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적은 때를 만나네 (3)
청석골 산채 일이 얼추 가닥이 잡히자마자 꺽정이는 사형 이지함에게 송도 황진이네 안채에 숨어 있던 그 아내와 장인 일가를 모셔옴이 어떻겠느냐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나 황진이에게 신세 지면서 남의 이목 많은 개성에 그들을 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더구나 백 명 가까이 늘어난 그들 무리 가운데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 모산수와 함께 있는 그의 서자 령이를 데려와 부려먹을 심산이기도 했다.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꺽정이는 곧장 서림이 만나러 평양으로 향했다. 모산수 일가가 청석골로 들어올 때 짐꾼으로 얼떨결에 함께 오게 된 사내종 밤이도 허드렛일이나 시킬 겸 함께 데려갔다.
올해(1547) 날씨는 참으로 해괴하여, 5월까지 눈과 서리가 내리더니 이윽고 무척 가물었고, 그러다가 8월에는 큰비가 내려 저 대동강·청천강 등 강변의 백성들이 화를 입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9월 말인 지금, 벌써 눈이 내리고 있었으니, 아무리 봉산을 벗어나 꽤 북쪽으로 올라왔다지만 너무나 이른 것임을 꺽정이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사내종 밤이 눈에는, 하얗게 덮인 채 멀리 모습을 드러낸 평양부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리, 소인네는 송도보다 큰 읍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요.”
“한양은 더 크다더라. 그리고 같은 천한 놈끼리 뭔 나리는 나리냐.”
두리번거리던 밤이가 함께 걷고 있던 꺽정이에게 신나서 말을 걸었는데, 퉁명스러운 대꾸만 돌아오니 조금 기가 죽었다.
“암만 그래도...”
꺽정이를 남들 앞에서 두령이라 부를 수는 없고, 그만한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형님’이라고 부르기에는 자신은 일개 종놈이라, 밤이 홀로 고민에 빠졌다.
처음 화담 초당에서 만났을 때는 그저 힘만 무식하게 센 놈으로 알았고, 후에 곁가지로 그가 백정의 아들이라 밝히는 것을 들었을 때는 아무리 그래도 노비가 백정보단 낫다며 몰래 깔보기도 했다.
그런데 두 해 뒤 다시 만나니, 그 꺽정이는 화담 선생의 제자분과 서슴없이 호형호제하는 사이요, 산골 한가운데에 수십 장정을 부려 산채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높여 부르지 않을까. 저의 위에 사람 있는 것 익숙하던 밤이 생각은 그러하였다.
“내가 지금 처사 차림하고 있으니 그냥 처사님이라 부르면 족하다.”
무덤덤하게 받아주며 대동강 나루에서 사공 기다리는 꺽정이였지만, 그 무뚝뚝한 표정 뒤에서는 여러 감상이 뒤엉켜 있었다.
이전 생에서 막 관군에 붙잡혔을 때, 오밤중에 몰래 찾아온 서림이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한양에 머물다가 함께 추포되었던 밤이가, 갑자기 자신이 거짓 투항을 하였으며 조만간 꺽정이와 다시 통할 것이라고 억지 고변을 하였다던가.
‘내가 지금 이렇게 두령을 만나고 몰래 찾아온 것을 보면, 밤이 녀석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오.’
‘시끄럽다, 이 쥐새끼야.’
쇳독 오르기 시작하여 온몸이 끓어오르는 듯한 것을 억지로 참고, 창살 너머 서림이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였다. 여간한 사람이라면 그쯤에서 지레 겁 먹고 내뺄 테지만, 서림은 진땀 흘리면서도 태연한 시늉하며 저의 할 말을 다 하였다.
‘쥐새끼라... 너무하시오. 나는 천생 고양이상인데.’
‘시끄럽다. 나는 그래도 네놈에게 의리가 있을 줄 알았다.’
‘의리라.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소. 그저 두령과 함께하면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싶어서 계속 따라왔을 뿐이지.’
‘의리가 없다는 놈이, 서울에서 내 안사람 구한답시고 파옥 모의하다 붙잡혔느냐.’
‘그건 의리가 아니라, 딴에는 그쪽이 타산 맞을 듯해 그리하였던 것이오.’
