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48화 (48/259)

16.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2)

임금은 정사를 돌본다.

그가 처결해야 할 일은 산더미요, 마음 써야 할 곳은 팔도 전체다.

마침내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 그의 손으로 이 대업(大業)을 맡게 되었다.

처음 친정할 때의 짜릿함도, 두려움도 며칠 지나니 둔해졌다. 믿음직한 외숙부가 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그동안 그의 나라는 한껏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외숙부가 황해도의 역적이 얼마나 강성하며 또 간악한지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가만 있으면 알아서 평정되리라 낙관하고 있거나, 아니면 식견 좁은 몇몇 대신들의 말을 따라 역적에게 도리어 벼슬을 제수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외숙부가 찾아와 아뢰기를, 이처럼 비상한 시국에는 마땅히 조처하는 바가 있어야 하니, 조종의 기업(基業)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군(人君)이 직접 나서야 한다 하였다. 조만간 어머니도 철렴의 뜻을 밝힐 터이니, 그 뜻대로 하겠노라 밝히고 친정의 어심(御心)을 드러내면 된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대로 하였더니 저절로 이렇게 되었다. 대비전으로부터 잠시 걱정하는 말이 나오기는 하였으나, 외숙부가 몇 번 오가며 수습한 뒤에 오해가 풀리고 그 뒤로는 임금인 그의 발목을 잡는 말이 - 적어도 같은 궁궐 내에서는 -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신료들은 여전히 반대하는 말을 내놓았다.

그는 신료들의 말을 가납하여, 황해도에 친정(親征)까지는 하지 않겠노라 약조하였다.

그들이 또한 병력 내는 것을 걱정하기에, 당장 대병을 일으키는 대신 가을걷이가 모두 끝날 무렵까지 기다려 각지의 수령방백이 준비할 겨를을 주겠노라 하였다.

그랬는데도 아직 볼멘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언관들 중에는 그의 외숙부를 콕 집어 힐난하는 자도 있었다.

“신이 불민하여 이처럼 성덕에 누를 미치니 참으로 송구할 따름입니다.”

“어찌 그것이 경의 잘못이겠소?”

그 탄핵하는 말이 나오자마자 외숙부가 찾아와 자신이 언관들의 지탄 받는 연유가 무엇인지를 소상히 밝혔다. 이미 스스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홀로 판가름할 만큼 장성하였다 자부하는 임금이 보기에는 윤원형의 말이 더 옳았다.

그가 이르기를, 세상의 일에 음양이 나뉘듯, 정도(正道)와 권도(權道)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둘 중 하나만 취할 수 있다 주장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자이거나, 남을 속이려는 간악한 자라고도 하였다.

“... 신은 그리하여 사직을 위하여 권도를 택하였고, 그로 인하여 금일 이렇게 주상을 시위하며 사직에 미력(微力)이나마 보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임금 자신의 즉위에 힘을 보태어 공신의 으뜸이 된 외숙부와는 달리, 저들 사림은 돕는 것 하나 없이 누군가를 헐뜯기만 하고, 그저 스스로 고고한 척만 하였다.

저것이 바로 외숙부가 말한, 정도와 권도 중 하나만 취할 수 있다 말하는 자들이리라.

그것을 스스로 알아냈다 자부하는 임금이었기에, 언관들은 물론이요 그들을 비호하는 대신들이 하나같이 몰려와 대병을 일으키기 어려움을 간할 때 단호하게 내칠 수 있었다.

“이미 나라의 곳간이 비어 쌀 한 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백성은 한 해 걷어 겨우 한 해 연명하다 흉년이 닥치면 그대로 쓰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금년은 그나마 봄에 한해(寒害)가 닥친 이후 다른 재변은 적어, 백성들이 겨우 기장과 조 따위를 심어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두 걷어 병량(兵糧)으로 쓴다면, 어찌 이번 겨울을 버티며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에서 세곡 외에 따로 군량을 걷는다는 말이 이미 여항(閭巷)에 널리 퍼지니, 민려(民黎, 서민)가 크게 놀라 간혹 심산유곡에 숨기도 하고, 또 굶어죽기보다는 창칼에 죽겠노라며 무엄한 말을 내뱉고도 있습니다. 나라를 평안케 하려는 성상의 지극한 뜻은 명백히 드러났으니, 바라건대 황해도를 대병으로써 진압하는 일은 재고해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런 상언이 올라오기 무섭게, 이번에는 각지 군현에서 장계가 따라 올라왔다.

