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96화 (96/259)

30. 공변된 의론 (4)

수락산에 종일토록 봄비 내리니, 갓 고개 내민 새순의 빛깔이 한결 짙어졌다.

나무하러 나온 상놈은 비가 퍽 추적추적 내린다 투덜댈 것이요, 산 아래서 시나 읊는 선비는 이 풍경 보며 무슨 감흥을 느낄 법도 하건만, 그저 필요에 따라 이곳 수락산에 자리 잡았을 뿐인 두리손은 양쪽 다 아니었다.

그에게 피를 내려준 윤원형은 이곳 수락산을 저의 땅으로 삼을 욕심을 품고 있었다. 기회를 보아 산 전체를 저의 것으로 절수(折受) 받을 심산으로, 산길 올라오는 초입의 땅을 강제로 사들이고, 산 중턱 곳곳에 산장을 지었다.

그 산장 중에는 산을 감시하기 좋은 곳도, 또 세간 이목 피하기 좋은 곳도 있었는데, 이곳은 후자였다.

“곧 귀한 손님이 올 것이다. 대접할 준비를 하거라.”

두리손이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등 뒤 향해 말했다.

“예, 어르신.”

두리손보다 한창 손윗사람인 듯한 자가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우리는 다 같이 개자식들인데, 그 사이에 무슨 어른이 있고 젊은이가 있겠느냐. 쓰임새 다하여 삶아졌든, 주인이 먼저 개같이 죽어서 덩달아 버려졌든, 우리는 모두 개의 자식이요, 그러므로 다 같은 형제다.”

한때 나라를 쥐락펴락하던 소윤 사람들은 허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음을 맞았다. 윤원로와 이기는 윤원형에게 죽고, 윤원형은 임꺽정에게 죽었으며,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진복창은 끝까지 삶을 구걸하다 억지로 사약을 마셨다.

그러므로 불과 오 년 사이에 그들의 문객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일에 손대던 자들은 모두 갈 곳을 잃었다. 그들 중 몇몇은 주인 잃은 이곳 산장에 모여들었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두리손의 수하가 되었다.

“형제는 아우고 형이고 따질 것 없이 서로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하는 자는 형제가 아니다. 알겠느냐?”

“예... 형님.”

개중 두리손을 알아보는 자도, 그 출신을 기억하는 자도 있었다. 어떤 용감한 자는 그것을 입에 담기도 했다.

그자는 두리손의 ‘아우’가 되는 대신, 수락산 나무들의 거름이 되었다. 그 과정을 두 눈과 두 귀에 담은 옛 문객들 중 그 누구도 다시는 두리손에게 대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곧 산기슭으로 내려가 손님을 맞이하겠다. 그사이 채비를 마쳐두거라.”

그리 말하고서 산 타고 내려갔다. 이량 그놈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홀로 산길을 걸으니, 어쩔 수 없이 상념이 밀려든다.

굽이진 길은 오르락내리락. 그 길 따라 산등성이에 닿으니, 멀찌감치 한양이 보인다.

한양, 이 빌어먹을 나라의 모든 것이 있는 도성. 늘 그렇듯 닿을락말락 한 곳에 어른거리는 그곳.

돌아오기까지 고작 삼 년이 걸렸지만, 삼십 년은 된 듯하였다.

처음 그가 윤원형을 버려두고 달아났을 적에는, 그저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도성을 벗어나 아비의 고향 교하에 닿은 뒤, 칼을 들이대며 챙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서 달아났다.

당장 저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모면하자, 그다음에는 온갖 감상이 모두 밀려들었다.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 아등바등 애썼던 그간의 일이 허사가 되었으니,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하여 무턱대고 방랑을 시작하였다. 조선 팔도, 어쩌면 그 바깥 어딘가에 답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는 보았다.

정말로 백정의 아들이었던 임꺽정이 조선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그와 그의 민주당 무리가 팔도 군현과 그 너머까지 손아귀를 뻗치고, 그 손 닿는 곳마다 동조하는 자들이 일어나는 것을.

