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56화 (56/259)

19. 백성의 주인 (1)

의리와 실제가 늘 맞아떨어진다면 참 사람살이가 편하겠지만, 대개 그런 일은 드물었다.

예컨대 이준경이 이 천재일우 기회에 어떻게 사림끼리 다시 한 번 뭉쳐서 좋은 정사 펼쳐보자며 사람들 모았을 때 이지함 난입하여 던져놓고 간 그 제안, 윤원형의 죄를 다룰 그 관청에서 먼저 의민당 봉기의 잘잘못 가리자는 안이 그러하였다.

사림의 사람들 중 철없는 젊은이들, 그러니까 의민당이 봉기하기 전부터 그 각미사와 기승(奇僧) - ‘요승’이라는 말은 더는 붙지 않았다 – 병해 따라다니던 이들은 그 『화담자의』 나돌던 시절부터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막연히 좋아하던 치들이라, 지금도 임 당수 이 모주 하면서 그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점잖은 이들, 적어도 임금 앞에 올리는 상소에서 금상을 직접 거론하며 비난하지는 않을 만큼 멀쩡한 이들은 의민당의 언행이 이 나라의 피폐한 민생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의민당도 나름의 잘못 있음을 드러내어, 더 망동하지 못하게 한다면 좋을 터였는데, 대의(大義)야 그렇다 쳐도 막상 세세한 절목(節目)으로 들어오니 머리가 아주 아프게 되었다.

“대감, 그 새 관서를 어찌 운영할지부터 막혀 있습니다. 바라건대 명안을 내려주십사...”

자연스럽게 이 일의 실무를 맡게 된 의금부와 형조 관리들은, 하필 그 두 관아 모두 지난번 변고 때 송두리채 불타버린지라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미 추국(推鞫)의 법도는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가? 조정과 동등한 지위로 높인다 하였는데, 그렇다면 정국(庭鞫)의 예를 따르고 다만 위관을 한 사람으로 하는 대신 삼정승이 모두 참석하게끔만 하면 될 일일세.”

“허나, 대감... 저희도 그러려 하였습니다. 서원군, 아차, 윤원형만 하여도 그 죄상이 워낙 확연하고 당장 삼사의 젊은 언관들이 어떻게든 저도 끼워달라 청탁을 하여 곤란한 판입니다.

헌데 그 앞에 의민당 임 당수와 수산 선생(이지함)이 오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제야 이준경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조선국에서 하는 추국이란 죄인을 앉혀두고 심문하여, 드러난 죄상에 맞게 처벌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주상이 친히 주관하는 친국이 되었든, 의금부에서 스스로 행하는 급 낮은 국문이 되었든, 관의 위엄에 따라 죄를 드러내는 것이 곧 추국이었다.

헌데 조정에 반기를 들고 마침내 도성까지 점거하여, 지금도 지존의 생사를 손에 쥐고 있는 의민당을 추국한다니, 기존의 절차로는 도저히 이를 다룰 수 없는 것이었다. 위엄으로 따지면 의민당이 더 높았으며, 형문(刑問)을 가하려 해도 도성 안의 어느 누가 감히 임 당수 몸에 손찌검할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설령 문곡성(文曲星)이 한양에 떨어져 포증(包拯, 포청천)이 나타나 송사 주관한다 한들, 이 일은 다루기 싫다며 도로 천상으로 돌아가버리고야 말리라.

‘잠깐, 그렇다면 관청 이름부터 다시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름부터 죄인을 형문하는 곳으로 만들었다가는, 의민당이 그 관청에서 처음으로 심리를 받게 된다 하였을 때 반발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살은 의정대신들에게 돌아올 터. 이대로 의민당과 윤원형을 함께 벌주어 양시양비(兩是兩非) 같은 모호한 소리나 하는 것 아니냐며, 벌써부터 제멋대로 ‘의’ 자 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성균관 유생들이 시끄럽게 들고 일어날 것이다.

힘 닿는 한 이 혼란한 정국을 빠르게 정리하고 무너진 나라 바로잡는 데 열중하려 하는 이준경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

그때, 바깥에서 ‘와아’ 소리가 났다. 임거정 아니면 이지함이겠거려니 생각했는데, 문 열리고 들어온 것은 둘 다였다.

