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수령칠사 (3)
“뭐라? 군수가 잡혀갔다고?”
“그, 그렇습니다, 처사님... 소인들이 손을 써보기도 전에 그만...”
이원수와 함께 나졸들을 이끌고 왔던 나장 장가가 벌벌 떨며 봉변한 사정을 고해바쳤다.
가만 있어도 험상궂다 소리 듣는 임 처사가 얼굴과 옷을 남의 피로 붉게 물들이고서 캐물으니, 이 자리에 나장이 아니라 황해도 관찰사를 앉혀두어도 겁 먹고 절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임 당수(黨首), 한종 그자가 우리 쪽으로 오지는 않았소. 뿔뿔이 흩어져 우리 쪽으로 도망쳐 오던 졸개들은 모두 붙잡았소... 만.”
관군이 시선을 끄는 사이 뒤를 덮쳐 일망타진하기 위해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지함도 저의 무리 이끌고 나타났다가 무언가 변고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군수 그 작자가 혼자 나대다가 한종 그놈에게 붙잡혀 갔다 하오.”
듣는 귀 적을 때면 서슴없이 말 줄이며 호형호제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나름 격식 갖추는 이지함과 꺽정이었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그런 귀 – 예컨대 여전히 저에게 뭔가 벌이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 나장 장가 – 만 없었더라면 꺽정이는 걸쭉하니 욕설 여러 번 퍼붓고도 남았을 것이다.
“봉산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진작 추격을 했을 테고... 하면 서흥 쪽으로 간 모양이외다?”
“그렇소. 한가 놈이 딴에 머리를 좀 쓴 게지.”
수십 명 무리를 이끌고 서흥 경내로 들어가려면 마땅히 사유를 고해야 할 터인데, 곧이곧대로 봉산군수가 붙잡혀 서흥으로 끌려갔으니 되찾으러 간다 고한다면, 의민당 또한 곤란케 될 수밖에 없었다.
의민당이 일개 백성의 무리로서 과분한 포장까지 받은 까닭은 도적의 난동을 막고 일대의 평온함을 지킨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저들 군의 수령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면 제발로 저들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밝히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서흥부사 윤 아무개가 아무리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지만, 그만한 일이 벌어진다면 가만히 입 닫고 있지는 않을 터.
“놈들도 지쳤으니 멀리는 못 갈 것이고, 끽해야 운마산이나 자비령께 가서 적당히 숨은 뒤 다음 수를 쓰려 할 게요. 조용히 우리 쪽에 기별 넣어 무사히 보내달라 한다면 그만이겠지만, 애초에 군수를 붙잡아갈 만큼 정신 나간 놈들이라면 무슨 짓을 더 할지 모르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묻는 눈치에, 이지함이 몇 번 턱을 쓰다듬고서는 계책을 내었다.
“도적의 흉악함은 어찌할 수 없으니 당수께서 힘을 써주셔야 하겠지만, 적어도 서흥부사의 귀에 이 변고가 들어가 후환이 되는 일은 막을 수 있겠소이다.”
턱짓으로 앞서 붙잡힌 한종의 졸개 하나를 데려오고, 이어서 증인 삼기 위해 나장 장가 녀석도 다시 데려왔다.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알겠느냐?”
“으... 어...”
이지함이 나긋나긋하게 물었지만 여전히 혼이 나가 있던 도적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당수께서 조금 힘을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힉!”
“아니, 내가 무어 힘 쓸 것까지야 있겠소? 이놈 아니더라도 아직 머리통이 몸에 붙어 있는 놈이 족히 스물은 남아 있는데, 쓸모없는 놈 고쳐쓰려 하지 말고 그냥 버린 다음 멀쩡한 녀석으로 새로 데려오면 되지. 마침 저기 멧돼지가 파헤치고 간 구덩이도 하나 있군그래.”
“허억! 마, 말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말하겠습니다!”
꺽정이에게 이미 실컷 당했던 도적이었기에, 마치 옆집 마실 다녀온다는 것처럼 범상하게 사람 죽여 파묻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문이 다시 트였다.
의민당 소식을 곁다리로만 듣고서 참 장하다 여기고 있는 선비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큰 충격을 받겠지만, 그런 이는 반경 오십 리 내에 없었으므로 아무도 무어라 하지 못했다.
“자, 따라해라.
