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83화 (83/259)

27. 금적금왕 (2)

조선왕이 밝힌 도적 토벌의 뜻에 대한 일본 측의 반응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보다 정확히는, 반응이 아예 없었으므로 정리하고 말고 할 것조차 없었다.

오에이의 외구((應永の外寇, 세종대 대마도 정벌) 때만 하더라도, 규슈와 주고쿠의 영주들은 그 옛날 원구(元寇,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공)의 난리를 떠올리며 두려워하였다.

허나 지금은 난세. 바다 건너의 조선 외에도 두려워할 것이 차고 넘쳤으니, 다이묘는 인접한 다른 다이묘 또는 자신의 가신들을 두려워하고, 백성은 가까이 있는 무사들을 두려워하였다.

소위 일본국왕,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저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조선의 국서에 답장을 보내고 싶어하였으나, (이론상) 그의 가신의 가신인 미요시 나가요시(三好長慶)에게 쫓겨났다가 겨우 교토로 복귀한 차였기에 그럴 경황이 없었다.

가까운 규슈 안에서만 하더라도, 오우치 씨의 공백을 두고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오우치 그늘 아래에 있던 보다 작은 세력들은 새로운 연줄을 두고 저들끼리, 또 저들 안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편, 상황 곤란한 것은 왜구의 수령 왕직을 토벌하겠노라며 당당하게 국서까지 보낸 대조선국도 마찬가지였다.

의기는 참으로 드높았으나, 바다는 너무나 광활하고 배는 적었으며 눈앞은 막막하였다.

성절사와 함께 돌아온 칙서에서는 이르기를, 천조의 충성스러운 번병으로서 간악한 도적 왕직을 토멸하라 하였다. 그 위엄을 빌어 일본국왕에게 향하는 국서도 간만에 참으로 위풍당당하게 써서 보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예부의 자문이 들어와 있었으므로 그 속뜻을 이제 어지간한 사대부들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왜구를 토벌하기 전까지는 바닷길 열어주는 것도, 종계를 변무해주는 것도 불가하다는 뜻.

이것이 어찌 상국(上國)이 할 바란 말인가? 말로 내놓지는 못해도 은근한 불만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조선의 반발을 예상한 – 엄숭보다 조금만 덜 어리석으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였던 – 서계가 은밀히 여기저기 손을 써서, 왜구 토벌의 비용으로 삼으라며 평소 사여하던 물목 외에 은량을 적잖이 보태주기는 했다.

그러나 조식처럼 성정 비뚤어진 사람은, 은으로 군사를 부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이마저도 삐딱하게 보곤 하였다.

그러나 불만은 불만이요 칙명은 칙명이다. 더구나 왕직의 기세가 이미 심상치 않았으므로, 왜구와의 한판 싸움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임 당수 말씀마따나, 왜구가 쳐들어올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정벌하는 것이 상책이라 하겠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일을 도모하면 되겠소? 우선 이 계책을 발의한 임 당수의 뜻을 듣고자 하오.”

병조판서 이윤경이 중추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설득한 뒤 임꺽정을 찾아와 물었다. 그의 생각에도 언제 어디로 쳐들어올 지 모르는 적을 기다리느니, 먼저 쳐 없애는 것이 마땅하였다.

허나 조선 수군이 먼바다로 나가는 것은 세종조 기해동정(대마도 정벌) 이후 처음. 여간 큰일이 아니었으므로, 임꺽정이 미리 마련해둔 꾀가 있는가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나오는 답은 이러하였다.

“그건 모르오. 차차 준비해야지.”

너무나 뻔뻔하게 나오는 말에 이윤경은 기가 막혔다.

“뭐 그리 걱정을 하시오? 우리 당은 조정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오. 아직 한두 달은 족히 남았는데, 오늘내일 중으로 계획 마련하여 밀어붙이면 그만이오.”

그 대충 만들어 때우는 계책에 번번히 당해왔던 이윤경이었으므로 차마 이제 와서 임꺽정을 꾸짖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밖에서 여인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아, 왔나 보구려.”

꺽정이네 새집은 바로 장모님 옆집이었는데, 새집들이 하자마자 꺽정이가 힘 좀 써서 아예 담장을 무너뜨렸다. 임 당수는 데릴사위 노릇도 퍽 괴이쩍게 한다고 도성에 그 소문이 파다하였다.

