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공변된 의론 (2)
황언징이 찾아와 민주당 사람끼리 다투는 사정을 무심결에 알린 이래로 근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계절도 슬그머니 바뀌어 바람 가운데 조금씩 훈풍이 한두 가닥씩 불어오고 있었는데, 민주당 안에는 어째 냉풍만이 가득하였다.
대개 민주당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란, 사족들이 소인배라며 손가락질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손가락질의 열에 두셋쯤은 참이었다.
더구나 민주당이 지금껏 설파한 바가 저의 욕심껏 위로 올라가라는 데 있었으니, 그 뜻에 따라 자신이 다른 당원들 대신 저 콧대 높은 양반들 사이에 들어가겠노라 하는데 무어라 하기도 어려웠다.
그리하여 남들 제치고 자신이 향안에 이름 올리겠노라며 저들끼리 다투고, 물고 뜯으며, 사족들의 환심을 사려고들 하였다. 자신의 대에서야 이름만 겨우 올리겠지만, 저들 선비들과 교유하다 보면 저의 아들이나 손주 대에는 정말로 진사나 생원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미 사족들과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집안에서는 반대로 다른 향리들이 그런 자리 오르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네놈들이 정 그리 양반 노릇을 하고 싶다면, 상놈으로 있으면서 민주당에서 얻어낸 이권은 저에게 내놓으라 트집을 잡기도 하고, 반대로 상대가 트집 잡을 것을 짐짓 예상하여 역으로 먼저 시비를 걸기도 하였다.
미꾸라지 한 마리만 있어도 물이 진흙탕이 되는데, 나머지 물고기도 모래무지나 참마자인 꼴이었다.
사업당에서 각지에 글을 보내어, 우선은 임시변통으로, 정 다투고자 한다면 관헌이나 통의부 – 성의 없는 ‘통의청(通義廳)’이란 이름으로 각지 감영에도 여기저기 설치되고 있었다 – 에 호소하기 전 민주당 내에서 결착을 보라고들 엄포를 놓았으나, 큰 효험은 없었다.
“거 참, 뜻대로 되는 게 없더이다.”
꺽정이가 툴툴대었다. 꺽정이는 두리손이 이번 불화의 뒤에 있다고 얼추 짐작한 이래 그 뒷전 찾고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일은 꺽정이의 성미에 맞지 않는지라 역시 별 소득이 없었다.
“자네들 당의 그 총명한 율곡이 어째 요새 조용하더라니, 아직껏 대책을 궁리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모양이로군그래.”
고양댁이 내려주는 차 마시러 찾아온 이윤경이 능청스레 말했다. 그 아우와는 달리 종종 이렇게 찾아오곤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죽 쑤고 있으니 어르신도 그렇고 어르신 아우님도 그렇고 퍽 기분들 좋으시겠구려.”
“우리 사림이야, 자네들 민주당을 썩 좋게 보지 않으니, 싫다고는 못 하는 쪽일세.”
꺽정이가 삐딱하게 말했는데, 이윤경은 너스레로 받았다. 그러나 찻사발 한 번 홀짝인 뒤로는 다시 진지하게 낯빛을 고쳤다.
“허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결코 옳지 않을 뿐더러 우리 또한 알지 못하는 일이므로, 자네만큼은 아니겠지만 답답하게들 여기고 있다네.”
꺽정이가 곧장 이준경네 집에 쳐들어가 아는 것 없냐고 물은 이래, 이준경과 이윤경 두 사람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꺽정이네는 들을 수 없는, 선비들 사이에만 오가는 그런 소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옳지 않다는 건 또 무슨 소리요?”
“부자(夫子, 공자) 이르시기를 고불고면 고재잇고 고재잇고 (觚不觚 觚哉觚哉). 유향소와 사마소, 향약 등등은 모두 올바른 풍속을 권면하고 교화를 거들기 위한 모임일진대, 그것을 알량한 권세 탐하는 향원(鄕愿)의 무리와 다름없게 만들어버리니 어찌 옳다 하겠는가.”
꺽정이와 서림에게 민주당 분란 자초지종을 들은 이준경과 이윤경도 무언가 수상하다 여기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동시에 여러 군현의 사족들이 비슷한 움직임을 취하는데, 사림의 종주까지는 아닐지언정 중진들 중 으뜸쯤은 될 그들 형제에게 들려온 바가 없던 것이다.
