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4화 (24/259)

9.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1)

기유년(1549) 새해가 밝아 꼬맹이 이이는 동헌에 부모님 뵈러 가고, 스승인 이지함도 못된 감기가 걸린 장인어른 병구완을 위해 청석골 산채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의민당 우두머리 꺽정이는 그런 이지함을 만나고자 산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하도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다 보니, 길 위에 눈은 고사하고 풀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만하면 전생의 청석골 한창때에 버금간다 해야 할 테다. 물론 오가는 이 태반은 저기 아랫말에서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겠지만.

기와장이가 아랫말에 들어오고, 황주의 모 도편수 아래에서 재주 몇 년 배우다 뛰쳐나온 대목장도 하나 흘러들어온 이래 청석골 산채도 꽤 그럴듯하게 바뀌었다. 가장 안쪽에는 여전히 대역죄인인 모산수 이정랑과 그 일가가 기거하는 집이 있고, 그 앞에는 저와 이지함이 가끔 은밀한 이야기하는 큼직한 사랑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곳 산채에 머무는 당원들 기거할 행랑과 창고 등등이 죽 있으니, 산속에 관아 하나 옮겨둔 것과 같았다. 기세로 따지면 병영(兵營)에 가까울 테지만.

“당수님 오셨습니까!”

“당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목책 앞에서 번 서던 졸개 두엇이 멀리서 알아보고 목청껏 인사를 올렸다.

“오냐, 고생들 많다.”

꺽정이는 예사롭게 인사 받아주며 산채 안으로 들었다. 처음 칠장사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다 자라지 않았던 수염이 이제는 다 자라 텁수룩했다. 본디 털이 많이 나는 체질인 덕이었지만, 모르는 이가 보면 족히 서른은 넘겼다고 착각하리라.

안쪽으로 발걸음 옮길 때마다 알아보고서 인사 올리는 졸개들 한둘씩 있어, 꺽정이 발걸음도 조금은 늦춰졌다.

“헤헤, 두령, 올 겨울에는 어디 벌이하러 나갈 일 있겠습니까요?”

그러던 중, 장단에 있던 한종의 산채 털어오면서 거기 남아 있던 도적 일가의 여식과 눈이 맞은 전직 도적 겸 노총각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이놈아, 너는 네 각시나 잘 모셔라.”

“옛말에도 가하만사숭인가? 그런 말 있다지 않습니까. 다 제 안사람 잘 모시려고 하는 얘기입죠.”

“가하만사숭이 아니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그런데 네 주제에 어쩌다 문자를 다 쓰느냐?”

까막눈이가 문자 쓰는 시늉을 하는 게 신기하여 꺽정이가 물었다.

“다 우리 모주님 덕분 아니겠습니까요, 헤헤. 좌우지간 벌이할 일 있으면 이 박만복이도 꼭 데려가 주십쇼.”

“시커먼 도적놈이 그렇게 웃으며 수작 거니 정초부터 복 싹 달아나게 생겼다. 알았으니 얼른 꺼져라.”

어느 쪽이 더 시커먼 도적놈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저 ‘모주님 덕분’ 소리는 머릿속에 남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이지함 기거하는 사랑채 앞까지 왔다.

“사형, 나 왔소!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널찍한 앞마당을 지나기도 전에 인기척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 고로, 걸어들어가며 우렁차게 외쳤다. 과연 방문이 확 열리며 이지함이 말했다.

“그래, 네 녀석에게 멀쩡하게 세배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작년처럼 사랑채 대들보감 주워왔다며 통나무 하나 짊어지고 왔을 때보다는 낫구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거라.”

꺽정이는 얼른 들어와 앉았다. 화롯불이 꽤 따스했다.

“졸개들 가르치는 일에 벌써 손 대신 모양이오? 벌써 어설프게 문자 쓰는 놈도 있던데.”

“아직은 그저 감을 잡기 위해 몇 명 데려다 이것저것 가르쳐보는 정도다.”

사임당 신씨가 얼떨결에 의민당 사람이 된 이후로, 꺽정이는 그간 주먹구구로 분배해왔던 당 안의 일을 제대로 나누었다.

