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9화 (9/259)

5. 선비는 화를 당하고 (1)

겨울바람 서늘하고 하늘은 드높으니 푸르기만 한데, 이 추운 날에 영의정 윤인경의 집은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온통 부산하였다.

손님은 여럿도 아니요 단 하나였으나, 그 한 사람이 바로 윤원형이었기에 이리 되었다. 영의정이 맞이하는 귀한 손님이 고작 예조판서라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길 만큼 물정 어두운 자는 없었다.

“부족한 몸으로 한없는 성은을 입었거늘, 이제 부족한 가형의 일로 인하여 죄를 입게 되었으니 한량없이 부끄럽고 또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서원군(윤원형)께서는 실로 종사의 동량과도 같으시거늘 어찌 그리 말씀하시오. 근래 일어난 흉악한 소리는 오직 물정 모르는 자들이 떠드는 것이니, 깊게 담아두지 말기를 청하오.”

윤원형이 고개를 푹 숙이며 정말 죄 많은 시늉을 하니, 윤인경은 더욱 부담스러울 뿐. 노정승의 주름진 이마에 진땀이 맺혔다.

“아닙니다. 무릇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 하였으니, 지금껏 나라의 은총을 한데 받은 몸으로 어찌 사사로운 혈육의 정을 내세우리까.”

평소 대윤이니 소윤이니 당여(黨與)를 나누어 대립하는 것을 아니꼽게 여기며 비판하기를 멈추지 않던 조광조의 조카사위 구수담(具壽聃)은 그 언행으로 인하여 파직당하였으나 곧 대사헌으로 복직했는데, 그 직을 제수받자마자 윤원형의 형 윤원로가 무도한 발언을 하고 다닌다며 처벌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글에 이르기를, 금상 즉위하실 적 대윤(大尹) 일파에게 탄핵을 당하여 유배를 가는 바람에 위사공신(衛社功臣)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데 원한을 품은 윤원로가 사사롭게 사람을 모아 떠들기를,

‘나는 금상의 한명회와 같으니, 내 뜻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일 것이다.’

‘내 말이 곧 대비전의 말이다. 또한 대비께서는 연로하시어 곧 떠나시므로 이제 내 세상이 될 것이다.’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망언에 분개한 사림(士林)의 사람들, 예컨대 구수담과 함께 갑자기 벼슬이 오른 홍문관 직제학 주세붕(周世鵬) 같은 이들도 동참하여 윤원로를 주벌할 것을 청하니, 가운데 낀 윤인경 등은 곤란하게 되었다.

윤인경 생각에는, 윤원형이 마땅히 노발대발할 줄 알았다. 저들 사림에게 화해하는 뜻으로 내린 관직인데, 저들이 관직을 받자마자 오히려 물어뜯겠다고 달려드는 셈이지 않은가.

그랬는데 막상 이렇게 찾아온 윤원형이,

“언관의 탄핵하는 글에 틀린 바 없으니, 그러한 말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죄 받기에 충분합니다.”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이제는 진땀을 넘어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하는 윤인경이었다.

윤인경 또한 파벌로 따진다면 저의 족질(族姪) 윤원형과 같은 무리에 들었다. 허나 그간 이 윤원형의 사람됨이 얼추 어떠한지 알고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건만, 저의 친형 윤원로를 처벌하여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도 어찌 이렇게 냉정하단 말인가.

“아우된 자로서 참으로 참혹하여 마음이 미어지지만, 감히 바라건대 영상께서도 그 논의를 가로막지 마시길 청합니다. 다만 가형의 목숨만은 끊어지지 않도록, 절도(絶島, 먼 섬)에 부처(付處, 유배)하는 것으로 그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용건을 다 내어놓고 다시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윤원형이었다.

윤원형이 떠나고서, 듣는 귀가 없음을 한두 번 살핀 뒤 늙은 정승은 홀로 탄식하였다.

“참으로 독하구나, 독해! 이 나라가 정녕 어찌 되려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서너 번 살피지 않은 것이 잘못이어서, 윤인경의 탄식은 짧은 겨울 해가 저물기도 전 윤원형의 귀에 그대로 들어갔다.

