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군주민수 (2)
의민당 임 당수께옵서 한 번 출진하시니 장단부사 조아무개의 오천 병세가 호령 한 번에 무너지더라.
그것이 예성강 서쪽에 퍼지는 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야 편하게 되었구나.”
“흐흐, 그렇습죠.”
일전에 윤원형 집 털 때 함께 했다가 한양에 발 붙일 곳 남지 않아 의민당 들어온 뒷골목 무뢰배 출신 양벽(楊碧)이 음흉하게 꺽정이 옆에서 웃었다.
대저 흑의군 속한 이라면 우락부락하기 마련이었는데, 이 양벽은 그 중에서도 유별나게 생긴 것이 험상궂어, 아마 지나가다 어린아이 울리기로는 의민당에서 꺽정이 버금갈 터였다.
그런 놈이 제 버릇 못 버리고 낄낄대고 있었는데, 꺽정이 따라온 다른 졸개들도 함께 저 좋다고 웃고 떠드느라 양벽이고 소지붕이고 알 바 아니었다.
“야, 이게 대체 몇 섬이냐!”
“배 터지게 먹고 또 먹어도 한 일 년은 먹겠다!”
꺽정이가 우봉 나루터에서 조안국이 망신 준 이야기가 어느새 이곳저곳에 퍼졌는데, 그래서 배천군수 염 아무개는 꺽정이가 강음 읍내 나서자마자 부리나케 옆 연안(延安)으로 도망하였다.
나라에서 분명 급히 명하기를, 흉적 임가의 무리와 접변하고 있는 고을 수령들은 반드시 그 방비를 단단히 하라 하였다는데 – 의민당과 한통속인 배천 아전이 알려주었다 – 그 염 아무개는 저의 두 발만 단단히 채비해둔 모양이었다.
여하간 그리하여 이곳 금곡포창(金谷浦倉)은 지키는 이 아무도 없이 홀라당 개문(開門)하게 되었는데, 의민당 도적들도 결국 같은 조선 사람이라 눈앞에 쌀 가득한 것을 보면 눈이 안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야, 이놈들아! 저게 네놈들 것이냐? 네놈들 몫도 적당히 떼어줄 테니 얼른 옮기기나 해라.”
“예, 당수님!”
금곡포창에 딸린 조졸(漕卒, 조운선 선원) 삼백 명 중 의민당의 양천 구분 없앤다는 말에 감응한 자들 적지 않아, 제 발로 나와서 조창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조졸들이냐.”
“예, 나리!”
“나리는 무슨. 그냥 당수라 불러라. 자, 얼른 옮겨라!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모두 강음으로 옮긴다!”
어차피 관군이 밀고 들어오면 바로 떨어질 배천 땅이다. 이쪽에 있는 의민당 당원들 피신도 시킬 겸, 조창의 쌀은 쌀대로 털어가고 조운선은 조운선대로 몽땅 강 위로 몰고 올라가면 저쪽도 어지간히 약이 오르리라.
곧 쌀 모두 옮기고서 조졸들이 노 잡아 격군 노릇을 하기 시작하니, 배가 천천히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어? 당수님, 저기 옆에 보십쇼.”
“왜, 뭐냐. 엥? 아하하하!”
꺽정이가 고개 돌리고 곧장 폭소하니, 뭔 일인가 궁금하여 돌아본 다른 졸개들도 함께 폭소하였다.
저쪽 강가를 지키던 병졸들이 넋 놓고 쌀 싣고 가는 배를 구경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하! 느그들 집엔 요런 것 없지?”
“배고프면 얼른 넘어와라! 개성 놈들은 물에 빠지면 입만 뜬다니, 입으로 푸푸 숨 쉬며 자맥질해 오면 될 것 아니냐?”
돼지여울 뱃사공 아무개가 하루아침에 관복 입고 돌아다니는 몸 되었더라 하는 소문도 퍼졌기에, 이 일대 사공이라면 가뜩이나 의민당에 속하든 그쪽과 교분 있든 하던 판에 이제는 죄다 강 서쪽으로 적을 옮기고야 말았다.
그런 차에 이 조운선까지 끌고 올라가고 있었으니, 이제 저기 벽란도와 창릉포에 남은 거룻배와 쪽배 몇 척이 저쪽이 쓸 수 있는 배의 전부일 테다.
“흐흐흐. 이게 바로 스무 섬이지.”
