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나라의 경사 (3)
사내의 심리란 나라와 출신을 막론하고 비슷한 면이 있어서, 남이 바둑을 두면 저도 옆에서 훈수 두고 싶고, 남이 싸움을 하면 옆에서 구경하다 슬쩍 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꺽정이가 저의 안사람 될 이명희 대신 나타나 주먹질과 목검 칼부림으로 판을 한 번 깔자, 그 다음부터는 꺽정이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차례로 그 판에 올라왔다.
꺽정이가 아무리 일신의 용력이 뛰어나고 무예는 전생과 현생의 경험이 겹치며 날로 비범해지고 있다지만 결국 한 사람이라, 밤낮없이 계속 싸울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꺽정이가 뒤로 빠질 때면, 호랑이 없는 골의 여우 되려는 자들이 나오곤 하였다.
그리고 여우 중의 불여우는 바로 니탕카이였다.
“어이, 이 형! 잘 해보시오!”
“이당개! 이당개!”
“그렇다! 내가 바로 백정여진(白丁女眞) 니탕카이다! 나와 힘을 겨루어볼 장사가 있느냐!”
저들 ‘백정’이 정말로 같은 주르첸 줄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니탕카이에게 분명한 사실은, 그들 중 사람 같지 않은 임꺽정을 제하면 니탕카이 본인에게 대적할 만한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우디거 놈들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두각을 드러내자, 지탕카이가 기꺼워하면서도 은연중 경계하는 것을 눈치 챈 니탕카이였다.
그렇다면 오도리 부락에서 불안한 더부살이를 이어가느니 차라리 ‘백정여진’ 자처하며 임 당수 아래에서 더 높이 올라갈 길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그런 속사정 따위 알 바 아닌 백정들은, 저들 귀에 들리는 대로 니탕카이를 ‘이당개’니 ‘이 형’이니 부르며 그의 힘자랑을 구경하곤 하였다.
“이 사람은 나가토(長門) 무사, 나이토(內藤) 가문의 피를 받은 겐노스케! 가르침을 청하오!”
“좋다! 와라!”
여진 사람들은 조선말을 쓰고, 꺽정이도 조선말을 쓰니, 일본국 사람들도 조선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저 겐노스케라는 자도, 저들 무리 중 통변하는 자에게 들은 조선말을 더듬더듬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주변의 백정들은 즐겁게 구경을 하면서도, 나중에 잠시 싸움이 그치면 둘러앉아 떠들곤 하는 것이었다.
“이야, 임 당수 임 당수 하더니 정말 대단하긴 하군그래.”
“양반댁과 혼사 치르는 것도 대단한데, 북변 오랑캐랑 남쪽 왜놈들까지 찾아오니 더 그렇지. 아마 나랏님 결혼도 이 정도는 아닐 테야.”
저의 태어난 고을에만 박혀 있다가 그곳에서 죽기 마련인 백정의 견식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는가. 고작해야 동네에 사당패 들릴 때나 정월 대보름 석전 구경하는 것이 일생 구경의 전부였던 백정들 눈에는, 지금 이 녹양 들판에서 벌어지는 흥겨운 싸움판이 천하제일인 것으로 보였다.
그 규모로 따졌을 때 정말로 이전의 국혼(國婚)보다도 이 녹양평 난리통이 더 성대하였으므로 백정들의 짧은 생각이 꼭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랑캐라니! 우리네 친족붙이라고 하지 않는가!”
“뭐, 누가 그래?”
“임 당수께서 그러시고, 저기 이 형도 그러더라. 우리가 날 때부터 천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양민들과 피가 달라서 푸대접받을 뿐이라는 게지.”
백정들 중 누군가가 짐짓 아는체를 하였다.
“그렇다면 그놈들이 우리를 푸대접하는 것도 잘못 아닌가?”
“그렇지.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으니까 대대로 못된 풍습이 전해내려온 게야. 임 당수가 이렇게 계시는데 이제 우리를 아니꼽게 보는 놈들 좀 족치고 다녀도 누가 무어라 할까?”
“족치고 다닐 것도 없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데, 관에서는 아전 하나 안 보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끼리 뭉치기만 해도 아무도 못 건드리겠지.”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사는 동리에서 백정들 수십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면 즉시 관에서 사람이 나와, 무슨 꿍꿍이인지 이실직고하라며 트집을 잡을 것이었다.
