아니라는 것처럼 마루에 걸터앉아 비 오는 것 구경하는 꺽정이에게, 가도치가 퉁명스레 말했다.

아버지 말대가리는 얼마 전 전 양주 읍내 안 진사네에 소쿠리와 광주리 따위를 바치러 갔다가 그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거하게 물려, 아직 손을 마음대로 쓰지를 못하고 있었다. 한창 일감 많을 때 그리 되었으니, 가도치 이하 남은 식솔들이 집안의 고리 짜는 일을 도맡게 되어 바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도 그렇고 남들도 그렇고 다 나를 꺽정이라 불러주는데, 왜 형님만 배도치야 배도치야 하는지 모르겠소.”

꺽정이가 딴청 피우며 물었다.

“그야 내 모자란 아우놈 이름이 배도치니까 배도치라 부르는 것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백정은 물론이거니와 천인(賤人) 이름이라는 것이 대개 양반 시늉하는 얼자(孼子)들 아니고서는 개똥(加伊屎)이나 쇠똥(金屎)이 정도이기에, 가도치와 배도치라 하면 그나마 점잖은 축에 들었다.

허나 양반님네들도 아호니 별호니 하여 마구잡이로 이름 고쳐 쓰는데, 백정이라 하여 못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애초에 천인들 이름은 서로 구분하는 데 그 뜻이 있을 뿐. 말동(末同)이로 살다가 허리가 구부정해지면 이름은 절로 곱사등이가 되고, 도야지(刀也只)로 지내다 한쪽 눈이 멀면 절로 이름도 애꾸가 되는 식이었다.

꺽정이는 조금 별난 경우로, 소싯적부터 하도 넘쳐나는 힘으로 남들 근심걱정만 늘려주고 다녀서 ‘걱정이’, ‘걱정이’ 하던 것이 어느 때부턴가 꺽정이로 굳어졌다. 허나 일대 백정들은 모두 꺽정이라 부르지만 오직 가도치만은 본래 이름대로 배도치 배도치 하고 부르니, 꺽정이의 불평도 나름의 근거는 있는 셈이었다.

“난 ‘꺽정’이 좋단 말요. 어디 가면 딱 드러나는 이름이니까. 이왕이면 거기에 성도 붙여서 임꺽정이. 그렇게 부르면 더 좋고.”

“이놈이 바깥바람을 너무 쐬다가 풍(風)이라도 들었나. 백정이 무슨 성이야, 성은.”

“못할 거 뭐 있소? 내 돌아다니며 보았더니 요새 도적들이 그리 날뛰는데, 개중에 보면 다들 번듯한 성에 이름 하나씩 지어서 쓰더이다.”

“되었다, 인마. 인제 슬슬 눌러앉아 장가나 가야 할 놈이 무슨 그런 흰소리나 하고 있느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고 고리백정은 고리 짜서 먹고 살아야지. 이대로 가면 아예 저기 서울이나 송도 가서 글공부 하겠다고 설치겠네, 쯧.”

그러고서 가도치는 저의 아우가 글공부 한답시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는지 홀로 킥킥 웃었다.

하루 묵고서는 곧장 개성으로 떠나겠노라 말만 하였지, 왜 그리 가는지는 아직 부연하지 않았던 꺽정이는 정작 뜨끔하여 가만히 있었는데, 당장 발끈하여 따지고 들 아우 놈이 어째 조용한 꼴을 그제야 본 가도치가 눈 둥그래져 고쳐물었다.

“뭐야, 정말로 글공부 하러 송도 가려고?”

“그... 뭐 글공부는 아니긴 한데... 저기 왜, 송도삼절이니 뭐니 하는 화담 선생이라고 계시지 않소. 그분께나 한 번 찾아가볼 생각인데.”

“하하하! 하하! 아이고, 우리 배도치가 어디 재인(才人) 패거리라도 따라다녔나. 재밌었다, 지금 농담은.”

“진담이오.”

마치 옆에 벼락이라도 내리친 듯, 가도치가 고리 짜다 말고 빤히 꺽정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냐? 그보다도 네가 공부는 해서 무엇을 하게?”

“뭐, 사람이 배워야 뭐라도 되는 법 아니겠소.”

