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굽은 것을 들어 쓰다 (3)
청석골은 사실 위치로 치면 재령과 봉산, 평산 사이에 끼어 있고, 굳이 따지면 아랫말도 봉산 아닌 재령 관할이었다. 그러나 꺽정이가 언제고,
‘청석골과 아랫말은 봉산에 속한다.’
하였으므로, 곧 두 곳 모두 봉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관찰사 주세붕이 봉산군 시찰 나오기로 한 날이 다가오면서 청석골 산채가 덩달아 부산해진 것은 그 때문은 아니었다.
“거기, 제대로 들어라! 힘이 그 모양이니 어디 가서 사내 소리나 듣겠느냐! 자, 열 번 더!”
“어쭈, 어깨 내려가지? 당수님께 네놈을 데려가 친히 굴려주십사 청해볼까?!”
“거기 어린놈! 제자리!”
청석골 산채에는 오늘도 ‘아고고’ 곡소리가 나고 있었다.
조련이 얼추 끝난 졸개들은 평산 성황산성이나 봉산 정방산성, 재령 장수산성 등지로 보내어 그 일대에서 도적들 단속하는 일을 맡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신병’들이 차곡차곡 들어오고, 이제 그들을 단련하는 일은 지금 저기서 고함 지르는 최만복이처럼 이미 훈련을 마친 이들이 맡고 있었다.
그러므로 꺽정이는 처음 훈련 시작할 때 힘자랑 한 번쯤 해서 모두의 기를 죽이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신선처럼 가만히 앉아 그윽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가끔 실제로 진 짜서 싸우는 훈련을 할 때면 친히 뛰쳐들어가 박살 내주는 역할도 종종 했다. 꺽정이가 장난하듯 탁탁 밀치고 던지면 곧장 무너지던 것이, 지금은 제법 그럴듯하게 대항하곤 하였다.
물론 그래본들 조금 더 버티는 정도요, 설령 이긴다 한들 곧 괘씸히 여긴 꺽정이가 더욱 친절하게 괴롭혀주게 될 테니 졸개들 처지가 그닥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하간 그렇게 해서 꺽정이 눈에 그럭저럭 쓸만한 정도까지 올라온 이들 머릿수가 벌써 삼백.
“다들 잘 따라오는구나.”
어느새 뒤에 나타난 이지함이 말을 걸었다.
“놈들 눈빛을 보시오. 나와 싸우면 지기 일쑤요, 이긴다 한들 죽을 만큼 구르겠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다들 독기가 형형하게 깃들지 않았소? 다 이 사제가 힘쓴 덕이외다.”
“아무리 그래도 네놈을 상대하라 하는 건 과하지 않으냐.”
“천만의 말씀. 우리가 장차 관군 상대할 때 대비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오. 대개 관군 열 명이 있으면 군교(軍校)나 갑사(甲士) 한둘이 정예하고 나머지는 머릿수만 채울 뿐이거든. 그러니 기세 올리겠다며 먼저 달려들, 무예 제대로 닦은 이들 상대하는 연습은 꼭 해야 하는 법.”
“그래, 뭐. 네 녀석이 군략은 나보다 훨씬 나으니.”
사형 말투에 어째 고민이 깊게 묻은 것을 그제야 깨달은 꺽정이가 딴에는 걱정하며 물었다.
“어쩐 일로 내 흉은 안 보고 칭찬만 하시오?”
“정녕 저들을 데리고 봉산 읍내에서 관찰사를 위압할 생각이더냐?”
“그렇소. 밤골 도령이 어떻게 잘 관찰사를 구슬린다면 그뿐이겠지만, 또 모르는 일이잖소? 무릇 계책이란 유비무환이고, 설령 저 졸개들이 당장 힘 쓸 일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익혀둔 것이 어디 가지는 않겠지.”