그러나 수백, 어쩌면 수천이 될 지도 모르는 – 당장 녹양역과 양주 읍내 일대에 빌릴 민가가 부족하여 슬슬 여기저기에 천막을 치고 있는 판이었다 – 백정들, 그리고 거기에 북변 야인과 왜인들까지 모였음에도 관복 입은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어쩌면 임 당수 권세가 드높은 것과는 별도로 지금껏 그들을 백정이라고 낮추어보고 억누르던 놈들이 실제로는 별 것 없는 잔챙이들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이 모두의 마음속에 싹트게 되었다.
조정이 애써 눈여겨보지 않으려는 녹양평 들판, 그것도 어지간한 선비라면 눈살 찌푸리고도 남을 난리통 가운데서, 조선국 법도가 씌우고 또 백정들 스스로가 받아들였던 굴레가 부서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선비들 중에도 별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꺽정이 주변에는 그런 이들이 더 많았는데, 유유상종의 이치 때문인지, 아니면 꺽정이 옆에 머물다 보면 백정뿐 아니라 선비들에게 씌워진 굴레도 박살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전국 백정들이 아직도 삼삼오오 모여드는 와중에, 혼사 치를 가관(假館)도 완공되고, 슬슬 양가 하객들도 모여들었다.
양가 하객이라 하면, 가까운 파주에서 우르르 몰려와서는, 녹양평의 해괴한 난리법석에 어울리지 못하고 들판 구석에 모여 있는 덕수 이씨 문중, 그리고 한양에서 내려온 민주당 사람들 등이 있었다.
개중에는 신부의 오라버니 되는 이이도 있었는데, 소 모리타네와 다른 무사들만 고생을 시키고 저들은 양주 객사에서 편히 쉬고 있던 쇼니 씨의 이텐(怡天) 화상과 오우치 씨의 본이(梵怡) 화상에게는 고생길이 열리게 되었다.
조선말 할 줄 아는 왜인, 그것도 그냥 왜인이 아니라 일문(一門)을 대표하여 찾아온 사신이 머물고 있다 하니, 이이로서는 가만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두 화상은 번듯한 조선 젊은이가 저들을 왜인 중놈이라 업신여기는 대신 자못 진지하게 물어온다는 데 감격하여, 조선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주(神州, 일본)의 훌륭함을 알려주겠노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저들이 재액의 문을 스스로 활짝 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일본의 유구한 전통을 말하니, 그 전통은 어디서 기원했는가 캐묻고, 일본이 신국(神國)이라고 자랑하니 그 신은 누구이며 이를 증험할 수 있는 전적(典籍)은 무엇인지를 물어왔다.
말이 궁색하여 근래 교토의 사정으로 화제를 돌리니, 막부가 일어난 근원은 무엇이며 일찍이 조선과도 수교한 바 있는 일본국왕 원씨(源氏,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와는 무슨 관계인지를 또 물었다.
그들이 비록 승려라지만, 무슨 도 깊은 고승이 아니라 그저 칼 내려놓고 승복 입은 자들일 뿐이었으므로 곧 밑천이 동나고야 말았다.
임 장군의 측근이라는 이지함과 서림이 당도하자, 뛸 듯이 기뻐하며 도망나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아, 어찌하여 이제야 오셨습니까.”
이지함과 서림이 나타나자마자 본이와 이텐 두 사람은 반색하였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흠흠, 소승들이 타지에서 몸이 고단하여 잠시 실언을 하였습니다.”
일본 사절단은 한양에 닿았을 때 저들끼리 약조한 바가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쇼니 씨와 오우치 씨의 사신을 이끌던 이텐과 본이 두 화상끼리 약조하고, 집안의 힘이 달리는 소 모리타네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 것이었지만.
‘우리가 비록 본국에 돌아가면 서로 싸우게 되겠지만, 무역의 문호를 다시 열어야만 하는 데는 이익을 함께하고 있소. 지금 조선국 관헌들이 우리가 임 장군을 뵈러 간다고 하니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아직 그 안쪽은 안정되지 않았음이 틀림없소이다.’
