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참새는 사마귀를 노리네 (1)
꺽정이는 유극량과 함께 말을 달리고 있었다.
괜히 남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은 없으니, 호젓한 산길을 골라 빠르게 가고 있었다. 아직 쌀쌀한 산바람이 양 뺨을 스치고 지나가니 자못 상쾌하였다.
이전에는 어디 갈 때마다 일행들 중 말 못 타는 이가 적어도 한둘은 끼어 있었기에 달리지 못하였고, 그보다도 더 전에는 말을 타고 싶어도 여력이 안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생에서 말 달리는 것은 금번이 처음인 셈이었다. 마치 무슨 징조인 것 같아, 꺽정이 홀로 흐뭇하게 웃었다.
“흐흐, 무언가 시작되려 하는구나!”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혼잣말이오. 혼잣말. 거 귀는 좋구려.”
머쓱해진 꺽정이가 화제를 돌렸다.
“이제 족히 절반 넘게 왔소. 도원역(桃源驛) 지나 한참 달렸으니, 저기 보이는 관송산(貫松山) 넘어가면 동파나루(임진나루의 반대편)요.”
“이런 길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어, 우리네 의민당 하는 일이 대개 이곳저곳 산길 오가면서 도적 때려잡는 일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오.”
어느새 고갯마루 넘어가니, 임진강 강물이 보이고 또 익숙한 강나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낌새가 이상하였다.
“올 때 무슨 일이 있었소? 어째 사람이 과하게 북적이는 듯한데?”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겉보기로는 무슨 피난 행렬 같은데요.”
미간에 손 대어 강 반대편 임진나루 쪽을 살피니, 그쪽에는 사람이 더 몰려 있었다. 필시 강 건너 북쪽으로 오고자 하는 이들이리라.
가까이 다가가 이미 넘어온 이들 행색을 훑어보니, 노비와 양반이 고루 섞여 있고 아녀자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봇짐 바리바리 맨 머슴도, 등짐 한껏 진 노새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거 말씀 좀 여쭙겠소. 무슨 난리라도 난 게요?”
개중 그나마 차림새 말쑥하면서 과하게 지체 높지도 않은 듯한 이가 있어 꺽정이가 다가가 물었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 아닌가.
“그것이, 그, 초면에 실례이오나 어디서 오신 분이신지요? 문중의 사정이 있어...”
“봉산 사는 임 처사고, 여기는 한양에서 온 유 선달이오. 둘이 같이 일 보러 한양 가는 길인데, 이거 이래서야 오늘 안에 나루 못 건너겠구려.”
그랬는데, 적잖이 어둡던 저쪽 표정이 갑자기 확 밝아졌다.
“봉산 임 처사라 하셨습니까? 그러면 혹시 의민당의 임 당수를 아시는지요?”
“그게 바로 나요.”
“아아,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그러고서는 곧 이 소란의 내력을 삭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는 밤골 덕수 이씨 문중의 서자로 이런저런 집안일 맡아보는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도성에서 급보 전해지기를, 그들 문중의 어르신인 풍성부원군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하였다.
“내 알기로 풍성부원군이라는 분은 연세가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대 문중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 피난할 일까지는 아닌 듯하오.”
“그것이... 봉산군수로 계시는 저희 족친(族親)의 아내분이신 사임당 신씨 부인께서 일전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풍성부원군 신변에 갑작스레 큰일이 생긴다면 이는 화란(禍亂)의 징조이니 모두 밤골을 비워야 한다 하셨습니다.
의탁할 외척이나 친우가 있는 이들은 그쪽으로 각자 가지만, 밤골에 모여 사는 것은 대개 그리 영달하지 못한 집안들이라, 그저 의지할 만한 봉산으로 갈 뿐입니다.”
“허...”
지난해 의민당 상경할 때 신씨가 임진나루까지 따라왔던 것은 이 때문이었던가.
