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 (2)
한양 도성에 비축된 술이 결코 적지 않을 텐데, 오늘밤이 지나면 그 양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었다.
대전(大殿)에서 물러난 중신들과 그 중신들에게 소식 들은 다른 신료들, 그리고 또 소문 전해들은 서생들이 대개 술로써 그 비분강개한 마음을 달랬기 때문이었다.
생김새가 괴이하여 오랑캐인지 도깨비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요승이 어전에 나아가, 간악한 말로써 나라의 위엄을 손상하고 사문(斯文)의 고아함을 더럽혔건만, 딱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몇몇은 소문을 듣자마자 떨쳐 일어나, 그가 머문다는 민주당 모주 이지함의 집에 달려가기도 하였으나, 그 집을 임 당수와 흑의군이 지키고 있으니 그저 의분만 토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통상 이렇게 황망한 일이 벌어진다면, 국법으로써 다스리기를 청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는 것이 상도였다. 그러나 이미 이 나라의 옳고 그름이 크게 흐뜨려졌으니 이 또한 소용이 없을 터였다.
예컨대 그들 중 누군가가 금궁 앞에 엎드려,
“요설(妖說)과 이단의 폐해가 이와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남만 요승을 참(斬)하여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소서!”
했다가는,
“공자님 말씀에 저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하였으니, 남에게 뭔가를 시키는 자는 반드시 저부터 그 일 당하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그러니 우선 네놈 목부터 치고 시작하자꾸나.”
하며 임 당수가 등 뒤에서 나타나 목덜미를 잡을 것이다.
또한,
“민주당 임거정의 기군망상이 마침내 이에 이르렀습니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용단을 내리시어 명명백백한 법도가 동국(東國)에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음을 밝히시옵소서!”
라고 하자니, 임금 업신여기기로는 이미 해동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운 임 당수가 굳이 성상을 속이고자 하는 뜻으로 그런 괴승을 데려올 이유가 하등 없었으므로 이 또한 언어도단이었다.
굳이 다른 명분으로 억지를 부린다면야 부릴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저쪽에서 더한 억지를 부릴 테니 – 지난 신해년(1551) 한 해 동안 도성의 선비들은 차고 넘치게 겪은 일이었다 – 결국 끙끙대며 술잔이나 기울일 뿐.
허나 그 품행과 자질이 다른 선비들은, 술잔 기울이는 대신 앞날을 고민하였다.
물론 앞날 대신 엉뚱한 것을 고민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퇴계, 남명, 안에들 계시오? 지금...”
문 발칵 열고 안뜰로 들어온 이준경이, 애타게 두 사람을 찾다가 바로 그런 엉뚱한 광경과 마주쳤다.
“그 동그라미 밟지 마시오!”
마당의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던 조식이 버럭 호통을 쳤다. (졸지에 시라쿠사 사람 아르키메데스의 유명한 말을 조선에서 재연하게 된 것은 덤이었다.) 그 옆에서 뒷짐 지고 그림을 골똘히 쳐다보던 이황도 그제야 생각에서 빠져나온 듯 고개를 들었다.
“아니, 시국이 시국인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이준경 딴에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이 엄중한 때를 만나 학문을 하는 이들이 어찌 대처할지를 두고 논의코자 찾아왔거늘, 지금 도성에서 가장 정학의 이치를 깊게 궁구한 두 사람이 아이들처럼 마당에서 모래장난이나 하고 있으니.
“하비에르가 말한 천문의 이치가 얼마나 사리에 맞는지 살펴보고 있었다오. 이것이야말로 중한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조식이 나뭇가지 내려놓고 일어나며 말했다. 쭈그리고 앉은 것이 오래되다 보니, 허리가 제법 아팠다.
“하비에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그 도깨비 같은 자의 이름이 그러하다오. 임 당수가 번번이 사람 이름 똑바로 부르라고 눈치를 주다 보니 입에 붙었소.”
요사한 괴승의 소문을 듣자마자, 조식은 당장 칼과 방울을 차고서 이지함의 집으로 달려갔고, 이황은 힘센 사내종 여럿을 데리고 서운관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조식은 ‘하비에르’의 해명을 듣고 왔으며, 이황은 서운관에서 역상(曆象)을 계산할 때 쓰는 온갖 서책을 빌려왔다.