고통과 분기로 눈이 뒤집혀 그때는 헛소리 하지 말라며 욕지거리만 내뱉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서림이 말에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일리가 조금 있었다.
‘그것 아시오? 밤이 녀석이 왜 곧 죽을 줄 알면서도 끝까지 두령을 위해 나를 모함하려 했는지? 밤이는 두령이 언제고 이 나라에서 양반이란 것들을 싹 죽여 없애리라 굳게 믿고 있던데, 아마 그래서 의리 지킨답시고 나를 모함하려 했던 것일 테요.
이 서림이도 생각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소. 뭐 양반을 어찌하고는 알 바 아니지만, 언제고 두령이 나라 뒤엎을 때 옆에 서 있으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그러나 밤이보다야 내가 머리가 좋지 않겠소. 붙잡힌 다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두령은 그만한 큰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 같더라, 이 말이오.
지름길인 줄 알고 달려가던 것이 막다른 골목이었으니, 어찌 다른 길을 찾지 않을까. 이제라도 상급 받아 구실아치 노릇을 하건, 어디 한적한 시골 내려가서 전답 사들여 주인마님 소리나 듣건, 살 사람은 살아야지.’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그만한 큰일’ 벌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서림이 역시 전생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서림이가 꺽정이 그의 패거리에 들어온다 한들 한동안은 계속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바로 그 밤이와 함께 서림을 만나러 간다는 데 생각이 미치니, 묘한 느낌이 계속 꺽정이 마음속을 감돌았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감상은, 평양부에 도착하여 서림이라는 구실아치를 찾고 있노라 말을 꺼내자마자 곧장 끝나게 되었다.
“뭐, 이 평양부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서림? 서림이라... 어디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선 육방 어르신들이나 그 식솔 가운데는 그런 사람 없소.”
“평양부 아전이 이천 명은 넘을 텐데, 내가 어찌 알겠소?”
수소문 몇 번에 돌아오는 답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아직 홍수로 인해 생긴 난장판의 뒷수습이 되지 않아 영 지저분하고 뒤숭숭한 저자를 걸으며 밤이가 물었다.
“두, 아니, 처사님. 이제 어떻게 하지요?”
마찬가지로 답이 없어 머리 긁적이던 꺽정이에게 무언가 떠올랐다.
“알 법한 사람들을 찾으면 되지 않겠느냐.”
옛날에 서림이가 저에게 자랑하듯 말하기를, 남의 물건 빼돌린 경력으로 말하면 두령보다 저가 십 년은 앞선다 했던가. 셈해보면 지금쯤 벌써 그런 일에 손댄 지 몇 해는 족히 되었을 테니, 적어도 음험한 일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알려졌을 공산이 컸다.
“어디 보자...”
어느 고을이든 조금 부(富)가 모이고 흐른다 싶으면, 뒷골목이 생기기 마련이요, 그들이 모일 만한 곳을 마련해주고 편하게 뒷돈 챙기는 와주(窩主)들도 나타나는 법이었다.
한양에서 그런 곳 찾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으니, 평양인들 얼마나 다르겠는가.
다행히 그 추측이 들어맞아, 곧 몇 군데 수상쩍은 주막을 찾았다.
수상쩍다 함이란, 첫째로 사립문 열고 들어섰을 때 험상궂은 장정 한둘이 나와 무슨 연고로 오셨는가 썩 곰살맞지 못하게 물어본다는 것이요,
둘째로 가로막는 그들 팔을 꺽정이가 적당히 어루만져 주면 ‘이놈이 사람 죽인다’ 소리 대신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하면서 곧장 고개 숙인다는 것이요,
셋째로 일견 선량해 보이는 노인이 – 대개는 나이 많아 일선에서 물러난 도둑놈과 그 안사람들이었다 – 그제야 나와 무슨 일이냐며 사람 좋게 묻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네다섯 군데를 돌면서 서림이가 어디 사는지를 물었더니, 역시 다들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쯤 되니 해가 저물어, 개중 그나마 정갈한 – 즉 방문 열었을 때 벼룩이 손님 오셨다며 반갑게 통통 뛰면서 맞이하지는 않는 – 곳을 골라 저녁 밥상 내와 달라 청하였다.
“결국 허탕입니다, 처사님.”