“어찌 하시겠어요?”

그날 밤 여러 채 저택 중 한 군데서 사이좋게 대작(對酌)하던 중 정난정이 윤원형에게 문득 물었다.

“뭐, 따로 조처할 것까지 있겠소? ”

“그리 말씀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을사년 옥사에서 공신으로 이름을 올렸으니, 영상이 정 탓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노욕 부린 것을 탓해야겠지요.”

그 말대로여서, 윤원형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에게 가담하여 여느 공신도 아니요, 위사공신 1등에 책록된 사람이 바로 저 윤인경 아니었던가.

“금번에 삼사의 언관(言官)을 드높이신 것도 이때 쓰시려고 한 것이겠지요? 역시나 높은 벼슬에 올랐다 한들 서생은 서생이네요. 떡밥 한 번 뿌리면 달려드는 잉어떼와 다름이 없다니.”

그랬다. 애초에 저들 머릿속 경전 외에 별 재간은 없는 치들이 무슨 수완이 있어 윤원로가 떠들고 다닌 말을 전해 들었겠는가. 모두 윤원형이 정리하여 몰래 그들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받아든 구수담·주세붕이야 떨떠름해 하면서도, 한때 윤원형이 그 형보다는 사람됨 올바르고 얌전하다는 세평이 있었음을 떠올리고서는, 이제 마침내 저들 사림(士林)과 힘을 합쳐 공론에 따른 정사를 이룩하고자 한다고 제멋대로 단정하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소. 참 눈썰미가 좋아.”

“그러면 어디 보자... 올봄 정도가 되려나요.”

애정과 욕정 섞인 윤원형의 눈길에 눈웃음으로 화답하며, 태연자약하게 사람 죽이는 이야기를 꺼내는 정난정이었다.

“그렇지. 그때쯤 하여 다시 옥사를 일으키려 하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유난히 적게 내렸다. 농사일에 밝은 촌로(村老)씩이나 되지 않더라도 돌아오는 봄이 무척 가물 것임을 족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쯤 되어 적당한 볼멘소리가 나오면 좋고, 아니면 억지로라도 사건을 꾸며낼 것이다. 조정을 모욕하고 종사를 능멸하는 벽서(壁書) 하나쯤이라면 옥사 일으키기에 족할 것이요, 그때를 즈음하여 역모 고변이라도 한 번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리라.

“그러면 차라리 아주버님을 주살하여야 한다는 여론을 가만히 내버려두실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내세워 크게 반대하는 형세를 꾸미시는 건 어떨까요? 이왕 일으킬 옥사라면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주살함이 오히려 모양새가 좋지요.”

“허... 좋구려.”

처음 생각에는 윤원로를 못 이기는 척 귀양만 보낼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마치 자신이 저들 사림 언관들을 위해 한 발 물러난 것처럼 꾸미고, 그 뒤에 빚을 갚으라는 식으로 새로운 옥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지금 난정이가 하는 말대로라면 옥사를 일으킬 때도 훨씬 명분이 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사(賜死)까지는 아니 된다며 질질 끌다가, 벽서나 역모 고변이 터질 무렵, 갑자기 선회하여 무엄한 자들이 한둘이 아니니 당장 저의 형 원로부터 어쩔 수 없이 주살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제 너희 말에 따라 마찬가지로 무엄한 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죽여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그간 몇 달을 내리 죽여라 죽여라 외쳐오던 자들은 자승자박한 꼴이 되고야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 여러 달 끌다 보면, 어쨌든 윤원형조차 그 형 원로 벌하는 데는 동의한 셈이니 반드시 조정 정국이 평온하게 굴러갈 것이라며 낙관하는 자들이 여럿 나올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방심하여 빌미를 주는 자도 나올 법하였다.

그러면 이제 누굴 죽여 본보기로 삼을 것이냐의 문제만 남은 셈이다.

