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상전벽해 (1)
하룻밤 사이에 풍성부원군 이기는 갑자기 세상 떠났으며, 사간(司諫) 벼슬을 맡은 이무강은 참살을 당하고, 성명방이 송두리채 불타 서원군과 여타 백성들이 크나큰 해를 입게 되었다.
크게 놀란 대비와 임금은 즉시 진상을 밝혀내라 명하였는데, 사직에 공 많은 훈척(勳戚) 윤원형이 곧 조사를 진두지휘하여 그 전말을 아뢰었다.
“대저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써 부민고소를 허용한 이래, 전국 군현의 백성들이 상경하여 고을의 폐단을 아뢰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불량한 자들이 모여, 음험한 말을 꾸미고 흉악한 꾀를 모았습니다. 그들이 모의하기를,
‘지금 우리가 수령을 고소한다 핑계를 대고 이처럼 모였는데, 이를 빌미로 도성의 안팎을 훤히 알게 되어 어디에 귀한 사람이 머무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라의 정승 되는 이들을 연달아 들이쳐 죽이고 빼앗으면, 비로소 조정도 혼란에 빠져 우리를 벌주지 못할 것이다.’
하였는데, 고(故) 사간 이무강이 저자에서 이를 우연히 듣고 곧장 꾸짖자 흉악한 무리들이 그 자리에서 이무강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이어서 그들이 모의한 대로 풍성부원군과 서원군의 사제에 틈입(闖入)하니, 풍성부원군은 성은 입은 몸으로 도적에게 욕을 당할 수 없다며 비상을 삼키고, 서원군은 마침 다른 곳에 거하고 있어 변을 피하였습니다.”
본래 계획은 이무강이 도적과 결탁하여 모든 짓을 꾸몄다고 고변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살아서 이것을 인정해야 할 이무강이 다시는 말 못하는 처지가 되었으므로 궁여지책으로 꾸며낸 말이 위와 같았다.
“신 등이 이 말을 듣고 지극히 놀랍게 여겨, 재차 고신(拷訊)하며 묻기를 그러한 흉험한 작당을 주도한 자 누구냐 하였습니다. 밝히기를, 황해도 봉산군의 임거정이 주도하였다 하니, 이는 추포한 노비와 무뢰배 등이 공히 증언하는 바입니다.”
거짓에 거짓이 이어지는 공초(供招)에서 조금이나마 참인 부분은 이 단락 뿐이었다.
그러나 윤원형이 이렇게 고하였건만, 대비 하답하는 바가 뜻밖이었다.
“내 놀란 민심을 어루만지고 또 사직의 강녕함을 빌고자 지난날 봉은사에 불사를 올리러 갔는데, 성명방 저자는 모두 재가 되고 백성들은 주리고 헐벗은바 참으로 비통하고 안타까웠다.
두 대신과 한 언관이 하룻밤 사이에 참변을 당하고, 수없는 백성은 집을 잃었으니, 아아, 이 잘못이 모두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겠는가! 마땅히 자숙하며 양심(養心)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바로 의민당이나 임거정을 죄주는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놀란 민심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윤원형은 동석한 다른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동생의 집이 불탔으니 당연히 그 편 들어 죄상 엄히 밝히라 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너무나 상도에 맞는 말이 나오니, 윤원형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던 중 눈치 없는 좌의정 심연원이 먼저 호응하였다.
“밝혀진 죄상은 흉참하기 이를 데 없으니, 반드시 깊게 살피어 죄상이 있다면 국법의 위엄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자전께서 이르신 것과 같이 지금은 놀란 민심을 위무하고 위정(爲政)의 과오를 돌이켜볼 때라 하겠습니다.
이르신 것과 같이, 먼저 큰불로 다치고 놀란 이들을 보살핌으로써 흉흉한 말이 나돌지 않게 하고, 차근차근 죄상을 밝히어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왕비의 조부로서, 이 조정에서 딱히 윤원형 눈치 보지 않고 처세해도 괜찮은 사람이 심연원이었다. 그 사람됨이 물에 물탄듯 순량하고 저의 주관 또렷하지 않았기에 윤원형도 딱히 건드리지 않았는데, 하필 이럴 때 눈치없이 대비의 편을 들고 나섰다.
