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3)
남명 선생이 추포를 당하여 한양으로 압송되고 있고, 역시 학식으로 이름 높은 풍기군수 이황도 감영 대신 도성에서 추국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진바 따라서 압송되고 있다 하였다.
사(士)라는 글자가 제게서 떨어지는 것을 사(死)라는 글자 만나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이들, 이준경 이하 수많은 사림 신료들이 이에 반대하는 뜻을 연명으로 올렸으나, 임금의 뜻은 확고하였다.
그리고 그 반대하는 관료들의 고향 근처에서도 비슷하게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므로, 임금은 혹 다른 뜻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런 자 몇몇을 잡아가두기 시작했고, 같은 사림 내에서도 걱정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서원군 대감의 언행과 처세가 모두 마땅하다 할 수는 없으나, 화란의 근원이 소위 의민당임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물론 나라의 정령(政令)이 잘못되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꾸짖을 수는 없으나, 이것이 확산되면 군현의 기강이 지금보다도 더욱 흐트러지고야 말 것입니다.”
어느새 이준경 편으로 마음이 기울기는 했으나 여전히 소윤에서 진복창 다음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허자가 이렇게 말하니,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저들 의민당이 봉산에서 윤원형의 농장을 빼앗아 마음대로 나누어주었다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로서는, 지금 저 민란이 자칫 들불로 번져 저들 가산에까지 화가 미칠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저것을 정녕 민란이라 부를 수 있소? 군현의 백성들은 나라가 아니라 이번에 새로 군량미와 군정(軍丁)을 내라는 데 반발할 뿐이고, 이를 난(亂)이라 칭하는 것은 오직 조정뿐이외다.
향리(鄕里)에 선비가 있다면 그 이름을 빌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마을마다 있는 부로(父老)를 내세워 모일 뿐이니, 지금이라도 출정을 없던 일로 만들면 해소될 일이오.”
삼가·합천·초계 고을의 민란도 경상감영에서 치계한 사정을 살피니 대개 그런 식이었다.
조식이 이번 출정은 잘못된 것이며, 들려오는 바가 맞다면 의민당이 그 이름대로 의롭다 해야 할 것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귀기울여 듣던 동네의 의기 넘치는 농군들이 남명 선생님도 저들 편이라며 그 이름 내세워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삼가처럼 황해도의 거의 반대쪽에 있는 군현까지 의민당 소식이 퍼지는 것은 오로지 장시를 쏘다니는 행상들의 입을 통해서였으니, 관의 편을 드는 말은 애초에 전해지지 않았다.
더구나 일전에 한양에 몰려가 부민고소 금하던 법을 폐하고 억울한 모함을 스스로 신원한 이야기는 백성들 듣기에 자못 통쾌하기도 했으므로, 듣는 이들 역시 대부분 의민당 편을 들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더구나 대놓고 동헌 갈아엎고 불태우자는 것도 아니요 그저 곡식과 사람 안 보내겠다며 드러눕는 것이었으므로 그리 어렵지도 않았으며, 거기에 제법 그럴듯한 명분도 붙었다.
‘대저 의민당이란 황해도의 의로운 백성들이 뭉쳐 결성한 당이다. 그들에게 억울한 죄를 붙여 역적으로 만든 것은 오로지 서원군과 그 무리의 모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불의한 일을 위하여 겨우 거둔 곡식을 바치고 겨울과 봄 내내 배곯으라 하니, 이는 분명 올바른 명이 아니다.’
그리고 한 번 그런 명분이 생기면, 또 그것을 고대로 따라서 다른 군현에서도 내세우곤 하였다. 말을 지어내기가 어렵지, 따라하는 것은 쉬웠다.
“이미 소요(騷擾) 일어난 도가 다섯에 달하오. 여기서 억지로 더 끌어모은다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난민(亂民) 진압을 위해 각 도에 군사를 보내야 할 판국이외다. 더구나 도성 안의 민심 또한 어지럽소. 아무리 막으려 해도 의민당에 대한 요언(妖言)이 사그라들지 않으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오.”