일전에 못난 벗 이희손이 찾아와, 이제 죽었다는 화담 선생을 찾아갔다가 문전에서 박대당한 일을 하소연하였던 것이 떠올랐다. 서경덕 정도라면 따로 학통을 이은 것도 없이 스스로 깨달아 제자 몇을 문하에 둔 것이 전부이므로, 아예 그에게 배운 자들을 모조리 뽑아내버린들 후환이 적을 것이다.

초야에 내려가 저들만 고고한 체 하는 이들에게, 그만하면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겠는가. 여차하면 너의 스승과 동문, 제자들을 모두 죽여 없앨 수도 있다는.

“그래... 그러면 확실히 명분이 더욱 살겠군. 거기에 더하여 망령된 언행을 한 자들은 모조리 발본색원할 수도 있겠지. 고맙소. 생각지 못한 점을 짚어줬구려.”

“일국을 이끄시는 분 배필이라면 이만큼은 내조하여야 하지 않겠어요?”

일국 이끄는 사람은 엄연히 임금이요, 정난정은 배필은커녕 서녀 출신의 첩이지만, 언제 그들이 그런 헛된 명분에 구애받은 적 있던가.

수줍은 듯 배시시 웃는 정난정을 보니 윤원형의 가슴도 절로 뛰었다.

일국의 영의정조차 자신이 권세 탐낸다는 것을 거짓으로 부끄럽게 여기는 판이었다. 솔직하게 권세를 사랑하여 그것을 노린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조선 팔도에 얼마나 있으랴.

이를 위하여 인륜이니 무엇이니 헛소리에 구애받지 않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재간 닿는 데까지 모두 할 만한 담력 있는 이들은 또 몇이나 되며, 그런 사람 가운데, 적이 아니라 같은 편으로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또 얼마나 되랴.

그러므로 윤원형은 정난정을 사랑하였다. 그 음험하고 음란함이 짐승과 같다고 어리석은 자들이 혀를 찬들 무슨 상관이리오. 그들은 짐승일지라도 동류(同類). 사람 가운데의 범일진대.

서경덕을 정성스레 장사지낸 뒤, 남은 일 몇 가닥을 마저 정리하고서 꺽정이는 송도를 떠났다.

스승님 가시는 길 마지막 웃음을 준 것이 고맙다며, 황진이는 약조한 품삯에 덤 몇 가지를 얹어서 주었다. 화담 선생의 마지막 제자가 어디 가서 상것 소리 들어서야 되겠냐며, 단정한 의관 한 벌을 맞추어주지를 않나, 여러 해 애물단지였던 것 네가 챙겨가라며 창고 한쪽에서 먼지 쌓인 채 있던 왜도(倭刀) 한 자루를 건네주지를 않나.

그렇게 푸짐한 짐과 이지함이 전해준  『화담자의』 초고를 들고서 꺽정이는 양주 집에 돌아왔다.

대략 이맘때부터 유난히 가뭄이니 뭐니 잦아지면서 가뜩이나 흉흉한 민심이 더욱 흉흉해질 것을 알았기에, 여차하면 곡식으로 바꾸어 입에 풀칠이라도 하라며 황진이네에서 받아온 능라비단 한 필을 형 가도치에게 전해주었다.

백정의 집에 비단이, 그것도 잡스러운 비단이 아니라 사라능단이 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같은 값의 오승포(五升布)를 챙겨오기에는 워낙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설령 가지고 있다 한들 백정 집에 비단 있다는 것만큼이나 무명이 많이 있다는 것도 트집잡히기에 좋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숨겨놓기라도 편한 비단이 낫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꺽정이 생각이었다. 나중에 여차하면 모여서 송도에 가서는 무명베나 쌀로 바꿔오면 될 일 아니겠는가.

좌우지간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서는, 또 홀연히,

“내 나가서 사형(師兄)께 문안인사나 드리고, 여차하면 사형의 일을 좀 도와드리다 오겠소. 언제 돌아올 지는 나도 아직 모르오.”

하고서는 봄이 되자마자 집을 떠났다.