어느 고을에서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세곡 걷으러 오는 이들을 때려 쫓아냈다더라. 또 어느 고을에서는 굶주린 백성이 무리지어 관고(官庫)를 부수고 도로 곡식을 가져갔다더라.

“이것이 모두 황해도를 뒤덮은 반적(叛賊)의 폐해입니다. 나라가 지난 백여 년간 평온하여, 백성들이 나라의 위엄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로 인하여 한 번 국위(國威)를 업신여기는 무리가 일어나자, 따라서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릇 풍흉(豐凶)이란 해마다 달라지는 것이니, 흉년에 큰 국사(國事)를 일으킨다 하여 저렇게 광패한 무리가 들끓는다면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 나라 안에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초 이래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으니, 이로써 팔도가 소란한 것은 하늘이 재변을 내리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역심 품은 무리를 제때 잡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답답한 임금의 마음이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은 뚫렸다. 다행히 이렇게 종종 찾아와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외숙부도 있고, 또 외숙부의 모범을 따라 군신(君臣) 간의 도의를 지키는 신료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지금 잠시 나라가 혼란하다 한들, 곧 대본(大本)이 바로잡히면 비로소 나라의 위엄을 다시 깨닫고 정난(靖難)할 수 있게 되리라.

그때가 되면 충직한 외숙부에게도 공신 자리 하나쯤 더 주어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어린 임금은 마치 그것이 순수하게 저의 머릿속에서 나온 발상인양 여기고 있었다.

올 계추(季秋), 상강(霜降) 무렵에 수만 대군을 모아, 사로병진(四路竝進)으로 단번에 황해도를 평정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적은 혼란을 즐긴다.

눈앞에 여기저기 널린 사람과 말의 주검을 보며, 임꺽정은 참으로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보아라. 마병(馬兵)이고 북병이고 무서워할 것 무에 있느냐?”

“이리 쉽게 무너질 줄이야 알았겠습니까요. 그저 말 타고 다니는 이들이라 하면 당해낼 재간 없겠거려니 여기고서, 실지로 적대해볼 생각은 꿈에도 못 꾸었습죠.”

이곳 철화(鐵和) 지키던 의민당 패두 박덕봉이가 말했다.

황주 읍내에 북쪽에서 내려온 마병 이백이 합류하여, 봉산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호시탐탐 건드리고 있다 하기에, 이쪽 강변으로 유인하여 도륙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기회에 꺽정이도 지난날 구월산에서 생각만 해보고 실제로 옮기지는 못하였던 병법을 실험해볼 생각이었다.

“이놈, 게 섯거라!”

“잡았다!”

“헤헤, 퍽 오래도 도망을 다녔구나.”

뻘밭이 된 들판에서 끈덕지게 의민당 졸개들을 피해다니던 마병 하나가, 마침내 장창에 맞아 낙마했다.

철화 옆의 복자섬(鐥島)은 내수사에서 개간하여 이름만 섬으로 남고 실제로는 그냥 논밭이 되어 있었는데, 의민당이 빼앗은 뒤 강둑을 무너뜨렸다. 급수문(急水門) 쪽에서 금방 강물이 역류하여, 황주에서 산을 거치지 않고 봉산 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인 이곳 철화는 이제 온통 뻘밭이 되었다.

멋모르고 황주 읍내에서 유인을 당해 이곳까지 달려온 이백 마병은 그러므로 말 그대로 진창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제야 뒤늦게 활을 쏘며 철화 길목을 돌파하려 해보았으나, 미리 가져다 놓은 섬 – 자갈과 모래 따위를 넣어 채웠다 – 의 벽에 막혀 화살 하나도 사람 살점에 박히지 못했다.

그때 강변 갈대밭에서 대기하던 의민당 졸개들이 장창 들고 마병들 옆과 뒤쪽에서 우르르 나타나니, 결국 이백 마병 중 태반이 달아나지 못하고 이렇게 절명하였다.