‘대사(大師) 말씀이 참으로 옳소이다. 이렇게 조선국 상황이 어지러울 때 우리가 합심하여 밀어붙이면, 비로소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이이라는 저 도령에게 시달리면서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결의가, 임 장군의 가신인 ‘민슈토(민주당)’ 사람들을 만나자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알았을까. 눈에 불 켠 사람은 그들뿐이 아니었으니, 서림 또한 금번의 터무니없는 혼사로 인하여 민주당 재정에 뚫리게 된 거대한 구멍을 메우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저의 속셈을 도성에서 오는 내내 이지함과 이야기 나누며 가다듬었고, 이곳 객사로 오기 전 녹양평에서 꺽정이와 만나 동의를 받았으므로, 오늘밤 이곳 객사에서 주고받을 이야기는 참으로 깊고도 원대하게 될 것이었다.
“혼인에 재물을 논함은 오랑캐의 도라 하였지요. 그러나 우리 임 당수는 여진의 후예이니, 어찌 이 자리에서 재물을 논하지 않겠습니까?”
이지함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보아도 번듯한 조선 선비인데 너무나 쉽게 이익을 말하니, 두 화상이 또 한 차례 당황하였다.
그 선비가 바로 그들을 며칠간 괴롭힌 이 도령의 스승임을 알았더라면, 그럴 수도 있겠거려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텐과 본이가 대꾸할 말을 급히 찾는 사이, 객사 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아, 오셨소?”
“그렇소이다, 당수.”
남들 앞이다 보니 진중한 말투로 공대하는 이지함이었다. 그러나 꺽정이 뒤편에 따라온 이들의 행색에 눈이 닿자, 그 진중함을 일순 잃을 뻔하였다.
“이 자리에 끼어야 할 놈들도 다 끌고 왔소.”
이마에 혹이 꽤 그럴듯하게 자라난 소 모리타네, 그리고 꺽정이만한 실력은 되지 않으면서 허세와 욕심은 비등하였기에 끝내 멍투성이가 된 니탕카이, 그런 니탕카이가 주르첸 사내다운 기상 보였다며 도리어 뿌듯한 기색 역력한 지탕카이까지.
겉보기로만 따진다면 우스꽝스러운 모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이들이 모여 조선국뿐 아니라 천하 전체에 적잖은 영향 줄 대사를 논하게 되었으니, 세상 또한 우습지 않은가.
허나 자잘한 인사와 잡담이 오가자마자 서림이 꺼낸 말에, 잠시 몇몇 사람들 머릿속에 감돌던 그런 감상은 쑥 들어가게 되었다.
“이 사람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정을 통하지 않고 이렇게 우리 조선 사람들과 일본, 여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없었소.
대저 장사라는 것은 통하지 않던 것을 통하게 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이오. 그러니 이를 논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교역을 위하여 찾아왔던 일본 쪽 세 사람은 동시에 귀가 트이는 듯하였다.
“서 별감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지난날의 과중한 제한을 풀어,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수교하는 우의가 옛날과 같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귀국 조정에 말씀하시어 세견선의 규모를 정미년(1547) 이전, 아니, 임신년(1512)년 이전으로 돌려주신다면...”
“그리하면 우리 당에 무슨 이익이 남소?”
서림이 냉정하게 물었다.
“대마도와 구주(규슈) 바닷가는 땅이 척박하여, 오로지 교역으로 연명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살길이 끊어진다면 도적이 될 것이요, 바닷가에 연하여 있으니 배를 타고 귀국을 약탈하게 될 것입니다. 어찌 이것이 옳다 하겠습니까?”
쇼니 씨와 오우치 씨, 그리고 소 씨가 공히 지난 수십 년간 되풀이하던 논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코웃음이 돌아왔다.
“그것이 우리 당과 무슨 상관이 있소? 오히려 왜구가 날뛰면 우리 당수께서 나아가 진압할 수 있으니, 우리의 위엄을 높일 뿐이오.”
서림이 어쩌다 저렇게 독기를 품게 되었는지 알 턱 없는 일본 사신들은 절로 긴장하였다.
‘과연...! 조선 땅을 제패한 이의 오른팔답지 않은가! 우리가 너무나 안이하였다!’