불편하게 여기는 윤원형 눈치를 알아챈 형조판서 정세호(鄭世虎)가 반론하였다.
“자전께서 하교하신 바가 참으로 간략하면서도 옳으니, 무릇 올바른 마음으로 성(誠)을 다함은 다스림의 가장 근본되는 바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죄상이 밝혀졌으니, 이를 지금 다스리지 아니하면 또 어떤 병통과 변고가 닥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의민당 당수 임거정이 비록 공초에 열거된 흉참한 일을 실제로 모의하고 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로 패역(悖逆)한 마음을 품지 않았더라면 무뢰한들이 그 이름을 대는 일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선전관을 보내어 임거정을 즉시 추포하고, 금부(禁府, 의금부)로 하여금 추국(推鞫)케 하소서.”
뒤이어 호조판서 송세형(宋世珩)이 동의하며 말을 덧붙였다.
“또한 임거정이 이끄는 소위 의민당은 지난날 도성 앞까지 나아와 난행 벌인바 그 우두머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임거정을 추포할 때 함께 명을 내려, 그로 하여금 당을 해산케 하고, 또 그 당에 속한 이들은 각 군현의 수령들이 다스려 소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소서.”
항상 한마음 한뜻일 것만 같던 대비와 윤원형의 뜻이 갈린 상황.
그 팽팽한 상황에서 윤원형의 손을 잡은 뒤 대사헌에 오른 이준경이 갑자기 다른 말을 꺼내었다.
“신이 생각건대, 지금과 같이 나라의 위엄이 흔들리고 또 민심이 크게 놀란 때에는 무릇 중도를 지킴이 상책이라 하겠습니다.
자전께서 이르신 것처럼 지금은 우선 다치고 놀란 이들을 보살핌이 먼저일 터입니다. 허나 임거정에게 죄상이 있다면 마땅히 벌하여 국법의 위엄을 보여야 할 것이니, 아뢰옵건대 임거정은 우선 봉산 경내에 붙잡아두고 망동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후에 민심이 다스려지면 그때 다시 죄상을 밝혀 올바르게 치죄(治罪)하소서.”
윤원형과 대비의 생각이 갈리는데 이준경이 나서서 중재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준경이 온전히 윤원형 편에 선 줄 아는 허자가 동의하고, 자전 또한 이를 받아들여 결국 이준경의 말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 저렇게 목소리 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발목을 옭아매게 될 터.
‘내 미리 두리손을 시켜 준비한 바가 없었더라면 자칫 낭패를 볼 뻔하였구나. 오만방자한 놈이지만 나름대로 쓸만한 놈이기도 하다.’
사림에 속하는 사람들이 윤원형보다 더욱 미워하는 자가 바로 이기였다. 그런 자가 비명횡사하고, 그 다음으로 흉악한 윤원형은 가산을 잃고 크게 망신을 당하였으며, 이 둘에 비할 바는 아니나 역시 악독한 간신이라 여겨지던 이무강도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대놓고 좋아할 수는 없을지언정 속으로 통쾌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준경 또한 사화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고 있다지만, 아마 속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준경도, 또 두리손도 곧 다시 깨닫게 되리라.
윤원형이 고작 그만한 일로 무너질 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었다면 애초에 권신이라는 달콤하면서도 위태로운 길을 택하지도 않았으리라는 것을.
황해도로부터 소식이 얼른 돌아오기를 바라는 윤원형이었다.
이기가 죽은 지 보름쯤 지난 어느 날,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 흙비가 내렸다.
그로부터 다시 스무날쯤 지나서는 춘사월인데도 서리가 내리고, 이어서 우박도 내렸다.
농사를 때려치운 백성들은 그저 여기저기 걸터앉아 허송세월할 뿐. 그러다 보면 늘 나오는 소문이 있었다.