“그나저나 저 장창은 다 어디서 난 것입니까요? 꽤 요긴할 듯한데...”

“이번에 수군 녀석들이 대거 들어오지 않았더냐. 그쪽에서 나중에 노로 만들어 쓰려고 마련해두었던 나무가 적지 않더라. 노나 삿대가 되어야 할 나무줄기가 창대로 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저것만 있으면 관군이 암만 온들 두려움이 없겠습니다. 고갯길 막고 지금처럼 쌀섬으로 몸을 가린 다음, 도리깨랑 저 장창으로 푹푹 찌르고 때리기만 하면 백날 용 써봐야 못 뚫겠지요.”

“그야 그렇겠지만, 내 늘상 말하는 것처럼 정면으로 대적하는 건 어지간하면 피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백 대 일이백이 붙는 게 아니라, 수만 대 수만으로 부딪힌다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지지.

내가 손수 때려가며 조련한 너희들이고, 또 너희가 손수 굴려가며 조련한 저들 당원들인데, 재수 없게 정병(精兵)을 만나 죽어 나자빠지면 꽤나 억울하지 않겠냐? 이왕이면 가장 치사하게 싸워야지.”

이곳 봉산과 서흥, 평산 등지에서 벌어질 결전을 꺽정이가 언급하니, 박덕봉도 조금은 말투가 가라앉았다.

조정에서 수만 군세를 데리고서 올 겨울 되기 전 밀고 들어올 것이며, 그때 결판을 낼 것이라 하였다. 두렵지 않다고 하면 그야말로 거짓말일 테다.

“내 너희에게 늘상 말하지 않았냐. 하필 우리와 싸우게 된 저쪽 재수없는 놈팽이들 입에서 우리네 부모님부터 시작해 사돈의 팔촌까지 싸잡아 욕이 나오게 해야 비로소 제대로 도적답게 싸우는 것이다.

그리 싸우면 수만이 몰려온다 한들 기어코 이겨낼 수 있다.”

꺽정이가 말할 때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체가 널려 있고 주인 잃은 말이 홀로 히힝대는 싸움터에서 들으니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하물며 수만 관군을 대적한다는 말까지 덧붙였으니,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평소라면 꺽정이한테 제대로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을 법한 질문도 이렇게 던지게 되었다.

허나 꺽정이는 무심하게 답했다.

“야, 이놈아, 방금 전에는 관군이 얼마가 오든 두려워할 것 없겠다던 놈이 무슨 의심을 품고 있느냐? 그리고 이 짓 말고 우리에게 뭐 다른 길이 있느냐? 옛날로 돌아가고 싶으냐?”

그 옛날 배 주리던 시절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자, 대꾸가 금방 나왔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수천이라면 모를까 수만이라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만큼 사람 모인 꼴을 본 놈들이 우리 중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기야, 꺽정이 전생 말년에 구월산 에워쌌던 관군도 머릿수로 따지면 끽해야 일만 언저리였을 것이다.

아무리 이번 가을걷이 서두르면서 장정들 조련하고 산성에 곡식 옮기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쪽은 잘해 보아야 황해도 한 도의 힘을 모으는 데 그치는 반면, 저쪽은 나머지 일곱 도를 쥐어짜서 힘을 끌어모으고 있을 것이었다.

“네놈도 원래는 도적 출신 아니었냐? 네가 보았던 그 관군인데 머릿수만 늘어나고, 개중 백에 한둘 꼴로 좀 센 놈이 있는 정도다.

그리고 너는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 당이 여기저기에 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니, 조만간 남은 일곱 도 중에 한둘 쯤은 소란 일어나서 조정의 손을 벗어날 것이다.”

이지함이 내었던 꾀를 생각하며 꺽정이가 말했다. 솔직히 얼마나 효험이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었고, 이지함도 그냥 조정의 뒷통수를 간지럽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일곱 도 중 한둘쯤 이탈하리라는 것은 희망 한껏 담아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요 꺽정이가 그런 말을 하니, 입을 떠날 때는 빈말일지라도 귀에 닿을 때는 무게가 묵직하였다.

