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90화 (90/259)

29. 하늘도 안심하지 못하리니 (1)

영락(永樂) 연간에 북경으로 황도를 옮긴 이후, 명과 조선 오가는 사신들이 오가는 길은 한결같았다.

왕직을 데리고 조선 한양을 떠난 천사(天使) 일행은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넌 뒤, 요동팔참을 따라 요양에 닿았다. 거기서 서쪽으로 향하여 산해관을 지나고, 마침내 북경에 닿게 되었다.

이황은 서책으로만 접하던 이국의 풍치에 매양 감탄하며 시문을 짓고,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산해관 동쪽의 문인들은 그때마다 감탄하며 글 받아가기를 청하였다.

문장의 기교보다 그 안에 도(道) 싣는 데 주력하는 퇴계 선생의 문장은 그들이 보기에 마치 옛 송대의 기풍이 살아있는 듯하였던 것이다.

역시 시문에 자신 있는 조문화 보기에는 졸렬한 글솜씨가 도리어 찬탄을 받는, 아주 배아픈 일이었는데, 놀랍게도 조선 땅에서는 그토록 행패를 부리던 그가 압록강 넘자마자 쥐죽은듯 조용하게 변하여, 그저 못마땅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딱히 싫은 소리도 못 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씨 나리께서 요새는 퍽 조용하시더이다.”

산해관 넘을 무렵 궁금함을 못 이긴 꺽정이가 장거정에게 물었다. 역관 출신인 사업당 예방 소속 홍순언(洪純彦) - 담력 있기로 유명하여 이 일에 추천을 받았다 -이 곧장 말을 옮겨주었다.

그러자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이미 요동에 들어왔을 때부터 왕직 그자를 도중에 해코지할 방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네. 그러니 노심초사하며 활로 찾기에만 열중할 뿐이시겠지.”

“어찌 그렇소?”

“대개 천조의 법도가 이와 같다네. 황명은 곧 하늘의 명과 같으니 한 글자라도 어길 수 없는 것이지. 안타깝게도 원방(遠方)까지는 이목이 닿지 않아 종종 그 명이 어긋나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황도의 지척에 닿았지 않은가.”

그 황명이 항상 엄숭의 손을 한 번 거쳐 나오니 문제일 뿐, 황명이 무엇보다도 위에 있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여기는 장거정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 황명을 어기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들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때만 가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주 어긴다면, 실제로는 황명이 그리 지엄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하는 질문은 장거정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명나라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생각이었다.)

“지엄한 황명으로 이르기를, 왕직을 산 채로 압송해오라 하였으니, 조선 땅에서야 왕직이 죽어도 조선 탓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네. 더구나 요동 어딘가에서 귀국 사람들을 입막음하려 한들 여의치 않게 되었지.”

왕직이 네 번째로 ‘달아났을’ 때, 조문화의 인내심이 끝에 달한 일이 있었다. 자신이 그날 밤 왕직을 죽이려 했다는 것은 쏙 빼놓고,

‘이는 필시 너희 조선의 무리가 왕직과 공모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상국의 사람을 농락할 수 있느냐!’

하고 거하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꺽정이는 한 귀로 흘리며 이렇게 대꾸하였다.

‘간밤에 보니 왕직 주변의 요동 병사가 조씨 나리 지키는 이들보다 더 많더이다. 어르신 말씀대로 그 많은 병사를 몰래 뚫고 내가 왕직을 빼돌렸다 칩시다. 그러면 그보다 적은 병사가 지키는 어느 귀인의 숙소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능사 아니겠소?’

그리고 왕직이 다섯 번째로 달아났다 돌아온 밤에는, 정말로 요동 병사 하나의 칼을 누군가 훔친 뒤 조문화 머리맡에 단단히 꽂아놓고 갔다.

그 이후로 조문화는 꺽정이 수염이 한 터럭이라도 보일락말락 하면 절로 얼굴이 창백해지며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다. 그 대신 사실상 정사(正使) 노릇을 하게 된 장거정만 신나는 일이었다.

“처음 한양에서 만났을 때는 다소간 불미스러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이국(異國)의 사람과 동행하니 귀로가 즐거웠네.”