“이번 도성에서 난리 난 이야기 들었나? 하룻밤 사이에 대신 하나는 집이 불타고, 하나는 명이 끊어지고, 하나는 목이 달아났다네.”
사실 이무강이 앞의 두 사람과 이름 나란히 할 만큼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소문이 언제부터 이치에 닿고 닿지 않고를 따졌던가. 도성 인근을 제외하면 백성들 마음은 거의 그대로라, 소문이 십 리를 날아가면 살점 한 토막이 붙고, 백 리를 넘어가면 날개가 하나씩 붙었다.
그런데 살이 붙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소문이 만들어져 퍼지기도 했는데, 그 근원은 주로 봉산 장터였다.
“그거, 내가 듣기로는 이렇다던데. 풍성군과 서원군이라는 두 간신배가 있는데, 둘이 서로 죽이려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집만 불탔다고.”
오늘도 어물전에는 다 망친 보리농사 따위 진작에 포기하고 앉아서 소일하는 자들이 가득하였다. 개중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자가 유난히 목청 크게 떠들고 있었다.
“그런가? 그럼 그... 임강(이무강)인가 하는 사람은?”
“뭐, 가운데 껴서 죽은 것이겠지. 높으신 분들 옥사가 대개 그런 식 아닌가.”
어디 나졸 같은 관의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결코 못할 이야기인데, 봉산 장터에는 의민당 패거리만 있으므로 나오는 말이 대개 이렇게 자유분방하였다.
그렇게 된 것도 벌써 여러 해고, 더구나 지난번 의민당이 한양 한 번 갔더니 나랏님도 놀라서 해 달라는 것 모두 들어줬더라 하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으므로 봉산 사람들은 무엄한 이야기를 저도 모르게 주고받는 경우가 꽤 늘었다.
“그리고 그 양반님네들이야 그렇게들 살라지. 우리는 우리끼리만 잘 먹고 살면 그만 아닌가.”
“근데 이거 뭐 이래서 계속 먹고 살 수나 있으려나 몰라. 당장 올해 보릿고개도 의민당에서 곡식 아니 빌려주었으면 꼼짝없이 굶어죽었을 텐데.”
“곡식 빌렸다고? 그거 공짜 아닌 건 자네도 알지? 가을쯤 해서 무슨 일을 하러 가야 할 수도 있다던데.”
“무슨 일?”
“그야 내가 어찌 아나. 저기 청석골 임 당수나 서 별감께 가서 물어보든가.”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 세상 불평, 그래도 봉산은 좀 낫다 등등이 쭉 이어졌다. 작년에 찾아왔던 장돌뱅이 김가가 또 찾아와서 어물전 한구석에 앉아 귀 기울이고 있음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얘기도 들었나? 조정에서 임 당수께서도 그 난리통에 책임 있다며 붙잡아오라 명도 내렸다는데.”
“큰일 날 소리. 임 당수께서 왜 그런 일을 하시겠나? 그분이 뭐 아쉬운 게 있다고 한양 양반님네들을 건드려? 헛소리지, 헛소리.”
“그 말 맞소. 임자들도 함부로 떠들지 마시오들.”
의민당 완장 찬 험악한 사내가 불쑥 끼어들어 엄포를 놓았다. 나랏님 욕은 해도 괜찮지만, 임 당수 욕을 함부로 했다가는 호되게 당할 수 있는 곳이 이곳 봉산이었다.
하물며 이곳저곳 고을 장터 돌면서 의민당 험담 들리면 깨우쳐 알려주라는 당수의 지엄한 명을 받고 당원들이 여기저기 퍼져서 진 치고 있는 지금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의민당이 모함당하여 벌 받게 되면 우리 봉산에서도 애먼 사람 많이 죽어나가는 거요. 저기 충주가 어쩌다 유신현 되었는지 다들 들어서 알지 않소?”
“에이, 설마. 나라에서 그렇게까지 할까.”