아무리 주세붕 그 사람이 학문이니 도덕이니로 유명하다지만 어쨌든 관원이고 조정의 녹 먹는 사람이잖소. 그러니 결국 말과 이치 대신 창칼로 설득하는 쪽이 더 이롭게 될 수도 있는데, 사형도 그렇겠지만 나도 그 꼬마 도령이 벌써 누구 겁박하네 죽이네 하는 흉험한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을 듣고 싶지는 않소. 그런 건 나 같은 놈이 해야지.”
“이왕이면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자꾸나.”
이지함의 말에는 여전히 근심이 뚝뚝 묻어나왔다.
며칠 뒤, 관찰사 행차가 재령 지나 봉산에 닿았다.
해주에 앉아 있을 때는 의민당 험담하는 말을 많이 들었고, 당장 주세붕 본인도 요 몇 달 내내 의민당이 세운 대녕학당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으므로 감정이 좋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의민당이 공공연히 횡행한다는 재령 경계를 넘으니, 백성들은 편안하고 마을은 정갈하여 의외로 잘 다스려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시가 흥성하여 온갖 잡인들이 오가는 것이 큰 흠이기는 했지만.
이어서 봉산에 닿으니, 규모로는 해주에 아직 못 미치지만 북적이는 느낌은 족히 곱절은 되는 듯하였다. 그 부산한 곳에서 군수 이원수와 유명한 그의 안사람 사임당 신씨를 만났다.
물론 반가의 가도(家道)가 있으므로 신씨를 직접 만나지는 않고 대신 백운동서원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렸다는 산수화 한 폭을 전해 받았는데, 그 솜씨가 절묘하여 주세붕은 벌써 마음이 한껏 기꺼워졌다.
이윽고 부친의 부임지에 따라왔다는 군수 셋째아들이 인사를 올리는데, 나이 열다섯 치고는 여전히 앳되다 못해 어리다 싶었지만 그 총기만은 눈에서 똑똑 떨어지는 듯하였다.
몇 마디 문답으로도 이를 족히 알 수 있었는데, 반쯤 장난삼아 시험해보았더니 주세붕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깊이의 답변이 나왔다.
군수 이원수도 물리고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경의(經義, 경전의 뜻)면 경의, 성리(性理)면 성리. 깊은 생각이 막힘 없이 쏟아져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세붕은 한편으로는 이토록 연소한 사람의 배움이 깊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어려운 시국에도 명현(名賢)의 새싹 자라남을 기뻐하게 되었다.
“참으로 천하의 기재로구나. 이처럼 빼어난 인재가 군현에 있거늘, 거두어 가르칠 학교는 완비되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학교가 완비되지 못하였다 함은 무엇을 이르시는지요?”
“그야, 성현을 기리는 서원보다 저 잡다한 무리들이 속되고 상스러운 논의 벌이는 소위 학당이 더욱 사람을 많이 끌어모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아마 이곳 봉산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을 테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그 학당이야말로 장차 군현의 교화와 나라의 다스림에 모두 크게 이바지할 듯합니다.”
“그 세가 작지 않으니 얼핏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 이는 소인(小人)의 가르침이다.”
“그렇지 않음을 제가 이미 알진대 어찌 방백(方伯, 관찰사)의 앞에서 거짓으로 말을 꾸미겠습니까? 봉산 고을에 오시면서 대녕학당의 뒤에서 꾀 낸 이를 만나보고자 하셨다 들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이입니다.”
“무어라? 네가?”
궁금함과 놀라움, 노여움이 공히 섞인 주세붕의 물음에, 이이가 자신의 준비한 논변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이이와 이야기하는데 한껏 빠진 주세붕은 동헌 바깥에 검은 옷 입은 무리 삼백이 모여들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자, 빨리빨리 움직여라! 줄 맞춰서!”
