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거문고 줄을 고쳐 매다 (1)
양민 중 열에 아홉은 농사를 짓는 나라가 조선이다. 그나마 근래 하도 의민당과 그 후신 민주당이 설치고 다녀서, 저들도 이 기회에 다른 생업 찾겠노라 떨치고 나선 이들이 생겼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열에 아홉이 아니라 스물에 열아홉이 농군이었을 테다.
여하간 그렇게 모두가 농사를 짓는 나라에서 겨울은 어지간히 지루한 때였다.
곡식이 동날까 노심초사하며 밭에서 올라오는 보리만 들여다보는 봄과 달리, 아직 햇곡식도 남아 있었다. 그것을 관에 떼일까 걱정할 일도 없어졌다.
그러니 배는 부르고 할 일은 없는데, 주변의 미운 놈은 그대로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노름도 한두 번이지 슬슬 주먹이 간지러울 법도 하였다.
나라의 속풍(俗風)에 정월 대보름이 되면 석전을 크게 벌이고 쥐불놀이를 하는 것도, 차라리 하루 날을 잡아서 누구 때려잡고 어디 불 지르고 싶은 마음을 모두 해소하라는 뜻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정월 대보름까지 기다리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시작은 백정의 큰 어르신 임꺽정 당수님의 혼사에 하객으로 다녀온 백정들이 끊었다.
“김 생원댁 거기가, 고리백정이 고리 바치면 항상 값을 아니 주고, 소백정이 소 잡아주면 창자도 안 내놓았지.”
“횃불 가져와라! 임 당수님이 보여주시지 않았느냐. 맘에 안 드는 놈 골통을 제때 부숴주어야 사람이 예의를 알게 된다고!”
“뭐? 관이 무서워? 헛소리 마라. 관이 우리를 무서워해야지! 임 당수님 이름 대면 모두 쫄아서 도망할 것을!”
그리하여 평소에 백정들 괴롭히던 양반들이, 저들은 난데없다 여기지만 실제로는 나올 만한 데가 아주 많았던 변고를 당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우 몰려와 밤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서는 문제의 양반더러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정도였는데, 소문이 퍼지고 양반들도 나름대로 대비하게 되면서 일이 커지게 되었다.
“흥, 이게 다 그대들이 사족(士族)이랍시고 거들먹대고 다녀서 생긴 일이오. 저들이 정녕 성현의 말씀에 따라 수양에 힘썼더라면 이러한 화가 있었겠소? 그런 일에 관을 끌어들이려 하다니 참으로 미련한 일이오.”
“무어라? 아무리 근래 나라의 풍속이 난잡해졌다지만, 향리가 유생을 핍박하다니, 이런 도리가 어디 있는가! 반드시 이 모욕은 갚을 것이다!”
이미 학당의 일로 사이가 벌어진 향리들과 사족들, 그리고 둘 사이에서 어느 한 쪽 정하여 줄을 섰던 나머지 토호들 간의 미워하는 마음에도 불씨가 튀었다.
간혹 저들 딴에는 결의 넘치는 유생들이 노복과 비부쟁이, 그리고 땅 부쳐먹는 협호(挾戶, 행랑채나 별채를 빌려 사는 소작인)들까지 끌고 나와,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며 학당에 쳐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서책을 빼앗는 일도 생겼다.
그러나 집기를 부수고 현판을 불태우려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안의 사람도 해치게 되는 법.
감히 성현의 말씀을 더럽히던 향리 자제들도 자제지만, 저들도 뭔가 가르치는 스승이라며 으스대던 잡인들도 괘씸하였다.
그렇게 향리들이 때로는 잡학 가르친다고, 또는 가르치는 구실만 갖춘다고 모셔왔던 ‘농학(農學)’이나 ‘상학(商學)’, ‘주학(舟學, 배의 학문)’ 훈장들도 휘말리게 되었다.
“무어라? 작은개(者斤介) 할아범이 매를 맞았다고? 그 사람 좋은 노인네가 누굴 화나게 했길래?”
“그게... 저기 박 생원댁 둘째아들이 학당에 쳐들어와서 행패 부릴 때, 점잖게 말리려다가 그만...”