이전에는 도적 때려잡는 일과 패거리 모으는 일을 꺽정이가 맡고, 당의 운영에 필요한 재물 관리 및 군정(郡政)을 빙자한 떼어먹기는 서림이가 도맡고, 모주인 이지함은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당의 규모가 커진 지금은 한 번쯤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여, 꺽정이는 그대로 칼질을 맡고, 서림이는 그대로 온갖 장사와 각종 비리 저리르는 일을 총괄하고, 동헌에 앉은 사임당은 봉산 터전에 무슨 일은 아니 생기는지 – 그리고 서림이가 지나치게 떼어먹거나 딴살림을 차리지는 않는지 –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되니 이지함이 홀로 남게 되었는데, 물론 이이와 함께 나라의 제도를 궁구하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 하기에는 여러모로 아까웠다. 그때 꺽정이가 제안하기를, 당원들을 유사시 병정 노릇할 수 있게 조련하는 일을 맡아달라 하였던 것이다.

“여기 모아둔 놈들은 그래도 힘 좀 쓴다는 놈들이니, 간단한 것 몇 가지만 가르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오. 다만 몇 명이라도 무리 거느려본 적 있는 놈들은 따로 골라내어 조금 더 가르쳐야겠지.”

“그런데 정말 그 정도로 족하겠느냐? 내가 군략에 밝지는 않지만...”

“어차피 우리는 머릿수를 암만 채워도 몇백이 최대 아니겠소? 그러면 정면으로 부딪힐 때 하나로 뭉쳐서 한 번에 거세게 때리는 것, 그리고 여차하면 흩어져서 여기저기서 괴롭히는 것. 이 두 가지만 배우면 되오. 진법이니 무어니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소.

그러니 언문에 간단한 진서 몇 글자는 읽을 수 있게 하고, 동서남북 방위 구분이나 조선국 지리 가르치고, 그리고 싸움박질할 때 이런저런 상황에서 적당하게 임기응변할 만큼의 재치만 터득하게 하면 될 게요.”

꺽정이 전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다. 지금 의민당 당적(黨籍)에 올라 있는 봉산·재령·평산·서흥 등지 장정의 수는 팔백을 넘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고갯길 지키며 혹 (저들 외에 다른) 도적들이 나오는가 감시하고, 혹여 일거리 생기면 와서 거드는 정도였다.

평시의 사업에는 쓸모가 매우 많았지만, 싸움 벌어지면 관군에 대항하긴 어려울 테다. 끽해야 어디 산성 들어가서 농성하는 정도가 최선일 터.

그러나 반대로, 이 산채에 모아둔 사십여 명, 아랫말에 머무는 오십여 명, 도합 백 명 정도는 지난날 산 타고 사냥할 때나 조금 무리 이룬 도적들 때려잡을 때 – 예컨대 얼마 전 서흥에서 한종을 족칠 때 – 꺽정이와 이지함이 직접 이끌고 다니는 나름의 정예였다.

무엇보다 사람을 해칠 각오를 하고 도적질에 나섰던 자들인 만큼, 칼 들고 달려들면 죄다 나 살려라 하면서 내빼는 대부분의 관군 군졸들보다 싸움의 소질이 있다 할 만했다.

한창때 꺽정이가 일곱 명을 데리고 관군 오백을 격파했던 것이나, 다 흩어지고 남은 잔당 수십만 데리고 구월산에서 웅거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백 명만 해도 나름 큰 전력이라 할 만했다.

“허나 그것만 해도 꽤 어려울 테요, 사형. 특히 마지막, 그러니까 언제 정해진 명령에 따르고 언제 제 생각대로 움직일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깨우치기 어렵기 마련이오. 우리 꼬마 도령 가르치는 것처럼 거기서는 사형께서 조금 비상한 계책을 마련하셔야겠소.”

“그래, 알겠다. 우리 스승님께서는 너 같은 놈도 거두어 가르치셨는데, 제자인 내가 암만 불초하다 한들 저들을 못 가르칠까.”

“새해 덕담 퍽 고맙소.”

숨 내쉴 때마다 자연스레 나오는 꺽정이 놀리는 말에 코웃음으로 받았는데, 이어지는 말이 뜻밖이었다.

“허나 그 일은 회재(晦齋) 선생 뵙고 온 뒤로 미뤄야 할 듯하다.”

“회재 선생? 그 이언적 대감 말씀이시오?”

“그래, 맞다. 너만 괜찮다면, 이번에 충청도, 아니, 이젠 청홍도인가. 어쨌든 남쪽 다녀오는 길에 함께 가기를 원한다.”