지난날 한양 다녀온 이래 신씨는 기어이 옷 빛깔에 대한 본인의 뜻을 다시 한 번 꺼냈는데, 절충안이라고 나온 것이 이들 ‘정병’들에게만 검은 옷을 입히자는 것이었다. 몇 달간 준비 끝에 마련하여, 금일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아마 관리가 어려우므로 오늘이 지나면 다시 곳간으로 직행했다가, 어느 날 거사 벌이게 되면 그때 다시 나오지 않을까, 꺽정이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이들 삼백은 의민당 내의 ‘흑의군(黑衣軍)’ 정도로 불리게 되지 않겠는가.
“잊지 말아라. 여기저기 골목에 숨어서 내가 저 삼문 나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그때 내가 오른쪽 팔을 곧추 들면, 곧장 뛰쳐나와 지금 너희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열을 딱 맞추어 서면 된다. 그러나 내가 왼팔을 가로로 휘휘 저으면, 그때는 곧장 흩어져서 이곳에 왔다는 티조차 남지 않도록 해야 된다. 알겠느냐?”
“예, 당수님!”
“만에 하나 못 알아보고 엉뚱한 짓 하는 놈 있으면, 내가 친히 토혈할 때까지 굴려줄 테니 각오들 해라.”
정예한 병사 삼백이라 하면 군정이 무너진 지금의 조선국에서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수였다. 그러나 규모만으로 사람 위압하기에는 또 턱없이 머릿수가 부족한 게 사실. 그러므로 꺽정이가 낸 꾀가 바로 이것이었다.
동헌 앞 대로 양옆에 두 줄로 쭉 늘어서서, 일사불란하게 동작을 척척 갖춘다면 주세붕 같은 유약한 문관 정도야 쉽게 위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산채에서 몇 번 연습하였는데, 이미 손발 하나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야 거칠게 해도 속으로든 이들을 믿는 꺽정이였다.
그때, 의외의 사람이 대열 옆에서 쑥 나타났다.
“사형? 여긴 웬일이시오?”
“그야 관찰사 나리를 뵈러 왔지.”
“허나 사형은...”
“그래, 나도 안다. 알고말고. 허나 스승이 되어서 어찌 제자를 그런 일에 홀로 던져두고 있는다는 말이냐. 더구나 제자 걱정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군병으로 관찰사를 겁주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하책이다.”
“그러면 사형이 직접 얼굴 드러내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오?”
“네 녀석 하려던 것보다는 나은 계책이지.”
이지함이 이렇게 고집 부릴 때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사형의 헤아림을 믿는 꺽정이는 곧 승복하였다.
“알겠소. 어차피 이놈들더러 눈에 안 보이게 꽁꽁 숨으라 해두었으니, 우선 함께 들어가서 보십시다.”
한편, 동헌 한쪽에서는 중년의 고관과 앳된 소년의 한없이 무거운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학당을 세우고 운영한 일이 모두 삿된 탐욕에서 나왔으니, 만약 자네가 정말 대녕학당 운영하는 요체를 마련하였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일세. 지금이라도 실수를 깨닫고 고치도록 해야 할 터.”
어느새 주세붕은 이이를 ‘너’ 대신 ‘자네’라 부르고 있었다. 설령 그 배움이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더라도, 이만큼 현철(賢哲)한 사람이라면 연소하다 하여 무작정 하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찌 이를 실수라 단언하시는지요? 저희 당에서 학교를 더 잘 일으킨다면 장차 서원을 운영할 때도 그 법도를 본받겠노라 하셨다 들었습니다.