저는 한종의 무리에 속한 아무개입니다. 지난달 서흥에 있는 저희 소굴에 모여 모의하기를, 봉산군수를 납치하여 몸값을 받자 하였습니다.
하여 저희 무리 칠십 중 패를 나누어 개중 오십은 상차령에서 행패 부리며 의민당의 눈길을 끌고, 그사이 한종이 이끄는 스물이 서흥에 숨어 있다 봉산으로 치고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저, 저는 한종의 무리에 속한 박개(朴加伊)입니다... 지난달 장단 군장산에 있는 저희 소굴에 모여 모의하기를...”
“아니, 이놈아. 서흥이라 하였다. 마음대로 바꾸지 말고 그대로 말하거라.”
이지함이 훈장이 학동 타이르듯 말하니, 제발 저린 도적이 깜짝 놀라 급히 고쳐 말했다.
그렇게 몇 번 면박 받아가며 다 읊자, 이지함이 새삼스레 놀란 시늉을 했다.
“아니, 그 말이 정녕 참이렷다! 봉산에서 지척인 서흥부가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서흥 관아에도 한종과 한통속인 자가 없지 않을 터. 상례에 따르면 서흥 경내로 들어갈 때 미리 고하여야 하겠으나 일이 이리 되었으니 어쩔 수 없구나!”
그러고 나서는 다시 멀쩡한 말투로 돌아왔다.
“자, 이렇게 해서 서흥부 쪽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여기 나장 장가를 서흥부 관아에 급히 보내, 붙잡은 도적놈이 이렇게 자백하였으니 부득불 먼저 군사를 움직이게 되었노라 전하면 될 것입니다, 임 당수.”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나장이 경황없이 서흥 쪽으로 내려간 뒤, 이지함이 꺽정이를 잠깐 불러세웠다.
“걱정 마시오, 사형. 내 한종 놈 도륙내고 우리 군수 나리를 털끝 하나 안 건드리고서 무사히 데려오도록 하겠소.”
“내가 너를 하루이틀 보았느냐. 그렇게 할 수 있음은 꿈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허나...”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이지함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말을 이었다.
“이 다음이 걱정이다. 저 이원수라는 이가 이번 일로 망신을 당했으니, 네가 구해준다 한들 오히려 원한을 품고서 해코지를 할까 걱정이구나. 지금 세상이 억지 고변 하나로 족히 고을 하나를 쓸어 없앨 수 있을 만큼 흉흉한데, 심지어 이원수 저이는 권신 이기의 족질(族姪)이라 하니...”
“허튼짓 못하게 사람 붙여 감시하면 되지 않겠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군수인데, 어떻게 하루 열두 시진을 모두 감시하겠느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몰래 한양에 사람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닐 터.
이전 군수였던 곽 공은 그래도 자기 재주로 출사한 무부(武夫)인 데다가, 우리에게 도움은 많이 받았어도 딱히 원한 품을 일은 없었으니 이런 걱정이 없었다. 허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지 않으냐.”
그제야 이지함 걱정하는 바가 의외로 심각한 것임을 꺽정이도 새삼스레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가장 이득되는 길을 알고서 그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괜찮겠지만, 가끔은 그런 것을 다 때려치우고 오직 한 사람을 해치고자 작정하고서 달려드는 이들도 있기 마련.
지금 달려가 이원수를 구해준다 한들, 시일이 지나고 나면 의심과 원망이 차오르지 않을 리 없었다.
수령이 되어서 세운 공은 없고 도적에게 붙잡히기나 했다는, 그런 망신살 뻗칠 이야기가 퍼지면 기껏 나선 벼슬길이 아예 막혀버리리라 두려워하며, 먼저 꺽정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입막음하려들 지도 모르는 일.
이원수가 저의 이름 더럽힐 각오 하고서 고변을 하거나, 아니면 (역시 충분히 가능한 경우로) 저의 이름이 멀쩡히 남으리라 착각하고서 이실직고하거나 한다면 그때는 정말 곤란해질 터였다.
함께 머리 맞대고 얼마나 고민했을까. 꺽정이가 문득 물었다.
“사형, 군수의 임기가 얼마나 되오?”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여기 봉산군은 수령이 저의 일가를 데리고 올 수 있는 고을이니 국법에 따르면 총 일천팔백일이 정해진 임기다.”