“그놈들이 백정 무서운 줄만 알고 뱃사공 무서운 줄은 모르는구나! 머리통에 노를 좀 얻어맞아 보아야 정신을 차리지. 야! 애들 다 모아라!”
장터에서 명망 높던 행상이 몰매를 맞으면 일대의 부보상들이 한데 모이고, 농군이 얻어맞으면 양반댁에 신세 안 지고서 그럭저럭 먹고 살던 호농(豪農, 부농)이 무리를 지으며, 선인(船人, 뱃사공)이 화를 당하면 우락부락한 뱃사공들이 몽둥이와 노를 들었다.
그리하여 겨울 내내 온 고을이 싸움터가 되었으니, 누가 처음 그 이름을 붙였는지는 몰라도 향전(鄕戰)이라는 말이 참으로 옳았다.
애초에 그렇게 편 갈라 싸울 형편 되지 않는 북변 고을들이나, 지난날 난리를 통해 도리깨 맞기 싫으면 상놈과 종놈들에게도 잘 대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깨우친 황해도 고을들, 지난 혼사 이후로 백정과 민주당 향리들 앞에서 다들 고개 숙이게 된 양주 고을처럼 조용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사족의 기세와 향리·호농의 기세가 팽팽히 맞서는 삼남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국법이 저들 머리 위에 있다는 믿음이 깨지고, 그들이 뭉쳐서 목소리 내면 조정도, 관도 어찌할 수 없다는 새로운 믿음이 생겼다.
아버지와 아들이 항상 같은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믿음이 무너지고, 누구든 욕심껏 기회를 잡아 출세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처럼 의민당 난리 때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왔던 장작에 마침내 불이 붙었으므로, 그 불길은 설날 앞둔 세밑까지도 잦아들 줄 몰랐다.
다만, 관이 쩔쩔매는 동안 사족들의 집을 부수고 사당을 불태우려 드는 천것들에게 묻는다면, 장작은 의민당 난리 때부터가 아니라, 이 땅에 양천의 구분이라는 몹쓸 것이 생겼을 때부터 쌓여왔노라 답할 것이었다.
군사를 풀자니, 겨우 재편한 경군으로는 삼남 전체를 통제할 수 없고, 군적에 오른 장정들은 이미 저들 고을에서 향전에 열심히 뛰어들고 있었으므로 각 군현의 군졸도 동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정월 대보름 석전이 매일 일어나는 것처럼 각지에서 사람이 다치고 간혹 죽어가나는 지금의 이 난국을 어찌 대처해야 하는가?
그러나 중추부에서 온갖 논의 오가는 동안 민주당 임 당수는 냉소로 일관할 뿐이었다.
“나라가 한 집안과 같으니, 주상은 어버이요 백성은 자식이라 하지 않았소? 애들은 원래 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오.”
“임 당수! 지금 그것이 무슨...!”
“그것이 무슨 말이기는. 조정에서 관여할 바 아니라는 말이오.
상놈과 천것들이 들고 일어나 지체 높은 이들 때려잡는 꼴을 보기 싫었다면, 애초에 귀하신 분들이 미천한 놈들을 잘 대해주었어야지. 마른 장작이며 섶이며 진득하게 쌓아두고서는, 이제 와서 불 났다고 난리를 친들 무슨 소용이 있소?”
사실 그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으므로 이준경과 사림 중신들은 절로 말문이 막혔다.
사임당 신씨의 처가 강릉이나 이지함의 형 이지번이 기거하고 있는 보령, 『정론보』 필진 이황의 고향 예안(禮安, 현 안동시 일부), 조식의 고향 삼가 등 화를 면한 고을들은, 의민당이 일어나 한양 점거할 무렵을 전후하여 인심을 다독여야 한다는 언질들을 받았기에 (어느 정도) 평온함을 지킬 수 있었다.
“원한이 터져나오기 전 먼저 나서서 그간 파인 마음의 골을 메웠다면, 마치 둑이 터지기 전 작은 구멍을 메우는 것처럼 작은 수고와 수모만으로도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오. 그조차 하지 않아 화란을 자처한 어리석은 시골 유생들까지 굳이 조정에서 챙겨줄 이유가 있소?”
