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워서 남 주기 (1)
태양은 정수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한 달째 보는 광경이건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 그들이 이곳 암본에 당도했을 때에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 대신 북쪽으로 살짝 기울곤 하였는데, 그때에 비하면 그나마 덜 괴이쩍은 셈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저는 배에 몰래 탔을 때부터 이 땅이 둥글다는 말을 쭉 믿었습니다.”
천주(泉州) 사람 이지가 붓을 놀려 말하였다.
“이 사람도 조선 떠나기 전부터 그리 믿고 있었네만, 지금 그것이 중한 일은 아니잖은가.”
이지함이 슬쩍 면박을 주었다.
그 말대로였다. 말라카에서 싣고 온 물건들을 모두 저들 에우로파 사람들이 그토록 즐긴다는 향신료로 바꾸느라 한 달째 머물고는 있었는데, 슬슬 핀투 선장에게 조금만 더 머물다 가자고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주 휘국공(徽國公, 주자)도 한 사람이요, 왕양명 선생도 한 사람이며, 우리 수산 선생도 한 사람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옳은 말을 할 수도 있고, 그만큼 틀린 말도 할 수 있기 마련이지요.
당장 저의 칠대조 조부께서 색목인 여인을 아내로 취하셨을 때 집안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요괴가 나올 것이라 하였다지만, 그 후손인 저는 이렇게 멀쩡히 생겼지 않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저의 조상 이야기 꺼내는 것을 보면, 생긴 게 멀쩡하다 한들 속까지 멀쩡하지는 않은 듯하였다.
분명 처음 그들 배에 몰래 탔을 때만 해도 저러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배 타고 먼길 오면서 이지함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어째 사람이 괴이쩍게 – 솔직히 말하면 이이나 꺽정이 정도로 - 변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이지가 묻는 대로 의민당과 민주당의 내력이며, 자신이 제자 이이와 논쟁 나누었던 내용이며 가감없이 털어놓은 이지함 자신에게도 약간의 잘못은 있는 듯하였다. 애초에 저도 세상 구경하고 싶다면서 남의 배에 헤엄쳐서 몰래 탔을 때부터 범상하지 않음을 미리 눈치챘어야 했다.
“이 사람은 몰라도, 다른 선비들로서는 선뜻 그러한 결론에 안주할 수 없는 것일세.”
증거는 낮과 밤이 교차할 때마다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북극성은 보이지 않고 자미원의 별자리들은 고작해야 북쪽 하늘 가장자리에서 조금 보일 뿐. 그리고 남쪽 하늘에서는 조선의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기이한 별들이 매일같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정말로, 하비에르 그자의 말마따나 주자와 『주례』가 틀린 것인가? 더 나아가, 지금까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말하였던 모든 선정(先正)들의 말이 그릇된 것인가?
그저 스스로 깨닫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돌아가서 다른 선비들에게 그들의 견문을 전하여야 하는 이들 대양서생들로서는 반드시 그럴듯한 논의를 마련해야만 했다.
“답답한 일입니다. 조선국 사람들이 예의를 알고 학문에 밝은 것이 우리 중국의 사람과 같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꽉 막힌 것까지 닮았다는 말입니까?
주문공이나 공부자(孔夫子)의 대에 먼바다에 나올 일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그때는 쓸모가 없었으니 그냥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꼴이라고 대충 넘겨짚기로 한 것이겠지요.”
이지함은 물론이요 다른 대양서생들도, 항주와 천주 등에 기착할 때마다 그곳 서생들과 필담을 여러 차례 나누어본 바 있었다.
그러므로 분명 붓으로 뜻을 담고 있건만 이렇게 투덜대는 말투까지 문체로 구현하는 이지의 재주는 실로 기이한 것이었다.
“하늘과 땅의 모양을 드러냄에 쓸모가 없었다... 잠깐. 그렇지! 맞아, 자네 말이 맞네!”
아무리 그래도 뭔가 분개하는 반응이 돌아올 줄 알았던 이지가 깜짝 놀랐다. 그러건 말건, 이지함은 어느새 옆에서 다른 서생들과 함께 고민에 빠져 있던 기대승을 끌고 왔다.