그토록 두리손 그에게는 높아만 보였던 세상의 벽이, 임꺽정과 그 패거리 앞에서는 주춤대며 물러나다 마침내 여기저기 금 간 채 쓰러져가는 것을.

참으로 고약한 세상, 고약한 나라였다. 불의 위에 불의가 겹친 것처럼 보이니, 그것을 바라보는 두리손의 눈에도 증오와 분노가 켜켜이 쌓였다. 가뜩이나 비뚤어진 성정은 더욱 뒤틀리고, 그 자리에 비웃음만이 남았다.

그러나 두리손을 여기까지 이끌었던 그 재주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두리손은 세상을 유랑하면서도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고작 삼 년 사이에 나라는 제법 바뀌었다. 살림살이는 고작 조금 트인 정도요, 각 군현의 모습도 기껏해야 학당이 조금 세워지고 장시가 조금 더 흥성해지며 도로가 조금 더 닦인 정도였지만, 사람들 머릿속에 든 것은 크게 달라졌다.

임꺽정의 의민당은 조선이 어지러웠기에 비로소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조선은 다시금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탐학스러운 수령과 부패한 관리는 고개를 숙였으나,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것을 넘어 아예 새롭게 짜이고 있었다.

임꺽정의 손아귀 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욕심이 동하고, 비록 같은 마을에서 같은 논밭을 갈지언정 그 눈빛만은 바뀌었다.

흉년에 그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백성들이 모여들어 생긴 장시는, 이제 부귀 얻고자 날뛰는 자들의 터전이 되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은과 명에서 건너온 귀물이 시골 장터까지 비집고 들어왔으며, 그간 관을 피해 숨어 살던 장인들도 이에 질세라 저들의 솜씨를 내보이기 시작하였다.

만일 갑자기 나라에서 이것을 되돌리고자 한다면, 세월을 십여 년 전으로 돌리고자 한다면, 과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백성들은 가만 앉아 굶어죽기를 기다리거나, 조용히 산속으로 숨어들 것인가?

아니면 마치 황해도 의민당이 그랬던 것처럼, 어디 너희 높으신 나리님들께서 직접 와서 세월을 되돌려보라며 도리깨와 낫을 들 것인가?

이 나라가 열린 이래 지금껏 보지 못한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두리손은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나라가 이백 년 동안 쌓아온 장작 위에 임꺽정과 민주당이 섶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두리손 의 손에 놀아나는 이량은 그 위에 기름을 부을 것이요, 이량이 저의 사람이라 착각하는 심통원은 부싯돌을 들고 올 것이다.

그렇다. 이 나라는 불타야 한다.

그 잿더미 위에 서서, 두리손은 그토록 고상하신 대감마님들, 잘나신 선비님들께서 천한 얼자가 종묘사직 구했노라며 보내는 찬사를 들을 것이다.

개성에서 유유자적 지내는 황진이는 고양이 키우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사람 앞에서 귀여운 척을 곧잘 하는 놈들을 모아다가, 새끼를 배면 개중 양순한 놈들만 가려내어 기르곤 하였는데, 농담삼아 말하기를 장차 이것으로 장사를 벌일 생각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지난 겨울 벗 신씨 부인 찾아오는 길에 검은 털뭉치를 한 마리 놓고 갔는데, 어째 신씨보다 명희를 더 좋아하여 그 무르팍에 머물곤 하였다.

오늘도 명희는 ‘검손이’의 털을 쓰다듬고 있었는데, 녀석이 귀를 쫑긋 세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라버니 이이의 한숨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오라버니, 무슨 일인가요? 낭군님도 그렇고, 『공보』에 실린 내용도 그렇고, 분명 양주에서 권점할 때는 우리네 뜻대로 잘 돌아갔다고 했던 듯한데...”

“잘 풀리기는 했는데... 그만큼 석연치 못한 짐덩이를 더 떠안고 와서. 휴우.”

그 말대로, 양주 향할 때만 해도 의기양양하던 얼굴이 지금은 도로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때 검손이가 느닷없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어딘가로 쪼르르 사라졌다. 대저 개는 주인을 알아보기 마련이요, 고양이는 저를 해칠 만한 자를 알아보기 마련이라, 명희네 바깥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귀신처럼 알고 도망치곤 했다.