지금 학적에 이름 올린 것으로 견주면 대녕학당 쪽이 족히 열 곱절은 될 것으로 압니다. 학교의 본디 뜻이 널리 가르침을 펴는 데 있다면, 마땅히 저희 쪽이 옳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잘못일세! 장사로써 재정의 바탕을 삼는 것부터, 공량을 받고 서책을 넘기는 것, 깊은 학문 대신 얕은 가르침으로 과목을 갈음하는 것. 모두가 잘못되었다 이 말이야.”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으면, 굽은 것도 능히 곧게 펼 수 있다 하였습니다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선비가 장사를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것을 맡아 하겠습니까?”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오직 무본(務本)이니, 사람에게 본이란 양심(養心, 심성을 수양함)이요, 집안의 본이란 곧 농사일세. 공상(工商)은 본바탕이 잔재주요, 스스로 세상에 도움 되지 못하는 일이라네. 근본을 가볍게 여기고 말엽만을 중시하면 이것이 어찌 옳겠는가?”
“흔히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민(四民)에 차등이 있다 하나, 이는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며, 오히려 『곡량전(穀梁傳)』에서는 사상농공(士商農工)을 말했습니다. 관중은 예를 알지 못한 사람이요 『곡량전』은 자하(子夏)로부터 전해지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경의로써 논박하려 하였으나 이 또한 금방 막혔다. 깔보지 않고 정중한 마음가짐 지켜가며 말 주고받고 있건만, 어찌하여 주세붕이 이이에게 더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인가.
“또한 선비도 사람이므로 욕심이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이니, 곧 스스로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는 이(理)에 따라 발하는 기(氣)입니다. 이 욕심을 억지로 틀어막기만 한다면, 결국 새어나가 백성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 욕심을 다스리고자 올바른 학문을 펴고 이로써 교화를 이루려는 것 아닌가? 나는 여전히 이(理)로써 탐욕을 다스려야 한다고 보네만, 그 탐욕 역시 사람의 본성이요 반드시 찍어누를 수만 없다는 것은 자네 말을 듣고 비로소 새로 생각하게 되었네.
그러나...”
말하려던 주세붕이 갑자기 스스로 입을 닫았다.
“비록 제가 학문의 지엽을 얻었으나, 여전히 연소하고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관찰사께서는 가감 없이 말씀해주시지요.”
잠시 잘못 생각했을 뿐 참으로 뛰어난 인재다. 주세붕 그의 마음조차 움직여, 어쩌면 서원의 일도 그 학당 제도를 한 번 따라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제도의 이면에 깔린 사고, 사람의 욕심이 그 자체로 그릇된 것 아니며, 사족의 욕심을 북돋아 백성과 나라에 도움 되는 쪽으로 선도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말이었다.
그 위험한 말이 어째서 위험한가, 이 총명하되 순수한 소년에게 지금 말해주는 것이 옳은가.
고민 끝에 주세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가면 반드시 후과가 좋지 않을 것이야. 자네가 비록 연소하지만, 이미 알 것은 모두 아는 듯하니 직설(直說)로 말함을 부디 양해해주게.
욕심이 일어나면 끝이 없다는 데는 동의하리라 믿네. 그런데 이제 욕심을 바탕으로 한 군현의 사족을 모은다면, 그 욕심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자네 말대로 상공의 일에 힘써 치부를 한다 해보세.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찌 되겠는가? 부(富) 다음은 귀(貴)요, 사람이 귀하게 되는 데는 벼슬뿐일세.
사사롭게 청탁하여 한두 사람이 귀한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군현 하나가 흔들리고, 백 사람이 나아가게 되면 나라 하나가 흔들리며, 모두가 나아가려 하나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비로소 빼앗는 데 마음이 치닫게 되네.”
나라를 빼앗는다. 조금 더 자주 쓰이는, 그러나 결코 백주대낮에 남들 귀 있는 데서 말하지는 않는 말로는 대역이요 모반이다.
지금까지 그것을 꾸몄다 모함받아 스러져간 선비가 몇이며, 정말 멋모르고 노닐다가 마음이 흉참한 지경으로 치달아 화 당한 양민은 또 몇인가.
“그러니 사람의 욕심을 위한 자리를 법도로써 마련함은 참으로 위험한 것일세. 자네는 이제 막 학문에 뜻 둔 사람이 이처럼 성취 높으니, 지금이라도 마음 고쳐 새로 스승을 찾고 다른 길을 구한다면 반드시 대성할 것이야. 어찌 지금 이렇게 위험한 궁리를 하고 있는가?”