두 사람이 미리 논의하지 않고 성미대로 움직였는데 절로 손발이 맞았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서운관 관원들은 이황의 말 듣자마자 순순히 따랐건만, 조식의 운은 그만하지 못했으니, 이지함의 집 대문을 넘자마자 임 당수와 마주쳤던 것이다.
“사람 이름이 어떻게 ‘프란치스코하비에르’란 말이오?”
오랑캐 승려의 이름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엄답아불해(알탄 칸)’처럼 호칭의 일종이리라 여겼던 이준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의 이름이 그렇다는데 어찌하겠소. 심지어 저들은 성이 명(名)의 뒤에 온다 하더이다.”
“그러니까 후란씨가 아니라 하비씨가 되겠소.”
이황이 말을 덧붙였다.
그 후랑인지 호랑인지 하는 이름이 낯선 것은 꺽정이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옆에서 하도 명희와 이이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다 보니 어느새 귀에 익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선비들 면박 주는 데 재미를 붙였으니, 조식이 사람 이름을 가지고 버벅이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그런 이름을 어찌 진서로 옮기겠냐며 투덜대는 조식에게는 ‘내 알 바요?’ 하는 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그 당혹스러움은 이준경의 몫이었다.
“이 사람이 하비에르 그자를 붙잡고 천지 형상의 이설(異說)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듣고 왔으니, 이제 그 말이 맞는가 전적(典籍) 상고하며 검증해보고 있었소.”
그제야 마당의 모래장난이 실은 모래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당에 큼직하니 원 두 개가 그려져 있는데, 한 원은 가운데께 가로로 선 하나가 그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그 속에 더 작은 원을 품고 있었다.
한쪽은 이준경에게도 익숙한 혼천(渾天)의 설이요, 다른 하나는 요승이 말한 지구의 설일 테다.
“내 들어보니, 적어도 하비에르 그자는 지구의 설이 참이라고 분명하게 믿고 있더이다. 결코 요설로써 민심을 혼란케 한다던가 하는 간악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오.”
“그자는 불도(佛道)의 이단을 숭상한다 하지 않았소? 불경에도 대개 천지의 형상과 운수에 대해 허황된 논설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지구설이 그저 양이가 숭상하는 불도 이단의 교설(敎說)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자신의 말이 맞기를 바라고 있는 이준경이였지만, 조식은 남이 듣고 싶은 말 들려주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허나 하비에르가 말하기로, 지구설은 그들이 따르는 도가 흥하기 전부터 있었다 하더이다. 개중에는 만주(晩周, 춘추전국시대) 때에 일어난 논변도 있다 하고, 반면 그들의 도는 고작해야 원시(元始, 서기 1~5년) 연간에 일어났다 하더이다.”
“추연(鄒衍, 음양가 사상가)의 구주설(九州說)도 오래된 것은 매한가지지만 모두가 허황되다 여기지 않소?”
“그야 모르는 일 아니오? 이제 보니 맞는 말일 수도 있지.”
“동고 대감께서 양해해 주시오. 오죽하면 이 사람 아호가 남명일까.”
그제야 이황이 끼어들었다.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에게도 취할 바가 있다 여기면서, 그 호조차 『장자』에서 따온 사람이 조식이었다.
“좌우지간, 이렇게 모래에 그림 그려가며 헤아린 바에 따르면, 이쪽이 맞다고 저 하비에르를 설득시키기는 난망할 것이외다.”
천조의 역법을 따르는 조선이지만, 대국의 경조(京兆, 수도)로부터 조선은 멀리 떨어져있는 바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도수(度數)가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초부터 이를 궁구하여 추보(推步, 추산하고 예보함)하는 정교한 법도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혼천의 설에 따른 것이니, 바로 하비에르의 말이 틀리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서, 나이도 쉰을 넘긴 두 사람이 진지한 모래장난을 시작하였는데, 암만 따져봐도 그렇지 않았다.
“정말로 옳고 그른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아국의 의주와 제주 정도의 거리로도 부족함이 있을 것이요, 족히 수천 리는 더 남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외다. 그래야만 이 땅이 평평한지, 아니면 굽어 있는지를 살필 수 있을 것이오.”
