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60화 (60/259)

20. 잉걸불 되살리기 (2)

이지함이 주세붕에게 안으로 들라 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림과 이이도 당도하였다.

서림은 한때 관찰사로 마주하였던 사람이 평범한 선비의 차림을 하고서 같은 방에 앉아 있음을 은근히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또 그만큼 저의 격이 올라간 듯하여 뿌듯하게 여기고, 이이는 간만에 다시 만나는 주세붕이 반가워 안부를 주고받고 있었다.

“흠흠, 하면 이 사람이 이렇게 찾아오게 된 까닭인 학교의 일을 말하도록 하겠소.”

그렇게 한참 떠들던 중, 자신이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된 까닭을 새삼스레 떠올린 주세붕이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듣기로 이번에 서원군이 임 당수의 그 새로운 당에 적지 않은 가산을 바치기로 했다 하였소. 그것으로 사욕을 채우는 대신 널리 학교를 세운다 하니, 과(過)를 바로잡아 정(正)으로 돌려놓는 임 당수의 큰 뜻이 참으로 아름답소이다.”

사실 그리 아름다운 뜻으로 한 일은 아니었으나, 꺽정이는 퍽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칭송하는 말을 태연하게 받았다.

“별 말씀을 다 하시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소.”

“이 사람은 지난날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서, 그... 서원의 일을 두고 겨룬 이후로 계속하여 올바른 학당의 이치에 대해 고민해 왔소이다. 가뜩이나 지금 세태가 세태라 적적하게 지내던 차, 임 당수의 소식을 듣고 이리 달려온 것이오.

사실 아국은 예로부터 향리(鄕里)에 학당이 있어 왔으나, 그 규모가 영세하거나 짜임새가 허술하여 지금껏 그 가르침이 실제로 풍교(風敎, 풍속의 교화)를 널리 퍼뜨리는 데 이르지는 못했소. 그리하여 이 사람도 각지에 방백으로 나가 있으면서 서당이며 서원을 세워 왔으나, 어찌 그것으로 족하다 하겠소?

생각건대 임 당수가 이 사람이 고안한 촌항학제(村巷學制)를 따라 학당을 널리 세운다면, 그 아름다운 이름이 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외다.”

이지함 말대로 하루 이틀 고민한 것이 아니었는지, 청산유수로 쏟아져 나오는 계획이 의외로 그럴듯하게 들렸다.

“널리 가르치는 데에는 큰 학당 한 곳을 세우는 것보다 작은 서숙(書塾) 여럿을 세우되 그 체계만 하나로 묶는 것이 낫소이다.

이미 전국 각지에 있는 서당 등에 재원을 마련해 주고, 대신 그 가르침에 있어 오직 『소학』을 따르게 하고 『여씨향약(呂氏鄕約)』의 대의를 존숭하게 하는 것이오. 그리고 개중 성취가 뛰어난 자제가 있다면, 고을마다 한두 곳 학당을 정하여 그곳에서 성현의 말씀을 깊이 배워 장차 향교에 들어가거나 이름난 스승에게 나아가 배울 수 있도록 더 깊게 가르치는 것이외다.”

가만 듣던 꺽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잘은 모르나, 적어도 어르신께 맡긴다면 이번에 얻은 재물이 헛되이 쓰이지는 않게 할 수 있음은 알겠소.

다만... 그것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소?”

“부족하다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당장 시골에 내려가면 밭 갈고 김 매기 바쁠 텐데, 자식들을 학당에 보내려 하겠소? 그들 사는 데 뭔가 도움 되는 것도 가르쳐야지.”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한다고 여기는 선비로서는 생각지 못한 물음. 허나 놀란 주세붕이 좌중을 둘러보니, 다들 임 당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수산, 그대도 그리 여기오?”

“그렇습니다. 예컨대 농사짓는 일만 하여도 그에 들어가는 술기가 범상치 않습니다. 수리(水利)의 이치 같은 것까지 가르치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지함이 그리 말하니, 이이와 서림도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산학도 가르쳐야 합니다. 가감승제 셈법 정도는 배워서 익혀야, 나중에 세곡을 내든 방납미를 걷든 할 때 스스로 헤아려서 바치지 않겠습니까? 분명 제대로 셈하여 걷었는데 나중에 무식한 농군들이 볼멘소리를 하게 되면 아전들로서도 참 힘이 빠지는 일입지요.”