“그것도 가르치는 사람 마음이지. 네놈 성깔 보고서 제자로 들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 아닐까.”

꺽정이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병해야, 저의 속명을 대면 화담 선생이 문하에 들이시리라 단언하였지만, 애초에 그것도 제자 받으려는 사람 마음에 달린 일 아니던가?

“어차피 네놈 성정이야 잘 아니까, 이제 와서 해라 마라 소리는 못 하겠다. 어차피 형이 뭐라 하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는커녕 애초에 듣지도 않는 놈이니까. 그래도 괜히 엉뚱한 짓 하다 탈 나지 말고, 몸이나 멀쩡히 챙겨서 돌아오너라.”

그러고서는 곧장 고리 짜는 일에 도로 열중하는 가도치였다.

“뭐, 기약은 못 하겠소. 내 어디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진득하니 있을 사람인가.”

“그렇게 날뛰고 사는 것도 한 철이지, 계속 그러다가 제 명에 못 죽는다, 인석아.”

애초에 제 명에 죽으려는 뜻은 하등 없던 꺽정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송도삼절이라 세간에서 흔히 일컫는데, 그중 박연폭포야 천지가 뒤집히지 않고서는 저 천마산 자락에서 옮겨갈 일이 없고, 황진이로 말하자면 저의 마음대로 평양도 갔다가 금강산 유람도 갔다가 한다지만 그 집만은 사모하는 남정네들과 그들이 환심 사고자 바치는 온갖 기물이 하도 오갔기에 어지간한 사람은 어느 골목께에 있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반면 화담선생 서경덕으로 말하자면, 개성 저자에서 삼십 리는 족히 떨어진 오관산(五冠山) 꽃못(花潭) 연못가에 초당 하나를 지어두고서 기거하고 있는바 알 사람만 알고 모르는 이는 몰랐다.

헌데 본래라면 몰라야 할 작자들이 간혹 어디선가 풍문을 주워듣고 찾아와 집주인을 곤란케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화담 선생은 소싯적부터 『역(易)』에 통달한바, 귀찮은 일이 생길 듯하면 곧장 자리를 비우곤 하였으므로, 고생은 오롯이 노복(어린 사내아이 하나뿐이라 ‘노복들’도 아니요 그냥 노복이었다)의 몫이었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그렇게 될 것만 같은 기색이 역력하였다. 적어도, 다른 불청객 찾아오기에 앞서 선객(先客) 맞이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하였다.

“험험. 이리 오너라.”

보잘것없는 사립문 앞에, 마치 어디 대갓집 앞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거한 행차가 서 있으니, 지금 문짝 안으로 사람 부른 쥐수염 난 사내가 하나, 말구종 하나, 힘깨나 쓰게 생긴 장정 여럿, 그리고 그 행차의 주인 될 것 같은, 값비싼 옷 차려입고서 뒷짐 지고 있는 사내가 또 하나였다.

마침내 사립문 건너에 묵직한 인영 하나 드리우더니, 빼꼼히 문이 열렸다.

“뉘시오?”

“네 이놈, 귀한 분 행차시거늘 예를 갖추지 못할까. 어디서 감히... 히익!”

열린 문 안에서 고개 내민 젊은이의 얼굴을 본 그 쥐수염 사내가 곧장 얼어붙었다. 어린 종 대신 고개 내민 꺽정이가 되물었다.

“나를 아시오?”

“너, 너, 네놈! 아이고, 나리! 저자가 바로 그치입니다! 그때, 그, 그, 갈대밭...”

그제야 꺽정이도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라, 딴에는 환한 (남에겐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양주를 떠나 한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원인이 되었던, 그때 그 봉산 갈대밭에서 저더러 갈대 거두어가는 값을 내라 을러대던 서리 아니었던가.

“아, 작년에 뵈었던 그 갈대밭 잘못 찾아오신 샌님이시구려. 그때 갈대밭 임자와는 상봉 잘 하셨소?”

대관절 무슨 곡절로 그때 그자가 여기 서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긴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혼절할 것처럼 새파랗게 질린 것도 그렇고, 꺽정이 자신이 양주 떠나 유랑하게 된 원인을 만들었던 그때 그 갈대밭 서리가 맞았다.