잠깐 열린 문밖으로 담장의 잔해가 보여, 이윤경도 그 소문이 사실임을 능히 알 수 있었다. 허나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에 비하면 덜 괴이쩍을 터.

오랑캐 뱃사람 핀투, 그 통변이라며 어느새 자연스럽게 들어와 앉아 있는 이씨 부인, 그리고 임 당수까지.

허나 이윤경이야 만감 교차하건 말건 꺽정이는 저의 할 말을 하였다.

“왕직의 본거지를 칠 거요. 임자가 좀 거들어주어야겠소.”

지금 조선에 있는 사람 중 왕직의 소굴이 어딨는지를 알고, 또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아는 자는 핀투 하나뿐이었다.

“조선말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핀투 선장이 딱 끊어 말했다.

“에이, 어디서 그런 말만 배워서는. 그런 새가슴으로 어떻게 수만 리 바닷길을 오가쇼?”

“아무튼 왕직과 싸우는 것은 임 장군께서 알아서 하십쇼. 저는 제 배를 건사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은자를 주겠소.”

“왕직이 괜히 바다의 왕을 자칭하는 게 아닙니다. 그자를 피해서 바닷길 오가는 것이 차라리 더 쉬울 것입니다.”

“은자를 많이 주겠소.”

“왕직의 무리 대부분은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일본인들이지만, 그와 아래의 두령들이 직접 거느리는 자들은 또 다릅니다. 조선의 전선만큼 크고, 그보다 곱절로 날렵한 복선(福船)을 쓰는데, 아무리 화포가 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은자에 비단까지 얹어서 주겠소.”

“더구나 왕직 본인은 고토에서 가장 큰 후쿠에(福江) 섬의 항구에 작은 성과 같은 저택을 짓고 주로 거기 머물지만, 그가 직접 거느리는 해적들은 대부분 후쿠에 북쪽의 자잘한 섬 사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포구에서 지냅니다.

설령 후쿠에 섬이 함락되더라도 그들까지 모두 잡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함부로 그 미로 같은 수역에 들어갔다가는 오히려 기습을 당하기 십상이지요.”

“그 비단은 대국 황제가 내린 것이라오.”

튕길 때마다 보상이 커지니, 핀투도 어느새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가만 듣던 이윤경은 임 당수가 무슨 은과 비단을 말하는가 갸우뚱하다가, 황상이 거론되니 그제야 이번에 사여받은 은과 비단을 말하는 것임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임 당수가 왕직 잡는 데 써야 하니 내놓으라 하면 그대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실태였다.

“임 장군, 제발 저 좀 유혹하지 마십시오. 상 투메 호는 훌륭한 배지만, 저들 소굴에 혼자 들어갔다가 나올 수는 없단 말입니다!”

“누가 혼자 보낸댔소? 병판 어르신, 지금 정걸 그 사람이 그러모은 판옥선이 여덟 척인가, 그만큼 된다고 하지 않았소?”

“더 욕심 부리지 말고 열흘 안으로 마치라 하였으니, 지금쯤이면 그리 되었을 걸세. 삼도 수영의 선소(船所)에서 불철주야 일을 하고 있으니, 며칠 내로 세 척이 더해질 것이고.”

이윤경이 담담하게 말했는데, 명희가 그 말을 옮겨주자 핀투는 펄쩍 뛰었다.

“조선의 배를 쓴다고요? 그러면 더욱 불가합니다! 후쿠에에 닿기도 전에 모조리 수장당할 겁니다!”

“비록 아국이 군무에 한동안 게을러 여러 폐정이 벌어졌지만, 이제는 다시 제대로 준비하고 있으니 저들 왜적이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일세.”

지난날 황해도에서 패전한 이후로 이윤경이 뼈저리게 배운 것 중 하나는, 바로 병기 중 으뜸이 화포라는 것이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냐만, 만약 관군이 처음부터 총통을 들고 왔더라면 산성에 발목이 잡히는 일은 없었을 터.