“뭐, 우리 문사(文士) 선생들께서나 즐거우셨겠지. 우리네 아랫것들에게는 이만한 고역이 없소. 요동 병사들도 죄다 그리 말하던데, 북경 닿으면 그 친구들 은자나 넉넉히 챙겨주시오.”

꺽정이야 늘 그렇듯 시큰둥하게 받아넘겼지만, 장거정은 정말로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조문화가 임거정만 보면 질겁을 하니, 그런 조문화를 은근히 놀리며 괴롭히는 것도 즐겁고, 정사 노릇하며 목에 힘 주고 다니는 것도 즐겁고, 소국의 선비라 여겼건만 이이와 달리 아주 식견이 깊어 가히 배울 만한 점이 있는 이황과 필담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이제 경조(京兆, 수도)로부터 하루이틀 거리에 닿았으니, 그들의 고충도 이제 다 끝난 셈일세.”

그 말대로 다음날 해가 슬슬 저물 무렵에는 북경 바로 옆의 통주(通州, 現 베이징 퉁저우구)에 닿았다.

아직 경술년 달단(韃靼)의 변 때의 상흔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 근방의 민총(民總)을 따지면 여전히 이백만은 족히 넘길 것이다. 황성 안팎에 사는 구십만 명은 빼고 헤아려도 그와 같았다.

그러니 점잖은 이황은 물론이요, 그 임거정과 이이마저도 경조의 성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들 머릿속에서 가장 큰 도회라 해보아야 고작 한성이었을 테다. 이제 한성을 여러 곱절 합친 것보다도 웅장한 이 모습을 보았으니 어떻겠는가.

“허.”

“이야.”

“성벽도 높고 민가도 많구려. 여기 도둑들은 참 살맛 나겠군그래.”

마지막 반응은 옮겨주는 이 없어 장거정 귀에 닿지 않았다.

심지어 함거(檻車)에 갇힌 왕직조차도 눈앞의 모습에 진심으로 놀라 찬탄하는 것이 보였다.

“하하, 아직 우리는 황성 안에 들지 않았소이다. 내일을 위하여 놀라는 마음은 부디 아껴두시기 바라오.”

장거정의 입가에 소소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끝내 말로는 설득하지 못하고 이렇게 외물(外物)로써 위압해야 했다는 데 생각이 미쳐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황과는 어떻게 사서(四書)의 올바른 도의를 다시 알릴 것인지, 무너지는 도학의 기치를 다시 세울 길은 무엇인지 등을 두고 이야기 나누며 그 식견에 여러 차례 감탄한 바 있었다.

반면 이이와는 그때 나누었던 중화에 대한 무엄한 난설(亂說)이 잘못된 것임을 설득시키고자 누차 논쟁 벌였건만 번번이 밀려나고야 말았다.

‘천조는 하늘 아래에서 오로지 중(中)을 얻었으니 문물이 번성하고 준걸이 많소. 천조가 곧 중화인 까닭은 이미 여기서부터 증험되지 않던가?’

‘그렇다면 남도(南渡) 이후의 송(남송을 말함)은 이적(夷狄) 금나라와 더불어 중원을 반분하였으니 중화 또한 반반씩 나누어 가진 것입니까?’

그러나 장거정은 자타가 공인하기를 일개 학사로 끝날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러한 논변에 마음을 오래 두기보다 직면한 중대사에 눈길 돌리기를 택하였다.

“입성하는 대로 서 상서께 그대들을 데리고 갈 것인즉 준비들 하게.”

장거정이 목소리 낮추는 것을 보니, ‘그대들’이란 곧 민주당일 테다. 이미 동지사(冬至使) 이택(李澤)과 그 일행이 북경 어딘가에 있으니 이황은 그쪽으로 보내두고 꺽정이 저와 이이 둘이서만 움직이면 될 터.

“아, 요양에서 우리 몰래 어딘가 가셔서 글월 한 통 부치시더니, 그게 바로 그 서씨 나리께 연통 넣으신 것이었나 보구려.”

꺽정이가 마치 다들 아는 얘기인 것처럼 범상한 말투로 얘기하니 장거정도 일순 움찔하였다. 그러나 이미 한 배를 탔으니 놀라는 것은 뒤로 미루어도 될 터.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헌데 성급히 움직이면 눈에 띄지 않겠소?”