의민당이 거사 일으키게 되면 진압하러 출병할 관군은 열에 아홉은 이곳 임진나루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그 바로 옆이 밤골이니,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밤골의 이씨 문중 사람들과 그들에게 딸린 노비들까지 합하면 머릿수가 적지 않을 터. 이를 미리 꺽정이에게 귀띔해주었다면 장차 거사 계획 짤 때 반영할 수도 있었을 듯했다.
아마 그것을 알기에 신씨도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이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집안의 대는 이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의리도 잠시 접어둘 수 있다는 것.
꺽정이는 (한 번쯤 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양반 문중의 심리였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여기서 배 기다리면 족히 하루는 머물러야 할 듯합니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삼십리길인 적성 여의나루(如意津) 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봉산 돌아가면 신씨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아니, 이왕이면 서림이까지 불러다가 확실하게 거사에 함께하겠다 저의 입으로 확언케 함이 마땅하리라.
다행히 여의나루에는 말 두 필 나를 만한 큰 나룻배가 있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길을 빙 돌아온 셈이었으므로 늦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이제 다 왔습니다.”
“그러게. 꽤 험난했소.”
삼각산 자락 지나며 유극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한양 들어가면 그때는 이목을 신경 써야 할 테니 지금 미리 말 좀 묻겠소. 보다시피 이렇게 나 홀로 왔는데, 만약 한양 근처에서 무리 모을 일이 생긴다면 결국 믿을 것은 각미사 사람들, 그리고 그 다음이 보우가 거느린 봉은사 중들, 이렇게밖에 없을 듯하오.”
그나마 봉은사는 한강 건너편에 있으므로 사대문 안만 따지면 각미사 사람들뿐이었다.
“지금 각미사에는 사람이 얼마나 있소?”
꺽정이 물음에 유극량이 한참 손가락 접으며 세어보다 끝내 모호한 답을 건넸다.
“그것이, 저희 각미사가 하나의 사(社)를 칭하지만 그 인원이 때로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합니다. 혹세무민하는 자들 때려잡을 때면 한량들이 모이고, 병해 스님께서 좋은 글 얻어오실 때면 학생들이나 말직에 있는 젊은 문관들이 모이는 식이지요.”
병해 스님의 좋은 글이란, 곧 각미사에 유생들 끌어모으기 위해 이지함이 종종 써서 몰래 병해에게 부치는 글을 말했다.
그런데 각미사가 도성에서 활개치며 다닌 지도 벌써 한 해 남짓 되다 보니, 그저 병해가 황언징 내세워 유생들에게 뭔가 말해주어야 할 때 요강(要綱)으로 삼으라고 보내주던 글이 어느새 각미사 전체가 돌려보는 것으로 변하였다.
이지함이 이이와 논쟁하며 깨닫는 이야기들 – 예컨대 예의 그 ‘격물법’ - 을 정리하여 보내면, 이를 병해가 읽고서 그럴듯하게 꾸며서 말해주고, 그러면 각미사 사람들이 때로는 경청하고 때로는 논쟁하는 식이었다.
특히 이준경이 윤원형과 허자의 무리와 불편하게나마 함께하게 되면서, 도성 안 사림의 여론도 여럿으로 갈렸는데, 개중 고담준론이나 허황된 논변 대신 당장 백성을 깨우치고 도울 수 있는 방도에 주력하자 하는 각미사 뜻에 동감하는 온건한 이들이 적잖이 병해를 만나러 모이곤 하였다.
“그렇게 문(文)으로 모일 때면 서른 남짓이요, 무(武)로 모일 때는 꽤 변동이 커서 적으면 스물, 많으면 쉰 내외입니다.”
“어느 쪽이든 적지 않구려.”
고작해야 도성의 저자와 골목 돌아다니며 행패 아닌 행패 부리는 것을 ‘무’라 부름이 조금 우습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머릿수 몰고 다니면서 아직껏 큰 사고 내지 않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꺽정이 그가 보았던 황언징은 앞장서서 큰소리 내는 사람이지, 다른 이들 이끌고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조금 의아하게 여겼는데, 곧 그 의문이 풀렸다.
