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95화 (95/259)

30. 공변된 의론 (3)

양주목은 목으로 지정될 만큼 나름 대읍(大邑)이면서도 도성의 지척에 있었다. 몸이 편한 것도 편한 것이지만, 선정을 펼친다면 금방 도성까지 소문이 전해질 수 있으니 목사 노릇하기에는 꽤 좋은 곳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반대로 학정의 소문 역시 금방 퍼지기 마련이었으나, 양주목사로 오는 이들은 이 기회에 저의 이름을 빛내고자 하는데 대개 그 뜻이 있었으므로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런데 전도유망하던 전 양주목사 백인영이 두어 해 전 갑자기 사직을 하니, 사람들은 괴이쩍게 여겼다.

“내 오늘에야 그 까닭을 알게 되었구나!”

양주목사 자리가 공석 되었다는 소식 듣고, 딱 청탁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만 여기저기 말을 돌린 끝에 그 자리를 차지한 현 양주목사 윤옥(尹玉)이 한탄하였다.

그는 지금 동헌에 앉아있는 것도, 어디 경치 좋은 정자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요, 장터 한가운데에 단상 하나 만들어놓고 그놈의 ‘권점’을 감시하고 있었다.

“기운 내시오, 사또 어르신. 이게 또 나중에는 공적으로 남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옆에서 임 당수가 한 마디 하였는데 전혀 기운은 나지 않았다.

사흘 전, 느닷없이 나타난 임 당수가 향회의 일을 위하여 장터를 빌리겠노라 하였을 때,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그러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공론을 논하는데 어디 한 군데 치우쳐서는 안 되겠지. 헌데 양주 고을에 사족도, 아전도, 백정도 아니면서 이런 일 주관할 만한 사람은 사또밖에 없으니 어찌하겠소? 그냥 그러려니 하시오. 어르신이 나중에 경직(京職) 맡아 한양 돌아오게 되면 내 귀한 술이라도 한두 병 보내드리리다.”

“당장 이 일이 지면을 타고 전국에 알려질 테니, 곧 나라 사람들이 이 공을 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구경도 할 겸, 저의 궁리한 바가 현실로 옮겨지는 것을 살피기도 할 겸 엊그제 한양에서 내려온 이이가 거들었다.

“과연 공(功)이 될지, 과(過)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으로 드러나든 결코 목민관의 잘못은 아님을 모두가 알 것이외다.”

“이 자리에 임 당수가 있었고, 이 일을 주동한 것 역시 임 당수였다. 이렇게 한 줄만 쓰면 그대의 탓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소?”

이이를 따라 구경을 온 – 양주가 한양 지척인 것이 문제였다 – 이황과 조식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렇게 이름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윤옥에게는 괴로운 일이었으나,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눈앞의 장터는 명실상부하게도 시장통이 되어 있었다.

장터 한복판에 나무로 벽을 세우고, 거기에 큼직한 대자보를 붙여두었다. 대자보 위에는 이번에 향회에 이름 올리고자 하는 이들의 성명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숯조각 몇 개 가져다 두었는데, 양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자신이 추천코자 하는 이 이름 아래에 권점(○표)을 숯으로 그리고 갈 수 있게 하였다.

허나 양주 밖의 다른 사람이 와서 권점하고 갈 수도 있는 것이요, 한 사람이 여러 번 권점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장터에서 중인환시 하에 찍게 하였다.

그것을 감시하기 위해 이렇게 단상을 마련하고 차양까지 친 다음 목사 윤옥을 앉혀두었다. 그 옆에는 이이와 이황, 조식, 꺽정이 등이 앉아 있고, 한 칸 아래에는 영 자리 불편한 가도치와 다른 네 문중의 가로(家老)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온갖 잡색 구경꾼들은 또 구경꾼 나름대로 여기저기 자리 깔고 앉았다.

“저, 저놈들!”

갑자기 경씨 노인네가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을 했다. 장터 동편 견주(見州)에서 우르르 몰려온 농군들이 하나같이 언문으로 ‘치도가’(가도치) 써 있는 곳 아래에 동그라미 그리고 돌아간 것이다.

두 해 전, 한창 경씨가 양반들과 사이 안 좋을 때, 모랫내 장정들이 견주 사는 조문 사람들 족치러 왔다가 애먼 견주 사람들 – 대개는 가깝게든 멀게든 조문과 연 있는 양민들이었다 – 을 여럿 때려눕히고 갔던 원한이 아직 남아 있던 탓이었다.