“공자님 말씀은 접어두고, 정 그리 답답하다면 좀 도와나 주시오.”
그런 사정 따위 알 바 아닌 꺽정이는 그저 재촉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찾아온 것 아니겠는가. 의심 가는 바를 하나 찾았다네. 자네, 무본사(務本社)라고 들어보았는가?”
“금시초문이외다.”
“실은 이 사람도 지금까지는 그저 한량 모임인 줄 알았는데, 심상치 않은 바가 있었다네.”
각미사가 윤원형 때려잡는 데도 큰 공을 세운 뒤로, 이를 흠모하는 혈기 넘치는 유생들이 무슨무슨 사(社)를 꾸리는 일은 근년 사이의 풍조가 되었다.
허나 정말로 정직하게 공부하는 이들은 그런 무리에 들 겨를 있으면 글줄이나 한 줄 더 읽기 마련이었다.
무본사도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저 한량들과 말직에 있는 젊은 관원들이 모여 활 쏘고 유람이나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승정원 주서(注書) 이량(李樑)이 그 좌수인데, 아직 수양 부족한 젊은 서생들과 성균관 원생들이 많이 따른다 하네. 그들이 얼마 전에 한 번 크게 회동한 뒤로 고향에 다들 글을 보냈는데, 시기를 따져보니 얼추 그때부터 향안에 서리들의 이름을 올린다는 말이 나왔더군.”
서생들뿐 아니라 종실의 사람들도 적지 않게 들어 있었는데, 이량처럼 이미 적통에서 멀어진 지 오래인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문에 따르면 덕흥군(德興君)도 간혹 변복하고 그 모임에 함께 한다 하였는데, 이는 민주당 사람 앞은 물론이요, 같은 선비들 중에서도 함부로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므로 거론치 않았다.
“이량?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아, 우리 사형으로 하여금 과거 때려치게 만들었다는 그놈이구만. 어째 싹수 노랗다 싶더라니.”
스승 정사룡이 미리 과거 시제를 알려주어 과분하게도 장원급제를 한 이량은, 그 직후 정사룡이 삼사 언관들에게 바로 탄핵을 당했기에 끈 떨어진 뒤웅박이 되어버렸다.
이량 본인은 자전의 외숙 되는 몸이었기에 화를 면했으나, 그 역시 조정이 물갈이되기 전까지는 영달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이는 품성이 용렬하고 재주도 보잘것없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라 하였네. 이런 계책을 내는 것은 가하다 하더라도, 자네가 말한 대로 각 군현의 민주당 사정을 꿰뚫어 보고 이간질을 하는 것은 재간 밖일 터.”
꺽정이가 생각해보아도, 윤원형이 아래에 있던 두리손이 고작 종실의 방계이자 승정원 주서에 불과한 그 이량이라는 놈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량은 그저 그 모임을 위해 내세운 꼭두각시일 뿐, 뒤에 또 누군가 있을 공산이 컸다.
“그러면 그놈을 가서 족치면 되겠군. 알려주어서 고맙소.”
“그런 뜻으로 귀띔해준 것이 아님을 알지 않는가?”
의민당 시절부터 하도 부대끼다 보니 꺽정이는 이윤경 심산을 조금은 꿰뚫어 볼 수 있었는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량과 그 무본사는 그대들 민주당이 일으킨 것과 다름없네. 자네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빠르게 뒤바꾸고 있으니, 그 방향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반발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윤경이 그저 저의 발목 잡고자 핑계 대는 것은 아님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이량을 족친다 한들 두리손을 붙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꺽정이에게 원한 품은 자가 더욱 늘어난다면, 두리손과 같은 자들이 비빌 언덕 또한 늘어나리라.
“그러면 우리가 어찌해야 한다고 보시오?”
“이 사람이 무어라 할지는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따로 얘기하지는 않겠네.”
그러니 지금이라도 만족함을 알고 이것저것 들추고 바꾸는 것을 슬슬 멈추어라. 지금 타고 달리고 있는 조선이라는 말이 어느새 호랑이로 둔갑하기 전, 고삐를 이준경과 사림에게 넘겨라.
그런 말이 나오리라는 것을 이윤경도, 꺽정이도 알았고, 백번 말한들 어느 쪽이든 저의 뜻을 꺾지 않을 것임 역시 서로 알았다.
“뭐, 어쨌든 알려주어서 고맙소. 살펴 가시오.”