그 교훈을 아우 이준경에게도 알려주었으니, 지금쯤이면 각지 수영의 총통은 꽤 쓸만하게 정비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핀투는 그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 얘기가 아닙니다, 군무경(병조판서) 각하! 조선의 뱃사람들은 고작해야 해안 가까이를 오가는 것이 전부 아닙니까? 그러니 조선의 배가 어디로 올지 저들은 이미 훤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기습만 당할 텐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윤경이 대꾸할 바를 찾지 못하여 머뭇거리는 사이, 이번에는 꺽정이가 말을 툭 꺼냈다.

“임자 제자들을 너무 깔보는 것 아니오? 그래봬도 나름 이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인데.”

“예?”

“계절 바뀌는 동안 고생해가며 가르치지 않았소? 내 사형을 비롯해서 수많은 서생들이 임자의 항해하는 비법을 배웠는데, 먼바다를 못 오갈 것은 또 무어람.”

핀투와 이윤경은 동시에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되겠습니까?”

그 ‘선비’들에게 시달리면서 그들의 고집과 자존심을 익히 알게 되었던 핀투가 물었다.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지. 오늘은 날이 흐려서, 별 볼 일도 없을 테니 논상원에 모이라고 말 전하면 다들 모일 것이오.”

그로부터 한 시진 뒤, 논상원에 모인 선비 스물이 모두 꺽정이의 제안에 동의하였으므로, 이윤경도, 핀투도 더는 반론을 내놓기 어려워졌다.

“뭔 생각으로 여기 함께 하겠다 하셨소? 솔직히 나는 한 절반은 안 하겠다고 내뺄 줄 알았는데. 내 사형이야 여기 조선이 아니라 저기 포르투갈인가 카스티야인가 하는 나라에 태어났어야 하는 천생 뱃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서생들은 의외였소.”

호남 사림의 좌장 김인후의 추천을 받아 이 일에 합류하게 된 기대승(奇大升)에게 꺽정이가 대뜸 물었다.

그러나 기대승은 바로 답을 하지 않았으니, 멀리 딴 곳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장 나리! 깃발이 올라왔습니다!”

“나도 보았다! 진로 동남! 십오 래과(萊過, 레구아légua. 1레구아≒5.56km) 항해 후 집결!”

“진로를 동남으로 돌린다!”

“동남이랍신다! 격군! 우현으로 사분지일(90도) 돌아라!”

“십오 래과! 십오 래과! 노끈 다시 풀어라!”

그 말대로 척척 손발이 맞아떨어지니, 곧 배는 빙 돌고, 옆바람은 곧 뒷바람(순풍)이 되어 돛이 확 부풀어올랐다.

넘실대는 쪽빛 바다 사이로 큼직한 섬이 멀어져갔다. 이름을 울릉도라 하였던가.

암본도 가기로 한 서생들이 모두 이번 왜구 토벌에 자원한 이래로, 지난 한 달간 이들은 오로지 배 타고 먼바다 오가는 연습에만 열중하였다. 동래에서 제주까지 한 번, 함흥까지 한 번.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먼바다로 나가, 부산포에서 출항하여 울릉도까지 오게 되었다.

판옥선 건조를 맡고 있던 정걸은, 십 년은 쓸 수 있는 배가 먼바다 파도에 시달리면 고작 한두 해 버티고 끝일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수군 조련을 거들 뿐.

핀투의 배는 노 없이 돛만 있는데도 어지간하면 판옥선보다 빨랐다. 그러므로 대장선을 맡은 핀투의 상 투메 호가 미리 깃발로 집결할 곳을 정하고, 그곳에서 대기하였다가 판옥선들이 당도하면 다시 새로 갈 곳을 정하는 식으로 바다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너무 틀었다! 다시 좌현으로 3도!”

“좌현 3도!”

지남철을 들여다보며 기대승이 외치니, 곧 격군들 있는 아랫칸에서 복창하는 소리가 전해 왔다.

“노끈 풀었습니다!”

“알았다!”

핀투에게서 그들은 항해의 술기뿐 아니라, 거기에 필요한 기물의 제도도 배웠다.

개중 지남철은 조선에서도 구하려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이요, 움직이는 거리를 잴 수 있는 노끈도 족히 조선에서 만들 수 있었다. 다만 모래시계는 그 정밀하고 투명한 유리를 만들 수 있는 공인이 없었기에, 핀투의 것보다 훨씬 어설프고 불편하였다.