“그렇지요. 통상 무로 모이면 제가 부족하게나마 사람들을 이끌곤 합니다.”
“그대가?”
“그것이... 솔직히 괴력난신이나 혹세무민 운운하는 말은 잘 알지 못하지만, 병해 스님은 제게 소소하면서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또 그 이후로도 참 존경할 만한 분이다 싶어서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어느새 무리 안에서 그런 역할까지 맡게 되었지요.”
유극량의 무재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암탉 한 마리에 은혜 어쩌고 할 만큼 빈한한 집안에서 무과 급제까지 하였다면 꽤 재주가 있는 셈이었다.
유극량의 솜씨를 일신의 기골을 바탕으로 가늠하고 있는 꺽정이었는데, 그 눈길이 의심하는 눈초리라 오해하였는지 유극량이 다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그, 때로는 저 대신 이정(李貞)이라는 분이 통솔을 맡기도 합니다. 음보(음서)로 출사하여 벼슬은 수의부위(修義副尉, 종8품)이신데, 비록 따로 무과는 안 보셨어도 호탕하고 용감하신 분이라 다들 따르곤 하지요. 저희 중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고요.”
보지 않아도 얼추 알 것 같았다. 한량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데 벼슬은 미관말직, 그것도 실직 없는 무산계(武散階)니, 고작해야 선달인 이 유극량보다도 밀리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극량이 이렇게 좋게 말해주는 것을 보면, 그 이정이란 사람이 꽤 쓸 만하거나, 유극량이 어지간히 호인(好人)이거나, 아니면 둘 다일 테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으나, 돌아가는 형세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그대들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니 한양 입성하는 대로 사람 몇몇 추려주시오.”
그렇게 말했더니 이번에도 확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기라는 거물이 얽힌 일이요, 더구나 임진강 건널 때 그 난리통까지 보았으니, 사태가 결코 작지 않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무슨 무서운 일을 벌이실지 모르니 미리 어찌하겠노라 말씀 못 드리는 것을 부디 양해해주십시오.”
그 두려움을 모르는 체하며, 꺽정이가 일부러 무심한 척 말을 던졌다.
“장담하겠소. 그렇게 그대들 일신에 화가 미칠 만큼 위험한 짓을 맡기지는 않겠소. 내 뭔가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그대들 만나 상의를 할 테니, 과감한 일 벌일 만한 담력 있는 자들을 먼저 알아봐 주시오.”
사대문이 보일 즈음에야 유극량이 ‘그러겠습니다’ 하고 답하였다.
풍성부원군 이기가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어려운바, 임금은 궤장을 하사하고 그 벼슬을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로 옮겼다.
이기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들고 일어나던 사간원과 사헌부도 이번에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속내가 뻔하여 병상에 누운 이기는 분을 삼켰다.
“으으, 흐으. 그리 쉽게 당해줄 줄 아느냐? 으으...”
바깥에 둘러대기로는 중풍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비상(砒霜, 비소화합물) 중독의 증상이다. 이기가 남을 해칠 때 종종 요긴하게 썼던 비상이기에, 쓰러지자마자 그 원인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결코 유쾌하지는 않은 깨달음이었다.
얼마 전 보양을 위해 달여 먹던 탕약이 평소와 다른 것을 직감하고 곧장 뱉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그 이후 각혈과 혈뇨가 이어지고 온몸의 힘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벌써 한 달. 오로지 분노와 집념, 그것만으로 명줄을 붙잡고 있는 이기였다.
“윤원형이 이놈... 내 죽더라도 반드시 네놈은 함께 데리고 갈 것이다.”
이기는 지금껏 사소한 원한 하나도 있지 않고 반드시 앙갚음해 왔다. 저를 한낱 솥 속의 사냥개로 만들어버린 윤원형이라면 마땅히 그 목숨을 거두어야 조금은 덜 원통할 터.