“아니, 엄연히 역적 죄인이신 분께서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셔도 되오?”

“암만 생각해도 그런 위태로움을 마땅히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석연찮은 점이 하나도 아니요 둘이나 있어서, 아무래도 너 홀로 가면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을 듯하더라.”

새해 덕담 주고받는 것은 어느새 잊은 꺽정이는 이지함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첫째는, 다른 곳도 아니고 영월에 부처(付處)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회재 대감께서 결코 우리 뜻을 온전히 듣지 않으시리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얘기를 모두 들은 뒤, 꺽정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것 참, 정초부터 무거운 얘기만 하게 되었구려. 아무래도 이번에는 무리를 좀 신경 써서 데려가야 할 모양이외다.”

꺽정이는 곧장 나가서는, 즉석에서 졸개들을 모아 무예 취재(取才)를 보겠노라 공언하였다.

정말로 실력 있는 자만 데려가겠다며 몸뚱이의 완력부터 병장기 다루는 술수, 잽싸고 조용히 몸 놀리는 재주 등을 고루 보았으므로, 산채에 있던 의민당 졸개들 모두 졸지에 정초 액땜을 거하게 하게 되었다.

이언적을 어디 함경도 외방(外方)이 아니라 영월에 부처한 것은 필히 윤원형의 농간이리라는 이지함의 지적은 옳았다.

윤원형이 저의 한양 집 중 가장 으슥한 곳을 골라 사람 여럿을 부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음침하고 음험한 기색이 때로는 마음에 든다 하여 난정이와 함께 여기서 노닐기도 하지만, 엄연히 이 집의 주된 목적은 이렇게 은밀한 일로 사람이나 재물을 움직여야 할 때 쓰는 데 있었다.

“왔느냐.”

“예, 대감.”

피로 따지면 절반은 윤원형과 이어졌지만, 어미가 비천한 계집종이기에 호부(呼父)는 언감생심인 두리손(豆里孫)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어찌하여 네가 오늘 여기 불려왔는가, 궁금하지 않으냐?”

“소인이 어찌 함부로 말씀 올려 대감의 귀를 어지럽게 하겠습니까.”

“이미 너로 인하여 내 귀가 어지럽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아니 드는 모양이로구나.”

두리손은 미동도 없이 여전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무거운 정적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두리손이 입을 열었다.

“... 소인이 그릇된 마음을 품고 함부로 무예를 닦으려 했습니다.”

“그렇다. 네 딴에 몰래 배운다 하였겠지만, 대들보에는 귀가 달리고 기둥에는 눈이 달렸으니 숨기면 얼마나 숨길 수 있었겠느냐.

듣기로는 네가 꽤 무재가 있어, 족히 병장을 다룬다고 할 만큼 능숙하다 하였다. 허나 이름마저 천한 것이 무예를 닦아 무엇하겠느냐?”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리손의 몸이, 분기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애써 참는 그 모양이 퍽 우스워 윤원형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네게는 천운이 따르는구나. 본디 계속 지켜보다가 정도를 넘으면 마땅한 조처를 하려 하였으나, 너를 쓸 곳이 기어이 생기고야 말았느니.”

이쯤에서는 한 번쯤 미끼를 던짐이 마땅하리라.

“적당한 때를 보아, 내 집안의 적서(嫡庶)를 바꿀 것이다.”

과연 그 말을 듣자 숙였던 고개가 절로 들리고, 그 틈으로 한껏 커진 눈이 들어온다. 기분 나쁘게도 윤원형 저를 닮은 눈이다.

적서를 바꾼다 함은, 곧 윤원형과 정난정 두 사람의 숙원. 이름뿐인 정실 김씨를 쳐내고 그 자리에 정난정이 올라서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자녀들 역시 적실 소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볼멘소리 할 친정은 이미 김안로가 몰락할 때 덩달아 무너졌으므로 이미 먼지와 같고, 윤원형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바로 지존의 권병(權柄)이다. 그러므로 그가 바꾸겠노라 말을 꺼낸다면 곧 뒤바뀔 것이다.

“그리하면 양천(良賤)인들 어찌 바꾸지 못할까? 공은 세울 수 있는 것이요, 이름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명인들 소인이 따르지 아니하오리까.”

“그래. 그 마음가짐이다.”