소윤과 사림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는 이들 중 좌장이라 해도 과언 아닐 상진(尙震)이 말했다.
그 말대로, 삼가 고을에서 벌어진 소요는 그것이 조식이라는 사람을 내세웠기에 눈길을 끌었을 뿐이요, 크고작은 말썽은 일어나지 않는 곳이 더 드물었다.
청홍도 유신현에서는 지난날 역모 이후로 갑자기 늘어난, 저의 토지 지닌 농군들이 똘똘 뭉쳐 들고 일어났다. 충주 감영 파옥할 때 임꺽정이 전답을 미끼로 끌어모은 대갓집 노복과 비부쟁이들이 다시 뭉쳤는데, 혹여 이번에 세곡 따로 거두는 일로 책을 잡혀 기껏 얻은 땅을 적몰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저들이 이처럼 도둑 제 발 저리는 격으로 뭉쳤다는 사정을 모르는 청홍도 감영에서는 어찌하여 지금까지 군적(軍籍)에도, 민총(民總)에도 오르지 않았던 이들이 우르르 일어났는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흉년이 조금은 피해갔던 지리산 일대에서는 산적들이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을 꾀어내어 함께 관에 항거하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경우에는 정말로 또 다른 의민당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격이라, 이미 전라도와 경상도 양도의 군사들이 상경하는 대신 그들 진압하는 데 투입되고 있었다.
또한 여전히 봉산 오가는 행상들, 그리고 그 행상들 사이에 끼어 있는 의민당 당원들로 인하여, 의민당이 연전연승하고 있으며 조만간 난리는 끝난다는 말이 경기 일원에 파다하였는데, 천한 장사치들 따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조정이었기에 경계하는 마음을 품었을 때는 이미 한참 늦어 있었다.
“서원군 대감 또한 이를 알기에, 납속(納粟)의 제도를 널리 시행하려 한다 들었소. 동애(東崖, 허자) 대감, 그렇지 않소이까?”
“그렇소. 서얼과 도성 및 경기 군현의 아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그간 모은 곡식을 군량으로 바치면 서얼은 허통(許通)할 것이요, 아전은 면역(免役)할 것이외다.
삼남에서 억지로 군량을 얻어내기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충당하고, 병력이 부족한 것은 황해도의 남은 군현과 경기 일원에서 장정들을 징발하면 될 듯하오. 그리고 도성의 민심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변통하는 수가 있다 하였소이다.”
“궁여지책도 이만큼 궁한 것이 없을 것이오.”
이준경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나 속사정이 어찌 되었든 겉으로는 지엄한 어명에 따라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따르지 않겠다 한다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
이제라도 사림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출병을 막아야 하는가? 한 차례 사화를 더 감수하고서라도 나라의 기둥뿌리가 뽑히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장탄식으로 말을 마무리짓는 이준경이었다.
대신들이 윤원형 몰래 모여 무언가 논의한다는 말을 듣고 몰래 따라와 담장 너머로 귀를 기울이던 두리손, 아니, 윤형민 또한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의민당 역모 증좌를 얻어온 이후 윤형민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도성 안팎을 돌며 의민당 완장을 숨겨둔 자들을 색출하는 것을 진두지휘하면서 ‘나리’ 소리도 적잖이 들었거니와, 이처럼 실적으로 자질을 드러내니 윤원형의 문객들 중에서도 조금씩 그를 인정하고 따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그를 가장 업신여기고 적대하던 이들조차, 아버지의 부름 받아 사랑채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뒤로는 윤형민 그를 인정하고 순순히 따르게 되었다.