윤원형이 갑자기, 저들 사림에게 조금은 유하게 대해주자 말하여 이기 그와 대립하고 있던 허자는 물론이요 이준경과 그의 무리들까지 가까이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이기는 조금씩 경계하고 있었다.
이기는 을사년 옥사부터 시작하여 사림의 사람들을 쳐내는데 선봉을 맡아왔다. 그러니 반대로 그를 죽여 없앤다면 사림의 환심을 적잖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윤원형이 지금껏 늘 써왔던, 그러나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던 수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설령 윤원형이 그를 향해 칼날 들이민다 한들, 조정에서 갑자기 저를 탄핵하는 여론이 일어나 어디 자원부처 정도로 끝나리라 생각했다. 이토록 비열한 수작으로 저에게 독을 먹일 줄은 미처 몰랐다.
간사한 놈. 김안로를 쳐내기 위해 막 출사하던 사림의 손을 잡더니, 그 다음에는 소윤을 결집하여 대윤과 사림을 동시에 쳐내고, 이제는 소윤 내에서 저에게 걸리적거리는 이들까지 쳐내려 하고 있었다.
인기척 나기에 애써 몸을 절반쯤 일으켰다. 그가 쓰러진 이후 마치 친아들처럼 곁을 지키며 병구완하는 두 심복 진복창(陳復昌)과 이무강(李無疆)이었다.
“대감, 바깥에 거한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각미사 유 아무개의 전갈 받고 왔다고 합니다.”
진복창이 거두절미하고 고하였다.
“쿨럭! 오, 왔는가. 바로 불러들여라.”
“바로 불러들이라 하심은...?”
“내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굳이 병세를 감추랴? 바로 여기까지 들라 하거라.”
“예, 대감.”
쓰러진 이후로 툭하면 혼절하여 시일 흐르는 것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게 된 이기였다.
그렇게 알 수 없는 한때가 지나고서 다시 눈을 떴다. 낯선 목소리가 먹먹해진 그의 귀를 파고든다.
“의민당 당수 임거정이 왔소. 손님 대접 아니 할 거요?”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말을 하느냐!”
무례한 말에 곧장 이무강이 발끈하여 나섰다. 그러나 나오는 대꾸가 가관이었다.
“내가 왜 말을 삼가야 하오? 나는 아직 명줄 꽤나 남아 있고 저쪽은 곧 가실 분인데? 무릇 사람 대할 때는 누가 급하고 누가 여유 있는지를 따져서 대해야 하는 법. 그대도 공부깨나 한 듯한데 그 이치를 얼른 터득해야 할 것이오.”
“하! 좋구나, 크흐흐. 좋아! 그래, 그런 배짱은 있어야 사지(死地)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겠지. 이 늙은이도 굳이 예의 차리지 않고 말 편하게 하겠네.”
이기가 갑자기 폭소하니, 이무강은 곧장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웃음 사이로 입에 고였던 피가 방울방울 튀어나왔다.
무례한 언사에 노하는 것도 어지간히 무례할 때나 성립하는 일이다. 생의 말미를 억지로 붙잡아 늘리고 있는 이기에게는 오히려 저 천둥벌거숭이 말이 나쁘지 않게 들렸다.
“의민당이라 했나? 그래, 각미사 뒤에 누군가 있다 싶어 그 글을 보냈는데, 그게 바로 의민당이라니 참 잘 되었어. 설득이 쉽겠군그래.
의민당. 봉산. 우리 덕수 이씨 문중. 그리고 이 몸 풍성부원군. 우리는 생사(生死)가 하나로 묶여 있지. 그렇지 않은가?”
“어르신은 그리 되길 바라실지 몰라도, 나는 아직 모르겠소.”
이기가 몸을 일으켜 꺽정이를 응시한다. 그 눈빛이 아직 살아 있었다.
