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수령칠사 (2)
무신년(1548) 새해가 밝자마자 곽순수는 해유(解由, 인수인계)를 고하였는데, 조흘(照訖, 인수인계 완료)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본디 봉산군수 후임으로 내정된 이가 알 수 없는 연유로 부임도 못한 채 임지가 바뀌고, 몇 달 뜸을 들이다가 여름이 되자 엉뚱한 사람이 후임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이미 마음이 뜬 곽순수가 군정(郡政)을 돌보면 얼마나 돌보겠는가. 그나마 돌보는 시늉이라도 하던 지난 한 해와 달리 올해는 아예 손을 놓아버리다시피 하였다. 포폄도 끝났고, 임지도 바뀌었으며, 봉산 고을에서 얻을 것은 모두 얻었기 때문이었다.
“사또 나리, 이래도 괜찮겠소?”
재령에 의외로 무리 이룬 도적떼가 있다 하여 군기(軍器)를 빌리러 온 꺽정이가 도리어 머리 긁적이며 걱정해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군의 치소(治所)는 봉산 읍내가 아니라 청석골로 옮겨가다시피 하게 되었다.
더구나 올봄에 재령군수가 저도 한 번 조정으로부터 상급 타 보겠다며 의민당을 군 지경 안에 들인 이후부터는 아예 양쪽 군의 아전들이 저의 아래에 있는 서원(書員)이나 자식들을 청석골 아랫말 서림이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임 처사’와 자신 중 누가 더 처사처럼 노니는지 겨루는 듯하던 곽순수도, 한양의 경주인(京主人, 중앙과 연락을 맡는 향리)으로부터 올해 문음(門蔭)으로 출사한 이원수라는 이가 새롭게 후임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자 얼굴이 굳었다.
“대개 그 나이 먹고 문음으로 올라오는 이라면, 권문(權門)에서 저의 수족으로 부리려고 하는 자거나, 남의 권세를 빌려 한몫 챙기려 내려오는 자일 공산이 크오. 임 처사가 고생이 많겠소.”
어느새 꺽정이네 패거리와 명운이 엮여버린 곽순수가 근심하며 말했다.
허나 듣는 꺽정이 생각에는, 어느 쪽이든 괜찮겠다 싶었다.
한창 날뛰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장 무서운 것은 꺽정이 그가 무리해서라도 죽여 없애려고까지 했던 이흠례(李欽禮)처럼 강직하고 재주도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가장 대하기 쉬운 것은 저의 머리통을 한양이나 저의 곳간에 놓고 다니는 작자들이었다.
그들 배만 적당히 불려주면 아무것도 간섭을 아니하니, 도적들 보기에 그만한 수령이 또 있겠는가.
오히려 무서운 쪽은 어리석으면서 열심히 무언가 일을 벌이는 쪽이었는데, 강직하고 재주 있는 자들은 어찌 행동할지를 미리 알면서도 막아낼 수 없는 반면, 이런 치들은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아 가끔 가장 아프게 허를 찌르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놈들 때문에 한양이나 송도 오가던 재물 중 상당수가 예성강 바닥에 잠겨야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지금도 마음 한쪽이 쓰렸다.
그리고 마침내 새 수령을 맞이하는 날,
“오, 자네가 의민당 맡고 있다는 임가인가? 잘 해보자고.”
서슴지 않고 하대하는 이원수를 보자 불길한 예감이 마구 치솟아올랐다.
같이 그 자리에 나와 있던 서림이도 곧장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이원수가 거들먹거리며 동헌에 드는 것을 보자마자 부리나케 청석골로 달려가 이지함을 만났다.
“저 새 군수가 수령칠사(守令七事) 가운데 한 가지에도 손 못 대도록 우리끼리 알아서 하는 것이 상책일 테요.”
아무리 그래도 국법과 범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이득 챙기는 그들 의민당 패거리가 대놓고 군정에 끼어드는 것은 과하지 않은가 생각하였던 이지함도, 꺽정이의 단호한 말에 마음 흔들렸다.