허나 이준경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어찌하여 저 허황된 말의 사리를 분별하려 하고 계시오이까? 괴력난신은 모름지기 존이불론(存而不論, 있는 그대로 두고 더 거론하지 않음)이오. 허황된 논설을 두고 허황되다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實)의 일과 멀기 때문이외다.”
임거정이야, 저 바다에 무슨 보화가 있노라, 그리하여 그 경제사를 끌어와 보화를 가져오겠노라 마음대로 떠들 수 있겠지만, 국정을 살펴야 하는 이준경은 그리할 수 없었다.
임거정은 당장 자신이 나서서 발의한 대동법조차, 그 제안만 던져두고 저는 덜렁 바다 건너 머나먼 일본국으로 떠나가지 않았던가? (그나마 평안도관찰사 시절 연이 있던 서 별감은 적잖이 도움을 주었으므로 천만다행이었다.)
“당장 경장의 세 절목을 마무리짓기도 벅찬 판에, 어찌하여 이러한 것을 두고 시일을 허비한다는 말이오? 왜국 너머 남쪽 바다에 무엇이 있든, 그것이 지금 우리 사직과 사림,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에게 무슨 쓰임이 있겠소?”
중국은 설령 사해의 가운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엄연한 가운데 나라요, 이 땅의 모양이 네모나든 둥글든 그런 중국 옆에 조선이 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 너머에는 몽고와 일본, 그리고 궁벽한 북쪽 여진의 땅이 있고, 먼 바다에 유구와 섬라, 안남, 조와가 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든, 굳이 알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만약 저 바다 건너의 먼 땅에 –그곳이 정녕 실재한다면 -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귀물이 있거나, 반대로 사람을 해치는 간악함이 있다면, 삼대(三代)의 문헌에 반드시 이를 논하였을 것이요, 이정(二程)·주자와 같은 뛰어난 선현도 또한 해외(海外)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을 것이다.
천조에서 비로소 해외 오랑캐가 천하에서 중하게 되었으니 대비하라 한 것도 아니요, 저들 애우로파 나라들이 교린(交隣)을 청하고자 사절을 보내온 것도 아니다. 그저 임거정 한 사람이 일본으로 나아가, 기이한 형상의 배 한 척과 사람 몇몇을 데려온 것이 전부.
이것이 어찌하여 선비의 마음쓸 바가 되겠는가?
“동고 대감, 당장 나랏일에 바쁜 그대와 소소한 일에 마음 기울이는 것이 전부인 우리의 사정이 어찌 같다 하겠소? 다만 쓰임이 없다는 것을 쉬이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외다. 마땅히 사리를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어, 취할 것은 취하고 반대로 저들에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하지 않겠소?
물론 저 하비에르가 섣불리 성현의 말씀을 그릇되었다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그릇됨이 어째서 그릇되었는가를 우리가 드러내어 알려줄 수 없다면 이 또한 문헌(文獻) 갖추고 학문 닦는 나라로서 부끄러운 일일 것이오.”
놀랍게도, 이준경의 말에 반박한 것은 조식이 아닌 이황이었다.
“아마 대감께서는 『정론보』에 저 하비에르와 그의 기이한 지구설에 대해 어찌 글을 실을지, 그것을 논의코자 오셨을 듯하오. 만일 이 사람이 지금껏 초야에 묻혀, 오로지 경서만 스스로 궁구하고 있었다면 대감의 말씀에 하등 틀린 바 없다 하였을 것이외다.
허나 그 이후로 생각이 바뀌어, 마땅히 해야 할 바와 그렇지 않은 바에 대해 마음을 굳혔으니, 선비로서 뜻을 함부로 굽힐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그제야 마루 위 쌓인 서책들이 모두 역법과 산학에 대한 것은 아님을 깨닫는 이준경이었다.
이준경도 그 제목을 아는 서책과 생소한 서책들 가운데, 유독 얇지만 자주 읽은 흔적 역력한 책 한 권이 있으니, 그 넉 자 제목은 『화담자의』였다.
“대감의 말씀대로 양이의 설이 정녕 허황된 것일 수도 있고, 그 참과 거짓이 군자가 마음쓰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것일 수도 있소이다. 허나 이를 스스로 살피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면, 어찌 가장 호학(好學)하시던 분(공자)을 추앙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겠지요.”
“허...”
이준경은 절로 말문이 막혔다.
한편으로는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 반론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황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마음도 일어나 나름의 불길을 지피고 있었다.