“조선국 백성으로 태어났으니 그 조선국이 어떻게 개국하여 여기까지 왔고 나라의 제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째 일이 커져가는 모양새에 주세붕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오른 흥은 빠지지 않아, 이지함이 다시 한 마디 더 보태었다.

“비록 잡다한 기술이 군자가 힘쓸 바 아니라지만, 우리가 세우려는 학당은 차마 군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까지 널리 가르쳐 우매함을 능히 벗어나도록 하는 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학(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잡술이라 하더라도, 배우려는 자가 있다면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의술만 하더라도, 지방 군현에서는 배우려는 자가 있다 한들 실제로는 각 도에 고작 한둘 있는 교유(敎諭)에게 찾아가 배우거나, 비싼 의서를 구하여 홀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다못해 장시를 전전하는 행상만 하더라도, 제대로 장사를 하려면 산법(算法)에도 능해야 하고 또 치부(置簿)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학당에서 배울 수 있다면 백성들 중 장사에 나서려는 자들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수긍하는 듯 잘 듣던 자들 사이에서 계속 엉뚱한 말이 나오니, 놀란 주세붕이 황급히 반례를 들었다.

“허, 허나 그리 따지면... 하다못해 선인(船人, 뱃사람)들조차 재주가 있으니 학당에 들여야 한다는 뜻이 되지 않소이까?”

그리고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이지함이 좋아하는 선박의 일을 꺼낸 것이 잘못이었다.

“아, 그 또한 좋은 말씀이십니다. 뱃사람들의 일 또한 비록 천하게들 여기지만 나라에 꼭 필요한 것이지요. 지금 선인들로 말하면 그저 주먹구구로 보고 들은 것을 몸으로 익힐 뿐이요, 그들이 죽으면 그 재주 또한 흩어져 사라질 뿐입니다. 선인을 가르치는 학당을 따로 만든다면 그러한 폐단이 없어지겠지요.”

여전히 학교에서 온갖 잡다한 것 가르친다는 데 마음이 쏠려 있던 서림이 눈치 없이 또 한 마디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관에 속한 장인들 중에서도 그 요역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하여 사장(私匠) 노릇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거두어 그 재주를 가르치게 한다면, 결국 장인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니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장인들 물건을 우리가 대신 팔아주면서 또 엄청난 이득을... 아, 지금 이 말은 잊어주십시오.”

처음 말하였던 자신의 촌항학제 제도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한탄하며, 주세붕이 다시금 반론을 내놓았다.

“후... 백 번 양보하여 그런 것들을 학당에서 가르치려 한다고 해보겠소이다. 그리하면 그런 잡술을 배운 온갖 사람들이 저들도 다른 이들의 스승 되는 자라며 전횡할 터인데, 정학과 잡술의 구분이 무너지지 않겠소이까?”

판이 연달아 커져만 가는 것을 재밌게 바라보던 꺽정이가 주세붕의 반론을 듣고 흐뭇하게 웃었다.

“옳거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바요.”

“임 당수, 지금 무어라 하셨소?”

“방금 말씀하신 것 있지 않소? 정학과 잡술이 뒤섞이는 것. 그것을 우리는 원하오. 귀천의 분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욕심껏 저의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는 것 말이오.”

스승 서경덕 초당의 문턱을 제외하면, 서당 문턱도 제대로 넘은 적 없는 꺽정이었다. 애초에 서당이라는 것 자체도 양주 읍내에나 한둘 있고, 그 외에는 모두 양반들 사는 동리에 있었으므로, 소싯적에 아비 따라 고리 바치러 가는 길에나 지나치듯 본 것이 전부일 테다.

그러나 그런 서당에서 글 가르치는 훈장들이 어지간히 고개 꼿꼿이 들고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 앞에서, 장사치나 뱃사람들이 나도 세상에 도움 되는 것을 후대에 가르치는 사람이라며 나서기 시작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아마 그 자리에서 사람을 모아 몰매를 놓으려 할 것이다. 저들 뒤에 한양을 뒤엎은 임 당수가 있노라 밝히지 않는다면.

“허나... 그리 된다면 지금까지 향촌에 겨우 갖추어진 예악(禮樂)과 풍속이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위아래를 모르게 될 것이외다. 어찌 학교를 세워 그런 어지러움을 이루려 하시오?”

“갈수록 좋은 말씀만 하시는구려. 그 어지러움이 바로 노리는 바요.”

“아, 아아...”