“봉산에는 내 모자란 종질이 군수로 가 있지. 윤원형 그놈이 나만 쳐내고 자네들 의민당은 내버려 둘 것 같나? 어떻게든 연루시켜 자네들의 그 조그만 당과 나의 문중을 동시에 뿌리 뽑으려 하겠지.
자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봉산은 곧 새로운 유신현이 될 것이야. 아무런 트집이나 잡아 자네들 의민당이 대역을 꾸몄다고 말을 꾸미고, 자네들 상경할 때 부민고소 허용하자고 한 이 사람이 역적의 수괴였다고 몰아붙이겠지. 그때 나더러 그런 제안에 앞장서도록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윤원형이인데 말이지, 크흐흐!”
집착이 한껏 묻어나는 그 눈빛이, 옛날 서경덕이 마지막 책을 쓸 때 보였던 그것을 가장 추악하게 뒤튼 것처럼 보여 꺽정이는 저도 모르게 잠시 몸서리를 쳤다.
“그때쯤 되면 내 혼백은 흩어진 지 오래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부관참시를 할 것이요, 덕수 이씨 문중은 거의 멸문을 당할 것이야. 그러니 나 하나 뺀 나머지 모두를 위해 활로 뚫으려면,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뿐일세. 윤원형이를 먼저 죽여 없애는 것이지.
쿨럭! 그것만이, 그것만이 우리 문중이 살 길이고, 자네가 살 길이야!”
선비의 지조고 명가의 체통이고 이미 모두 버린, 늙고 추한 도적이 저의 마지막 욕심을 부린다. 꺽정이가 이해할 수 없는 욕심이었다.
다 죽어가는 권신이 도적을 끌어들여 다른 권신을 참살하면, 남는 것은 혼란뿐.
이런 짓을 한다고 딱히 이름이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요, 저 곳간에 그득할 재물을 들고 저승에 갈 것도 아니다. 어쩌면 문중조차 핑계고, 그저 자신은 비참하게 죽고 윤원형은 승승장구하는 그 꼬락서니를 무덤에서 보기 싫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때, 이기가 무언가 더 말하려다 갑자기 헉헉 숨을 내쉬면서 풀썩 쓰러졌다.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이무강은 곧장 사람을 부르고, 늙은 노복 하나가 표주박 하나 들고 와 이기의 입에 물을 흘려넣었다.
그 덕에 꺽정이는 이기의 이 갑작스러운, 그러나 아예 예상치 못한 것만은 아닌 제안을 잠깐이나마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기가 정신 다시 차릴 무렵에는 꺽정이도 마음을 정하였다.
“어르신 말씀대로 하겠소. 어르신쯤 되는 분께서 아무 계획 없이 그런 흉험한 말을 하지는 않으실 터. 들어나 봅시다.”
“지도를 보게나.”
그 말 떨어지기 무섭게 이기의 곁을 지키던 진복창이 지도 한 첩을 꺼내어 펼쳤다. 도성의 거리와 길목이 모두 표시된 지도였는데, 간간이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 점을 보며 이기가 말했다.
“이 한양 도성 안팎에 윤원형의 저택만 열 채가 되네. 자네도 어쩌면 들어 알고 있겠지.”
“그렇소.”
“집 여러 채 사들여서는 번갈아가며 지내는 것이 비록 단순한 기벽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아주 훌륭한 방비가 되네. 몰래 찾아가 해코지하려 해도, 어디 머무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말일세.”
“그러나 어르신이 무언가 방도를 고안했으리라 믿소.”
“맞네. 나는 내일부터 이 집 가산의 삼분지 이를 윤원형에게 바칠 생각일세. 그리하여 나는 죽더라도 우리 문중에는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해 달라 간청하는 시늉을 할 것이야.”
“‘시늉’이라.”
“어차피 진심으로 바친다 한들 제대로 들어줄 윤원형은 아니네. 좌우지간 그렇게 바치면서 윤원형이 어디 머무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지.”