“흠흠. 화담 선생 댁 앞이거늘 정신 사납게 무슨 망동이더냐.”

보다 못한 비단옷 사내가 끼어들었다. 사람 좋은 척하는 말투와는 달리, 딱 보아도 탐관오리 상이었다. (털어먹기 좋은 고을 고르다 보면 절로 생기는 안목이었다.)

노여움인지 두려움인지 부들부들 떠는 쥐수염 사내를 옆으로 제쳐두고, 그 비단옷 사내가 꺽정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저이는 평소 이쪽 송도 일대에 머물면서 집안일 돌보는 사람인데, 금일 화담 선생 뵐 일이 있어 길잡이로 데려왔거늘 이리 구연(舊緣) 있을 줄은 몰랐구나. 그래, 보아하니 선생 모시는 노복인 듯한데, 들어가서 선생께 병조정랑 벼슬 지낸 이희손(李希孫)이라는 사람이 찾아뵙고자 찾아왔다 전해다오.”

“선생께서는 아니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노복이 아니라 선생의 제자 되는 사람입니다.”

꺽정이 딴에는 높은 사람인 듯하여 최대한 예를 갖추었으나, 불손한 말투에 불손한 눈빛은 어디 가지 못하였다. 이만하면 염라대왕에게 툭툭 말대꾸하던 것보다도 공손하게 대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이희손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툭 드러났다.

“네가 잘못 들은 모양이구나. 내 양녕대군의 현손(玄孫)이요, 사사롭게는 윤 서원군(瑞原君, 윤원형)의 벗 되는 사람이다. 화담 선생을 뵙지 못하고 돌아가면 반드시 좋지 못한 이야기가 돌지 않겠느냐?”

“허나 화담 선생께서 정말로 여기 계시지 않으시니, 어찌 만나뵙겠습니까?”

사람 좋은 시늉 하는 것도 정말로 사람이 좋아야 곧잘 하는 법이니, 꺽정이도, 이희손도 주고받는 수작이 참으로 어색하였다.

“나리, 저놈 말은 더 들을 것 없습니다. 저런 놈이 화담 선생의 제자라니요. 관상만 보아도 저게 소도둑놈이지 어딜 봐서 서생처럼 생겼습니까? 필히 선생 아니 계실 때 뭐라도 털어보려 들어왔을 겝니다. 붙잡아서 치도곤이라도 내야지요!”

그사이 저의 상전 위세와 무리의 머릿수 많음을 깨닫고 정신 차렸는지, 쥐수염 사내가 옆에 끼어들었다.

이희손이 그 말을 듣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윽고 씩 웃으며 꺽정이에게 물었다.

“정녕 이 문을 아니 열어줄 테냐?”

“집주인 아니 계신데 함부로 들어오면 그자야말로 도적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도적이라. 그놈 퍽 무례하구나. 여봐라! 부숴도 좋으니 문을 열어젖혀라!”

장정 여럿이 곧장 달려들었다.

‘흐흐... 누가 보아도 저놈이 내게 먼저 무례하게 대하였으니, 천하의 화담일지라도 변명할 구석이 없으렷다? 저놈이 제자든 아니든, 다른 제자들에게까지 여차하면 죄가 닿을 수 있다고 겁박한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그의 벗 윤원형이 마침내 그 법도를 바로잡은 조정에서 논공행상을 벌이며, 그간 푸대접받던 명신(名臣)들을 다시 높이고 있었으니, 그간 저들만 청정한 시늉하는 소인배들에게 핍박받던 이희손과 같은 이들의 때가 돌아온 셈이었다.

그러나 소인배들이 어찌 자신이 소인임을 알겠는가? 분명 얼마 전의 한없이 관대한 처분으로 인명을 아끼는 아름다움을 보였건만, 도리어 저치들은 음해하고 또 헐뜯기를 그치지 않으니, 참으로 나라를 좀먹는 간신 도당이라 할 만하였다.