짧은 한탄을 끝으로 주세붕은 고개를 떨구고 깊은 고심에 빠졌다.

꺽정이가 너무 정직하게 저의 할 말만 던졌다며 이지함이 그 옆구리를 쿡 찌를 무렵, 떨어뜨렸던 고개가 도로 올라왔다.

“아니, 이 사람은 그리 생각지 않소.”

“무슨 말씀이오?”

“그런 잡술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어쨌든 『소학』과 같은 경전의 대략은 가르쳐야 할 것 아니오?”

“그건 그렇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학당이라면, 무식쟁이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할 터이니.”

공자왈 맹자왈 한두 구절쯤은 읊을 수 있는 것이 조선 사람 생각하는 ‘배운 사람’의 기준이었고, 꺽정이 또한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잡술을 ‘학’이라며 가르친다 한들, 결국 교화는 이루어지고 정학은 바로 설 것이라고 이 사람은 보오. 오히려 뱃사람과 장사치, 장인의 가운데에서 더 배우려는 이가 나타나고, 이로 말미암아 더욱 학문이 흥성하게 될 수도 있을 터.

지난날 해주에서 그대들의 대녕학당에 밀려 수양서원을 내어준 이래로, 이 사람은 일반 백성들을 널리 모아 가르치려 한 바 있소. 그리고 그때 보았소이다. 얼핏 몽매하여 배움의 값어치를 모르는 듯한 이들조차, 학당을 열어 가르친다 하면 그 자제들을 보내오곤 하였소.

그것이 조선국 사람들의 풍속이니, 어찌 사람이 하나만 알고 그치려 하겠소?”

그 말을 들은 이이가, 그것은 밑바닥 백성들조차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지적하려 했는데, 이지함의 눈길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좋소. 일전에 격물법으로 내기한 것처럼, 이번에도 시일이 지나면 누가 옳았는지 차차 알게 되겠지. 그렇지 않소?”

“그렇소. 어차피 지금의 조정에서는 이 사람을 그리 원하지 않는 듯하니, 이렇게라도 나라의 교화에 힘써야 하지 않겠소이까.”

자신이 내린 결론을 자못 흡족히 여기며, 주세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사다난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경술년(1550) 한 해도 어느새 저물고 있었다.

이지함의 집을 떠나 궁궐로 돌아온 꺽정이에게도 벌써 새해맞이 준비로 부산한 궁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저도 덩달아 들떠서 군기가 풀린 흑의군 녀석들도 몇 명 눈에 들어왔다.

간만에 친히 굴려주고서, 저의 처소로 쓰고 있는 조그만 전각으로 돌아가던 차, 이준경이 꺽정이를 불러세웠다.

“이보게, 임 당수.”

“어, 이 대감은 무슨 일이시오?”

“나라의 대신이 되어서 국주(國主) 계시는 금궁을 드나드는데 무슨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이준경이 웃으며 말했다. 꺽정이는 한 번에 본론을 말하지 않고 초장에 빙빙 돌리는 것은 어째 형제가 꼭 닮았다며 속으로 툴툴거렸다.

“실은 그때 궐문 앞에서 자네가 내걸었던 두 번째 사안 때문에 찾아왔네.”

“궐 밖에서 국정을 논하는 자리 만들자는 것 말씀이시오?”

“그렇다네. 황해도에 있던 관군은 이미 모두 해산하였네. 아직까지는 군호(君號) 남아 있는 서원군의 의송도 이제 곧 마무리될 것이고.”

그간은 꺽정이 본인이 의송에 나서서 당 없앴다 새로 만드는 시늉을 하느라 바빴고, 또 이어서는 윤원형이 재판에 꺽정이 본인 외에도 조정의 어지간한 중신들이 모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윤원형이 마침내 저의 죄를 모두 이실직고하는 모양새가 갖추어지고, 남은 의송은 그저 시시하게 흘러가게 되면서 – 조식에게는 안 된 일이었다 – 슬슬 꺽정이가 내걸었던 마지막 조건을 다룰 때가 된 것이었다.

“일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디서 언제 모일지, 그런 것은 대감께서 알아서 하시기 바라오. 그저 이 사람을 빠뜨리거나 하지만 않으면 되오.”

“그야 당연한 일이지. 다만 자네가 그런 모임을 바라는 까닭을 묻고자 이렇게 불러세우게 되었네.”

“선비님들은 참 많은 것이 궁금하신 모양이오. 그래서 어떻게 밤에 잠은 잘 주무시겠소?”