허나 경씨 딴에는 저의 잘못은 없다 여기고 있었던지라, 그저 억울하고 괘씸할 따름. 무어라 한 소리 더 하려고 했는데 뒤에 있던 꺽정이가 입을 열었다.

“거 진정 좀 하시오. 이대로 가면 우리 형 다음으로 노인장이 권점 많이 받을 터인데, 욕심은 많아서는 원. 얼른 앉기나 하시오. 노인장 머리에 가려서 잘 안 보이오.”

그 말대로였다. 꺽정이가 저도 양주 사람이라며 가도치 이름 아래에 떡하니 동그라미 그린 이후로, 모여드는 사람 절반은 가도치에게 권점하고 있었다.

심지어 백정들은 남녀가 함께 나와 가도치를 찍고 가기도 했는데, 어느새 그 소문이 나서 여염집 여인들도 남편 데리고 함께 나오고 있었다. 백정 계집들도 권점을 하는데 양민 아낙들은 못할 게 무엇인가?

어설프게 반가 따라서 내외하는 구색 갖추던 향리와 토호 집안 사내들만 발 동동 구를 뿐.

그것만 해도 배아픈 노릇인데, 가도치 버금가는 자리조차 이제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호방 한가가 이미 경씨 노인네를 부쩍 따라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 호방 어르신께 권점들 하시오! 호방 어르신은 우리 고을에서 나라의 조세 법도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니, 유향소에 들게 되시면 반드시 여러분 부담도 줄여줄 것이외다!”

이 기세를 몰아가려는 듯, 한가네 둘째아들은 대자보 옆에서 악을 쓰고 있었다.

“경씨네는 사족들과 절연하겠노라 하다가도 또 이제 그 손을 덥석 잡으려 하고 있으니 천하의 못 믿을 자들이외다! 우리 아버지 호방께 권점을!”

한편 이미 기세 잔뜩 오른 백정들 몇몇은 권점하고서도 돌아가지 않고 역시 장터 한구석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가도치에게 권점들 하시오! 솔직히 양민이든 백정이든 억눌려 살기는 마찬가지 아니오? 그런 이들 편들어줄 사람은 우리 가도치뿐이오!”

“야, 이 무식한 놈아, 가도치 어르신께서 네놈 친구냐?”

“제 옆집 사는 친구 맞는뎁쇼... 아차차, 아니지. 가도치 어르신! 가도치 어르신께 권점들 하시오!”

몇 년 전만 해도 백정들이 이렇게 모여서 난리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더구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임 당수 하는 것 따라 가도치 이름 아래에 권점을 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경씨 쪽에도 원군이 왔다.

“제발 모랫내 사는 사람이면 경씨 어르신 좀 밀어드립시다!”

“반가 거족들과 우리네 소민(小民) 사이에서 뜻 모아주실 분은 우리 어르신밖에 없소!”

경씨 일가의 터전은 제법 읍내에서 거리가 먼 모랫내였기에 이제야 그쪽에서 사람들이 온 것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보던 홍문과 조문 사람들은, 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고작 고을 안에서나 이름 날리는 향촌의 사족들이라지만, 그래도 향회는 나름대로 고아한 기풍을 간직한 곳이어야 했다.

허나 향안에 이름 올리는 일이 이렇게 장터에서 여러 사람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고야 말았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들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권점 찍혀가는 모습이 제법 재미있어 힐끔힐끔 구경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이 난장판이 좀처럼 끝을 보이지 않았다. 가도치는 벌써 권점 그려넣을 칸이 부족하여 그 아래에 종이를 새로 대어야 했고, 경씨 노인과 호방 한가 역시 막 그 종잇장 아래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족들 머릿속에는 절로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이 저기 걸려있었다면 저만큼 권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민주당의 요설에 놀라고 또 들뜨는 민심을 부여잡기 위하여, 향약을 두고 사창제에 따라 곳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족하다 여겼다.

그렇다면 그 민심이란 무엇인가? 여염집 사내와 아낙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이면 민심이 되는 것인가?

그런 질문은 양주의 사족들 중 그 누구도 던져본 적 없었다. 애초에 상놈 하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든 무엇이 중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런 상놈들 하나하나가 숯을 들고 원을 그리니 어느새 저만큼 쌓였다.

‘영락없이 백정과 향리의 무리를 우리 가운데에 끼워주어야 하겠구나!’