“무엇을 염려하는지는 익히 알겠네. 하지만 엄 수보는 동창(東廠, 명의 첩보기관)과 달리 간자를 풀어두지는 않으니 걱정할 것 없네.”

“그쯤 되는 이가 간자를 풀지 않는다고? 퍽 오만하구려.”

“아니, 간자를 풀 필요가 없는 것일세.”

황명은 오로지 엄숭의 손을 거쳐 나가고, 반대로 황상께 무언가 아뢰려면 반드시 엄숭을 거쳐야만 했다.

엄숭에 반대하는 자들조차 황상께 아뢰는 글에 거짓을 담을 수는 없었다. 신자(臣子)의 도리도 아니거니와, 이미 그런 수를 썼다가 엄숭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따로 간자를 둘 이유가 없었다. 그의 정적들조차, 심지어 서계조차 조정에 몸 담고 있는 한 엄숭의 이목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그러면 뭐, 그냥 몰래 밤에 들어가서 엄숭 그놈 목만 챙겨 나오면 되는 것 아니오?”

“안타깝게도 황은이 엄숭에게 두텁게 내려져 있으니, 그 총애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엄숭을 해할 수 없는 것일세. 설령 흉수(兇手)를 구하려 해도,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황명에 따라 구족(九族)이 멸문지화를 당할 터인데 누가 그런 일에 함부로 나서겠는가?”

그 말에 꺽정이도 마침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저 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신씨 부인과 그 아들딸들, 특히 명희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부사 나리네 조정은 좀 이상한 것 같소.”

“그 말은 자네의 일행 이 아무개에게도 많이 들었으니 자네까지 보탤 필요는 없네.”

하도 대명이 중화의 나라 아니라는 놀라운 논변을 많이 듣다 보니 꺽정이 말 정도는 어느새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된 장거정이었다.

조양문(朝陽門) 들어설 무렵 마침내 일행은 일군의 군사들과 마주쳤다. 조문화의 낯빛이 그나마 밝아졌다. 적어도 저 무식한 조선놈의 손에 변을 당할 일도, 왕직이 또 달아나 곤경에 처할 일도 없어진 것이다.

물론 당초 명 받은 대로 왕직 놈을 도중에 죽이는 것은 성사하지 못했으므로 곧 엄숭에게 불려가 된통 당하기는 하겠지만, 사실대로 저 임거정이 모든 일을 망쳤다 고하면 될 일이다.

엄숭 앞에서 적어도 몇 해는 충견 노릇을 해야 하겠지만, 최소한 엄숭의 손을 빌려 저 무엄한 놈과 그 일당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는 있을 것이었다.

“상서 대인을 뵙습니다. 먼길에 실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죄인 왕직은 황명이 있을 때까지 저희가 거두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한 개갑(鎧甲, 중국식 두정갑) 차려입은 교위가 나아와 읍하며 말했다.

고개 끄덕이니 곧 왕직 가둔 함거는 군사들 따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조선에서 온 그대들은 엄밀히 따지면 사신은 아니나, 이번 왕직의 일에 공을 세웠으니 반드시 상이 내릴 것이오. 마침 조선에서 온 동지사가 이곳 동평관(東平館)에 머물고 있으니, 그곳에 함께 유숙하며 황명을 기다리시오.”

조문화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왕직 놈과 저 임거정 등의 목을 함께 쳐서 내걸 수 있을까 하는 흉계 가득함을 알 리 없는 이황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그 말에 따랐다.

그리하여 꺽정이네 무리는 대국 사람들과도 헤어지고, 장거정이 붙여준 길잡이 하나만 데리고서 동평관 쪽으로 향하였다.

오는 길 여정이 썩 만만하지는 않았으므로 이황은 동평관 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이이부터 흑의군들까지 모두 연소한 사람들이었으니, 해 떨어질 무렵까지 눈 잠깐 붙인 것만으로 도로 팔팔해졌다.

“어이, 다들 들어라. 나와 여기 율곡 선생은 잠시 어딜 다녀올 터이니, 너희는 어디 가지 말고 가만들 있어라. 북경 구경은 나중에 실컷 시켜줄 테니.”

