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 (3)
『공보』야 민주당에서 내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정론보』에서도 진지하게 서승(西僧)의 지구설을 논하게 되니 나라의 사론(士論)이 둘로 나뉘었다.
오랑캐 도깨비의 해괴한 말을 군자가 마음 둘 값어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내치기는커녕,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그 소이(所以)를 밝히자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정학(正學)의 아름다운 문헌과 선진(先進)을 모욕하는 이의 말을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
“승려가 편벽하고 괴이한 설을 내놓는 것이 하루이틀의 일인가? 이를 제때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정학이 정학이라 부름을 받기에 마땅할 것이다. 더구나 저들 서역에는 아직 성현의 말씀이 닿지 않았다 하니, 하비씨가 그저 무지하여 잘못된 말을 하였을 뿐 어찌 그의 간악함이 있었겠는가?”
양보(兩報)의 논조가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가운데, 군현의 사족들 사이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판세가 확실히 기울었다.
“오도(吾道, 유교)는 수·사(洙泗) 두 강의 사이에서 일어날 때부터 배우고 또 가르치기를 말하였다. 우리가 스스로 궁구하지 않고 그저 선현이 이렇게 말하였다며 외우기만 하고 그친다면, 어찌 떳떳하게 불씨(佛氏)의 말을 논박할 수 있겠는가?”
“『주례』는 삼대(三代)의 아름다움을 담은 책이요, 주문공(朱文公, 주자)께서는 실로 큰 현인이시다. 이제 서역에서 온 자들이 그 편린만을 트집 잡아,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 하는데, 저들이 그 땅에 돌아가게 된다면 반드시 이 일을 꾸미고 부풀릴 것이다.
이를 내버려두고서 어찌 아국을 예의와 문헌의 나라라 칭하겠는가?”
공자 가라사대, 덕은 덕으로 갚되 원한은 올바름으로 갚으라(以直報怨) 하였다.
또한 사람의 심리는 한 대 얻어맞으면 저도 한 대 때리고 싶어지기 마련이었다.
두 가지 이유 중 무엇이 선비들로 하여금 저 먼 바다에 나아가 혼천설이 옳음을 증명하겠노라 들고 일어나게 하였는지는, 선비들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물론 모든 선비들이 그렇게 부평초처럼 세론(世論) 흐름에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아니어서, 저의 주관 확고한 이들은 자신의 생각으로써 옳고 그름을 가리곤 했다.
이황의 스승 이언적도 그 중 하나였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그의 벗 이준경과 비슷하였다.
헌데, 자신의 제자 이황은 이단의 학설을 진지하게 다룰 뿐 아니라 숫제 공부하기까지 한다니, 어찌 노엽지 않겠는가.
이황은 성품이 물과 같아, 앞을 막으면 부드럽게 옆길로 새곤 하였다. 그러므로 스승의 뜻을 받들어 한 발 물러나면서, 동시에 조식에게 저 귀면만이(鬼面蠻夷, 귀신 얼굴을 한 오랑캐) 대하는 일을 도맡아달라 청하였다.
그 ‘일임’이 곧 자신 대신 하비에르의 티끌 하나까지 모두 탈탈 털어내라는 뜻임을, 굳이 이황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아는 조식이었다.
성품도, 생각도 다르지만 오직 학문 좋아하는 마음으로 뭉친 두 사람이 이토록 화합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는데, 두 배의 열의로 달려드는 조식을 상대하게 된 하비에르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식이 나타나 소위 구리수도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불도와는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물었을 때 하비에르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아아!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인도하심이 아닌가! 비록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결국 뜻이 통하는구나!”
자신이 아직 어떤 세속의 보화를 약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그들이 숭상하는 학자를 실수로 모독하였다 하였기에, 당분간 선교는 선비들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하리라 여기고 있던 하비에르였다.
때마침 자신과 함께 자폰으로 향했던 토레스 형제(Cosme de Torres)가, 자폰의 신도들 중 이곳의 말을 아는 자들 여럿을 선별하여 보내준 덕에 이제 통역도 쉬워져 슬슬 선교의 전략을 세워보려 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 이렇게 나라의 으뜸가는 학자들 중 하나가, 그것도 얼마 전 칼을 차고 나타나 그를 심문하다시피 했던 사람이 다시 나타나 교리를 물은 것이다.