이미 임 장군의 권세는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이곳 양주에서 그 무위가 허명 아님을 절절히 깨달았으니, 지금껏 조선국 조정이 허장성세 부리던 것에 비할 수 없었다.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삼가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텐과 본이, 소 모리타네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로 인하여 서림이 꺽정이와 이지함 두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여러분이 바다를 건너 이렇게 우리 당수와 당의 큰 경사를 축하해주러 왔으니, 우리의 위세가 한층 높아지게 된 것도 사실이외다. 그리하여 서로 이익될 방도를 제안하려 하오. 모주님, 부탁드립니다.”
때맞추어 이지함이 새로 그린 조선과 그 주변 지도를 펼쳤다. 지도의 정밀함과 섬세함을 본 이들로부터, 감탄과 더불어 욕심 어린 눈빛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남쪽 바다의 정세가 크게 어지러워, 귀국이 대국과 쉽게 통하지 못함은 잘 알고 있소. 귀국에서 근래 은이 많이 나, 이것으로 몰래 동래의 상인들과 교역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소이다.”
조선 관헌들 중 이재에 밝은 이들은 뇌물에도 밝고, 상리(商利)에 어두운 이는 그저 깜깜이일 뿐. 그러나 서림은 의민당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 평양 아전 시절부터 그렇게 몰래 들어오는 은이 평양과 의주를 거쳐 멀리 심양과 요양까지 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서림의 내력을 모르는 일본 사신들은 또 한 차례 탄복 겸 탄식을 하고, 잘 몰라도 이익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음을 눈치 챈 지탕카이와 니탕카이 역시 저들의 조선말 실력을 최대한 끌어모으며 논의에 집중하였다.
“국법으로 세견선의 수를 정하였으니 이를 함부로 바꿀 수는 없소.
그러나 그대들이 대국에서 구하려는 물목이 있다면, 동래부에 있는 우리 선량한 백성과 당원들이 그러한 ‘부탁’을 받아서 대신 바꾸어줄 수는 있소이다. 이것은 어느 법으로도 금하지 않고 있소.”
그 말의 뜻을 해석한 세 일본인들이 신음을 내었다.
나라의 법을 고치는 대신, 금법을 우회할 길을 마련해 주겠다. 대신 교역은 오로지 이 ‘민주당’을 통해서만 한다.
따지고 보면 조선과 일본 사이에 대마도 같은 곳이 하나 더 생기는 격이었다. 그만큼 교역의 이문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한 이치. 허나 이전에 조선국을 압박할 때처럼 은근슬쩍 왜구의 화변을 거론할 수도 없으니, 일본 측에서는 절로 논리가 궁색해졌다.
“이익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시는구려. 그러나 그리할 필요는 없소! 가운데서 우리가 이문을 남기기는 하겠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혜택을 되돌려줄 터이니.”
서림이 지도를 짚어가며 말했다.
“그대들이 동래에서 몰래 또는 당당하게 무역하는 은은, 이곳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오고, 거기서 다시 의주대로를 따라 개성·평양을 거쳐 의주로 향하오. 그곳에서 다시 국경을 넘어 대국 요동으로 향하고, 심요(瀋遼, 심양·요양)를 지나 북경과 산동, 그리고 강남까지 가게 되지.
아시겠소? 우리 당을 통한다면 그대들의 은이 바로 대국까지 들어갈 수 있고, 그대들이 대국에서 사들이기를 원하는 물산 또한 그대로 받을 수 있소. 또한 여기 있는 여진 분들이 동의할 때의 일이지만, 덩달아 초피(貂皮, 담비 가죽) 등의 귀물도 사들일 수 있겠지.”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거창한 계획도 구멍이 아주 많았다. 아무리 요동 관헌들의 기강이 조선국보다도 해이하여 적당히 인정(人情, 뇌물)만 바치면 사사로운 장사를 허용해 준다지만, 그것이 도를 넘게 되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지함을 통하여 근래 남쪽 바다의 사정을 들었던 서림은, 대국과 다시 교역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저들이 결코 돌아설 수 없으리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대국과 일본을 잇는 남쪽 바다에서는 온통 왜구들이 날뛰고, 조선 역시 거듭되는 왜구의 작변으로 세견선을 크게 줄인 상황. 본디 그런 교역을 독점하던 대마도 종씨와 대내전·소이전 등으로서는 숨구멍 하나가 급할 것이다.