“그렇게까지 하는 게 요새 나라요. 이 사람들 퍽 물정 어둡구만. 의민당 덕 보고 살았으니 의민당 망하면 다 같이 망하는 거지.”
“허, 아니, 그러면 이거 정말 큰일 아닌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서 걱정부터 하지는 말게. 하늘 무너진다고 걱정할 사람이구만.”
그때 아까 한창 아는체하며 떠벌거리던 농군이 말을 붙였다.
“이보시오, 형씨. 근골 장대한 것 보니 흑의군 사람인 듯한데, 혹시 당 사정 잘 아시오? 요새 임 당수가 옛날 갈대밭 있던 쪽 농장들 돌면서 뭔가 하신다는데...”
“오, 검은 옷 안 입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군. 뭐, 딱히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정이오. 요새 한양 난리 났다고 이런저런 유민(流民)들 많이 들어온다 하지 않소? 그이들에게 땅 나누어준다고 바쁘시다오.”
“와. 나도 좀 어떻게 받아보았으면.”
“아니, 밭깨나 부쳐 먹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나? 이거 순 도적놈 심보네. 이보시오, 형씨, 여기 도적 있으니 잡아가시오.”
‘갈대밭 쪽 농장’이라는 말 듣고서 장돌뱅이 김가, 즉 윤두리손이가 조용히 일어나 사라졌음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꺽정이는 일전 갈대밭 있던 자리에 서서, 눈앞에 강 따라 펼쳐진 밭을 구경하고 있었다. 싸늘한 강바람이 잊을만 할 때면 불어와 꺽정이 뺨을 살짝 치고 지나갔다.
이곳 황병곶(黃柄串)에 갈대 챙기러 왔다가 갈대밭 임자 있다며 시비를 걸던 서리 놈을 만난 것이 불과 육 년 전. 넋으로 따지면 수십 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훤히 기억이 났다. 그로 인하여 양주 집을 떠나게 되었고, 결국 지금 여기에 서게 되었으니, 암만 꺽정이 성품이 거칠다 한들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익숙한 갈대밭도, 기러기도 보이지 않고, 해괴한 날씨에도 어떻게 아득바득 버틴 보리 이삭만 시야를 메우고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쌓은 지 얼마 안 된 제방과 군데군데 조금 남은 갈대 수풀만이, 이곳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갈대밭과 늪 투성이였음을 미미하게나마 증언하고 있었다.
꺽정이가 스승 서경덕 아래에서 들었던 유식한 말 중 하나가 바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였다. 어떻게 뽕나무밭이 바다로 화할 수 있는지, 옛날 사람들도 퍽 허황된 소리 많이 했구나 속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예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했다.
‘하기야, 나도 그 옛날 임 두령에서 오늘의 임 당수가 되었는데, 갈대밭이라고 전지 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봉산 동헌에서 신씨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여전히 머릿속을 감돌고 있었다.
꺽정이가 윤원형의 저택 불사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황해도 관찰사 주세붕은 갑자기 체직되어 한양으로 돌아갔다.
겉으로는, 그 능력 출중하여 한양의 조정에서 더욱 쓰임새 많기 때문이라 하였지만, 아직 그 후임조차 정해지지 않아 해주 판관이 관찰사 대행을 거의 한 달째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장 그 당숙 되는 이기가 비명횡사한 이원수는 물론이요 의민당이 발 뻗친 고을의 다른 수령들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곳 황해도에 크나큰 재액이 닥칠 것이고, 주세붕은 조정의 사림에게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미리 빼돌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므로 지난날 우봉현감 김대의 ‘무고’에 공동으로 항의하였던 일대 수령들끼리 계속 글을 주고받으며 어찌할지 논의 개진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역시 이원수가 있었고, 이원수 뒤에 누가 있는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일단 결론을 짓기로는, 조정의 명에 따라 꺽정이를 관아에 붙잡아두는 시늉만 – 지금도 꺽정이는 이론상으로는 관아 한 구석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 하고, 차차 돌아가는 정세 따라 처신하자 하였다.
그 이야기 전해주며 신씨가 말했다.