“오,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오늘 본 것이나 잘 머릿속에 담아두어라. 나중에 다른 장정들 데리고 조련할 때 써먹어야 하니까. 이제 한 달이 채 안 남았다.”

“예, 당수님.”

박덕봉이 반색하며 고개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다.”

그리고서는 꺽정이는 그 솥뚜껑만한 손으로 박덕봉이의 뒷통수를 가볍게 한 대 후려갈겼다.

“이건 의심한 값이다, 이놈아. 다른 졸개들 귀도 있는데 어디서 의심질이야, 의심질은.”

그러나 어째 옛날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선비는 세상을 걱정한다.

그러므로 풍기군수 이황은 하루도 근심과 우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단양군수로 있던 중, 형 이해가 충청도, 아니, 청홍도관찰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상피(相避)하여 이곳 풍기군으로 임지를 옮겼다.

한양에서 더 멀어져 죽령을 사이에 두었으므로, 이제는 조금 조용해질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리, 서책 장수 장가가 찾아왔습니다.”

“들라 하게나.”

이 어지러운 시국에 약간의 고식(姑息, 잠깐의 안식)이 있다면, 그나마 서책이 근래 많이 유통된다는 점이 있었다.

성현의 말씀 담은 경전을 포목이나 미곡과 바꾸는 것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었으나, 반대로 성현의 말씀이 아닌 글, 예컨대 근래 나도는 육왕의 설(陸王-說, 양명학) 같은 것은 잡된 무리가 마음대로 사고 팔아도 그리 문제될 것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그것마저 내치기에는 그들이 들고 다니는 서책이 너무나 이황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하여 사재를 털어 근래 나오는 책을 사들이고, 자신이 일독한 뒤에는 백운동 서원에 그대로 전하곤 하였다.

“군수 어르신, 그간 기체 무양하셨습니까.”

이황이 단골이기도 하고, 또 워낙 사람이 좋아서 아랫사람 대할 때도 언행을 인자하게 하므로 책장수 장가도 공손히 고개 숙이며 안부를 물었다.

“그래, 자네도 고생이 많네. 이번 상행에서는 무슨 서책을 가져왔는가?”

“그것이... 선비님들께서 좋아하실 만한 것은 없고 모두 통속(通俗)의 글 뿐입니다요. 말씀 올리기 참으로 송구스러우나, 그런 책들이 오히려 더 잘 팔리는지라...”

근래 『삼국지연의』 같은 잡문(雜文)이 퍼지는 병폐는 이황도 잘 알고 있었다. 장사치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차라리 근래 사풍(士風)이 그런 책을 재밌게 여긴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지, 서책 장수를 탓할 수는 없었다.

“허나 다음 번에는 반드시 원하시는 서책을 받아올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죄송스러운 가운데 이리 찾아뵙고, 다음에 어떤 책을 받아오면 좋을지 여쭙게 되었습니다.”

“다음 번이라...? 그 무슨 말인가?”

“황해도 난리가 올 겨울 안으로 끝날 것이라고들 하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그리 말하니 일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황이 장가를 살피니,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이미 각지 군현에서 평소에 세곡 내는 것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어찌 군사를 더 내고 군량까지 바치라 하느냐며 길을 막고 창고에 빗장 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조만간 나라에서도 억지로 황해도를 진압하는 대신 잘 타일러 해결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보게,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는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한 일이니 빠짐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게나.”

이윽고 장가가 말하기를, 당장 청홍도만 넘어가도 다들 그렇게들 떠든다는 것이었다.

한가롭게 서책 사들이는 이야기나 나눌 때가 아님을 직감한 이황은 곧장 진지하게, 장가에게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으라 말하였다.

그랬더니 나오는 말이 갈수록 가관이었다.

엄연히 나라에 반기 들고 일어난 의민당인데,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세곡 좀 작작 걷어가라면서 들고 일어났다고 소문이 났다.

그 소문에 살이 붙기로는, 그렇게 한 번에 우르르 일어나니 진압하려던 관군도 백성의 수효에 놀라 그냥 물러나고, 심지어 거하게 싸움이 붙자 관군이 오히려 밀려났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함께 퍼지는 말도 있었다.

“아니, 지금 무어라 했나?”