“으음... 이 일은 참으로 중하니, 단번에 결단할 수 없음을 부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 쇼군의 명의로 몰래 무역선을 띄운 바 있던 오우치 씨의 본이 화상이 말했다. 쇼니와 소 씨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길 만한 제안이었으나, 오우치 씨의 눈치가 보였으므로 조용히 따를 뿐.
그 틈을 노리고 니탕카이가 입을 열었다.
“초피라면 담비 가죽 아니오? 북쪽 숲속에 사는 골간 우디거 놈들이 조선에 많이 바치오. 그렇지만 강(두만강) 남쪽 오도리 사람들 사는 곳에서는 그만큼은 나지 않소.”
니탕카이와 여러 차례 주먹과 목검 나누었던 정을 담아, 꺽정이가 핀잔을 주었다.
“이놈아. 그러면 그 골 뭐시기 놈들에게 헐값으로 사들여서 우리에게 팔면 될 일 아니냐?”
“우디거 놈들이 팔기 싫다고 하면?”
“팔기 싫어도 팔게 만들어야지. 아니면 그냥 빼앗고서 사들였다고 둘러대던가. 야인 사내라는 놈이 숫기가 없어서, 원.”
가짜 여진 사람이 진짜 여진 사람에게 도적질로 훈수 두는 기묘한 상황. 그러나 니탕카이와 그 곁의 지탕카이 모두, 마치 현인(賢人)의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눈이 번뜩 뜨였다.
“핑계 적당히 만들어서 북변 야인 정벌한다고 하면 우리 조정에서도 무어라 못 할 것이다. 여차하면 우리 흑의군도 금군 자리 내어놓게 된 다음 따라가서 한몫 거들 수 있고. 아니면 지리산 백정들도 나름 말타고 도적질하는데 뼈가 굵으니 그들을 데려가도 되고.”
“우리가 그래도 되겠소?”
“백정과 여진은 뿌리가 같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익만 공변되게 나누면 누가 뭐라고 할까. 다만 미리 우리 당에 얘기는 하고 움직여라.”
지탕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 당수.”
“뭘 더 고민할 것이 있소? 우리는 한 집안 아니오? 경사도 이익도 함께 누려야지.”
속셈 복잡한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이미 임 당수의 무위를 체감하였던 니탕카이와 지탕카이는 별 이의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혼사의 날이 밝았다. 오늘 혼담을 청하는 예식을 갖추고, 내일 상견례와 더불어 혼인의 예를 다할 것이었다.
꺽정이로서는 그저 오늘따라 하늘의 해가 뒤뚱대며 굼뜨게 움직이는 듯할 뿐.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라, 가관 앞에 쌓은 연단 위에 아비 말대가리를 모시고 함께 올랐다.
친영의 예에 따르면, 혼담이 오갈 때 납채(納采) 예식을 갖추어, 혼인을 청하는 글을 먼저 사당에 고하고 신부댁에 보내어야 하였다.
사당 대신 전국 백정 앞에서 고하기로 하였으니, 이제 그것을 행할 때가 되었다.
“내가 제대로 외웠나 모르겠다.”
“어차피 다 같은 무식쟁이요. 그러니 아버지가 틀리든 말든 아무도 모를 것이오. 내 이름이랑 각시 이름만 똑바로 말하면 되오.”
“후... 알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보는 날이 있을 줄 알았겠는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저의 아들 배도치가 나라의 큰 사람이 된 것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양반댁의 규수를 배필로 들이게 된 것도 꿈조차 못 꿀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아들을 위해 족히 삼사천은 될 백정 일족들 앞에서 말 한 마디 하는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국에서 이 사람 아들 혼사를 축하하러 찾아온 백정 여러분께 그저 고마워할 따름이오! 이제 이 양주 백정 임말대가리가 낙채의 예를 따르려 하니 모두 귀를 기울여주시오!”
‘납채’를 끝내 ‘낙채’로 말했지만, 꺽정이 장담한 대로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흠흠, 양주 고을 임말대가리는 파주 고을 수운판관 집사(執事, 이원수를 말함)께 여쭙습니다. 어른께서 저희 집안의 한미함을 낮추어보지 않으시고, 혼담의 의론을 따라 삼녀 명희를 저의 아들 임꺽정의 아내로 주심을 허락하시니, 이에 삼가 사람을 시켜 낙채합니다.