여하간 지금껏 조선의 뱃사람들이 접하지 못한 정교한 기물이었는데, 바닷바람 많이 겪어본 이들과 그런 기물을 그럭저럭 다루는 이들이 만나니, 고작 한 달 연습한 것치곤 항해가 제법 능숙하였다.

물론 그들이 뿌듯해할작시면 핀투는 ‘이만하면 먼바다 축에도 못 든다’라며 찬물을 끼얹곤 했지만.

여하간 기대승이 착착 지시를 내리니 뱃사람들은 모두 그에 따랐다. 핀투의 배가 멀어지는 사이, 주변의 다른 판옥선들도 비슷하게,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방향을 틀었다. 저 중 한 척에서는 이지함이 선장 노릇을 하고 있을 테다.

(본디 꺽정이도 이지함네 배를 타려고 했는데, 수영을 떠날 때 배를 잘못 타는 바람에 이 기대승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기대승은 선장 노릇을 잠시 접어두고 서생으로 돌아올 여력이 생겼다. 그가 겨우 꺽정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앞서 무어라 하셨소, 임 당수? 하필 때가 좋지 않아 미처 못 들었소이다.”

“뭔 바람이 불어 이런 일에 다들 따라왔는가, 그 까닭이 궁금하여 물었소.”

기대승은 파도 따라 몸을 좌우로 살짝 기울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무릇 선비의 의기는, 한 번 세운 뜻을 돌이키지 않는 데 있는 법이오. 이미 정학을 위하여 만 리 바닷길을 가기로 하였는데,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넘어가야 하겠지.”

“정말 그것뿐이오?”

“비록 상국이 이번에는 불인(不仁)한 처사를 하였다지만, 이럴 때야말로 우리 조선이 말한 대로 행함으로써 오히려 올바름을 드러내야 하지 않겠소? 임 당수의 사형 수산 선생을 비롯하여 우리 일동은 모두 그렇게 뜻을 모았소이다.”

그러나 꺽정이가 알기로 모든 선비들이 이러지는 않았다. 눈앞의 기대승이나 이 ‘대양서생(大洋書生)’들 중 가장 연소한 고경명(高敬命) 같은 이들은 조식 못지않은 외골수 기질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나머지 선비들 중에는 그만큼 뜻이 확고하지 않은 자도 분명 있을 터.

“물론 어쩌다 보니 떠밀려서 따라온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도 지난번 제주도 다녀온 뒤로는 마음이 굳었소이다.”

“제주도? 아. 기억이 나오. 쉽게 잊을 일은 아니었지.”

그들이 첫 항해를 마치고 제주목에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크나큰 양선을 필두로 판옥선들이 하나씩 부두에 닿으니, 읍내 사람들은 모조리 구경을 나왔다. 또한 임 당수는 물론이요, 명성이 앞으로 높아질 젊은 서생들도 있었으므로, 이들의 환심을 살 심산으로 제주목사도 부두까지 나와 거하게 환영하는 자리를 베풀었다.

그런데 막 귀찮은 인사치레 – 그리고 이제는 핀투도 익숙해진 ‘오랑캐 도깨비 구경 모임’ - 가 다 끝날 무렵, 어디선가 여인의 통곡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놀란 제주목사는 당장 아전을 보내어 곡절을 알아보라 하였는데, 아전이 곧 돌아와 고하기를 포구 옆 조그만 언덕 위에서 과부 몇몇이 서글프게 곡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답하기를 저런 훌륭하고 큼직한 배가 있었더라면 저들 남편과 아들이 풍랑에 목숨 잃지 않았으리라 여겨 저토록 슬피 운다 하였다.

“그때 다들 생각이 바뀌었소. 그런 소리에 귀를 닫는다면, 어떻게 감히 ‘백성을 위한다’ 하는 말을 선비로서 입에 담을 수 있겠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지금껏 배운 재주가 우리들에게는 그저 잡학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생업, 나아가 생 그 자체와도 직결되는 것임을 깨달았소.”

기대승이 푸른 바다 넘실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왜구를 멸하고, 장차 저 멀리 남쪽 암본도까지 다녀온다면, 수산 선생이 말하던 주즙지학을 이제 그 누구도 잡학이라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이오. 어쩌면 정말로 핀투 선장의 배 같은 훌륭한 배가 많이 만들어질 지도 모르고, 한낱 어부조차도 학당에 다니며 배 모는 법을 짜임새 있게 배울 수도 있겠지.

