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나라의 경사 (4)
그날 밤 양주 객사에서 홀로 몰래 나온 소 모리타네는 녹양평 들판으로 향했다.
보름을 향해 빠르게 차오르는 달이 이제 막 가을걷이 끝낸 논밭을 밝게 비추었다.
설령 오우치나 쇼니의 사람 중 누군가가 논두렁을 내달리는 사람의 인영을 본다 한들, 모리타네쯤 되는 이가 혼자 움직이리라 쉽사리 짐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모리타네가 지금 임 장군을 만나 전하려는 말은, 결코 쇼니와 오우치 두 가문에게 이롭지 못할 터. 만에 하나 그들의 눈에 띄게 되면 크게 곤란해질 수 있었다.
하여, 큰길 대신 논두렁으로 빠져, 녹양 들판을 에워싼 산줄기 기슭의 숲을 따라 은밀히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마침내 임 장군이 머물고 있는 곳, 내일 혼사에 쓰일 가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때였다.
“헉!”
화살 하나가 바람 가르고 날아와, 모리타네의 머리통에서 한두 척 옆 나무줄기에 박혔다.
급히 머리를 숙이고 주변을 살폈다.
‘그 화상 놈들이 눈치를 챘는가!’
그러나 정녕 그들이 손을 쓰려 했다면, 이렇게 녹양평 가까운 곳이 아니라 읍내 근처에서 수작을 부렸을 것이다.
‘장군 주변을 지키는 이들이 자객으로 오해한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계속 앞으로 나아가, 그들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오해를 푸는 수밖에 없었다.
결단을 내린 모리타네가 다시 수풀 밖으로 몸을 내민 순간,
화살 하나가 또 날아와, 이번에도 그의 머리 한참 위에 박혔다.
그리고 화살과 함께 바람 타고 날아오는 것은...
‘남녀의 웃음소리?’
모리타네가 귀를 의심할 무렵, 우렁찬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하하! 이제 그만 쏘라 할 테니 안심하고 나오거라!”
분명 임 장군의 목소리였다. 모리타네는 어리둥절하게 여기면서도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숲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하는 곳에 닿자, 비로소 화살과 목소리 날아온 곳이 어디인가 제대로 보였다.
가관 담장 바로 옆에 익숙한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
“아니, 그때 만난던 대마도 종씨가 아니오? 거기서 뭘 하고 있소?”
“아, 대마태수의 친족이라는 종(宗, 소) 공이시군요. 반가워요.”
며칠 전까지 말 타고 활 쏘던 그 규수가 임 장군 옆에서 해맑게 인사를 건에었다.
“혼사 올리기 전에 사내가 각시 보러 담 넘어가는 건 예법에 안 맞지만, 예법 그 어디에도 각시가 담 넘어 낭군 보러 가면 안 된다는 구절은 없거든. 마침 그대도 찾아온다 기별을 하였기에, 함께 만나기로 마음을 먹었소.”
“하면, 송구하오나, 지금 활을 쏘신 것이...”
“네, 저에요.”
“분명 그대가 찾아온다 하여 기다리고 있는데, 숲속에서 누가 몰래 다가오고 있는 것을 여기 이 사람이 보았지.”
밤눈마저 이리 밝으니 실로 도적의 배필 아닌가. 이미 씌워진 콩깍지 위에 한 겹이 더해지게 되는 꺽정이었다.
“그러자 낭군이 농담을 던지며, 제가 암만 명궁이라도 사람에게는 활 못 쏠 것이라 하기에, 시험하여 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허, 허나 제가 정말로 맞게 된다면 어찌 하시려고...”
“정말 맞출 심산이었다면 굳이 화살 두 발을 허투루 날릴 것까지 있었겠어요? 불온한 뜻으로 오는 자라면 화살 날아오자마자 도망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다가올 테니. 판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머리 위에 쏜 것이지요.”
“당당하게 말하고 대로 따라 걸어왔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니오?”