“대감, 간밤에 기체 무양하시었는지요. 새로운 관청에서 죄를 처결할 절목 마련하는 일에 관하여 상의드릴 바 있어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어젯밤은 자리가 그리 차분하지 못하여...”

“그러게 누가 그렇게 몰래 숨어서 작당하라 했소? 도성 뒤집힌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사이 못 참고 저 할 말은 다 하는 임거정, 이제 슬슬 이준경 귀에도 익는 이름으로는 꺽정이였다.

잠시 고민하던 이준경은 냅다 말을 질렀다.

“어젯밤 일은 미안하게 되었네.”

“... 그러니까 처신을 똑바로 하여야... 엥? 잠깐, 대감, 지금 뭐라 하셨소?”

“미안하다 했네. 정녕 우리 도학의 정사가 가장 올바른 길이라 여긴다면, 자네를 떼어놓고 사림의 인사들만을 모아 이야기해서는 아니 되었네. 자네 말대로 그저 모여서 작당한 것이라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허...”

어젯밤 꺽정이가 저의 집 모임에 난입하여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간 이후 – 솔직히 그 소란의 절반은 목소리 큰 남명 선생의 몫이었지만 – 이준경도 밤새 깊은 고민을 하였다.

여전히 큰 뜻은 변함이 없었고, 윤원형의 아래에서 인고하며 버틸 때 지켜왔던 그 마음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가 저 우악스러운 의민당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정사를 펴는 데 있어 벌써부터 편을 가르니, 이는 옳지 못한 일이었다. 허자나 상진, 주세붕처럼 이미 윤원형과 그 일파와 너무나 많이 어울려,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서라도 함께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무슨 부끄러움이 있어 벌써부터 사람을 떼어놓는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들의 길이 올바르다면, 이를 풀어서 설명하고 타이르듯 가르침으로써, 마침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선비다운 길이었다.

“선비의 정사라는 것은 이 사람도 삼십여년 전, 스승 되시는 정암 선생이 조정에 계실 때 잠시 그 기틀이 생기려다 짓밟힌 것을 보았을 뿐. 그 이후로 뜻 함께하는 몇몇 사람만을 모아 은밀히 이야기 나누는 버릇이 생겼다네. 부디 그 때문이라 여기고 양해해주게나.”

지체 높은 사람이 저를 하대한다면 똑같이 하대하여 주는 것이 꺽정이의 뒤틀린 심성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지체 높은 사람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스스로 낮춘다면, 그때는 어쩔 줄 몰라하며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또 꺽정이 심성이었다.

“그, 다음번에 그런 자리 있으면, 나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형은 꼭 불러주시기를 바라오.”

“국정 전체를 논해야 할 일이 있을 때라면 그리 하겠네.”

물론 장차 얼마나 지켜질지는 알지 못하는 – 아마 이준경 본인도 스스로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 약조였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싶었다.

“그만하면 되었소. 나으리 집안 잔치 같은 데까지 내가 갔다가는 괜히 흥만 깨질 테니. 아, 어쩌다 얘기가 이렇게 샜더라. 맞다, 사형, 마저 말씀해주시오.”

“흠흠. 실은 그 추국 담당할 관서의 일에 대해, 아마 전례 없던 일인 고로 여러모로 백관(百官)의 고생이 많을 듯하여 몇 가지 제안을 더 드리려 왔습니다.”

그 말을 곁가지로 듣던, 비좁은 임시 관아에 뒤엉켜 일 보던 관리들이 갑자기 놀라 이지함을 바라보았다. 제안 두셋으로도 이 꼴이 났거늘, 거기에 또 무슨 제안을 덧붙인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이 관청의 일은, 그 뒤에 어떤 도리가 있는지 먼저 상세히 알려드려야 비로소 함께 논할 만한 여지가 생길 듯합니다. 우리 임 당수가 뛰어난 인재이기는 하나, 그쪽에서는 영 부족함이 있지요.”

어려운 산골 생활도 끝나고 억울한 역적 누명도 곧 사라질 판국인데, 틈만 나면 사제 놀려대는 저 말투는 그대로 굳어진 모양이었다.

“이 관청에서 사안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추관(推官, 추국을 담당하는 관리) 외에 별도로 호관(護官)을 두는 것입니다.”

“호관이라? 그것이 무엇이오?”