“잘 오셨습니다! 실로 잘 오셨습니다!”
“하하. 이 사람이야말로 엊그제는 다소 말이 과격하였소이다.”
그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에서 하비에르는 우선 조식이 묻는 대로 교리를 답해주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질문이 훅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대가 말하는 제우씨(帝宇氏, Deus)는 이레 만에 하늘과 땅, 금수초목과 사람을 만들고, 심지어 그중 하루는 쉬었다 하니, 그 권능을 알 수 있소.”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런데 횡거(橫渠, 장재張載) 선생이 논하기를, 태허(太虛)를 가득 채운 기(氣)가 있어 청탁(淸濁)이 나뉘니, 맑고 가벼운 것은 양(陽)이요 탁하고 무거운 것은 음(陰)이라, 비로소 그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만물이 만들어진다 하였소.
이 사람이 보기에도 만물에 음양이 나뉘어 때로는 어울리고 때로는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법도요. 당장 그대가 온 서양 애우로파에도 천지와 일월, 남녀와 암수의 분별은 그대로일 것 아니오? 그런데 제우씨는 무한한 권능을 지니면서도 정작 사람은 단번에 음양을 만들지 못하여, 아담(雅談)을 만들고 한참 뒤에야 그 갈비뼈를 뽑아 배필을 만들었다 하니, 이는 어찌 된 일이오?”
“예?”
물론 모든 질문이 이렇게 당황스러운 것만은 아니었고, 반드시 조식만 질문을 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고받는 말 가운데 이해가 쌓이고, 이들 ‘동방 이교도’들의 철학 역시 그리 쉽게 여겨서는 안 되리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그 가운데에서 엿보이는 그들의 철학, 개중에서도 통치에 대한 철학은 하비에르 역시 한 사람의 배우는 이로써 더 캐묻고 싶은 충동이 절로 들게 하였다.
허나 하비에르가 무언가 다른 얘기를 꺼내려 하면, 조식은 곧장 다시 성경으로 이야기를 끌고 오면서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토를 달았다.
“...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로 귀국의 문물에 대하여...”
“어허, 아직 끝나지 않았소. 극락과 지옥의 설을 말하면서 연옥이라는 것을 함께 말하지 않았소? 그것의 근거는 무엇이오?”
“...”
하필 연옥에 대한 물음이 들어오자, 악명 높은 마르틴 루터를 연상한 하비에르는 섬뜩함마저 느꼈다.
이러한 문답이 계속 이어지니, 하비에르가 자신의 자리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불경한 생각을 품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분명 정의에 따르면 자신은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인데, 어째서 선교가 아니라 재판정에 선 느낌이라는 말인가?
“하하, 차나 들면서 잠시 쉬십시다. 내 얼마 전에 병해 대사의 말씀을 듣고 입에 대기 시작하였는데, 그 향이 좋을 뿐더러 잠을 쫓기도 하니 배우는 사람에게 이만한 보배가 없소.
하비에르 그대도 장차 이 사람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서생을 상대해야 할 터인즉, 정양(靜養)에 힘쓰기 바라오.”
“‘수없이 많은 서생’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야, 이번 항해에 함께하기 어려운 이들, 즉 나이가 많거나, 대 이을 사람이 아직 없거나 하는 이들이, 지구설을 논박하는 대신 그대의 도를 살피고 캐묻고자 하기 때문이지.
그대는 그대의 도를 알리기 위해 수만 리 뱃길을 거쳐 우리 해동까지 온 것 아니오? 그러니 그대에게도 참 잘 되었다 하겠소.”
분명 잘 된 것은 잘 된 것인데, 어째서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말인가.
“마침 근래 북변 야인들이 교역에 힘쓰게 되어, 산삼을 구하기가 쉬워졌소. 기가 영 허하다면 내 구하여 드리리다.”
하비에르가 그처럼 필멸의 육신과 정신의 한계로 인하여 허덕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식이 가볍게 말했다.
하비에르 신부는 이 일을 위하여 어떤 시련과 고난도 각오하고 왔으니, 이를 악물고 허벅지 꼬집어가며 복음과 교리를 전파하는 데 힘쓸 뿐이었다.