그러던 차, 올 늦가을 관군이 황해도로 출병할 때에도 중임을 맡게 되었으므로, 더욱 그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경기도와 황해도 장정들을 군졸로 징발한다면, 가뜩이나 정예함을 찾아보기 어려운 관군이 더욱 오합지졸에 가깝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득불 경군을 더욱 끌어다 쓰기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도성 민심이 흉흉한 판에 경군을 더 차출하게 되면 불궤(不軌)한 일이 바로 경사(京師,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의 집 한 채와 엄청난 양의 재화를 하룻밤 사이 잃으면서 뼈아픈 교훈을 얻은 윤원형이었으므로, 곧장 생각해낸 대책이 바로 저의 문객들을 ‘의용(義勇)’으로 포장하여 경군을 돕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문객과 무뢰배들, 한량들을 모아 경군을 대신하게끔 하는 중책이 바로 윤형민에게 떨어졌다. 호부(呼父)조차 허락받지 못하였던 천한 얼자가 그런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무뚝뚝한 윤형민조차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헌데 저 납속의 제도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은 지금까지 무예를 닦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칼부림을 하고, 수많은 이들을 쥐잡듯 잡아족치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고작해야 운 좋게 곡식이나 전지를 얻었을 뿐인 자들은 알량한 쌀섬이나 바쳐 곧장 면천의 은혜를 입고 벼슬길까지 노릴 수 있게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아버지의 측근이라 여겨 왔던 자신에게는 어찌하여 저 납속에 대한 말이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는가?
‘사냥개는 삶아지지 않는다 한들 고작 개일 뿐이렷다.’
갑자기 모든 것에 싫증이 나, 담장 그늘에서 벗어나 하늘을 보았다.
대신들이 은밀히 모이는 곳에 간다면 혹여 자신에게, 또 아버지에게 도움 될 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서 간만에 이렇게 힘든 일을 직접 맡게 되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한낱 얼자를 넘어, 서원군의 아들로 행세하고 그 위세를 내 것으로 할 방도는 없겠는가?’
한때의 두리손이라면 꿈도 못 꿀 고민. 그러나 윤원형의 기질을 물려받은 아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고민이었다.
“자, 끌어내려라!”
“끌어내리랍신다!”
누각 위에 올라간 의민당 당원 몇 명이 창대 끝으로 현판을 툭툭 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정루(布政樓) 편액(현판)이 땅에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엿차! 여기 선화당(宣化堂) 편액도 끌고 나왔습니다.”
“옳지. 잘 했다.”
옆을 지키던 서림이 눈치껏 꺽정이에게 횃불을 건네었다.
받자마자 현판에 가져다 대니, 곧 불이 옮겨붙었다.
흐뭇하게 그 모양새 바라보던 꺽정이가 이윽고 포정루 향해 그 횃불을 던졌다.
“질러라! 다들 던져!”
그 호령에 해주 감영을 에워싸고 있던 의민당 당원들이 덩달아 횃불을 던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영 전체가 불에 휩싸였다.
“하하! 이만하면 아방궁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호쾌하지 않은가!”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그런 게 있소.”
꺽정이가 껄껄 웃다가 옆에서 삐죽 묻는 서림이 말에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반면 그렇게 정색할 이유 없던 주변의 의민당원들, 특히 이번에 새로 당원으로 들어온 황해도 일대 수영의 수군들과 감영에 딸린, 아니, 딸려 있던 공노비들은 마음껏 환호하였다.
황해도관찰사를 겸직하고 있는 이윤경은 해주 대신 우봉에 눌러앉아 있다 하였고, 본래 황해도에 있던 무관들 중 가장 그 직급이 높은 소강 첨사(첨절제사僉節制使)는 옹진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해주를 본디 지켜야 할 병영의 군사들로 말하자면, 의민당 들고 일어났을 때 모조리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이미 의민당 당원이 이름만 차지하고 있거나 했기 때문에, 해주 한 고을은 그대로 빈집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러나 해주를 지킬 여력 안 되는 것은 의민당도 마찬가지라, 관군이 들이닥치기 전 이렇게 먼저 와서는 챙길 것은 챙기고 못 챙기는 것을 불살라 없애버리는 중이었다.