“임 별장. 별장이 사족들보다 상민들의 편으로 마음 기우는 것은 이 사람도 십분 이해하오. 허나 이것은 국법의 위엄과 직결되는 일이외다. 사사롭게 무리를 모아 다른 이들을 겁박하고 괴롭히는 것을 벌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난적(亂賊)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오.”
원자 탄생 이후 부쩍 어깨에 힘 들어간 심통원이 한 마디 하였다. 그러나 이준경쯤 되는 인물 아니고서는 꺽정이의 우악스러움 감당하기에는 깜냥이 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붙잡아 벌할 방도는 있소? 이미 난적이 크게 일어난 지 오래여서, 영감 눈앞에도 한 사람 서 있는 판인데.”
결국 그날 중추부 모임은 별 소득 없이 끝나고, 얼른 명희가 머물고 있는 처갓집 갈 생각에 들뜬 꺽정이만 발걸음 가볍게 먼저 나갔다.
그 빈자리에는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나라의 기강이 마침내 모두 풀어 헤쳐졌구나’ 등등 한숨만이 가득하였다.
만일 꺽정이가 그 자리에 남아서, 한탄하는 이들의 면면을 눈여겨 보았더라면, 유독 이준경 한 사람은 그런 한탄에 동참하지 않고 형형한 안광만을 빛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었다.
‘돌아오는 정월 말 흑의군이 금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무얼 할지를 두고 긴히 논의할 바 있으니, 내 처갓집에 모여 이야기 나누면 좋겠소.’
이제는 『공보』에도 간간이 쓰이기 시작하여 사람들도 제법 익숙해진 ‘진언혼서(眞諺混書, 국한문혼용)’ 문체로 꺽정이가 손수 글 써서 보내왔기에, 이지함은 열심히 골목길 따라 발걸음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대문 열고 들어가보니 꺽정이는 보이지 않고, 서림만 마당에서 영 불편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임 당수는 어디 있소?”
“아내분과 함께 뒤뜰에 있습니다. 깨가 하도 잔뜩 쏟아져서, 범인(凡人)은 함부로 다가갈 엄두도 못 낼 지경이지 뭡니까.”
이지함도 그 말에 족히 공감할 수 있었다.
“오늘도 그리하는 모양이구려. 어느새 동리에 소문이 다 났소.”
“금슬 좋은 것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그것이지만, 양반댁 참한 규수가 엄청난 명궁이더라 하는 소문이 더 크게 번졌다오. 혼사를 그렇게 거하게 치렀으니 활솜씨만 소문나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겠지만.”
당장 며칠 전, 제자 녀석 얼굴 보러 오던 이지함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어, 대로 대신 골목길 쪽으로 걸어오는데, 이원수네 뒤뜰 담장에 동네 개구쟁이들 여럿이 모여서 뭔가 작당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궁금하여 몰래 – 꺽정이와 함께 멸악산 산줄기 타고 다닐 때 익힌 ‘도술’이었다 – 등 뒤로 다가가서 보니, 나이 예닐곱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들이 ‘활쟁이 각시’ 구경하겠다며, 어디서 주워온 돌멩이와 쇠붙이 따위로 담장 아래 난 조그만 개구멍을 파내어 넓히고 있었다.
아이들이 꺽정이 안사람 자태 곱고 재주 좋은 줄만 알고, 각시 남편의 무서움과 친정댁 주인의 칼춤 솜씨는 모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지함은, 아이들을 조용히 타일러 쫓아내려 했다.
그런데 개중 하나가 당당하게 고개 들며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저의 아버지께서 바로 그 규수의 무예 스승 되십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하시는 일에 마음 두는 것은 효(孝) 아니겠습니까?’
이름이 무어냐 물으니 이정의 셋째아들 순신(舜臣)이라 하였다.
저의 잘못은 없고 오히려 가로막는 이지함이 잘못 있는 것처럼 하도 당당하게 떠들기에, 이지함도 일순 기가 막혔다.
“... 하여 정 무예 구경이 하고 싶으면 아버지 통하여 제대로 청을 넣으라 했는데, 알아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오.”
“저야 무예 훌륭한지 아닌지는 모르고, 다만 눈꼴시다고, 흠흠. 그러니까 음... 부부의 정의가 과하게 도탑지는 않은가 생각할 뿐이지요. 나도 새장가를 들든가 해야지 원.”