“이보게! 내 깨달았네! 천원지방은 그저 천지(天地)의 덕(德)을 논하는 말이었어!”
어찌하여 이것을 한양에서는 못 떠올렸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양에서였다면, 땅이 둥글다는 증좌를 목도하고 새로운 답을 희구하는 다른 선비들도 옆에 없었을 터이니, 떠올렸다 한들 큰 효험은 없었으리라.
“들어보게. 『역(易)』의 곤괘 문언전(文言傳)에 이르기를, 땅은 ‘지극히 고요하니 그 덕은 모나도다(至靜而德方)’ 하였네. 가장 심오한 『역』에 이러한 전(傳)을 다시었으니, 어찌 이 말을 가볍게 넘기겠는가?”
화담 선생은 스스로 학문을 이루어 예법과 역수(易數)에 모두 능통하였으니, 이는 김인후나 조식, 이황 등도 모두 인정하는 바였다. 그 제자가 주역의 이치를 논하니 어찌 귀를 기울이지 않겠는가. (그리 따지면 임거정도 화담 문하에 있기는 하였는데, 서생들 모두 그 사실은 애써 잊었다.)
“흠... 그렇다면 ‘지극히 유순하되 그 움직임은 강직하도다(地柔而動也剛)’ 한 것도 다시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비 씨는 말하기를 땅은 둥글지만 하늘 가운데 박혀 있고, 일월성신이 그 주변을 돈다 하였는데, 오히려 건곤의 이치로 따지면 땅이 움직이고 하늘이 가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이치에 닿는군. 이 땅이 계속 움직인다면 어딘가 한 곳을 가운데로 정하여야 비로소 질서가 잡히는 것 아니겠는가? 주문공이 낙읍 땅을 땅의 가운데로 정하신 것이 아마 그것일 듯하네.”
대양서생 모두가 한양에서 몇 개월간 열심히 역법을 배웠으므로, 한양과 북경 사이에 역법 계산의 오차가 존재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기준이 없다면 무엇이 오차이고 무엇이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법.
『주례』와 주자의 말씀이, 모두 ‘이곳이 땅의 중심이다’가 아니라 ‘이곳을 땅의 중심으로 정하자’라는 뜻이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기대승이 또 무언가 저의 생각을 덧붙이려다가, 비로소 자신이 말한 바의 함의가 떠올라 절로 말을 그쳤다.
기대승 따라 모여든 다른 서생들도 그 말을 듣고 가만 멈추었다. 엄청난 충격이 일순 그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로 땅이 둥글다 한들 성현의 말씀이 틀리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월 속에서 감추어진 성현 말씀의 참된 뜻을 그들이 스스로 궁구하여 밝혀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껏 그들이 그 뜻을 안다고 단정하였던 다른 말씀은 어떻겠는가? 천하의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글자 하나하나를 새기고 외웠던 것이 실제로는 그 뜻이 아니라면?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곳 암본까지 와서 행한 것처럼.
마치 주문공이 나시고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뜻이 마멸되자 공자께서 나시고, 또 훗날 의리가 이단 앞에서 흐려지니 주자께서 나신 것처럼.
“하, 하하!”
누구의 선창도 없이, 절로 뿌듯한 웃음이 나오고,
“하하하!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
“조선국 천세! 천세!”
이어서 환호성이 자리를 메웠다.
급히 붓 놀려 무슨 말이 오갔는가 물은 이지도, 이지함의 설명을 듣더니 곧장 외쳤다.
“만세! 만세!”
느닷없이 천자의 나라 사람인 이지가 그리 외치니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나라의 광영은 무릇 천자와 제후, 대부의 차등을 두어 만세와 천세, 백세를 구분하지만, 도학에 있어서 어찌 그렇겠습니까? 공자께서는 만세사표(萬世師表)이시니, 성현의 뜻을 밝힌 일에 대해서는 만세라 산호한들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급히 붓 놀려 답하니, 이미 적도의 열기와 그 자리의 흥에 모두 취한 선비들은 하나같이 그럴듯하다 여겼다.