“자, 불구경은 오늘 온종일 할 테니 서둘러라! 당장 객사도 불태워야 하지 않느냐!”
“예, 당수!”
이미 해주 안에서 의민당과 엮인 집안 사람들은 산속으로 몸을 피하거나, 아니면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같이 간다며 청석골 아랫말에 들어와 있었다.
또한 의민당과 엮이지 않은 평범한 농군들은 연안이나 옹진으로 피난한 지 오래요, 남아서 강도질 할 만한 자들이라면 이미 모두 의민당에 들어와 있었다.
관군이 들이닥쳐도 그들에게 패악질 당하지 않을 만큼 집안에 위세 있는 이들조차 대녕학당에 그 자제들이 몸 담은 적 있었으므로, 혹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며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저들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리에 사람이 몇몇 있어, 환호하는 이들 사이에서 덩달아 함께 환호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고개 저으며 세상이 어찌 되려나 공연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해주 아전들 보러 가겠습니다. 혹여 그사이 도망치거나, 아예 관군 쪽으로 갈아탄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리 하시오.”
서림도 그렇게 사라지고, 꺽정이와 남은 의민당 절반 가량만 서서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경꾼들 중 어째 익숙한 초로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패거리들 이목을 피해 슬쩍 다가가서는 말을 걸었다.
“나리는 여기 웬일이시오?”
“황해도 관찰사가 자기 감영 불타는 것 구경도 못 하는가?”
분명 우봉이나 신계, 하다못해 개성 즈음에나 있어야 할 이윤경이, 평범한 서생의 옷차림을 한 채 꺽정이 앞에 서 있었다.
“내 우선 고맙다고 인사부터 올려야겠구려.”
“무슨 말인가?”
“지난번에 나리 뵌 뒤에, 황해도 서쪽을 옹진 한 곳 빼고 모두 평정하고, 수군과 공노비들, 그리고 굶주린 백성들까지 모두 거두었소. 다 우봉에서 내려주신 가르침 덕택 아니겠소?”
“나는 그런 가르침 내린 적 없는 듯허이. 자네같은 제자 들인 적도 없고.”
“그때 우리 쪽에서 벌린 것이 허장성세가 아니라 모두 실제 병력이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나리 목을 베고도 남았을 테요, 그냥 이기는 것보다 이왕이면 일패도지(一敗塗地)라는 말이 나오도록 처절하게 억누르는 것이 더 좋다는 교훈을 주셨으니, 내 이리 분발한 것 아니겠소.”
“하...”
마침내 여유만만한 시늉하는 그 탈은 벗겨지고, 이윤경에게서 탄식이 나왔다.
“자, 그러니 제대로 말씀 좀 해주시오. 정탐을 하려면 저기 봉산이나 평산에 가야 할 것인 데다가, 그만한 일이라면 아랫사람 시켜도 족하겠지. 나리 성정이 나와 비슷하다면 모를까, 그냥 감영 불타는 것 구경하러 왔을 리도 없고.”
백정의 아들이 일국 정승의 형이자 스스로 영감 소리 듣는 중년 선비에게 폭언을 연달아 던졌다.
“되었네. 되었어. 내 그대로 숨기지 않고 전해줌세.”
“진작 그러시지 그랬소. 저기 골목으로 들어가십시다.”
이윤경도 순순히 따랐다. 육방 아전들 살던 동네인 고로 지금은 텅텅 비었고, 끽해야 도둑고양이 한둘이나 생쥐들 오가는 골목이었다.
주변의 이목 모두 사라짐을 확인하자마자 이윤경이 본론을 털어놓았다.
“투항하게. 지금이야말로 투항할 적기(適期)일세. 자네 말고 이 나라 사직과 백성 모두를 위해서 말일세.”
“우리 의민당이 당세 늘리느라 바쁜 동안 나리께서는 재담만 늘어나셨구려.”