“바로 변호를 담당하는 관리입니다. 아무리 천하에 보기 드문 흉악한 범죄라 하더라도,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무고한 누명인 경우가 있고, 반대로 죄상이 얼핏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라의 기강을 크게 위태롭게 하는 죄도 있습니다. 추관과 호관이 논박하여 양 측면을 모두 밝히게 한다면 이러한 폐단이 사라질 것입니다.”

“허나 굳이 그러한 자리를 둘 이유가 있겠소이까?”

“반드시 두어야 합니다, 대감. 호관의 제도를 두게 된다면, 억울한 죄인은 든든한 저의 편을 얻어 죄를 면할 방도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호관 또한 오로지 나라의 정령(政令)에 따라 옹호하는 것이니 죄인의 편을 드는 언행을 하였다 한들 이로써 죄를 삼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시지요. 지금까지 수많은 옥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습니까. 또 한 번 일어난 옥사가 끝난 다음에도 툭하면 새로운 옥사가 벌어져 수많은 선비가 목숨 잃은 것은 어째서였습니까?”

그 말에 이준경은 순간 놀라, 들고 있던 붓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사화(士禍). 이준경만큼 그 사화를 가까이서 겪은 자가 또 조선에 얼마나 될까. 그의 조부 이세좌에게 연루되어, 그의 아버지가 폐주 연간 갑자년에 사약을 마셔야만 하였다. 이어서 그의 스승 조광조는 기묘년에 화를 당했고, 가까이는 지난 을사년에 어떻게든 선비 하나라도 더 구하려 애썼다가 끝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처음부터 이것을 노렸던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감. 선비가 화를 당하지 않는 나라. 결코 그것은 공언(空言)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발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나... 아무리 이 새 관서가 조정과 그 권세를 나란히 한다 한들, 결국 지존의 재가를 받는 것은 동일하지 않소?”

“그것은 대감께서 실무에 저희 무리보다 훨씬 밝으시니, 마땅히 잘 처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군주의 위엄을 신하가 보필하는 좋은 제도로 만들어나갈 방책이 어찌 없겠습니까?”

군주의 위엄을 신하가 보필한다는 말이, 군약신강(君弱臣强) 네 글자로 바뀌어 이준경의 뇌리를 때렸다.

그뿐이랴. 선비가 화를 당하지 않는다 하면, 지금까지 억울하게 화를 당한 선비들도 모두 신원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지존의 추상과 같은 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금상의 성덕(聖德)을 빌려 조심스레 선왕대의 ‘사소한’ 잘못을 바로잡아 다시금 심리한다고 하면 될 일.

기묘년의 명현들. 아아, 그분들의 이름을 꺼낸다면 지금 이 나라 선비들 중 가슴을 때리며 울분 토하지 않을 자 누가 있으랴.

“하, 하하. 이제 보니 내 앞서 임 당수에게 사과하는 마음 밝힌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소. 자칫 후대에 옹졸한 선비로 이름을 남길 뻔하였구려.

좋소. 그대들이 무슨 논의를 더 꺼낼지 이 사람은 알 수 없고, 지금까지 황해도에서 의민당이 벌인 일을 볼 때 그것이 도학과 합치할 공산보다는 그렇지 않을 공산이 훨씬 클 것으로 아오. 그러나...

그러나 그대들이 없었더라면 오늘과 같이 중흥의 기회가 돌아올 일도 없었을 터. 내 마땅히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돕겠소이다.”

“고맙습니다, 대감.”

“고맙수다.”

“아, 그리고, 이처럼 천하의 밝은 도의와 멀거나 가깝게 엮이는 관서이니만큼, 이름 또한 그에 맞춤이 가할 것입니다. 예컨대 ‘장율원(掌律院, 법률 다루는 곳)’처럼 그 뜻이 지나치게 소략한 곳이라면 이 또한 맞지 않겠지요.”

정말로 형조와 의금부 내에서 나온 안이었는지, 이지함이 그 말을 하자 멀찌감치 벼루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면... 흠... 통의부(通義府)는 어떻겠소?”

“‘의로움이 두루 통하게 한다’라. 참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그리하여 가칭 통의부의 설립을 아뢰는 글이 흑의군 가득한 궁궐로 올라갔다.

주위에 의존할 사람이라고는 이제 대비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임금은, 결국 모후의 말 – 거두절미하고 내용만 살피면 당분간 납작 엎드리자는 것이었다 – 에 따라 그대로 윤허하였다.