그렇게 흑의군 놈들도 딴짓 못하게 묶어두고서, 홍순언까지 데리고 슬쩍 밖으로 나오니 벌써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웬 조선 사람이 나왔는가 싶어 잘 들여다보니, 일전에 사업당 잠입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장거정이었다.

“아니, 그 옷을 아직도 가지고 계셨소?”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끼리 다니는 것이 무에 이상하겠는가. 자, 얼른 가세. 서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때는 그믐에 가까워, 해가 떨어지니 하늘은 금방 어두워졌다. 허나 저자는 여전히 오가는 사람으로 부산하고, 여기저기 켜진 등불은 마치 대낮과 같이 거리를 비추었다.

그리고 그 거리의 끝, 멀찍이 가장 밝은 곳이 하나 보였다. 들어오며 보었던 북경 성벽보다는 낮으나 오히려 더 웅장해 보이는 성루와 성문이었다.

“저기는 어디길래 저렇게 큼직하오?”

“바로 자금성 승천문(承天門, 現 천안문)일세.”

“천자 어르신께서 저기 계신 게요?”

이미 이 오랑캐 거한에게 예법 가르치기는 포기한 장거정이 한숨 푹 쉬며 말했다. 저의 임금도 저리 대한다는데, ‘어르신’이라도 붙여준 데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본디 그래야 할 것이나...”

천자가 임인년(1542)에 궁녀들에게 변을 당할 뻔한 이후로 정사에 뜻을 잃고, 별궁에 머물며 도사들만을 가까이한다는 것을 차마 저의 입으로 말할 수 없던 장거정은 말을 흐렸다.

이이와 꺽정이가 모두 눈치없이 장거정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통에, 결국 보다 못한 역관 홍순언이 슬쩍 옆구리를 찔러야만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서계의 집에 닿았다. 내각의 학사이자 육부상서 중 한 사람의 집답게 큼직하니 위엄은 있으나, 막상 안에 들어보니 방과 복도, 정원의 꾸밈새가 모두 검박하여 누추함을 겨우 면한 정도였다.

“숙대(叔大, 장거정)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먼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고맙소.”

“하하, 정말로 숙대의 말대로 예를 차리지 않는군. 차라리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서계가 너털웃음을 짓다가, 다시 진중한 얼굴로 금방 돌아왔다.

“엄 수보를 끌어내리려 한다고 들었네.”

“그렇소. 우리 당은 장차 여기저기 천하를 들쑤시며 이득 되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하는데, 엄숭 그자는 벌써부터 훼방을 많이 놓고 있소. 그 종계변무인가 하는 일도 있고.”

일찍이 엄숭이, 왕직을 토벌하면 종계의 변무를 ‘검토는 해주겠다’ 하는 식의 답장을 보낼 때부터 이것이 화근이 될 줄 짐작하고 있던 서계였다. 허나 그 화가 이리도 빨리,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닥쳐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여기 증좌 보시오. 엄숭이 왕직에게 보낸 서한이외다.”

꺽정이 눈빛 받은 이이가 소매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그 가운데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런 증좌를 그대로 가져와 나리께 보여드리고 있으니, 우리 뜻이 진지함을 족히 아실 수 있을 것이오.”

그것을 받아본 서계가 침음성을 흘렸다.

“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이것은 엄 수보의 친필이 맞네.”

일찍이 장거정으로부터 내막을 전해들은 서계였으나,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또 달랐다. 천조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데 절로 비탄이 터져나왔다.

“자, 볼 것 다 보았으니 이제 계책을 마련해 보십시다. 듣기로 어르신께서는 엄숭 아래서 때를 기다리며 칼을 갈고 계신다 들었소. 이제 이 사람과 여기 율곡이 떡 나타났으니, 일을 제대로 벌여봄 직하지 않겠소?”

그러나 서계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칼날은 예리하나 자루 밖으로 내지 못하고, 뜻은 깊으나 가슴 밖에 드러내지 못한다네.

황상께서 어심을 베풀어 엄숭을 쳐내겠노라 말씀 한 마디 하신다면 엄숭의 권세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지만, 그 한 마디를 얻기가 어려우니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뿐.”