그저 우리네는 쌀 많고 저쪽은 손가락만 빨고 있는다며 놀리는 재미에 빠진 졸개들과는 달리, 꺽정이는 이 배를 챙겨가는 것이 더 고소하였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병법에 이르기를 남의 쌀 뺏어먹으면 한 섬이 스무 섬 값이라 하더라. 그게 뭔 뜻이겠냐? 쌀은 그대로 한 섬이지만, 남 놀려먹는 재미가 열아홉 섬 값어치를 한다, 그 뜻이지.”
“이야, 그런 것도 아시고, 역시 두목, 아차, 당수님 대단하십니다요. 이러다가 정말 나중에는 나랏님도 되시는 것 아닙니까?”
밑바닥 굴러도 한양에서 구르던 놈이라, 아첨도 퍽 규모가 컸다. 듣는 사람이 범상한 도적이면 실없는 소리 한다며 껄껄 웃고, 어지간한 선비라면 귀를 씻겠다며 여기서 강물에 풍덩 할지도 모르지만, 꺽정이는 잠깐 멈추었다.
“뭐라?”
역적 모의를 했다고 수많은 무고한 이들을 잡아 죽인 조선국이었건만, 정작 제대로 된 반란은 세조 연간에 길주 사람 이시애가 작란(作亂)한 이래 없었다.
그토록 사람을 억지로 잡아 죽였으면 언제고 이대로는 순순히 못 죽는다며 한 번쯤 들고 일어날 법도 한데, 지난 팔십여 년을 내내 가만히 앉아 당해 왔으니, 조선국 인심 순량함이 이와 같았다.
그리고 이제 무언가 일어났다.
발단은 장단부사 조안국이 올린 장계 한 통.
“미신(微臣)이 나라의 위엄을 떨어뜨린 죄는 실로 사죄(死罪)이오나, 적도의 세가 저처럼 강성함은 마땅히 살아 돌아와 알림이 가당하다 여기었기에 구차하게 살기를 도모하였나이다...”
차마 도망도 제대로 못 치고 붙잡혀서 그 굴욕을 당했다 밝힐 수 없던 조안국은 곧장 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어느새 적당이 우봉까지 나아왔기에 오백 군사를 이끌고 대적하였으나 끝내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임거정은 참으로 표한(剽悍)한 자요, 거느린 것은 모두 강포한 무리라. 머릿수가 같았어도 겨우 버텼을 것을 저쪽이 세 배나 되었으니 끝내 힘이 다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신하가 되어 도적에게 붙잡히는 욕을 당할 수는 없고, 전황 좋지 않자 바로 도주한 패두 이억근과는 달리 누군가는 살아남아 이 일을 조정에 고해야 한다 여겼으므로, 부득불 백성의 옷을 훔쳐 입고 우봉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쓰면 저쪽에서 적당히 알아서 저의 공은 알아주고 자신이 망신당했음을 아는 이억근이나 우봉현감은 벌을 받을 것이라 여겼는데, 사람이 거짓을 말해도 과하면 아니 되는 법.
“무어라? 임거정의 군세가 일천오백이 넘는다고?”
“그것도 하나같이 저 북병(北兵, 북도 군사) 두엇 몫은 할 만큼 힘이 장사라더군. 그래서 관군 오백이 한 각도 못 버티고 패주를 하였다네.”
도성 지척에 그런 무리가, 그것도 그 소굴 봉산에서 한참 떨어진 우봉까지 그만한 병력을 데리고 나왔다 하니, 한양의 유유자적하는 무리들은 절로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이시애의 난 전후로도 정말로 조정 뒤엎고자, 심지어 임금을 바꾸고자 모반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대개 뜻한 바를 이루었으므로 역모라 부르지 않았다.
그저 정난(靖難)이나 반정(反正)이라 부를 뿐.
그렇다면 ‘의민당의 난’은 후대에 무엇으로 불릴 것인가?
사오월 우박과 서리로 인해 이미 한 해 농사 망친 판에 황해도에서 들어오던 곡물마저 끊기며 나날이 미곡 값이 치솟는 도성에서,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궁리할 여력 되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실컷 하더라도 족히 다른 나랏일 맡아 할 만큼의 재주 있는 이준경은, 차라리 저에게 그런 재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잠시 그런 고민을 하였다.
“당장 대병(大兵)을 내어 들이쳐야 할 것이외다! 도성 백성들이 크게 놀랐으니...”