‘이번에 한양 다녀오실 때, 봉산으로 오는 이 사람 시댁 식구들과 마주치셨다 들었소. 미리 상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해주리라 믿소.’
얼마 전 유극량 따라 한양 올라갈 때 꺽정이가 마주쳤던, 덕수 이씨 문중의 도피행 이야기였다.
‘뭐, 대충 그 마음은 알겠소. 우리 당이 딱 보아도 도적놈들과 상것들 모임인 데다가, 장차 어떤 험한 일을 일으킬지 모르니, 이미 가산을 적잖이 처분하여 의민당 사업에 밑천으로 댄 마당에 더 얽힐 일은 아니 만들고 싶으셨겠지.’
‘잘 알고 계시오. 문중의 명운이 걸린 우리로서도 이러할진대, 다른 군현의 수령들이나 사족들은 어떻겠소? 그들 스스로 되묻고 또 되묻고 있을 것이오. 우리가 언제까지 임 당수를 따라가야 할 것인가. 계속 따라간다면 그 길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금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는가.’
‘벗어나려 한들 내가 순순히 보내줄 것 같소?’
꺽정이는 거짓으로 사나운 기세 취하며 물었다. 그러나 사임당 또한 물러서지 않고 대꾸하였다.
‘내가 아는 임 당수라면, 그리할 것 같소. 허나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하면서도, 반드시 붙잡아둘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보여주겠지. 그럴듯한 이득이 있으면 눈앞에서 보일 것이요, 설령 겁박하더라도 힘으로 찍어누르는 대신 나름대로 타당한 논변을 내놓겠지.’
“부인이 아는 임 당수라... 하.”
그 옛날 이곳 갈대밭에 찾아왔던 꺽정이와 지금 꺽정이 다르듯, 옛날의 청석골 임 두령과 지금의 의민당 임 당수도 달랐다.
그리고 누군가 꺽정이 그에게 임 두령과 임 당수 중 어느 쪽이 되고 싶으냐 묻는다면, 꺽정이는 임 당수 되기를 고르게 되리라.
“아무래도 상전벽해 넉 자는 사람에게도 쓰일 수 있는 모양이지.”
꺽정이가 혼잣말을 던졌다. 흘러가는 강물이 대답해줄 리는 없었다.
때맞추어 멀리 의민당 깃발 펄럭이며 수십 명 장정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의민당 당원을 며칠 사이 갑절로 늘리는 정도의 재주를 보여준다면, 적어도 사임당 같은 이들이 의민당에 명운 온전히 맡기게끔 설득할 만한 근거 하나쯤은 될 터이다.
계책 자체는 사실 그리 새로운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꺽정이가 충주 파옥할 때부터 얼마 전 윤원형 집 불태울 때까지 늘 하던 수법을 조금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하는 것일 뿐.
서림이 필두로 사람이 모두 모이자, 꺽정이는 곧장 농장 가장자리, 노비와 전호(佃戶, 소작농)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로 향했다. 본래 있던 마을에 새로 노비들 들어와 사는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엉성한 집과 나름 공들여 지었으나 낡아서 무너지려 하는 집들이 고루 있었다.
“자, 시작들 하시오.”
갑자기 장정 수십이 나타나, 마치 저들 땅인 양 공터에 ‘의’ 자 깃발 꽂고 적당한 곳에 자리까지 펼치니, 망한 농사 최대한 수습하려 논밭에 나가 있던 노비들도 황급히 돌아와 경계하고, 집에 있던 이들도 빼꼼히 고개 내밀었다.
“들으시오! 오늘부로 이곳은 서원군 윤원형이의 농장이 아니오! 여기서 일하던 이들에게는 땅을 나누어줄 것이요, 만약 노비라면 그 일가 모두 양민으로 바꾸어줄 것이오! 그러니 모두 나오시오!”
“나오시오! 나오시오들!”
꺽정이 선창에 나머지 무리도 화답하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나오라는 노비들은 아니 나오고, 말쑥한 서리 하나만 튀어나왔다.