반면 부와 명성이라는, 조선은 물론이요 이 세상 어디서든 통할 목적을 가지고 동양으로 온 핀투 선장은 똑같이 바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결코 웃음이 입에서 가시지 않았다.
“흐흐흐. 저 도자기 보십시오, 서 별감님.”
“오늘만 하여도 몇 개가 당도하였는지 모르겠소이다. 저것을 모두 바꾸어 그대들 나라의 귀물을 들여온다면... 흐흐!”
핀투가 웃으니 서림도 덩달아 웃었다. 이제 저 귀한 도자기들은 궤짝에 짚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 뒤, 상 투메 호에 실릴 것이다.
방해하는 사람도, 이상한 생각이나 행동으로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도 곁에 없이, 오로지 실리를 아는 사람끼리만 모여서 돈 벌 궁리를 하니 참으로 기쁘지 않은가. 서림과 핀투 두 사람이 공히 품는 생각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화폐라 하면 쌀이나 포목, 그리고 약간의 은을 쓸 뿐이니, 모두 핀투에게는 별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차, 인삼과 더불어 도자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이 항해에 어떻게든 기여하여 집안의 이름을 빛내고자 하는 사족들은 대개 청자나 백자 한둘씩은 소장하고 있었으므로, 후원하는 뜻으로, 또는 뱃삯 갈음하여 이렇게 도자기를 보내오곤 하였다.
“아, 여기 계셨구려. 서 별감, 지금 바쁜 일이 없다면 여기 핀투 선장은 내가 데려가겠소.”
화기애애함을 단번에 깨뜨리는 이지함이었다.
“아니, 선생님 나라 사람들은 밤에 잠을 안 잡니까?”
핀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잠이라는 것은 오래 잘 수록 게을러지는 법이오. 해시(亥時, 21~23시)에 잠들어 축시(丑時, 1~3시)에 일어나면 족한데, 어찌 귀한 나날을 허비하겠소?”
이지함은 이 유례 없는 대항해에 참여하고자 전국에서 몰려든 선비들 중 나이는 불혹을 넘지 않고, 대 이을 사람이 있으며, 몸이 건장한 자들을 골라 뽑았다. (당연히 그중 한 사람은 이지함 자신이었다.)
계획은 이러하였다. 혼천설과 지구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방법은, 결국 땅 대신 하늘을 살피는 데 있었다. 허황된 책인 『회남자』에 이르기를, 머나먼 남쪽 도광(都廣)에 건목(建木)이라는 큰 나무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해가 남중할 때 그림자가 지지 않으며 소리를 쳐도 메아리가 울리지 않는다 하였다.
핀투가 말하기를, 실제로 암본 섬은 적도 가까운 곳이라 해가 정수리 위에 뜬다 하였는데 – 다만 바람이 잘 불지 않아 항해가 어려울 뿐, 메아리는 멀쩡히 울린다 하였다 – 향료가 많이 나므로 그들 나라 사람들이 자주 가서 교역한다 했다.
혼천설이 옳다면, 그곳에서도 북신(北辰, 북극성)은 비록 다소간 고도가 낮아질지언정 멀쩡하게 보이기는 할 것이다. 반면 지구설에 따르면 북신은 수면 아래에 머물며 떠오르지 않고, 이십팔수 별자리도 대부분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남쪽 하늘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별자리가 보일 터.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선비들 모두가 하늘을 보고 별의 위치와 이름을 알 수 있어야 했으며, 둘째로 대체 그들이 가는 곳이 어디이며 방위와 위치는 어찌 알 수 있는지를 배워야만 했다.
그리하여 논상원을 통째로 비운 뒤, 밤에는 서운관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곳에서 가르침을 받고, 낮에는 핀투와 그의 항해사들을 데려와 또 강의를 듣고 있었다.
“오늘은 지남철(나침반)로 바다 위에서 방위뿐 아니라 나아간 거리를 재는 방도를 논하기로 하지 않았소? 모두가 기다리고 있소이다.”
“저, 그...”
영락없이 끌려갈 지경에 처한 핀투를 서림이 나서서 지켜주었다.