이미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나온 듯한 비단을 보고서, 아우 배도치가 저들처럼 한 군데 눌러앉아 살지는 못하리라 단념한 가도치는 그저 잘 가라 인사만 하고, 여전히 꺽정이가 그 화 무슨 선생 아래에서 글공부 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아비 말대가리는 이놈의 자식이 허풍만 늘어난다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딱히 가로막지는 않았다.

그렇게 양주를 떠난 뒤 곧장 칠장사로 향했다.

머나먼 옛날 또는 훗날, 관복 차려입고 선전관이니 금부도사니 흉내내던 가락을 살려, 황진이가 내준 옷을 입고 헛상투를 틀었다. 그사이 수염도 제법 자랐기에, 그가 칠장사 올라가서는 병해 스님을 만나러 온 송도 임 처사(林處士)라 하니 아무도 가로막지 못했다.

그랬는데 마침 병해가 어디 잠시 큰시주를 만나러 떠났다 하기에, 기다릴 겸 그때 병해 만났던 이곳 궁예 활터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이나 보고 있었다.

문득 그 왜도를 받은 뒤에 한 번도 제대로 못 써봤다는 것이 떠올라, 짐을 풀고서 곧장 꺼냈다.

을묘년 왜변 때 한두 번 빼앗아 만져보았던 왜놈 두목들의 검에 비하면 투박하기 그지없고, 어울리지 않는 장식만 조금 붙어 있을 뿐. 검의 내력이나 장인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왜도를 귀물로 여기는 다른 나라의 부호에게 팔아먹기 위해 그들이 흔히 쓰는 그런 검을 대충 꾸며서 넘긴 것이 어찌어찌 황진이에게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리라.

황진이가 여간한 남정네에게는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여, 어떤 얼간이가 별난 선물로써 그 마음을 사겠다며 가져다 바쳤다던가.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전생에 내가 들고 다녔던 그놈인데.’

암만 고쳐보고 또 만져보아도, 그의 손에 익었던 그놈이 맞았다.

꺽정이 그가 청석골에 자리를 잡았을 때, 상전 집에서 도망나왔다는 노복이 입당(入黨)하는 값이라며 바쳤다고 하였다. 부하 녀석들이 저들끼리 궁리하기를, 이것은 저들 두령에게 먼저 바치는 것이 옳다고들 하여 마침내 꺽정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병기를 고루 만졌지만 저의 덩치와 힘에 맞는 것이 없어 그때그때 아무거나 대충 쓰다 버리고, 때로는 바위나 나무, 사람 따위를 휘두르곤 하던 꺽정이었다.

그런데 이 왜검 한 자루는 왠지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의 손에 딱 맞는 것만은 아니었고, 검이 그를 따르듯 꺽정이도 검에 조금은 맞춰줘야 했지만, 그렇게 익숙해지니 이만한 물건이 또 없었다.

세상일 모두를 아는 것처럼 떠벌대고, 개중 가끔은 맞는 말도 하던 서림이 그놈이 추정하기로는, 왜놈들 가운데 전해지는 명검(名劍)을 베끼려다 영 마음에 맞지 않으니 대충 마무리하고서 팔아넘긴 것 아니겠느냐 하였는데, 꽤 그럴듯한 풀이였다.

어쨌든 꺽정이 그가 칼로 먹고사는 내내 충실히 따라와 준 녀석이니, 금생(今生)에서도 반드시 그 쓰임새를 다할 테다. 그때의 그 검이 맞기만 하다면.

‘무어, 시험해보면 금방 알 일이다.’

주변을 휘 둘러보니, 불목하니 하나 지나가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홀로 돌아다니는 처사라면 제 한 몸은 지키기 위해 칼이든 활이든 들고 다니기 마련이므로, 설령 눈에 띈들 딱히 구설수에 오르지는 않으리라.

곧장 칼집에서 칼을 꺼낸다. 오랜만에 세상을 보니 반가운 듯, 꺽정이 그에게는 낯익고 남이 본다면 섬뜩하다 할 광채가 번뜩인다.

“자, 가보자꾸나.”

익숙한 자세를 취하고, 휘두르고 벤다.