“임 당수 말씀이 맞습니다. 소인이 위에 수령 여러 분 모셔보았는데, 저런 분께서 위에 계셔서 무언가 일에 손을 대시면 그때부터는 한 가지 일이 열 곱절로 불어나는 도술이 벌어지게 되더만요.”
이윽고 서림이까지 연신 고개 끄덕이며 동의하니, 결국 따르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소? 언뜻 떠오르는 것은 없는데.”
그러나 이지함이 곧 반문하니, 두 사람도 조금 생각하다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미 봉산군 한 곳의 행정 가운데 그들 패거리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므로, 이미 수령칠사고 무엇이고 따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 모임은 지금껏 하던 대로 잘 하자는 결의만 다지고서 밥 한 끼 같이 먹고 파하였다.
“에헴. 지금쯤이면 그대들도 본관의 마음가짐을 알았으리라 믿네. 이 사람은 그저 무본(務本, 기본에 힘씀)하고자 할 뿐이라네.”
동헌에 육방 아전들을 불러모으자마자 이원수는 벌떡 일어나 저의 군정 방침을 자랑스레 내어놓았다.
”수령의 기본이란 무엇인가! 바로 일곱 가지 일이라 하겠네.”
하면서 다들 아는 그 수령칠사를 죽 읊는 이원수였다.
“... 하여, 이 일곱 가지 일에서 모두 지금까지 이루어져 있던 것은 더욱 흥성케 하고, 미진하였던 것은 고쳐 마침내 이 봉산군이 황해도 일원에서 가장 잘 다스려진다 하는 말이 나오게끔 하기를 바랄 뿐이라네.”
보통 뛰어난 지방관이라면 저런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뜻 이루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아전들 앞에서는 오히려 말을 아끼기 마련이었다.
“자, 하여 금일은 향후 어떻게 고을을 이끌어나갈지, 그대들의 말을 듣고서 지남(指南, 지침) 내리고자 이렇게 불러모았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봉산군 행정은 군수 한 사람이 어떻게 마음대로 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였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사람됨이 문제지 머리가 문제는 아니었던 이원수도 곧 이를 깨닫게 되었다.
먼저 농상성(農桑盛, 농사와 양잠이 흥성함).
“근래 흉년이 잇달아 관과 민간의 곳간이 모두 비었을 터이니, 비록 봉산 고을이 조금 낫다지만 어찌 여기서 그치겠는가? 마땅히 농상의 일을 독려하여...”
“그... 송구하오나, 지금보다 더 창고가 차게 되면 곤란할 지경입니다요.”
“무어라?”
나라에 연이어 흉년이 들면서 늘어나는 것은 장시와 도적뿐이었다. 그런데 봉산 고을은 도적이 없고 평양과 개성 가운데께에 있어 목도 좋았으므로, 한 해 사이에 원래 있던 장이 꽤 커지게 되었다.
어깨에 ‘의(義)’자 쓰인 베를 동여맨 의민당 패거리들이 그런 장터를 돌면서 받아내는 재물만 해도 적지 않았다.
봉산 고을의 사정을 모르는 장사치들은 이런 법이 나라에 어디 있냐며 항의하곤 하였으나, 좋은 일에 쓴다는데 말이 많다며 수십 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타이르면 곧장 봇짐을 열게 되었다.
허나 뜯기는 것이 항상 억울할 뿐 그 액수가 큰 것은 아니어서 – 상인들에게 많이 뜯어먹어본 서림이의 공이 컸다 – 볼멘소리는 하면서도 다른 데 가서는 ‘봉산 그만한 곳이 없다’ 하곤 하였다.
그렇게 해서 늘어나는 쌀과 베는 청석골로도 가지만, 아무래도 곧장 내어다 쓰기 편한 봉산 관아 옆 곳간에 먼저 채워두기 마련이었다.