“대체 무슨 짓들을 하는 게... 요? 헉! 임 당수?”
“아, 역시 봉산에 오래 있던 사람이라 알아보는 모양이로군. 자네가 마름인가?”
“예, 맞습니다요.”
“지금 말한 것처럼 오늘부로 이 농장은 사라졌네. 땅은 나누어 논밭 없는 이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니, 만약 자네가 이 일대 농장이나 노비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문기(文記) 있다면 모두 가지고 나오게.”
“사라졌다 하심은...”
“윤원형이가 노비들 부려 개간한 이 황병곶 전지는 더 이상 윤원형이 것이 아니다, 이 말이지. 여기 보게. 이 문권이 지금 누구 손에 들려 있는가?”
꺽정이가 곧장 종이 하나를 펼쳐 보여주었다. 과연 이곳 농장에 하나, 한양에 하나 있어야 할 농장 문권 두 부 중 하나가 맞았다.
“어차피 자네도 이런 시골 농장 마름으로 인생 마치고 싶지는 않을 테지. 이만한 전지 맡아서 관리하고 있으니 나름 셈은 할 줄 아는 것인데, 우리 의민당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나?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언제 한양 올라가서 고자질할 지 모르니 봉산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으이.”
언제든 아래에 부려먹을 새 종놈, 아니, 서원(書員)을 갈구하는 서림이가 옆에서 눈을 번쩍였다.
“흐흐, 임 당수 말씀대로 지금 들어오면 섭섭지 않게 대해줌세. 언문 알고 셈도 좀 할 줄 아는 정도만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 마름도 홀랑 넘어왔다. 험상궂게 웃는 꺽정이와 그냥 험상궂은 나머지 의민당 패거리의 흉악한 기세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곧 저의 집에 들어가더니, 이런저런 종잇장을 한 움큼 들고 나왔다.
“이것이 노비들 문기, 그리고 이곳 전지 토지문기 전부입니다.”
“잘했네.”
꺽정이 손짓에, 불씨 들고 있던 졸개가 바로 앞으로 나와, 그 종이무더기에 불을 붙였다.
“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줄 서시오!”
이제 더 의심할 것도 없었기에, 다들 우르르 몰려와 줄을 섰다.
서안까지 가져다놓고 돗자리 위에 턱 앉은 서림이,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양민인가, 천민인가?”
“그, 노(奴)입니다요, 나리. 이름은 쇠똥이라 하고요.”
“오늘부터는 양민이니, 이름은 다시 지어서 다음 보름날까지 아랫말에 신고하게. 토지문기는 그때 주겠네. 자네가 지금껏 경작하던 동쪽 가장자리, 북쪽에서 다섯 번째 두락은 이제 황병곶 현(玄) 5번지이고, 주인은 자네일세.
당연히 자네 땅이니 따로 소득을 어디에 바칠 것은 없고, 단 내년부터 관에 세금은 자네가 직접 내야 하네. 다음!”
꺽정이에게 받은 농장의 양안(量案, 토지대장)이 있었기에 그리 번잡한 일은 아니었다.
“양민인가, 천민인가?”
“원래 여기 마을 살던 양민입니다. 성은 김가요 이름은 만동입지요.”
“김만동 자네도 부쳐 먹던 땅 계속 부쳐 먹으면 되네. 내달 보름날까지 아랫말에서 토지문기 받아가고. 일구는 곳은 동헌이나 농장 동쪽에서 두 번째, 북쪽에서 첫번째 두락 맞지?”
“우와, 그걸 어찌 아십니까?”
“내가 좀 잘난 사람이어야지. 이제부터 그곳은 황병곶 황(黃) 1번지이고, 자네 땅일세,”
“서 별감, 딴소리 하지 마시오.”
옆에서 꺽정이가 핀잔을 주니, 무어라 궁시렁대고서는 곧장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분배가 이루어지면 다음은 꺽정이 차례였다.