그 윤허의 과정이 결코 올바르다 하기 어려웠음은,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아직 남아 있던 윤원형의 일파들은, 자칫 윤원형 꼴 날까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 당장 진복창만 해도 돌아오자마자 집안에 그대로 연금되어 있었다 - 이준경을 따르는 이들은 기묘명현의 신원이라는 그들의 염원이 통의부를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이준경의 설명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런 내막까지는 모르고 오직 그 ‘호관’이라는 제도 생겼다는 소식만 듣고서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준경과 나머지 관원들은 열심히 일하라 맡겨두고, 다행히 불길을 피한 아버지 이원수의 서울 집에서 남명·퇴계 두 사람과 함께 지금쯤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을 밤골 도령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봉두난발 중년 사내 하나가 골목에서 튀어나와, 이지함과 꺽정이 앞에 벌렁 엎드리더니,

“아이고, 임 당수! 감사하오! 감사하오! 내 이 일은 죽어서도 잊지 않겠소! 아이고, 아이고!”

꺽정이 발목을 잡고서 울먹이며 연신 고맙다 말을 주워섬기는 것이었다.

“그, 어르신. 우선 일어나시오. 내 감사하다 칭송 듣는 것은 물론 즐기지만, 그래도 사연은 듣고서 즐겨야겠소. 윤원형이 붙잡은 것 때문에 그러시오?”

“엥? 아니,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그, 당수께서 이 사람의 모자란 동생 구명해주시려고 그 호관이라는 제도 두시겠다고 하기에...”

“흠흠, 우선 실례지만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부터 여쭤도 될지요.”

“아, 아. 내 정신 봐. 그, 나는 윤원량(尹元亮)이라는 사람인데, 사사롭게는 대비전의 오빠 되는 사람이고... 그, 후... 임 당수께서 붙잡으신 서원군은 내 아우가 되오.”

이 사내의 정체에 한 번 놀라고, 그것을 대놓고 이 두 사람 앞에서 밝히는 사내의 ‘비범함’에 두 번 놀라는 꺽정이와 그 사형이었다.

그 떨떠름한 표정을 어떻게 읽었는지, 다시 두 손 마주잡고 구구절절 저의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아우가 말이오, 물론 뭐, 사람됨이 좀 미덥지 못한 건 있다지만 그래도 소중한 내 막내아우요. 우리 형제들이 모두 명이 짧아 다 떠나고, 나도 자식들마저 모두 아비 먼저 갔소. 남은 건 내 아우뿐이라오. 흑흑!

헌데 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구명할 방도를 틔워주셨으니, 내 어찌 찾아와 이렇게 감사말씀 올리지 않을 수 있겠소? 부디 잘 부탁드리오! 부디 잘... 어흑흑!”

꺽정이와 이지함 나이 합친 것보다 아주 약간 연소한 정도일 윤원량이 눈물을 감추지 않으니, 이 난감함에 어찌할 줄 모르다가 끝내 꺽정이가 나서서 어깨를 토닥였다.

“흠흠. 내 알겠소. 어쨌든 나라의 귀한 사람인데, 여기 누추한 저자에서 눈물이나 보여서 되겠소이까? 부디 들어가보시오.”

어울리지 않는 꺽정이 면상으로도 의외로 위로가 잘 먹혀, 정말로 다시 한 번 주저앉으려던 윤원량은 똑바로 서서는 고맙다 인사하고 총총 사라졌다.

“내 조만간 한 번 크게 병이 들까 무섭소. 사람이 안 하던 짓 자주 겪으면 탈이 난다던데, 웬일로 양반님네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연이어 들으니, 거 참.”

“앞으로는 자주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고맙다 하는 이도, 아첨으로 온갖 감언이설 늘어놓는 자도 있겠지. 그보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이지함이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흠. 아니,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긴 하다.”

“지금 나한테 뭔지 설명 아니 해주시면 밤골 도령과 다른 선비님네 계신 곳에 가서 사형이 뭔가 숨기는 것 있으니 얼른 캐물으시라 말해버릴 게요.”

“야, 그건 좀... 그...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그렇게 한동안 발걸음 옮긴 뒤, 얼추 생각 정리된 이지함이 말했다.

“지금 사라진 윤원량 저 사람 말이다. 어째 가는 방향이, 윤원형이 가두어놓은 그곳이더라.”