“재담이라. 나도 이것이 농담이었으면 좋겠네. 그러나 들어보게. 지금이라도 투항한다면 사사롭게는 내 아우 되는 동고(東皐, 이준경)부터 시작하여 조정의 뜻 있는 모든 신료들이 자네와 의민당을 옹호해줄 것이야. 우리가 이렇게 부딪히면 대체 누구에게 이롭겠는가?
지금까지 자네가 이곳 황해도에 들어와 도적을 붙잡고 민생을 돌본 것은, 비록 그 수단이 선비가 말할 바가 아니라 할지언정 권도(權道)로서는 족히 타당한 것이었네. 고작해야 도적과 이서(吏胥, 서리)의 무리를 모아 이만한 세를 이루었으니 이 또한 훌륭한 일일세.
그런 재주를 나라를 위해 쓴다면, 사직에도 크나큰 보탬이 되거니와 자네 일신의 광영 또한 드높아질 수 있을 것일세. 지금의 과오는 금방 잊히도록 만들 수 있고, 또 자네가 원하는 나라, 그것을 만드는 데 우리의 힘을 빌릴 수도 있겠지.”
“지난번 조읍포 마주보는 언덕에서 칼날 들이대고 만났을 때에 비해 퍽 말투가 공손해지셨소.”
꺽정이가 비꼬았다.
“그때 조읍포 앞에서 만났을 때는, 우리가 황해도 절반이나 겨우 지키는 도적떼 무리라고 여기셨겠지. 그러나 지금은 어떻소? 바닷가 수영을 돌면서 거둔 수군 출신 당원만 해도 이천이 훌쩍 넘고, 가을걷이 끝난 뒤에는 일반 백성들도 우리 당에 합류할 것이오.
내 오만은 데려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것이 허언이라 여기셨겠지만 허언이 아니었다오.
반면 나리는, 또 이 나라는 어떻소? 듣기로 황해도 외 다른 일곱 도와 도성이 모두 시끄럽다던데.”
“... 그것을 알면서, 승산 없는 싸움을 이어가려 하는가? 자네들이 여기서 스러지게 되면, 윤원형은 공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자네들과 엮였다는 의심 받는 이들은 모두 형장의 이슬이 되거나 원악지(遠惡地)에 정배될 것이야. 사화(士禍)가, 그것도 전례 없는 사화가 오게 될 것일세.”
“사화라! 이보시오. 세간에서 나를 임 처사라 부르곤 하니까 내가 정말 선비일 것이라 생각하신 모양인데, 선비들이 화를 당하건 말건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
한없이 무례한 말. 무례한 언사 나올 것은 각오하고 온 이윤경이었으나, 그 무례함과 함께 튀어나오는 진실은 훨씬 뼈아팠다.
임거정 – 어쩌면 그것마저 본래 이름이 아닐지 몰랐다 – 말대로였다. 관군 앞에서 금방 무너질 줄 알았던 의민당은, 대체 무엇에 홀렸는지 그날 밤 싸움 이래로 더욱 날뛰고 다녔고, 오히려 나머지 일곱 도의 민심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백 년 동안 차근차근 깎아먹고 또 미리 끌어다 썼던 나라에 대한 믿음은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고, 누가 부채질이라도 한 것처럼 불만이 각지 군현으로 퍼졌다.
“그리고 선비 이야기 나온 길에, 이 얘기도 해야겠지. 내 그때 조읍포에서, 투항은 나리가 우리한테 해야 한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오?
이미 나리들, 조정의 소위 선비님네들은 나와 우리 당의 기대를 한 차례 배반했소. 그건 알고 계시오? 윤원형이 농간을 부려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부깨나 하셨다는 분들이 안목이 그 모양이어서 되겠소?
그러니 지금이라도 우리 아래로 들어오시오. 그러든 말든 우리는 관군을 때려잡고 윤원형을 끌어내릴 것인데, 그 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받으려면 한참 늦은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할 것이오.”