사람이 지나가는데, 한 사람은 저자에게 활을 쏘아보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정말로 쏘았다는 것이다. 이곳이 정녕 조선이 맞는가 일시 의심하게 되는 모리타네였다.
“어쨌든 안 죽고 잘 왔으니 다행이오. 정말로 더 얻어맞고 싶어서 한 번 더 겨루자 청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니 하려던 말이나 들어봅시다.”
황당함을 제쳐두고 다시 생각해보니, 저에게 활을 쏘았다는 가장 중대한 부분만 빼놓고 생각하면 임 장군과 그 배필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자신이 몰래 나와야 할 만큼 소 씨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모르고 있을 테니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니 조선 속담에 이르는 것처럼,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어찌하겠는가.
“거 뭣하러 불편하게 서 계시오? 앉으시오.”
임 장군이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소 씨의 사람이자 도주(島主)의 측근으로서 체통 상하는 일이지만, 저보다 훨씬 급 높은 임 장군과 그 배필부터가 맨바닥에 앉아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씀드리면 될지요?”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여, 힐끔 임 장군의 배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꾸는 모리타네로 하여금 또 한 차례 ‘여긴 어디요 나는 누군가’ 의심케 만드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곧 부부의 연을 맺을 사이라고 한들 얼마나 다르겠소?”
“장차 지아비 되실 분의 업(業)을 논하는데, 평생 함께할 사이로서 모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모리타네는 준비해온 말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지금 저희 세 집안이 함께 사신으로 조선에 찾아왔지만,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결코 이렇게 화합하지 못합니다. 비단 저희들뿐 아니라 일본 전체, 아니, 조선을 제외한 천하 전체가 다 그러합니다.
소이전이라고 귀국에서 부르는 쇼니 씨는 지난 수십 년간 대내전, 즉 오우치 씨에게 당하여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그 가신 류조지(龍造寺) 씨의 반란조차 진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우치 씨 또한 근래 가주가 정사에 뜻을 잃은 뒤로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지요.
본디 남쪽 바다를 오가던 오우치 씨가 이처럼 무너지니, 그 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뿐이 아닙니다. 남쪽 바다는 대국뿐 아니라... 그... 그...”
갑자기 모리타네가 말하다 말고 쩔쩔매니, 얼추 그 사정을 짐작한 꺽정이가 끼어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진서(眞書, 한문)로 이야기 주고받는 게 아니잖소. 그냥 편하게 그대들 말하는 대로 말해주면 되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남쪽 바다는 대국 외에도 시암(태국), 안남(베트남), 망라가(믈라카) 등지와 통하고, 그 사이로 오고가는 재보는 막대합니다. 심지어 근래는 천축(인도) 너머에서 남만인(南蠻人, 포르투갈·스페인인의 일본식 명칭)들까지 오고 있지요.”
“천축에서 오는 남만인이라고요?”
명희가 물었다. 어찌 여인이 사내들이 천하의 일을 말하는데 끼어드냐며 호통을 쳤다가는, 설령 임 장군 앞에서 도망친다 한들 그의 등짝에 화살이 박힐 것이었다. 더구나 임 장군이 조선의 쇼군이라면 눈앞의 이씨 규수는 조선의 미다이도코로(御台所, 쇼군의 정실부인)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모리타네는 자신이 아는 데까지 모두 상냥하게 털어놓았다.
“그렇습니다. 대국에서는 불랑기(佛朗機, 포르투갈)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천축에서 왔다고도 하고 그 너머 서역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생김새가 우리와 크게 달라 언뜻 도깨비와 같습니다. 요새는 규슈 앞바다까지 와서 그들이 가져온 기이한 문물로써 교역을 하고 있지요.”
“기이한 문물이라?”
기이한 물건이라면 교역에서 이득도 많이 남는 법. 후에 서림에게 일러줄 생각으로 꺽정이가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은 더욱 해괴하였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불과 수 년 전의 일이라 저도 잘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문에 따르면, 천둥 같은 소리로 사람을 죽이는 쇠막대 - 아마 총통일 것입니다 – 부터 한없는 단맛을 내는 경단과 떡(콘페이토·카스테라)까지 온갖 귀물(貴物)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그 외에도 열 십(十) 자를 숭상하는 그들의 승려가 규슈 곳곳을 돌아다니며 포교를 하는데, 지금은 야마구치 땅에 머물고 있다고 하지요.”