결국 아무런 반박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이준경은 빈손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하여도 저 이단의 설을 반박할 수도, 옳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은 이황과 조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날 밤, 그들과 비슷한 원인으로 영 다른 고민을 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으므로, 다음에 나갈 『정론보』의 내용은 어쨌든 꽉꽉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천문학이라 하면, 파리대 시절 자유인의 일곱 학문(septem artes liberales) 중 하나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빠져 있던 하비에르는, 파리대도 이탈리아의 몇몇 대학을 본받아 고리타분한 ‘자유학문’ 대신 이른바 인문학(studia humanitatis) 과정을 개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 있었다.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언어인 라틴어의 문법을 배우는 것이야 마땅한 일이지만, 수사학이나 음악, 천문학 등을 그가 살면서 얼마나 쓸 일이 있겠는가? 차라리 역사와 철학을 더 배우는 것이 더 유익할 터.
돈 리와 도냐 리가 에우로파의 역사를 깊게 캐물을 때만 하더라도 하비에르는 그 옛날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은근히 뿌듯해하고 있었다.
허나 어찌 신의 섭리를 인간이 헤아릴까. 불과 며칠 사이에 그때 조금만 더 집중해서 천문학 강의를 들었으면 좋았으리라 후회하게 되었다.
칼을 차고 온 귀족, 아니 ‘선비’를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흰 옷 입은 무리들이 달려들었다. 개중에는 하비에르를 신기한 짐승처럼 그저 구경만 하는 자도 있고, 나름 진지하게 이것저것 캐묻는 자도 있었으나, 대개는 노기등등한 채로 나타나곤 했다.
그가 틀렸다고 말한 ‘주-자’라는 학자와 ‘주-례’라는 책이 대략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뒤늦게야 깨달았지만,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그의 머릿속 천문학을 총동원하여 저들에게 설명하려 애써볼 수밖에.
하지만 그의 배움이 어설픈지, 아니면 저쪽에서 아예 듣기를 원하지 않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가운데서 번역하는 핀투 선장과 이이 – 주변에 너무 ‘리’가 많다 보니, 하비에르도 그냥 그들이 스스로 부르는 대로 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 가 시원찮은 것인지, 벽을 보고 말한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 하여, 비로소 이 땅이 둥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 어찌 그러한 얕은 식견으로 주자를 논박하려 하였는가! 그대와 같은 자들이 있어 이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다!”
선비 하나가 삿대질하며 하비에르를 꾸짖었다. 통역 없이도 대충 뜻이 통할 정도였다. 하비에르가 애써 한숨을 참으려던 차, 묵직한 손바닥이 선비의 어깨에 닿았다.
이처럼 비난이 과한 자들은 임꺽정(궁궐에서의 난장판 이후로 ‘돈 림’이라고 나름 존중하던 마음은 사라졌다)이 나서서 ‘열린 마음을 가지게 도와주’었으니 그의 신변에 위험이 닥치는 일만은 모면하였다. 허나 그의 곁을 지켜주는 자가 앞서 궁궐에서의 난장판에 원인을 제공한 자와 동일한 인물이었으므로 딱히 고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는 임자야말로 별 알맹이 없이 무례하다고 비난만 하고 있지 않소? 여기 하비에르 대사(大師)께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구만. 할 말 없으면 그냥 가시오.”
“이...! 이 나라의 모든 선비들이 저 자의 망언을 잊지 않을...!”
“욕하려면 조선말 아는 사람한테나 욕하시오. 싫으면 왜말을 배워오든가. 제 발로 걸어서 나가시겠소? 아니면 내가 모셔다 드릴까?”
결국 선비는 제 발로 걸어가기를 택했다. 솟을대문이 닫히자마자 멀찌감치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소리(인정)가 울려왔다.
“우리 대사(大師)가 오늘 하루 고생이 많으셨소. 이제부터 오는 놈들은 모두 나라의 법을 어긴 작자들이니 내가 손을 봐주겠소이다.”
꺽정이가 나름 농담 섞어 말했는데, 그것을 고맙게 여길 턱 없는 하비에르는 최대한 노여움 눌러담으며 물었다.
“이러시려고 저를 구해오셨습니까?”
“꼭 그런 건 아니오. 실은 어르신께서 뒤에 총통이며 온갖 귀물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신다 들어서 구해왔지.”