“그렇소?”

전옥서도, 의금부도 모두 홀랑 타버린 탓에, 윤원형은 겨우 불벼락 면한 저의 저택 한 곳에 정난정과 함께 갇혀 있었다. 물론 불타지만 않았을 뿐, 안의 세간살이와 집기 등등은 모두 도둑맞은 지 오래였으니, 속도 쓰리고 몸도 시릴 테다.

“허나 그 윤씨 사람됨이 꽤 투미해 보이던데.”

“아무리 그래도 말은 그대로 전해줄 수 있지. 어제 그 동고 대감 자리에 몇몇 중신들이 빠져 있는 것 보았느냐? 어쩌면 그 호관 제도 얘기를 들은 윤원형이, 저와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끌어모아 뭔가 술수를 꾸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뭘 그런 걱정을 다 하시오? 정 그리 되면 굳이 죽일 것도 없이 유배만 보내어도 나는 족하오.”

“그 무슨 말이냐?”

“아, 별 말 아니오. 조선국 산수가 워낙 험해서, 멀쩡히 가던 배 아래에 구멍도 나고, 또 갑자기 범이 내려와서 핏자국만 남기고 사람 통채로 삼키는 일도 있기 마련이거든.”

꺽정이 놀리는 것은 입에 익었으나,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저 흉포한 도적놈 화법은 끝내 귀에 익지 않았다.

“뭐, 그때 가서 더 고민해보자꾸나. 우선은 우리 사정이 조금 더 급하고, 윤원형이 무슨 마지막 꼼수를 준비하고 있든 꼼짝없이 갇힌 신세인 것은 변함 없으니.”

그렇게 사형과 사제가 농담 따먹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그들을 숭모한다는 무리에게 멋쩍게 인사도 해주고 하면서 이원수네 서울 집에 닿았다.

이원수 본인은 봉산에 남아 관군과의 싸움 뒷처리에 전념하는 안사람 외조(外助)에 바빴으므로, 이지함이 한양에 올 때 이이만 함께 따라왔다.

이지함 말에 따르면 배멀미가 꽤 심하였다 했는데, 남명과 퇴계 두 학자가 나타나니 언제 그랬냐는듯 말이 곱절은 더 빨라졌다 하였다.

“그래서, 뭐 재밌는 얘기는 나왔소?”

“말도 마라. 어젯밤 내내 심성(心性) 논변만으로 꼬박 새워놓고, 아침이 되니 또 다시 시작하는데, 나도 감히 천하에 재주로 따라올 사람 드물다 자처하건만, 저쪽은... 햐. 나는 그냥 앞으로는 자염 굽고 배 만드는 일이나 맡아야 되겠거려니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의민당 업보였다. 조식이야 본디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에 밝으니 그렇다 쳐도, 이황이나 이이가 대국에서 나오는 최신의 논변들을 접하고 익히게 된 것은 오직 요양에서 서책을 밀수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제대로 이야기들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사형 말씀마따나 윤원형이가 뭔가를 꾸밀 것이라면, 우리끼리 얼른 준비를 마치고 그... 뭐였더라? 통의부 문을 열어서 우리네 의민당 일부터 처결하게 해야지.”

“아마 지금쯤 그러고 있을 것이다.”

하고서 조촐한 솟을대문 앞에 서서 헛기침 몇 번 하였다.

곧장 안에 들었는데, 낭랑한 말소리가 사랑채 바깥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이제 막 시작한 모양이로군그래.”

조식이야 본디 옳다고 믿는 것 우직하게 밀어붙이기로는 옛 자로(子路)와도 닮은 사람이고, 이황도 사람됨 차분해서 그렇지, 그 주관과 소신은 뚜렷하디 뚜렷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곳에 모이게 된 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마찰이 있기는 했으나, 어젯밤에 이지함과 이이 앞에서 추관과 호관 제도에 대해 들으니 꽤 그럴듯하다 싶어 이렇게 따라오게 되었다.

허나 그 뚜렷한 주관이 어디 가지 않아, 자연스레 이황은 모의로 추관을, 조식은 호관을 맡아, 어떻게 논변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실증해보고 있었다.