그저 임 당수 한 사람이 억지를 부려, 그 강압 못 이겨 가도치 그자를 향안에 올려주기만 했다면, 임 당수 머물 때만 잠시 챙겨주는 시늉만 해도 되었을 터.

나머지 한 사람을 경씨로 채우든 한씨로 채우든, 사족들의 공론에 따라 과분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니 그들 또한 감사함을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허나 지금 저것을 보라. 선비 몇몇이 아니라 양주의 어리석고 물정 어두운 여항 백성들이 저들 편 들어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 숯을 놀리고 있었다.

그러니 가도치 외 다른 한 사람이 누가 뽑히든, 그들은 선비의 덕을 본 것이 아니라 무지렁이의 도움을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저 무지렁이들을 위하여 자신이 목소리 내겠노라고 가도치나 다른 한 사람이 향회에서 목청 높인다면, 그때 사족들은 어찌해야 하겠는가?

“본디 권점이란 전형(銓衡, 인사)에서 쓰는 것이었는데, 이를 이렇게 변통하여 여러 백성의 뜻을 모으는 법도로 삼으니 기이한 일일세.”

그들 뒤에서 선비들, 양주 한 고을이 아니라 조선 전체에서 선비로 우러러 보는 이들이 이야기 나누는 것이 들려왔다.

“‘기이한 일’이라!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면 될 것을. 퇴계 그대는 늘 말을 부드럽게 하는 데만 힘써 그 뜻이 잘 전해지지 않으니 병폐가 아닐 수 없네.”

“하면 남명 선생께서는 저희 당에서 낸 이 궁리를 어찌 보시는지요?”

“적어도 율곡 자네가 말하던 바에 따르면, 이 제도는 제법 괜찮은 듯하네. 자네의 그 의권론이 전제하는 바가 참이라면 오래 갈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금방 무너질 터.”

그 뒤로 복잡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사족이라 자부하는 그들도 금방 알아듣지는 못하였다.

다만 이 고을에서는 이 권점의 제도가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으니 근심스러울 뿐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백성들 뜻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한다면, 두 해 전 향전 때처럼 반가의 자제들이 상한들에게 몰매 맞는 그런 일은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런 위안거리를 애써 찾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니, 굳이 세볼 것도 없이 결과가 명백하게 나왔다. 수(首, 1위)는 가도치요, 차(次, 2위)는 경씨 노인네였다. 호방 한가는 죽상을 지었으나, 그래도 경가 놈들이 두 자리 모두 가져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는 말에 아주 약간은 기운을 차렸다.

그날 밤, 말대가리네 집에서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말이 조촐한 것이지, 백정들 잔치 치고는 제법 성대한 축에 들었다. 더구나 그 하객으로 말하자면 백정은 물론이요 풍양 조문이나 남양 홍문에서도 쉽게 초빙 못할 귀빈들이었다.

꺽정이가 이렇게 온 김에 밥이나 먹고들 가시라며 이황과 조식을 끌고 온 탓(또는 덕)에 자리의 격이 확 높아진 셈이었다.

비록 지난날 꺽정이 혼사 덕에 백정들도 예전처럼 낯을 가리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양반은 대하기 어려웠다.

허나 다행인지 아닌지, 그렇게 말대가리네 마당까지 온 선비님네들은 그들끼리 자리 펴고 앉아서는 앞서 장터에서부터 벌였던 그 논쟁을 계속 이어갈 뿐, 주변 백정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도치 너도 이제 양반이라는 뜻이더냐?”

이 모든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인 말대가리가 물었다. 말대가리 집안의 경사인데 정작 말대가리는 어안 벙벙할 따름이요 가도치 또한 머리나 벅벅 긁고 있으니 경사치곤 퍽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 따지고 보면 내가 우림위 별장 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양반이었소. 사족들이 그간 애써 모르는 체 했을 뿐이지.”

꺽정이가 대신 답했다.

“이번에 제대로 주눅 든 눈치였으니, 아마 앞으로 향회를 할 때 우리 형님 말씀에 귀깨나 기울이는 시늉들은 다들 할 것이오.

그렇다 한들 저놈들이 우리를 양반으로 대접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천것으로 대하지도 않을 테지. 아버지도 그러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 그렇다고 또 너무 굽히고 다니시지도 마시오.”

사람 아래 사람 있는 세상에 익숙한 말대가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뭘 어찌해야겠느냐, 배도치야?”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해야 하나 두려워해야 하나 아리송하게 여기던 가도치가 물었다.