서림이 넋두리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말을 툭 던졌다.
“서 별감 그대도 장가를 들었소?”
청석골 시절 아랫말에서 서 별감의 안사람 본 적 없다는 것이 새삼스레 떠오른 이지함이 물었다. 정녕 그 머리에 튼 상투가 헛상투라면, 귀신같이 알아챈 황해도 아전들이 저들 집안의 딸들을 모아 아랫말에 얼쩡거리게 했을 터인데,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때 들었지요. 잘 안 풀렸지만. 그때 연 끊고 야반도주한 탓에 호방 사위 노릇은 못하게 되었지만, 대신 어떻게 평양까지 흘러들어가서 임 당수 만나게 되었으니 잘 풀리긴 했습니다.”
뭔가 곡절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궁금하여 더 물으려던 차, 꺽정이와 안사람 명희가 나타났다.
(몇 해 전 신씨 부인이 지아비 따라 봉산에 찾아온 이래 점차 가도(家道)에서 남녀칠세부동석 일곱 글자가 희미해져가는 신씨네 집안이었다.)
이지함과 서림 두 사람에게 명희가 인사 올리고, 이어서 부부 사이에 또 한 차례 달달한 눈빛 오간 뒤에, 마침내 꺽정이 혼자 남았다.
“원하신다면 도로 데려오겠소.”
이지함이 ‘그래’ 또는 그와 비슷한 소리라도 입 밖에 낼 것 같으면 좋은 빌미로 삼아 곧장 명희를 데려올 기세로 꺽정이가 말했는데, 서림의 절박한 눈빛을 본 이지함은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겠느냐. 어차피 우리 모임 파하면 곧장 구절 하나 빠지지 않고 안사람에게 전해줄 것 아니냐.”
“그건 그렇소. 애초에 이 계책 마련하는 데 안사람 공이 컸으니.”
“임 당수... 휴, 아니오. 얼른 안에나 들어가십시다. 한겨울에 마당에서 기다리느라 몸이 제법 얼었소.”
서림이 투덜대었다. 다행히 꺽정이에게 신씨 부부가 내어준 별채에는 구들장이 깔려 있어서, 잡일하는 어멈이 따뜻하게 데워두었다.
그 뜨뜻함이 몸 아래쪽에서 전해오니, 살짝 삐졌던 이지함과 서림 두 사람의 마음도 조금 풀렸다.
“내가 양주에서 아내와 함께 대마도 종씨 오밤중에 만난 이야기는 지난번에 모두 털어놓았으니 더 말할 것은 없으리라 믿소.”
서림과 이지함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말을 듣고 기억하는 것과 그 말을 참이라고 믿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꺽정이가 나라 하나 털어먹기로도 부족하여 이제는 다른 도적을 털겠다고 나서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의민당이 도적에게 도적질하는 것을 첫 번째 업으로 삼았으니 근본으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꺽정이가 털어놓았던 전생의 일에 분명 수천 왜구가 쳐들어와 여러 성과 진보(鎭堡)를 함락시킨다 하였으니, 적어도 왜구가 장차 날뛸 것임은 분명하였다.
허나 꺽정이가 전해준 종씨의 말은, 바다의 일에 관심 많은 이지함조차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고, 특히 그 ‘남만인’ 대목에 이르러서는 더욱 황당무계하였다.
그러므로 이지함은 선뜻 믿지 못하고, 바다 누비며 장사하는 일까지는 경험이 없는 서림 또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왕직 놈에 대하여 나와 안사람이 세운 계책의 대강은 이렇소.
첫째. 미리 배를 준비한다.
둘째. 대마도 종씨를 통해 적당히 왕직을 건드려, 놈의 왜구들이 조선으로 몰려오게 한다.
셋째. 명분이 생겼으니 그대로 밀고 들어가 왕직을 때려잡고 놈이 다져둔 기틀도 송두리째 낚아챈다.”
“잠깐, 잠깐. 임 당수.”
사업 얘기라면 언제든 진지해지는 서림이 그 진지한 목소리로 꺽정이 발목을 잡았다.