꺽정이 빈정거림도 여러 차례 들었기에, 이제 별로 개의치 않고 저의 할 말 마저 하는 이준경이었다.

“자네가 서원군의 전지(田地)를 거두어들여 학당을 널리 세우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었네. 그리고 신재 그 사람이 자네와 함께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신재는 사람됨이 온후하여 차마 사귀지 말아야 할 이까지 사귀었기에 새 조정에서 현달하기는 어려울 터. 그런 이가 교화를 널리 펴는 일을 도우려 하니 이는 아름다운 일일세. 허나 그와 함께 들려오기로는 자네 당이 기이한 단서를 거기에 붙였다 하더군그래.”

“뭐, 제대로 들으셨소. 이왕 만백성이 다니는 학당을 세운다 하면, 그 만백성에게 도움 될만한 것을 가르쳐야지.”

“그 뜻만 있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네. 물정을 아는 식자라 하면, 그처럼 난잡하게 학당을 세울 때 파란이 작지 않을 것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래서 어찌하실 테요? 국법으로 막아보시려오? 나라의 정령(政令)도 아니요 그저 우리 당에 들어온 재물을 처분하여 우리 당 마음대로 하는 것인데.”

“막으려 한들 어찌 막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묻고 싶네. 임 당수, 자네와 자네의 당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슨 생각으로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 나아올 심산인가?

자네 당의 봉기는 이미 나라의 기틀을 한 번 뒤흔들었네. 그때 마구 튄 불꽃이 이제 겨우 식어가고 있는데, 마치 잉걸불에 풀무질을 하여 되살리듯 그 학당과 같은 일로 세상을 놀래키려 하니, 어찌 이 사람이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라에서 내리는 명이 부당하다면, 작정하고 모여서 여기에 항거하여야 한다. 그리하여도 능히 버틸 수 있다.

더 나아가, 나라에서 내리는 명이 부당한지 아닌지조차 그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지난날 의민당이 전국에 퍼뜨린 그 불온한 생각은 뿌리를 깊게 내렸다. 조정이 백성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그 새싹이 다시 돋아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지치고 놀란 민심을 다독이며 한때의 풍운이 잊혀 지나갈 수 있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이 ‘민주당’이 세운다는 학당은, 시끄럽던 한 해의 기억을 능히 되살릴 만한 불씨가 될 수 있었다.

“우리 당은 나라를 뒤엎고자 모였소. 이미 아시지 않소?”

심란한 이준경 마음이야 알 바 아닌 꺽정이가, 신랄하게 답했다.

“결국 윤원형을 무찌르고 여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만족함을 알고 머물 수는 없는가?”

“윤원형이 암만 대단했다 한들 나라 하나와 같겠소? 나리, 아직 뒤집어엎어야 하는 것이 조선 팔도에만 해도 한가득 쌓여 있소. 모두가 욕심껏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나아갈 테요.

그 ‘모두’에 물론 선비도 들어 있고. ‘선비가 화를 당하지 않는 나라.’ 일전에 몇 번 듣지 않으셨소?”

그러나 이준경은 못 들은 체하며 경고하였다.

“이 나라의 기둥은 엄연히 선비일세. 기둥이 부실하여 지금까지 자네에게도, 또 자네와 같은 수많은 민려(民黎)에게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그것은 학문을 배운 자들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세.”

이미 눈앞의 임거정을 여러 차례 겪었던 이준경이었기에, 아무리 그가 말해도 듣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임거정은 윤원형을 무너뜨리는 공을 세웠음에도, 마침내 새로운 과(過)로써 그것을 덮으려 하는가. 끝내 이 땅에 새로운 대립과 다툼을 몰고 와야만 하는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것이 별 소용 없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 나라는 처음 세워질 때부터 선비가 신하로서 임금을 모시고 만백성을 위하도록 만들어졌네. 그렇게 이미 백오십여 년이 지났지. 이를 어찌 가볍게 바꿀 수 있겠는가?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게나, 임 당수. 자네 말대로 윤원형의 권세는 나라 하나에 비할 바가 못 되었네. 자네의 무위로 윤원형은 무너뜨렸지만, 나라는 함부로 할 수 없네. 부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우를 범하지 말게나.”

“그런 어려운 문자를 쓰시면 나는 알아듣지 못하오, 대감.”

실제로는 이준경의 말을 잘 알아들었던 꺽정이가 차갑게 대꾸하였다.

