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73화 (73/259)

24. 거문고 줄을 고쳐 매다 (2)

공납을 쌀이나 포목으로 갈음하는 것이 간편하지 않겠느냐 제의코자 이준경 찾아간 꺽정이는, 차라리 공납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더 간편하지 않겠느냐는 답만 받고서 털레털레 돌아왔다.

“뭐, 어쩌란 말이오? 내가 그 자리에서 뭐 반박할 수 있는 게 있었어야지.”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켕긴 꺽정이가 서림에게 괜히 한 소리 하였다.

“흠흠, 꺽정아.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이지함이 사실로써 서림을 옹호해주었다. 그러나 서림은 이미 공납을 폐할 때 벌어질 이익의 득실을 따지느라 꺽정이 말도 듣지 못하였기에, 이지함은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그나저나 동고 대감이 정녕 내수사를 혁파하여 그 재정으로 공납을 대체하려 한다면 이는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구나.”

“뭐, 세곡 늘려서 배 훔칠 구실 만들지는 못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특산물은 계속 한양으로 올려보내야 할 것 아니오? 그 장사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당의 몫일 텐데, 그게 그리 큰일이오?”

“방금 전 모주님 말씀이 백번 천번 맞습니다. 정말로 큰일입니다, 당수.”

계산 마친 서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공납은 각 군현의 소관이고, 군현의 실무를 아전들이 맡아보는 것은 통례일 뿐 아니라 국법에도 합당한 일입니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국법과 어긋나는 방납도 고을마다 늘 그래왔다는 핑계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납을 아예 폐한다면, 아마 육의전에서 궁궐에 물품 진상하듯 조정에서 특산품 사서 바칠 장사치들을 정하여 납품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당이 더 이상 손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더불어, 서림과 민주당 서리들이 지금껏 전국 군현이 주먹구구로 운영하던 방납을 기껏 하나로 묶어낸 것도 죄다 헛수고가 될 터였다.

“에이, 그래도 임금 재산을 털어서 나라 위해 쓴다는 것 아니오? 내가 아는 임금이라면 결코 허용치 않을 터인데...”

뭔가 말하던 꺽정이의 말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절로 막혔다.

임금이 무소불위(無所不爲)하던 시절을 제 손으로 끝내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새로 차려진 조정은 심씨 외척들, 그리고 이준경이 윤원형이나 그 이전의 김안로와는 결 달리하는 인물임을 깨닫고 심통원에게 붙는 모리배들을 제하면 이준경을 따르는 사림들의 차지였다.

“아이고.”

자승자박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임금이 총명하고 학문을 크게 이루어, 스스로 언변으로써 이준경의 말을 논박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내수사가 실제로 혁파되지는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기대할 것을 기대해야지. 어느날 갑자기 임금이 벼락을 맞거나 그 머릿속에 어느 성현이 갑자기 임하거나 하지 않는 한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동고 대감 막는 것은 우리 손으로 해야 하게 생겼구나. 그러나 명분이 없으니 어려운 일이다.”

“모주,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서림이 뭔가 말하려 하였으나, 이지함이 손 들어 제지하였다.

“무슨 명분인지는 나도 익히 알고 있소. 허나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 지금 별감이 생각하는 논변을 펼친들 이해하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오.”

이지함에게 끌려온 동문 허엽과 박순이 한참 고생한 덕에, 지금껏 논상원에서 장사치들이 펼친 화식(貨殖, 재산 증식)의 설은 정교한 논변으로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이지함은 물론이요 그 어떤 선비도 생각지 못한 바가 적지 않게 들어 있었는데, 개중 하나가 바로 재물을 잘만 쓰면 흩뿌릴수록 늘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라의 살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세를 적게 거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 거둔 조세가 어떻게든 백성의 이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만 한다면 오히려 조세를 더 많이 거두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을 터.

허나 여기에 익숙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러한 논변은 마치 ‘백마는 말이 아니다(白馬非馬)’ 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무릇 사람은 저의 생각하는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소. 논상원에서 강(講)하는 상학을 배워 가산 크게 늘린 이가 많이 나타나야만, 비로소 전지(田地) 늘리는 것 외에도 정직하게 가산을 불릴 방도 있음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겠지.”