이황은 처음 스승 이언적 통하여 의민당 이야기 들었을 때부터, 의민당이 설령 공이 있다 한들 과도 있으며, 이 둘을 뭉뚱그렸다가는 나라의 기강이 더욱 흔들릴 것을 걱정하였으므로, 그러한 논지에 따라 의민당에도 나름의 잘못은 있음을 말하였다.

암만 성질 급한 조식이라도 다른 선비가 저의 학설 담아 논변 펼치는 것까지 함부로 끊지는 않아, 이렇게 가만 앉아 듣고 있던 것이다.

“... 하여, 이 사람은 의민당의 공과가 모두 명백한바, 금번 난리에서 황해도에 관군이 들어가 일으킨 해에 대해서는 나라 곳간에 여유가 생기는 대로 보상하고, 거기에 참여한 이들의 죄 또한 묻지 않되, 그 당은 해체하여 결코 나라에 두 번 다시 그러한 유례가 생기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 보오이다.

한때 역적이라 불림을 받은 무리가 죄 없이 풀려나고 보상까지 받으니, 이는 이미 전례없는 처분이오. 따라서 이것만으로도 의민당의 의기는 높았음을 보일 수 있고, 또한 그러면서도 그 당을 해산하니, 간악한 무리가 소민(小民)을 꾀어 마치 자신들도 의로운 것처럼 꾸며 난행하는 것을 경계하는 뜻은 보이는 셈이외다.”

이지함과 꺽정이가 들어올 무렵, 딱 여기서 이황의 첫 번째 추관 논변이 마무리되었다.

“비록 그 뜻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으나, 선생이 깊게 고민하여 일리 있는 주장 펼침은 이 사람 또한 족히 알겠소이다. 다만 본인은 먼저 여기 이 도령에게 기회를 주고 싶소. 지금까지 이야기 나누었던 것을 보니, 분명 의민당을 옆에서 겪으면서 나름의 비상한 생각을 하였을 듯한데, 한 번 쯤 들어보고 논지를 가다듬음이 맞지 않겠소이까?”

“그것은 그렇소이다.”

간밤에 이이를 두 사람에게 소개할 때, 저의 제자라고만 말하고 그들이 청석골 아랫말에서 어떤 공부를 함께 했는지는 밝히지 않은 (또는 차마 밝히지 못한) 이지함이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그저, 이지함이 유망한 인재로 하여금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이렇게 데려왔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체 없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재와 학문으로 고명한 두 사람 앞이라지만, 이이로 하여금 긴장하거나 잠시 말문 막히도록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청석골에서 저의 스승 되는 수산 공과 함께 논의한 바를 제 나름대로 갈무리한 것입니다.

무릇 사람에게는 마땅히 따라야 하는 바가 있는데, 이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좋구나.”

후학의 말이 논리정연하니, 이황과 조식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발하는 것이 올바르게 흘러나와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면, 이를 의(義)라 부르니, 『중용』에서 의는 곧 마땅함이라(義者宜也) 이른 것이 이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사람이 스스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이 있는데, 만일 다른 사람이 함부로 이를 막거나 억누르려 한다면 능히 잘못이라 이르고 쳐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황은 그 말이 혹여 저의 생각과 어긋나지 않는가 잠시 숙고에 빠지고, 조식은 점점 이 어린 후학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여기며 역시 맞장구를 쳤다.

“다른 사람의 뜻을 꺾고 저의 뜻대로 하는 것을 권(權)이라 합니다. 마땅히 자신이 갖추어야 할 바를 갖추려 하는데, 이를 빼앗으려 하는 자가 있다면, 이를 억눌러도 잘못이 아닙니다. 그만큼의 권세를 저와 저의 스승 수산 공은 이르기를 의권(義權, 권리)이라 칭하고자 합니다.”

“허, 의권이라.”

“계속 말해보게나.”

졸지에 자신의 학문까지 이이의 입을 빌어 평가받는 격이 된 이지함은 절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꺽정이는 선비들이 모여서 이렇게 고담준론 하는 것이 신기하여 – 지루해지기에는 아직 한 각쯤 남아 있었다 –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이 의권이란, 스스로 일하여 먹고사는 것과 같이 근천(近淺)한 것부터, 학문을 닦고 밝은 이치를 드러내는 것처럼 심원한 것까지 모두를 아우릅니다. 사람의 본성에 욕심이 있는데, 오직 이 의권에 따라 취할 것만 취하고 다른 사람의 것은 탐하지 않는다면 비로소 인의가 지켜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아래의 일은 실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하여, 사람이 스스로 저의 의권을 지키지 못할 때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들께서는 먼저 사람들에게 불 피우는 법이나 비단 짜는 법처럼 재주를 가르치시어 스스로 먹고살도록 하시고, 그 다음에는 예(禮)를 가르치시어 서로 의권을 지키도록 하셨으며, 마침내 나라를 세워 모든 일을 총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허... 본성에 욕심이 있다. 그것은 좀...”