“그 말씀이 옳소이다. 아무리 의민당이 드세다 하나 도적 무리임은 변함이 없소. 대병으로써 단숨에 제압하면 생령이 덜 상할 것이요, 저들 또한 두려워하며 엎드려 죄를 받을 것이니, 이것이 상책 아니겠소?”
‘도성 민심을 언제는 그리 귀하게 여겼는가’ 냉소 잠시 품은 뒤 흩어 없앴다.
백성이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황해도에서 곡식 들어오는 것이 끊기고, 역적 무리 당수가 무슨 신장(神將) 같은 작자라 하고, 이제는 그 황해도 역적들이 쌀로 세수를 해 가며 강가에서 배 곯는 병사를 희롱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으므로.
“어차피 도적들입니다. 얼마나 가겠습니까? 예로부터 도적의 무리는 수없이 있었으니, 가만 두면 스스로 쪼개지고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 듣기로 그 흉당이 삼 년을 산속에 머물렀다 하였소. 세 해를 들키지 않고 버틴 이들이라면, 우리가 고작 몇 달을 기다린다 한들 변함이 있겠소이까?”
어지간하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윤원형이었지만, 딱 한 가지 일에서는 반드시 손을 대곤 하였는데 바로 병무(兵務)였다.
그러므로 조정에 조안국 패전한 소식 들려온 뒤 ‘유사(有司)에 전하여 대책을 아뢰게 하라’ 하는 지시 내려왔을 때, 병조 궐내각사에 모인 무리들은 태반이 윤원형의 패거리요, 개중 그나마 깜냥 갖춘 이가 오위도총부 부총관직을 겸하여 그의 옆자리에 앉은 진복창일 정도였다.
그러니 오가는 말이 참신하고 그 꾀 절묘하기로는 조선국의 뒤에서 제일이었다.
“... 우리 대조선국의 군적에 오른 장정이 삼십만이 족히 넘소! 삼십만! 그중 십분지일만 모아도 삼만. 이들을 나누어 네다섯 군데로 병진(竝進(동시에 진격)케 하면, 도적이 암만 날래다 한들 어찌 대항하겠소이까?”
딴에 군무 밝다 주장하는 진복창이 목청을 높였다.
“나라의 위엄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 멀리도 아니고 바로 해서(海西)에 있거늘, 군사를 키워 어디에 쓴다는 말이오? 당장 삼사만이라도 모아서 쳐들어가야...”
끝내 못 참은 이준경이 한 마디 했다.
“그것이 그리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래도 이준경쯤 되는 사람 앞이면 어지간하면 하대는 못 하였다.
“군량이 없소.”
“...”
진복창이 절로 풀썩 앉으니, 그동안 가만 앉아 있던 윤원형이 입을 열었다.
“경창(京倉, 도성의 조창)을 열 것이외다.”
“아니, 경창 말씀이시오?”
“경곡(京穀, 경창에 저장된 곡식)도 이제 빠듯할 지경인데...”
의외로 같은 윤원형의 편 중에서도 걱정하는 이들이 꽤 나왔다. 어쩌면 정말로 백성을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대개는 흉년에 경창의 쌀을 받아서 겨우 먹고 사는 인근의 군현에 음서로 출사하여 수령으로 있는 친족들을 걱정하는 말일 테다.
“동고(東皐, 이준경의 호) 그대는 군무에도 밝다고 들었소. 내 조안국은 잘못 보아 성상과 대비전에 무안하게 되었으나, 그대는 그때도 이 사람이 인선 잘못하였음을 지적하여 주었지.”
무언가 서늘한 눈길이 이준경에게 와 닿았다.
“이리 함은 어떻겠소? 경군과 잡색군, 그리고 평안도 군사를 합쳐 오천을 냅시다.”
“오천이라... 그 정도면 우선 가하다 할 만큼은 될 듯하오. 단, 병력을 나누어서 요해(要害)를 점거하고 흉당이 더 뻗어나오지 못하게끔 하는 정도를 넘기기는 어려울 테요.”
이미 그 총명한 머리는 황해도의 지도를 마음속으로 그리고, 황해도 곳곳의 수영(水營)과 연계하여 해주를 치고 들어가는 쪽 하나, 마병(馬兵) 이끌고 북에서 내려와 황주를 치는 쪽 하나, 그리고 우봉과 강음 사이 지키며 계속 의민당 압박하는 쪽 하나라는 계획까지 짜고 있었다.