“허탕이라니, 딱 보아도 눈치가 달랐지 않으냐. 거기서 뭐 적당한 귀물이나 조금 손에 쥐어주었다면 곧장 가서 서림이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습니까요? 하면 어째서...?”
“서림이 고 녀석이 정말로 이 바닥에서 구르고 있다면, 지금쯤 소문 듣고 직접 오든 사람을 보내든 할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어차피 아직 잔챙이라는 뜻이니 미련 없이 떠나면 되고.”
이제 스물이 될락말락 하는 젊은이가 말투로 보나 그 내용으로 보나 뒷골목에서 수십 년은 전전한 듯하였으나, 언뜻 보니 옆자리의 다른 객들은 저들끼리 노름 거나하게 벌이느라 이상하게 여길 겨를도 없는 듯했다.
그때, 연신 저의 팔뚝을 어루만지며 – 꺽정이 생각하기에는 엄살이 심한 것이었다 - 왈짜(불량배) 하나가 슥 다가와 말을 건네었다.
“처사님, 그, 구실아치 서가가 찾아와 처사님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요.”
“흐흠. 저기 뒤뜰에서 얘기를 좀 나누어도 되겠는가.”
“물론입지요.”
듣는 귀를 물려달라는 청은 별 의미가 없으니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 다 끝난 다음에 오승포(五升布) 따위를 건네주면 그것이 곧 입 다무는 대가가 될 터였다.
전생에 한양에서 서림이, 한온이 거느리고 기방에서 한창 노니는데, 떠돌이 관상쟁이가 불쑥 들어와 관상을 보아주겠다며 구걸을 한 적이 있었다.
서림이는 언짢아하며 내쫓으려 하고, 한온이는 적적하던 차 재밌겠다며 한 번 들여보자 하였는데, 꺽정이 마음은 한온에게 기울었다.
그때 그 관상쟁이가 말하기를, 서림이는 천생 들고양이상이라, 잘 사귀면 주변에 그만한 벗이 없지만 수틀리면 날카로운 발톱이 나와 주변을 온통 할퀸다 하였다.
그때야, 서림이가 듣기 싫은 말 한 것에 앙갚음한다고 그렇게 나쁘게 말한 줄 알고 넘겼는데, 이제 보니 또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서림이가 늘 말하기를, 자신이 술에 찌들기 전만 하더라도 꽤 미남이라 기생 여럿 울리고 다녔노라 하였는데, 그 말대로 사내답지 않게 곱상하지만 그래도 그 고양이상은 그대로였다.
“찾으셨다 들었소만.”
한창 찾아놓고서는 본인이 나타나니 얼굴이나 뜯어보고 있는 꺽정이에게 기다리다 못한 서림이 말을 먼저 걸었다.
“그렇소. 내 저기 봉산에서 나랏일 돕는 임 처사라 하오.”
“아, 봉산 지경의 도적을 모조리 없앴다는 그 임 장사시구려.”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오?”
“내 비록 감영에 속한 아전이지만, 직분이 직분이라 장사치들과 교분이 없지 않소. 그들이 어찌나 찬탄을 하는지, 얼른 서흥이나 황주까지 발을 넓히시기를 고대하더이다.”
이지함이 청석골에 남아 산채 짓는 일을 감독하는 동안, 꺽정이는 손수 봉산 일대를 돌며 자잘한 도적들 머리통을 깨고 다녔다. 위아래를 깨닫고 두령을 모시기로 한다면 곧장 청석골로 보내고, 끝까지 아등바등 대드는 자 한둘은 청석골 대신 염라대왕에게 미리 보내주었다. 말하자면 장사 시작하기 전 가게 앞을 싸리비로 쓰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허나 그래보아야 고작 한두 달 전의 일. 치켜세우는 척하면서 이렇게 말 붙이는 것은 아마 서림이 저의 소문 밝음을 은근슬쩍 밝히며 떠보는 것일 테다.
이제 슬슬 청석골로 와서 일 좀 도우라고 말을 꺼내려던 차, 의외로 저에게 더 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서림이가 선수를 쳤다.
“실은 내 임 장사와 같은 분을 기다리고 있었소.”
“그렇소이까?”
“급한 일이 있어서 그렇소. 이게 다 저 충주에서 못된 놈들이 난리를 쳐서 생긴 일인데... 휴우.”