“모주님, 저들이 귀하게 여기는 바가 우리와 다르고, 또 만에 하나 풍랑을 만나 그릇이 깨지는 일이 있으면 아니 될 것이므로, 말라가에 가져갈 교역의 물목은 반드시 이 핀투 선장과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밤에 살펴도 되지 않소?”
오늘은 좀 쉬고 싶었던 핀투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다행히 핑계거리가 아니라 정말로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할 법한 거리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임 당수를 만나 긴히 논해야 할 바가 있습니다. 왕직과 그의 해적 무리에 관한 매우 중한 일입니다.”
“그것 마침 잘 되었군. 임 당수는 지금 여기 와 있다오. 이 사람 도와서 배에 태울 사람과 돌려보낼 사람을 나누는 일을 맡고 있지.”
이왕이면 임 당수 찾으러 간다는 핑계로 한두 시간쯤 농땡이 부리려던 핀투의 소소한 계책은 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면 오시(午時, 11시~13시)에 돌아오겠소. 임 당수에게도 미리 얘기 전해주리다.”
“예... 고맙습니다.”
핀투가 마지못해 감사하는 말을 하였다.
비록 뜻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이지함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지금 당장 한가하게 되었으니, 그간 배우고 익힌 바를 글로 정리하기에 딱 좋은 때 아닌가. 이지함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강화 앞바다의 ‘가락대선(駕駱大船, 카락선)’을 타게 된다면 더 행복해질 것이다.)
꺽정이를 찾으러 나간 이지함은 뜻밖의 사람과 마주쳤다.
“동고 대감 아니십니까? 이곳은 무슨 일이신지요?”
이준경을 일컬어 꺽정이는 천생 벽창호라 하였는데, 일견 유연한 듯하면서도 자신의 굳은 뜻만은 결코 굽히지 않는 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나 일전 과거제 폐단 일로 한 번 이준경과 부딪힌 이지함은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엄연히 나라의 정승이요, 현량한 사람이니 – 당장 그가 이 ‘경장’을 진두지휘하니 삼 년 걸릴 것이 일 년 만에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았던가 – 사사로운 마음은 접어두고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이곳에서 젊은 선비들이 자네가 말하는 그 ‘주즙지학’을 배운다 하여 찾아와 보았네.”
“마음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지금은 핀투 선장에게 바쁜 일이 있어, 반나절 뒤에야 금일의 강(講)을 행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군. 하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어째 이준경이 정말로 핀투의 강의를 듣고자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은 자네에게 묻고자 하는 바가 있었네.”
“무엇인지요?”
“이번 일로 나라의 학풍(學風)이 바뀌게 되었네. 그대들이 남해 바다에서 무엇을 보고 오든, 결코 이전과 같이 될 수는 없을 터.”
“소생 역시 그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주자의 가르침도, 가장 허황된 것처럼 보이는 도깨비 중의 요설도, 스스로 궁리하고 검증하여야 비로소 선비의 앎이라 할 수 있게 된다면, 선진(先進)의 말씀이라 하여 반드시 참이라 여기지 않고 장구 하나, 토씨 하나 가볍게 넘기지 않게 된다면, 이 나라는 어찌 될까.
“내 일찍이 임 당수에게 이 나라는 선비의 나라요, 이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한 적이 있었네. 그런데 이제 보니, 임 당수는 나라를 훔치는 데 이어 이제 선비들까지 훔치려 하더군.”
“그것이 어찌 임 당수 한 사람의 뜻이었겠습니까?”
이지함이 당당하게 되물었다. 돌아오는 것은 이준경의 한숨.
“그리고 이제, 자네의 뜻대로 번듯한 선비들조차 주즙지학을 널리 배우게 되었고, 또 천문에도 밝아지게 되었지. 학문과 잡기의 경계를 허무는 것, 이것이 자네 당의 뜻 아니었는가? 이제 어디까지 갈 심산인가?”
“오직 올바름만이 있을 뿐, 어디로 향할지는 알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지 못하므로 배움을 구하는 것이지요.”
“올바름이라! 자네가 정학을 폐하려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는 동고 대감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소생 또한 한 사람의 선비일진대, 어찌 정학을 감히 폐한다 하겠습니까. 소생도, 임 당수 이하 민주당도 결코 정학을 무너뜨리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학문을 정학으로 만들고자 할 따름이지요. 사람이 모르는 것을 배워 아는 바를 넓히고 수양의 근간으로 삼는데 어찌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부자(夫子, 공자)께서도, 이단을 궁구한다면 해로울 뿐이라 하지 않았던가 (攻乎異端 斯害也已)?”