“내가 이번 일을 기회 삼아, 이후의 수령은 몰라도 이번 군수만은 확실히 딴짓 못하게 만들어두겠소. 그리하면 그 기한 안에 우리가 나라를 족히 뒤엎을 만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겠소?”
충주에서 파옥할 때 꺽정이는 ‘대계(大計)’를 말했다. 말이 대계지, 따지고 보면 역모에 가까웠다.
청석골 산속에 앉아 도적질하는 궁리를 하면서도 이지함은 잊지 않았다. 꺽정이와 함께하기로 한 그날 밤 이후로, 어떻게든 꺽정이를 도와 이 나라에 저의 살다간 흔적을 남기고 갈 마음을 품었으므로.
나라가 그를 역적으로 만들었으니, 정말로 역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막상 이렇게 대놓고 물음이 들어오니, 이지함은 다시 한 번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천팔백일이라. 얼추 오 년이 되겠구나.”
이지함은 고개를 돌려, 멀리 서북쪽에 보이는 봉산군 읍내를 보았다. 금정산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여기서 읍내까지는 다른 산이 없고 야트막한 언덕 두엇뿐이라, 읍내 모습이 훤히 잘 보였다.
저기 장터에 오가는 허여멀건한 것이 모두 사람일 테다. 흉년을 이겨내고 겨우 고개를 드는 벼이삭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 어떤 식자가 저것이 도적들이 장악한 군의 정경이라 여길까.
도적들이 나라 뒤엎을 밑천 마련할 생각으로 봉산군 한 고을을 장악하였건만, 여느 수령보다도 수령칠사를 더 잘 돌보고 있지 않은가.
충주 논두렁에서, 두 사람으로 시작한 패거리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홍문연(鴻門宴, 홍문의 연회)부터 해하(垓下) 싸움까지도 다섯 해에 불과했지.”
저 한고조 유방이 항우 앞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이후 마침내 그 항우를 무너뜨리기까지는 고작 그만큼이 걸렸을 뿐이었다.
“사형은 말이 너무 거창하시오. 어디 이 조선 팔도를 대국 중원에 비기겠소?”
스승 서경덕이 해주던 옛이야기 중 유독 싸움 이야기와 나라 세우는 이야기만은 귀 쫑긋대며 듣던 꺽정이가 대꾸했다.
“그래, 해보자꾸나. 되는 데까지 달려보자꾸나. 가만 있는다 하여 벗겨질 대역죄인 누명도 아니지 않으냐.”
이지함은 두근대는 마음을 다스리며 결연히 말하고, 꺽정이는 아닌 척 심드렁한 시늉하며 받았다.
“지난번에는 충주 논두렁. 이번에는 봉산 옆 야산. 뭔가 거창한 다짐을 할 때마다 영 자리가 좋지 않은 듯하구려.”
“두목, 우리 이대로 괜찮겠습니까요?”
“이놈아, 눈 좀 붙이자.”
금정산에서 봉산군수 이원수를 사로잡은 한종은 곧장 북으로 삼십 리를 도망쳐, 눈에 보이는 첫 번째 절이었던 운마산 석문사(石門寺)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숨 돌리다 보니 벌써 해가 조금씩 퇴청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죽다 살아나기를 오늘 하루에만 몇 번 하였으므로, 시장기보다 먼저 노곤함이 찾아왔다.
“아니, 이렇게 지척에 있다가 꺽정이 그놈이 쫓아오면 어떻게 하시려고...”
관과 얽혀 좋을 것 없는 중들은, 난데없는 도적떼들 사이에 암만 보아도 포박된 것 같은 벼슬아치가 섞여 있는 것을 보자마자 절간 행랑에 꽁꽁 숨어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
허나 여기까지 오면서 민가도 적잖이 지나쳐 왔고, 또 절의 중들도 필시 몸 재빠른 사미나 불목하니 하나쯤은 몰래 내보내 변고를 알렸을 터이니, 졸개 녀석의 불안함도 나름의 근거는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한종이 노린 부분이었다.
“그놈이 쫓아오기 편하라고 여기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놈 뒷배인 봉산 고을 원을 이렇게 붙잡아놓고 있으니, 임꺽정 그놈이라 한들 별 수 있을까.”
일흔 명이 산채를 떠나 스물 되어 돌아간다면, 설령 한종 그의 일신이 멀쩡하다 한들 그 위세는 예전같기가 어려울 것이다. 허나 지금은 당장 구명하는 것이 급하였으므로, 장단 군장산 돌아간 이후의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은 한종이었다.