“군중(軍中)의 일을 이 전각 안에서 논한들 얼마나 밝게 헤아릴 수 있겠소이까. 다만 분군(分軍, 군대를 나눔)은 참으로 현책(賢策)인 듯하오.”
윤원형이 웬일로 순순히 이준경의 말에 따른다 싶더니, 곧 그 속내가 드러났다.
윤원형이 토포사(討捕使)로 이기를 탄핵했다가 쫓겨난 이준경의 형 이윤경(李潤慶)을 추천한 것이다.
그 속내가 무엇인지 아직은 짐작할 수 없으나, 반드시 좋지 못한 것이리라 여기며 뒤늦게 이준경은 노여워하였다. 그러나 복수(覆水)는 불반분(不返盆)이라.
인화(人和)라는 게 말이 거창한 것이지, 파자하면 결국 벼(禾)가 사람 입(口)에 닿아 있는 것이다.
바깥에서는 어째 소문이 갈수록 이상하게 퍼지는 듯하였으나 – 꺽정이는 그리 개의치 않았다 – 어쨌든 우봉에서 벌어진 금번 ‘난’의 첫 싸움에서 싱거운 승리를 거두었다. 적어도 의민당이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구나 생각한다면, 절로 안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조창 털어 챙겨온 세곡을 풀어 네 고을 동헌 앞에서 같은 날 같은 시에 잔치를 벌였으니, 어절씨구 덩실덩실 어깨춤들 절로 나오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하였다.
대개 조창의 세곡이라 하면 맨 앞과 맨 위를 제하면 겨와 모래가 절반쯤 섞여있기 마련인데, 서림이는 역시 큰물에서 놀다온 사람이라 그런 얄팍한 술수 따위 부리지 않았다.
그냥 장부를 통째로 지어내고, 쌀 한 섬 있는 것을 두 섬 있다고 우긴 다음 장부 들고 있는 이를 의민당의 편으로 끌어오면 그만이지, 무엇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한다는 말인가.
덕분에 이 난데없는 잔치는 더욱 흥이 돋았다.
“헤헤, 바보들. 어차피 오늘 먹은 만큼 또 다 세금으로 뱉어내야 할 텐데,”
거나하게 취한 서림이 꺽정이 뒤에서 실실 웃었다.
“흐흐. 조정 사라졌다고 세금도 사라질 줄 알았다면 한참 잘못 생각들 하고 있는 게다...”
“거 대체 얼마나 마신 게요?”
“아... 사람이 암만 모질이라도 재주 하나씩은 있다더니, 우리 군수 나리께서 말술이시더이다. 언제고 당수도 한 번 가서 대작을 해 보시오.”
하면서 비틀비틀 어딘가로 사라지는 서림이었다.
다들 거나하게 술기운 올라, 누군가는 꽹가리 꺼내와선 꽹꽹꽹 마구 때리고, 좋다고 유기그릇 따라서 두드리다가 안사람에게 한소리 듣는 작자도 그 옆에 있었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름 밝히고 돌아다니기 오랜만인 이지함도 간만에 근심을 잊고, 어디선가 나타난 황진이는 신사임당과 함께 여기저기 쏘다녔다.
“하하, 그래. 인화가 별 건가.”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꺽정이에게도 있었다.
“거, 사형. 어째 사람들이 다들 죽을상인 것 같소? 숙취 제하고 생각해봐도 다들 표정 침울한 듯한데.”
다음날 아침, 꺽정이가 눈 비비고 일어나 이지함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의민당 안에 장수 노릇할 사람이 아직은 꺽정이 하나에 겨우 급하면 이지함 불러다 쓸 정도요, 이지함은 싸움박질 외에도 할 일이 매우 많은 고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은 당수의 몫이었다.
아무래도 그로 인해 임 당수가 축지법도 쓴다는 말이 나도는 듯하였는데, 이미 퍼졌으니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좌우지간 그래서 봉산군 읍내는 꽤 오랜만에 들리는 셈이었는데, 어째 사람들 표정이 음울하였다.
인화 북돋겠다며 승전보도 한 통 들고 오고, 쌀까지 가져와 (사실 그들이 낸 세곡으로 생색내는 셈이지만) 나누어주었는데, 전날보다 이튿날에 사람들 얼굴이 더 어두웠다.