그러려면 적어도 몇 년 세월은 더 흘러야 할 것이다.

논상원 찾아가 들은 가락으로 소소하게 장사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성공을 거두고, 나아가 사족들 중에도 서책 밀수로 큰돈 만진 봉산 유생 김절 같은 이들이 더 늘어나야 할 터.

어쨌든 지금은 요원한 일이었다. 당장 허엽과 박순조차, 자신들도 과거 공부 접어두고 장사나 할까 하는 말을 그저 술자리 농담 정도로만 주고받는 판이었으니.

“그러니까, 이준경 어르신이 임금 재산을 빼앗게 되면 이 대동법 시행할 근거가 없어지는데, 임금 재산 빼앗아 백성들 조세 줄여준다 하는 말에 반박할 명분이 없다는 것 아니오?

그렇다면 우선 임금 한 사람이라도 설득해서 이준경 어르신 말씀에 반대하도록 할 수는 없겠소? 임금은 저의 재산을 빼앗길 지경이니 조금 더 절박할 것 아니오. 사형쯤 되면 선비님네들 쓴다는 그 상소인지 뭔지 하나쯤 쓰고도 남지 않소?”

“이놈아, 상소가 어디 잡문(雜文)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술술 써내려가는 글이더냐. 더구나 동고 대감을 상대로 쓰는 상소라면, 자칫 어설프게 썼다가는 후대의 놀림거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더구나 나라의 유풍(儒風)이 여전히 이익의 논변을 비속하게 여기니, 말을 꾸며내기가 더욱 어렵지 않겠느냐?”

어전에 올리는 상소는 단순한 글이 아니다. 사초에 적혀 『실록』에 전문(全文)이 영세토록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이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문집에 남아 후손들에게 널리 전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조보에도 누가 어떤 내용의 상소를 올리는지가 적히고, 근래에는 『공보』와 『정론보』도 있으니, 굳이 후세를 따질 것도 없이 당대 사람들이 그의 상소가 무슨 내용인지를 익히 알게 될 터였다.

“게다가 시일도 촉박하다. 네가 동고 대감댁에 찾아갔을 때, 이미 여러 유생들이 장부와 서책 따위를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 하지 않았느냐? 아마 그것은 경장의 뜻을 세운 데서 그치지 않고 당장 실무를 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함일 테다.”

“아! 사형 말씀 들으니 떠오르는 계책이 하나 있소. 그 서책과 장부 따위 말이오. 그것들을 몽땅 없애버린다면, 사형이랑 밤골 도령이 임금의 마음 움직일 만한 글을 쓰기에 충분한 시일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소?”

도적놈 수괴다운 발상에 서림과 이지함이 말을 잃었다.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동고 대감을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

“그 어르신이 윤원형이만큼 나쁜 놈도 아닌데, 나인들 함부로 해코지를 하겠소? 그냥 짓궂은 장난을 좀 치겠다 이 말이지.”

물론 꺽정이가 암만 앙증맞은 장난이라 일컬어도, 당하는 이준경은 결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는 도적놈이 당하는 사람 마음을 신경 쓰며 도적질을 했던가.

“게다가 이미 동고 대감은 준비를 다 마쳤을 텐데, 고작 서책과 장부를 훔쳐서 훼방을 놓은들 얼마나 더 시일을 얻을 수 있겠느냐? 원한이나 안 사면 다행이지.”

그때 이지함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차라리...”

“차라리 뭐요?”

“아니다.”

“사람 궁금하게만 하고 말은 아니하는 건 어느 나라 법도요?”

꺽정이가 추궁하고 서림도 은근히 눈짓하니, 한숨 한 번 푹 쉬고 이지함이 말했다.

“마음이 제멋대로, 결코 따를 수 없는 방책 하나를 떠올렸을 뿐이다. 우리는 윤원형·김안로 같은 자들과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이준경이 여론을 모아 내수사를 폐지하고 지존의 위엄을 훼손하겠노라 공언하였으니,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다면 이것만으로도 족히 옥사 하나를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꺽정이를 시켜 이준경과 사림 서생들이 작성한 장부 따위를 훔쳐낸 뒤, 이것이 증좌다 내세우며 역모 고변을 꾸미는 것. 당장 선대의 권신들은 이보다 훨씬 터무니없는 근거로도 수많은 선비를 해친 바 있었다.