”어차피 이 일대가 모두 그놈 마당이나 다름없으니, 여기서 더 산을 타고 도망하려 한들 헛수고다. 차라리 이렇게 기다렸다가 그놈이 오면 담판 짓고서 멀쩡히 장단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저 군수 놈이 우리 구명줄이니 허튼수작 부리지 않게 잘 지켜보기나 하라고.
좌우지간 이 몸은 담력도 도로 채울 겸 눈을 붙일 테니 꺽정이 올 때까지 깨우지 말거라.”
그때 무슨 영험함이 있었는지, 한종이 그 말을 마치자마자 ‘임꺽정 그놈’ 목소리가 쩌렁쩌렁 문간 쪽에서 울려왔다.
“야, 한가 놈아! 네 여기 숨어 있는 것을 뻔히 안다. 얼른 그 면상을 꺼내오지 못할까!”
차라리 이렇게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여전히 꽁꽁 묶인 채 눈물 철철 흘리고 있는 이원수를 데리고 절간 종루 위로 올라갔다.
“오냐, 나오셨다. 네놈 고을 원님도 이리 잘 계시니 경거망동은 말거라.”
“오늘 아침만 해도 울고불고 도망하기 바빴던 녀석이 퍽 멀쩡해졌구나.”
그 눈빛과 마주하기만 해도 절로 주눅드는 것을 애써 감추며 허세를 부렸는데, 저쪽은 어째 봉산군수를 보고서도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그보다 나라의 관헌을 그렇게 막 대해도 되느냐? 내 군수 나리와 상의할 것이 있으니 저 재갈이나 풀어라.”
솔직히 울고불고하는 것이 거슬려서 입을 막아두었지, 지금껏 본 바로는 도적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어찌 살아서 감내하겠냐며 혀 깨물고 죽을 작자는 아니었다. 손해볼 것은 없는 듯해 곧장 입을 막고 있던 헝겊을 풀었다.
“이보게! 이보게, 임 처사! 나 좀 살려주게!”
“자, 들었느냐! 원님 말씀이 이러하니 따르지 않고 네가 배기겠느냐?”
그랬는데, 꺽정이 저놈이 도리어 콧방귀를 뀌었다.
“저기, 나리, 그런데 내가 왜 나리를 살려드려야 하오?”
이원수와 한종 모두 그 말에 얼어붙었다.
“그, 그야... 네놈이 그 의민당인가 뭔가 하는, 그, 관의 사람이니까 그런 것 아니냐?”
우물쭈물하는 이원수 대신 한종이 먼저 말했다. 그리고 곧 본전도 못 건지게 되었다.
“야, 한가 놈아. 말은 똑바로 해라. 내가 관을 부리는 것이지 관이 나를 부리는 게 아니다.
그냥 여기서 저놈 죽여라. 어차피 요새 흉년에 돌림병 돌아서 양반들도 하룻밤사이 죽어 나자빠지곤 하는데, 수령이라고 급살 당하지 말라는 법 있더냐. 봉산 고을 아전들 입막음이야 일도 아니고, 시체야 뭐, 조금만 멀리 나가도 굴러다니는 게 시체니까.
아니면 여기서 하나 만들어도 되겠지. 이제 보니 네놈도 체구가 우리 나리와 비슷하니, 날붙이만 안 대고 죽이면 시체로 꾸밀 법도 하겠구나.”
“이... 이! 아무리 그래도 네놈들이 알량한 공 세웠다고 조정에까지 이름이 들어갔다는데, 고을 수령 하나 못 지켰다 하면 벌을 받지 않겠느냐!”
“뭐, 틀린 얘기는 아닌데, 그것도 내가 수령을 못 지켰다는 말이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을 때나 가한 일이지. 그렇지 않으냐? 봉산 고을 안에서야 보는 눈이 많으니 그렇다 쳐도, 네가 애써서 우리 나리를 여기 서흥 산속까지 데려와 주지 않았더냐?
간악한 도적 한종이 절간 하나 못 태워먹을까.”
꺽정이가 그러면서 횃불 하나를 들어보이니, 이원수는 오금이 저리다 못해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임 처사! 그러지 말고! 나 좀!”