부디 살펴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신해년 팔월 구일, 양주 고을 임말대가리 사룁니다.”
본디 여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것이 예법에 맞으나, 말대가리는 무심코 이를 입에 담고야 말았다. 그러나 꺽정이는 아비의 실수를 더욱 기껍게 여겼다. 아마 저기 뒤편 가관에서 기다리는 명희도 저의 이름 불리는 것을 듣고 그 간장 녹이는 웃음을 짓고 있으리라.
“다 읽었다, 이놈아. 두 번은 못 하겠다.”
“고맙소.”
“그 입꼬리 좀 내려라. 거기서 더 올라가면 찢어지겠다. 어지간히도 장가드는 게 좋은가 보구나.”
“아버지도 내 안사람 될 색시 보시지 않았소? 그만한 배필이 어디 있다고.”
“잘 대해주어라. 귀한 아들이 며느리에게 화살 맞아 죽었다는 소리 안 나오게.”
꺽정이가 그 말을 흘리며 연단 앞에 나섰다.
“이제 이렇게 여러분께 고하였으니, 우리 백정 일족 모두가 이 혼사의 증인이 된 것이오!”
‘백정 일족’이라는 말이 모두의 심금을 울리니, 꺽정이 외침에 모두가 ‘와아아’ 하는 환호로 답하였다.
백정은 모두 하나의 집안이며, 그 집안은 개중 영달한 이가 나오면 왜국과 야인들까지도 축하하러 사람을 보낼 만큼 훌륭한 집안이었다.
모두가 백정을 천하다 하지만, 더 이상 백정 스스로 천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였으니, 이 혼사를 계기로 굴레가 깨어지리라.
그 굴레 깨어짐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임 당수와 그 배필께서 선보인 방식대로 굴레 대신 머리통을 깨어줄 것이다.
한편, 그것을 바라보며 만감 교차하는 이방인도 있었다.
“히닌(非人)의 아들이 천하인(天下人)이 되는 세상이라...”
소 씨 집안, 그것도 이번 대의 돌림자 모리(盛)를 쓰는 사람으로서, 모리타네는 조선의 사정을 다른 두 가문에서 보낸 화상들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백정이 여진 야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헛소리임을 족히 알았다. 그리고 그 백정이 일본 본토의 히닌, 에타(穢多)들처럼 천대받는다는 것 또한 잘 알았다.
마치 천한 농부나 아시가루(足輕)의 아들이 쇼군을 손에 넣고 천하인이 되는 것처럼 허황된 일.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떠들썩한 자리, 선비의 예의와 고리타분한 예식 대신, 흥겨운 혼란이 가득한 이 들판의 모습이 결코 이전에 그가 알던 조선, 그가 대하였던 조선과 같지 않음을 능히 알 수 있었다.
“임 장군으로부터 제의를 받으셨다 들었습니다. 미리 사람을 동래에 보내 당주님께 고하여야 할까요?”
한 사람의 무사로서, 모리타네와 함께 열심히 얻어맞아 아직 얼굴 곳곳이 시퍼런 부하 하나가 곁에서 조용히 물었다.
“아니, 아직이다.”
“알겠습니다.”
동래 왜관에 머물면서 『정론보』 또한 탐독하였던 모리타네였다. 그 의권 운운하는 논변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일본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자들도 자신이 허리 굽혀 씨 뿌리고 김 매어 거두게 된 곡식의 귀중함은 안다. 그 곡식을 내기 싫으면 내지 않아도 될 ‘이권’이 모든 농부에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거둔 이익을 자식처럼 여기는 상인들이, 무사가 전비(戰費) 대라고 할 때 ‘싫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조선국조차 아직 그만큼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바뀌게 되면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인 대마도의 소 씨 집안이, 그 파도에 휩쓸리기보다는 오히려 파도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나아갈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 흐름을 운 좋게, 머리통에 날아오는 목검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겪은 모리타네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오늘 혼례를 청했을 뿐, 실제 혼사는 내일 진행된다 들었다.”