“자네들도 부디 이번 일을 두고 현명하게 헤아리기 바라네.”
“물론이오. 어르신 원하는 쪽으로는 아닐 테지만.”
다른 사람 대할 때에 비하면 퍽 부드럽게 축객령 내리는 꺽정이의 마음속은 여전히 착잡하였다.
간만에 흑의영 가서 새로 들어온 놈들이나 좀 두들겨팰까 생각하며 밖에 나서던 차, 이이 녀석과 딱 마주쳤다. 꺽정이와 달리 웬일로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꺽정이 속마음이 썩 유쾌하진 못했으므로, 저렇게 싱글벙글하고 오면 좋은 소리는 못 들을 터인데, 그만한 눈치가 있으면 이이가 아니었다.
“임 당수! 방도를 찾았습니다! 의외로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하하!”
“멀리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찾아낼 것이지.”
“하하,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아니겠습니까. 들어보십시오.”
그런데 이이는 서운해하기는커녕 여전히 방방 들떠 있었다.
“우리 당은 모름지기 사람의 욕심을 툭 터서 널리 통하게 하는데 그 뜻이 있었지 않습니까? 역시 본심으로 돌아가야 길이 보이는 법이었습니다.”
이이가 저렇게 사설을 길게 늘어뜨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 들뜬 모습에 어째 꺽정이는 살짝 께름칙해지기 시작했다. 잘은 몰라도 자신이 저 녀석 말에 휘말려 엄청난 후환을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팍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어서 이이의 설명을 다 듣고 나니, 헛된 걱정을 하였다는 생각에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물론 헛된 걱정이라는 것은 꺽정이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이이를 여러 해 동안 상대하였던 이지함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뒷일을 절로 떠올리고서 제자를 말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지금 이지함은 한참 남쪽으로 떨어진 암본 섬의 부둣가에서, 다른 선비들과 함께 저 남쪽 하늘에서 지금껏 그 어떤 조선 사람도 보지 못한 별자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경악하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그럴 계제가 아니었다.
몇 해 전 백정들의 큰 경사가 있었던 양주 녹양평 들판은, 비록 목장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엄밀히 따지면 여전히 나라의 땅이었다.
그러나 내수사가 혁파되면서 그 땅을 조각내어 팔게 되었는데, 이를 둘러싸고 또 한 차례 양주의 콧김깨나 쓰는 집안들끼리 맞부딪히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넓은 들판은 잡초만 무성할 뿐, 아직 새 주인을 구하지 못하였다.
다만 들판 끄트머리, 그럭저럭 양지바른 곳만은 예외로, 땅은 가지런하니 정돈되어 있고 풀도 얼추 다듬어진 티가 나서 사람 손길 닿았음을 족히 알 수 있었다.
“형님이 어디서 그런 보화가 나와서 이 땅을 다 사셨소? 아니, 애초에 그냥 나한테 연통만 넣었으면 도와주었을 텐데. 나야 남는 게 금은보화니까.”
“배도치 네가 그동안 보내준 피륙을 처분하니 이만한 땅은 능히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네가 보태준 것 아니겠느냐.”
공보 아니 나오는 날 골라서 고향집 내려왔건만 가도치는 없었다. 말대가리에게 형 향방을 묻고서 곧장 이곳까지 걸음한 꺽정이였다.
“여기서 뭣 하시려고? 밭이라도 일굴 생각이쇼? 지금 그 공보 나르는 일로 꽤 재미보신다 들었는데.”
“시끄럽고, 저기 저쪽 보거라.”
남향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양지바른 곳에 봉분 하나가 솟아 있었다.
“뉘 무덤이오?”
“우리 어머니.”
“아...”
꺽정이의 어머니 꽃분은 그를 낳고서 곧장 숨을 거두었다.
“내 인사라도 올리고 오겠소. 얼굴도 잘 뵙지 못했지만 낳아주신 은혜가 있으니.”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실 게다.”
잠시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상념에 잠겼다.
꽃분은 본디 가도치와 꺽정이 사이에 사내아이 하나, 계집아이 둘을 더 낳았는데, 모두 돌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양주 백정들은 꽃분이가 백정 딸년답지 않게 얼굴이 곱고 몸이 약한 탓이라고 말대가리 등 뒤에서 수군대곤 했다. 그런 꽃분이 느닷없이 기골 장대한 아이를 해산하였으니, 어찌 뒤탈이 없을까.