지엄한 동헌을 고직(庫直, 창고지기) 일 보는 곳으로 만든다는 데 이원수는 분개하였지만, 이미 소소한 토색질보다 훨씬 넓고 먹거리 많은 세상 있음을 깨달은 향리들은 모르는 체하였다.
다음으로 호구증(戶口增, 호구가 늘어남).
“호방, 여기, 이 ‘영하촌(嶺下村)’이 어디인가? 호구만 백여 호라고 되어 있고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데...”
“아, 그것은 청석골 아랫말을 말하는 것입니다요. 원래는 그저 주막 하나에 농가 몇이 전부였는데, 임 처사가 입산(入山)한 이래 민총이 크게 늘었습지요.
우리 봉산 장정들이야 저의 집에서 왔다갔다 하지만, 요새 여기저기 흘러다니다가 의민당에 자리 잡는 뜨내기들이 좀 많아야지요. 그런 치들이 대개 아랫말에 자리를 잡고, 또 가끔 저의 가솔까지 데려오곤 하다 보니 호구가 항상 늘어납지요. 홀아비나 노총각들도 많다 보니 아마 머릿수로 따지면 삼백을 조금 넘을 것입니다.”
굶어죽는 이도 적지 않고, 항상 늘어나는 온갖 세금에 야반도주하거나 유력가에 투탁하는 양민도 허다한 시국. 호구가 줄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건만 오히려 늘어나니 ‘호구증’도 절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 다음은 학교흥(學校興, 학교가 흥성함).
올봄에 김절이 요양(遼陽)을 한 번 다녀온 이후로, 부쩍 낯선 자체(字體)로 된 서책이 향교에 늘어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랏돈을 받아 밑천으로 삼았기에, 구색 맞추고자 몇 질쯤 향교에 전해준 것에 불과하였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던가. 저의 살아생전 이 향교에 전적(典籍, 책)이 모두 갖추어지는 것을 보니 여한이 없다면서 늙은 훈도(訓導) 하나가 꺼이꺼이 울다가 혼절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본디 사족들 가운데 평이 좋지 않던 김절은 이번 일로 장사에 재미를 붙였는지, 또 한 차례 의주를 다녀오려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벌써 주변에서는 유상(儒商) 나왔다고 흉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흉을 보는 사족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몰래 청석골에 연통을 넣어 다른 좋은 장사 없느냐며 묻고 있다는 소문도 암암리에 돌았는데, 사족들은 대부분 그런 일이 없다고 과하게 열의 담아 부정하곤 했다.
나머지 일도 대개 그런 식이었다.
군정수(軍政修, 군정이 올바르게 닦임)와 부역균(賦役均, 부역이 균등함)은, 대립군 세우는 값을 의민당이 모조리 가로챈 뒤 당의 장정들 이름을 군적에 올려두었기에 절로 이루어졌다. 각자 알아서 대립군을 구해 세우든 군역을 스스로 짊어지든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에 백성들도 호평 일색이었다.
따지고 보면 의민당이 군졸들 할 일을 대신 하는 셈이었고, 더구나 올봄에는 할 일 없는 장정 여럿을 부려 무너지기 직전인 제언 두어 곳을 보수하기도 했으니, 꺽정이 패거리가 하는 짓이 대개 그렇듯 국법을 범한 것인지 아닌지 영 아리송한 일이었다.
거기에 올해는 서림이가 봉산과 재령 아전들을 끌어들여 방납(防納)에도 뛰어들기로 말을 맞추어둔 상태였다.
지난해 가을 평양의 육방 아전들이 ‘구휼에 힘쓸’ 때, 똘똘 뭉쳐서 아전들 창고를 털다시피 하였던 평양 상인들은 그때 이후로도 여전히 단합하고 있었는데, 아전들과 완전히 척지게 되었기에 그렇게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평양 상인들을 이 방납에 끌어들여서, 봉산과 재령 백성들에게 쌀과 베 따위를 받은 다음 그것으로 토산품을 싼값에 들여오고, 차액의 일부를 한양의 서리들에게 적당히 넘겨주면 적잖은 이문이 남을 것이었다.