“자, 다들 들으시오! 이렇게 새로 논밭 주인이 되었고, 또 노비들은 다 면천이 되었지만, 이것이 언제 옛날로 돌아갈지 모르오! 한양에서 큰불이 나 이 농장 양안도 없어졌으니, 그대들 옛 상전이 다시금 손을 뻗쳐 그대들의 전지를 빼앗아가고 다시 노비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 말이오!”
“예?”
“아이고, 세상에... 좋다 말았네...”
“그러나 우리 의민당은 그런 일이 없도록 모든 힘을 다할 것이외다! 그러니 여러분이 우리 당에 힘을 보태주어야 하지 않겠소? 각 호(戶)에 딸린 장정은 모두 앞으로 나와 여기 이름 적고 가시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새로 땅을 받은 이들, 그리고 땅과 이름을 새로 받게 된 이들 모두 나아와 의민당 당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하여 의민당 당원 수가 단번에 백 명 넘게 늘었다.
“야, 마침내.”
그 모습 보던 졸개 하나가 뜬금없는 탄성을 내질렀다. 올해 초에 흘러들어온 신입이었다.
“뭐가 ‘마침내’냐?”
“아, 별것 아닙니다. 마침내 소인도 굴림을 당하던 쪽에서 이제 굴림을 행하는 쪽으로 옮겨가겠구나, 그 생각에 흡족해하고 있었습죠.”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올해 농사는 거의 망쳤으니, 본디 계획한 대로 이렇게 새로 당적에 오른 장정들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모아다가 굴리는, 아니, 조련하는 것에 차질은 없을 테다.
“다만 네 말에 잘못이 하나 있다. 어차피 너희 모두 나에게 굴림을 당하는 쪽인데, 굳이 너희 사이에서 누가 누굴 어찌하네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 곧바로 입이 꽉 틀어막혔다.
이윽고 황병곶에서 일이 끝나자, 꺽정이와 그 일행은 황병곶을 지나, 사리원, 봉황대, 삼지(三支) 등, 갈대밭 빼앗아 개간한 농장을 돌았다. 농장들은 모두 그날부로 사라지고 저의 논밭 지닌 이들은 크게 늘었으며, 의민당 당원도 덩달아 확 늘었다.
임 처사 말씀 듣고 왔다며 한양에서 도망쳐 오는 노비나 불한당들도 수십에 달했고, 거기에 농장 돌며 당적에 이름 올린 이도 수백이라. 이대로라면 완장 받은 사람만 쳐도 도합 이천은 넘기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돌여울(石灘)까지 강줄기 거슬러 올라가니 해가 저물고 있어, 코앞인 청석골 아랫말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해 뜨자마자 강줄기 따라 내려갔다.
밤곶(栗串), 갈여울(磨灘) 등을 차례로 돌고, 중간에 있는 남물리(南勿里)는 윤원형이 아니라 내수사에 속한 농장이었으므로 건너뛰었다.
그렇게 행렬은 밤곶을 지나 안악 쑥나루(艾津)에 닿았다.
“이제 이 일대에서는 여기가 끝이외다.”
“서 별감도 고생 많았소.”
그런데 농장 모양새가 어째 이상하였다.
“여보시오! 게 누구 없소?”
보이는 것은 빈집뿐. 집집마다 얼마 안 되는 가재 털어 급히 옮긴 티가 역력하였다.
한참 지나서야 마을 안쪽, 이곳 원래 주민들 사는 쪽에서 소란 들은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이보시오, 노인장. 나는 의민당 임 당수요.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나도 무슨 도깨비 조화인 줄 알았다오. 어제 윤 아무개, 이름이 돌손이라던가, 하여간 그런 작자 하나가 무리 이끌고 들어와서는, 한양에서 저들 ‘대감’네 집에 변고 생겨서 빈자리가 많이 늘어난 고로 새로 일할 사람을 모으고 있으니 따라오라 하더이다.
노비들은 순순히 따라가고, 한양서 일한다는 데 혹한 양인 젊은이들도 여럿이 혹해서 따라갔다오. 그리하여 하루 사이에 마을 태반이 빈집이 되었지.”
