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적은 때를 만나네 (1)
정미년(1547) 5월. 극심한 봄 가뭄으로 그해 농사는 이미 망한 지 오래였는데, 하늘은 마치 ‘적당히’라는 말이 이 조선에 있음을 모르는 양 재변 내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4월 말부터 전국 곳곳에 눈과 우박이 내리더니, 5월 초에는 경기도, 보름께에는 충청도와 강원도, 이어서 경상도 등지에 서리가 내렸다.
마음가짐이 마치 말 잃은 새옹(塞翁) 같은 사람들은, 어차피 망한 농사이니 차라리 몇 해에 걸쳐 내릴 재액이 올해 한꺼번에 닥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마음가짐 각박하고 말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양(正陽)의 달인 오월에 서리가 내림은 즉 양기가 크게 쇠하고 음기가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니, 모두 나라에 여주(女主, 문정왕후를 말함)가 전횡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래도 우리네 장사에는 좋은 일 아니오? 농사가 망했으니 일개 농군들도 저들 집 패물 팔려 여기저기 장터 돌아다니지, 미곡이 귀하니 가벼운 무명베 따위를 들고 다니지.”
“그것도 한두 해지, 이놈아. 이러다가 멀쩡한 양민들까지 죄다 도적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다. 이 산이 그리 깊지도 않은데, 고개 주인이 우리 둘이면 족하지 더 늘어나버리면 살림이 어렵지 않겠냐.”
양지바른 곳에 누워 해바라기하는 두 도적들의 시답잖은 대화였다.
초여름치고 쌀쌀한 산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덕에 햇볕이 제법 따뜻하게 느껴져 기분은 좋았다.
허나 곧장 인기척 느껴져 두 사람 모두 벌떡 일어났다.
멀찌감치 사람 하나가 비탈길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형님, 저 사람 혹시 그 괴짜 장사 아니요?”
“괴짜 장사라고? 듣기로는 무슨 절간 사천왕처럼 생겼고 차림새는 순 백정놈처럼 하고 다닌다던데.”
경기도와 송도, 해주 등지 도적들 사이에서 두어 해 전부터 도는 이야기였다. 그 괴짜 장사는 나이도 시퍼렇게 젊은 것이 힘은 어찌 좋은지, 사람 팔을 슥 흩으면 거죽이 그대로 찢어진다더라, 아름드리 고목을 통채로 뽑아 던진다더라 하는 등등의 못 믿을 소리가 함께 돌곤 했다.
그러므로 혼자 다니는 허우대 좋은 젊은이는 건드리지 않고 아예 눈도 안 마주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게 일대 도적들 사이의 중론이었다.
“그런데 암만 보아도 백정놈은 아니고 무슨 처사처럼 생기지 않았냐?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릇 예절 차리는 도적이라 하면, 의관 갖춘 선비들에게는 공대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은 나름 근본 있는 산적으로서 그 직분을 다하고자 하였다.
“오, 이 고개 주인들 되는가.”
젊은 처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요. 흠흠, 소인네들이 근래 살림이 어려워, 처자식 돌보고자 부득불 이렇게 고개를 지키고 있사온데, 처사님께서 조금 도와주신다면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지라...”
“여기서 이렇게 소소하게 길손이나 털어서 어디 벌이나 제대로 할까. 그러지 말고, 큰일을 함께 해보는 건 어떻겠는가?”
“큰일이라 하시면...?”
“흠흠, 그보다 우선, 소인네들 살림을 조금 돌보아주심이 어떠하실지요.”
솔깃해하는 동생을 제지하며 본론으로 돌아오는 형이었다.
그랬더니 처사는 할 말 궁색한지 머리를 몇 번 긁적이다가, 말투 싹 바꾸어 대꾸하였다.
“에휴, 되었다. 내 주제에 말로 누굴 구슬리겠다고. 너희들, 그냥 따라올 테냐, 아니면 두어 대씩 맞고 따라올 테냐?”
그리하여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꺽정이네 패거리에 사람이 둘 늘었다.
또한 고갯길 지키는 도적들을 훔쳐가는 사람 도둑이 나타났다는 소문도 곧 퍼지기 시작했다.
스승으로 모시던 서경덕이 병으로 작고하고, 그 제자 이지함은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국적(國賊)이 되었다는 데 연이어 크게 상심한 퇴기 황진이는, 대문을 걸어 닫고서는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바깥에 알려진 핑계는 그러하였다.