“그 말이 참으로 옳다! 만세! 정학 만세!”
어찌 만세 산호(山呼)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조선에 알린다면 학문의 심천(深淺)을 막론하고 모든 사인(士人)이 기뻐할 것이요, 이제 막 배움의 길에 나선 여항의 백성들도 귀를 기울일 것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건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해달라 하시어 그리 답을 드린 것이니 부디 나쁘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
몇 번 주저하던 끝에 마침내 단호한 말을 내지르는 홍순언이었다. 자신의 웅대한 『격몽요결』 계획을 두고 그리 말하니, 이이가 낙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이 사람도 안타깝지만 저 말이 옳다고 보오.”
옆에서 남사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어째서 그렇습니까?”
“속된 말로 말씀드리자면, 그 권점을 한다고 하여 밥이 나오는 것도, 은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먹고사는 데 바쁜 사람들 보기에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워낙 사람이 총명하다 보니, 이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못 따라온다는 것을 가끔 잊곤 했다. 소위 선비라는 자들도 대개 그러할진대, 그보다 학식 짧은 이들은 어떻겠는가.
하여, 이번에 임 당수 따라 대국 다녀온 이후 자신이 오래 살려면 역관 일은 관두는 것이 낫겠다 마음 먹고 공보 쪽으로 넘어온 홍순언과, 공보 편집하는 일에 익숙한 남사고 두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는데, 돌아오는 말이 이러하였다.
“허나 사람의 욕심이란 대개 남들보다 위에 서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이 글로써 아직 지방의 사족들이 잘 모르는 것을 널리 퍼뜨린다면, 설령 이제 막 학당을 나선 이들이라 하더라도 읽기를 바랄 듯한데...”
“선비라면, 또 선비 시늉 하고자 하는 자라면 남이 모르는 이치를 깨닫는 것을 기쁘게 여길 테지만, 범상한 백성은 물론이요 소위 중인이라 부르는 집안만 하여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논상원에서 나오는 이재(理財) 가르침이 벌써 제법 이곳저곳에 퍼진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그들의 삶에 이득이 될 만한 것을 함께 넣어 퍼뜨려야 하겠지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해는 되었다. 저의 생각을 수십 년에 걸쳐 차근차근 퍼뜨릴 심산이라면 모를까, 단번에 책 한두 권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산학이라든가, 아니면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한다든가, 그렇게 곁가지로 다른 재밌는 것들을 집어넣으면 어떻겠습니까?”
“흠흠, 또 한 번 미안한 얘기를 하게 되었소만, 그대나 이 사람처럼 배움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효험이 있을 것이지만, 당장 공보 받아보는 이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은 열에 하나도 채 되지 않을 것이외다.”
이미 농학부터 시작해 온갖 잡학들이 학당에서 논의되고 있기는 했다. 아직은 주먹구구로 하는 곳이 많다지만, 이대로 몇십 년만 지나면 그러한 잡학도 더 이상 잡스럽다 단정하지는 못하게 되리라.
그때가 되면 선비가 아니면서도 학식 갖추었다 할 만한 이들도 제법 늘어날 터. 그러나 이이는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껏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며 딱히 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을 해보지 못하여 더욱 그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남사고와 홍순언 두 사람을 붙잡고 암만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당장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올 가을이나 겨울쯤 돌아올 이지함이 무언가 신통한 것을 들고 와주지는 않을까,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억지로 품으며 사업당 나설 무렵.
“잡았다, 요놈.”
어깨에 묵직한 들보 하나가 턱 얹히는 느낌이 났다. 보나마나 그의 매제 꺽정이리라.
“장모님께서 요새 너 때문에 얼마나 걱정이 많으신지 아느냐? 암만 제멋대로 날뛸 나이라지만 그러면 못 쓴다.”
몸의 나이로 치면 고작 몇 살 위요, 제멋대로 날뛰기로는 조선 최고라 해도 과언 아닐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매우 억울해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모님께서 찾으신다. 나처럼 착하고 말 잘 듣는 사위도 드물지 않으냐.”
이 또한 명백한 헛소리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꺽정이 말장난에 어울려줄 생각 없던 이이가 물으니, 그제야 꺽정이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다.