윤원형 집이 열 채에 달하고 또 거기서 심심하면 더 늘어난다지만, 개중 재물이 들락날락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윤원형과 오래 어울리고, 또 때로 부정한 재물이 생기면 윤원형과 나누어 가지기도 했던 이기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쿨럭! 본디 그자는 재물이 어디서 들어오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곳에서 받곤 하지. 크게 세 곳에서 재물을 나누어 받고, 거기서 다시 다른 집의 창고로 옮겨가는 식일세,
그러나 이번에 내가 보낼 재물은 그 양이 적지 않아, 세 군데에 동시에 보내어도 족히 사흘은 걸릴 터. 또한 야명주(夜明珠)나 사라비단, 수놓은 융금(絨錦)처럼 윤원형이 직접 보아야 할 귀중한 품목들을 골고루 섞어 보낼 것이니, 그놈은 반드시 세 곳 중 하나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야.”
“첫 이틀 동안 기다리며 살피다가 사흘째 밤에 들이치면 된다, 이 말이겠구려.”
“그렇지! 역시 잘 아는군.”
따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왜 밤에 움직이는지를 묻지 않는 꺽정이를 보니 이기도 조금은 믿음이 생겼다.
도둑을 다스리려 밤에 인마 오가는 것을 막지만, 정작 큰 도적들은 이를 이용하여 저들의 부정한 재화를 옮기곤 하였다. 이기가 사흘이라 말했으니, 이 사흘 동안 이기의 집에서 나오는 인마에 대해서는 별 트집 잡지 않도록 재화가 적잖이 좌우 포도청에 뿌려질 것이다.
“그래서 그 세 곳이 어디요?”
꺽정이가 묻자 그 세 군데가 어디인지를 이무강이 하나씩 짚어주고, 이기는 연신 쿨럭대면서도 해설 덧붙였다.
먼저 다른 고관이나 명문가로부터 청탁 받을 때 들어오는 재화는 인왕산 자락 인달방(仁達坊) 저택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드물고 경치 수려하여 다른 대가에서 체통 지키며 오가기 편하므로 그곳으로 정한 것일세. 바로 뒤가 인왕산이니, 윤원형이 그곳에 있다면 거사 벌이고 달아나기는 좋을 것이야.”
각지의 수령과 무관들, 그 외 한미한 자들이 보내오는 토산품, 본디 궁궐로 들어가야 하지만 중간에 빼돌리는 진상품 등은 흥인지문 옆 창선방(彰善坊) 집으로 들어갔다.
“흥인지문이 바로 옆이므로 숙직하는 군사들이 쉽게 달려올 수 있는 곳이네. 그러나 주변에 민가가 많아 숨을 곳도 적지 않겠지. 굳이 따지면 인달방 쪽보다는 일 벌이기가 어렵겠지만.”
마지막으로 각지의 농장에서 나오는 쌀과 베 등의 소득은 목멱산 자락 성명방(誠明坊) 저택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부피가 큰 물건을 다루다 보니 저택의 절반이 곳간이요, 부리는 노비도 많다 했다.
그 농장 중 본래 윤씨 문중에 내려오던 것보다 윤원형의 대에 남의 토지 빼앗아 꾸린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성명방 드나드는 재물은 그나마 떳떳하다 할 만하였다.
“본디 한미한 자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옛날에 김안로가 동(洞) 하나를 통째로 밀어내고서 곳간 노릇할 저택으로 지은 곳이라네. 집의 목적은 그대로이되 주인만 바뀌었으니 죽은 희락당(希樂堂, 김안로)은 퍽 서러워할 일이지.”
“그러니까, 쉽고 어려운 것 따지면 인달방, 창선방, 성명방 순이겠구려.”
“그렇지. 윤원형도 그것을 알고 나름대로 방비할 테니, 일 치르고 달아날 때라면 모를까 들이칠 때는 세 곳 모두 만만치 않을 것이야.”