휙- 휙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절로 흥이 난다.

북변의 무명 군관에게 배우고, 이후 스스로 수없이 연습하고 또 사람 살 베어가며 익힌 검법이다. 검법의 명칭도 없고, 각 자세를 칭하는 거창한 말도 없으며, 휘두르는 검도 이름이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 조선의 내로라하는 여느 군관을 세워놓은들, 아니, 저 북변 야인 가운데 가장 포악한 추장(酋長)이나 왜놈 가운데 가장 빼어난 무사를 데려온들 지금 여기서 모두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문 들어서자마자 누가 저를 찾는다는 소식 듣고서 활터로 총총 잰걸음하고 있는 병해가 이 생각을 말로 들었더라면, 어디 남의 절간에서 무서운 얘기를 하냐며 곧장 타박하였을 것이었다.)

바람처럼 두 번 베고 벼락처럼 한 번 찌른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꺽정이는 칼에게 말을 걸었다.

“오냐, 역시 너였구나. 반갑다, 반가워.”

어쩌면 아래 죽산 고을에서 기훤이 세력을 일으키고 궁예가 찾아왔을 때 이래로 이곳 칠장사에서 펼쳐진 가장 살풍경한 모습일지도 모르련만, 칼부림하는 꺽정이만은 그간 잊었던 듯한 무언가가 돌아오는 듯하여 자못 기쁘고 통쾌하였다.

길게 휘두르고 허공을 다시 찌른다. 사람 갈비뼈를 파고드는 그 느낌을 돌이키며, 염통 어딘가를 찔렀을 칼날을 짜내듯 비집는다.

“이번에 또 이리 만났으니, 네놈만 믿고 가겠다.”

누가 장작을 패다가 버렸는지, 만만한 나무토막 하나가 옆에 굴러다닌다. 힘껏 발로 걷어차고는, 저도 땅을 거세게 내디디고 뛰어오른다.

“옳거니!”

공중제비 돌면서 한 번 더 휘두르니, 올라갈 때는 하나였던 나무토막이 두 동강, 아니, 꺽정이 힘에 완전히 박살이 나서 여러 조각 되어 떨어진다.

“야, 이놈아! 옳긴 뭐가 옳으냐! 네놈이 다 치워놓고 가거라!”

버럭 지르는 소리는 틀림없이 병해일 테다. 다시 땅 위에 털썩 내려와, 칼을 칼집에 넣었다.

“임 처사라기에 무슨 대단한 사람이 찾아온 줄 알고서 서둘러 왔건만, 고작 네놈이라니.”

“사형(師兄)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리 냉혹하게 하시오.”

능청스런 답변에 차마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병해였다.

“어쭈, 네가 정말 화담 선생께 다녀오긴 한 모양이구나. 제법 문자도 쓰고.”

자신이 없어진 뒤에 혹 다시 핍박하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에는 병해의 수완이 너무나 좋았던 모양이었다. 도리어 신수가 훨씬 훤해져, 고승 티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였다.

꺽정이가 주섬주섬 왜도를 봇짐 속에 밀어넣는 동안 병해는 성큼성큼 걸어와 바위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스승님 이야기는 전해들었다. 이곳 안성과 죽산 일대에도 스승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다.”

많다뿐이랴. 이전부터 소소하게 도술 부린다는 소문이 돌았던 화담 선생이었는데, 하필 세상 떠날 때 즈음하여 기이한 소문이 함께 퍼지기 시작했다.

박연폭포 위에 섬바위(島巖)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화담 선생 세상 떠나실 때 함께 슬퍼하다 둘로 쪼개졌다고 하지를 않나, 실제로는 그 바위가 둔갑한 이무기였는데, 언제고 깨어나 송도 사람들을 해칠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화담 선생이 천기(天機)를 거슬러 가며 베어 죽였다던가.

그러나 그런 헛소문은 제자로서 입에 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편하게, 웃으면서 가셨소.”

“그랬다니 다행이로구나.”