그 말 들은 이이도 말문 막히기는 마찬가지.
대놓고 의민당이 바로 그 나라 뒤집는 궁리하는 모임임을 밝힐 수는 없다. 허나 이미 이 나라를 한번쯤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는 스승 이지함과 함께 동의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지금 주세붕 앞에서 그런 얘기를 꺼낸다면, 그때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
선비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밝힘이 의리인가? 더 큰 의로움을 위하여 때에 따라 옳고 그름을 뒤바꾸어 말함이 의리인가?
생각지도 못한 무거운 고민이 이이의 아직 좁은 어깨를 짓누르던 때.
“이(珥)는 스스로 허물될 바를 삼지 말거라.”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대는 누구인고?”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초야에 숨은 이지함이 인사를 올립니다.”
어느새 조용히 문 열고 들어온 이지함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짧은 겨울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당에서 한참 기다리던 꺽정이가 슬슬 담장 넘어가볼까 생각할 무렵, 내아의 문이 열리며 이지함이 나왔다.
“정말 괜찮겠소?”
“신재 선생(주세붕) 말이냐?”
“그러면 설마 내가 멀쩡한 사형을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할까.”
퍽 걱정된다는 말투로 그런 말을 꺼내는 꺽정이가 고맙기도 하고 또 저런 험상궂은 면상으로 남 걱정을 저리 해주고 있으니 아주 약간 우습기도 했다.
“내 얼굴 드러낸 김에, 대녕학당과 의민당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다며 두 가지 논변을 펼치고 왔다. 하나는 의리의 논변이요, 다른 하나는 보신(保身)의 논변이었지.”
“어째 전자는 들으면 머리가 아플 듯하고, 후자는 들으면 재밌을 듯하구려. 허나 사형에게는 반대겠지.”
이지함 입가에 피식 웃음이 서렸다.
“의리의 논변이란 이것이었다...”
끝내 탐욕으로써 올바른 나라의 기틀을 삼는다는 제자 이이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던 이지함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사제 간에 공히 합의된 바였다.
“정학(正學)이 유일한 배움이 된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정학이 아니다. 모든 선비와 그 자제가 똑같은 서원에 나아가 똑같은 경전을 똑같은 방식으로 배운다면, 아무리 사람 하나하나가 총명하고 현량하다 한들 대가 거듭될수록 고루해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무릇 홀로 있는 것은 정체되고 여럿이 함께 있어야 서로 앞서나가려 하는 법. 군자가 주이불비(周而不比)하며 오로지 자강불식(自强不息)함이란 이것을 이른다 하였다.
의민당과 대녕학당이 이익과 탐욕의 이치로 뭉친 것이 옳지 않다면, 그것을 억눌러 없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의 성과 낸 것을 인정하고 다른 쪽에서 더욱 훌륭한 일 하여 더 나은 길 있음을 보이는 것이 군자가 힘쓸 바라 하였지.”
“얼추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소. 그러나 그 정도라면 꼬마 도령도 홀로 할 수 있었겠지. 결국 사형이 나선 까닭은 두 번째 논변에 있지 않소? 차마 밤골 도령 입을 빌어 말할 수 없던 것.”
“녀석, 눈치만 빨라서는. 네 말대로다.”
보신의 논변을 꺼내기 전, 이이를 아예 밖으로 내보내고서 주세붕과 독대하였다.
그리고 거짓을 말했다.
의민당이 윤원형과 암암리에 연이 있음은 소위 식자라면 누구나 아는 바다. 지난날 의민당이 한양 상경하면서 이는 명백히 밝혀졌다. (그 연이 실은 악연 중의 악연임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주세붕이 설령 역적 숨어 있다 고변을 한들, 의민당이 엮이게 된다면 윤원형이 가만 있지 않을 터였다.