“아, 그것이... 소인네도 주막에서 지나가듯 들은 것이라 잘은 모릅니다. 대강 듣기로는, ‘백성은 물이요 나라는 배이니, 배가 없어도 물은 물이다’라고도 하고, ‘한 고을이 뭉치면 수령을 바꾸고 한 도가 뭉치면 정승을 갈아치운다’라고도 합니다.”

나라의 정사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조선 사람들이다. 이지함도, 임꺽정도 의민당 소문이 끽해야 기호 일대에나 퍼지리라 여겼건만, 어느새 한참 날개가 붙어서 이곳 풍기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군살 덕지덕지 붙은 무엄한 말은, 도참도, 요설도 아니었다. 오직 진솔한 뜻만을 담고 있었다.

나라에서 바치라 해도 더 이상 고분고분하게 바치지는 않겠다. 나라에서 정 곡식을 원한다면 우리네 시체를 밟고 가라.

“이보게, 그런 말을 함부로 내놓으면 아니 되네. 알겠는가? 본관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 자칫 이를 두고 죄를 삼을 수도 있으니, 부디 내 말을 유심히 기억하게나.”

“아, 예. 알겠습니다. 헌데...”

사람 좋은 이황이 그리 신신당부하니, 덜컥 겁 먹은 책장수 장가가 한참 뜸 들이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 실은 군수 나리 뵈러 오기 전에 다른 선비님께서 소인네에게 죽령 북녘에서 무슨 일 일어나고 있는지 물정을 물으시기에 똑같이 말씀을 드렸는데, 혹 이것도 죄가 될지요?”

“선비라고 하였는가? 혹시 그분의 아호나 거소(居所)를 아는가?”

“예, 그... 삼가(三嘉) 고을의 이름난 선비로 호를 남명(南冥)이라 하신다 하였습니다.”

놀란 이황은 곧장 사람을 보내, 읍내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는 남명 선생 조식의 행방을 수소문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내며 칼 찬 선비 조식이 들어왔다.

서로 문명(文名)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공손히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서 이황이 조심스레 조식에게 삼가현 떠나 이곳 풍기까지 온 까닭을 물었다.

헌데 조식이 먼저 이황에게 대뜸 묻는 것이었다.

“선생께서는 혹시 이번에 조정에서 군량과 병사를 내라 한 명을 따를 심산이시오?”

“신자(臣子) 되어 군부(君父)의 뜻을 어찌 거스르겠소이까.”

의민당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단양군수로 있을 때 스승 이언적과 그 당수 임거정이 마주친 일로 인하여 일찍이 귀띔을 받은 이황이었다.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쓰러지든, 조선 땅에 올바른 정사가 펼쳐지는 데에는, 또 죽지 못해 겨우 연명하는 백성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데는 독이 되면 되었지 득이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지방의 미관말직을 전전하면서도 스스로 수양하고 또 근래의 여러 학설을 두루 섭렵하였다. 허나 의민당과 윤원형의 싸움이 이토록 빨리, 그리고 이토록 거대하게 불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지금 이황은 조정의 녹을 받는 수신(守臣, 수령). 그러니 명을 따라야만 한다 생각했다.

“무릇 군신과 부자 사이의 정리란, 의(義)가 있어야 비로소 충효(忠孝)를 논할 수 있다고 이 사람은 보오. 순임금이 반드시 그 아버지 고수의 뜻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후대에는 오히려 진심으로 순종하였다고 일컫지 않소이까. 이 사람의 단견(短見)으로는 지금이 마땅히 그 도를 본받을 때라 하겠소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상경하는 뜻이 바로 이 시국에 대하여 상소 올리기 위함임을 밝혔다.

“선생께서 한낱 처사인 이 사람을 불러, 품은 뜻을 물으시니, 비록 올바른 도의는 아님을 아나 부득불 상소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보이고자 하오.”

하고서는, 눈 감고 자신이 상소 올리려는 바를 읊기 시작했다. 이황조차 평정심을 잠시 잃을 만큼 거친 상소였다.