“그 공(攻)이 반드시 궁구한다는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범조우(范祖禹)의 주해일 뿐입니다.”
그리고 범조우의 해석은, 바로 주자가 온당하다 여겨 그의 『집주(集註)』에 싣기도 한 것이었다.
“범조우는 『주례』를 끌어와 공(攻) 자를 해석하였지. 참으로 지금의 때와 맞물리니 이를 절묘하다 해야 할 것인가, 공교롭다 해야 할 것인가.”
『주례』를 근거로 삼고, 주자의 공인을 받은 해석. 마치 천원지방 네 글자의 옳고 그름을 두고 벌어진 이 한바탕 소란과 같지 않은가.
“엇, 어르신은 또 여기 왠 일이시오?”
느닷없이 나타난 꺽정이가 대화를 끊었다.
“별 일 아닐세. 그저 자네의 벗 수산 선생과 경전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을 뿐. 나는 이만 물러가 보겠네.”
하고서 미련 없이 등 돌려 사라지니, 꺽정이만 어안 벙벙하였다.
“뭔 일 있었소?”
“별 일 아니시라지 않았느냐.”
“아, 그보다 여기 이 양반 좀 말려주쇼. 나이도 적잖은 사람이 고집은 또 어째 이리 센지.”
고집 센 사람은 이준경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꺽정이가 문제의 인물을 곧 데려왔는데, 이지함과도 구면이었다.
각미사 한량 이정이 머쓱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수산 선생, 어째 신수가 훤하십니다. 실은 이 사람도 그 양선을 타 보고자, 이렇게 찾아왔는데, 임 당수는 영 꺼립디다.”
“아니, 꺼릴 만하니까 꺼리지. 우리가 남도 아니고, 형님 나이도 나이 아니오? 사부가 위험한 뱃길 나갔다가 험한 일이라도 당하면 형님 가족은 물론이고, 형님 제자인 내 안사람도 퍽 슬퍼할 테요.”
분명 이지함더러 설득해달라 이정을 끌고 왔으면서 자신이 말을 하는 꺽정이었다.
“뭐, 어차피 한량인데 봉록만 축내고 있느니 어디 도움 되는 일이나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자네 안사람에게 내가 뭐 무예를 더 가르칠 것도 아니고.
실은 엊그제 아들놈들 데리고 강화도에 그 양선(洋船) 구경을 갔다네. 헌데 셋째아들이 저 배 멋지다면서, 꼭 타고 싶다고 하더군.”
“셋째아들? 아, 그 맹랑한 녀석. 이름이 순신이라 하지 않았소?”
그 아이가 담장에 개구멍을 파서, 아내 활 쏘는 것 구경을 하려 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던 꺽정이었다. 안사람 관한 이야기라면 무엇 하나 허투루 넘겨듣지 않으니, 어찌 그 이름을 잊겠는가.
“어떻게 그건 또... 흠흠, 여하간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아비가 저 배 타고 멀리 천축 다녀올 테니, 돌아오는 대로 얘기 모두 들려주겠노라 장담을 해버렸지 뭔가.”
“그것 때문에 몇 달 걸릴지 모르는 험한 길을 다녀오겠다고? 그 선비들은 신체발부 수지부모인가, 몸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 아니었소?”
“그 말을 하고 나서 한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였네.
자네처럼 천한 백정으로 태어나, 면천을 하는 게 아니라 숫제 귀천의 분간을 무너뜨려버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자네보다야 한참 못난 나지만... 그래도 한 번 사는 사나이 인생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싶어졌다네.”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생면부지 남도 아니요, 여러모로 엮인 적 많던 사람이 이렇게 청을 하니, 은근히 정 많은 꺽정이는 거절하기가 난망하였다.
“에휴, 난 모르겠소. 사형이 어떻게 잘 말려보시오.”
“그래. 알겠다. 마침 핀투 선장이 너를 찾더라.”
“오, 그것 참 다행이오. 난 그럼 가보겠소.”
그러므로 곤란한 일은 사형에게 던져두고, 꺽정이는 홀라당 사라졌다.