아무리 재령과 봉산 향리들이 대대로 그 직을 전해 내려왔다지만, 평양에서 몇 년 구른 서림이에 비하면 순박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그들도 이 ‘사업’ - 서림이도 이 말이 요새 입에 착 달라붙어 애용하고 있었다 – 이 엄청난 이득 될 것임을 족히 알 수 있었으므로, 여기에 열과 성을 다해 뛰어들고 있었다.
사송간(詞訟簡, 송사가 간단함)으로 말하자면, 시골 관아의 송사에 있어 정말로 억울한 일은 별로 없고 태반이 백성들 간의 소소한 욕심이 발단이 되기 마련이었는데, 임 처사가 초주검이 된 도적 몇몇을 동헌 앞에 던져둠으로써 널리 경계하는 뜻을 세운 이후 인심이 절로 후해지고 어진 풍속이 권면되어 다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 그러니 본관이 할 일은 정말 없다는 것인가?”
“어찌 없다 하겠습니까요? 그저 지극한 덕으로 위엄 갖추어주십사 하는 것이지요. 헤헤.”
즉 네가 할 일은 없으니 관아 구석에서 구실만 갖추어주고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허어, 이것 참...”
분명 자신이 아내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당숙에게 청탁하면서까지 이곳 봉산 군수로 부임해 온 까닭이, 속된 말로 전임자가 이루어놓은 것을 날로 먹고자 해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원수는 답답함을 느꼈다.
스스로 사고에 모순이 있음을 깨달을 만큼 생각이 깨인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 지경에도 처하지 않았겠지만.
그때, 형방이 쓸데없이 한 마디 첨언하여 이원수 속을 더 긁었다.
“임 처사는 비록 연소하지만 그 재주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미 그의 의민당이 봉산 고을을 잘 이끄는 기틀을 마련해두었으니, 그대로 따르시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형방은 어찌 말을 그리 하는가? 의민당이 아무리 짜임새가 훌륭하다 한들 고작해야 처사 하나가 장정 여럿을 부리는 조그만 무리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어찌 고을의 운영을 맡기라는 말인가?”
차라리 전임자 곽순수가 이러이러하게 하였으니 그에 따르면 된다고 하였더라면 자격지심이 덜 치솟았으련만, 관직 하나 없는 그 임가 놈 – 처음 부임할 때부터 저를 보는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의 이름을 대니 더욱 짜증이 났다.
이대로라면 강릉에서 오고 있다는 그의 아내가 당도하였을 때도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으리라.
“잠깐, 그러고 보니 마지막 하나, 간활식(奸猾息,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없음)이 있지 않은가?”
“예? 그 무슨 말씀을...”
애초에 임 처사와 그의 무리들이 일어난 핑계가 도적 때려잡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다른 칠사(七事)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해결된 일이 저 간활식이었다.
물론 쓸데없이 고지식한 자가 보면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청석골 꺽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 꺽정이 패거리의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 아전 눈에는 그리 보일 리 없었다.
“의민당이 암만 위세 높다 하지만 어찌 관(官)의 위엄에 비기겠는가? 비록 민생이 궁핍하고 시세 어려워 일시 그들의 도움을 얻었다지만, 이제 사정이 여유로워졌으니 뒤바뀐 본말(本末)을 올바르게 해야 할 것이야.”
아전들이 급히 눈을 굴리며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차피 봉산 경내에는 도적의 씨가 말랐고, 군수 홀로 관아의 군졸들을 부려서 뭔가 일을 벌인들 가운데 낀 나장(羅將, 지방 나졸의 우두머리)이나 조금 괴롭고 말 것이었다.
얼추 판단을 해 보니 이 새 원님은 한가롭게 내버려두었다가는 뭔가 일을 터뜨릴 사람이라, 그렇게 별 공효 없는 일이라도 소일거리로 삼게 함이 봉산군을 화평케 할 길인 듯하였다.