그러면서 이지함은 참을 함께 말했다.
만에 하나, 이지함 숨겨준 것이 발로가 되어 윤원형이 의민당을 쳐내려 한다면, 그때야말로 더욱 일이 심각해질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겪고 본, 이제 유신현이 된 충주에서 벌어진 참화. 주세붕이 역적 이지함이 봉산 의민당에 의탁하고 있다 밝히는 순간 황해도 일원에서 다시금 벌어질 그 참혹한 피바람에 대해 말했다.
이미 재령부터 평산까지 의민당에 얽히지 않은 이가 드물고, 이제 해주도 그 범위 안에 들게 되었으니, 연루된 이만 족히 수천은 될 터. (허나 그러면서도 의민당이 뜻한 바가 본디 그렇게 얽힐 이 늘리는 데 있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주세붕이 지금 이지함에 대해 고변한다면, 그 한 사람은 당장 멀쩡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언정 그 오명과 원한이 그대로 주세붕을 따라다니게 될 것이요, 그가 막 시작한 서원의 이름도 완전히 더럽혀지게 될 것이다.
“참과 거짓을 교묘히 섞으니 이게 그 허허실실(虛虛實實)인가 뭔가 하는 그것인가 보오.”
“뭐, 완전히 넘어간 눈치는 아니고, 그저 어찌할지 갈피 못 잡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성정대로 끝내 고변 못하고 있다가 임지 바뀐다면, 그때는 더더욱 나를 봉산에서 만났다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역적 숨었음을 알면서도 덮었다면서 죄를 같이 받게 될 테니.”
“와, 그런 생각을 다 하시다니. 역시 우리 의민당 모주님이오.”
“그래, 고맙구나.”
외삼문 나서자마자 꺽정이가 왼팔 휘휘 저으며 외쳤다.
“야, 되었다, 되었어! 다들 흩어져라!”
그로 인하여 이지함이 씁쓸하게 혼잣말 던지는 것은 듣지 못했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생각 하는 것은 너와 나 둘로 족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어물쩍 학당 일을 덮어두고 넘어가게 된 지도 다시 두 달이 지났다. 어느새 겨울도 거의 다 지나고 슬슬 봄이 오고 있었다.
대녕학당은 철폐하고 학도들은 모두 수양서원 원생으로 옮기되, 서원의 제도는 공량 받고 서책 나누어주며 삶에 도움 되는 가르침 위주로 강의하는 등 대녕학당에서 하던 것을 그대로 하기로 했다.
조건은 단 둘. 새로 지은 최충의 사당에 제사 지내는 것이 하나요, 후에 학도들이 원하면 서원 운영하는 방식 바꿀 수 있음을 글로 남겨 명시하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그 외 더 붙인 단서가 없으니 사실상 주세붕이 투항하고서 전권을 의민당에 넘긴 격이었는데, 정작 관찰사 주세붕 본인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기는커녕 다른 일에 매진하고 있다 하였다.
“아니, 그토록 당해놓고 또 학교를 세울 궁리를 한다고?”
“그이가 한두 가지 일에만 매진하는 성품임은 진작에 아시지 않았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 참. 우리로서야 상관할 바 아니지만서도.”
해주에서 한창 의민당 사업 벌여두고 돌아온 서림이 감영 동정 전하니, 꺽정이가 혀를 찼다.
이지함이 말한 ‘의리의 논변’에 크게 감응한 주세붕은, 겨울 내내 고심한 끝에 이번의 패배를 되갚고 저의 생각이 옳음을 널리 보일 방편을 떠올렸다. 바로 의민당이 한 것처럼, 더 많은 학생을 이끌고 더 좋은 가르침을 전하는 그런 학당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정이 빠듯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당장 학당에 들어올 유생이 동난 상태였다. 다들 현 대녕학당, 장래의 수양서원에 들어갈 생각만 할 뿐이니, 그저 이곳 해주의 사풍(士風)이 탐욕스럽고 야박함을 한탄할 따름이었다.