“양주에서 남명이랑 퇴계 어르신들이랑 밤새 얘기 나누더니 그때 이후로 저 꼴이라오.”

꺽정이가 성큼성큼 마당 가로질러 오더니 명희 옆 마루에 털썩 앉았다.

“대체 뭔 얘기를 했길래 저렇게 기력이 다 빨렸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뒷뜰 공터에 대나무라도 심어야 할까 싶은 심정입니다. 구멍 파서 거기에 강론이라도 하게요.”

이이가 피식 자조하였다.

이이가 저의 의권론을 권점의 제도와 로마국에서 임금 폐한 일을 내세워 보완하려던 것은, 이언적의 소위 군신상생론(君臣相生論)에 반박하기 위한 뜻이었다.

그런데 더 생각해보니, 그 옛날 의민당이 결의하였던 세 가지 뜻을 모두 의권론과 권점을 통해 이룰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다스리는 왕과 같이 되어, 저의 뜻을 제각각 펴고 중의(衆議)가 도출되면 그에 따른다.

모두가 동등하게 저의 생각을 말하고 또 서로 존중하게끔 한다면, 양천의 구분은 절로 폐해지는 것과 다름없고 더불어 그 어떤 선비도 저의 논변으로 인해 화를 당하지 않게 될 테다.

그들이 모여 국법을 만들고 또 고칠 수 있다면, 어느 제도든 만세토록 지켜지며 폐단만 켜켜이 쌓이는 일도 없을 것이므로 늘 때맞추어 경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주이불비 화이부동(周而不比 和而不同) 형국 아니겠는가?

그런데 말대가리네 앞마당에서 조식·이황 두 사람과 논쟁 벌이면서 불현듯 깨닫기를, 이 나라 선비들 대부분은 자신의 말을 결코 곧이곧대로 듣지 않을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왕과 같다’ 하는 말을 들으면, 선비라면 누구든 ‘왕후장상의 씨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 寧有種乎)’ 하는 찬역(簒逆)의 말을 먼저 떠올릴 테다.

“하지만 그게, 당장 궁궐 쳐들어가 범상(犯上)하자는 뜻일 리가 없잖습니까. 답답할 따름입니다.”

“엥? 그게 그 뜻 아녔나? 웬일로 네가 나보다 한술 더 뜨나 싶었는데.”

이이 본인은 더 좋은 나라가 되기만 하다면 임금을 모시든, 그렇지 않든 큰 상관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다만 단군 이래 수천 년 동안 군왕이 있었으니, 이제 와서 국제(國制)를 그렇게 크게 고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리라 막연히 생각할 뿐.

반면 꺽정이 생각에는, 이미 윤원형과 왕직, 그리고 엄숭까지 덤으로 거꾸러뜨린 마당에 임금을 못 끌어내릴 것은 무엇인가 싶었다.

지금 임금으로 있는 그 흐리멍덩하고 어수룩한 녀석이야, 솔직히 아주 밉지는 않았지만, 그 조상 이씨네들은 백정을 백정으로 못 박는 못된 법을 세운 자들이니 굳이 따진다면 꺽정이네 집안의 원수와 다름없었다.

그러니 만일 이이나 다른 이들 중 누군가가 차라리 임금 없는 쪽이 꺽정이와 민주당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그럴듯한 논변을 펼친다면, 꺽정이 또한 그 뜻 못 따를 것도 없었다.

“예컨대 국법을 세워서, 예를 지키지 않으면 바로 죽인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예를 따르겠지만 결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신의 도리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군주가 마땅히 나라에 있어야 하며 다른 소리를 하면 곧 반역이다. 이렇게 몰아가기만 하면, 과연 나라에 인군(人君)이 있노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아비를 잘 두어 보위에 오르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추켜세우고 반론하는 자는 모조리 주벌하는 것과, 그 사람이 옥좌에 앉은 것은 국인(國人)의 뜻이라 확언하고 나라 사람 모두의 이름으로 다스리게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진실한 왕자(王者)에 가까운가?