“우리 조선국에도 어르신 같은 선비님이 한 분 계셨기 때문에 나도 잘 아는데, 권신이 스스로 망하길 기다리며 언제 때가 오나 백날 천날 기다려보았자 죽도 밥도 안 되기 마련이오.”

수천 리 떨어진 한양에 있던 이준경은 갑자기 귀가 가려워졌다.

“이보게, 임 당수!”

장거정이 언성을 약간 높였다.

“소생 이 아무개가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입 근질거리던 이이가 마침내 운을 떼었다. 연소한 사람이 똑 부러지게 예 갖추는 모습이 보기 좋아, 총명한 젊은이를 좋아하는 서계도 절로 미소를 지었다. 특히나 그 전까지 떠들던 것이 꺽정이였으므로 더욱 그렇게 보였을 테다.

(어쩌면 임거정보다 더한 놈이 저 이이일지도 모른다고 장거정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장거정 한 사람만의 생각이었다.)

“대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엄 수보가 황상께 가는 언로를 틀어잡고, 또 대국 내각의 권병(權柄)도 한손에 쥐고 있으니 일을 도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저희에게는 저희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대인께도 대인께서만 하실 수 있으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죽 놓고 다시금 헤아린다면, 반드시 길이 보일 듯합니다.”

“음, 그 말에 일리가 있네...”

서계는 한참 동안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고민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답이 나왔다.

“왕직 그자가 살아서 이곳까지 왔으니, 황상께서 만수궁 밖으로 나오셔서 친히 국문하심으로써 위엄을 드러내실 것이야. 또한 그 왕직을 붙잡는 데 큰 공을 세운 임거정 자네도 마침 여기에 있으니, 어쩌면 알현을 허하실 수도 있으시겠지. 그때 그대들이 엄 수보의 횡포를 이 서한을 바치면서 고발하면 되지 않겠는가?

엄숭의 횡포에 반감 품은 대신들은 적지 않네. 그대들이 물꼬를 튼다면, 그사이 이 사람이 여론을 모아 엄 수보를 탄핵할 수도 있을 터.”

장거정이 듣기에도 그럴듯한 말이었는데, 이미 윤원형을 겪어보았던 꺽정이는 동의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저 말에 따른다면, 자칫 민주당만 된통 손해를 보고, 서계는 일이 재미 적게 돌아가는 것을 보자마자 뒤로 쑥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혹시 그 외의 다른 복안은 없으시오?”

“다른 복안이라니?”

“내가 듣기로 대국의 정사는 오로지 황명에 따른다 하였소. 엄숭 그자가 궁궐 대문을 꽉 지키고 있다면, 그렇게 나오는 명을 제멋대로 비틀 수도 있지 않겠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대비해야 할 텐데.”

“흠... 그 말에도 또 일리가 있네. 허나 다른 방도는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왕직을 산 채로 붙잡아오고, 거기에 더불어 저 친필 서한까지 가져왔으니, 사실 이 조선국 임거정은 서계가 지금까지 엄숭 무너뜨리고자 준비해온 것보다도 더 큰 도움을 주게 된 셈이었다. 그러니 절로 너그러워져 임거정의 무례함도 이렇게 능글맞게 넘겨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그저 엄 수보의 명이 다하기만 기다리며 은인자중하고 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네.”

“내가 거느린 흑의군이 제법 정예하오. 여차하면 이들만 데리고 엄숭을 칠 수도 있을 테요. 길잡이만 붙여주신다면야.”

꺽정이의 흑의군이 비록 대국의 금의위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무위가 뛰어날 지도 모르지만, 그 수는 오십에 지나지 않고 더구나 낯선 도회에서 날뛰는 데는 한계가 명백하였다. 그래도 서계가 길잡이를 붙여준다면 어찌 엄숭을 잡을 수는 있을 터인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엄 수보 한 사람을 붙잡는 것은 그나마 쉽지만, 그 다음이 문제일 것입니다, 임 당수.”

“율곡 자네의 말이 맞네. 무엇을 꾸며도 만수궁 문턱을 넘지 못하니 난망한 일이라네.”