병해는 그 자리에서 합장하고, 한 차례 염불하였다. 이번에는 꺽정이도 무어라 트집을 잡지 않았다. 옆에서 함께 잠시 눈 감고 고개를 숙일 뿐.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 원하던 공부는 다 하였더냐.”

“도적질이란 워낙 심원(深遠)한 배움이라, 모두 가르쳐주지는 못하시겠다 이르셨소. 다만 길은 보여주셨으니, 나 대신 배우고 익힐 사람들을 모으러 가야지.”

“헛소리만 늘었구나.”

“헛소리 아니오. 꽤나 진지하게 하는 소리란 말이오.”

그제야 앞서 꺽정이 칼부림하던 솜씨를 떠올린 병해의 표정이 한껏 굳었다.

“정녕 그런 길을 갈 것이냐.”

“예사로운 도적으로 살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사형께서 떳떳하게 저놈이 내 사제(師弟)다 하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 때가 언제 올지는 확언은 못 드리겠소.”

지난 겨울 동안 양주 집에 머물면서 꺽정이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내린 답이 이것이었다.

화담 선생은 자신이 무언가를 깨달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며, 이지함을 지켜달라 하였다.

이지함은 화담 선생이 만들어낸 씨앗이 꽃을 피울 때까지 때를 기다리며, 몸을 숨기고 있으라 하였다.

그러나 꺽정이는 몸을 숨길 생각도 없었고, 때를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가로막는 자들의 머리통을 미리 모두 깨어버리면, 물 흐르듯 절로 세상도 바뀔 것이다. 어찌 굴러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틈타 마구 행패 부리면서 치부도 하고 권세도 잡는다면, 염라대왕이 말한 큰 도적질에 성큼성큼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어떤 식으로든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할 것이었다. 이지함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람을 모으고, 무언가 일을 일으키려면 터전이 있어야 하니 재보 들어올 곳을 마련하고.

정말로 화적질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아마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터. 이를 위해 지금 이지함에게 찾아가는 것이었다.

“자, 이것 받으시오.”

왜도를 집어넣을 때 꺼낸 『화담자의』 초고를 병해에게 건네주었다.

“무엇이냐?”

“스승님께서 쓰신 마지막 글인데, 장차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단초라 하셨소. 사본은 내 사형, 사형께는 사제 되는 이지함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혹시나 그가 화를 당할 때에 대비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오.

허나 이제 나도 어찌될 지 모르니까, 이렇게 사형께 맡기고 가오.”

“내 의사는 묻지도 않는구나.”

“스승님께서 남기고 가신 글인데 정작 나는 백 번 읽어도 이해가 안 가니,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저걸 들고 어디 가서 책으로 엮어낼 깜냥도 안 되고. 또 여기 칠장사만큼 안전한 곳도 없고. 또 혹시 아오? 이 글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사형께도 좋은 일이 생길지?”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라. 능청스러운 꺽정이 말을 들으며, 자신의 말재간이 혹시 선량한 소년 하나를 잘못된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은 아닌가 잠깐 걱정하다가, 원래 꺽정이는 선량함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서 잡생각에서 빠져나오는 병해였다.

“인석아. 중이 읽어서 좋은 글이 불경 외에 더 있느냐.”

“세상일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오. 또 전조 때 그랬다는 것처럼 스님들 보는 과거(승과)가 어느날 다시 열릴지도 모르지 않소?”

조만간 보우라는 중이 나타나, 왕의 어미를 꼬드겨 실제로 그런 과거를 연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꺽정이가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네놈이 퍽이나 세상일을 알겠다. 되었다, 이놈아.”

병해가 투덜대면서도 조심스레 『화담자의』를 받아 챙겼다.

그리고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부디 조심하거라. 네놈의 우악스러운 성정은 성정이고 안타까운 출생은 출생이니, 악업을 쌓지 말라고는 차마 말 못 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악업 쌓는 것 이상으로 선업을 쌓으려 힘써보거라. 네가 그리할 수 있기를 내 기원하마.”

“정말로 고승이 다 되셨소, 사형.”

그러고는 꺽정이도 정색하며 단언했다.