그저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여기며 바치는 충심과, 그것이 인륜과 도의에 맞음을 믿으며 바치는 충심. 둘 중 무엇이 더 참된 선비의 마음인가?

“지금은 말씀 잘 하시네요, 오라버니. 굳이 애먼 뒤뜰 나무를 파헤칠 것도 없겠는데.”

명희가 치마에 묻은 털을 휘휘 털어내며 말했다.

“우리 사이니까 그렇지.”

이이가 팔을 휘 저으며 주변을 두루 가리켰다. 그 말대로, 민주당 안에서는 별 탈 없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밖에서는 통용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당장 이지함과 동문인 허엽이나 박순조차도 기겁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지함 본인이야 이이가 이런 생각 하도록 부추기고 또 몇 년 동안 청석골 아랫말에서 함께 머리 맞대고 비슷한 궁리도 했으니 이이를 오히려 칭찬하겠지만, 그는 빨라야 올 가을에 겨우 돌아올 터였다.

“글쎄? 그런 얘기를 만약 황해도 난리 시절에 의민당 녀석들 앞에서 했더라면 꽤 호응이 있었을 듯한데.”

꺽정이가 무심히 꼬집었다. 그의 귀에는 지금 이이가 하는 ‘임금인들 못 뽑을 게 무어냐’ 하는 말이 일전에 황진이가 지었던 군주민수(君舟民水) 타령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그때는 선비들이 아니라 일대 백성들 민심을 노렸으니까 그랬지요. 지금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뭐, 그러면 지금 하려던 그 말도 선비들 대신 백성들한테 얘기하면 되겠네. 선비들한테 따돌림당할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거꾸로 선비들로 하여금 따돌림 당하도록 만들 궁리를 하여야지.”

“엇.”

가끔 꺽정이가 이렇게 별 생각 없이 내지르는 말이 이지함과 하루이틀 논쟁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화두를 던져줄 때가 있었다. 그런 한두 마디를 듣기 위해 꺽정이 옆에서 소일하기에는 영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등 뒤에선 나랏님 욕도 한다고 하는데, 지금껏 말한 것은 오히려 거기에 비하면 순하기만 한걸.”

“오라버니 눈빛을 보니 지금 무어라 하든 한 귀로 흘러나올 것 같은데요, 서방님.”

그 말대로였다.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갑자기 이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나갔다.

꺽정이와 명희 눈길이 멀어지는 이이 등짝에 닿아있는 동안, 마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는 은근슬쩍 신씨 부인 있는 옆집으로 넘어갔다.

이 나라에서 임금의 위엄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통의부를 두고 기묘명현까지 신원했건만, 아직 선비들의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 굳어 있으니, 이이가 이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나마 옆에 듬직한 사돈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저 저 혼자 떠들 뿐이었다면 의권론과 같은 글을 펴냈을 때 이미 세간의 비난을 한바탕 받았을지도 모른다.

조식이나 이황쯤 되는 사람이라면, 걱정하면서도 나름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들어주겠지만 그뿐. 결코 그의 논변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거론하거나 자신의 제자들과 이를 두고 갑론을박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임꺽정 말대로, 선비 외 다른 이들을 모두 끌어들이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나도 가끔 참 어리석지 않은가.’

향회 구석에 향촌의 사족 몇몇이 모여서 궁색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어찌 공론이라 하겠느냐. 마땅히 고을 사람들 모두의 뜻을 들어야 하리라. 그것이 권점의 제도 뒤에 깔린 이이의 생각이었다.

그래놓고 지금까지 정론보 같은 곳에 글 올리면서 저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들을 구하였으니, 바다에서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물고기는 나무 위에서 구하는 꼴 아닌가.

휘적휘적 나아가 하비에르 화상 기거하는 집에 닿았다. 오늘도 점잖게 시비 거는 이들에게 한참을 시달린 하비에르가 지친 표정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신부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아, 돈 리. 반갑습니다.”