난데없는 풍찬노숙(風餐露宿)에 지쳐 쓰러진 모산수 이정랑과 그 일가, 그리고 이지함이 잠시 황진이네에 의탁하고 있었기에 그러함을 아는 이들은 그 집 식구들 외에는 드물었다.
“사형, 나 왔소.”
꺽정이가 제 집처럼 편하게 문 열고 들어와서는 안채 마루에 털썩 앉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실제로 벌인 일이 크지만, 정작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팔리지 않았기에 유일하게 거동에 제약 없는 것이 꺽정이었다.
“아직도 퍽 바쁘신 모양이오?”
서안에 종이를 펼치고서 무언가 빠르게 적어 내려가고 있는 이지함을 보며 꺽정이가 말을 걸었다.
“그렇다. 아무래도 가형(家兄)께 큰 잘못을 하였으니 이만큼은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달포 전 이곳 개성에 당도한 뒤 이지함은 곧장 보령에 있는 형 지번에게 저의 무사함 알리는 글을 보내고자 했다.
그런데 인편으로 부쳐야 할 텐데 역적으로 쫓기는 신세에 믿을 사람 하나 없으니 끙끙 고민하던 차, 결국 꺽정이에게 부탁해야 하는가 하던 무렵 의외로 이 천둥벌거숭이가 괜찮은 답을 내놓았다.
‘모산수 어르신 댁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이 꽤 있지 않소? 고갯길마다 널린 게 도적인데, 그 중 하나 족치고서 보령 갔다 오면 패물로 삯 쳐 주겠노라 약조하면 되지 않겠소? 싫다고 하면 몇 대 더 때린 다음에 다음 도적을 찾으면 되고.’
그것이 참으로 명안이라, 곧장 그대로 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전에 꺽정이는 경기도 일대 유랑할 때 칠장사 병해 스님을 소개해준 이천 도적 오막손이(吳莫孫)에게 은혜 갚는 셈 치고 – 꺽정이 딴에야 일생일대 기회를 주는 것이니 은혜였지만, 오막손이도 동의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 그를 무리에 끌어들여, 편지를 쥐어주고 보령으로 보냈다.
“그런데 꽤 붓을 오래 붙잡고 계신 것 같소. 또 어디 글월을 부치시려는 건 아닐 테고...”
“내가 외워둔 스승님 글을 필사하고 있다. 형님 댁에 『화담자의』 구해 보기를 원한다며 그토록 청 넣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문명(文名) 높은 이들에게는 전해주는 게 좋을 듯해서 말이다.”
아무래도 서경덕이 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논의한 것을 정리한 글이다 보니, 『화담자의』는 글 자체로 보나 그 논의의 깊이로 보나 미진함이 없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무슨 학통에 속한 것도 아니니, 밀어주고 끌어줄 선진(先進, 선배)도 후학(後學)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조정에서 정순붕과 이기가 『화담자의』를 금서로 삼자고 상언(上言)하였다 하니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이로 인하여 온 사림이 궁금해 할 뿐 아니라, 설령 그 논지를 반박하고자 한들 윤원형 일당에게 찬동하는 형세가 될까 두려워 글로 옮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윤원형이도 바로 그 점을 알았기 때문에 정순붕과 이기의 제안을 극구 반대한 것일 테다.
“아니, 이미 다 끝내신 것 아니었소?”
“무얼, 그때 네가 본 것은 고작 한 질 마무리한 것뿐이었다. 정말 중한 사람들만 추리고 추려도 족히 네 질은 필요할 터. 그래도 이제 이게 마지막이니, 곧 끝날 테다.”
이지번으로부터 원망 약간, 걱정 많이 섞인 답변을 받았을 때, 화담 선생 유고에 관심 표한 각지의 선비들 이름도 함께 전해 받은 이지함이었다.
아직 경직(京職)에 달라붙어있는 이들은 눈치가 보여서 함부로 언동을 못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현 조정에 출사할 마음 없던 조식이나 김인후(金麟厚), 그리고 무고죄로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을 넘어 숫제 선비의 학문을 폐하려 하였다는 데 환멸 느끼고 청요직 버리고서 시골 원님으로 내려간 이황(李滉) 같은 이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이지번에게 문의를 넣었다 했다.