“향회라는 게 뭐 별 것 있소? 그냥 모여서 이 고을에 무엇이 필요하다. 올해 풍흉은 이러이러하니 조세 걷을 때는 조금 차등을 두어야겠다 등등. 그런 것 논의하는 자리지. 형님은 그냥 그런 데 가서 형님이 옳다 생각하는 것 말씀하시면 되오.

영 힘이 딸리겠다 싶으면, 아예 이참에 형님도 민주당이나 들어오시오. 그러면 우리가 팍팍 밀어드릴 테니. 학당이 필요하면 학당을 더 짓고, 다리를 지어야 한다면 우리네 사람을 거간으로 보내어 일꾼 알아봐 드리겠소.”

“알았다. 기왕 이리된 것...”

이제 와서 이 우악스러운 아우 놈 탓을 한들 무엇하리오. 더구나 가도치 성정에, 이미 (그들 뜻과는 무관하게) 많은 것을 베풀어준 아우에게 끝내 싫은 소리는 할 수 없었다.

한편, 저 마당 구석에서 물 한 잔씩 떠다놓고 장터에서 시작된 언쟁 이어가는 이이와 조식, 이황은 도저히 결착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식이 정리한 것처럼, 이황 역시 이 권점의 제도가 제법 그럴듯하다는 데는 동의하였다. 이이 말대로 사람의 본성에 탐욕이 있고, 그 욕심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 교화라 한다면, 모두가 저의 욕심을 부리면서도 서로 견제하고 환심 사느라 도를 넘지 못하게끔 하는 이 제도는 꽤 쓰임새가 있는 것이었다.

“... 허나 우리 두 사람이 자네의 그 의권론 중에서도 사람의 심성에 대한 부분은 결코 동의하지 않음을 자네 또한 알 것이야.”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번 자네의 그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해보게나. 선량한 백성들이 폐정(弊政)과 잘못된 풍습으로 인하여 일시 그 마음이 흐트러졌는데, 그때 이렇게 욕심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제도를 세운다면 어찌 되겠는가?”

조식과 이황이 번갈아가며 이이를 논박하였으나, 이미 이언적에게 한 번 당한 뒤 한 달 동안 방에서 열심히 궁리만 하던 이이도 제법 논리가 날카로웠다.

“폐정은 금하려 해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욕심 많은 자들이 스스로 이를 고칠 수 있게끔 제도를 먼저 만들고, 교화는 그와 병행하거나 그 뒤로 미루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이 저들끼리 이익에 따라 뭉쳐 향회의 공론마저 좌우할 수 있게 된다면, 반드시 거기에 만족하지 못할 터. 이들을 교화하여 바르게 이끄는 일을 각지 사족이 아니라면 누가 맡을 수 있겠는가?”

조식의 말에 이황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권점의 제도가 지닌 장점은 인정하면서도, 사족들이 그 모임의 본질을 잊지 않고 항상 주변 백성들을 위하게끔 하는 것 이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 두 사람의 합치된 논리였다.

“백성이 이익을 알게 되고 욕심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면 반드시 더 많은 것을 바랄 것이요, 그리되면 지금까지의 기강과 도덕은 무너지게 된다. 제가 황해도에 머물 때부터 종종 들어왔던 논변이었습니다.”

이이가 재반론의 운을 떼었다.

“그리고 이 권점의 제도로 한 번 향회의 사람들을 뽑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좌수와 별감(향회의 직책명)을 스스로 뽑겠노라 할 것이요, 또 그 다음에는 방백(관찰사)이 수령의 포폄(褒貶, 근무평정)을 할 때 저들의 뜻을 반영하라 하겠지요.”

“그렇지. 그것이 어찌 옳은 일이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옳은 일이라고 저는 말하고자 합니다.”

“허...”

“우리를 포함해 많은 선비들은 자네의 논변이 편협하다 여기지만, 그럼에도 자네 논변에 나름의 이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네. 자네가 그리 말하는 데도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이이와 논쟁 벌이면서 평정심이 많이 늘어난 이황이 차분하게 물었는데, 의외로 이이가 주변 눈치를 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전후좌우 막론하고 주변에는 물정 모르는 백정들 뿐이요, 그나마 삼분지일이라도 알아듣고 딴소리할 만한 꺽정이조차 가도치와 더불어 술잔 기울이기에 바빴다.

“회재 선생과 제가 의권론을 둘러싸고 일찍이 논쟁하였다는 것은 들으셨을 줄 압니다.”