핀투가 상의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러하였다.
아무리 그들의 배가 훌륭하여 먼바다를 마음대로 횡행할 수 있다지만, 식수만은 여기저기서 꾸준히 보충해야 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면서 어설프게나마 거리를 재보았더니, 마카오에 닿기 전 어디선가 한 번은 기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식수도 식수거니와,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마카오를 벗어나면 바로 히라도로 향하거나, 사정 여의치 않을 때 중간의 류큐에 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왕직 놈이 버티고 있지. 그래도 임자네 배가 퍽 큰데, 괜찮지 않겠소?”
“물론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귀한 화물, 아차차, 사람이 다치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싸우게 되면 설령 이겨도 우리 손해입니다. 소소하게 싸움이 붙는 정도는 괜찮지만, 정말로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명나라 해안을 따라 남하하면 되지 않겠는가 싶었는데, 그곳이야말로 왜구가 자주 돌아다니는 곳이라 히라도 앞바다만큼 위험하였다.
“하지만 시나, 그러니까 명국의 다른 항구는, 우리 포르투갈 배가 드나들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나라의 법이라더군요.”
“뭐, 그렇다면야 그냥 승낙 받으면 되는 것 아니오? 우리 조선이 그래도 대국이랑 사이가 좋아서 사신도 꽤 자주 오고가는데.”
핀투가 바라던 말이 나왔다. 애초에 그가 이 땅에 주목하는 이유 중 첫째가 바로 이 나라 정부와 중국 정부 사이의 ‘특별한 관계’였으니, 귀가 절로 번뜩하였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이번 한 번만 더’가 되고 나중에는 ‘관례’가 되는 것을 핀투는 자주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임 당수께서 한 번 힘을 써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느새 뽈뽈 따라온 서림이 물었다.
“모주님께 상소문 한 장 써 달라 하시겠습니까?”
“아니, 내가 쓰겠소.”
“당수님이요?”
“뭐, 언문으로 쓰면 될 일이오. 내가 신(臣) 한 글자만 임꺽정 이름 세 글자 앞에 붙여서 상소문 올리면, 언문이 아니라 그냥 새발자국만 찍어서 보내도 임금님은 좋아할 것이오.”
이제는 어전에 직접 들지 않아도 퍽 무례한 짓을 마음대로 생각해내고 또 행하려 드는 꺽정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말대로 되었으니, 임 당수의 난행을 고깝게 여기는 이들만 답답함이 더해질 뿐이었다.
허나 임금이 보기에도, 꺽정이가 언문으로 거칠게 적어서 상언한 바를 보니 참 잘 되었다 싶었다.
꺽정이 왈, 포르투갈 사람들이 남쪽 다녀온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 조선국이 왕직을 토벌할 것이라 말을 덧붙인다면 대국도 좋아라 하면서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 했는데, 여기에 임금이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덧붙인 것이다.
“원자가 무사히 장성하여 곧 세자 책봉을 주청하게 될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때까지 종계변무(宗系辨誣)의 대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본디 지난해에 사신을 보낼 때 이를 다시 주청케 하려 하였다. 그러나 황해도의 난리가 도성에 미쳐 마침내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는 임 당수 그대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왕직은 실로 천하의 대적이니, 천조 강남의 근심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번병으로서 먼저 나아가 그들을 친다 하면, 어찌 황상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시겠는가? 무릇 사람의 마음은, 먼저 받는 바가 있을 때 더욱 너그러워지는 법.”
그리하여 북경의 예부에, 『대명회전』의 중수를 청하는 글이 또 한 차례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 뒤에 매우 엉뚱한 부록이 붙게 되었다.
그 내용인즉, 장차 조선이 왕직을 토벌할 것인데, 그에 필요한 화포와 기타 등등을 구할 수 있도록 불랑기 배가 천조의 앞바다를 오갈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 하는 것이었다.
지난 경술년(1550)의 변 이후로 여전히 흉흉하던 명 조정이 이 생경한 내용의 글로 인하여 또 한바탕 시끄러워졌으니, 황제의 나라와 제후의 나라가 소란스러움을 함께하는 사대(事大) 법도가 이와 같았다.