그러니 그들 세 사람에게 각각 한 질씩, 그리고 후일에 대비하여 보령 고향집에 보관할 한 질. 총합 네 질을 필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형 고향댁에 한 질만 부치면 그쪽에서 알아서 더 베껴서 내면 될 것을, 어찌 이렇게 수고롭게 하시는지 모르겠소.”
“뭐, 꺽정이 너야 서책을 멀리하니 잘 모르겠지만, 본디 종이라는 것도, 서책이라는 것도 모두 귀물(貴物)에 속한다. 가뜩이나 대역부도한 죄인이 되어 여러모로 집안에 누를 미치고 있는데, 종잇값까지 내 달라 해서야 되겠느냐.”
“확실히 파옥한 이후로 입이 걸어지셨소. 그냥 종이가 귀하다 하면 될 것을 왜 또 면전에서 흉을 보시오?”
실제로는 저와 말투 비슷해지고 있어 은근히 기껍게 여기면서도 겉으로는 툴툴대는 꺽정이었다.
“헌데 정말로 책이 그리 비싸오? 종이야 그렇다 쳐도, 어찌어찌 구해다가 목판으로 찍어내기만 하면 책이 되는 줄로 알았는데.”
“그게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꽤 어려운 일이다. 나도 해보진 않아서 모르지만, 목판으로 찍어내든 주자(鑄字, 금속활자)로 인쇄하든 공이 많이 들어간다더구나. 당장 사족의 집 가운데도 관아에 종이만 들고 가면 찍어주는 사서삼경도 모두 갖추지 못한 곳이 부지기수다.
그래놓고서 요새 유행하는 『당삼장서유기(서유기)』니 『삼국지연의』니 하는 것들은 대국에서 곧잘 들여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 아니더냐.”
서책 비싸다 하는 얘기를 들으니 불현듯 꺽정이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호, 서책이 그리 귀하다 이 말이구려...”
도적질 하면서 배운 것이지만, 사실 큰돈을 만지든 세력을 일구든 하려면 길손들을 소소하게 터는 것보다 장사에 손을 대는 쪽이 훨씬 수월하였다.
서책도 성현의 말씀이니 무어니 하지만 결국 하나의 귀물(貴物)이요, 그것도 이 나라의 수많은 서생들이 모두 필요로 하는 물건 아닌가? 어떻게 잘 하면 저것으로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으리라는 직감이 팍 들었다.
그러나 직감은 직감일 뿐. 막상 책으로 어떻게 무얼 할지에는 도저히 꾀가 닿지 않았다.
‘서림이 그놈이라면 뭔가 바로 꾀를 낼 텐데.’
충주에서 이곳 송도까지 오면서 심심풀이도 하고 여전히 심란함 다 가라앉지 않은 사형 마음도 진정케 할 겸, 그들의 ‘대계’를 어떻게 짤 지 계속 이야기 나누었는데, 확실히 이지함이 인물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놓는 세력 일굴 꾀란, 결국 바닷가 섬에 들어가 소금을 구워 팔자는 둥 영 정직한 방도뿐이라, 들키지 않고 조금씩 했다가는 나라 뒤엎기 전에 그들이 늙어 죽을 듯하였다.
물론 이지함이 지저분하고 은밀한 일, 아니면 장터 바닥에서 직접 구르는 일에까지 밝기를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겠지만, 꺽정이가 바로 그 도둑놈 아니겠는가.
“... 무슨 생각을 하기에 갑자기 말을 하다 뚝 그치느냐?”
“아, 우리네 당(黨)에 데려올 인재 하나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데려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소.”
한창때 꺽정이 패거리에서 장사치들과 교섭하는 일을 맡은 와주(窩主)는 두 사람으로, 바로 서림이와 한온(韓溫)이었다. 그 중 서림이가 총책이고 한온은 한양에서 직접 상인들을 마주하는 일을 했는데, 한온은 꺽정이보다 꽤 어렸으니 데려오기가 언감생심이고, 서림은 그보다 몇 살 손위라 지금쯤이면 평양에서 구실아치 노릇하고 있을 터였다.
“네가 인재라고 할 정도면 솔직히 어떤 사람일지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어서, 말 가운데 꺽정이를 또 놀리는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걱정이 되기는 할 거요. 사람이 좀... 미덥지 못해서. 허나 떳떳하지 못하게 재보 모으는 일에서는 그만한 이가 또 드물 테요.”
정말로 데려온다면 항상 어떻게든 눈여겨보며, 여차하면 먼저 저승으로 보내주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꺽정이가 계속 저울질을 해야 할 만큼 한창때 서림이는 대단했다.