꺽정이 낳은 지 이틀 만에 갑자기 열이 치솟았는데, 하필 그때 양주에 역병이 돌던 탓에 의원 한 번 못 보고 약 한 첩 써보지 못한 채 죽었다. 사방이 병자인데 양반과 다른 양인(良人)들 내버려두고 백정을 먼저 보아줄 이유는 하등 없던 것이다.
얼마나 그 앞에 있었을까. 마침내 일어나니 제법 다리가 저렸다.
주변을 휘 둘러보고서 꺽정이가 말했다.
“터가 제법 좋소.”
“할아버지랑 할머니 무덤도 이쪽으로 이장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찾겠더라. 그래도 우리 아버지부터는 여기 묻히실 수 있으실 게다. 우리네뿐 아니라 양주 백정 모두.”
산세 좋은 선산에는 양반이 묻히고, 야산의 양지바른 곳에는 상놈이 묻히기 마련. 천것들은 어디든 땅에 묻을 수만 있으면 호상(好喪)과 다름없었다.
기껏 좋은 곳에 묘를 써본들, 백정놈이 묻혔다고 알려지면 파묘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양민들 눈 피해 찾은 묫자리는 터가 좋을 리 없으므로, 멧돼지와 여우가 즐겨 찾든, 장마철에 불어난 개울이 쓸어가든 하여 오래 못 가기 마련이었다.
“형님은 참 마음도 곱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내가 네 덕에 양주 백정들 중에서는 졸지에 가장 명망을 얻게 되었으니,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꺽정이 저와 달리 퍽 착한 가도치였다. 꺽정이 전생에도, 자신이 보내주던 피륙과 곡식을 굶주리는 이웃 양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가, 그 덜미가 잡히면서 어쩔 수 없이 아우 따라 도적이 되었던 가도치였다.
그리고 그런 착한 성정과 인망이 지금은 꺽정이와 민주당에게도 꽤 도움이 될 터였다.
“형님, 짐작은 하셨겠지만 내 다른 속뜻이 있어서 왔소. 여기서 내려가면 내 말씀드리리다.”
‘내려가면 말씀드리리다’라고 하였지, 어디까지 가면 말해주겠노라 얘기는 하지 않은 꺽정이였다. 가도치와 함께 들판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온 뒤로도 잰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공보』 나르는 일을 하면서 제법 걸음걸이 빨라진 가도치조차 슬슬 숨이 찼다.
“이놈아, 어디까지 걸어가려 하느냐?”
“왜, 말 타고 싶으쇼? 내가 한양서 타고 온 말은 형님 집에 맡겨두었소. 조카 놈이 ‘조상’들을 닮았는지, 말을 보니까 제법 좋아합디다.”
꺽정이가 딴소리를 하였다.
“그 얘기가 아니지 않으냐?”
“우선은 읍내로 가서 호방 한가 놈을 붙잡을 게요. 그 다음에는 모랫내로 가서 경가놈들 중 가장 어른을 끌고 올 거고. 그 다음에는 남양 홍문 종갓집 사랑방으로 쳐들어가서, 풍양 조가네를 비롯해 일대의 유력한 선비들은 다 모이라고 할 생각이오.”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원래는 형님께 먼저 말씀드리려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미리 알려드리면 싫다고 하실 공산이 제법 있소. 그래서 아니 알려드리고 때가 되면 다 모아두고 한꺼번에 말해줄 생각이외다.”
꺽정이 막무가내 성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 없었다.
“내가 안 따라간다면?”
“그럼 본인 소식을 나중에야 듣게 될 테니, 형님 본인 손해지. 마음대로 하시오.”
한숨 푹 쉬고서는 가도치가 말했다.
“호방 어르신은 아드님 사업이 잘 되어서 지난 겨울에 집을 새로 지으셨다. 지름길은 저쪽이다.”
“흐흐, 고맙소.”
지금 양주 고을에서 제법 위세 있는 집안은 총 넷이었다. 남양 홍문과 풍양 조문은 국초에 양주로 이사 온 사족 집안이요, 아전 한씨네는 대대로 아전 노릇하던 집안이었으며, 모랫내 경씨네는 향리인지 사족인지 애매한 토호 집안이었다.