“정녕 끝까지 갈 생각인가? 정녕 자네가 나라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소. 그러니 승산 없는 싸움에 애먼 군졸들 목숨 버리지 말고 투항하라 하는 것이오. 이미 우리가 파놓은 판에 걷잡을 수 없이 끌려 들어왔으니.”
그 말에 이윤경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자네는...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아니, 언제부터 이것을 준비했는가? 대체...?”
“뭐, 묻고 싶은 것이야 많겠지만, 내가 답해줄 이유까진 없지 않겠소. 내 어르신을 공경하는 뜻으로 나리도 그대로 보내드릴 터이니, 가는 길에 마저 숙고해 보시오. 이왕이면 토벌군 이끌고 들어오는 내내 고민하시면 더 좋고.”
“이보게, 이보게!”
이윤경이 부르는 말에도 개의치 않고 꺽정이는 성큼성큼 골목 바깥으로 나가 당원들을 불렀다.
“어이! 거기 졸개 놈들아! 이리 와보아라!”
“예, 당수님!”
“여기 계신 이 진사께서는 옛날에 내게 도움을 주신 분인데, 제때 피난을 못 가셔서 여기 남아 계신다더라. 혹여 봉변하지 않으시도록 연안 경계까지만 데려다드리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이윤경이 끌려나오다시피 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흠흠, 괜찮으이. 내 발로 가겠네. 마침 마필도 있고, 경마잡이도 데려왔다네.”
“뭐, 그렇다면 그리 하시오.”
꺽정이가 털털하게 대꾸하고는, 슬쩍 이윤경 옆을 지나가며 한 마디 더 찔러넣었다.
“내 경학에는 밝지 못하지만,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이 있음은 알고 있소이다. 그 외에 백성에게 또 어떤 하늘이 있겠소?
암만 임금과 조정이 하늘 같다 하더라도, ‘하늘 같은 것’과 진짜 하늘은 다르오. 학문에 통달하시고 견문이 넓으신 여러 중신들께서는 이를 모르는 듯하더군.
모르면, 배우면 되오.”
그리하여 절기는 상강(霜降). 서리가 내릴 무렵 조정의 대군이 마침내 황해도의 경계를 차례로 넘기 시작하였다.
이미 토포사로 나가 있던 이윤경을 삼도도순경사(三道都巡警使) 겸 도원수로 삼아, 황해·강원·평안 삼도의 군사를 총괄하고 경군 또한 거느리게 하였다.
별시위(別侍衛)와 정로위(定虜衛) 등 경군의 가장 정예한 무리와 여타 오위에 속한 군사 중 시체나 노인, 아녀자가 아닌 진짜 장정들을 추려내고 또 추려내어 겨우 구천을 모았다. 함경북도 병사 남치근(南致勤)을 본디 임기보다 이르게 체임한 뒤, 그를 황해도 병사로 삼았다.
도원수 이윤경의 청에 따라, 이들은 경기·황해 양도의 전선을 나누어 타고 바다를 건너 바로 해주로 진격하였다.
또한 평안도 병사(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이사증(李思曾)은 양계갑사(兩界甲士)와 평안도 토병(土兵) 등을 모아 칠천 군세를 이끌고 남하하여 황주에 닿았다.
강원도 순경사(巡警使)로 명 받은 김세한(金世澣)은 강원도 일대의 쓸 만한 군사 삼천을 모두 이끌고 신계에 도달한 뒤, 이윤경이 미리 모아 보내둔 개성 및 나머지 황해도 군사 오천과 합류하여 팔천 명을 거느리게 되었다.
또한 황해도 순경사(巡警使) 겸 부원수로 명 받은 오위도총관 진복창은 겨우 삼남에서 모아 올린 군졸을 거느리고, 이름만 경군 가운데 올려두고서 모속(冒屬)하고 있던 도성 백성까지 모조리 끌고 나와, 모두 합치면 이만을 겨우 넘는 군사를 거느리고 이윤경에게 합류하였다.