적당히 쓰고 버린다 할지라도, 초반에 기반 닦을 때 서림이를 쓴다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 얼추 어떤 자인지 알 듯하다. 말업(末業) 가운데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그런 부정한 일이니, 거기 밝은 자라면 성품이 좋기가 어렵겠지. 허나 그런 자들은 대개 눈앞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법. 우리네... 당이 그치에게 이득 됨이 확연하다면 따라오지 않겠느냐?”
저의 부족함을 꺽정이보다 잘 아는 이지함이 토를 달았다.
“그게 어려우니 고민스럽다는 것 아니겠소. 솔직히 내가 열심히 발로 뛰면서 사람들을 모으고는 있지만, 그것도 일일이 한둘씩 모으는 것이다 보니 한계가 있소. 조만간 뭔가 큰일을 벌여야 할 텐데...”
“감영도 홀로 턴 놈이 무엇을 그리 고민하느냐?”
“사형, 그건 그때만 가한 일이었소. 운도 솔직히 많이 따랐고. 충청 한 도에 도적떼 씨가 말랐고, 또 완전히 풀어져 있는 관군을 급습한 셈이었으니 겨우 해낸 일이란 말이오.”
“그렇더냐...”
그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 없어진 이지함이, 붓을 잠시 내려놓고 꺽정이와 함께 고민하였다.
그 ‘인재’가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꺽정이와 이지함 그가 꾸린 ‘당’의 세력만으로 끌어오기는 어려울 테다. 적어도 기화가거(奇貨可居, 후일 큰 이익을 얻고자 미리 진기한 물건에 장기 투자를 함) 외치며 일신을 던지도록 하려면, 확실히 무언가를 이루어놓거나 이룰 수 있음을 보여야 했다.
“그러면 우선은 사저께 신세 지는 것을 벗어나 어디 번듯한 데 산채라도 마련해야겠지.”
“산채고 뭣이고, 사람도, 재물도 없소. 산채가 아니라 야산 한가운데 집 한 채도 못 지을 판국이오.”
“하면 구해오면 될 것 아니냐? 명색이 도적이 되어서 그런 궁리를 해야지.”
“아오, 그냥 단번에 말해주면 어디 덧나오, 사형?”
“그러기에는 나도 아직 확실히 정리가 안 되어서 말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어차피 조만간 이 필사하는 일 마치고 책으로 엮으면, 그때처럼 막손에게 맡겨서 보령에 보내야 할 것이다.
내 그때 초당에서 우리... ‘당’ 사람들과 만나 계책을 얘기해주도록 하겠다.”
이지함이 책 필사하랴, 장인어른 병구완하랴 바삐 지내는 동안 꺽정이도 제법 부지런히 살았다.
우선 도적질을 하려면 패거리를 모아야 한다며, 스승님 묘 앞에 가서 사정을 고하고는 그가 기거하던 오관산 자락 초당을 저들 임시 소굴로 쓰고 있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 고갯길을 돌아다니며 도적 만날 때마다 ‘정중히 타일러’ 초당에 모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연기 나는 것을 보고 누가 찾아오면, 화담(花潭)이고 초담(草潭)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떠돌이 무지렁이들이 빈집을 차지하여 살고 있노라 답하면 될 일이었다.
오밤중에 황진이네 집 담을 꺽정이와 함께 넘은 이지함은 – 처음에는 잘 안 되어 꺽정이에게 몸을 던져달라 했는데, 그 끔찍한 경험 이후로 뜀박질 연습에 정진한바 이번에는 단번에 훌쩍 뛰어넘었다 – 곧장 스승의 초당으로 향했다.
“실은 조만간 초당에 발걸음 해주십사 청하려고 했소.”
“그래? 어째서더냐.”
한없이 익숙한 길을, 한없이 낯선 죄인 신분으로 몰래 걷고 있다는 데 만감 교차하던 이지함에게 꺽정이가 불쑥 말을 걸었다. 슬슬 저 멀리 초당과 꽃못이 보이고 있었다.
“내가 저 도둑놈들을 모을 때 말이오, 우리가 뭔가 큰일을 할 것이다 호언장담은 했는데, 아무래도 다들 내 말은 아니 믿고 그저 내 주먹맛만 무서워하는 눈치다 이거요.