설령 엄숭을 죽이더라도 남은 당여들이 만수궁으로 달려가 고변하게 되면 일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사를 일으켜 단번에 엄숭과 결탁한 자들 모두를 붙잡고 황상께 직고(直告)하려 한다면, 이는 반심만 없을 뿐 반역과 별반 다르지 않은 큰일이었다.

서계의 경우, 지난 경술년 화변에서 달단 무리를 막아내면서 도성과 그 주변 무관들과 두루 안면을 튼 바 있었다. 병부상서 정여기(丁汝夔)가 화변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뒤 한동안 그 업무를 서계가 대신 맡은 바 있었기에, 아직 북경 인근 여러 군영 무관들 중에는 서계의 말을 듣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무관들 중 충심과 담력을 모두 갖춘 이들은 이미 엄숭의 손에 죽거나 쫓겨난 지 오래요, 남은 이들은 아예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그저 자기 보신에만 바쁜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책임 돌아올 일만은 극구 사양하는 용렬한 무리였으므로, 만약 서계가 모든 책임을 지겠노라며 휘하 군사를 내라 한다면, 그들은 잔말 없이 그 말에 따른 뒤 곧장 엄숭에게 가서 고변할 터였다.

“그러면 만수궁인가 하는 궁궐 문이 스스로 열리게끔 하면 되겠구려.”

그간 오가던 얘기를 가만 듣던 꺽정이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허나 그럴 일은 엄숭이 어지간히 황상의 총애를 잃거나 하지 않는 이상 있기 어려울 것이었다. 서계는 물론이요 장거정과 이이도 그저 헛소리라 생각하고 꺽정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하, 상국과 번국의 영명한 분들이 이토록 담소화락(談笑和樂) 즐기고 계시니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외다.”

“엄 수보?”

사람 좋아보이는 노인 하나가 뜰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허리는 조금 굽었으나 그 외에는 정정했고, 눈에는 생기와 활력,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탐욕이 번뜩였다.

“조 상서가 돌아오자마자 그간 있던 일을 고하였는데, 이 늙은이가 가만 생각해보니 조선에서 온 이들이 우리 서 대인의 인품을 흠모하여 사사로이 찾아뵐 수도 있겠구나 싶더이다. 그리하여 이리 찾아왔소.”

나랏일에는 황상만큼이나 무능하지만, 저의 앞가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엄숭이었다. 비상한 시국을 맞이하여 늙은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니, 이곳에 임거정과 그 무리가 있으리라 결론을 금방 내리게 되었다.

“임 당수, 과연 헌걸찬 대장부가 아닐 수 없군. 원한다면 금의위에 자네 자리 하나쯤 마련해줄 수도 있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일없소.”

뜻밖의 일에 진땀 흘리면서도 열심히 통변을 해주는 홍순언이었다.

“허어, 안타까운 일이로고. 천조를 위하여 그토록 큰 공을 세웠는데, 황상을 알현하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내 비단과 금은이라도 적절히 내려주도록 하겠네.”

“잠깐, 무어라 하시었소?”

황상을 알현하지 못한다 하는 말에 서계와 장거정, 이이도 함께 놀랐다.

“이 사람이 오늘 올린 청사(靑詞)에 황상께서 크게 감동하시었다네. 참으로 황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그리하여 장차 석 달 동안 기도를 올리시기로 하셨지. 그때까지 자네들이 이곳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저 귀를 막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노라 생떼 부리는 격이었으나, 그것을 천자가 하게 되니 아랫사람들은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보나마나 엄숭도 그것을 알고서 황상을 충동질하였을 것이다.

법도에 따라 제대로 올라온 동지사도 아니요, 그저 왕직을 호송하기 위해 북경까지 온 꺽정이 일행이 석 달 동안 기다릴 명분은 전혀 없었고, 왕직이 천자를 대신하여 적당히 포장하는 글과 은상 내린 다음 쫓아내려 한다면 버틸 방도도 없었다.

물론 천조의 위엄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요, 왕직에게 보냈던 서한은 그대로 남으니 화근 또한 남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왕직은 황명이라며 빨리 죽여버리고, 저 조선 놈들은 그 작은 나라로 쫓아낸다면, 서계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간신에게는 간신만의 살아가는 법도가 있으니, 관료로서 잔뼈 굵은 서계조차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곧 동평관에 사람을 보내, 그대들이 원하는 은상이 무엇인지 글로써 묻도록 하겠네. 그때 다시 보세나. 소호(서계)도 부디 보중하시기 바라오.”