그때가 되면 제주도의 과부는 조금은 줄어들 것이오.”

제 손으로 과부를 많이 만들었던 꺽정이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답이었지만, 적어도 기대승이 진지하게, 그리고 사심 없이 굳은 뜻으로 이 일에 임함은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기대승에게 품은 좋은 마음은, 다음날 아침 깨지고야 말았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십오 래과, 그러니까 이백 리 좀 넘는 곳에 외딴 바위섬이 있었는데, 때마침 꺽정이가 주변 구경을 하다가 그것을 먼저 보았다.

그러고서는 자신이 저 섬을 가장 먼저 보았고, 전체 선단을 통틀어 벼슬이 당상관에 오른 사람은 자신뿐이므로 이제 저의 이름을 따서 저 섬을 ‘꺽정섬’이라 부를 것이라 하였는데, 기대승이 저 섬은 아마 옛 우산국 강역이었다는 우산도일 것이라며 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자고로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 법이요, 꺽정이는 다른 것은 몰라도 힘은 퍽 셌다.

끝내 핀투의 해도에는 ‘콕종 암(巖)’으로 저 바위섬의 이름이 기록되게 되었고, 꺽정이도 동래에 돌아오자마자 울릉도 옆의 ‘꺽정섬’까지 다녀왔다고 떠들어대었으므로, 먼 훗날 그 섬까지 사람이 자주 다니게 되었을 때는 모두가 그곳을 꺽정섬, 점잖게는 거정도(巨正島)라 부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난 뒤, 자신의 왕국과 다름없는 오봉도, 왜인들 말로는 고토에서 가장 큰 섬인 복강도(후쿠에 섬)의 저택에서 왕직은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 판옥선이라는 배는 보이지 않았다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두목.”

“두목?”

“신(臣)이 잘못하였습니다! 정해왕 전하!”

부하 녀석이 잘못을 알고 과장되게 예를 취하니, 모습이 자못 우스꽝스러웠다.

왕직의 양아들 모해봉(毛海峰)을 비롯하여 서해(徐海), 왕십육(王十六) 등, 왕직의 저택에 함께 보인 다른 두령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따라서 웃던 왕직이 갑자기 표정을 진중하게 바로잡으니, 두령들도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놈들도 아는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아마도 사라진 배들은 지금쯤 대마도에 닿았을 것이다.

소 씨는 끝내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다. 왕직의 엄포에 금방 꼬리를 내리고 그 아래로 들어오기로 한 마츠라 당과는 달랐다. 마침내 싸움이 그치고 바다에 흐른 피가 모두 퍼져나가 사라진 뒤에는 누가 잘못된 길을 택했는지가 명백히 드러나게 될 터.

“놈들의 배 중 쓸만한 것은, 그 판옥전선 뿐이다.”

왕직은 저들의 수군이 대략 어떠한지를 이미 지난번 사건을 통해 잘 눈여겨보았다. 배는 왜인의 것보다 크고, 화포를 많이 실을 수 있지만 그뿐이었다. 지난번의 마츠라 수군처럼 멍청하게 모여 있다가 화포에 맞지만 않는다면, 일대의 복잡한 지형을 마음대로 활용하면서 놈들의 둔한 배를 쉽게 농락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선이 아무리 작아도 천조의 성(省) 한둘쯤은 되니, 그 힘을 모은다면 그사이 적어도 열 척은 족히 넘게 건조했을 것이다. 수가 부족하다면 다른, 보다 둔한 배도 억지로 끌어오겠지만, 우리가 신경 쓸 것은 판옥선이 전부다.”

“놈들이 총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지요?”

“그래본들 가까이서 빠르게 급습하면 무용지물이다. 놈들이 국서까지 보내어 길을 내달라 하였으니, 그 길이 어디일지는 뻔하지 않으냐?”

조선은 바다를 건너 규슈 북쪽에 닿은 뒤, 해안을 따라 히라도로 향할 것이다. 그 외에는 조선이 올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미 마츠라 수군과 소 씨에게 속한 듯한 수상한 배 몇 척이 히라도로 향하는 바닷길 근처에서 몇 번이고 대치를 했다 하였다. 아마도 소 씨가 조선을 위해 미리 앞잡이 노릇을 하려는 것일 테다.