이러다가 하나둘씩 야반도주하면 곤란해질 텐데, 그럴 때 우리 훤칠하시고 헌걸차신 사형께서 얼굴 한 번 비춰주시면 다들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
꺽정이 그가 그간 모아놓은 자들은 모두 까막눈 무지렁이들이라, 이지함이 누구인지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 나라 조선국에 태어나면 누구든 저도 모르게 선비라 하면 숭앙할 수밖에 없는 고로, 한 번 이지함이 들렸다 가기만 해도 그들 무리가 평범한 도적떼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떠드는 사이 어느새 초당 앞까지 왔다.
과연 도적들답게 상시 바깥에 누가 오나 경계하고 있었던 듯했다. 마당 앞에 시커먼 장정 예닐곱이 두 줄로 나뉘어 서서는, 꺽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두령님 오셨습니까!”
“오냐. 다들 좀 쑤실 텐데 참느라 고생이 많다.”
저들 조카뻘이나 될 법한 꺽정이에게 도적들이 모두 나름 극진한 예를 갖추었다.
꺽정이가 공치사하는데, 모두들 미동이 없었다. 한 달 사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얼마나 꺽정이에게 시달렸을까, 불법(佛法)과는 거리가 먼 이지함이지만 어째 자비심이 느껴졌다.
꺽정이가 이지함을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분께서 바로 내 사형 되시는 분이시다.”
“대(大) 두령님 오셨습니까!”
두령의 형이니 당연히 큰 두령이라는 그 명쾌하고 무식한 논리에, 이지함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금강산 일만이천봉마냥 굴곡 심하게 된 것이 어디 처음 일이던가. 두어 달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하였을 일이건만, 곧 충격에서 벗어나 초당 마루에 올랐다.
“흠흠. 어디까지나 두령은 여기 있는 이 꺽정이, 아니, 임 장사가 되겠소. 나는 그저 계책 내는 사람으로 족하오.”
“예, 모주(謀主, 모사)님!”
아니, 아무래도 이건 익숙해지는 데 한참 걸릴 듯했다. 애써 무시하며 걸어오는 동안 정리한 계획을 내어놓았다.
“자, 우리가 큰일을 꾸미고 있음은 임 두령으로부터 모두가 들었을 것이오. 그 첫발이 될 일을 이번에 꾸미고 있소. 바로 구휼미(救恤米)를 받으러 가는 일이외다.”
“예?”
“구휼미라니...”
흉년에 구휼미를 받으러 간다면 그것은 도적보다는 걸인(乞人)에 가깝지 않은가. 꺽정이를 포함한 모두가 아연실색하였다. 당혹감을 서로 주고받으니 이것이 바로 서(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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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은 실제로 보령 바닷가에 은거하면서 자염(煮鹽) 생산에 종사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 꽤 많은 이익을 취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직접 생산에 참여했다기보다는 경영자로서 활동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선조 시기에 지방관으로 출사한 뒤에도 이지함은 본인이 항해하면서 방문한 바 있던 서해의 여러 무인도를 개척하고 빈민들을 모아 자염을 생산하도록 하자는, 빈민구제 정책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중종~명종대 조선 국가체제의 붕괴는 장시의 활성화와 포목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적 시장경제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이전에도 쌀과 함께 포목은 현물화폐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지만, 그 추세가 16세기에 이르러 가속된 것이지요. 이는 포목이 쌀보다 유통에 편리하였을 뿐 아니라 또 연이은 흉년으로 쌀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 자체로는 상품성이 없는 저급한 포목이 일종의 저액권으로 유통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서책의 가격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매우 높았습니다. 이는 인쇄기술의 부족도 한 가지 이유였지만, 서점을 비롯해 유기적인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하는 시장 메커니즘이 부족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즉 인쇄 기술과 설비는 있지만, 대량으로 인쇄를 하여 시장에 보급하는 대신 그때그때 소량으로 발간하는 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6세기 중반부터 여기에도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작중 언급된 서유기, 삼국지 등의 통속소설이 명나라로부터 유입되고, 또 중고 금속활자를 민간에서 불하받아 사용하거나 자체적으로 목판인쇄를 한 뒤 판매하는 등의 양상이 나타난 것이지요.
특히 삼국지연의는 조선에 유입되자마자 빠르게 퍼져, 보수적인 유생들에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도 했으며, 서유기 역시 당시의 중국어 어학교재인 『박통사언해』에도 유학 경전 대신 서유기를 사러 가는 사람과의 대화가 예문으로 실리는 등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