정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헌데 이왕이면 좋은 일 많이 하는 쪽이 좋지 않겠소? 다 중생들 계도하는 일이라 생각하시오.”
“꺽정아, 저분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불문(佛門)과는 분명히 다르다.”
구경차 왔다가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나갈 때를 놓친 병해가 옆에서 삐죽 토를 달았다.
“에이, 극락과 지옥 얘기하는 것 보면 똑같던데. 병해 사형이야말로 더 알아보시오. 재밌는 얘기가 많더이다. 우리 율곡 선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으니 아마 물어보면 모두 대답해줄 것이오.”
이이 얘기하기 무섭게 집주인 이지함과 꺽정이네 안주인 명희, 그리고 병해와 마찬가지로 구경 한 번 왔다가 집에 꼼짝없이 갇혔던 서림까지 우르르 들어왔다.
불청객의 행렬이 마침내 멎었으니, 이제 수습할 방도를 구할 때였다.
“꺽정아, 그때 우리가 세운 계책은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더냐?”
이지함이 대뜸 물었다.
“심지어 이 사람은 무슨 계책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비에르도 십분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고매하신 선비님네들 정수리에 정한수 한 사발 부은 격이 되었으니, 절반은 성사된 셈이오. 자, 어르신, 이제 이 땅이 둥글다는 것을 증험할 방법을 말해주시기만 하면 된다오. 그러면 오늘 하루종일 대사 어르신 괴롭힌 저런 고루한 작자들도 정신을 차릴 테니.”
“지금까지 내내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들이 설복되는 것처럼 보이더이까? 무슨 배의 모양새 사라지고 돛대만 보인다느니, 하지에 나뭇가지 꽂아서 그림자 길이 잰다느니 하는 소리 말고, 정말 번듯하고 그럴듯한 수법은 없겠소?”
“휴우... 그 외에도 근거는 많습니다. 월식이 있을 때 달에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던가...”
이 자리 모인 사람 중 서운관 관원이 있거나 역법 통달한 이가 있었다면, 올해 칠월 보름날 달이 식기(食旣, 개기월식)할 것임을 알았겠지만, 천문에 있어서는 모두가 저 밤하늘처럼 깜깜하였으므로 난망한 일이었다.
그 외에도 하비에르가 자신의 머릿속을 긁어가며, 이런저런 방법들을 꺼냈는데, 모두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
“저쪽에서 못 믿겠다고 억지를 부리면 죄다 속수무책이겠구나.”
배의 돛대 운운하는 것은 바다안개 탓을 하면 그만이요, 월식의 원리를 두고 다투기에는 하비에르의 천문학 지식이 변변치 않았다. 옛날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대로 막대기의 그림자 길이 재는 것도, 당장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소. 이거 곤란하게 되었소.”
부산포 바닷가에서 두 사람이 공모한 계책은, 이렇게 부글부글 공론(公論) 끓어오르게 한 다음 – 물론 하비에르가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사림의 이목 끄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 하비에르로 하여금 당당하게 자신의 말이 옳음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계책 논하는데 하비에르와 깊은 대화 나누고 있던 이이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그러게 말이오.”
딱히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고 얘기가 뱅뱅 돌던 중, 고된 하루 보낸 하비에르의 입에서 마침내 푸념이 튀어나왔다.
“분명 배에서 듣기로는 이 나라의 귀족들은 지적이고 무엇보다 배움을 좋아한다 들었습니다. 제가 함께 지내본 두 분의 성품 또한 이를 증명하는 듯했고요. 허나 나머지 사람들이 이리도 잘못된 믿음을 쉬이 고치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면 쇳덩이가 흙보다도 더 땅과 친하다는 건 말이 되고? 솔직히 인정합시다. 우리네 선비님들 하는 말 중에도 허황된 게 있다면, 대사님네 나라 사람들도 헛소리깨나 하고 살겠지.”
땅이 정말 둥글다면 반대편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안 떨어지고 배기느냐 물었을 때, ‘그것은 토(土)의 성질 띈 것들이 그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땅의 중심을 향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던 꺽정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체 높은 사람 전반에 대해 감정 좋지 않은 꺽정이였으니, 선비들뿐 아니라 하비에르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핀투 그놈은 딱 보아도 도둑놈 인상이라 나름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하비에르의 말이라 한들 어찌 모두 올바르게만 받아들일까.