두리손 그놈이라는 직감이 꺽정이 뇌리를 스쳤다.
“그놈이 혹시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아시오?”
“한양으로 간다 했으니 한양으로 가지 않았겠소? 요 앞에 개울 건너 남쪽으로 가더이다.”
이곳 쑥나루에서 남쪽으로 가면 내수사 농장인 남물리가 나오고, 거기서 더 가면 재령 읍내다. 그곳에서 계속 남쪽으로 가면 해주가 나오지만, 남동쪽으로 살짝 틀어서 한나절 걸으면...
청석골이다.
“서림이.”
‘별감’ 떼고 심각하게 부르니, 서림도 갑자기 놀라 순순히 대꾸했다.
“예, 당수.”
“당장 발 빠른 놈들 추려서 연통 돌리시오.”
“무어라 알리면 되겠소?”
“적. 적이 나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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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원은 명종의 정비인 인순왕후의 조부입니다. 인순왕후의 동생 심의겸이 바로 동서 분당의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에, 『실록』에 실린 그의 인물 평도 사관의 당색에 따라 상반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서인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은, 그의 사람됨이 온순하고 관료로서 어느 정도 능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주관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딱히 권력욕은 없었지만 재물욕은 상당하였다는 점입니다.
반면 그의 동생 심통원은 훨씬 권력욕이 강했고, 명종이 자신의 외삼촌 이량(李樑)을 친위세력으로 육성할 때 여기에 영합하여 함께 윤원형과 경쟁하였습니다. 그러나 윤원형과 이량·심통원의 경쟁에서 최종 승자는 바로 이준경이었고, 윤원형이 몰락하자 곧 심통원도 삼사의 사림들에게 탄핵당해 실권을 잃게 됩니다. 이준경에 의해 하성군이 선조로 옹립된 후, 심통원은 이이의 줄기찬 탄핵을 받아 끝내 삭탈관직을 당하게 되지요.
중·명종대에 형성된 농장은, 보통은 대규모 전지를 보유(또는 수탈)한 양반가들이 지주 노릇을 하고, 주변 촌락에 거주하는 소농과 외거노비들이 이를 경작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황해도의 경우, 본래 있던 갈대밭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개간한 뒤 사유화하는 식으로 농장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작중에 나온 것처럼 노비들의 집단거주지도 함께 존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갈대밭 사유화와 개간은 이전에도 언급된 것처럼 황해도의 미곡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으나, 동시에 갈대밭에서 나오는 갈대로 생계를 영위하던 인근의 농민들에게는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직접 개간하지는 않더라도 갈대밭을 사유화하여 이용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임꺽정이 반란에 준할 만큼 세력을 키우는 한 가지 원동력이 되었지요.
1553년에는 권세가들이 사유화한 갈대밭 일부를 – 시기로 보았을 때 그 무렵 몰락한 이기, 허자 또는 그들의 일파가 보유한 갈대밭이 아니었을까 의심됩니다 - 환수하여 다시 공유지로 돌리는 조치가 시행되려 하였으나 흐지부지되었고, 환수 대상이었던 갈대밭은 그대로 내수사 소유가 되었습니다.
한편, 꺽정이와 서림의 토지분배에서 언급되는 지번 등의 양식은, 조선시대 양안(量案)에서 자주 쓰이던 것입니다. 관에서 토지를 조사할 때 만드는 일반적인 양안뿐 아니라, 내수사 궁방전에서 만드는 양안, 개인 소유의 대토지에 대해 만드는 양안 등이 대체로 비슷한 서식을 따랐지요. 즉 자호(字號, 천자문 글자 순)와 지번(地番)으로 번호를 매기고, 보조 자료로 양전의 방향이나 토지의 형태, 척수를 기재하며, 그 다음 토지의 등급과 결부(結負) 수, 경작 상태, 인접한 다른 논밭과 지형지물(이를 사표四標라 합니다), 그리고 토지의 주인과 실제 경작자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