“그 논변은, 더 가다듬어 서책으로 묶으면 매우 흥미로운 글이 될 것일세. 내 한낱 촌부로서 견식이 깊다 자부는 못하나, 대국에서도 아직 이러한 논변은 없었을 것이야. 다만 여기 퇴계 선생 말씀처럼 그 욕심 부분은...”

그러나 이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저의 할 말을 마저 하였다. 이지함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생긴 나쁜 버릇이었다. (이지함은 갑자기 뒷목 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나라의 다스림이란 백성을 위한 것이요, 백성이 능히 그 의권을 지켜 스스로 의식(衣食)에 부족함이 없고 예악(禮樂)의 교화를 능히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면 반대로, 나라가 백성의 의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예악으로 교화하기는커녕 오직 소인(小人)의 행실만 보여준다면 어떻겠습니까? 정령(政令)의 올바름은 바로 서지 않고, 심지어 수취하는 조세만 가혹하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는 나라가 본디 그 목적을 잃은 것입니다. 임금이 천명을 잃으면 필부라 부른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본디 사람도 아니요, 사람끼리 있다고 약조하기만 한 무언가인 이 나라라는 것이 천명을 잃으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겠습니까?”

이제는 조식의 표정에도 난감함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예상을 한참 벗어난 과격함이었다.

“나라가 나라인 까닭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요,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도와 그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의권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나라라 하면, 백성이 일어나 나라를 폐하려 한들 무슨 잘못이 되겠습니까?

이는 모두가 나라의 잘못이지, 백성을 탓할 것이 아닙니다. 백성을 위하지 않는 나라는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의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사랑채에 찾아온 적 없던 침묵이 내렸다. 꺽정이 홀로 무슨 일인가 싶어 눈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던 차.

“이상 간략하게 불초 소생이 배우고 또 생각한 바를 간추려 말씀드렸습니다.”

하니, 의외로 이황이 먼저 말했다.

“흠흠, 이때를 기해 분명히 말해두자면, 의민당의 의로움에 동감하여 기꺼이 그 편을 들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남명 선생이시었소이다.”

그러나 조식은 이미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어 그 말에 대꾸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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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추국’이라 하면 사극에 나오는 친국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실제 추국은 여러 ‘급’이 있었고, 친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비상한 일, 예컨대 모반이나 강상죄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아랫단계인 정국(庭鞫)은 의정대신 중 임금의 명으로 국문을 주관하는 위관(委官)을 정하여 궁궐 앞뜰에서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아랫단계로는 의정부·의금부·사헌부가 동석한 채 심문을 진행하는 삼성추국(三省推鞫), 그리고 그냥 의금부에서 도맡아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일반적인 추국이 있었습니다.

작중에 등장한 윤원량은, 실록에도 당당하게 사람됨이 용렬하고 어리석었다는 평이 나와 있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권력형 비리 등에는 전혀 얽히지 않아, 윤원형 몰락 이후 전혀 죄를 받지 않고 그 형제들 중 유일하게 선조 대까지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하지요. 권세에는 별반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윤원형과 윤원로 사이의 대립을 깨닫고 미리 낙향하여 두문불출하였던 그 바로 손아랫동생 윤원필과 달리 윤원량은 멋모르고 죄인을 집에 숨겨주고, 또 그 일로 사헌부 관리들이 찾아와 조사를 하자 그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 여러모로 체신머리 없는 처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식 복이 없어, 말년에는 혼자 살게 되었는데, 종종 윤원형을 찾아와 만나보기를 청했지만 윤원형은 한사코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윤원형을 탄핵하는 상소에 한 가지 근거로 수록되었던 것을 볼 때, 당시 여론도 윤원량에게 동정적이었던 듯합니다. 여담으로 그의 서손녀 윤씨는 1566년 출산 도중 사망하여 매장되었는데, 그 사체가 미라화되어 최근에 발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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