“내가 너희 어머님께 긴히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그러자 한숨 푹 쉬시더니 아들 녀석이나 찾아서 데려와 달라고 하시더라.”
“대체 무슨 부탁을 하셨기에...”
“어허, 혼례도 아니 치른 꼬맹이가 들을 내용은 아니다.”
가뜩이나 나이도 방년 십팔 세라, 그 머리의 총명함과 머릿속 생각의 뾰족함과는 별개로 세상의 온갖 일에 민감할 나이였다.
그것을 뻔히 아는 매제가 쿡쿡 말로 찔러대니, 이이도 절로 부루퉁해졌다.
“혼례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누이동생이랑 언쟁 벌이셨다 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껏 서 별감네에서 지내신다고...”
“흠흠, 다른 얘기나 하자꾸나.”
사람됨이 모질지 못하여, 성정 못된 사람은 저의 말에 사람이 부들부들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더 기껍게 여긴다는 것은 모르는 이이였다. 그러나 툭 던지는 물음이 꺽정이 정곡을 찔렀으므로, 놀리는 말은 절로 쑥 들어갔다.
한참 그렇게 머쓱하게, 서로 입 다물고 걷기만 하였다. 그러다 꺽정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대체 왜 그리 혼담을 마다하는 것이냐?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서도.”
“맞습니다. 당수님이 신경 쓸 바는 아니지요.”
이이는 지금도 바쁜 사람이었다.
어머니 신씨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좋은 집에 혼처를 알아보고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이제 신씨도, 그 바깥사람 이원수도 언제 숨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록 그 대에 이르러, 의민당과 연 맺은 것이 아주 큰 성과를 내었고 또한 부친 신명화도 신원을 받아 가문의 격이 매우 높아졌다고는 하나, 신씨는 안심할 수 없었다.
아들 이이는 천하의 기재(奇才)를 지녔지만, 어디를 가든 적을 많이 만들 수밖에 없는 성품도 함께 지녔다. 앞으로 세간의 풍파를 견뎌내려면, 능히 반석이 되어줄 수 있는 집안에서 혼처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거족들은 대개 민주당과 엮이기를 원치 않아 하였고, 간혹 관심을 보이는 집안이 있을 때면 이이가 반발하곤 하였다. 물론 효성이 지극한 이이로서는 그저 이렇게 여기저기 나돌아다니며 어머니의 눈길 피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당수님은 아주 운이 좋으십니다. 그것 아십니까?”
이이가 불쑥 물었다.
“네 누이동생과 인연 맺은 것?”
“그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집안처럼 가풍 유별난 곳과 연을 맺으셨지 않습니까.”
분명 맞는 말이었다. 신씨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명희도, 이이도 없었을 것이요, 의민당 일에 반가의 사람이 뛰어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딸 명희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하여도 결코 백정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하지도 않았을 터.
“양반의 혼례란 사람과 사람이 맺어지는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맺어지는 것이라고 들었다. 우리 처갓집을 그 어떤 집안이 우습게 여기려고.”
“아무리 그래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예의가 있습니다. 거기에 구애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씨가 원하는, 앞날 창창한 그런 집안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집안의 위세와 체통을 고려해서라도, 어떻게든 이이가 날뛰지 못하게 발목을 잡으려 할 공산이 컸다.
“정 그러면 반가 아닌 집안에서 혼처 찾으면 될 일이지, 무어. 반가 여식과 백정 아들놈도 혼사 치르는 마당인데.”
꺽정이가 남의 일인 것처럼 가볍게 얘기하며 어느새 신씨네 솟을대문을 열었다.
혹여 명희가 있는가, 한 번 두리번두리번하고서는 거침없이 집안으로 들어가니, 이이는 속절없이 붙들려 따라갔다. 어느새 발걸음이 안뜰에 닿았다.
꺽정이가 헛기침 한 번 하였다.
“흠흠, 장모님, 사위가 왔소. 여기 장모님 아들녀석도 말씀하신 대로 붙잡아 왔고.”
“들어오시오. 숙헌(이이) 너도 얼른 들거라.”