윤원형이 고갯짓을 하니, 그림자 속에서 기다리던 나머지 일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두리손 네가 이끌고 갈 이들이다.”

그리고 두리손을 지켜보고, 평가하며, 여차하면 그 목숨을 거둘 이들이기도 했다.

“조만간 죄를 받은 회재 대감이 영월로 내려갈 것이다. 가는 길에 반역향 유신현(충주)과 단양을 경유하게 될 것인데, 이때 반드시 그를 몰래 만나려는 자가 있을 것이다.”

아직 대역죄인 이지함은 붙잡히지 않아, 윤원형 그의 속을 조금씩 긁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선원록(璿源錄, 종친의 족보)에서 모산수 이정랑의 이름을 지우는 것 같은 소소한 화풀이가 전부였다.

허나 그가 속리산에 숨어 있든, 그 형 지번의 도움을 받아 보령 어딘가에 있든, 이언적과 같이 사림 사이에서 명망 있는 이가 내려간다면 가운데서 만나려 할 것이다.

“특히 영월로 들기 전 거치는 단양 고을은 회재 문하에 있던 이황(李滉)이 수령으로 있으니, 사사로운 인연에 눈이 멀어 국법을 업신여기고 나라의 위엄을 어지럽히는 폐단이 생기기 쉽다. 마땅히 사람을 더 붙여 경계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지함보다 더 큰 병폐는, 지난 옥사 이후 그 불온함을 감추지 않고 있는 초야의 더벅머리 선비들이었다. 대역죄인이 도망하여 몇 년이나 국법을 피하고 있건만, 저들 사림의 눈총 때문에 뻔히 보령에서 유유자적하는 이지함의 형 이지번이나 그의 조카를 거두어 가르친다는 조식 등,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때마침 이언적이 늙고 의심 많은 이기를 탄핵하였으므로, 이기를 부추겨 이 기회에 소위 사림의 남은 ‘의기’를 꺾어버리자 모의하였다. 본디 강계(江界)나 갑산(甲山) 정도로 외방부처(外方付處)를 시키려던 것을 영월로 바꾼 것은 그 때문이었다.

꼭 이황이나 이지함이 아니더라도, 나라의 권력에 욕심 많은 누군가는 이언적을 만나고자 할 것이다. 이만큼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눈앞에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짐승이라면 고기를 먹을 자격도 없는 법.

“예, 대감. 이르신 바를 마음에 깊이 담아 반드시 그르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다음에는 반드시 너와 더불어 이야기할 바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에 만날 일이 아예 없으리라는 것은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이지함이 말한 두 번째 문제는, 설령 윤원형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계략을 뚫고 무사히 이언적에게 닿는다 하더라도, 이언적이 의민당의 속뜻을 두고 딴지를 걸 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이지함 본인의 표현은 훨씬 고상했는데, 결국 꺽정이 생각하기에는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의민당이 그간 봉산 고을을 넘어 여기저기 손을 뻗치면서, 그 이름도 꺽정이 패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조정에서 꽤 거론되고 있었다.

의민당의 ‘임거정’이 조정으로부터 조그마한 포장이나마 받았다는 사실은, 곧 그들이 벌이는 일이 윤원형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다는 뜻이니, 뒤집어 말하면 이언적 같은 이들 눈에는 의민당이 결코 곱게 보일 리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꺽정이 생각에는, 어차피 그들 사림은 앞날이 암울하고, 조정에서 힘싸움 벌이기에는 이미 승패 갈린지가 오래였으므로,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요 그저 윤원형이에게 반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손을 잡아야 할 듯했다.

“... 그러니 우선은 만나뵙고서 고민해야 하지 않겠소?”

흥의역(興義驛) 당도하여 금교찰방이 마련해준 조그만 방에 몸을 풀썩 누이면서 꺽정이가 말했다. 방에 들자마자 따라온 패거리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혹 듣는 귀 없나 확인하였으므로 마음껏 얘기 나눌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회재 그분이나 그 교우하는 다른 대신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생각으로 가는 것이지, 뭐 그 문하에 들거나 할 심산은 아니지 않소? 우리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다 하면 그 자리에서 거짓말로 둘러대면 그만이지.