허나 주세붕은 마침내 답을 찾았다. 소위 선비라는 자들이 가진 것이 많아 더 많은 부 누리고자 욕심을 부리니, 반대로 가진 것 없고 그저 순량한 마음으로 배움 구하는 백성들을 모아 가르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저들이 고작해야 장사하는 일 두고 공론(空論) 벌이는 동안 도학을 갈고 닦은 일반 백성들이 앞서나가고, 심지어 개중 문명(文名) 떨치는 자도 나온다면, 지금 삿된 궁리에 마음이 쏠린 무리도 부끄러움을 알고서 바른 길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내 제자에게 종종 글을 보내어 생각을 물으신다 하더구나.”
서림이 아랫말 돌아왔다는 얘기 듣고 별채에서 이쪽으로 건너온 이지함이 말했다.
“어린놈이 설친다고 감정 상하셨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오?”
“세간에서는 신재 선생이 호학(好學, 학문을 좋아함)하면서도 정작 학문에 밝지 못하다고 흉을 보고는 하지만, 그분이 선량하지 못하다며 헐뜯는 이는 없다. 이제 보니 왜 그러한지 알겠구나.”
주세붕이 이지함 제쳐두고 이이에게만 글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는 이지함이었다.
“나는 도통 글공부하는 사람들 머릿속은 모르겠소.”
“네가 우리네 선비들 머릿속을 모두 헤아려 알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이 나라에 참으로 큰 화란이 되지 않겠느냐.”
고작 두 달 사이 주세붕과 이이 사이 논의는 꽤 진전되어 – 이지함과 평소에 하였던 공부 방식이 효험을 보였다 – 해주 한 곳의 서당들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고, 양민 자제라면 누구든 공부할 수 있게 하되 개중 재능 있는 이들은 향교로 보내어 글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까지 닿았다 하였다.
그때, 얘기가 점차 산으로 가는 것을 본 서림이 목청 가다듬으며 본론을 꺼냈다.
“헴헴. 해주 돌아가신 뒤 관찰사께서 곧장 그때 약조하였던 바를 그대로 따르겠다는 뜻을 밝히셨으니, 이미 감영으로 우리 쪽 향리 여럿을 보내두었습니다. 사실상 서원 운영은 우리네에게 일임하고, 감영에서는 그저 곳간만 열어 보태주겠다는 것이니 처음 기대했던 이상의 소득이지요.
또한 이미 해주의 굵직한 집안들은 물론이요. 재령, 봉산, 안악, 은율 등 해주에 인접한 군현에서도 원생 되려는 이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이 또한 소득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 그러니 이제 우리 의민당이 역적 소리 듣게 되면 함께 죽을 이들이 확 늘어난 셈이지. 충주가 반역향 되었을 때 어떤 꼴이 났는지를 다들 들어 알 테니, 정말 윤원형이가 우리 죽이려고 달려든다면 저들 사족들도 부득불 우리 편을 들어야 할 게요.”
꺽정이가 퍽 거칠게, 그러나 아예 틀리지는 않게 요약하여 말했다.
“그러면 올해도 이대로 작년처럼 버텨나가면 되겠군. 사람은 계속 늘리고, 사업은 계속 키워나가고.”
“작년 가을에 한양 구경 갔던 것처럼 요란벅적한 대사건만 없다면 아마 그리 되지 않겠소이까.”
그때, 멀리 요란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말발굽 소리 아닌가?”
“여봐라, 누가 나가서 살피고 오너라!”
집주인 서림이가 목청 높이니 곧장 ‘예이’ 하는 소리와 함께 솟을대문이 열렸다.