“흠흠,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요. 어찌 저 의민당에만 의지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소인들도 힘껏 돕겠습니다.”
어차피 이 무렵 나졸들은 갑작스럽게 일이 줄어들어, 대개는 집에서 허송세월하고 간혹 부지런한 이들은 나날이 사람 늘어나는 장터에 나가 좌판 깔고 앉아있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이원수가 불러모아, 적으면 스물, 많으면 쉰 조금 넘는 무리 거느리고서 진법(陣法)을 연습하니 정병(正兵)으로 조련하니 하고 있었으니, 이미 꺽정이가 도적떼 섬멸할 때 그 배는 되는 머릿수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본 이들 눈에는 소꿉장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보다 아주 조금 나을 만큼 올해도 흉년이었기에, 팔도가 굶는 판. 봉산에 모여드는 부(富)는 결국 다른 열 고을에서 빠져나온 것이라 해도 무방하였다.
그러한 작은 평온함이나마 지키기 위해서는,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원수의 병정놀이에 가장 고생하는 병방과 나장을 볼 때마다, 모두가 힘내라며 격려해주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름도 지나 가을이 되고, 수령칠사가 모두 절로 이루어지며 봉산 한 고을이 평화롭고 옆의 재령과 평산도 조금씩 사정 나아지던 무렵.
군수 이원수 홀로 밤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파주 밤골(栗谷) 집에 머물고 있는 셋째아들 이이가 전갈한 그의 아내 소식 때문이었다.
명석한 셋째아들은 마침내 그 젊은 나이에 아비도 겨우 통과한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서는, 스승을 구하기 위해 잠시 파주에 내려와 있었다. 이이는 본디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백인걸(白仁傑) 아래서 공부하려 하였으나 그가 옥사에 휘말려 멀리 안변으로 정배되었으므로 고민 중이라 하였다.
헌데 글을 보내 알리기를, 안사람 신씨가 벌써 강릉에서 파주 친가에 도착하여 여기저기 안부하고 다니고 있으며 조만간 봉산으로 떠날 것이라 하였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하였던 것이다.
이원수 그가 무언가 이루어보겠다며 봉산으로 온 지가 벌써 몇 달인데, 스스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고, 자신이 아니라 저 임 처사가 군수 노릇을 하다시피 하고 있지 않은가.
당숙에게 청탁해가며 군수 자리 앉아놓고서는 하는 일이 고작 병정놀이냐고 비아냥거릴 – 물론 아내는 문리(文理)에 저보다 밝아 훨씬 세련되게 돌려서 비아냥거리겠지만 – 신씨 모습이 선하였다.
그러던 차, 낭보 아닌 낭보가 전해져 왔다.
“이번에 저기 평산부(현 평산군) 쪽으로 갈 일이 생겨서 군기(軍器) 빌리러 왔소.”
요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것은 일반 백성들뿐이 아니라서, 사장(私匠, 사영 수공업자) 또는 무거운 부역 때문에 도망나온 관장(官匠, 관영 수공업자)도 적지 않게 청석골 아랫말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나 올봄에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와장(瓦匠, 기와장이)과 야장(冶匠, 대장장이)이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창칼 하나가 아쉬운 때기도 하고, 또 때가 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무기를 비축하고 있음을 주변에 알리지 않음이 좋겠다는 이지함의 조언도 있어서, 꺽정이는 이렇게 제대로 된 적당(賊黨) 때려잡으러 갈 때는 꼭 무기를 빌리러 관에 오곤 했다.
“평산부?”
“그렇소이다. 우리 당에서 힘 빌려주기로 약조한 금교찰방이 청하여 그리 가게 되었소. 저기 장단부 군관이던 한종(韓宗)이라는 놈이 도적이 되어 날뛰는데, 근래에 우리 봉산 오가는 장사치가 늘어나다 보니 제 앞마당 장단을 떠나 평산과 서흥 사이로 옮겨왔다 하오.