“‘미리 배를 준비한다’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배를 만들 때 재정이 들고, 격군(노잡이) 부릴 때도 재정이 들고, 또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먼 바다까지 가려면 솜씨 있는 선인(船人)이 필요한데 아국 안에서 못 구하면 왜국이나 대국 강남에서 모셔와야 할 테니 이 또한 재정이 듭니다.”
“우리 당에 그만한 재정이 없소?”
“없습니다. 특히 이번에 어떤 분께서 거하게 혼사를 치르셔서, 살림이 한동안 어렵게 되었지요.”
꺽정이 반문에 서림이 냉정하게 대꾸했다.
“허나 서 별감. 생각해보시오. 처음에 재정을 마련하는 게 어렵지, 먼 바다를 오가는 방도를 아국 사람들이 익히게 되고, 또 거기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갈수록 들어가는 비용은 줄어들게 되지 않겠소?”
그 단호함에, 모처럼 나온 바다 이야기가 끊어져버릴까 걱정한 이지함이 꺽정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림은 반대하는 뜻을 거두지 않았다.
“이번에 양주에서 왜인과 야인들까지 끌어들여 교역하기로 했으니, 그 이익을 여러 해 동안 쌓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밑천을 부어넣으면 비로소 조금은 가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교역의 이익이 얼마나 날지도 모르고, 또 지금 임 당수 말씀대로 왜국 사정도 어지럽다면 그나마 언제 중간에서 끊길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서림과 이지함이 티격태격하던 중, 어째 조용히 있던 꺽정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두 사람 다 잠시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 좋은 생각이 났소.”
“무엇입니까?”
“우리 당에 배를 만들 재정이 없다면, 나라에서 훔쳐오면 될 일 아니오? 당장 삼남 수영에 있는 전선만 해도 몇 척인데.”
누가 도적 두목 아니랄까봐 ‘좋은 생각’이라는 것이 이러하였다. 그러나 이미 서림은 재정을 고민하고 이지함은 배로 바다 오가는 데 마음을 모두 기울이고 있었으므로, 놀리는 대신 진지하게 그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허나 암만 고민해도 답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내 보령에 머물 때 충청수영 전선들을 여럿 보았는데, 근해(近海)도 겨우 오가는 배들이 태반이다. 차라리 조운선이 더 나을 것이다. 조운선은 적어도 꾸준히 보수하기는 하고, 간혹 못 쓰게 될 지경에 처하면 부순 뒤 새로 만들기도 하니까.”
“그러면 그 조운선 챙겨오면 되겠네. 내가 이곳 도성 칠 때도 요긴하게 썼지 않소.”
“멀쩡한 조운선을 우리가 모두 끌어간다면 이 나라는 어찌하라는 말이냐? 더구나 그런 조운선조차 태안의 험난한 바다에서 종종 가라앉곤 한다.”
“잘 되었네. 가라앉는 것에 대비할 겸 새로 더 만들게 한 다음 우리가 몇 척 중간에 챙겨먹으면 되는 것 아니오? 까짓거.”
어떻게 조운선을 더 만들게 할 것인가? 이러다가 삼남 바닷가를 돌면서 조운선과 전선을 몰래 불태우자는 둥 망측한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슬쩍 두려워하게 되는 서림과 이지함이었는데, 나오는 말은 의외로 멀쩡하였다.
“삼남에서 걷는 세곡이 늘어나게 되면, 조운선도 그에 따라서 더 만들어야 하겠지.”
“조세를 늘리자는 말이냐?”
“에이, 누구 좋으라고 조세를 늘리겠소? 지금까지 나라에서 걷던 온갖 세곡 중에, 조운선으로 안 올리고 따로 쓰던 그런 것이 하나쯤 있을 것 아니오. 그것을 모두 도성으로 올리자고 하면 마땅히 조운선도 더 만들어야 하겠지.”
가만 듣던 서림이 한 마디 했다.
“그것은 아예 불가하진 않을 것입니다, 당수.”
“보시오, 사형. 가하다고 하지 않소.”
꺽정이가 저의 말을 비트는 것을 꼬집는 대신, 지금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을 털어놓는 데 주력하는 서림이었다.
“우리 당이 내년부터 전국의 방납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애쓰고 있음은 아실 것입니다.”