“아마 슬슬 깨닫는 것이겠지. 우리가 조금 서둘러야 하겠다. 나도 처음엔 네 생각처럼 사람들 모아다 좋은 말 한두 번 하고, 재물 들려주고 우리 힘 보여주고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다른 수를 강구해야 할 듯하다.”
“거 무슨 말씀이시오?”
“저들이 무엇을 위해 우리를 따르고 있는 듯하더냐? 처음에 네가 그 교서 들고 난리 피웠을 때 감흥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
“그건 아닐 테고,., 아마 이것저것 있지만 가장 크게는 두려움 아니겠소? 지금 이렇게 겨우 살림 펴서 잘 먹고살고 있는데, 빼앗기면 큰일이라는 두려움.”
“잘 아는구나. 헌데 그 외에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까? 당장 우리네가 어떤 나라 만들기로 했는지 그 의미 아는 이는 둘째치고 들어보기라도 한 이가 드물 터인데. 설령 들었더라도 그냥 여간히 좋은 말이겠거려니 할 뿐.”
그제야 엊그제 저더러 나랏님 되실 거 아니냐며 기이한 농 던졌던 양벽이가 떠올랐다.
이지함 말마따나, 지금 의민당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아는 이는 황해도 안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테다. 등장에 수결한 그들 다섯 정도를 제하면, 한양에 있으니 셀 수 없는 병해, 그리고 지금 꺽정이 눈앞에서 부스스한 채로 우물가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어젯밤 하얗게 불태운 사저 황진이 정도 아닐까.
그리고 지금 의민당 당원들과 백성들 통틀어, 등장에 수결하며 맹세한 내용을 백 번 듣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는 자가 거의 없을 터였다.
“이거 곤란한데... 그저 저의 재산 잃을까 두려워서 따라오는 이들은 오래 못 버티오. 처음에야 듬직해 보이지만, 나중에 재산이냐 목숨이냐 걸리게 되면 백이면 백 목숨을 택하거든. 그쪽이 더 두려우니.”
“내 말이 그 뜻이었다. 그 ‘백성의 바다’ 계책대로 하려면 어쨌든 일대 백성 모두가 필요할 터인데, 이대로라면 곤란하지.”
“뭐 뾰족한 수 없소, 모주님?”
“있기야 하지. 있기는. 그런데 그 수를 지금 쓰기에는 너무나 요원하다.”
어느 세월에 그와 이이가 논쟁하며 깨우친 것들, 더 좋은 나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저 백성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해주에서 도망쳐온 글방 서생들 있지 않소?”
“그들도 수효가 얼마 되지 않거니와, 또 그들 역시 그리 문리가 밝지 못해 우리 뜻을 잘 따라오지 못할 터이다. 틀리거나 비틀지 않고 그대로 읊기만 해도 다행이랄까.”
“그럼 이를 어쩐다...”
“말은 쉬워야 하고, 또 외우기는 좋아야 하며, 너무 거창하거나 너무 까다로워서도 아니 되는데, 그렇게 해서 단숨에 수천 수만을 가르쳐야 한다니 이 가한 일이더냐.”
“어, 그거 꽤 쉬운 일인데?”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거문고 꺼내 줄 튕기고 있던 황진이가 곁에서 말을 붙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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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에서 일하던 조졸은 신량역천에 속하여, 직역을 대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름과는 달리 물가에 있으면서 어로, 자염 생산 등 다른 잡역을 함께 맡는 경우가 많아, 실로 고된 일을 많이 하는 계층이었지요. 결국 조운의 민영화 추세와 더불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상 조졸인 사람들 중 사공과 격군을 따로 뽑고, 다른 이들은 별도로 신공(신역조)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여담으로 이들도 어쨌든 ‘졸(卒)’이기 때문에, 직책의 이름도 군인스러웠는데, 조운선 30척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는 천호(千戶), 10척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엉뚱하게도) 통령(統領)이라 불렀습니다.
이윤경은 동생 이준경과 함께 문무를 겸전한 인재로, 을묘왜변 당시 영암성을 방어해낸 것으로 이름이 높지요. 한때 아들 이중열이 대윤 잔당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연루되어 사사당하고, 본인도 이기를 탄핵하다가 쫓겨나는 등 불행한 노년을 보내던 그는, 을묘왜변 이후 명종의 신임을 얻어 황해도·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