“임 당수의 말이 거칠기는 하지만 또 틀리지도 않습니다. 당장 신부님께서도. 저 달의 토끼 모양이 구름과 같은 기상(氣象)의 현상이 아니라 정말로 달에 진 얼룩이라고 하면 믿지 않으실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는 논리를 통해 충분히 고찰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 따지면 저 선비님네들도 마찬가지일 것 아니요? 결국 그 삼십 년 전에 땅을 한 바퀴 돌았다는 그 뱃사람들 없었더라면 대사 어르신 말씀도 미덥잖기는 매한가지였을 게요.”
그렇게 옳거니 그르니 하고 있는데, 그간 말 없던 이지함이 갑자기 혼잣말로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내가 스스로 천하의 사리를 궁구하니 비로소 천하 가운데 내가 있음이라...”
“엇, 그건 스승님 글에 나오던 구절 아니오?”
누구보다 먼저 꺽정이 귀가 바로 번뜩하였다.
“방법이 있다. 저들이 천원지방과 혼천의 설이 틀렸음을 깨닫고 고루함을 벗어나도록 할 방책이. 대저 경서를 강(講)할 때에도 그 문의(文意)와 주해된 바만을 따라간다면 용렬함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격물치지라는 말 또한 나온 것이지.”
경서(經書)라 하면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 ‘그 책’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하비에르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설령 우리가 그 자리에서 땅이 둥글다 증험했다 한들 사론(士論, 선비들 간의 공론)은 이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그들이 스스로 원하여 스스로 의심하고 또 깨우쳐야만 비로소 그들도 생각을 고치게 될 터.”
“아, 그렇지요!”
이이가 또 저 홀로 알아듣고 기뻐하였다.
“제주도를 오가는 정도로는 지구설이 옳음을 보일 수 없다... 그렇다면 더 멀리 가면 될 일 아니더냐? 옛날에는 불가하였을 일이지만, 이제는 저기 강화 앞바다에 여기 핀투 선장의 큰 배가 있지 않으니.”
“분명 저도 듣기로, 말라가에서 서남쪽으로 더 나아가면 있는 암본도(인도네시아 암본 섬) 일대에서는 해가 정수리 위에 뜨다 못해 계절에 따라 북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그만한 증좌를 눈으로 본다면 아무리 완고한 이라도 뜻을 바꾸고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 말씀은 좋습니다만... 바로 그 바닷길을 우리 임 장군께서 이번에 척지신 왕직이 지키고 있는데...”
“어차피 한 번은 뚫어야 할 바닷길 아니었습니까? 화포를 넉넉히 싣고 강병(强兵)을 낸다면 불가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이이가 스승 대신 핀투에게 답해주었다.
“주자와 서양 승려 중 누가 옳은가, 스스로 살피고 헤아리고자 하는 뜻있는 선비는 보시라!”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보』에 실린 글이었다.
“서양의 이설(異說)을 두고 사론(士論)이 크게 놀랐는데, 이는 단순한 이단의 허황된 말이 아니라 그 증좌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반드시 넓게 살핀 뒤에야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불랑기국의 큰 배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하여, 적도(赤道)에 이를 것이다. 그러면서 불랑기국이 바다 너머에 세운 여러 성을 경유할 것이니, 저들의 서책과 문물 또한 이로써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하기를 원하는 자, 이 항해에 재물을 대어 천하의 도리 밝히는 일 거들고자 하는 자, 그 외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자는 모두 한양 민주당 당청에 글을 보낼지어다!”
마땅히 처음 하비에르를 맞이했을 때 나왔어야 했을 물음, 예컨대 엄연히 천조의 번병인 조선이 마음대로 국외인을 받아들이고 해외(海外)와 교통(交通)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질문은, 도저히 나올 줄을 몰랐다.
북경이라면 모를까, 한양에서 그것을 함부로 문제 삼았다가는 어떤 험한 말이 돌아올지 – 말만 돌아오면 다행이었다 – 모를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유럽의 군주들 중 신대륙의 금은과 동인도 제도의 향료를 탐내,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건조하고 능력 있는 뱃사람들을 후원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해동 조선국은 세상 이치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큰 배를 띄우게 되었으니, 호학(好學)하는 나라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