벼락같은 엄숭의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 도저히 손 쓸 방도가 없게 되었다.

여전히 만감 교차하는 가운데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하는 서계와 다른 이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엄숭은 등을 돌려 전각 밖으로 나섰다.

정확히는, 나서려 했다.

무언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숭 등짝이 앞으로 휙 밀려났다. 아무리 정정하다지만 고작해야 칠순 노인. 몸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재수 없게도 넘어지던 중 이마가 섬돌에 꽝 닿아,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어이쿠, 이것 참 죄송하게 되었습 니다그려.”

의식을 잃기 전 들려온 마지막 한 마디는 조선말이었으므로 엄숭은 알아듣지 못했다.

“임 당수! 이것이 대체...?”

꺽정이 발차기가 너무나 빨라, 주변의 그 누구도 그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였다. 이이가 그나마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꺽정이에게 따져물었다.

“손을 쓸 수 없으면 발을 쓰면 될 일이지.”

꺽정이가 입꼬리 올리니, 서계와 장거정 모두 소름 돋는 것을 금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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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정은 유능한 재상 겸 사실상 독재자로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절 관료들이 대개 그렇듯 한 사람의 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명나라 사상계가 초기의 엄격한 관학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고, 이는 유학 경전, 그리고 그에 대하여 공인된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 탈레반’보다도 더욱 경직된 지식질서를 장거정은 바랐던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그의 독특한 전제군주정 사상인 존군론(尊君論)도 나오게 되는데, 이는 사회안정을 위해서라면 진시황이나 주원장의 공포정치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골자로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주 개인의 수양과 이를 통해 완성되는 성리학적 통치질서를 바랐던 이황의 사상은 비록 장거정 입맛에는 다소 순한맛일지언정 얼추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을 듯합니다. 실제로 장거정 본인은 주자의 『사서집주』에 대해 정통적인 해석을 다시금 강조하기 위하여 『사서직해(四書直解)』를 짓기도 했는데, 이는 당대 명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양명학에 크게 기울었던 그의 스승 서계와는 다소 대조되는 면모입니다. 여담으로 『사서직해』는 마테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되어 유럽에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장거정이 언급하기를 꺼리는 ‘임인년 일’은 바로 임인궁변(壬寅宮變)을 말합니다. 가정제는 즉위 초기부터 여색에 깊게 빠져 있었는데, 단순한 호색행각에만 그치지 않고 궁녀들을 각종 엽기적인 방법으로 학대했다고도 합니다. 결국 학대를 견디지 못한 궁녀 16명이 공모하여 가정제를 교살하려다 실패하여 능지처참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가정제는 더욱 정사를 멀리하게 되었는데, 이는 엄숭이 그토록 권력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었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역관 홍순언은 원 역사에서는 종계변무에 큰 공헌을 하여 중인 출신임에도 광국공신 이등에 책록된 바 있습니다. 그의 활약이 너무나 극적이었기에 조선 후기에 이미 숱한 야사가 창작된 바 있는데, 예컨대 그가 사행길에서 만난 기생이 나중에 상서 자리에 오르는 석성의 후처가 되었기에 그 인연 덕에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파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 근거는 희박합니다.)

서계가 언급하는 ‘플랜 B’는 원 역사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다만 엄숭이 나이 여든이 넘도록 장수하면서 권력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데서 다소 계산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결국 기다림 끝에 엄숭을 몰락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지요. 그토록 정정했던 엄숭이었지만 나이는 이기지 못해, 점차 가정제의 입맛에 맞는 청사를 짓지도 못하고, 계속 어전에서 말실수를 하게 되었는데, 서계는 이렇게 가정제의 총애가 떠난 틈을 노려 득달같은 탄핵 공세를 펼쳤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이때 엄숭은 서계에게 엄청난 연회를 베풀어주면서, 자기 일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서계 앞에 꿇어앉게 한 후 자비를 구했다고 하는데, 그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서계는 엄숭 일당에게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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