헌데 평산에서 서흥 지나면 바로 우리 봉산이지 않소. 마땅히 나서서 제압하여야지. 평산부사께는 금교찰방이 미리 글을 보내 허락을 받았다 하더이다.”
꺽정이 저는 백정으로 떵떵거리며 살 길이 도적뿐이니 그렇다 쳐도, 저 한종이란 놈은 군관으로 그럭저럭 먹고살았을 법한 놈이 도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멸악산 반대편 청석골에 뻔히 주인이 계시거늘 마음대로 평산과 서흥 사이에 터 잡으려 한다 하니, 어찌 괘씸하지 않은가. 곱게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흠흠. 좋네. 단, 군기는 엄연히 우리 군의 것이요, 나아가서는 나라의 물건이니, 빌려가는데 마땅히 값을 치루어야 하지 않겠나.
더구나 비록 임 처사 그대의 당이 여러모로 고을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하나, 엄연히 주(主)는 관군이요, 그대 당은 객(客)일세.”
을묘년 왜변 때 많이 들어본 가락이라, 꺽정이도 금방 이원수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관군 – 즉 자신 – 이 뭔가 공 세울 거리를 달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봉산군이 어디 북변이나 남도 바닷가도 아니고, 관군이라 해 보아야 꺽정이 홀로 상대할 수 있을 법한 수십 명 나졸이 전부 아닌가.
그래도 이 수령과 꽤 오랫동안 같이 가야 하는 사이이므로, 조금은 생색 낼 수 있게 해줌이 마땅하리라. 짜증이 팍 나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 사형 이지함과 함께 지내다 보니 새로 생긴 재주였다 – 이원수에게 제의했다.
“그... 마침 관군이 하기에 딱 좋은 일이 있소.”
꺽정이가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실제 지도를 가져다주며 설명할 만큼 이원수와 친하지는 않은 꺽정이였다.)
“아마 놈은 이쪽 웃수렛재, 그러니까 상차령(上車領) 근방 어딘가에 있을 것이오. 우리 당을 마주하여 한종 그놈이 그 자리에서 일전 벌이려 한다면야 그것으로 끝이겠지만, 놈도 군관 출신인지라 딴에 판세 읽고서 먼저 달아날 수도 있소.
우리 당이 먼저 나아가 놈을 서쪽, 봉산 쪽으로 몰겠소. 그쪽으로 가게 되면 멸악산이고, 반대편에는 우리 당의 본거(本據)인 청석골이 있소. 그러니 독 안에 든 쥐가 될 텐데, 놈들도 그것을 알 것이므로 북서쪽으로 틀어서 우리 군 안쪽으로 들어오려 할 것이오.
그러니 군수께서 그 길목, 그러니까 금정산(金井山) 길목을 관군 거느리고 막아주시면 되겠소.”
물론 아무리 꺽정이에게 혼쭐이 난 뒤라 할지라도 도적은 도적이므로, 이원수가 그들을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을 공산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지경이라면 한종의 무리는 꺽정이에게 당해 경황이 없을 것이고, 그러니 억지로 막아선 관군을 돌파하느니 차라리 다른 길을 찾자며 멸악산 안쪽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길목을 막기만 하면 된다... 그 말인가?”
“그렇소. 군수(郡守)로서 그 군을 지키니, 어찌 공이 작다 하겠소? 그리고 공적을 위에 알리는 것 또한 군수께서 직접 하실 일인데, 그쪽에서 적당히 가감한다 한들 이 사람이 어찌 왈가왈부하겠소이까.”
“좋네! 내 그리 하겠네.”
아예 벽창호처럼 굴면 어쩌나 싶었는데 의외로 순순히 응해주었다는 데 만족한 꺽정이는 더 첨언하지 않고 곧장 병장기 챙기러 갔다.
꺽정이가 아래에 부하들은 많이 거느려 보았지만, 이 조선국의 수령이나 군관이라는 자들은 거느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패착이었다.