그러나 선비가 화를 당하지 않는 세상 만들겠노라 작정하였고, 지금도 그 마음은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은 이지함이었다.

그러므로 저의 머릿속에서 저런 궁리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며 몸서리칠 일.

“알겠느냐? 네가 물으니 이렇게 토로하기는 하였으나,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이 방책을 취해서는 아니 된다. 꺽정이 너도 나를 사형으로 여긴다면 이를 잘 알아두거라.”

그랬는데 꺽정이 이놈이 곧장 대꾸하기를,

“사형, 그 방책이 묘책이오. 그대로 합시다.”

이러는 것 아닌가.

“이놈이 사람 말을 어디로 들었느냐. 아니된다 하지 않았느냐?”

이지함이 보기 드물게 역정을 내었다.

“아니, 아니. 사형. 내가 말을 잘못 했소. 그 방책의 대강을 따르되, 윤원형이 같은 놈이 할 법한 짓만 빼고서 따르면 되지 않겠소? 들어보시오...”

“삼가 아뢰옵건대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지 여러 해가 되었으나, 지금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민려(民黎, 백성)의 난행(亂行)을 아뢰는 서계(書啓)가 이미 수레 여러 대를 가득 채울 지경이 되었으니, 이는 어리석은 백성 한둘의 뜻이 아니라 민심 자체가 요동치는 것입니다. 민심은 곧 천심(天心)이니, 이는 하늘의 그 어떤 경고보다도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정(二程, 정이천·정명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힘으로써 능히 하늘의 조화를 극복할 수 있는데 사람이 행하지 않을 뿐 (人力可以勝造化 自是人不爲耳)’이라 하였고, 또한 ‘국가가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운 것은 천명 때문이라 말할 수 없다(國家治亂, 不可以言命)’라 하였습니다.

태조께서 성덕으로써 창업하신 지 어언 일백 하고도 육십 년이 지났습니다. 한낱 거문고조차 그 현을 제때 갈아 매지 않는다면(更張) 음률이 조화롭지 못할진대, 하물며 나라에 있어서겠습니까? 신이 살피건대 지금이 바로 그리할 때입니다.

(...)

주(周)는 오래된 나라였으나 때맞추어 경장함으로써 비로소 ‘그 명이 늘 새롭구나(其命維新)’ 하는 노랫말을 남겼습니다. 반면 진(秦)은 강성하여 능히 칠국(七國)을 제패하였으나 고작 두 대만에 망해 없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두 나라는 무엇이 달랐습니까?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이를 깊이 살피시옵소서.”

『정론보』와 『공보』에 모두 실려 전국에 퍼진 이준경의 상소문이었다.

용렬한 선비는 이제 무언가 제대로 되겠거려니 여기면서 저를 업신여긴 상놈들을 때려잡을 생각을 품고, 그나마 정신머리 조금 제대로 박힌 자는 이 기회에 저도 뭔가 시무책(時務策)을 올려 동고 대감의 환심과 세간의 명성 얻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즉시 고쳐야 할 폐단 여럿을 열거하는데, 맨 앞에 공납의 폐단이 있고 그 뒤에 내수사가 백성을 착취하는 사정을 아뢰니, 이 두 가지가 당장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제가 암만 문리 어두워도 공납 폐단 얘기는 능히 읽을 수 있었습죠. 그래서 주변에도 알려주니 다들 잘 되었다 합디다. 조정이 아무리 일을 답답하게 한다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나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요?”

오늘은 번 아니 서는 날이라고 궁궐 한 구석 저의 숙소에서 몰래 술병 기울이려다가 꺽정이 손에 붙들려 온 오막손이조차 그 상소 얘기를 알고 있었다.

“너 같은 무식쟁이가 어떻게 그 상소를 읽었느냐?”

함께 밤길을 걷고 있던 꺽정이가 문득 궁금하여 물었다. 그런데 오막손이가 짐짓 정색하며 대꾸하는 것 아닌가.