일본과 조선 사이를 오가는 배들을 중계하며 막대한 이익을 누려왔던 소 씨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옛말. 하지만 어떻게든 부흥의 기회를 얻어보고자, 빠듯한 살림을 쪼개어 사카이(界)나 히라도(平戶), 나가사키 같은 곳까지 사람을 보내 소식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이 통상에 하등 관심이 없으니 결국 헛수고가 될 터였다.
하지만 임 장군은 어떨까? 그들 일본 사절들을 한데 모아두고, 장차 요동부터 일본까지 오가는, 조선에 전례 없던 거대한 장사일을 꾸미겠노라 하였던 민주당이라면 분명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과연 말하면서 조심스레 임 당수와 그 배필의 안색을 살피니 두 사람 모두 흥미가 동하는 것이 보였다.
“이것을 내게 말해주는 까닭이 무엇이오?”
“저희 소 씨는 때에 따르면 흥하고 때를 따르지 못하면 망하곤 하였으니, 대마도라는 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리고 지금 조선국의 운수가 임 당수를 중심으로 하여 크게 뒤바뀌고 있으니, 흐름을 읽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남쪽 바다의 정세가 크게 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있는 자가 있으니 바로 중국 사람 왕직(王直)입니다. 바다를 건너와 여러 작은 섬을 차지하고 무리 수만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금은 정해왕(淨海王)을 자칭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 실체는 결국 도적입니다. 그들이 이미 대국의 연안에서 날뛰고 있고, 이대로 오우치와 쇼니가 무너지면 곧 귀국에서도 악행을 벌이게 될 터입니다.”
그러니 곧 무너질 오우치와 쇼니 씨는 잊고, 오직 저들 소 씨만을 거간으로 삼아 지금 꾀하고 있는 크나큰 교역을 도맡게 해 달라, 그리하면 지금 말한 남쪽 바다의 보화들을 구해다 바치리라.
그렇게 말하려던 차, 임 당수가 곁에 앉은 배필에게 무어라 한 마디 조용히 말하니, 곧 뜻을 알 수 없는 그윽한 눈빛이 오갔다. 그리고 곧 당황스러운 대꾸가 튀어나왔다.
“그대 말이 참으로 옳소.”
“그...렇습니까?”
아직 제안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무엇이 옳다는 말인가?
“조선국 운수가 뒤바뀌고 있고, 그것이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 말이오. 허나 앞으로 더욱 뒤바뀌어야 할 터. 거기에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맡을 만한 몫이 어찌 없겠소?”
마치 며칠 전 그의 머리를 때리던 목검 칼날 같은 묵직한 충격이 전해왔다.
“나는 천하의 큰 도적이 되고자 하고 있소. 그런데 지금 그대가 말하기를, 이미 저 남쪽 바다에 왕직이라는 도적 수괴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 자를 가만 내버려두어서야 어찌 도적의 체면이 살까.
그러니 그대에게 내 부탁을 하겠소.”
전혀 부탁 같지 않은, 오히려 그 옛날 소 씨가 주군으로 섬기던 쇼니 씨의 사람들이 하던 것처럼 명하는 말투로 임 장군이 말했다.
“내 왕직과 더불어 도적질을 이야기하고자 하오. 함께 일하여 이익을 나눈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쳐부수고 그 자리를 빼앗을 뿐이오.”
이미 눈앞의 임 당수가 권신 윤원형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얻어내었음을 익히 아는 모리타네다. 그러므로 저것이 허언이 아닐 수 있음을 족히 알았다.
“그러나 힘으로써 위엄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자는 따르지 않을 터. 칼과 화포로써 먼저 교섭할 뿐이오. 그때 대마도가 우리의 향도(嚮導)가 되어주어야겠소.”