“흠흠. 저희 배들은 모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하.”

두령들 중 가장 근래에 저의 무리를 이끌고 왕직 아래에 들어온 서해가 말했다. 그는 공적을 세우기를 원했고, 왕직도 아직 믿을 수 없는 그를 가장 먼저 총통 아가리에 들이밀기를 원했으니 둘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그래. 다들 알겠지만, 계획은 이렇다. 조선 배들이 히라도 쪽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츠라 당이 나선다. 놈들이 화포에 맞으며 한창 당해주는 동안, 뒤에 숨어있던 서해와 왕십육의 무리가 공격에 나선다. 놈들은 조그만 왜선에만 익숙해져 있으니, 우리의 복선(福船)이 나타나면 기가 팍 죽을 것이다.”

뭍에서 쫓겨나 바다 외에는 더 갈 곳 없는, 사람 중의 허섭스레기만이 여기에 모였다. 그런 자들끼리 배 위에 모여 언제나 서로 등 뒤에 칼을 꽂으며 죽고 죽여왔으니, 온갖 더러운 수를 써가며 마침내 그 맨 위에 선 자들이 바로 이 왕직과 그 수하들이었다.

그러므로 배 위에서만 싸운다면, 수군으로 유명한 마츠라 당의 무사들일지라도 왕직의 친병(親兵)은 물론이요 각 두령이 거느린 무리들보다 못할 것이다.

그러한 자들로 노도와 같이 들이차면, 조선 놈들의 허울뿐인 수군은, 그 허울조차 잃은 채 이곳 규슈 앞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

그 뒤에는 조선을 징치한다는 명분을 당당하게 내세우면서, 마치 진짜 왕과 같은 위엄을 보이며 조선의 남쪽 해안을 유린한다.

그리고 그로써 천조조차 왕직 두 글자를 머릿속에 새기도록 만든다. 왕직의 대업은 이제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꺼낼 놈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저의 ‘아버지’가 서해와 왕십육을 내세우고 자신은 빼놓았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모해봉 – 일이 잘 되면 그도 ‘세자’가 될 것이었다 – 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저 왜추(倭酋)의 힘을 빌릴 것도 없습니다, 전하! 저대로 이 궁벽한 곳에서 저들끼리 찌그러져 살라고 하시지요. 소자를 선봉으로 내보내주시면, 반드시 공을 세우겠습니다.”

“네 뜻은 가상하나, 아니 될 일이다.”

왕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너는 이어질 조선 원정에 선봉으로 내보낼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

잠시 풀이 죽었던 모해봉의 얼굴이 도로 피었다. 그리고 다른 두령들도 절로 들떴다.

나라 하나를 상대로 하는 싸움. 그러나 왕직을 따르는 그들이 보기에 이 싸움은 그들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엄세번을 통해 그 아비 엄숭의 밀서를 받아본 왕직은, 그 이후로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부하들 또한 아첨을 위해, 또 절반은 진심으로 그를 ‘전하’라 불렀다. 두목의 헛된 꿈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눈앞에 다가왔다고 다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늘 막대한 금은을 받아가기만 했던 북경의 엄숭이, 처음으로 그에게 제대로 된 글을 보내왔다.

조선이 바다로 나와 왕직 그를 토벌하려 하니, 저들이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바다 가운데에서 몸을 사려라. 조선의 배는 왜구의 앞마당과 같은 몇몇 포구만을 지나도록 묶어두었으니, 그 쉬운 먹잇감을 노리며 조선에게 망신을 주어라.

지금 조선이 황상의 조칙이라며 떠들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뜻. 엄숭의 말과 천자의 말이 어긋났으니, 엄숭의 말을 따르면 매우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엄숭이 바라는 대로 조선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훼방 놓는 것을 넘어 숫제 그 뜻을 꺾어버린다면 엄숭도, 조정도 왕직을 다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정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들도, 일인지하 만인지상 엄숭이 왕직에게 직접 글을 전했다는 것을 보며 크게 고양되었다.

“자, 또 더 할 말 있는 놈이 있느냐?”

왕십육이 ‘왕명’을 받들어 저의 생각을 말했다.

“전하, 저는 아직도 핀투 그 오랑캐 놈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냐? 왜?”