“무식쟁이라뇨? 나랏님 지키는 금군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벌 받습니다.”

『공보』에서 글을 쉽게 풀어써주기 때문에 저도 능히 읽을 수 있었다는 말은 한사코 생략하는 오막손이였다.

“그 금군 노릇 보름도 안 남았다, 이놈아. 그리고 그리 따지면 너는 졸개요 나는 장수 아니냐? 장수에게 졸개가 함부로 말하면 목이 달아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식쟁이가 뭡니까, 무식쟁이가. 제가 그간 진서를 얼마나 열심히 배웠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서러운 일만 가득합니다그려.”

진심으로 억울하였던 오막손이는 투덜대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함께 꺽정이에게 붙들려온 밤이 녀석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막손 아재 말이 맞습니다, 당수님. 아마 『천자문』도 다 외우고 있을 걸요?”

밤이를 비롯해 어지간한 흑의군 패두들은 얼추 저의 이름자나 간단한 군령(軍令) 정도는 읽을 수 있었는데, 오막손이는 한양 올라온 뒤로 어디서 스승을 구했는지는 몰라도 따로 글공부를 조금 한 모양이었다.

“천지현황(天地玄黃)부터 언재호야(焉哉乎也, 천자문 마지막 구절)까지 이 자리에서 다 외울 수도 있습죠, 헤헤.”

옆에서 칭찬해주는 말에 오막손이 기분도 금세 풀렸다. 그러나 꺽정이는 어울려 놀아줄 마음 없었으므로 곧장 면박만 놓았다.

“아서라. 오밤중에 뭔 자랑질이냐. 그렇게 글 잘 알고 있으면 오늘 도둑질이나 야무지게 할 궁리를 해라.”

그사이 익숙한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 다 왔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이준경 대감 댁을 도둑질하면 기껏 공납 어쩌고 한 것도 다 흐지부지되는 것 아닙니까? 이거 좀...”

“야, 이놈아. 이준경 그 양반이 할 수 있는 생각을 우리네 모주는 못 했겠느냐? 방법은 좀 달라도 우리 당에서도 똑같은, 아니지, 더 좋은 쪽으로 공납 법도 바꿀 심산이란 말이다. 그러니 잔말 말고 얼른 담장 넘을 준비나 해라.”

계획은 간단했다. 이준경네 집을 두 번이나 오갔던 꺽정이가 길을 이끌고, 발 빠른 밤이는 망을 본다.

일전에 보았던 그 수많은 서생들은 지금쯤 저들 집에 돌아가 곤히 자고 있을 터. 그러니 이준경 본인과 종복 몇몇을 제하면, 꺽정이가 노리는 서책과 장부들을 지키는 이는 없을 테다.

“오막손이 네놈이 그리 글을 잘 안다니 수월하게 되었다. 너는 나와 함께 딱 보아도 공납이나 내수사에 대한 것처럼 보이는 장부와 서책만 챙기면 된다.”

“이 오밤중에 어떻게 그것만 골라서 챙깁니까?”

“그래서 내가 호롱 챙겨오지 않았느냐. 이 불빛에 얼추 제목이나 첫 장만 대충 비춰보고 챙기면 된다. 누가 불빛 볼 수도 있으니까 밤이 네가 망을 잘 봐야 한다.”

“예, 당수님.”

밤이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막손이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또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이준경 대감이 뭔가 수상함을 알아채면 어떻게 합니까? 뭐 『주역』을 보고서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챈다든지... 천문을 보고서 미리 대비를 해두었다든지...”

나라의 정승쯤 하는 사람이면 그런 비범한 재주 한둘쯤은 있기 마련이라는 게 백성들 사이의 통념이었으니, 딱히 오막손이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아마 그 양반은 지금쯤 사랑채에 앉아 열심히 글 쓰고 있을 테니 점이고 천문이고 볼 여력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오늘 나온 『정론보』에 그 양반 욕하는 글이 올라왔거든.”