“성상 전하께서 비로소 친정에 나서셨으나, 그 첫 정령(政令)부터 올바름을 잃었습니다.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한 지 오래요. 하늘과 사람의 마음은 모두 떠났습니다. 조정에 충의(忠義)로운 선비와 현량한 신료가 없는 것이 아니니, 원인을 구한다면 반드시 구오(九五, 임금)의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아직 어리시어 선왕(先王)의 한낱 외로운 후사(後嗣)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깨우치고 학문을 익히며, 수양과 덕행에 힘쓴다 할지라도 나라가 처한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겨우 얻을 수 있을 지경이거늘, 위아래가 모두 위태로운 오늘날 오히려 천인(天人)을 공히 거스르려 하시니, 무엇으로써 이를 수습하고 감당하시렵니까?”

분명 그 상소문은 행장에 담겨 그가 유숙하는 곳에 고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로되, 마치 눈앞에 두고 읽는 것처럼 유창하게 그 내용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다기보다는, 노도(怒濤)와 같이 몰아친다 함이 더 어울릴 듯하였다. ‘외로운 후사’를 운운하는 대목에 이르자, 이황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키고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황해도의 의민당은 대관절 무엇이기에 전하께서 수만 대병을 내어 토멸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그들이 역적이기에 진멸하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의 죄목은 무엇입니까? 조정을 업신여김이 불궤(不軌, 반역)에 상응하는 죄라면, 조정이 그토록 업신여김 당하도록 만든 자들 또한 역신(逆臣) 아니겠습니까?

의민당이 도적이므로 토벌하려 하십니까? 도적이란 수령의 탐학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고, 탐학한 수령이 뽑혀 나아가는 것은 인사(人事)가 그릇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적을 잡는다면서 전하의 지척에 있는 와주(窩主, 도적의 뒷배 또는 우두머리)는 잡지 않으시렵니까? 어찌 원근(遠近)을 혼동하시어 가까운 죄인은 방치하고 먼 죄인 먼저 죽이려 하십니까?”

“선생... 혹 장구(章句)의 과격함이 도를 넘지는 않았는지...”

“의민당이 크게 일어나 황해도 한 도를 모두 빼앗긴 것은 도적이 강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 조정이 잘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장수가 백 명이면 그 중 양장(良將)은 잘해야 하나요, 군사가 일만이면 그 중 정병(精兵)은 일백도 되지 않습니다. 상께서는 나라의 위엄을 말씀하시지만, 이미 그 위엄은 사라진 지 족히 이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라의 명이 다하여 끝에 이르렀습니다. 백성은 더 이상 세곡을 내기를 원하지 않고, 차라리 와서 우리를 죽이고 빼앗아가라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 형편을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길은 오로지 하나뿐입니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하룻밤 사이에 새사람이 되듯 깨달으십시오. 오직 여기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으니, 지금이라도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자 뜻을 펼치신다면 흩어진 민심이 돌아오고 나라의 근본이 회복될 것이로되, 그러지 아니하신다면 열성조(列聖朝)의 명신이 모두 살아 돌아오고 백만 강병을 하루아침에 얻으신다 한들 망국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거기까지 모두 읊자, 조식이 후련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어찌 선비된 자로서, 나라가 무너질 지경에 처한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있겠소이까. 아무리 위로 천리(天理)를 논하고 아래로 지리에 통달한다 한들, 가운데 있는 인심(人心)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그러므로 한양에서 돌아오지 못할지언정 이 글을 올리려 하오.

선생 또한 이 뜻을 같이하고자 한다면 내 기꺼이 그 글을 받아 함께 올리도록 하겠소.”

과격하다 못해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히지 않을 만한 상소문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조식이 이왕 이리된 것 함께하자 권하니, 이황은 오늘 하루에 두 번이나 평정심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이 끝이 아니었다.

역적으로 몰린 이지함의 조카 산해를 거두어 가르치는 일로 가뜩이나 윤원형에게 허물 잡힐 구석이 많은데 – 이산해의 총명함이 유명하다 보니 이황도 들어 알고 있었다 – 이런 상소까지 올리면 반드시 일신에 화가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장구를 지금이라도 다듬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렇게 이황이 열심히 권하고, 조식은 이황이 그런 것을 권한다는 데 실망하는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이황은 이를 알면서도 조식을 걱정하여 설득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을 무렵.

“군수, 군수 계십니까?”

상주 감영에서 급히 전갈 하나가 전해져 왔다.