내 생각에는, 윤원형이가 무어라 떠들든 우리 당은 그치와 척을 진지 오래다. 우리네 손 잡으면 적어도 손해는 아니 본다. 그렇게 일러두기만 해도 남는 장사가 될 게요. 우리 말고 지금 조선 팔도에 의지할 만한 곳이 얼마나 있겠소?

우리야 여차하면 팔도 도적들에, 장사치에, 떠돌이 중이니 도사니 하는 놈들에, 죄다 끌어갈 수 있겠지만, 저들 사림은 뭐, 끽해야 다 같은 책상물림 선비들인데, 세월아 네월아 하며 좋은 세상 열리기 기다리는 것 외에 저들끼리 할 수 있는게 있나.”

말 늘어놓다가 앞에 이지함 있음을 깨달은 꺽정이가 급히 헛기침하며 말을 고쳤다.

“물론 그런 초야의 선비들 중에는 우리 사형처럼 훌륭한 분도 있겠지만, 태반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이오.”

“그래,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다른 오해 빚는 일을 피하고 그렇게 되게끔 만들고자 내가 이리 따라온 것 아니더냐.”

“반드시 그리 될 것이오. 당초 계획대로 충주든 청풍이든 단양이든 적당한 곳에서 길 막고 기다리다가 일행이 나타나면,

‘회재 선생과 잠시 정담 나누고자 하니 주변을 물려달라’

하면서 따라온 군관 등등을 잘 타이르고, 그렇게 반나절쯤 있다가 그대로 넘겨준 다음,

‘이 일 알려지면 피차 곤란하니 모쪼록 함구하라’

당부해두면 되지 않겠소?”

꺽정이가 저의 목소리 바꾸어가며 계획을 늘어놓으니, 계속 심각하던 이지함 표정에도 잠시 미소가 깃들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주먹으로만 타이르는 게 아니지 않소? 다 대비를 해두었으니 사형도 너무 걱정은 마시오.”

이곳 흥의역에서 환복하여 상행 나서는 장돌뱅이 차림새를 갖춘 뒤 남쪽으로 마저 남은 길을 가는 것이 일행의 계획이었다.

다만 이지함은 어차피 그렇게 변장해본들 어색할 테니, 그냥 조금 해진 도포만 입고서, 호구가 어려워 먼 친척에게 도움이나 청해볼 심산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시골 선비 시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꺽정이 역시 예의 그 처사 차림은 하되 부르는 호칭은 개성 임 선달로 하기로 하였다.

그 외 나머지는 정말로 상인 행색을 하기로 했는데, 그 봇짐 역시 충실하게 – 그 아래 들어있는 각종 병장기를 숨기기 위함이기도 했다 – 갖추어 군관들에게 인정(뇌물)으로 뿌릴 비단과 오승포 등도 들어 있었으니, 꺽정이가 말하는 ‘대비’란 이것이었다.

그때, 바깥에 인기척이 있었다.

“흠흠, 임 선다님, 모두 환복을 하였습니다요.”

나머지 패거리들이 그새 옷을 갈아입고, 점검을 받고자 모여 있었다.

“뭐, 벌써 이렇게들 부지런하게 움직였느냐? 미리 길 알아보러 간 오막손이가 오늘 안에 제대로 올지도 모르는 판에.”

“그...”

차마 떠나기 전 꺽정이의 ‘취재’를 혹독하게 당했기 때문에 지레 겁먹어 재깍재깍 움직였다고 밝히지는 못하는 도적들이었다.

“뭐, 이미 다 차려입었으니 물릴 수야 없겠지. 누가 고갯길에서 장사치 여럿 털어먹어본 놈들 아니랄까봐 다들 그럭저럭 잘 변장했군그래.”

“헤헤...”

“그런데 밤이 너는 왜 그 모양이냐.”

패거리 중 유일하게 도적 출신이 아닌 밤이만 튀었다. 패랭이에 적당히 해진 옷까지, 딱 보아도 이제 막 길밥 먹기 시작한 초짜 장돌뱅이였는데, 딱 하나 거슬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전히 어깨에 턱하니 드러낸 ‘의’ 자 완장이었다.

“그... 금교도(金郊道) 오가는 우리 당원이 또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당원은 개뿔. 선다님, 이놈 이거 맹랑한 놈입니다. 신씨 마님께서 그려주신 완장이라고 좋아서 맨날 하고 다니는 거에요.”

“맞습니다. 잘 때도 차고 잔다 합디다.”