그런데 학당의 일이 불거지면서 경씨는 본디 연이 제법 깊던 풍양 조문과 대판 다투었고, 절연을 선언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와중, 지난 겨울에 갑자기 홍문과 조문에서 합의하기를, 지금껏 저들이 잘못한 바 있으니, 이제라도 화해하자며 향안에 ‘특별히’ 명성 높은 사람 두엇을 올려주겠노라 하였다.
졸지에 한씨와 같이 묶이게 되었으나 은연중 저의 격이 더 높다고 여기고 있던 경씨들은, 그 말에 은근히 혹하였다. 사족들이 먼저 손을 뻗쳐오기도 했거니와, 조문과 홍문 두 집안을 제한 나머지 양주의 거족들 중에서는 저들이 가장 지체 높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씨네도 그 풍문을 듣고 발끈하여, 경씨가 저들 두 문중과 어울린다면 이는 배신과 다름없다 하고서 열심히 경씨 흉을 보고, 또 지난 겨울에는 사람들을 이끌고 모랫내로 쳐들어가 대판 싸우기도 하였다.
마침 집에 내려와 있던 한가네 둘째아들이 갑자기 나타난 임 당수를 보자마자 경씨네의 험담을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건 모르겠고, 따라나 와라. 그 경씨네 면상 보러 가는 길이다.”
마침내 저 지저분하고 야비한 경씨들이 오늘 임자 만나는구나 생각하며 – 심지어 임 당수는 그의 보검까지 옆구리에 차고 왔던 것이다 – 한가는 그 아비 호방과 함께 금방 따라나왔다.
간단히 요기만 하고서 발걸음도 가볍게 모랫내로 향했는데, 막상 경씨네 본가에 당도하여 경가 늙은이를 만나자마자 임 당수가 꾸짖기는커녕,
“너희 집안 사람들이 그렇게 향안에 이름 올리길 바란다고 들었다. 다른 사족들과 담판을 지으러 가는 길이니 따라 나와라.”
하는 것이었다. 살짝 불안해 하면서도 경씨 늙은이 역시 그 말에 따랐다. 임 당수 말을 면전에서 거역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는 뻔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회에 귀하신 분과 안면이나 트게 하자면서, 제법 문재(文才) 있다는 저의 오촌 조카 – 왜 문재가 있다면서 아직껏 향시도 급제 못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 까지 데려왔다.
슬슬 해도 서쪽으로 기울며, 노을빛을 슬슬 띄우려 할 무렵 이 이상한 일행은 풍양 조문 종갓집에 닿았다.
“이리 오너라!”
꺽정이 얼굴은 몰라도 뒤에 있는 한씨와 경씨, 그리고 가도치 얼굴은 알던 종놈이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조문의 어지간한 사람들이 곧 우르르 나와 인사를 올렸다.
종계변무의 공으로 임 당수가 공신 책록까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기도 했거니와, 임 당수가 결코 저들에게 감정 좋지 않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비록 여기저기 돌아다니고는 있으나, 나고 자란 곳은 여기 양주요. 그러니 내 고향의 일에 조금 관여하는 것은 결코 허물이 되지 않겠지.
이 고을에서 근래 나온 인재 중에서 나만큼 현달한 사람이 없으니, 무릇 향안에 이름 올리는 데도 내 뜻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아직껏 그 누구도 내게 알려오지 않았으니 참 섭한 일이오.”
사람 목 베는 그 흉흉한 눈빛을 겉에 드러내고서 – 풀어서 옆에 내려놓은 칼자루는 덤이었다 - ‘섭섭하다’ 하니, 조씨 사람들은 물론이요 나머지도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그, 소, 송구할 따름입니다.”
“송구한 줄 알면 지금 향안에 이름 올린 사족들 모두 데리고 오시오.”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개중 용기 있는 서생이 목소리를 내자, 살벌한 답이 돌아왔다.
“아니, 뭐, 뜸 들여도 괜찮긴 하오. 풍양 조문이 손님 대접 어떻게 하는가 구경하고 있으면 될 일이지, 무어.”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 이놈저놈 해가며 급히 사람이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선비의 복식을 한 이들이 황망한 걸음걸이로 후다닥 모여들었다.
아무리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지만, 어찌 백정의 아들이 사류(士類)의 모임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한탄을 하면서도, 하필 향안에 이름 올린 이들을 콕 집어서 거론하니 어쩔 수 없이 다들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 남쪽 먼 고을이라면 모를까, 도성 바로 옆에서 임 당수 위엄을 접하기도 했거니와, 지난번 임 당수 혼사의 그 난장판과 위엄을 공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잘 와주었소.”