신씨 목소리에 진중함이 절로 묻어나니 이이는 몸이 굳었다. 섬돌이 원래 이렇게 높았던가?
꺽정이와 이지함, 서림이 저의 어머니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볼 때는 그저 재밌다 여겼는데, 막상 당하는 쪽이 되니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자, 여기 아들이 왔으니, 이제 이쪽을 갈구시면 되오. 따님분께도 잘 좀 말씀 해주시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꺽정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마구 던지니 이이가 또 한 차례 놀랐다.
“사위, 설마 오는 길에 무슨 곡절인지 알려주지 않은 게요?”
“나는 장모님만한 언변이 되지 않아서, 하하.”
딸도둑놈 같은 사위가 아니라 진짜 도적 사위였으니, 이제 와서 후회해도 때는 한참 늦었다. 신씨가 한숨 한 번 내쉰 다음 꺽정이 대신 아들이 불려오게 된 까닭을 이야기해주었다.
“여기 임 당수가 대를 이을 마음이 없다면서, 우선 숙헌 너부터 혼사 치르고 생각하자 하더구나.”
물꼬를 튼 것은 신씨였다.
그 떠들썩한 혼사 이후 왜국을 다녀오랴, 대국을 다녀오랴 쉴 새가 없던 임 당수가, 지난 몇 달은 어쩌다 보니 가만히 도성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지지 않고서야 한동안은 계속 도성에 있게 될 터였다.
젊은 부부가 금슬도 참 좋았으므로, 조만간 명희에게 태기가 있겠거려니 짐작을 하였다.
그리하여 며칠 전, 끝내 오지랖을 주체 못하고 넌지시 어찌 되어가는가 사위에게 물었더니, 퍽 태연자약한 말투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지는 것 아닌가.
‘일전에 양주 다녀온 이후로 생각했는데, 나랑 안사람 이렇게 둘이서는 아이를 아니 가지는 쪽이 좋겠소.’
꺽정이의 선비(先妣)는 아들을 낳다 세상을 떠났다 하였다. 그토록 여인이 해산하는 것이 위태로운데, 어찌하여 세상에 하나뿐일 인연을 그리 위태로운 길로 내몰겠는가. 그것이 신씨가 듣도보도 못한 ‘불임(不姙)’ 선언의 내막이었다.
‘양반님네들이 그 대 잇는 것을 퍽 중히 여김은 나도 잘 알고 있소. 허나 백정들은 그런 것 없소이다.
그리고 대라는 것도 정 따진다면 아비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소? 장모님 슬하에 헌헌장부가 넷이나 되니, 그들 중 누군가는 대를 잇겠지.’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신씨가 캐물었더니, 그제야 꺽정이가 잘라먹은 꼬리와 대가리를 마저 말하였다.
‘나는 앞으로도 종종 여기저기 쏘다니게 될 것이오. 따님이 스스로 한 몸 지키기에 재주가 충분하니, 본인이 바란다면 따님도 함께 따라다닐 것이고.’
그리고 지금이 잠시 평온할 뿐, 언제 앞날에 다시 굴곡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두리손 그놈 기억하시오? 장모님께서도 청석골 아랫말에서 손수 칼 들고 놈과 맞서기도 하셨으니 아마 기억하고 계실 테요. 그런데 그놈이 아무래도 돌아온 것 같소.
그리고 그놈 외에도 호시탐탐 우리 민주당 노리는 놈들도 있을 것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나서서 머리통 깨주어야 하는 놈들이 여기저기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소.
그러니 나는 따님이 무사히 아이를 품고 해산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 도저히 장담할 수가 없소. 안사람이 다치는 것도 원하지 않고, 그보다 더 심한 일 일어나는 것은 내 반드시 막고 싶소.’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마음 간절한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은 알겠소. 그런데 명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였소? 임 서방뿐 아니라 명희도 함께 와서 얘기해야 할 듯한데.’
‘아차.’