“헉... 헉! 대체 저놈은 사람이 맞긴 하냐!”
전직 군관, 현직 도적 한종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파가 불에 타다 못해 목을 타고 넘어오는 느낌이었지만, 목숨이 아까웠기에 달음박질을 멈출 수 없었다.
“헥, 헥... 그래도 얼추 따돌린 듯합니다.”
함께 따라온 부하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저놈들이 도적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산길을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젠장, 도적들 사이의 의리가 땅에 다 떨어졌어!”
꺽정이는 구월산부터 멸악산까지 황해도 한 도의 산은 모두 훤히 들여다보듯 하고, 한종은 암만 군관으로서 경험이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경기도 일대에서나 날뛰었기 때문에 가는 길마다 그놈의 ‘의’자 완장 찬 무리만 만날 뿐이었다.
크게 벌 생각 하고서 장단에서 저의 무리 칠십여 명을 모두 이끌고 왔건만, 이제 주변에 남은 것은 스물 뿐이었다.
“아직도 귀가 울리는 것 같습니다요.”
“시끄럽다. 누군 안 그런 줄 아냐.”
‘내가 바로 임꺽정이다, 이놈들아!’ 쩌렁쩌렁 외치면서, 도끼 하나를 던져 머리통을 깨부수고는,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칼로 베고 쑤시던 것이 절로 떠올라 모두가 몸서리를 쳤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예닐곱이 이승 하직하고, 또 어디서 끌고 온 양민들인 줄 알았던 작자들은 알고 보니 병장기에 저들만큼이나 익은 놈들이라, 악에 받쳐 달려들었다가 또 대여섯 명이 죽었다.
기세가 완전히 꺾여 남은 졸개들 수습하여 산줄기 따라 도망치는데, 그러다가 또 진 치고 있는 그놈의 의민당 패거리를 만나고, 어떻게 안 들키려고 조심스레 움직이다가 임가 놈에게 따라잡혀 다시 도륙을 당하고...
그러다 보니 고작 이만큼만 남아 초라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무릎 끓고서 목숨만은 붙여 달라 빌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물음이 남은 스무 명 졸개들 사이에 말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래도 가만 앉아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다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니 다들 따라왔다.
“휴우... 여기가 어디쯤이냐.”
“대충 봉산과 서흥 사이인 듯한뎁쇼.”
“육시랄, 봉산이면 그놈들 소굴 아니냐?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때, 몇 걸음 앞에서 망 보며 나아가던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힉, 히익! 저기 앞에 또 놈들이...”
“뭐, 뭐라?”
놀란 부하들은 다리에 힘 풀려 엎어지거나 주저앉고, 한종 하나만 후다닥 달려와 앞을 살폈다. 저쪽에서도 이쪽을 보았는지, 우두머리 같은 놈 하나가 조랑말 위에 앉아 무어라 명을 내리고 있었다.
“잠깐만. 저놈들 저거... ‘의’자 완장이 없지 않냐? 복색으로 봐도 관군인데?”
“그렇습니까요? 그런 것도 같고...”
한종은 곧 마음을 굳혔다.
“야, 이놈들아. 저놈들은 그냥 관군이다. 꺽정이 그놈 부하들이 독종이지, 저놈들은 우리가 장단에서 맨날 가지고 놀던 그런 관군이라 이 말이다. 저놈들이 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걸 보면, 필시 의민당 놈들은 우리가 여기까지 올 줄 모르고서 대충 방비해둔 게야.
알았냐? 저기만 넘으면 된다! 저기 저 우두머리만 고꾸라뜨리면 된다고!”
“헌데 두목, 우린 스물이고 저쪽은 얼추 마흔은 되는 것 같은데...”
“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냥 달려들... 엥?”
바로 밀고 들어오거나 할 줄 알았던 관군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더니, 말 탄 놈이 멀찌감치 앞으로 나와 겁 없이 외쳤다.