좌중을 둘러보며 꺽정이가 말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해진 지 오래라, 횃불을 훤히 밝혀 마당을 비추었다. 그 일렁이는 불빛에 꺽정이 모습이 평소보다도 더욱 무섭게 보였다.
“양주 사족들이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고 우리 양주 고을 일대의 공론(公論)을 올바르게 받들겠노라 하였다고 들었소.
향안의 규정에 예외를 두어,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고을의 사람들 중 인망 있는 이를 향안에 올리고 장차 향회에서도 그 사람의 뜻을 존중하겠다니, 그 뜻이 참으로 아름답소이다.”
다들 최대한 성의 있는 척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고을에서는 공론을 취합하여 두 사람을 뽑겠다고 하였다는데 맞소?”
“예, 당수.”
네 집안의 사람들이 함께 답하였다.
“자, 그런데 내가 화담 선생께 배우기로는, 공론이란 바로 공변된 논의를 뜻한다 하였소. 그러니 참된 공론이란 어디 한 군데 치우쳐서는 아니되는 것이외다.
예컨대 인망 있는 이를 뽑겠다면서, 몇몇 사람들끼리 작당하여 저들과 친한 사람을 뽑는다? 이것이 어딜 봐서 공변된 일이겠소?”
“흠흠, 그렇소이다, 임 당수. 우리 양주의 사풍(士風)은 무릇 도덕을 숭상하니, 지금 당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폐단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겠소이다.”
유향소 우두머리인 홍 좌수가 – 당연히 남양 홍문 사람이었다 - 헛기침 한 번 하고는 그리 답했다.
“그렇소? 내가 보기에는 이미 그런 폐단이 있던데?”
모두가 숨을 죽였다.
“내 어느 집안을 특정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두 사람을 모 문중에서 뽑겠노라, 그러한 말이 돌았다고 들었소. 이로 인하여 싸움도 벌어진 바 있다는데, 모두 잘못된 일이오.”
그렇게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한씨네는 웃고 경씨네는 질겁하였다.
“지금 양주 고을에서 가장 명망 높은 집안이 이미 따로 있거늘, 어찌 그곳을 떼어놓고 향안에 이름 늘리는 것을 논하겠소?”
“그곳이 어디인지 당수의 의중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들으나 마나, 지금껏 민주당 편을 지킨 한씨 집안이리라. 적어도 호방 한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세상은, 보다 정확히는 임 당수는 그의 생각보다 매정하였다.
“그야 당연히 이 사람 집안이지. 내 말 틀렸소?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지금 손 들어보시오.”
불편한 헛기침이 몇 번 오갔으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더구나 내 형님 가도치로 말할 것 같으면 인품이 참으로 훌륭하여 여러 사람의 모범이 되는 바요. 그런데 그 누구도 우리 형님께 찾아온 적이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그러므로 이 임꺽정이는 바로 여기, 우리 형 가도치를 향안에 이름 올릴 사람으로 천거하는 바요. 모두 다 찬성하시오들.”
“예?”
“배도치야!”
가도치 포함 전원이 기겁하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둔갑해 있던 가도치는 뜻밖에 저의 이름이 나오니 화들짝 놀라고, 사족들은 향회 모임에 백정이 들어오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다들 놀란 눈치로구만. 좋소.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들. 아마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내 가형이 향안에 이름 올려 향회에 한 자리 얻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오.
더구나 두 사람을 뽑는다 하였으니, 남은 한 자리도 누군가로 메워야겠지. 그러니 양주 사람들 중 이 일에 저들 목소리 내길 원하는 이들을 모두 모아서 권점(圈點, 이름 아래 점을 찍음)하게 함이 가할 것이오.
이 자리 원하는 이들의 이름 모두 모은 다음, 가장 점을 많이 받은 사람과 그 버금가는 사람을 향안에 올리면 될 일이지. 이것이 바로 공론 아니겠소?”
조문과 홍문 사람들은 향안에 이름 늘리는 것 자체를 없던 일로 돌려버리고픈 마음뿐이었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구나 임 당수 말대로 이미 공론에 따른다고까지 공표해버렸으니, 우리가 말한 공론은 그 공론이 아니라고 둘러댄들 궁색할 뿐.