“귀한 물건 드나드는 것도 인달방, 창선방, 성명방 순이겠고.”
“보통은 그러겠지만, 내가 품목을 일부러 섞어 보낼 것이니 어찌 될지 알 수 없네.”
더 물어볼 것 있냐는 듯 이기가 말 마치고 꺽정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더 질문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다시 손짓 한 번 하여 지도를 치웠다.
“그러면 이제 내가 묻겠네. 무리는 얼마나 거느리고 왔는가?”
“나 혼자 왔소.”
“무어라?”
“이놈이! 어디서 감히 장난을 하려는 것이냐?”
옆에서 두 심복이 함께 발끈하고, 이기 역시 조금 서렸던 믿음이 곧장 의심으로 바뀌었다.
허나 그것을 놓칠 꺽정이가 아니었다.
무언가 하얀 것이 번뜩 하더니,
“엇?”
“어어? 이놈이! 당장 물러나라!”
어느새 칼 뽑은 꺽정이가 이기 누운 자리 앞까지 뛰쳐 올라가 그 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내 실력을 믿겠소? 저는 다 죽어가고 문중은 멸문을 앞두고 있는데, 그런 사람치고 퍽 괘씸하군그래. 정 패거리 모으고 싶으면 아쉬운 쪽에서 알아서 모아다가 붙여주셔야지. 일 끝나고 입단속 하기에도 그쪽이 낫지 않겠소?”
그러나 이미 잃을 것 없는 이기 역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 다 죽어가는 늙은이에게 칼날 들이밀며 겁박하니, 참 우습군. 실력 하나는 확실하니 그나마 다행이야.”
“대감!”
“되었다. 쿨럭! 이 자 말이 사리에 맞느니.”
한 발 늦게 칼 뽑고 마루로 따라 올라온 진복창과 이무강을 이기가 제지했다.
“집안의 문객과 가복(家僕)은 내줄 수 없네. 하지만 붙잡혀도 상관 없고 뒤처리해도 후환 없을 무뢰배들은 모아줄 수 있지. 그것이면 족하겠는가?”
“그렇소.”
“자, 들었느냐? 그리 되었다. 임가 자네도 칼날 거두게.”
꺽정이가 한 차례 더 째려보니 그제야 이무강과 진복창 모두 칼을 집어넣었다. 그제야 꺽정이도 저의 왜도 집어넣고 마루 아래로 도로 내려갔다.
“병자가 너무 놀라운 일 많이 겪으면 그 또한 아니 좋으니, 이만 물러가보게. 내일부터 어디서 만날지는 여기 있는 두 사람이 알려줄 것일세.”
“하면 그리 알고 이만 가보겠소. 일 벌일 때까지만 살아계시려 노력해보시구려.”
“흐흐, 아쉽네. 아쉬워. 자네와 같은 군재(軍才)를 내 왜구나 북로(北虜, 북변 오랑캐) 토벌할 때 거느리고 있었다면 참 쓸모가 많았을 텐데.”
“그럴 리가. 정말 그랬다면 어떻게든 나를 모함하고 공을 훔쳐가려 했겠지.”
“하하! 그것까지 맞추다니 정말 대단허이!”
끝까지 기분 나쁘게 하는 노인네였다.
뒷골목으로 나온 꺽정이는 뒤에 따라붙은 끄나풀 하나를 적당히 때려눕히고서는, 유극량에게 들었던 각미사 모이는 곳으로 향했다. 유극량과 그 무리, 그리고 어쩌면 소식 들은 병해까지 거기 모여 있을 터였다.
제비가 슬슬 돌아올 무렵이건만 저자에는 삭풍만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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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이이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중에 벼슬을 내려놓은 뒤에도 머물렀던 율곡리는 임진나루 바로 옆에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이가 미리 기름을 먹여둔 정자 화석정(花石亭)을 불태워 선조 일행이 무사히 오밤중에 임진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야사가 전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요.