“하하, 천한 도적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오느냐! 이 봉산군수 이원수가 여기 납셨다!”
한 열 보쯤 나오고 말겠거려니 했는데, 말은 주인 마음을 모르는지 계속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오고, 제멋에 겨운 이원수는 아는지 모르는지 공들여 준비한 문장을 계속 읊었다. 그렇게 저쪽 관군으로부터 이십 보, 삼십 보...
“당장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면 우두머리를 제하고 나머지의 명줄만은 붙여줄 것이로되...”
한종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옳지! 야, 얘들아! 저기 저놈만 족쳐라! 저놈이 봉산군수라 했으니, 붙잡아서 서흥 쪽으로 도망치는 거다!”
“와아아!”
“그러므로 너희의 죄를 알고 뉘우치며... 어, 어어! 관군은 무얼 하느냐! 관군!”
이 무렵 나라의 기강이 땅에 떨어져, 도적이 관아에 들어와 무기고를 털어가고, 수령을 겁박하여 저들 무리를 방면하라 하고, 심지어 마구 때려 인사불성으로 만드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도적 무리에게 납치당한 수령은 이원수가 처음이었으니, 원하던 대로 흔치 않은 업적을 이룬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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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유는 정확하게는 인수인계 절차의 통칭이 아니라, 전임 관원이 더 이상 자신은 소관 부처의 재정 및 물품 관리에 책임이 없음을 인정받는 절차입니다. (즉 말 그대로 책임由을 없애는 解 절차지요.) 특히 지방관의 경우 단순히 재정 문제를 넘어 군정까지 관련된 사안이었으므로 이 절차가 엄격하였습니다.
전임 지방수령이 관아의 건물부터 향교의 책과 제기, 심지어 돗자리 하나까지 모든 물품의 현황을 기록하여 인계하면, 후임자가 이것을 살펴본 뒤 관찰사에게 이상없음을 보고하고, 관찰사는 다시 호조와 병조에 이를 이첩하며, 호·병조의 2차 검토 결과 이상이 없을 시 비로소 이조를 통해 조흘(照訖)을 받음으로써 지방관의 인수인계 절차가 완료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규정이었으므로, 중앙과 지방의 기강이 모두 해이해진 16세기 중엽에는 이야기가 다소 달랐을 것입니다.
지난 화부터 등장하는 봉산 유생 김절은 실존인물입니다. 을사사화 당시 자기 이복동생의 처남이었던 고의귀(高義貴)의 재산을 탐내, 그를 무고하였다가 적발된 적이 있었는데, 형만 집행하고 풀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적당히 뇌물을 바치고 무마하였거나 곤장 정도만 맞은 듯합니다.
한종 역시 실존인물로, 1540년대 말부터 기승을 부렸던 장단 일대 도적의 우두머리였습니다. 특히 그의 무리는 대낮에도 공공연히 마을에 들어와 노략질을 하고, 사족 집안의 아녀자를 납치해가는 범행으로 악명을 떨쳤지요. 그 범행이 심각하여 일대에 부임하는 지방관들이 아내를 데려가지 못할 지경이 되자, 조정은 결국 군관 조안국을 보내 1551년 한종 일당을 섬멸하게 됩니다.
다만 그가 군관 출신으로 설정된 것은 작중의 창작입니다. 다만 실제로 아전이나 군관, 나장 등이 도적과 결탁하다 못해 직접 도적이 된 사례가 당시에 적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겠습니다.
원 역사의 임꺽정 패거리가 이전의 다른 도적들과는 달리 세력을 크게 떨칠 수 있던 배경 중하나는 바로 상인들과의 연계였습니다. 훔쳐낸 재물을 한양, 개성 등지의 상인들과 협력하여 처분하고, 다시 그들을 통해 병장기 등을 들여오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지요. 이는 중종·명종대를 거치면서 체제의 모순 누적과 수탈의 증가, 잦은 흉년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붕괴하고 생존을 위해 상품경제적 면모가 전국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