물론 저들의 이익이 줄어든다 여겨 반발하는 무리가 없지는 않았다. 허나 관을 상대로 할 때야 인정(人情, 뇌물)으로 무마하거나 모르쇠하고 얼버무릴 수 있지만, 아전이나 장사치 상대로는 불가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 아전과 장사치 뒤에 임 당수가 있음에랴.
“방납을 국법으로 허용하여, 방납미(防納米)를 조운선으로 당당하게 걷어올리게 한다면 그만큼 조운선이 더 필요하겠지요.”
“허나 앞서 말한 것처럼, 삼남의 전세(田稅)에 더불어 방납미까지 모두 걷어 조운을 한다면 그만큼 배의 손실도 늘어날 터인데...
아니지, 잠깐. 그렇지! 그러니까 더 좋은 배를 만들어서 먼 바다로 우회하여 도성으로 올려야 한다고 하면 되겠군.”
이지함이 반론을 꺼내다가 갑자기 번뜩 하면서 꽤 괜찮은 핑계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고맙소, 사형.”
“엥, 뭐가 말이냐?”
“지금 말해준 것 말이오.”
“아.”
그제야 그들이 어쩌다가 이 얘기 꺼내게 되었는지 떠올린 이지함이 멋쩍어하였다.
“흠흠, 그러면 이것을 우리네 당론(黨論)으로 삼아 밀어붙여도 되겠습니까? 당장 우리 사업당에서 일하는 이들이 준비해야 할 바가 매우 많을 것입니다.”
그사이 서림이 말을 가로채어 좌중에게 물었다.
“준비할 바가 그리 많소?””
“당분간 도성 안에 산가지가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황해도에서 도 전체 아우르는 방납을 함께 했던 아전들이 따라와서 이곳 사업당에서 일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훨씬 버거웠을 것이다.
허나 국법으로 방납을 허용하더라도, 그렇게 올라오는 방납미로 특산품 사들이는 것은 여전히 민주당 및 당에 연 닿은 도고(都賈)들일 것이요, 국법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거래를 할 수 있으니 이문도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밤잠을 버려가며 매진할 만한 일 아니겠는가. 멀리 강남과 그 너머 운남에는 한 모금만 마셔도 잠이 달아나는 차(茶)가 있다고 하는데, 임 당수가 남해를 제패하면 그것이나 좀 들여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서림이었다.
“그러면 그리 합시다들.”
“그러자꾸나.”
꺽정이가 논의를 마무리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고 어르신께는 내가 다녀오도록 하겠소. 이만한 일이라면 미리 언질해주어야 하겠지.”
나라의 대사(大事)가, 도적질 재원 마련을 위해 이토록 얼렁뚱땅 논의되니, 그러한 이유로 공납의 혁파가 거론되었다는 것과, 고작 도적질 위하여 공납 혁파가 거론될 때까지 나라의 중신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 중 무엇이 더 안타까운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저에게 말 한 마디 안 하고 논의할 수 있느냐며, 입 삐죽 나온 채 달려온 이이로 인하여 꺽정이 발목은 꽤 오래 잡혔다.
그래도 덕분에 그 자리에서, 왕직 때려잡기 위해 세곡 늘린다는 본의를 숨기기에 족한 명분을 많이 붙일 수 있었다.
심지어 즉석에서 그럴듯한 이름도 붙여주었다.
“이름은 대동법(大同法)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여러 잡다한 진상품의 물목을 크게 하나로 뭉치니 대동(大同)이요, 그리함으로써 능히 그 옛 성현들이 말한 경지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으니 이 또한 대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좋은 뜻이다 그 말이구나. 언뜻 들어본 것도 같고.”
“소강(小康)과 대동. 『예기』 <예운(禮運)>에 보입니다.”
“흐흐. 그래. 그렇게 출전까지 말해주면 어지간한 선비들도 끔뻑 죽겠지. 고맙다, 처남아.”
‘처남’ 두 글자에 움찔하는 이이를 뒤로하고서 꺽정이는 이준경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옛날 저만 쏙 빼놓고서 사림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이지함과 함께 쳐들어간 바 있었기 때문에 길은 익숙하였다.
그런데 길은 익숙하건만 집앞의 떠들썩함은 익숙하지 않으니, 이 어찌 된 영문인가.