그러면서도 힐끗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혹시나 이 젊은이마저 저에게 시비를 걸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듯하였다.

얼마 전 히라도에서 도착한 물건들이 있었기에, 그간 십자가 하나와 단출한 침구가 전부였던 방이 제법 구색을 갖추었다.

심지어 책장 구석에는 관세음보살상도 하나 놓여 있었는데, 아마 일전에 니탕카이 따라 북변 다녀오는 길에 챙겨온 것 같았다. 언제고 여력이 되면 그 사연도 물어봄 직하였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책이 많이 늘었네요.”

“다행히 고아(Goa)에 요청한 성경과 여타 서적이 제때 도착했습니다.”

“‘여타 서적’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이 땅이 둥글다 하는 바람에 큰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이곳 조선의 선비들에게 선교를 하려면 성경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하비에르가 책 몇 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흠... 에우클리디스(Euclidis, 유클리드)의 엘레멘토룸(Elementorum, 『기하학 원본』)? 산학 책인가요?”

“산학이라면 산학이지요. 산수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만.”

하비에르가 그 ‘제오메트리아(geometria, 기하학)’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껏 우리 해동이나 중국에서 그리 깊게 다루지 않은 배움의 갈래인 듯하군요.”

이러다가 이이마저도 ‘우리네 성현이 가르치지 않았으니 이는 그릇된 학문이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과한 걱정을 슬쩍 하던 하비에르였는데, 다행히 이이는 하비에르가 알던 그 호기심 많은 청년 그대로였다.

“잘 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혹시 비슷한 서책이 있을까요?”

“비슷한 서책이라면, 경전이 아닌 세속의 학문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예. 이런 산학도 좋고, 다른 것도 좋습니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나 사람 사이의 윤리에 대한 것이면 더 좋고요.”

그 말을 들은 하비에르는 걱정이 완전히 풀렸다. 그러한 분야의 학문이라면, 살라망카(Salamanca)대 같은 이베리아의 여러 대학에서 제법 훌륭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을 터.

이탈리아나 알프스 이북에서 나도는 안타까운 세속의 학풍(學風), 예컨대 그 부도덕한 피렌체 사람 마키아벨리(Machiavelli) 같은 자들의 논설에 반박하고, 올바른 신앙과 인간의 이성 사이의 조화를 꾀하는 그러한 논설이 많이 나오고 있을 터였다.

“신부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왕이면 폭넓게, 신부님을 불편하게 할 만한 조금은 과격한 것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음, 그것은...”

“대신 다른 쪽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번에 가져오신 경서를, 그 대강의 뜻만 추려서라도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듣기로는 근래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 들었는데요.”

채찍과 당근이 잽싸게 교차하는 얄미운 화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말대로, 역관 몇몇을 소개받아 교리문답 정도라도 옮기려 해보았지만, 벌써부터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하비에르는 아직 동양의 ‘참된 글(眞書, 한문)’은커녕 조선말도 능숙하지 못하였고, 기껏 구한 역관들은 조선과 일본의 말에는 밝아도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읽을 만한 그런 글을 써낼 역량이 되지 않았다.

핀투 선장이 여기 있었더라면, 말로만 그렇게 하겠노라 답하고 독실한 학자들이 펴낸 저작만을 소개해주면 되지 않겠느냐 조언했겠지만, 하비에르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먼저 한 가지만 답해주십시오. 무엇을 위해 그런 요청을 하시는 것인지요?”

“이 땅에 배움을 원하는 이들이 많이 있으니, 어찌 선비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널리 배울 기회를 주고자 할 뿐입니다.”

전국에 학당이 생긴 지도 벌써 두 해가 되었다. 성균관이나 향교와는 달리 학당에 몸 담은 일반 백성 대부분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그곳에 적을 두고 있을 수 없었으므로, 주세붕은 처음 학제를 만들 때 아예 ‘학년(學年)’을 정하여 빠르면 이 년, 늦어도 사 년 내에 배움을 마치도록 해두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세붕은 물론이요 이이나 이지함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학당을 나온 이들도 과연 선비라 할 수 있는가?