유극량은 노비의 아들로 시작하여 무의공(武毅公) 시호까지 받은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본디 그 어머니가 대신 홍섬(洪暹)의 아버지 홍언필(洪彦弼)의 집에서 일하는 종이었는데, 상전 댁에서 도망쳐 평민과 결혼하여 유극량을 낳았지요. 이후 고학으로 무과에 급제한 뒤에 이 일이 드러나면서 급제가 취소될 위기에 처하지만, 그의 인물됨을 알아본 홍섬이 유극량을 공식적으로 면천해주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평화가 계속되어 그가 재능을 발휘할 기회는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늙어가던 중 선조대에 능력 있는 무신들을 발탁하면서 마침내 이름을 드러내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항상 위에 무능한 지휘관이 있었기에 이렇다할 공을 세우지 못하고 임진강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유극량은 본작에서는 각미사에서 이정과 연을 맺게 되었지만, 원 역사에서는 훨씬 후대에, 이정 본인 대신 이정의 셋째아들과 연이 생기게 됩니다. 임란 직전 조정이 능력 있는 무관들을 발탁할 때 유극량은 전라좌수사로 영전하게 되었는데, 여러 이유로 곧 체직되고 그 후임으로 이정의 셋째아들이 오게 된 것이지요. 그 아들이 바로 이순신입니다.
이정 본인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평생 벼슬하지 않았다’라는 유성룡 등의 기록과는 달리 실제로는 음서로 출사하여 실직 없는 무산계의 벼슬을 역임했습니다. 계속 재직하며 벼슬이 조금씩 올라 1576년에는 창신교위(종5품)에 달했습니다.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으나, 그의 아버지 이백록이 무뢰배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한 사실, 그리고 이순신도 어렸을 때는 좋게 말하면 호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진 행동을 했다는 야담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정 역시 차분한 성품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이를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근거는, 실록에 그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사례인 1546년의 탄원(진소陳訴)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백록이 중종 사망 후 국상 시기에 연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죄를 받았는데, 이것이 실은 잘못된 처분이었음을 주장하여 마침내 뜻을 이룬 것이지요. 을사사화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시점에서 그런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을 조정에 탄원하였다는 사실은, 이정이 담력 있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줍니다.
이무강과 진복창은 모두 실존인물로, 당대에 이기의 ‘조아(爪牙, 손톱과 어금니)이자 응견(鷹犬, 사냥개와 매)’라는 평을 받았던 그의 측근입니다. 이기의 권세를 빌어 삼사의 요직을 거치면서 이기의 정적들을 탄핵하는 일을 맡았기에 당대에 악명이 높았지요. 흥미롭게도 이들은 함경도 어사나 오위도총부 부총관처럼 군사와 관련 있는 자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이기 본인이 한창때 활쏘기에 능하고 여진족 토벌을 지휘하기도 하는 등, 문무를 겸전하였다는 점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가 그런 인물을 측근으로 선호하였든, 그런 인물들이 더 빠른 출세를 위해 이기에게 영합하였든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한편, 비소는 동서를 막론하고 애용된 독약입니다. 특히 독성이 있는 비소화합물의 통칭인 비상은 사극에도 종종 나와서 잘 알려져 있지요. 비상이 널리 쓰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이었지만, 쥐약이나 구충제, 의약품(!) 등 여러모로 일상에서 쓰임새가 있는 친숙한 화학물질이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명대의 과학기술 사전인 『천공개물』에 공공연히 비상 제법이 수록될 정도였지요.
윤원형의 집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작중의 창작입니다. 그러나 야담에 윤원형이 저의 집앞에서 제게 뇌물로 들어온 현물을 팔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그가 사들이거나 지은 집 중 몇 채는 번화한 저자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565년 윤원형을 탄핵하는 상소에서 그가 저택과 농장을 마구 늘린 것을 ‘지벽(地癖)’이라고 칭할 만큼, 윤원형의 부동산 애착은 당대에도 유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