“어쨌든 우리의 허실을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게다가 조선 배와 달리 놈의 그 허우대만 큰 배는 우리 복선만큼이나 먼바다를 잘 다니니, 어디를 거치지 않고 곧장 여기까지 쳐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왕십육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였다. 자만에 차서 그런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 그놈은 올 수 있지. 허나 조선의 다른 배도 그리할 수 있겠느냐?”

천하 어디를 가든, 뱃놈은 천하다. 이는 왕직을 포함하여 대국 출신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었다.

정 태감(정화)의 보선(寶船)은 절강과 복건의 선공(船工)과 뱃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옛 이야기다. 온 바다를 돌면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금은보화를 모아온 그 보배로운 큰배조차, 돌아온 뒤에는 여기저기 포구 근처에서 썩어가다가 마치 죽은 고래처럼 흉한 뼈대만을 남겼다.

“관노야(官老爺, 관원 나으리)들께서 천한 뱃놈들의 재주를 배울 리 없다. 그러니 저들이 핀투 그놈을 따라하려 한들, 그 일 맡을 자가 없으니 어쩔 방도가 없겠지.”

“전하의 말씀이 참으로 이치에 닿습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왕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하하!”

후쿠에 섬에서 그토록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나는 동안, 그 소리 들릴 리 없는 먼 바다, 왕직의 저택으로부터 동남동 방면으로 약 10레구아(약 55.56km) 떨어진 곳에서 핀투 선장은 마지막 판옥선 한 척까지 집결한 것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뭐라 하였소? 다들 잘 따라올 것이라고 했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습니다. 그 콧대 높은 선비들이 뱃사람들과 저렇게 죽이 잘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뭐, 나는 잘 모르겠지만, 저들이 스스로 좋아서 따라오는 것이니 나중에 천한 놈들과 어울리게 했다고 원한 품거나 하진 않겠지. 더 준비할 것 없으면 바로 들이치십시다.”

“예, 장군.”

핀투 선장은 목청 높여 외쳤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앞으로 10레구아!”

--- *** ---

1556년, 엄숭의 파벌로 널리 알려져 있던 호종헌은 절강순무로 임명된 뒤 왕직과의 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때 왕직이 요구한 것은 바로 조공과 호시(互市, 사무역이 허용되는 구역)의 개통으로, 왕으로의 책봉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중국의 제후국들이 자주 요구해왔던 사항들이었습니다.

나가사키를 제외한 모든 일본 항구에서의 대외교역이 금지되기 전까지, 고토 열도에서 얼마나 많은 국제교역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앞서 다루었던 것처럼 해적과 밀무역이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었던 가정왜구의 활동을 고려했을 때, 그 본거지 고토 열도 역시 국제항으로서 기능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1602년 마테오 리치와 이지조(李之澡)가 제작한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에는, 제주도는 한반도 남해안에, 류큐는 대만 섬 북쪽에 작게 그려져 있는 반면, 고토 열도는 동중국해 정중앙에 과장된 크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판옥선 건조에 정확히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목재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을 뿐 건조 자체에는 그리 많은 공이 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 역사의 조선의 경우, 을묘왜변 이후 맹선 위주 편제를 판옥선 위주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남도의 수영에 설치된 선소(船所)를 크게 늘렸고, 그 결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은 개전 초 원균의 자침으로 인해 손실된 수량과 이후 칠천량에서 원균이 또 날려버린 수량을 비교적 빠르게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조와는 별개로 판옥선의 유지·보수에는 많은 비용이 소모되었고, 배의 수명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이는 삼림자원 고갈이 현실적 문제로 닥친 조선 후기에는 큰 문제가 되었지요. 그러나 작중에서는 아직 요원한 이야기입니다.

작중 언급된 레구아는 ‘리그(league)’ 등 다양한 형태로 서유럽 곳곳에서 쓰였던 단위입니다. 그 시절 단위들이 다 그러하듯, 나라별로,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용법에 따라 길이가 다 제각각이었지요. 그러나 의외로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산출 방법은 거의 비슷하게 수렴했으므로, 단위 간의 환산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라고 가정했을 때, 위도가 1도 바뀔 때까지 움직이는 거리를 특정한 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단위를 정의했기 때문이지요. (현대의 해리nautical mile 또한 위도 1초에 해당하는 길이로 정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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