“충주라고 하였소? 아니, 그 먼 고을 일이 어째서...”
은근히 뜨끔하며 물어보는 꺽정이었는데, 과연 꺽정이 그가 알던 그 일이 맞았다.
“감영에 쳐들어가 파옥하고서 인명을 그리 살상한 그 흉악한 놈이, 아 글쎄, 내 이름을 대면서 범행하였다는 것 아니오.”
그때 꺽정이가 사람을 직접 죽이기보다는 최대한 겁주어 혼란케 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옥졸 몇몇이 도망치기 전 꺽정이 얼굴을 보고서, 그 전날 밤에 그들과 실랑이하였던, 서원군 아래서 일한다는 ‘서림’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충청도 관찰사 김익수는 그날 밤 적변(賊變, 도적으로 인한 변) 이후로 사람이 절반쯤 실성하여 그런 사항을 취합하여 조정에 고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어지간하면 서림에게도 화가 아니 미쳤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서림의 편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 평양에서 평안도관찰사로 있는 사람은 바로 이준경(李浚慶)이었다.
그런데 이준경은 어려서 그의 종형(從兄) 이연경에게 글을 배웠고, 그 이연경은 바로 화를 입은 이약빙의 육촌 종질로 역시 충주에 살고 있었다.
이연경은 이약빙과는 달리 조정에 대한 일말의 미련도 없이 산속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으므로 옥사도 피해갔는데, 이번에 충주 고을이 발칵 뒤집힌 일은 그런 이연경의 귀에도 들려올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도적이 파옥을 위해 급히 무리를 모으면서 노비문권을 불사르고 전답을 나누어준 일은, 도적의 흉계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삼대(三代, 하·은·주)의 정사를 공부하는 선비로서 어찌 돌아가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연경은 지난 옥사 이후로 충주 고을 소식을 종종 이준경에게 글로 써서 보내주곤 하였는데,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부서진 향옥을 지키던 옥졸 몇몇이 증언한바 그 전날 처사 서림이라는 자가 다녀갔다는 대목이었다.
“... 아니, 임 장사도 생각해보시오. 조선 팔도에 서씨가 어디 한둘이요? 더구나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할 때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저의 이름을 곧이곧대로 털어놓는 얼간이가 어디 있겠소?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사람을 의심하고, 또 같은 아전이라는 것들은 옹호해주기는커녕 이 서림이가 수상쩍은 재물을 받아 챙겼다는 둥, 미심쩍은 작자들과 어울린다는 둥 모함이나 하고 있으니... ”
물론 수상쩍은 재물을 받아 챙긴 것도, 저기 의주나 요동까지 가서 잠상 노릇하는 미심쩍은 작자들과 어울린 것도 모두 사실이기는 했다.
허나 평양 아전 이천여 명 중에 그렇게 살지 않는 바보가 얼마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서림이는 진심으로 억울하게 여기고 있었다.
서림이 낯이 속마음에 따라 어찌 변하는지 훤히 아는 꺽정이에게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어쩌면 이것을 잘 이용하여 헐값에 영입할 수도 있게 싶어, 술 한 잔 하며 조금 더 이야기하자 청하였다.
여전히 요란하게 노름판 벌이던 이들을 적당히 구슬려 쫓아내고서, 밤이까지 물린 뒤 주안상을 들였다.
이 또한 서림이가 술만 들어가면 평소보다도 더한 떠벌이가 됨을 알기에 하는 짓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양에 있던 집이 발각된 것도 이 서림이 술주정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싸구려 술 – 흉년이다 보니 막술치고 정말 값비쌌다 – 몇 잔 넘기고서 꺽정이가 물었다.
“해서, 내게 맡기려는 일이 뭐요? 들어나 봅시다.”
“이야기가 길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소.”
“무어, 술은 많고 밤은 길다오.”
여전히 쭈뼛쭈뼛 경계하는 서림이에게 몇 잔을 더 먹였더니, 마침내 묻지도 않은 속사정이 주렁주렁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 홍수 때의 일이오...”
평안도 관찰사 이준경은 그 요직에 앉는 사람치고는 드물게 청백리 소리 듣는 사람이요, 학문은 학문대로 대성하였고 공무를 맡아봄에는 물 샐 틈이 없었다.