물론 성현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는 하였으나, 사람 살아가는 도리를 깨우쳤을 뿐이었다. 시문(詩文)은 들어도 고개 갸우뚱할 뿐이요, 예법도 그 원칙은 배웠을지언정 반가의 기풍을 어설프게 따라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 중 정말로 더 현달하기를 원하거나 그저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은 스스로 선비와 같게 될 때까지 더욱 배우고 익힐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들은 사람다운 배움과 삶에 도움 되는 재주 익힌 채 그들의 본디 생업으로 돌아갈 터.

적어도 민주당의 몇 안 되는 서생들은 그렇게들 생각하였다.

허나 과연 그럴까? 그렇게 학당 나온 이들이 꼭 선비가 되려 하거나 백성으로 머물기만 바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른 길을 원할 수도 있을 터. 당장 지금 대국에서도 벼슬과 연 없는 서생들이 양명학을 궁구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런 이들을 상대로, 여러 새로운 학문을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적당히 원리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정리한 의권론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만 지나도, 임금이 어찌하여 임금인지를 백성들이 진지하게 논하고, 선비들 역시 이를 막고자 해도 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설령 가장 완고한 선비라 할지라도 – 이이는 절로 이언적의 늙은 얼굴을 떠올렸다 – 그 백성들 모두를 벌줄 수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터.

“그... 흠. 알겠습니다. 이단임이 명백한 서책은 구해줄 수 없으나, 그러나 그것을 제한 나머지는 고아 쪽을 통해 구해보도록 하지요. 여기, 다른 서책들도 한 번 보시고요.”

“고맙습니다.”

하비에르의 집을 나선 다음에는 사업당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주세붕을 만나 자신의 장구한 계획을 늘어놓으리라.

그저 안다고 믿을 뿐 실지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또 자신이 모르는 것은 알 필요 없다 둘러대는 못된 풍습. 그 어리석음은 깨져야만 한다. 이미 화담 선생 덕에 한 번 금이 갔고, 이어지는 몇 번의 타격으로 그 금이 더욱 넓게 갔으니, 이제는 완전히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묵직한 한 방을 더 날릴 때였다.

이이 자신의 사견(私見)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공론으로써.

새로운 배움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입을 타고 퍼지고, 민주당이 학당의 사람들과 공보의 글로써 이를 북돋는다면, 선비들 역시 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꾀할 것이다.

이이 그도 할 일 많은 사람이므로, 그 시작은 아마 책 한 권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아마 집필을 마칠 즈음에는 이지함도 돌아올 테니, 때맞추어 검토를 받으면 될 일이다.

어차피 천릿길도 한 걸음 아니겠는가. 책의 제목만 잘 지어도 절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 없었다.

선비와 백성 모두의 어리석음을 깨뜨리고자 하는 책이니, 제목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정도이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하비에르의 집을 나서는 이이였다.

가뜩이나 자식 혼처 알아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들 본인은 밖을 나돌아다니면서 혼사 성사시키기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일만 골라서 하고 있었으므로, 신씨 부인에게는 퍽 답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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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의 율곡은 1577년, 벼슬을 내려놓고 해주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 『격몽요결』을 저술합니다. 작중에서와 달리, 학문에 임하는 자세와 유교적 처세 및 수양의 기초를 그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신사임당 사후 방황도 하고, 스승 백인걸 아래에서 성혼(成渾)과 같은 지기를 만났던 원 역사의 이이와는 달리, 작중의 이이는 훨씬 괴상한 인간관계와 학문적 경험을 지니고 있으므로 『격몽요결』의 내용 역시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유럽의 사상계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기 촉발된 새로운 사상적 흐름,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종교계와 보수적 학자들의 반론 등으로 인하여 아주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었습니다. 작중 언급된 살라망카 대학과 다른 이베리아의 대학들은, 이 시기 에스파냐의 경제적 번영과 예수회의 활약 등에 힘입어 이베리아 스콜라주의 또는 2차 스콜라주의(Second scholasticism)이라 총칭되는 사상적 조류를 형성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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