“그, 그러나...”
“그놈은 바다 한가운데 있어 쉽게 정벌할 수 없다? 걱정 마시오. 다 계책이 있으니. 아직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하지는 않아 지금은 말해줄 수 없으나, 곧 사람을 동래에 보내어 알리도록 하겠소.”
실제로는 아직 계책은 없고, 다만 가까운 을묘년에 왜구가 한 번 거하게 쳐들어올 것임은 아는 꺽정이였다.
그러나 이지함과 이이 주변에 오래 있던 보람은 있어서, 벌써 대강 계획의 뼈대가 머릿속에서 잡히고 있었다.
조선국 수사(水師)는 땅 위의 관군과 마찬가지로 엉망이었다. 허나 왜구는 노략질을 하므로 왜구라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정 아니 온다면 얼른 찾아오라고 옆구리를 찌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왕직이라는 그놈이 이곳 조선에 고개 숙이고 찾아올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짖이겨주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번 겨울이 지나면 금군의 역에서도 풀려날 몸. 슬슬 새로이 날뛸 곳을 찾아야 할 때였다.
“그에 앞서, 이 자리에서 우선 답해주시오. 정녕 그대는 이 사람과 민주당의 손에 대마도의 명운을 맡길 각오가 되어 있소?”
꺽정이가 모리타네를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그 말에 모리타네의 얼굴이 저도 모르는 사이 굳었다.
이 질문에 답할 권한은 모리타네에게 있지 않았다. 판단은 섬에 남아 있는 당주 하루야스(宗晴康)의 몫.
하지만 이 자리에서 대신 답하지 않는다면, 기회의 문은 닫혀버릴 지도 모른다. 저의 눈앞에서 번뜩이던 임 장군의 목검 칼날, 그 불벼락과 같은 기세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모리타네는 저의 충동에 혀를 맡겼다.
“그렇습니다.”
“좋소. 내 곧 기별하리다.”
양주 객사에서 곤히 자고 있는 다른 두 집안의 사신들은 물론이요, 멀리 남쪽 바다 한가운데에서 다음 노략질을 계획하고 있는 왕직도 알 수 없는 모임이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다음날 가례(嘉禮)는 시종일관 친영의 법도에 따라 이루어졌다.
꺽정이가 명희를 맞이한 뒤 맞절하고(교배交拜), 음식과 술잔을 나누며 (동뢰同牢·합근合巹), 마치 처음 대면하는 것처럼 상견례까지 모두 마쳤다.
다만 혼사 다음날 시부모를 뵙는 의례(현구고례見舅姑禮)까지만 행하고, 그 뒤 신랑이 실제로 기거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절차는 행하지 않기로 하였다.
아무리 그들이 겉으로는 여느 사대부 집안보다 더욱 엄격하게 예를 갖추는 시늉을 한다지만, 그렇다고 꺽정이가 실제로 기거하고 있는 경복궁에서 새살림을 차릴 수는 없던 것이다.
시부모라 해보아야 말대가리 한 사람이 전부요, 그는 어디 멀리 있지도 않고 이 녹양평에 - 온갖 백정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면서 - 머물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껏 조선국에 없던 경사, 백정과 양반이 혼인하고 여진 사람과 일본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축하하던 이 경사도 이렇게 끝을 맺고, 들판을 온통 메웠던 하객들은 점점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바탕 꿈과 같네요.”
가관 담장에 저의 새 남편과 함께 걸터앉아, 구름같이 몰려온 이들이 이제 삼삼오오 저의 갈 길 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명희가 말했다.
천막은 접히고, 여기저기 피워져 있던 불은 재만 남긴 채 꺼졌다.
들판의 풀과 바람을 즐기던 말들도, 저의 주인 따라 혹은 남으로, 혹은 북으로 돌아갔다.
다만 지리산 도적 백정들 중 상당수가 그 자리에서 같은 ‘백정여진’ 일족 도우러 함경도로 향하게 되었으므로, 유난히 북쪽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행렬만 길었다.