종잇조각과 서책, 장부 따위를 들고 부산히 움직이는 서생들로 온통 골목이 북적였다.
“거 말씀 좀 물읍시다.”
지나가는 서생 하나가 눈에 띄기에, 대관절 무슨 곡절인가 물으려고 불러세웟다.
“예, 무슨 일이십... 헉, 임 당수?”
그런데 그 서생이 꺽정이를 알아보더니, 놀라서 껑충 뛰고는 이준경의 집 안쪽으로 후다닥 들어가버리는 것 아닌가.
필시 변고가 있는 것이라 여긴 꺽정이는 서생 뒤를 따라갔다. 허나 이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계시오?”
앞에서 나름 점잖게 헛기침하며 물었더니, 다른 서생 하나가 고개 내밀고서는 말했다.
“흠흠, 동고 대감은 아니 계시오.”
“방금 전에 서생 하나가 뛰쳐들어가는 것을 보았소. 무슨 일이오?”
“그... 아마 잘못 본 것일 테요. 모르는 일이외다.”
“아, 그렇구려. 내 그러면 다시 오겠소.”
그렇게 말하고서는, 문이 닫히자마자 옆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담장 넘자마자, 방금 전 그에게 축객령 내렸던 그 서생과 눈이 마주쳤다.
“내 다시 오겠노라 하지 않았소? 나는 식언(食言)을 하지 않소.”
“그... 동고 대감께서는 지금 객을 받지 않고 계시는데...”
“에이, 내가 어디 그냥 객인가? 거 잔말 하지 말고 얼른 동고 대감 계신 곳 어딘지 알려주시오. 정 알려주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저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서생이 눈 질끈 감더니, 순순히 길을 알려주었다.
그 뒤를 따라 별채로 향하는데, 젊고 늙은 서생들이 여기저기 황망히 움직이며 종이며 서책 따위를 숨기려 애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뭐 흉흉한 논의라도 하고 계셨소?”
“다 임 당수께서 이렇게 황망하게 찾아오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대체 뭔 떳떳지 못한 짓을 하고들 계셨길래... 우리처럼 당당하게 일을 벌여야지 이 무슨 꼴이오?”
도적이 선비에게 하는 훈계 치고는 퍽 내용이 이상하였다.
“자네도 사정을 듣는다면 이해할 것일세.”
그제야 나타난 이준경이 쩔쩔매는 서생 대신 답해주었다.
“대감네 사정엔 별 관심 없소. 내 사정이나 먼저 들어주시오.”
“글쎄, 아마 서로 엮여있을 듯하기는 한데... 우선 들어나 보세.”
이준경 따라 어느 방 안에 들자마자 꺽정이는 그 ‘대동법’ 얘기를 꺼냈다. 물론 그 진짜 목적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얘기만 빼고.
(이지함조차 남해 바다 얘기는 반신반의했으니, 설령 진실을 모두 털어놓았더라도 이준경은 아예 믿지 않았을 것이기는 했다.)
“... 하여 이 대동법으로써 기존의 공납을 혁파하고 만백성을 편리하게 할 심산이오. 이것을 장차 논의하고자 미리 이렇게 찾아왔소.”
“음, 그 또한 좋은 논의일세. 이미 방납은 전국의 군현 대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를 차라리 국법으로 허용함으로써 백성의 부담을 줄이는 것 또한 가당한 일이겠지.
허나, 이 사람으로서는 들어줄 수 없네.”
순순히 저의 말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니 꺽정이 미간에 절로 내 천(川)이 새겨졌다.
“어찌 그렇소?”
허나 꺽정이의 흉흉한 기세를 능히 당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정 중신 중 하나가 바로 이준경이었다.
“그야, 이 사람과 여러 뜻있는 선비들이 꾀하고 있는 경장(更張)의 뜻과는 서로 맞지 않으니 그렇지.”
이준경이 안광 번뜩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 안광의 매서움에 꺽정이가 놀랄 차례였다.
“방납을 허용하고 국세의 하나로서 걷도록 하자. 이 또한 좋은 말일세. 그러나 차라리 공물을 걷지 않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야.”
“잠깐... 지금 무어라 하셨소?”