그런 물 샐 틈이 있는 장리(贓吏, 탐관오리)를 모셔야만 떨어지는 것이 많은 아전들에게는 지금이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이준경이 관례에 따라 자신의 부덕함이 크다며 사직을 청하는 글을 한양에 올려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성내의 아전과 기생, 왈패 등등이 부디 밝으신 주상께옵서 이를 가납하시기를 기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준경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홍수를 비롯하여 그해 연이어 벌어진 각종 재해의 뒷수습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관의 물자를 내어 구휼하고 복구하는 일에 쓰고자 하였는데, 그러면서 장부상으로만 있는 쌀과 베 등이 많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그냥 넘길 만큼 이준경이 허술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아전들이 그렇게 고생할 일도 없을 터였다.
허나 그렇게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던 가운데 웃음 짓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서림이었다.
“우리 감사또가 어떤 사람인데,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지 않소. 그간 세곡 포흠(횡령)한 것이 불거지게 되면, 특히 우리 호방 나으리 같은 분들은 매우 어렵게 되었겠지.”
평양의 이천 아전들 가운데 본디 가장 위세 드높은 자는 호방 이현동(李賢同)이었는데, 그와 그의 호방 패거리들이 평안도 한 도에서 모여드는 세곡을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몇 년 전부터 병방 김귀손(金貴孫)이 갑자기 부상하였는데, 평양을 경유하여 의주와 대국 요동으로 향하는 잠상(潛商) 무리가 근년 사이 급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대는 그 병방 밑에서 그 ‘절차에 일부 흠결 있는’ 장사치들을 다루는 일을 맡았겠군그래.”
“그렇지, 그렇지! 역시 우리 임 장사가 참 나를 잘 아오.”
이렇게까지 주정이 심하지는 않았던 듯한데, 무슨 일인지 가뜩 억눌려 있다가 저의 마음 알아준다 싶은 사람을 만나니 마구 털어놓는 모양이었다. 물론 꺽정이가 서림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아니요. 지난생에 들어 알던 그의 속사정을 바탕으로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금번 홍수로 인하여 그간 포흠한 것이 드러나면서, 이방 나리가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다 이 말이오. 그러던 차 병방 나리 일을 돕는 이 서림이가, 힉! 충주 파옥에 어떻게 얽혔다고 감사또께서 의심하신다, 그런 말을 들으니...”
“어떻게든 엮으려 애를 쓰고 있겠지. 감사또 이목이 다른 쪽으로 쏠리도록.”
“그렇소! 바로 그거요! 젠장맞을.”
이제야 꺽정이도 얼추 짐작이 되었다. 어느 고을을 가든 향리들은 단안(壇案)을 만들어 거기에 이름 올린 사람들끼리만 통혼하고 또 그 역을 물려주기 마련이었는데, 일개 아전이 여느 수령보다도 더 치부할 수 있는 평양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였다.
그런데 서림이는 분명 뜨내기 출신인데, 나중에 진상되는 토산품에 장난질을 쳤다가 걸려서 죄인 신세로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육방까지는 아니어도 그 아래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들었다.
필경 이번에 이준경이 포흠을 문제 삼아 호방과 그 일파를 쓸어내는 사이 그 빈자리를 잽싸게 차지하였던 것일 테다. 그러나 꺽정이 자신이 충주에서 이지함 구하려 파옥한 것이 이렇게 일파만파 퍼져서 서림이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으니, 갑자기 미안해지는 꺽정이었다.
(허나 곧, ‘하지만 서림이는 배신자니까’ 하고서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
“그러면 내가 가서 저 이방 패거리에게 어떻게 피눈물 흘릴 일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오?”
“아니, 오히려 반대라오. 임 장사께서 우리 병방 나으리네 창고를 조금 털어주셔야겠소.”
“잠깐, 서림 그대는 병방 나리 아래에서 일한다고...”
“맞소.”