저의 매제 꺽정이에게 이준경과 내수사 소식 들은 이이가,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기특한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 스승 이지함은 뒤늦게야 이를 알고 제자의 앞날을 걱정했지만, 제자 성미가 그러하여 고칠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무릇 사람이 모여 산다면 공(公)과 사(私)가 나뉠 수밖에 없으니, 오로지 둘을 조화롭게 다스려야만 비로소 다툼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사유(私有)의 경계를 분명히 나누고, 그것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게끔 하는 데 있다.

가령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 물건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너의 것이기도 하다’라고 한다면, 후에 반드시 그 물건을 두고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군왕은 한없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나라에 사는 한 사람이니, 유독 공사(公私)를 분별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혹자는 말하기를, ‘나라의 모든 것이 인군(人君) 한 사람에게 있으니 어찌 사장(私藏)을 두겠느냐’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오히려 공사의 분별을 흐릴 수 있다.

나라의 국인(國人)에게 사유(私有)가 있어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면, 나라의 주인인 동시에 한 사람의 국인인 군왕 역시 그 사유에 대해 의권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일전에 「백정고」 쓰던 때부터 그럴듯하게 자호(自號, 스스로 호를 지어 붙임)하기를 율곡이라고 하고 있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이도 한참 연소한 사람이 이렇게 대놓고 면박 주다시피 글을 썼으니, 이준경은 지금쯤 이를 반박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반박한다면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를 두고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가보자꾸나.”

꺽정이가 복면을 꺼내 두 사람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다음날 우림위 별장 임거정이 임금께 긴히 아뢸 바 있다며 입시하기를 청하니, 늙은 상선 하나가 곧 소식 전해듣고 나와 맞이하였다.

무슨 일이냐 묻는 것은 그의 일도 아니거니와, 임 별장 하는 짓을 고려했을 때 아는 게 병이 될 공산이 컸다.

상선은 그 대신 꺽정이를 만나자마자 딱 한 가지를 청하였다.

“임 별장, 이 늙은이가 다른 것은 제쳐두고 딱 하나만 부탁하오. 어전에서는 제발 예를 갖추시오.”

꺽정이의 못된 버릇 – 어디까지나 궁궐 안 사람들 기준으로 – 이 하나 있으니, 바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대와 하대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나이 지긋한 여인네라면 무수리든 상궁이든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공대하고, 암만 대비전이나 중궁전의 총애 받는 나인이라도 제 눈에 연소해 보이면 내키는 대로 하대하였다.

궁중의 지엄한 법도를 흐리기만 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더 큰 문제는 임금 대할 때였다.

꺽정이 딴에는 임금에게 나름 예외를 두어,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성정도 못난 놈에게 나름대로 공대를 해주고 있었는데, 그 공대가 나이 지긋한 상선(尙膳)이나 상궁들 공대할 때와 똑같으니, 궁인들만 황송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하다못해 세조대왕이 노산군 대할 때에도 임 별장보다는 더 예를 갖추었을 것이라며 늙은 궁인들은 마치 저들이 그때를 겪었던 것처럼 몰래 흉을 보곤 하였다.

“임 별장도 궁궐 안에서 일 년 넘게 지냈으니 어깨너머로나마 보고 익힌 바 있을 것 아니오? 이제 궁을 떠날 기한도 얼마 앞으로 다가왔으니, 부디 한 번만이라도 예를 지켜주시오.”

“뭐, 임금님께서는 내가 예법을 신발짝처럼 여겨도 딱히 뭐라 말씀 아니하시더이다. 군주께서 개의치 않으시는데 신자(臣子)가 먼저 나서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않소?”

임금이 눈앞의 무뢰한에게 뭐라 말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사람이 마치 따로 있는 양, 꺽정이가 뻔뻔하게 대꾸하니, 궁중에서 쓴맛 단맛 다 본 상선조차 일순 말이 막혔다.

“그리고 우리 사이 얘기지만, 아마 임금님께서도 내가 떠나가면 나 그리워하실 게요. 이 구중궁궐에서 지존을 이리 격의 없이 대해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겠소?”

임 별장 말에 일리가 있었으므로 더욱 기가 막혔다.

근래 내관들을 가까이 두고 이런 말 저런 말 주고받으시는 주상이셨다.