“모두 익히 들은 바라네.”

“회재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 받는 사람은 상생(相生)하니, 어느 하나를 폐할 수 없다 하셨지요. 헌데 이번 권점의 제도를 임 당수와 함께 고안하면서 깨우친 바가 있었습니다.”

이언적은 말하기를, 지금까지 군주를 폐한 일은 있어도 군신의 도리 자체를 폐한 일은 없다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권점의 제도를 두고 선례가 있는가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비로소 떠올린바, 그런 도리를 폐한 일이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

“남명 선생께서는 하비에르 화상과 오랫동안 그 경전의 교의를 두고 논쟁 벌이신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네. 이제 그 경서가 마침내 한양에 왔으니, 그 뜻을 제대로 살피고 논박할 수 있기만 기다리고 있지.”

“그 경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 경왕(景王)의 대에, 로마 사람들이 그 임금을 내쫓고 그 뒤에 새로 임금을 세우지 않았으며, 오로지 그들 가운데서 매년 정승 두 사람만을 뽑아 오백 년을 전해 내려왔지요.”

하비에르가 읊는 그들 경서의 내용 통하여, 그 로마라는 나라에 대해 일찍이 들어본 바 있던 조식이 탄식을 내뱉었다.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이것을 그 논의의 근거로 끌어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 조식과 이황 대신 조금 더 완고한 선비가 있었더라면, 서양 승려 한 사람의 말을 어찌 전거로 삼겠느냐 우겼겠지만, 이 자리의 세 선비 모두 그런 경지는 지나친 지 오래였다.

“만일 공자께서 서토(西土)에 태어나시어 그 땅의 『춘추(春秋)』를 지으셨다면, 비로소 대의(大義)가 바로 섰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권신(權臣) 체사르(카이사르) 또한 작란하지 않았을 터이니 어쩌면 지금까지 그 국체가 이어져 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권점으로 향회의 좌수를 뽑고, 그 군현의 수령을 선출하며, 나아가 정승과 판서까지 세운다 한들, 제도만 잘 갖춘다면 무슨 무도함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승과 판서보다 위에 있는 사람 또한 백성의 공론을 모아 뽑을 수 있다는 말인가? 차마 이이도 거기까지는 말하지 못하였으나, 이황과 조식 모두 금방 거기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한참 어색한 정적이 흐른 뒤, 겨우 이황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그, 어디까지나 회재 선생의 말에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 스승께는 잘 말씀드릴 터이니, 부디 다른 이들 앞에서는 발설하지 말게나. 먼 훗날, 왕업(王業)이 다시금 아름다움을 완전히 되찾고 교화가 두루 미치게 되면 그때는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지금 이러한 말이 나오면 천하를 크게 어지럽히게 될 터.”

이미 꺽정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비슷한 소리를 해버렸다는 말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이이였다.

양주목에서 임거정의 가형 가도치가 권점에 의거하여 향회에 들게 되었다는 소식은 곧 공보와 정론보를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미 향안을 둘러싸고 민주당 및 그에 영합한 무리들이 한창 다투고 있던 고을에 그 소식이 전해지자, 열에 네다섯 고을 정도에서는 양주에서 임 당수가 한 일을 저들도 본받자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애초에 의민당 입김이 많이 남아 있던 황해도에서도 저 제도 좋다며 따르자는 여론이 일어났는데, 이쪽은 이미 사풍(士風, 선비의 기풍)이 한 번 뒤엎어진 바 있었으므로 금방 그에 따르게 되었다.

그 외에 민주당 덕에 벼락부자 된 사람이 종종 있던 고을에서도, 이 기회에 저들도 은근슬쩍 고을 안의 일에 관여해보고 싶어하던 자들이 여론몰이를 하곤 하였다.

허나 반대로 열 고을 중 대여섯쯤에서는 저 권점의 제도 따르자는 말이 도통 힘을 얻지 못하였다. 아예 선비랄 것이 별로 없는 북변 고을들의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이미 민주당 따르는 이들 사이에서 이미 골이 깊게 파였거나, 유풍(儒風)이 워낙 드세어 한 번 향리들이 흔들리자마자 판세가 뒤집혀버린 경우였다.

물론 이 조선 땅에서 치부(致富)하려면 어지간해서는 민주당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서림이 눈 뜨고 있는 한 이 경향은 강해질 터이니, 올해 향전으로 민주당 당세가 약해진 고을이라 할지라도 민주당의 품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이것만 하더라도 겨우 저들끼리 단합하여 세를 지키는 데 급급하던 지방의 사족들에게는 제법 괜찮은 결과였다.