“말씀하신 바가 옳습니다.”
“임 쇼군께, 오늘밤 마지막으로 대련을 청한다고 가서 말을 전하거라.”
“정녕 대련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마도 소 씨는 본디 궁벽한 섬만을 영지로 지닌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쇼니 씨 아래에서 규슈를 지키며, 훨씬 넓은 땅을 아래에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다 한가운데 섬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 섬은 비록 그 특이한 위치 덕에 하나의 나라(쿠니國)로 쳐주기는 한다만 군사를 내기는커녕 농사로 먹고살기도 힘에 벅차 어떻게든 무역에 손을 대야 할 만큼 척박했다.
그러니 그런 섬의 무사들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그럴 리 있겠느냐. 긴히 말씀드릴 바가 있으니 그렇지.”
조선 한 나라만 모를 뿐, 지금은 난세였다. 그리고 난세의 약자에게는, 약자만이 할 수 있는 처세가 있는 법이었다.
“외람된 물음이오나, 무엇을 말씀드리려 하시는지 여쭈어도 될지요?”
“남쪽 바다의 정세에 대해, 그리고 그 바다의 주인이 된 도적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한다.”
대국에서는 그런 이들을 왜구라 부르며, 보이는대로 토벌하려 했다. 아마 조선 조정도 비슷할 터이다.
하지만 임 장군, 당당하게 그들 앞에서 도적질을 말하던 조선 제일의 무사, 스스로 가장 천한 자리에서 지엄한 곳까지 뛰쳐올라온 이라면, 분명 다른 생각을 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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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1401년 일본국왕으로 책봉되면서 – 조선 역시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여, ‘일본국왕 원씨(源氏)’가 일본을 지배한다고 인식하였습니다 – 명과 일본 사이의 해상무역 역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해금령(海禁令)으로 민간의 해상 사무역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던 명은 무역을 무제한으로 허용하기보다는 감합(勘合)이라는 표찰을 발급해 무역의 횟수와 시기를 통제하는 정책을 취했고, 이에 따라 이 시기 명일 간의 교역을 감합무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남중국과 해상으로 무역을 진행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적용된 정책이었지요. 명과 여러모로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던 조선이 다소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이후 1467년 오닌(應仁)의 난으로 무로마치 막부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결정적으로 상실하면서, 무로마치 막부가 명·조선 등과 맺고 있던 공무역 권한은 아시카가 가문의 가신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으나, 지방의 유력 다이묘들이 쇼군 또는 그 가신 집안의 이름을 빌어 무역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작중에 등장한 오우치와 쇼니 씨 역시, 세견선 파견이 제한되자 사신단을 사칭하며 조선과의 무역을 행하곤 했는데, 조선 조정에서도 동일인물이 계속 사신으로 오는 것을 알고 의심하기는 했지만 딱히 유의미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작중에 언급된 이텐과 본이 화상은 모두 그렇게 적발된 바 있던 이들입니다. (다만 이텐과 본이의 소속은 작가의 창작입니다.)
작중에 등장한 세 가문 중 가장 강성하였던 오우치 가문은 감합무역에 직접 나서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쇼군의 공무역 권한을 대신 행사하고 있던 호소카와 가문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 두 세력이 명의 영파(寧波, 닝보)에서 대립하다가 끝내 대규모 폭력사태가 벌어지게 된 1523년 영파의 난 이후 감합무역은 크게 쇠퇴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합선 파견을 시도하던 오우치 씨가 1551년 가을 – 작중 시점입니다 - 다이네이지(大寧寺)의 변으로 갑작스럽게 몰락하면서 감합무역은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야마구치 현 – 즉 유명한 조슈 번 – 일대의 오우치 세력은 그 이후에도 한동안 살아남아 조선과의 무역에 종사하기도 했습니다.)
히닌·에타는 전근대 일본의 천민 집단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 이하(非人) 대접을 받거나, 더러움이 많은 일(穢多)을 한다 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지요. 이들은 불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던 일본에서 도축업 등을 맡았습니다. 백정과 마찬가지로 그 기원은 명확치 않으나, 여러모로 굴곡 많은 근현대를 겪으며 신분제가 사라진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이른바 ‘부라쿠민’ 등의 형태로 그 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