명희를 그토록 아끼고 또 그 성정도 잘 아는 사람이, 정작 이토록 중한 일은 명희 본인과 얘기하기도 전에 신씨 앞에서 먼저 발설하여버렸으니, 신씨 생각에도 – 또 그 사연 듣는 이이 생각에도 – 당해도 싸기는 했다.
그리하여 꺽정이는 부리나케 저의 집으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희와 대판 싸운 다음 서림네 집에서 한동안 신세를 지게 되었다.
허나 명희 이상으로 꺽정이 고집도 셌으니, 이 싸움판에서 명희 뜻을 꺾지 못한다면 신씨부터 설득시키겠다는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다.
하여, 신씨가 원하는 집안으로 하여금 이이에게 금쪽같은 여식을 내주도록 설득을 해 줄 터이니, 저도 좀 도와달라 하였고, 말 나온 김에 이렇게 이이도 붙잡아온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어디서 용한 의원이라도 하나 데려오면 될 것 아닙니까? 당수라면 내의원에서 의원 데려오는 것도 불가한 일은 아닐 텐데.”
결국 자신이 누이동생과 매제의 부부싸움에 휘말린 셈이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하였는데, 이제 보니 그 칼날이 물만 베는 게 아니라 옆의 지나가는 사람도 벨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의원이 항상 우리 옆에 따라다닌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 그리고 의원이 암만 있어도 해산하다 죽는 사람들은 잘만 죽더라. 네 누이동생 일인데 걱정도 아니 되나 보다.”
“슬프지만 그것이 우리네 사는 이 세상이오. 그것이 두렵다 하여 아이를 아니 낳는다면 이 땅에 어찌 사람이 남아있겠소?”
“아니, 장모님. 도와주기로 약조했으면서 갑자기 왜 또 날 설득시키려 하는 게요?”
“딸의 마음도 헤아려주시오. 딸이 어찌 그런 위태로움을 모르고서 임 서방을 낭군 삼고자 했겠소?”
“내 마음은 한결같소, 장모님. 이것 때문에 따님이 날 미워하게 된다면야, 그리 되라지. 주변에 거슬리는 놈들 싹 족친 다음에 사과하면 될 일이오.”
여인이 해산하다가 간혹 죽기도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그리 따지면 양반은 양반끼리, 백정은 백정끼리만 통혼하는 것도 세상의 이치다. 꺽정이는 그리 쉽게 단념할 생각이 없었다.
몇 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 부부가 모두 젊었다. 이지함이 돌아오는 대로 함께 고민하여 두리손이고 뭣이고 모두 잡아 죽인다면 명희가 회임하는 것을 두고 걱정할 일도 없어지리라.
그때, 이이가 심상치 않은 웃음을 짓는 것이 꺽정이 눈에 들어왔다. 꺽정이 눈치가 닿자, 애써 그 웃음을 숨겼지만 여전히 티가 났다.
“어머니, 소자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임 당수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될 일입니다.”
“엥, 뭐라고? 그 무슨 소리냐?”
신씨보다 꺽정이가 먼저 언짢은 소리를 내었다.
“의원 한둘로는 누이동생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고, 또 의녀들은 대개 그 배움과 재간이 들쑥말쑥하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 내 말이 그 뜻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겠다는 게냐?”
“나라 안의 모든 의생과 의녀들이 능히 태산(胎産, 임신과 출산)의 모든 일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침 제가 책을 써서 널리 알리려 했는데, 대를 잇고 부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요결(要訣)을 함께 퍼뜨린다면 사람들이 모두 이를 익히려 하겠지요.”
암만 들어도 허무맹랑한 말이라, 꺽정이는 그저 한 귀로 흘렸고, 신씨도 아들이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라 여겼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이이는 제쳐두고 장모와 사위 둘이서, 꺽정이가 손목 비틀면 이이와의 혼담에 나설 법한 집안 중 규수가 참한 곳이 어디 있는가를 진지하게 논하게 되었다.
이이는 가만 듣다가 잠시 측간 다녀온다며 빠져나갔는데, 떠날 때는 한 사람이되 돌아올 때는 둘이었다.
“이야기는 얼추 들었어요.”
“아이고야.”