“이놈을 걱정해주니 고맙기는 하오. 하지만 정 기원을 하시려거든, 차라리 누가 나를 아니 가로막기를 기원해주시오. 아니, 암만 부처님 신통력을 발휘해도 내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나오기는 할 테니, 그 불우한 중생들을 위해서도 미리 기원해주시고.”

그렇게 임 처사, 아니 임꺽정은 떠나갔다.

칠장사 병해스님의 지인 가운데 기이한 처사가 있는데, 세 척 칼을 타고서 하늘을 마음대로 누비더라 하는 헛소문이 돈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미년(1547) 봄. 조카 이산해를 삼가의 남명 선생에게 떠나보낸 뒤 처가 충주로 온 이지함은, 그의 스승이 그랬다는 것처럼 하루를 점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만두었다.

『화담자의』가 기이한 글이라고, 벌써 충주 일대에 소문이 나고 있었다. 저기 북촌 사는 이약빙(李若氷)처럼 조정에서 벼슬까지 한 – 비록 대윤(大尹)에 잘못 줄을 대 지금은 파직당하였지만 - 꽤 이름난 사람조차 저를 불러다 정말 그런 글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글의 진의를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은 드물었고, 특히 이곳 충주의 글을 안다는 자들 중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니 자칫 함부로 말이 나올까 봐, 이약빙 앞에서는 말을 여기저기 다른 잡다한 일로 돌렸다. 예컨대 천문이 어쩌고, 지리가 저쩌고.

그랬는데 어쩌다 이야기가 농사짓는 데로 흘러들어가더니, 크게 기뻐하며 저의 둘째아들까지 데려다놓고 농장 경영하는 일을 떠드는 것 아닌가.

참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일을 알 수 있게끔 해준다는 이 『주역』 조차 이제는 의심스러워, 쉽사리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본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몇 차례나 고쳐서 점을 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아도 조만간 화가 닥칠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산가지에 무슨 마음이 있거나 천지조화에 감응해서가 아니라, 이지함 스스로가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기에, 그리고 그럴만한 정황이 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테다.

(이러한 의심, 이러한 발상부터가 『화담자의』 때문에 나타난 것이리라. 그러나 차마 스승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가르침이 있음을 이전에 깨달았다면 천리를 마다않고 달려가 가르침을 청했을 것이었다.)

분명 이약빙을 만난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 집안이 여느 대윤도 아니요, 그 우두머리 윤임과 사돈 맺은 사이였으니.

그러나 언제고 『화담자의』를 두고 선비들 사이에서 크게 논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름난 사람들과 안면을 미리 터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근래 경사(京師)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그 윤원형조차 사림의 여러 사람들을 높이 들어 쓰고, 그들이 저의 형을 탄핵함에 있어 반발하기는커녕 넙죽 엎드려 부디 그 명만은 붙여달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윤원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또 외척으로서 휘두르는 권력이 결코 사람을 그렇게 얌전하게 만들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윤원형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니, 어찌 함부로 결론을 내리겠는가.

그러므로 큰 맘 먹고 북촌에 다녀온 것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의심하는 마음과 불안은 더욱 커져, 결국 점을 치려 해도 도무지 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보게, 사위 있는가.”

“예, 장인어른.”

문 열고 나가니 그의 장인, 종친 모산수(毛山守, 이정랑 李呈琅)이 서 있었다. 어째 다급한 표정이었다.

“혹시 금일 찾아오기로 한 손이 있었는고? 지금 문앞에 관복 입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는데, 기세가 흉험하고 덩치가 크다 하네. 시국이 시국인지라 먼저 나아가 묻지는 못하고 있는데...”

기세가 흉험하고 그를 찾아올 만한 사람이라면 단연 꺽정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확 들었다. 비록 그때 스승의 유고를 전해주고서는 조심히 가지고 있으라 얘기는 하였지만, 어쩌면 그것을 어디 안전한 곳에 두고 심심하니 찾아왔다는둥, 글공부나 더 가르쳐 달라는둥 하면서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스승의 큰 뜻을 이어받아 펼치는 막막한 일에, 어찌 되었든 동무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니 반가운 마음이 치솟았다.