이윤경이 처음에 데리고 온 오천 군사까지 합하면, 도합 사만 하고도 구천이었다.
무너져가는 조선국의 힘을 억지로 쥐어짜 만든 억지 군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꺽정이가 말했던 오만은 끝내 채우지 못한 군세.
호왈(號曰) 십만 대군이 일성호령 하나 없이 네 곳에서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윤경이 열심히 모은 배는 우봉에서 강음과 평산으로 끝없이 사람을 날랐고, 이미 가을걷이 끝나 텅 빈 전답은 관군의 발에 다시금 짓밟혔다.
“오라고 했더니 정말로 오네. 나라의 선비며, 장수며, 죄다 헛똑똑이들 아니오?”
“그런 말 하면서 너도 떨고 있지 않으냐.”
강음 천신산(天神山)에 올라 예성강 건너는 관군 구경하며 꺽정이는 말하고, 이지함은 저도 긴장되는 것을 감추며 억지로 이죽대었다.
“군량도 부족하고 태반은 오합지졸일 텐데, 그래도 장수와 군관이라는 자들이 작정하고 이끄니 아직은 모양새가 그럴듯하구려.”
반대편 우봉의 익숙한 언덕에는, 수자기(帥字旗)가 힘껏 휘날리고 있었다.
“저들이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소, 사형?”
“글쎄, 아마도 저들의 대군에 놀란 우리가 자중지란에 빠지거나, 아니면 ‘이젠 가망이 없소’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있거나, 그러리라 여기고 있지 않겠느냐.”
“그랬으면 좋겠소.”
“당수님, 모주님, 이제 슬슬 움직이셔야 합니다.”
흑의군 하나가 망루 위로 올라와 말했다.
“성황산성에는 다들 들어갔다더냐?”
“예, 모주님, 금암역(金巖驛) 앞에 쌓아둔 장작더미가 불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아닌 게 아니라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겠군그래.”
꺽정이가 말을 받았다.
“좌우지간 잘 부탁드리오, 사형. 우리 대계가 이렇게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으니.”
“그래. 앞으로 한 달. 잘 해보자꾸나.”
“한 달까지 갈 것이 있겠소? 보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힘써보십시다.”
천신산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 말이 오가고 있음을 꿈에도 알지 못할 관군은, 그 동안에도 시시각각 강을 건너 강음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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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속이란 전란이 일어났을 때 군량을 바치거나, 흉년에 곡식을 바쳤을 때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바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명예직을 내리기도 하고, 서얼의 경우에는 허통을, 천민의 경우에는 면천을, 또 신량역천 신분인 자들의 경우에는 면역(직역의 세습에서 벗어남)을 각각 보상으로 내렸지요. 원 역사에서 납속이 제도화된 것은 작중으로부터 한참 뒤입니다. 본래 조선 전기에도 종종 일어나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 확보를 위해 공명첩 발행과 함께 대대적으로 시행되면서 점차 본격적인 제도가 되었고, 이것이 상설화된 숙종대 이후로부터는 정례화되어 공명첩 판매와 연동되고 바치는 곡식의 양에 따른 차등이 정해지는 등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작중 시점 조선군의 전력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 군적을 거의 삼십 년 동안이나 경신하지 않았음이 실록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1520년대 실록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수치와, 이미 당대에 군적이 유명무실하여 경군 가운데서도 정병은 다섯 중 둘에 불과하다는 식의 언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작중 조선이 오만 관군을 동원한 것은 지방의 치안과 북방의 방위를 포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끌어모은 것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모속이란, 실제로 군역을 지지 않으면서 군적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녹봉만을 받아가고 다른 국역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말합니다. 가뜩이나 방군수포 등으로 군정이 문란한 상황에서 모속의 일상화는 더욱 국방력을 떨어뜨렸고, 중종 초기에 이런 모속의 폐해 없이 실질적인 정예 군사력 확보를 위해 설치한 정로위(定虜衛)조차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모속으로 유명무실화되는 등 큰 폐단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