당장 지금도, 이희손 그가 마땅히 얻어야 할 당상관 자리를 두고서 삼사 가운데에 볼멘소리 나오고 있다 하니, 옳고 그름을 명명백백히 아는 이희손에게 있어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그나마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도 낼 겸 바람이나 좀 쐬며 은일(隱逸, 숨어 사는 선비)을 찾아다니라 한 윤원형의 말 듣고서 이곳 개성까지 오면서 조금은 마음이 풀렸지만.

대윤과 소윤 싸움으로 마침 조정에 여러 빈자리가 생겼다. 이때 이름은 높되 세력은 없는 서경덕 같은 이를 지금 잘 꼬여내 벼슬길 나아오게 한다면, 반드시 저들 어리석은 무리는 그들끼리 나뉘어, 누가 시세에 야합하였네, 또 누구는 선비의 도리를 잊었네 하며 다투는 데 힘이 쏠릴 것이었다.

서경덕도 이를 아는지, 이희손 그가 개성에 당도한 후 지난 며칠을 열심히 피해 다녔다.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터. 그러던 차 이렇게 붙잡고 겁박할 거리가 생겼으니 참 잘된 일이었다.

물론 잘못하면 괜히 남의 집 문을 두고 실랑이 벌이며 행패 부렸다고 좋지 않은 말만 나돌 것이다. 하지만 저쪽은 사내 하나요 이쪽은 장정이 여럿이거늘 어찌 그리 되겠는가? 우선 때려눕히고서 저들끼리 말을 맞추면 될 일이었다.

돌아와서는 그 황망한 꼬락서니를 보고 당황하는 서경덕과, 인자한 웃음 지으며 우선 안에 들어가 이야기 나누자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 짓고 있었는데, 그제야 이희손은 진작에 들렸어야 할 문 부서지는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뭣들 하고 있는 게냐!”

“나, 나리! 이놈의 자식이 쇠심줄을 먹고 자랐나,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요!”

좁디좁은 사립문 앞에 장정 다섯 (비리비리한 쥐수염 사내까지 합하면 다섯 하고 반)이 붙어 있는데, 반대쪽의 젊은이 하나를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껄껄! 사람구실 못하는 것들을 데리고 다니시느라 우리 어르신께서 참으로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그려!”

이쪽은 죽을 맛인데 저쪽은 도리어 나이에 맞지 않게 낄낄거리며 비웃고 있었다.

결국 사립문이 버티지 못하고 와자작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허어, 선생님을 뵈러 오신 분들이 도리어 초당의 문을 부수어버리셨으니, 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이놈이!”

꺽정이는 이죽대고, 이희손은 붉으락푸르락. 그리고 나머지 장정들은, 문짝은 부서지고 저들은 기진맥진했는데 저쪽 사내는 쌩쌩한 것을 보고서 아연실색하였다.

꺽정이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졸지에 박살난 사립문 조각이 발에 치여 바스락거리고, 주저앉은 장정들은 저도 모르게 엉덩이걸음으로 물러났다.

“좌우지간, 보시다시피 선생께서는 지금 계시지 않습니다. 사람 말을 좀 믿으시지 그러셨습니까. 문 부서진 것을 두고 떠들지는 않을 터인즉, 부디 어르신께서도 다음에 다시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꺽정이가 이희손에게 말했다.

이름이나 힘으로 강짜 부리려 해도 도통 먹히지 않고, 꺽정이 말마따나 서경덕이 초당에 없으니 기약 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이희손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별 수가 없었다.

남기고 가는 것은 그놈의 ‘두고 보자’와 같이 뻔한 소리뿐.

그제야 소란 일어나자마자 놀라서 숨어 있던 어린 종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가, 가셨습니까요?”

“오냐. 다들 물러갔다. 퍽 싱거운 놈들 같으니라고.”

꺽정이가 마룻바닥에 퍽석 걸터앉으며 말했다.

“거 손도끼나 하나 있으면 가져다 다오. 부서진 사립문은 선생님 돌아오시기 전에 고쳐두어야지.”

“저기, 그런데...”

“손도끼 없으면 뭐 아무거나 연장 하나만 가져다 다오. 맨손으로 나무 뜯어서 사립문 만들려면 영 모양새가 안 나니까.”

“정말로 우리 나리마님 제자분이 맞으십니까?”