그제야 자신이 저 꺽정이를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우친 한종이,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고민하던 끝에 바짝 엎드렸다.
종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엎드리게 되었으니 모양새가 퍽 이상하였으나, 그런 것을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어르신! 제가 어르신을 잘못 알아뵙고 얄팍한 수를 썼습니다! 명하시는 대로 모두 따를 테니 목숨만은 붙여주십쇼! 여기 이자도 바로 풀어드리겠습니다!”
“딴에 무리 하나 이룬 도적 두목이랍시고 머리깨나 굴리는구나. 좋다! 일단 우리 나리를 풀어주거라. 그러면 네놈들 구명할 길을 뚫어주마.”
곧장 문이 빼꼼 열리고, 사시나무 떨듯 하는 이원수가 밖으로 던져지다시피 빠져나왔다.
애초에 이렇게 위압할 심산으로 찾아온 꺽정이었기에 일부러 의민당 중에서도 본디 도적이었던 자들만 데리고 왔다. 그러므로 이원수를 딴에 원님이라고 떠받드는 이도 없어, 맥 풀린 다리로 돌계단 홀로 내려오다가 굴러떨어질 뻔하기까지 하는 동안 아무도 도우려 나서지 않았다.
“어르신! 하명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이제 부디...”
“오냐. 살려달라니 살려주마. 허나 맨입으로는 안 된다. 오늘 밤, 서흥부 동헌에 쳐들어가 부사 윤가 놈을 붙잡아와라.”
“예?”
“어쨌든 네놈들 때문에 우리 군수께서 봉변을 당하셨으니 우리 의민당 이름도 더럽혀진 셈이다. 그러니 네놈들이 그만큼 악적(惡賊, 흉악한 도적)이어서 어쩔 수 없었노라 핑계 댈 구석을 만들어야 하겠지.
잘 들어라. 내일 동틀 때까지 부사를 데리고 웃수렛재(상차령)으로 오면, 우리 당원들이 쓰는 ‘의’자 완장을 나누어주마. 평산부사는 아직 우리 당이 네놈들 패거리 잡으러 평산 지경을 돌아다니는 줄 알 테니 아무도 붙잡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 하지만... 그래도 관아를 어떻게 저희 스물이서...”
“장사 하나가 마음만 먹으면 감영도 털 수 있다. 서흥이 말이 도호부지 실제로는 군 하나에 불과하지 않으냐?
뭐, 정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이 자리에서 네놈들을 모두 도륙을 내고, 저기 장단 군장산에 있다는 네놈들 산채까지 밀고 들어가 일가붙이 하나까지 모조리 붙잡아 노비로 박을 것이다.”
그 소리에 한종뿐 아니라 벽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귀 쫑긋 세우고 있던 나머지 도적들도 얼어붙었다.
“기억해라. 내일 동틀 때까지다. 해 뜬 다음까지 소식 없으면 이 일은 없던 것으로 칠 테니 그리 알아라.”
그렇게 마지막으로 딱 잘라 말하면서 꺽정이는 등을 돌렸다.
나머지 의민당 무리도 따라 움직이고, 그제야 다리에 힘 돌아온 이원수도 연신 두리번거리다 역시 발을 옮겼다.
그렇게 일주문 지나 얼마나 내려왔을까.
“그, 임 처사. 고맙소. 내 임 처사가 도적들 속이고자 그렇게 사납게 말한 것은 원한으로 삼지 않으리다.”
마침내 조금은 진정이 된 이원수가 말을 걸었다.
“헌데, 그... 서흥 관아 얘기는 참말이었소?”
“그럴 리가 있겠소? 음, 이쯤이면 되겠군.”
이원수 쪽을 보지도 않고 대꾸하는 꺽정이었다.
“무엇이 말이오?”
“놈들이 어떤 길을 정해 산을 내려오든, 급히 서흥 읍내로 가야 할 테니 반드시 이 길목을 지날 테요. 아마 해 떨어지면 바로 움직이겠지.
한 번 더 놈들에게 붙들리면 진짜로 안 구해줄 생각이니, 얼른 저기 옆 바위에 가서 숨어 계시오. 벌써 해질녘이니 놈들이 곧 올 것이오.”
“그 말은...”
“거 사람 답답하긴. 내가 설마 저 한종 놈을 살려주리라 생각하셨소? 오히려 순순히 살려보내주마 했더라면 더 의심했을 거요. 어려운 조건을 달았으니 놈들도 비로소 내가 진심인가보다 여겼겠지.