그러고서 곧 들어온 것은 어디서 많이 본 얼굴. 일전에 병해와 함께 닭의 암수 바꾸는 장난질을 쳤을 때 찾아온 적 있던 젊은이였다.
“각미사에서 나온 선달 유극량이라 합니다. 저희 모임에 큰일이 생겼는데, 병해 스님께서 이 일은 의민당과 상의함이 마땅하다 하시어 한양에서 급히 말 달려 오는 길입니다.”
옷 여기저기에 묻어 미처 떨어지지 않은 흙먼지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풍성부원군(이기) 댁에서 저희 각미사 쪽에 은밀한 연통을 보냈습니다. 이르기를, 풍성부원군께서 급병으로 쓰러지시어 일어나지 못한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풍성부원군께서 정신 차리신 뒤 말씀하시기를,
‘이는 하늘이 내린 병이 아니니 병의 이름은 윤질(尹疾, 윤씨 병)이다. 병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나 그 뿌리는 밝혀낼 수 있으니, 의기(義氣) 있는 장사를 구하노라.’
하였답니다.”
이 자리 앉은 모두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마침내 윤원형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리라.
꺽정이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서림은 겁에 질렸으나 힘껏 어깨와 허리 펴며 이를 감추려 용을 쓰고, 이지함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눈을 감았다.
아직 의민당은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허나 그때 약조한 오 년 기한을 모두 알뜰하게 쓴다 한들 나라 하나 뒤엎기에 족하다 하지는 못하리라.
차라리 노괴 이기가 살아서 윤원형을 치는 데 도움 조금이나마 줄 수 있다면 지금 무언가 큰일 내는 쪽이 나을 터.
모두가 꺽정이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들이킨 숨을 내쉬며 꺽정이가 마침내 말했다.
“우리 당이 괜히 의민당인가. 잘 찾아오셨소. 내 곧 행장을 꾸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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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글이 전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유학과 노장사상, 농업과 상업, 의리와 이익 등 상반되는 것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는 점입니다. 욕심을 적게 가진다(寡慾)는 맹자의 말을 도교에 가까운 표현으로 풀이한 『과욕설』이나, 민생을 위해 농업과 상업의 조화로운 연계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른바 ‘본말상의(本末相依)’입니다) 상소문 등으로 단편적으로 그러한 면모를 살필 수 있지요.
이이가 ‘사농공상’의 출전을 따지며 언급한 『관자』는 춘추 시기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이 썼다고 알려진 책입니다. 실제로는 관중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전국시대와 전한을 거치며 여러 경세 관련 사상들이 집대성된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공자는 관중이 없었더라면 이미 중화 문명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언급된 『곡량전』은 이른바 춘추삼전(좌씨전·공양전·곡량전)의 하나로, 공자가 지은 『춘추』의 해설서로 특히 『춘추』의 교훈적 측면에 집중하였다는 평을 받습니다. 한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자신의 제자 곡량적(穀梁赤)에게 전한 바는 『곡량전』으로 정리되고, 공양고(公羊高)에게 전한 바는 『공양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전승의 사실 여부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지요.
주세붕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평가가 여럿 존재하는데, 이는 그가 중종 연간에 출사하면서 소윤 일파와 여러모로 엮인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같은 『중종실록』 내에서도 ‘유학의 찌꺼기(糟粕)를 겨우 얻은 오활한 자’라는 평과 ‘학문이 해박하고 후덕하며 인자한 사람’이라는 평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사림의 시각에서 편찬된 『명종실록』에서도 그가 너그럽고 온화하며 덕이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권세에 비루하게 아첨하였다고 적고 있지요.
그런데 그의 평가가 깎이게 된 사건들을 보면, 청탁이 들어오자 이를 내치지 않고, 또 권신들과 종종 교류하며 친하게 지냈기에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주세붕이 그런 연줄을 이용해 재산을 모으거나 출세를 도모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어떤 욕심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그저 사람됨이 너무 정이 많아서 맺고 끊는 것을 못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