다음날, 꺽정이는 아침부터 궁을 나서서는 서림이를 만나러 갔다.

이지함이 번듯한 새집을 구했다지만, 서림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지함보다 훨씬 늦게 상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융통할 수 있는 자금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운종가에서 멀지 않은 북적이는 동네 한복판에 큼직한 집 두 채를 마련하고서는 담장을 튼 것이다.

물론 그 집을 일가친척이나 노복들로 가득 채우려 그리 마련한 것은 아니요, 청석골 아랫말에서 했던 것처럼 사업을 벌이는 곳으로 쓰고자 초장부터 거창하게 밑천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 집 풍경에 대한 꺽정이의 첫 감상은 이러하였다.

“아침부터 다들 바쁘구려.”

“뭐, 서리들 삶이 대개 저렇지요. 의민당, 아니, 이제 민주당에서 늠료(廩料, 급료) 받는 이들이니 밥값들은 해야지.”

“다들 밥값은 족히들 하고 있는 듯한데.”

그 말대로였다.

딱 보아도 아전의 복식을 한 자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디 행랑에 잠깐 올라 뭔가를 건네주고는 또 밖으로 나가고, 또 누군가는 마루에 걸터앉아 세필로 무언가를 급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교하 쪽에서 토지문기가 올라왔습니다! 우리 것 맞지요?”

“맞기는 한데, 일전에 고양에서 받은 것과 겹치는 게 있을 수 있으니 확인해 보게!”

“경주인(京主人)! 충청도 고을 경주인들에게 연통 다 돌렸나?”

“아직입니다! 곧 통인(通引)들 보내려 하는데요.”

“잘 되었네! 문구 좀 고치세나!”

그렇게 부산 떠는 것을 한창 구경하던 꺽정이가 물었다.

“저이들은 모두 황해도에서 올라온 아전들이오?”

“일부는 이 사람 따라 올라왔습니다만, 아랫말에 있던 아전들 대부분은 황해도에 남았습니다. 거기서 벌여놓은 사업이 워낙 많아서, 그것만 운영하여도 그 옛날 각자 조그만 고을에서 소소하게 세곡 포흠하던 것 따위에 비할 수 없는 이문이 남으니 다들 떠나지 않으려 하더군요.”

그 사업에서 나오는 소득 중 상당 부분이 도성으로 올라올 것이므로, 서림 또한 그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어느새 도성의 ‘뒷배’가 되어줄 만큼 거물 되었음을 은근히 즐겁게 여길 뿐.

“그러면 저들은 다 누구요?”

“경아전의 아들이나 사위들이 다수요, 몇몇 발 빠른 경기도 일대 아전 출신들도 있습니다. 의민당이 얼마나 큰 성공 거두었는지를 듣고서는 이렇게 조금이라도 빨리 와서 발 걸치려 하는 것입지요.

적어도 아전들 눈으로 보면, 우리 의민당의 승전은 아전들의 승전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소?”

처음 듣는 이야기에 꺽정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역모고 무엇이고 결국 곡식과 포목을 끝없이 요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 곡식과 포목을 대어주었던 것은 어디 숨겨둔 금광도, 신묘한 도술도 아니요 오로지 의민당 아전들의 사업 솜씨였고요.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아전들이 그렇게나 거들먹대던 관장(官長)들에게 한 방 먹이다 못해 아예 조정을 때려눕힌 격입니다. 그러니까 아전들이 어디 가서 말은 못해도 자못 통쾌하게 여길 수밖에요.”

“허. 아전들이 그리 생각 많을 줄은 몰랐소.”

“아전들은 항상 생각이 많습니다요. 어찌 아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곁에서 양반님네들 일하는 것도 보아야지, 나름대로 상놈들과는 다르답시고 예절도 차려야지. 양반님네와 달리 체통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으니 잇속도 알아서 챙겨야지.

그렇게 바쁘게 우리가 뛰어다니니까 그래도 엉성한 조선국 공사(公事)가 그나마 굴러들 가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문득 어제 이준경이 도발하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이준경 딴에는 꺽정이를 걱정하고, 또 겨우 안정을 찾은 조선국 정국이 도로 혼미해질까 걱정하여 한 말이겠지만, 장차 나라까지 홀랑 훔치려는 꺽정이 마음에는 도발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잠깐 고심하다가 서림에게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던졌다.

“그렇다면 선비들 몰래 아전들끼리 뭉쳐서 나라 하나쯤 훔쳐낼 수도 있겠구려.”