그런데 그렇게 사담(私談) 나눌 때 임 별장 이야기가 나올 작시면, 그 방자한 자를 언제고 처벌하여 위엄을 보일 것이라 하면서도, 또 때로는 임 별장이 저의 앞에서 이런 소화(笑話,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저자의 상스러운 농담이지만 퍽 재밌다면서 깔깔대곤 하였다.

당장 상선 저부터도 저 상놈 같은 자 – 아니, 상놈도 아니라 실은 백정이라 하였다 – 가 임금 앞에서 떠드는 것을 보면, 분개하기에 앞서 정녕 이것이 꿈은 아닌가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다.

하물며 누가 저에게 저런 상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 줄 꿈에도 모르셨을 임금은 어떠시겠는가. 태어난 이래 무례를 겪어본 적 없는 귀한 사람으로서는 무례함에 대해 분노하기도 어려웠다.

특히나 지난번 원자의 일 이후로는 더욱 미운 정이 깊어졌음을 상선은 알고 있었다. 어떤 벌을 내려야 할지 말하면서도,

‘임 별장은 머리 쓰는 것을 가장 괴롭게 여기니, 벌을 줄 때도 귀양을 보낼 게 아니라 어디 작은 현의 현감으로 보내어 고을 사정을 매일같이 글로 적어 올리게 할 것이다.’

‘그놈은 천생 도적놈이다. 그러니 어디 섬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어 안온하게 살게끔 한다면 가만 있지 못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지 않겠는가?’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더 뭐라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대며 주상이 계시는 만춘전(萬春殿)으로 이 ㅁ별장을 데리고 갔다.

“별장 임거정 입시이옵나이다.”

그 앞에 당도하여 상선이 목소리를 내는데, 하답 돌아오기도 전 임 별장도 함께 입을 열었다.

“임금님. 안에 계시오?”

저의 청이 무참히 짓밟혔으니 상선으로서는 분통 터질 일.

“이... 미련 곰탱이가!”

“사람한테 곰이 뭐요, 곰이.”

꺽정이가 옆에서 비꼰 뒤에야 비로소 저의 속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왔음을 깨달은 상선이었다.

“흠흠. 임 별장은 들라.”

“들어가겠소.”

만춘전은 사정전에 딸린 작은 전각인데, 사정전과 달리 구들장이 놓여 있는 고로 겨울철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임금님,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원자께서도 무탈하셨기를 바라오.”

꺽정이 딴에는 상냥한 인사였다. 임금의 불편한 기색도 원자 얘기가 나오니 절로 덜해졌다.

“그래, 고맙도다. 금일은 무슨 일이 있어 이리 찾아왔는가?”

꺽정이가 군말 더 안 붙이고 본론을 꺼냈다.

“임금님. 그... 이준경 대감 말이오. 내수사를 없애고자 한다는데 알고 계셨소?”

“무어라? 임 별장 그대가 아니라 이준경 그이가?”

내수사 없애는 것처럼 왕실의 지엄한 체통 훼손하는 일은 눈앞의 임가놈이 도맡아 하리라 여기고 있던 임금이 깜짝 놀라 물었다.

“내수사라 하면 내탕(內帑)의 긴요한 수용(需用)을 모두 관할하는 곳이다. 이를 폐한다니 이 무슨 말인가?”

“뭐, 말씀하신 대로요. 여기 그 근거도 있소.”

아무리 총명함이 범인(凡人)과 같은 임금이라지만, 그래도 필적은 능히 분간할 수 있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임 별장은 그가 겪어본바 남을 곧이곧대로 죽이거나 때려눕힐지언정 모함할 성품은 아니었는데, 그런 이가 이준경의 집에서 나온 것이라며 범상치 않은 내용의 장부를 꺼내보이니, 과연 의심이 아니 들 수 없었다.

이준경의 상소를 일찍이 받아보고서, 그의 부왕 대에 그랬던 것처럼 내수사의 일 중 한두 가지만 접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임금이었다.

그런데 숫제 내수사를 혁파하고 그 재정으로 딴짓을 하려 마음을 먹고 있었다니, 어찌 노엽지 않겠는가?