“그렇지. 누가 이곳 들판이 그토록 북적였더라고 믿겠소.”
싸움 구경하는 백정들도, 그 백정들 곁에서 함께 구경하던 야인과 왜인들도, 출신 불문하고 엿과 강정만 팔면 그만이라며 이곳저곳 들추고 돌아다니던 장돌뱅이들도 모두 사라졌다.
흥겨웠던 잔치는 이제 기억에 남겨놓고,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때.
그러나 그들이 돌아갈 삶이란, 이곳 양주로 오기 전 뒤에 남겨놓고 온 삶과는 이미 크게든 작게든 달라져 있을 테다.
당장 명희와 꺽정이 두 사람의 삶도, 이제 하나로 묶이지 않았던가.
“어떻소?”
한적해진 들판이 더욱 한적해지는 것을 함께 말없이 구경하던 차, 꺽정이가 난데없이 물었다.
“혼례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상하게 아무 느낌이 들지 않네요. 뭐랄까, 어젯밤에 이미 혼사는 다 치른 느낌이에요.”
누가 듣는다면 엄청난 오해를 할 만한 말이었다.
그러나 꺽정이는 그 말의 뜻을 능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맙소.”
“뭐가요?”
“그냥 다 고맙지. 나 같은 놈 낭군으로 삼겠다고 무예 닦은 것도 그렇고. 도적놈을 남편으로 섬기겠다면서 어젯밤 그 종가놈(소 모리타네) 만날 때 함께해준 것도 그렇고.”
어젯밤, 객이 찾아올 것이니 밤에 잠시 나갔다 오겠노라 하였을 때 짐짓 새초롬하게 명희가 따져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어젯밤 객사에서 왜인과 야인 사람들을 만나셨다 들었어요.’
‘그렇소.’
‘지아비의 외유(外遊)를 안사람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소만...’
‘저를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겠죠. 앞으로 또 언제 무섭고 위태로운 일에 나설지 모르니, 목숨을 내놓기로 약조한 이들만을 데리고 그런 모임에 나가시는 것은.
하지만 이미 제 한 몸 지킬 힘은 얻었고, 앞으로도 더욱 갈고 닦을 마음이랍니다. 그리고 이미 일심동체 되기로 약조하였는데, 낭군 목숨이 제 목숨이요 제 목숨이 낭군 목숨 아니겠어요?’
꺽정이 마음을 들여다보는듯 말하면서 또 후벼파기도 야무지게 하니, 그 눈빛과 그 말뜻에 끝내 꺽정이 뜻이 꺾였다.
그리하여 함께 종가를 만나기로 하고서, 가관 옆에서 그렇게 함께 달구경을 하였던 것이었다.
허나 종가는 오지 않고, 남녀 둘이 담장에 기대어 도란도란 이야기만 나누게 되었다.
꺽정이 저의 소싯적 이야기, 명희가 강릉에서 규수답지 않은 장난질 몰래 하던 이야기.
그리고... 꺽정이가 장차 큰 도적, 천하에서 가장 큰 도적 되고자 한다는 이야기까지.
‘누군가는 문장으로, 누군가는 학문으로 이름을 남기기 마련이지요. 낭군이 도적을 말하는 것이, 결코 범상한 도둑질을 말하는 것 아님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면 약조한 대로, 저 또한 그 도적 되는 일을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괜찮겠소?’
‘이미 약조했잖아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기로.’
윤원형으로부터 나라를 빼앗은 이래로 종종 잊을 뻔하였던 그 뜻. 입에 담으면서도 마음속까지 전해지던 울림은 예전 같지 않던 그 말이 다시 심금을 울렸다.
그 왕직이라는 놈의 이름을 들었을 때, 당당하게 그놈 괘씸하니 여차하면 거꾸러뜨리겠노라 공언할 수 있던 것은, 그러니 절반은 명희의 공 (또는 부추김)일 테다.
생각에 잠겨있는데, 명희의 웃음이 꺽정이를 그 생각의 늪으로부터 꺼냈다.