뒤에서 나는 소리에 급히 고개 돌린 꺽정이 입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우리 낭군의 잘못된 생각도 고쳐주고, 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도 하는 셈인데, 안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장모님 옆집에 새집 마련하지 말 것을 그랬소.”
“뭐라고요?”
“장모님, 사위 좀 살려주시오.”
“임 서방 팔자려니 하시오. 아니면 저기 월하노인(月下老人) 탓하던가.”
신씨가 미간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숙헌아, 아무리 네 재간이 뛰어나다지만, 네가 말하는 그런 의서를 쓰는 것이 어디 하루이틀 사이에 될 일이겠느냐? 명희 너도 마찬가지다. 네 마음은 익히 알겠지만, 그래도 불가한 것은 불가한 것이다.”
“어머니,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지요.”
그사이 잠깐 명희와 얘기 나누면서 어느새 처음 세운 계획을 훨씬 그럴듯하게 만들었던 이이가 저의 생각을 죽 늘어놓았다.
꺽정이가 듣기에는 여전히 먼 세상 얘기였는데, 안타깝게도 신씨가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중에는 찬동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숙헌의 혼사와는 별개로, 두 사람 말을 들어보니 충분히 해볼 만한 일 같구나.”
무릇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데는, 사내아이를 점지받는 구사(求嗣)의 비법부터 남녀 가리는 변남녀법(辨男女法),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 태중 아이와 산모에게 미치는 재앙을 미리 막아내는 양법(禳法)과 각종 금기들, 산도(産圖) 붙이고 길한 방향을 가리는 법 등등, 아주 많은 비법이 있었다.
개중 대부분은 허황된 것이겠지만, 그토록 많은 것 중 하나쯤은 효험 있으려니 여기면서, 사대부가의 여인은 물론이요 여염집에서도 여력 되는 대로 따라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중 정말로 쓸모 있는 것만을 골라내어, 딱 필요한 것만 밝히고 어찌하여 이것이 유효한 방편인지를 누구나 알 수 있게 드러낸다면 어떻겠는가?
『화담자의』에서 비롯한 격물법이 비로소 세상 사람들에게 유용한 배움으로 이어지게 될 터였다.
“잘은 모르겠는데, 엄청 어려울 것 같구려.”
“우선은 도성 일대에서 근래 아이를 낳은 집들을 모두 조사하고, 추계하여 건강한 아이가 나온 경우, 도중에 산모나 아이가 상한 경우 등등을 헤아려 그 수치를 따지면 될 것입니다.”
“엄청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태산 하나쯤 옮기는 것이 될 듯한데.”
“임 당수, 제발 초 좀 치지 마시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사내가 손수 나서서 하기 어려운 법이니, 그만큼 어머니께서 거들어주셔야 할 것입니다. 누이동생도 도와주어야 할 테고요.”
이이가 생각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은 신씨 부인은, 그때 사위에게 초를 더 쳐 달라 할 것을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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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초반에 언급된 이지함의 논리는, 원 역사에서는 한참 뒤 명말 문인 겸 천주교 신자 이지조(李之藻)가 실제로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논리는 청대에도 계승되어, 조선과 중국의 사대부들이 서양 문명과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시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동서양 문명과 과학기술의 조화를 추구하였던 이지조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청대에 이르러 이러한 접근은 서양의 발달한 과학기술은 모두 이미 중국의 고대 문명에서 그 이치가 밝혀진 것이며, 그러므로 그 기술만 배우면 되고 서양의 기초학문까지 들여올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변용되게 됩니다 (임종태(2004), “이방의 과학과 고전적 전통: 17세기 서구 과학에 대한 중국적 이해와 그 변천.” <동양철학> 22).
이전에도 몇 번 언급된 것처럼,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지구설이 유럽에서 널리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지구설의 ‘과학성’이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기라기보다는 이를 정당화하는 사유체계가 먼저 자리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하에서 땅이 둥글다는 것은 충분히 쉽게 성립할 수 있는 것이었고, 반면 천구는 불변하여야 했기 때문에 지동설은 물론이고 달 표면의 크레이터나 바다의 존재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반면 그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19세기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지구설이 한 번 수용된 이후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별반 저항이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