이준경이 결코 저의 편만 들어줄 사람은 아니라고 직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너무한다 싶었다. 절로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이 참이라면, 무엄하기 이를 데 없어 거의 역심(逆心)에 가깝다 해야 할 것이다. 임 별장 그대가 손수 이준경의 집에서 구해온 장부라 하지 않았는가? 내 당장 금부(禁府)에 명하여...”

“에이, 진정하시오, 임금님. 역적은 임금님의 작고한 외숙이나 나 같은 놈이 역적이고. 이준경 그 사람은 조금 벽창호라 그렇지 나라 걱정하는 선비는 맞소.”

어전에서 스스로 역적이라 칭한다든가, 제멋대로 임금 하교를 끊어먹는다든가 하는 정도에는 슬프게도 어느새 익숙해지고야 만 임금이었다.

임금은 딴지를 거는 대신 곧장 되물었다.

“그렇다면 내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대가 장부를 가져왔으니 그대가 먼저 말해보라.”

“남이 뭔가 흉험한 계책 세우고 있는 것을 알아채었을 때 상책은 무엇이겠소?”

“미리 그 흉계를 알았으니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그건 하책이오. 임금님, 들어보시오. 상책은 상대가 저의 속셈을 실행하기 전에 내가 더 흉악한 계책을 세워서 먼저 때리는 것이오.”

“그런 계책이 그대에게 있는가?”

“나는 어리석고 학문이 짧아서, 이준경 대감을 반박할 논변을 내놓을 수 없소. 하지만 능히 그리할 수 있는 선비는 몇 명 알고 있소. 사사로이 내 사형 되시는 이지함 그이가 특히나 여기에 밝은데, 한 번 만나보시려오? 궁으로 부르셔도 좋고, 아니면 내관을 보내서 글만 받아와도 좋고.”

낯을 가리는 임금은 후자를 택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중한 것은, 내수사가 하루아침에 혁파될 수도 있다는 증좌를 보여 임금의 마음을 한바탕 뒤흔든 다음, 빠져나갈 길을 눈앞에 보여주는 데 있었다.

이재(理財)라는 두 글자를 여전히 경계하는 선비들이나, 조세 두 글자를 여전히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설득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대대로 내려온 막대한 재산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한 사람. 구중궁궐의 외로운 젊은이 하나를 달콤한 말로 꼬시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저를 따르는 서생들과 함께, 내수사를 혁파하면 능히 전국의 공물을 감면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중신들에게 증명해 보일 심산이었던 이준경은, 바로 그것이 적혀 있는 장부가 하룻밤 사이 사라졌기에 그 행방을 찾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나마 내수사 혁파와 공납에 관한 것만 골라서 가져갔으니 망정이지 – 아마 도둑은 진서를 읽을 줄 아는 자인 듯했다 - 그가 계획하고 있는 다른 경장에 관한 서책들까지 도둑맞았더라면 훨씬 머리가 아팠을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임 당수가 이준경과 그의 문객들이 열심히 찾던 그 서책과 장부를 돌려주러 오자마자 – 스스로 둘러대기로는, ‘오다 주웠다’라고 하였다 – 이준경은 마당으로 달려나와 따져물었다.

“임 당수, 자네가 뭔가 손을 쓴 것 아닌가?”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냐며 시치미를 뗄 만큼 매정하지는 않은 꺽정이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임금님께서 그리 성단(聖斷) 내리셨는데, 다른 것이라면 모를까 어쨌든 내수사는 군왕의 재산 아니오? 그 처분도 스스로 알아서 하실 일이라 보오.”

내수사를 경제사(經濟司)로 재편하고, 나라 안에서 백성의 이익을 침탈하는 대신 나라 밖에서 이익을 취하여 나라 안으로 가져오겠노라 하는 전교가 조정은 물론이요 도성 전역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냥 내수사를 혁파한다면 모를까, 그 자리에 엉뚱한 새 관서를 만들겠노라 공언하였으니 머리가 멍해지고도 남았다.

“그러나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일세! 어찌...”

“임금님께서 어디 허투루 처결을 내리셨겠소? 믿을 만한 사람이 정말로 이득을 낼 수 있다 장담하셨으니 그리하셨겠지.”