물론 그와는 별개로 나중에 서흥부사께 이 값은 톡톡히 받을 생각이오. 그때 되면 나리께서도 증언 한 마디 보태주시오. 저놈들이 서흥 관아를 칠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여기저기 의민당 패거리를 한 사람씩 꼬집어 여기 숨어라 저기서 기다려라 지시하는 꺽정이었다.
다음날 동틀 무렵에야 서흥부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단에서 흘러들어온 흉악한 도적들이 봉산 고을의 원을 해치려 모의하였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서흥 관아를 도모하려 했다는 소식에 서흥부사는 깜짝 놀랐고, 스스로 오기에는 두려웠던 고로 이렇게 군사들만 보낸 것이었다.
그들에게 한종과 그 일당, 그리고 그들 몸에서 나온 자잘한 잡동사니들을 모두 넘겨주면서, 봉산군수 이원수의 기지로 도적을 모조리 토멸하였음을 전해주었다.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챌 자도, 굳이 캐물어 진상을 밝히려는 자도 없었다.
서흥부사조차도 그저 저의 경내에 그렇게 도적이 버젓이 들어와 횡행했다는 데 놀라 어찌하면 허물을 피하고 공으로 둔갑시킬까 고민하는 판국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게 일 마치고 봉산으로 돌아가는 길. 애초에 운마산 석문사가 서흥에서 봉산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서흥과 봉산을 가르는 언덕배기에 오르니, 너댓리 떨어져 있는 검수역(劒水驛)이 보였다.
여전히 낯빛이 다 돌아오지 않은 이원수가 물었다.
“어째 인마가 번다해 보이는구려.”
“아마 나리 돌아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무리 아니겠소?”
이지함이 당원들 데리고 나온 것이라고만 보기에는 조금 머릿수가 많아 보였고, 어째 짐말이나 나귀 따위도 종종 있는 듯했다. 허나 수령의 고초 소식을 들은 관의 나졸들과 아전들이 모조리 나와서 기다린다 하면 말은 될 터였다.
이원수가 그래도 나름 인망은 있었던가, 의아하게 여기던 차. 지금이 슬슬 얘기 꺼낼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수역 향해 발걸음 계속 옮기면서, 별 얘기 아닌 것처럼 범상하게 말을 꺼냈다.
“이제 이렇게 읍내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할 얘기가 아주 많을 것이오.”
“그... 할 얘기라 하면...?”
“우리 의민당은 도적 때려잡으려 시작한 당이오. 봉산과 재령, 평산, 그리고 곧 서흥까지 발을 뻗치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황해도 일원에 우리 당세(黨勢)가 미치는 것도 그리 먼 일은 아니지. 수령 그대가 그 일을 좀 도와주셔야겠소.”
“물론이지. 암. 물론 도와드리고 말고.”
아직 어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원수였으니, 지금은 꺽정이가 하다못해 그 딸을 제게 달라 청한들 받아들이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었다. 어느새 억지로 붙이던 ‘나리’도 떼고 ‘그대’라 부르고 있건만, 이원수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저 한종의 무리가 다른 곳도 아니고 장단에서 왔으니, 경기도에도 참 도적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소. 그러니 경기도의 도적을 일소하지 않고서 어찌 황해도가 평안할 수 있겠소?”
“그... 그것도 일리가 있구려.”
“그러나 도적은 그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어디선가 계속 나타나기 마련이오. 도적의 뿌리라 하면 결국 황해도도, 경기도도 아니요, 조선 팔도에 오직 한 곳뿐 아니겠소.”
“한 곳이라. 그러면 거기가 어디... 아니, 잠깐, 잠깐만, 임 처사. 지금 대체 무슨 말을...”
“검수역이 벌써 코앞이오. 듣는 귀 많으니 내 지금은 말을 아끼겠소. 허나 조만간 다시 찾아뵙게 될 것이오. 그때 답을 받겠소.”
벌벌 떨던 이원수가 고개를 떨구며 대꾸했다.
“아... 안사람이 곧 올 것이오. 내 안사람과 논의하고서 알려줄 테니 그때 물으러 오시오.”
“안사람이라?”