그렇다고 이대로 백정이 그들 가운데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감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작해야 여러 해 동안 그들 집에 고리 바쳐왔고, 근래에는 『공보』 문전달(배달)하는 작자 아닌가?
임 당수 면전에서 아니 된다고 호통을 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선 그 권점 절차 따라 사람 뽑겠노라 하고 가도치를 떨어뜨릴 방도를 모색할 것인가?
이 자리의 사람들 모두 고하 막론하고 나름의 욕심으로 마음이 가득하였으나, 욕심도 저의 목숨이 붙어있어야 부릴 수 있는 노릇이었다.
결국 조문과 홍문 사람들이 사세 부득이함을 깨닫고 당수님 말씀이 옳다 하였다.
이어서 그나마 이것이 두 자리 모두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경가 놈들에게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긴 호방 한가가 그 다음으로 찬동하였으며, 어쩔 수 없이 경씨 사람들도 꺽정이 말에 따르고야 말았다.
“하하! 모두가 찬동하였구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론의 장이오이까?”
저의 뜻과 무관하게 이 난리통에 끌려들어오게 된 형 가도치가 열심히 꺽정이 옆구리를 찔렀건만, 꺽정이는 뻔뻔하게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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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한 ‘고불고 고재고재’란, 제례에 쓰이는 각진 술잔(고)이 각지지 않으면 결코 각진 술잔이라 부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은 명목과 실제가 맞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공자가 ‘향원은 덕의 적이다’라고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곤 합니다. 향원이란 한 고을 안에서 인격이 뛰어나다고 칭송받는 사람을 말하는데, 공자가 말한 향원은 – 맹자의 해석에 따르면 – 바로 그 일대 사람들의 환심을 사며 군자인 시늉만 하는 자, 즉 위군자를 말합니다. 명분과 실제가 어긋나는 사람이니 공자가 싫어했을 법도 합니다.
지난 화에 언급된 것처럼, 조선은 지방 세력들에게 관의 통제 하에서의 자치를 허용하기 위해 유향소 등의 조직을 설치했고, 재지사족들은 향리층에 대한 반발과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독자적인 유사 지방자치 조직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은 관의 통제에 부응하고 대신 그 권력을 나누어 받는 관의 하위조직이든, 그에 대항하는 성격의 사족 조직이든 공통적으로 지방의 유력자들끼리 모여서 소위 ‘공론’을 형성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일은 없었으며, 수령이 민심을 청취할 때도 ‘향로(鄕老)’들의 말을 대신 듣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각종 사회경제적 모순이 터져나오고 세도정치의 장기화로 인해 관과 사족 중심의 기구들이 모두 기능부전 상태에 빠지게 되자, 이와는 다른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게 됩니다. 즉 식자층이었던 몰락 양반들과 향리·사족은 아니지만 충분한 경제력을 획득한 부농층(요호부민饒戶富民)들이 대중을 동원해 새로운 향회를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자발적·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고, 제한적으로나마 오래 지속된 지방의 공론정치 전통과 맞물려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례로 1834년 선산부에서는 부세를 둘러싼 상하간의 갈등 끝에 일향공회(一鄕公會)라는 새로운 향회를 만들기로 합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향공회는 향청에서 뽑는 – 즉 양반 계층의 대표인 – 별감과 각 면의 모든 백성들의 투표(권점)를 통해 뽑는 면임 – 즉 소민(小民)의 대표 – 을 따로 두어 암묵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였으며, 향리에 대한 임면권 등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예외적 경우였고, 보통 새로운 향회의 형성은 대규모 대중동원을 통한 실력행사, 그리고 관과 사족들의 반발과 탄압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향회의 설립은 1862년 임술민란 등 대규모 민란의 기반을 마련하였지요. 당장 선산의 일향공회 역시 언제 무너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임술년 민란 당시 선산에서도 소요가 일어난 것을 보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김인걸(2017), 『조선후기 공론정치의 새로운 전개: 18, 19세기 향회, 민회를 중심으로』,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작중 언급된 왕족 덕흥군은 중종의 서자입니다. 실제로 1552년 평복을 하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서생들을 구타하는 등 문제적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을사사화와 정미사화로 여러 종친들이 화를 입었기 때문에, 윤원형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광패한 행실을 보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선조, 광해군, 임해군, 정원군 등등...)도 재능의 유무와는 별개로 다들 인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본디 인간적으로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