나라 밖이라 함은 곧 북변 여진과 남쪽 왜인들이요, 이득을 취하여 가져온다 함은 곧 그들과의 교역에 힘쓴다는 뜻이었다.

하필 공교롭게도 그런 일에 나서려는 이들이 민주당이라 하여 같은 도성 안에 있으니, 경제사가 곧 내수사 재산을 처분하여 마련케 될 밑천의 적지 않은 부분은 민주당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만큼 이득의 일부도 경제사 쪽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밑천 댄 만큼 이득 나눠갖는 것 정도야 장사의 상도(常道) 아니겠는가.

어찌 되었든 갑자기 배를 만들 재정이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그 출처가 하늘 같은 임금이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주당과 꺽정이 쪽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그 내수사 재정으로 거창한 일을 이루어보고자 꾀하고 있던 이준경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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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사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궁내부가 설치될 때까지 조선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조직으로 기능하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성계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몽골 제국의 몰락 과정에서 변경인 함경도 일대를 기반으로 삼아 성장한 호족 출신이었고, 조선 건국 이전부터 그의 집안은 함경도 본궁(本宮)과 개성 일대에 상당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정종과 태종, 그리고 세종 역시 건국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상당한 재산을 획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았고, 다양한 이익사업을 통해 재산을 증식해 나갔습니다. 세조대에 이르러 그러한 이해관계자들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이처럼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여러 국왕의 사유재산을 현직 국왕의 것으로 통합하여 관리하게 된 것이 내수사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내수사는 성종 시기 사림이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장리(長利, 현물(주로 곡식) 고리대금업) 등 수익사업을 벌이는 것이 문제시되었습니다. 국왕이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판은 성종~연산군 연간을 넘어 중종대에 이르게 되면, 애초에 왕에게 사사로운 재물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보다 과격한 내수사 혁파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림 세력의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고, 또한 중종의 반정 근거 중 하나가 연산군의 사치행각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중종은 내수사의 장리 사업만을 폐지하는 형태로 타협안을 제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조 연간에 다시 사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원 역사의 이이를 비롯해 내수사의 철폐를 외치는 이들은 계속 나타났지요.

특히 장리사업이 금지된 뒤로 내수사는 산림이나 해안가의 어장, 염전 등을 사유화한 뒤 사용료를 받는(절수折受) 새로운 사업에 주력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이 부분이 조정 중신들 및 산림 세력의 주요 비판 지점이 되었습니다. 지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뿐 아니라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예상되던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대신, 차라리 내수사를 폐지하고 그 재정으로 왕실에 필요한 특산품을 직접 구매하도록 하자는 송시열의 내수사 혁파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러나 중종 시기의 내수사 논쟁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내수사 혁파 논쟁 역시 지나친 백성 수탈만 자제할 뿐 내수사의 수익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는 식으로 일단락되곤 하였습니다 (윤인숙(2013), “조선전기 내수사 폐지 논쟁과 군주의 위상.” <대동문화연구> 84; 오항녕(2020), “조선시대 공유지를 둘러싼 논쟁: 내수사의 산림천택 전유와 그 비판.”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2020.12.8.)).

‘경제사’는 원 역사에는 이이가 선조에게 제안하였던 개혁 담당 기구의 명칭입니다. 이를 비롯하여 이이는 선조 연간 초기에 많은 경장책을 제안한 바 있지만, 선조의 눈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고, 또 이이 본인도 선조 초기 정권의 실세였던 이준경과 대립각을 세우는 바람에 – 이이 자신의 지나치게 뚜렷한 개성으로 첫인상부터 ‘말아먹은’ 것이 컸습니다 – 잘 받아들여지지 못했지요.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것은 제자백가 중 명가(名家)의 대표적인 인물인 공손룡의 유명한 논변입니다. ‘백마’란 ‘하얗다’라는 색상의 개념과 ‘말’이라는 형태의 개념이 복합된 것이므로 ‘말’과는 다르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다만 백마비마설은 당대에도 지나친 말장난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전국시대 말에는 아무런 쓸모없는 공허한 논설의 대표격처럼 받아들여지면서 후대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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