“그대들 무본사의 공이 어찌 적다 하겠는가? 공거(公擧, 이량) 그대가 특히 큰 공을 세웠네. 자칫 어지러워질 뻔한 군현의 기강을 겨우 바로잡을 단초를 얻었으니.”

임거정 그자가 말과 마음으로 범상(犯上)하는 것을 항상 못마땅히 여겨 왔으나 지금껏 손을 쓰지 못하고 있던 심통원이 자못 통쾌하게 말하였다.

“허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성상께도 반드시 공거 그대의 이름을 말씀드릴 터이니, 초심을 잃지 말고 나라의 근본을 다시 튼튼히 하는 일에 매진해주게나.”

“예, 사장(査丈)어른.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그 앞에서 고개 끄덕이는 자는 바로 이량이었다. 두 사람 모두 윤원형과 같은 권세 탐하는 마음으로 뭉쳤으니, 그 뜻을 이루기 전까지는 동심(同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대에게 이만한 기국(器局) 있음을 알았더라면 지난날 호음(湖陰, 정사룡)이 구설수에 올랐을 때 이 사람도 능히 옹호하러 나섰을 터인데... 아니, 지난 일이니 이제 더 거론한들 소용은 없겠지. 좌우지간 그대가 고생이 많았네. 조심히 들어가시게나.”

심통원에게 인사 올리고 나오는 이량의 마음속에 그 마지막 말이 계속 남았다.

‘이만한 기국’이라.

그 기국은 이량의 것이 아니요, 얼마 전 무본사에서 벌이던 술판 파할 때 슬그머니 나타난 어느 나그네의 것이었다.

나그네 말하기를, 지난 여러 해에 걸쳐 전국을 돌았고, 더불어 멀리 북변까지 다니면서 조선과 그 주변의 정세를 낱낱이 알게 되었다 하였다.

과연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무본사 한량들에게 들려주어, 군현에 있는 그들의 친인척들로 하여금 향회에서 민주당 사람들 꾀어내는 계책을 행하게끔 하였더니, 지금 저 심통원처럼 그를 괄목상대하게 되었노라 평하는 자들이 많았다.

평소에 그들 눈에 저는 어떻게 보였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그네가 알려준 것과 같은 계책을 결코 이량 스스로 낼 수 없는 것 또한 명백하였다.

당분간은, 당분간은 그 나그네의 신세를 져야 할 테다.

“두고 보자. 윤원형도 한 일을 나라고 못 할쏘냐?”

“못 할 게요.”

하늘 보며 혼잣말을 했건만,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대꾸가 나왔다.

“누구냐!”

“그대에게 재주 빌려준 사람이외다.”

나그네는 이량 그와 연배는 비슷한 듯하였으나, 그 얼굴에는 훨씬 험하게 살았음을 증명하는 상흔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 눈빛은,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 역시 보잘것없는 이량마저도 능히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살벌하였다.

“윤원형 그자가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지다 보니, 그가 이룬 것 역시 보잘것없었노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구려. 내 장담컨대, 그대는 윤원형은 물론이요 진복창이나 이기보다도 여러 수 아래요.”

“흥, 네놈이 무얼 안다고 그리 말하느냐?”

“만일 이 사람이 이대로 조용히 사라진다면, 그날부터 그대의 기국에 대해서도 다시 좋은 말 아니 나오게 되리라는 것은 잘 알지. 그대도 잘 알 것이오. 모른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노기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이량이 물었다.

“네놈 또한 바라는 것이 있으니 나를 찾아왔겠지. 그렇지 않으냐?”

“일전에 이 사람이 꾀를 내어준 것은 공짜였소. 허나 이제부터는 값을 받을 것이오. 그 값만 제대로 치른다면, 그때부터는 그대가 뜻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책사 노릇을 해 드리겠소.

마음을 정하게 되면, 내 알려준 곳으로 명월 보름에 사람을 보내시오.”

“알려준 곳이라니?”

“그대 소매에 단자(單子)가 들어 있소이다.”

혹시나 싶어 급히 소맷자락을 들춰보니, 정말로 종잇조각이 들어 있었다.

“여봐라. 여봐라! 무슨 술수를 쓴 것이냐?”

대꾸하는 목소리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요, 그저 어두운 골목에 이량 목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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