--- *** ---
지난 화에 언급된 마테오 리치와 아담 샬의 경우처럼, 예수회는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선교를 진행하는 방침을 택함으로써 동방 선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루아침에 정해진 것이 아니었으며, 가장 먼저 아시아로 나아간 하비에르의 경우에는 낯선 언어부터 시작해 수많은 장애를 겪으며 직접 요령을 익혀야만 했지요.
하비에르는 당장 기독교적 유일신을 표현하는 용어를 번역하는 데서부터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일본에서 그 교세가 컸던 진언종 불교의 표현을 차용하여, 다이니치(大日, 비로자나불)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진언종 교단과 다이묘로부터 사이비 불교라는 오해를 사는 사태가 발생한 바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크게 데인 하비에르는 라틴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데우스(Deus)’라는 외래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작중에서는 그 아픈 기억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요. 이후 하비에르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현지에 적응한 마테오 리치와 아담 샬 등은, 천주(天主)나 상제(上帝)라는 표현을 사용/차용하였고, 이는 중국과 조선에서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지함이 언급하는 선비의 모범적인 일과는, 19세기 중후반의 선비 윤최식이 집필한 『일용지결(日用指訣)』을 참고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모범적인 선비의 일과는 해시(亥時, 21~23시)에 끝나고 다음날 축시(丑時, 1~3시) 첫닭이 울 때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론상 가장 밤이 긴 겨울이더라도 수면 시간은 6시간을 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는 평균 수면시간이 OECD 최하위를 달리는 현대 한국인보다도 약 1~2시간가량 짧습니다 (전지원(2017), “시간균형 관점에서 본 한국인의 잠: 다국적시간연구(MTUS) 자료를 활용한 생애주기별 수면시간 국제비교연구.” <통계연구> 22(2)).
조선 중기 최대의 외교적 문제라 할 수 있던 종계변무 사건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시작은 명태조 주원장이 후대에 남긴 교훈을 정리한 『황명조훈(皇明祖訓)』이었는데, 여기서 주원장은 절대로 명나라가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되는 나라를 명시하면서 그 첫 번째로 조선을 거론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동북의 조선국’이라고 하면 될 것을 거기에 주석을 달아 ‘권신 이인임의 아들인 이성계가 왕씨의 임금 네 명을 시해하였다’ - 심지어 ‘이인임’조차 오자를 내어 ‘이인인(李仁人)’으로 적었습니다 – 라고 명시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인임은 이성계의 아버지는커녕 정적이었고, 이성계가 죽인 왕씨 임금의 수는 ‘불과’ 세 명이었으며, 무엇보다 정당한 천명의 이양이어야 할 것을 ‘시해’라고 표현하였으므로.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어버렸지요. 그런데 하필 『황명조훈』 서문에서 주원장이 그 내용을 ‘한 글자도 고치지 말라’고 적시하면서 이를 개정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태종 연간에 이를 인지한 조선 조정은 즉시 영락제에게 직고하여 이 문구를 수정하라는 조칙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백 년 뒤, 어째서인지 명의 제도와 법규를 집대성한 『대명회전(大明會典)』에 황명조훈이 들어갈 때는 영락제의 조칙이 무시되었고, 이를 인지한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조선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되었지요.
하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명에는 암군인 가정제와 악명 높은 간신 엄숭이라는 조합이 갖추어진 상태였습니다. 가정제와 엄숭은 둘 다 장수하면서 명나라를 열심히 망가뜨렸고, 조선이 개정을 청하고, 이번에는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실제로는 개정되지 않았음을 뒤늦게야 조선이 발견하는 답답한 일이 두 차례나 반복되었습니다.
이후 선조 연간 초에 이르러서야 『대명회전』 중수본에 조선이 요청한 수정사항을 반영했다는 확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황제의 최종검토만 받으면 발간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때 명의 황제는 30년 동안의 태업으로 악명 높은 만력제였습니다. 만력제의 가차없는 태업에는 예외가 없었고, 『대명회전』 중수본은 완성된 상태로 황제의 검토만을 기다리다가 1589년에야 전질이 발간되게 됩니다. (이를 『만력회전』이라고도 합니다.) 이로써 비로소 조선 왕실을 수십 년, 길게 보면 약 180년 간 괴롭힌 종계변무의 일은 마무리되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