혹시나 불똥 튈까, 같은 당원에 대한 의리도 없이 곧장 밤이에게 비난 아닌 비난 퍼붓는 패거리들이었다.

그간 ‘의’자 완장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義’자 그리고서 그 주위에 원을 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감히 봉산 일대에서 의민당 사칭할 만큼 간이 부은 자들은 없었기에 (가끔 있기도 했는데 곧장 저승으로 호적을 옮기곤 했다) 다들 알아서 만들기만 할 뿐 그 외 정해진 모양새는 없었다.

그러나 까막눈 백성들이 모양만 그럴듯하게 따라서 그리는 경우가 많았던지라, 사임당 신씨의 심미안에는 거슬리다 못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의(義)자가 둘로 쪼개져 양아(羊我)가 되기도 하고, 아래쪽을 그대로 흘려 고(羔)자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하여 종종 얼굴 보이는 몇 명한테는 손수 그려준 완장을 주기도 했는데, 그것이 졸개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자랑거리였다.

“시끄럽다, 이놈들아. 밤이 너도 얼른 떼어서 다른 이들처럼 봇짐 밑바닥에 숨기든가 해라. 하여간 눈치가 없어요...”

꺽정이가 무어라 말을 더 하려던 차, 밤이에게는 다행으로 때맞추어 오막손이가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그 자리에서 옛 충주부터 단양까지 강 따라 가는 길의 사정을 고해바치는데, 암만 들어도 그들이 오래 머물면서 귀양 가는 이언적을 기다릴 만한 곳은 딱 한 군데 뿐이었다.

나머지 고장들은 이지함 잡는답시고 관군이 한창 들쑤신 것으로부터 회복이 아직 덜 된 데다가 연이은 흉년까지 겹쳐, 인심이 흉흉하고 주막조차 폐가가 된 곳이 많았다.

“이왕 먼 길 가는 것 밥이라도 잘 챙겨먹으며 가야 하지 않겠냐? 자, 들어라. 우리는 단양으로 간다!”

꺽정이가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렸다.

--- *** ---

윤원형이 여러 야담이 전할 만큼 사대부와 민중의 증오를 동시에 받았다면, 명종 즉위 후 소윤의 2인자라 해도 무방할 이기는 유별나게 사대부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을사사화와 이홍남 역모 고변 등 여러 굵직한 옥사의 전면에 나서서 숙청 정국을 주도했고, 그 이후로도 자신을 탄핵하는 언관들에게 보복을 가하는 등 여러모로 사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이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성삼문의 먼 친척이자 생육신 성담수의 외조카, 그리고 김종직의 문인이었음에도 그토록 악독한 – 사림 입장에서 –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었지요. 결국 한때 문경공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던 이기는 선조 즉위 후 공신 작위가 삭탈되고 묘비는 부서지게 됩니다.

소윤 내에서 온건파에 속했던 허자까지 숙청한 이기는 1551년 8월 중풍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그 직후 벌떼같이 그를 탄핵하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1월에는 이기가 공납되는 진상품과 방납미를 횡령하였다는 폭로도 나오게 되지요. 그렇게 질질 끌던 탄핵은 이듬해 4월 갑자기 이기가 병이 위중해져 사망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의 횡령을 폭로하고 경회루 앞을 지나가던 명종 앞에 불쑥 나타나 이기의 탄핵을 주청하기도 했던 권철(權轍, 권율의 아버지) 같은 인물에 대해 사후 보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윤원형이 ‘몸을 사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숙청할 사람을 모두 숙청하여 쓰임새가 거의 다한 이기를 ‘손절’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윤원형의 아내 김씨는 작중에 나온 것처럼 김안로의 집안, 보다 정확히는 김안로의 5촌 조카딸이 됩니다. 윤원형이 한창 김안로 눈치를 보며 살 때 맺어둔 인연이었는데, 김안로가 몰락한 뒤에는 당연히 함께 지낼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요. 결국 김씨는 곧 죽고 – 민담에 따르면 정난정이 김씨를 감금한 뒤 며칠 동안 굶기고, 그 다음 독이 든 식사를 억지로 먹였다고 합니다 – 빈 정실 자리를 정난정이 꿰차게 됩니다.

윤원형의 얼자 두리손은 실존인물이지만, 실록에 그 이름 한 줄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 외의 내용은 모두 작중의 창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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