짚신도 짝이 있다 했으니, 반대로 생각하면 짚신의 짝은 짚신이요 나막신 짝은 나막신 아니겠는가. 이원수 배필이 누구든, 홀로 고민하나 둘이 머리 맞대나 별 차이가 있을 듯하지는 않았다.
“그렇소. 내 안사람은 사람됨이 총명하니... 엇, 어? 아아...”
그때 갑자기 이원수가 얼어붙었다.
“아니, 이보시오. 다 왔는데 왜 이제 와서 말썽이오?”
미동도 아니하는 이원수의 눈동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대로 한복판을 막고 있는 쌍가마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검수역을 붐비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지함과 의민당 패거리도, 저들 원님 맞이하러 모여든 나졸들도 아니요, 사람 하나의 행차였다.
그 행차 가운데 있는 가마의 옆이 열리고, 급히 달려온 몸종 여럿의 부축 받으며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내렸다.
아침 햇살이 너울을 뚫고 들어가, 중년 여인의 단정하지만 굳은 이목구비를 드러냈다.
“부군께서 이리 황망한 일을 당하셨으니 어찌 아녀자로서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신체에 상하신 곳은 없으신지요.”
정말로 안부를 묻는다기보다는, ‘이미 네놈이 한 일을 모두 알고 있으니 이실직고하지 않는다면 몸에 상한 곳을 만들어주겠다’ 하는 뜻으로 들렸다.
꺽정이가 옆을 흘깃 보니 이원수에게도 그렇게 들렸는지, 앞서 도적들에게 붙들렸을 때보다도 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따가운 것이 느껴져 다시 앞을 보았는데, 너울을 뚫고 비추는 날카로운 눈매와 정면으로 마주하고야 말았다.
“임 처사 되시는지요. 부군을 도와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비록 이 사람이 내아(內衙)에 머문다 하나 어찌 마주할 일이 한 번은 없겠습니까?”
‘남편 다음은 네놈이니, 어디 가지 말고 동헌에 가만히 있으라’ 하는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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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통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디까지나 특수한 사회경제적 요인 여럿이 작용하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직 고려~조선 초의 젠더 관념이 유지되는 가운데, 사림의 관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이 동시에 관직에 나감으로써 간접적으로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 여성이 나타났고, 또한 지방 사족들의 성리학 수용이 이루어지면서 여성 스스로 높은 교육 수준을 지니게 된 것이지요.
일례로 조선 중기 사대부 이문건(李文楗)의 아내 김돈이(金墩伊)는 이조참판 김언묵의 딸로 많은 토지와 노비를 상속받았고, 그 조카 다섯은 대부분 과거에 합격하여 김돈이에게 많은 경제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문건이 을사사화로 인해 성주로 유배되었을 때, 괴산의 집에 머물던 김돈이가 이문건을 찾아오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김돈이의 행차는 타고 온 말이 12필, 수행하는 노비는 22인에 달했고, 김돈이 본인은 말 두 마리가 짊어지는 쌍가마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행이 상주에 들렸을 때는, 상주목사가 김돈이 일행에게 떡, 술, 쌀 등을 보내고 묵을 곳을 마련해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조은숙, 2021. “조선중기 사대부 일기 속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 고찰: 김돈이의 삶을 중심으로”. <고전문학과 교육> 46).
죄인의 아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러한 위세는, 신분과 재산만 받쳐주었다면 조선 중기 여성들이 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모계를 통해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부친을 통해 위신을 물려받은 신사임당은 김돈이보다도 더 큰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담으로 이는 조선 후기 노론이 신사임당을 ‘성모(聖母)’로 포장하는 데 예상치 못한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인의 거두 이이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신사임당 역시 성현의 어머니로서 추앙받게 되었는데, 정말로 신사임당이 유교적 현모양처였다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서화를 남길 수 있었으며, 또 그런 서화가 어떻게 집 밖에 나와 소장가들의 손을 거치게 되었느냐는 반론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흔히 조선시대 여성의 외출복 옷차림으로 장옷을 떠올리곤 하는데, 양반층과 서민층을 막론하고 장옷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었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상류층 여성들은 장옷이나 쓰개치마 대신, 흔히 오늘날 사극에는 기생들이 외출할 때 쓰고 다니는 것으로 등장하는 너울을 많이 쓰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검약을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가 확산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가 흔히 아는, 장옷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반면 화려하고 관리가 어려운 사치품이었던 너울은 조선 후기에는 고급 기생들만 착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