문 앞에서 ‘계십니까’ 한마디 하고서는, 아무 답이 없으니 곧장 담장 뛰어넘어 들어와서는 당당하게 화담 선생 제자라 밝히던 그 첫 모습을 떠올리며 종이 물었다.

“뭐,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리될 테다.”

“예?”

“스승으로 모시려고 찾아왔는데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여기서 죽치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돌아오실 테고, 그렇게 되면 제자로 삼아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 제자와 진배없는 것이지.”

분명히 앞서 말하기를, 집주인 없을 때 함부로 들어오면 도둑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내의 용력을 보았기에 차마 지적하지는 못하였다.

“스승님 어디 계신지 알면 찾아가서 자초지종 고하고, 모른다면 나랑 같이 사립문이나 고쳐 달자꾸나.”

꺽정이가 다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이만하면 이희손 그 작자가 돌아갔으려니 여기면서, 제자 황진이와 함께 박연폭포에서 시나 읊다가 돌아온 화담 선생은, 덩치가 범만 한 총각이 노복 밤이(栗伊)와 함께 사립문 고치고 앉아있는 꼴을 보게 되었다.

이윽고 그 총각이 저를 보자마자 펄썩 엎드리며,

“절 받으십쇼, 스승님!”

하는 데 한 번 놀랐으며,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괘씸하고도 불쌍한 옛 제자 전우치가 멀쩡히 살아서 중 노릇하고 있다는 데 또 한 번 놀랐고,

그제야 저 사립문 박살난 사연을 듣고서는 아예 대경실색하기에 이르렀다.

매사 초연한 화담 선생이었기에, 남들처럼 상스러운 소리를 하거나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목덜미 부여잡게 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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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천민들이 대개 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통념은 절반 정도는 맞습니다. 물론 일천즉천이나 종모법 하에서 양민인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사례가 있기는 하였지요. 예컨대 임란 당시 권율의 몸종 출신으로 숱한 전공을 세워 마침내 충무공 시호까지 받은 입지전적 인물 정충신(鄭忠信)은, 아전으로 있던 아버지가 정씨였기 때문에 천민 시절에도 정씨였을 것으라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름을 남긴 많은 ‘천민 출신’ 문인들은 실제로는 얼자들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당연히 성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이 없는 천민들도 유의미한 비율로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력 증식을 위해 적극적으로 양인과 통혼시킬 이유가 있던 노비들과는 달리, 백정처럼 외부와 통혼할 기회가 적은 집단들은 아마 성씨가 드물었을 것이며, 양란으로 신분질서가 크게 흐트러지기 이전인 작중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임꺽정도 사실 그런 사례라 볼 수 있는데, 바로 본문에 나온 형 가도치의 존재 때문입니다. 가도치가 ‘임가도치(林加都致)’가 아닌 그냥 ‘가도치’로 『실록』 등에 기재되었다는 사실은, 가도치가 꺽정의 친형이 아니거나, 아니면 꺽정이의 성이 본디 임씨가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벽초는 이중 전자를 택했는데 – 청석골 토박이 산적 오가의 이름이 ‘개도치’라고 나옵니다 – 여기서는 상술한 이유로 후자를 택했습니다.

여담으로, 가도치, 배도치 등 ‘-치(致 / 赤)’로 끝나는 非한자어 인명은 몽골어에서 유래했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있습니다. 즉 ‘벼슬아치’, ‘장사치’의 ‘-치’와 어원이 같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두 이름 모두 실제로 천민의 이름으로 조선 중기까지 사용된 바 있습니다 (이성종, 2008. “1609년 울산호적대장의 고유어 인명 표기”. <고문서연구> 33호).

꺽정이의 이름이 ‘걱정이’에서 나왔다는 것은 벽초의 『임꺽정』에서 따왔습니다. 비록 그 출전이 따로 있는지, 아니면 순수한 벽초의 창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에 ‘꺽정’이라는 이름이 결코 흔히 쓰이지는 않았음은 명백합니다. 도망치던 임꺽정이 둔갑하여 꺽지라는 물고기가 되었다는 철원의 꺽지 설화 역시, 꺽정이라는 이름이 독특한 것이었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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