“나라를... 훔쳐낸다...? 아이고, 임 당수. 또 무슨 무서운 궁리를 하십니까.”

서림이 진절머리를 쳤다.

“일단은 그 학당 세우는 일만으로도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조정처럼 어디에 수령을 임명해서 이러이러한 명에 따르라 할 수는 없으니, 죄다 아전들 통해서 알음알음 움직일 수밖에요.”

그 말 마치기 무섭게, 대문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헴헴, 서 별감님 계십니까. 홍주목 아전 배 모이올시다. 학당 세우는 일 때문에 말씀 여쭙고자 왔습니다.”

“온양 고을 경저리(京邸吏) 박 아무개입니다요. 서 별감님, 꼭 저희 고을에 학당을 세워서 저희 숙부 되시는 분께 훈장 자리를 드리고 싶은데...”

“자자, 비키시오들. 나는 예물도 들고 왔소. 아이고, 서 별감님, 신수가 훤하십니다. 직산현이 비록 현이기는 하지만 물산과 인물이 모두 풍부한데, 꼭 이번에 학당을..”

학당 세우는 일과 더불어, 그 학당을 운영하기 위해 각지에 계(契)를 만들 것이며 그 계에 아전들이 낀다면 꽤나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임을 경주인들 통하여 알리기 시작한 서림이었다.

그러나 아전들이 정말로 귀기울여 들은 것은, 바로 잡다한 산술, 의술은 물론이요 소장 쓰는 법 따위를 가르치는 것으로도 족히 스승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경학만 가르친다면 어쩔 수 없이 뜨내기 서생이라도 하나 모셔놓고 허리 굽혀가며 모셔야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잔재주라면 여느 동네 유생들보다 더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향리는 전조 고려 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나름대로 호족 집안에 속했다는,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되살리고, 또 어떤 아전은 이대로 몇 대쯤 지나면 저들도 여느 사족과 같이 유향소의 좌수 자리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내었다.

그렇게 몰려와 난리법석 떠는 것을 보면서 꺽정이가 서림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전들이 이러고 있는 것, 저 높으신 분들은 꿈에도 모르지 않겠소?”

“그야 그렇지요.”

“거 보시오. 이렇게 하다 보면 나라 하나 훔치는 것 그리 어렵지도 않겠소.”

주세붕이 들었다면 기함할 소리였으나, 어차피 그는 유생 대신 향리들이 스승 소리 듣겠노라며 학당 세우고자 기승 부리고 있다는 말만 들어도 놀라 쓰러질 것이었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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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고려 향촌 곳곳에 교육기관이 있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초등교육은 한반도에 오래 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조선 초에도 동몽학(童蒙學)이나 서재(書齋) 등 다양한 이름으로 향촌 곳곳에 사립 교육기관이 존재하였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권면하기 위해 여러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였지요.

특히 사림 세력이 조정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향토 교육기관을 체계화시키고 조정 차원에서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중종 연간에는 동몽학을 스스로 일으킨 훈도들에게 명예직을 내리는 방책이나, 각 고을의 사학(私學) 교수자들 중 학장(學長)을 뽑아 교육의 실무를 담당케 한다는 방책 등이 기묘사림에 의해 논의된 바도 있었습니다. 이 중 학장을 뽑아 보다 체계적인 지방 교육을 가능케 하는 방안은 실제로 선조 시기까지 시행된 것으로 보이나, 양란 이후 지방 통치질서가 교란되면서 유명무실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의 교육열은, 『훈몽자회』, 『동몽선습』 등 각종 초등교육 교재가 집중적으로 편찬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16세기 이후 향촌 사회에서 사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그 수단의 일환으로 향약과 더불어 교육이 널리 사용된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즉 서당의 학칙과 향촌 사회에 적용되는 향약이 연계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김경용, 2017. “조선 전기 서당교육에 대한 시론.” <교육사학연구> 27(2)).

양란 이후로도 주로 유력한 재지사족 인사들, 또는 재지사족 문중 간의 연합을 통해 주로 운영되던 서당은 18세기 후반 이후에 들어 변화를 겪게 됩니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변화는, 집안의 몰락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서당을 인근의 부농 여럿이 서당계(書堂契)를 꾸려 인수하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이는 전통적인 양반 계층보다 아래에 있던 사회 구성원들이 교육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운영권까지 얻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직업으로서의 훈장이 등장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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