그런데 관복이라니? 그제야 그 부분에 마음이 닿았다. 어쩌면 꺽정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도 그렇고, 장인어른도 그렇고, 관복 입은 사람이 찾아올 일이 무엇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곧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역적 이지함은 오라를 받으라!”

관복은 정말 관복이었고, 문앞에서 서성이며 기다린 것은 함께 문 박차고 들어올 역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인상 험상궂은 것은 그저 저를 붙잡아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하여도, 충주 고을 하나를 통채로 비운 역모 고변에 휘말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야 애꿎은 『주역』 탓을 했지만 만시지탄이었다.

--- *** ---

작중 언급된 윤원로의 망언은 모두 실제 기록에 전하는 것입니다. 동생 윤원형과 함께 소윤의 우두머리였던 윤원로는, 성질이 거칠고 막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소윤의 중심인물로 지목되었고, 인종 즉위 후 대윤의 집중공세를 당해 파직당한 뒤 귀양을 가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귀양이 아니라, 유배지를 본인이 정할 수 있는 자원부처自願付處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윤을 한데 결집시키는 결과만 낳았고, 어차피 소윤의 핵심 브레인은 윤원형이었기 때문에 대윤의 자충수라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인종이 금방 사망하고, 역풍이 불어 대윤이 몰락하면서 윤원로는 금방 해배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종사를 지켰다’는 공으로 책록된 것이 바로 작중에 언급된 위사공신입니다.

윤원로는 이 과정에서 귀양을 가 있었기 때문에 위사공신에 들지 못했고, 이에 대해 분노하여 작중 언급된 막말을 하면서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결국 명종(그리고 그 뒤에 있는 문정왕후)의 헌신적인 쉴드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해를 이어진 탄핵 끝에 사사당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배후에 윤원형이 있었다는 것이 이미 당대에도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작중에서는 윤원형이 을사사화 이후 권력 장악을 보다 철저히 하겠다는 마음을 꺽정이가 일으킨 나비효과로 인해 훨씬 빨리 먹게 되었고, 이를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 결과 윤원로 또한 더 일찍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전면에 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 특히 사림에 속하는 이들을 내세워 정치공작에 사용하는 것은 윤원형의 특기 중 하나였습니다. 작중 언급된 구수담, 주세붕뿐 아니라 이언적, 이황 같은 당대의 유학자들 역시 출사해 있는 동안 이러한 공작에 동원되어, 후대의 논란거리를 남기고야 말았지요. 위사공신의 위훈 삭제 역시 여기에 얽혀, 윤원형이 몰락한 뒤 한참 지난 선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성급한 위훈삭제가 큰 파란을 불러왔던 기묘사화의 경험, 그리고 본인의 승계 정당성을 스스로 파헤치지 않으려 했던 명종의 의도 등도 종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왜도, 즉 일본도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특히 각종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면서, 과도하게 이를 치켜세우는 주장도, 깎아내리는 주장도 존재하고 있지요. 그러나 어쨌든 남북조시대와 전국시대의 난세를 겪으면서 일본도는 그 실용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왜구의 준동과 임진왜란을 겪은 명과 조선의 무관들도 인정하는 바였습니다. 다시 말해 오랜 평화를 겪으며 군의 기강이 해이해진 조선이었고 무구의 품질 역시 덩달아 하락하였기에, 꺽정이가 왜도를 쓸만하다고 평한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도는 희귀한 수집품으로 이미 훨씬 이전부터 유명하였고, 작중 황진이의 손에 일본도가 들어온 것은 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한편, 임꺽정 일당뿐 아니라 중종대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도적떼 무리의 한 가지 주요 수법은, 바로 관헌을 사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중 임꺽정이 벼슬아치 행세가 익숙하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다만 임꺽정 무리는 조금 더 뻔뻔하게 관헌을 사칭했고, 심지어 수령을 체포하러 온 선전관 시늉을 하기도 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그렇게 하고서도 뻔히 살아남아 계속 활동했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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