이황이 조식에게 양해 구하고는 감영에서 달려온 군관을 맞이하였다.

“급보입니다! 삼가 고을에서 의민당에 동조하는 반당(叛黨)이 일어나, 세곡과 군졸 내기를 거부하고 길을 막고 있으니, 이에 연루된 이들이 도망쳐 죽령을 넘지 않도록 막을 것이며, 특히 그 수괴 조식은 더욱 죄가 깊으니 혹 군현의 경계 안으로 들어올 경우 반드시 추포하라고...”

“잠깐, 누구라 하였는가?”

“소관도 남명 선생께서 그런 일을 꾸미셨다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삼가현의 역당들이 분명 남명 선생의 존함을 거론하고 있다 합니다.”

“그... 내가 남명일세.”

“예?”

순간 마루 위에 앉은 두 사람과 아래에 있는 한 사람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선생,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이황이 캐물으니, 상소문 읊을 때의 기상이 당황함에 모두 밀려나 사라진 조식이 겸연쩍게 말했다.

“그것이... 조정의 명이 잘못되었으니 마땅히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말한 바는 있는데, 혹 그것이 잘못 퍼진 것은 아닌지...”

그러나 조식이 무어라 항변하든 삼가에서 시작하여 인근 고을로 번지고 있는 불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조식이 결연한 마음 품고 시작한 상경은 이렇게 죽령을 넘기도 전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결국 조식은 순순히 오라를 받고, 풍기군수 이황은 갈등 끝에 미리 공생(貢生, 사환) 보내어 조식의 상소문을 가져와서는 저의 글 가운데 숨겼다.

조식은 곧장 한양으로 압송되고, 이어서 이황도 조식과 함께 일 꾸몄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아 추국(推鞫)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가 그렇게 죄인 대접받으며 끌려나가자 이번에는 풍기에서도 세곡 못 내겠다며 드러눕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마음 먹고 작당하여 함께 배 째라 하면 지금의 조정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다분히 과장되고 또 헛된 희망 가득 섞인 말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 기세가 들불과 같으니, 마치 조선국 백성들이 조정을 믿고 또 두려워하던 마음을 누군가 훔쳐간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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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피(相避)란 자신의 친족이 관련 부처에 이미 근무하고 있을 때 그 자리를 맡지 못하게끔 하는 제도로, 권력의 집중이나 오남용을 막기 위해 고안된 제도였습니다. 본디 신라대에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명문화된 것은 고려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이 상피제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었고, 완전히 규범으로 자리를 잡아 원칙상 상피제 적용 범위가 아닌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상피를 하는 경우가 나타나게 됩니다.

원 역사의 이황은 형 이해가 청홍도관찰사로 부임하자 단양군수직을 사임하고 대신 풍기군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운동서원에 사액(임금이 서원의 현판을 적어 내림)을 청하여, 오늘날의 소수서원이 생기게 되지요.

작중에 나온 조식의 상소는 1555년 조식이 단성현감 직책이 제수되자 이를 사양하며 올린 상소 – 흔히 ‘단성소’ 또는 ‘단성현감사직소’라고도 부릅니다 – 에서 따왔습니다. 작중의 상소는 원문에 비하면 훨씬 ‘순한맛’이라 하겠습니다. 오리지널 단성소의 경우, 나라가 이미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내용뿐 아니라, 명종은 고아이며 문정왕후는 과부일 뿐이라는 표현도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을묘왜변에서 명종이 보여준 ‘신묘한 무력(神武)’에 대해서도 신랄한 반어법으로 비판을 하고 있지요. 이 글을 본 명종은 극히 대노하였으나, 끝내 조식을 벌하지는 못했습니다.

여담으로 원 역사에서 경상도의 성리학 학맥을 양분하였던 조식과 이황은 서로 글을 주고받기도 하고, 나중에는 서로 디스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작중에서는 훨씬 일찍 조식이 본인의 ‘성깔’을 보이게 되면서 둘 사이에 연이 생겼습니다.

조식은 항상 칼과 방울을 차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검의 이름은 경의검(敬義劍),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라는 뜻으로 차고 다닌 방울의 이름은 성성자(惺惺子)였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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