“공물 자체를 폐하겠다, 그 말일세.”
“그... 내 배움이 깊지는 않지만, 공물도 다 나라에서 필요하니까 걷는 것 아니오? 공납을 완전히 폐한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그러시오?”
보통 해괴한 논변으로 사람 놀라게 하는 것은 꺽정이 자신 아니면 다른 당원의 일이요, 그 말 듣고 놀라는 것은 이들 선비들의 일이었는데, 지금은 뭔가 뒤바뀌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꺽정이었다.
“내수사를 폐하고, 거기서 나온 토지와 재물, 장리(長利)로 불리는 곡식 따위를 모두 나라의 살림에 보태어 그것으로 특산품을 사들이면 된다네.”
“그것이 가하겠소?”
“자네가 온다고 했을 때 급히 서책과 장부 따위를 숨기는 것 보지 못하였는가? 자네와 자네 아래의 그 서 별감만 사람을 모아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아니라네. 산가지라는 것을 꼭 아전들만 쓰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수사는, 그, 주상과 그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재산 아니오? 그것을 건드린다니...”
“하하, 동국(東國, 조선)의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바로 성상의 것이거늘, 어찌 그 안에 사장(私藏, 개인의 재산)이 또 있겠는가?”
이준경이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 웃음이 어째 섬뜩하여, 꺽정이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나라의 기강이 크게 해이해졌으니 마땅히 바로잡아야 하네. 그러나 반드시 자네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바로잡히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 ---
원 역사의 향전은 조선 후기, 그러니까 작중 시점에서 약 2백여 년 뒤인 18세기부터 본격화된 현상입니다. 이는 기존에 향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舊鄕)과 신흥 세력(新鄕) 사이의 다툼, 같은 재지사족 내에서의 다툼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나타났고, 조선 중기에 구축되고 양란 이후 공고화되었던 사족 중심의 향촌질서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더욱 가속되었습니다.
이는 향촌의 사족 명단인 향안(鄕案) 등재를 둘러싼 다툼, 전답이나 수리시설의 소유권을 둘러싼 다툼, 서원이나 향교의 운영을 둘러싼 다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고, 향전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폭력이 동원되는 사례도 매우 많았습니다. 일례로 향전이 막 시작되던 현종 연간 벌어진 개성의 향전에서는, 향교 내 대성전에 방화를 하고 상대방 사당에 들어가 신주를 깨뜨리는 일이 벌어졌고, 나중에는 서원 위패까지 파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정에서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지방 통제를 강화하고 향전율(鄕戰律)을 세워 향전을 엄금하는 등 여러 대책을 세웠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정조 연간의 향전 엄단 정책은 결국 공권력에 쉽게 결탁할 수 있던 향리와 신향(新鄕) 측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대체로 향전은 관권과 결탁한 신향 세력이 승리하고 기존에 구축되었던 재지사족 중심의 향촌 자치질서가 붕괴하는 방향으로 귀결되곤 하였습니다.
다만 작중에서 나타나는 향전은 재지사족과 향리들뿐 아니라 기존 통치구조에서 소외되었던 천민들과 일반 농민들까지 폭넓게 참여하고 있으며 관의 영향력은 제한적으로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원 역사의 이이는 1569년 해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체계화된 방납에 착안하여 대동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해주뿐 아니라 선조 연간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군현에서 자체적인 사대동(私大同)을 통해 현물을 그대로 납부하는 대신 구매하여 납품하고 있는 실정이었지요. 이후 임란 시기 군량미 마련을 위해 일시적으로 미곡으로 공납을 받은 선례가 남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광해군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공물을 미곡화하여 수취하려는 정책적 움직임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이는 큰 저항에 부딪혔지요. 조세부담 회피를 위한 기득권층의 저항도 물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조선의 조운체계 자체에 대한 문제, 그리고 미곡의 수급 불안정 문제, 행정상 비용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엮여 있었습니다. 대동법 반대 세력들이 대동법 자체의 의의는 인정하면서도 그 확대에는 반대하였던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지요. 내수사를 철폐하고 거기서 나오는 예산을 이용해 공납의 양을 줄이자는 논리도 그러한 맥락에서 실제로 출현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683년 송시열의 내수사 혁파론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