“무엇이 우습소?”
“우리가 예법에 따라 혼사를 치른다고 했는데, 정작 다 끝내지도 않고서 모두 마친 것처럼 이렇게 하늘만 구경하고 있네요.”
“그렇지. 예법 따지면 내일 우리 아버지 뵙고 나서 끝나는 것이라 하였소.”
“아니, 그것보다 더 중한 일이 아직 하나 남았잖아요.”
“중한 일? 아,”
그 중한 일이 무엇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뒤늦게 답을 깨달은 꺽정이의 낯이 붉어졌다.
수염 덥수룩하고 험상궂기만 한 지아비 얼굴에 홍조 감도는 것이 퍽 우습고 귀여워, 명희는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피식 하는 웃음은 곧 허허 하는 웃음으로 돌아오고, 멋쩍은 미소와 수줍은 눈빛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남녀의 마음이 서로 만나니 이는 합(合)이요, 두 사람이 하나의 집(戶)을 이루어, 한뜻으로 한 곳을 향하니(方) 이는 방(房)이라.
때맞추어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 길어지기 시작한 밤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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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시대는 16세기에 이르러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포르투갈은 1510년 인도 고아(Goa)에 거점을 마련하고 – 이후 정식 식민지로 확장해나가게 됩니다 – 1511년에는 말라카 술탄국을 점령했으며, 1520년대에는 말라카 술탄국의 조공을 받던 명의 개입으로 여러 차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시기 동아시아에는 공무역과 밀무역, 그리고 해적 등 여러 형태의 해상무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것을 서양 세력들이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복건·광동 출신 중국인과 그 후예들, 동남아의 여러 해상세력과 일본인 등이 구성하고 있던 이 네트워크에서, 포르투갈은 일개 신흥 세력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작중 시점에서 여기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주체는 바로 가정왜구(嘉靖倭寇) 또는 후기 왜구로 불리는 국제적 해적 세력이었지요. 여기에는 일본인들뿐 아니라, 중국의 범죄자와 밀무역업자, 해상으로 진출한 화교 후예, 일부 조선인(!), 그리고 후에는 극소수지만 유럽인들까지 다양한 출신의 해적과 상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후대에 이름을 남긴 후기왜구 지도자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왕직(王直)·서해(徐海) 등 중국인들이었지요.
본디 휘주(徽州)의 소금 상인이었던 왕직은 당시의 유명한 해적왕으로 – 실제로 왕을 칭한 해적이니 해적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일본 고토(五島) 열도를 근거지로 삼고 중국 연안을 약탈하는 한편 해상무역의 큰손으로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을묘왜변 당시 조선을 침공한 왜구도 사후 대마도 측에서 파견한 사절의 주장에 따르면 왕직의 아래에 있던 무리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날뛰던 왕직은, 1557년 절직총독 호종헌(胡宗憲)의 계략에 당하여 붙잡힌 뒤 처형당하게 됩니다.
한편, 작중에 언급된 ‘열 십 자를 숭배하는 남만 승려’는 바로 예수회 공동창설자 중 하나이자 아시아에서의 카톨릭 선교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입니다. 포르투갈이 점령한 말라카에서 사쓰마 출신 일본인 야지로를 만난 하비에르는, 1549년 일본으로 향해 시마즈 가문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1551년에는 교토로 상경하여 쇼군을 만날 생각으로 오우치 가문과의 접선을 시도하였는데, 하필 그가 오우치 령에 머물던 중 다이네이지의 변이 일어나 오우치 씨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결국 하비에르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카오로 돌아와, 1552년 병으로 사망하게 되지요.
조총은 1543년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열도 남단의 타네가시마(種子島)에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 퍼지고, 불과 10년 후인 1553년에는 일본인 평장친(平長親)이라는 자가 조선에 조총을 진상하기도 했습니다. 소 씨가 헤이시(平氏)를 자처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록』에 기록된 평장친은 대마도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대마도가 생존을 위해 일본 내 이곳저곳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 역시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