역시 서림이는 배신에 도가 튼 모양이었다. 꺽정이는 진지하게 자신의 인재 영입에 대해 다시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평양부 아전 가운데 병방 나리 아래에서 그, 상고(商賈, 상인)들 다루는 일 하는 자들만 해도 이백은 되오. 이 서림이가 비록 개중 좀 재주 드러난 축에 든다지만, 굳이 따지면 잡일하는 자들을 감독하는 정도지, 아직 그렇게 높은 자리는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 병방 김귀손도 서림이 정도라면 적당히 버려도 되겠다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서림이의 주장이었다. 서림 건으로 세곡 포흠한 것이 묻히든 말든, 어차피 시일이 지날수록 잠상들의 장사도 세가 불어날 테니, 세월은 저의 편이라는 심산일 터.
“하여, 곤경에 처한 저의 사람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모함하는 말을 만드는 데 함께하고 있다 하니, 내가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 이 말이오. 이 난국을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이 더 큰 불을 지펴야지.”
그러니까, 병방의 창고에 도둑이 들었는데, 나중에 조사를 해 보니 일개 아전의 곳간에 들어있으면 안 되는 물건들이 미처 다 훔쳐가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남아 있다더라. 그런 모양이 꾸며지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하여 이준경의 노여움은 모두 병방에게 쏠리고, 그로 인해 일파의 머리라 할 수 있는 김귀손이 내쳐지게 되면, 그 혼란 속에서 서림이 저와 같이 약삭빠른 자에게 분명 기회가 생기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 뭐, 내가 술기운에 여기까지 내 계책을 모두 털어놓았소. 이 서림이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닥친 이 일신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전까지 서림이는 끈 떨어질 뒤옹박이니, 동아줄 아쉬우신 분께서 끈을 새로 달아주셔야 할 것이다, 이 말이외다.”
“...”
“어떻소? 무어라 답을 해보시오.”
“도둑질이야 괜찮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소. 감사또 나리 말이오. 그렇게 녹록한 사람이 아니외다.”
“뭐, 그 청백리 소리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그야 당연히 서원군 나리께 밉보였으니 몸을 사리고 계신 것 아니겠소?”
저의 (명목상) 관장에 대해 퍽 무엄하게 서림이 떠들었다. 하기야, 이준경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저렇게 단정하는 쪽이 자연스러우리라.
허나 이준경은 꺽정이에게도 구연(舊緣). 을묘왜변 때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월산에서 토벌당할 때 한 번 각각 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헤아려보건대, 이 서림이의 불장난 계책은 그대로 따랐다가는 금방 간파될 공산이 컸다.
이 망조 든 아전을 어찌해야 하는가. 꺽정이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번 생에서나 저번 생에서나 골칫거리 많이 던져주는 서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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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와 한온 모두 실제 기록에 이름이 전하는 임꺽정의 일당입니다. 두 사람 모두 벽초의 『임꺽정』에 등장하지요. 밤이는 붙잡힌 뒤 서림이 임꺽정과 몰래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거짓 고변을 했는데, 이로 인해 잠시 서림의 처리를 두고 조정에서 논의가 일어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조정은 이것이 무고라고 판단했고, 서림은 임꺽정이 죽은 뒤 포도청 소속이 되어 잘 먹고 산 듯합니다. 이미 중종 대에 백정 출신 도적 당래·미륵 형제가 공을 세워 비슷한 처분을 받았던 바 있었는데, 아마 이 전례를 따랐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준경과 그 형 이윤경은 명종~선조 연간의 명신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형제가 모두 문무를 겸전하여 을묘왜변과 이후 북방의 여진족 침입을 잘 막아낸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또한 이준경은 윤원형의 몰락 이후 조정을 이끌면서, 명종 사후 선조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 그리고 더 크게는 훈구와 사림이 점진적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정국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임꺽정을 토벌하기 위해 이전의 소수 군관 위주로 추격하여 잡는 방침을 폐기하고 군사작전에 준한 대규모 병력동원으로 단기간에 체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 역시 이준경이었습니다.
평양 아전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창작입니다. 다만 당시 평양이 상업의 중심지로서 번성하면서 그 아전들 역시 많은 부정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중종실록』에서는 16세기 초중반 평양 아전의 위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평양 감영의 아전은 2천여 명이 넘는데 (...) 그 중 종신토록 집에서 한가하게 늙어가는 사람이 10명에 8~9명이나 됩니다. 때문에 향교에 있으면서 유림의 의관을 하고 선비로 불리는 자라 할지라도 친히 관에 청하여 감영의 아전이 되기를 바라는 자가 많습니다 (...)” (중종 32년 4월 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