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교각살우 (2)
막 동이 틀 무렵. 가을걷이도 끝나고 서리가 슬슬 내리려는 계절의 조용한 산하를 조선 사람과 여진 사람들이 말 타고 달렸다.
이성계라는 야심 찬 장군과 그 의제 쿠룬투란티무르(이지란)가 왜구 때려잡던 시절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암바 버일러, 아차, 당수님! 여기가 예순재(六十峙)입니다!”
지리산 마적 출신 백정여진 졸개가 외쳤다. 지리산 시절에 종종 이쪽 속리산 자락까지 오가곤 했다 하기에 길잡이로 삼은 녀석이었다.
“알았다. 잠시 멈춰라! 말들도 피를 좀 식혀야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꺽정이가 빌려 탄 말이 거세게 투레질을 하였다.
“사형, 계획은 그대로요?”
꺽정이가 옆의 이지함 보고 물었다. 그나마 이지함이었으니 이 거친 무리를 겨우 따라오기라도 하지, 만일 다른 선비였더라면 충주는커녕 한 이천쯤 지날 때에 진작 낙오했을 것이었다.
“오면서 말한 대로다. 아직 다른 계책을 내기에는 우리가 아는 바가 너무 적다.”
“알겠소. 그러면 여기서 갈라지십시다. 사형께는 열 기를 붙여드리고, 나는 나머지 데리고서 일대를 죽 돌겠소.”
충주목 지경은 견아상입(犬牙相入) 형세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었는데, 그렇게 삐져나온 땅거스러미가 작은 고을 여럿을 둘러싸다시피 하고 있었다. 음성·괴산·연풍(現 괴산시 연풍면)·청풍(現 제천시 청풍면)이 그런 고을이었다.
이곳 예순재 내려가서 동쪽으로 가면 감영 있는 충주 읍내요, 남쪽으로 골짜기 하나 가로질러 숯재(炭峙) 넘어가면 바로 음성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갈라져, 충주 지리에 밝은 이지함이 현지 동정을 파악하고, 그사이 꺽정이와 다른 이들은 소요가 충주 주변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다는 게 지금까지 세운 대책의 얼개였다.
“들어라! 여기서부터는 촌락이 제법 많으니, 슬슬 부딪힐 때가 되었다.”
“거슬리는 놈들은 어찌합니까?”
“죄다 겁쟁이뿐이니, 화살부터 날리고 시작하는 놈들은 없을 게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기 전까진 누구 죽이지는 마라. 대신 죽을 만큼 겁은 주어도 된다.”
“하하! 그것도 재밌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람 겁박하고 재물 빼앗기를 즐기는 도적 출신 백정여진들도, 항상 억센 북변 조선 사람들만 상대하다가 물러터진 남쪽 놈들 괴롭히게 된 야인 출신 백정여진들도 함께 기뻐하였다.
“사형, 그럼 충주에서 뵙겠소. 자, 가자, 이놈들아!”
“말에 올라라!”
말발굽 소리에 놀란 닭이 집집마다 연달아 울었다.
닭의 울음소리가 곧 사람의 놀라는 소리로, 이어서 겁에 질린 소리로 연이어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곳이 쇳골(金谷)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의령 남씨의 아무개가 노비 수십 구 거느리고 경작하는 농장이 근방에 있을 겝니다.”
“그곳부터 가자.”
이미 삼백 리 길을 달려왔으니, 고작 두세 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놈들이 무장하고 있습니다. 울타리까지 제법 세웠습니다.”
눈 좋은 니탕카이가 말했다.
“사람도 여럿 서 있는데, 행색을 보아하니 양민들인 듯합니다.”
“그야, 노비들만으로 세울 수는 없었겠지.”
얼추 사정이 짐작은 갔다. 올해 가을걷이도 끝났으니, 이제 향전의 계절이 돌아온 셈이었다. 가뜩이나 민심 흉흉하니, 지난해처럼 민주당과 그에 영합한 무리들끼리 싸우기보다는 지지난해처럼 갓과 망건이 보이는 족족 쥐어패려 달려들 공산이 컸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저 망신 당하고 뭇매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숫제 문중의 가산까지 날려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허나 이럴 때 반가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첫째가 집안 위세요 둘째가 수많은 노비와 비부, 협호들인데, 난민(亂民) 앞에서 문중 이름은 하등 중하지 않고, 양반의 땅 빼앗아 농군에게 나누어준다는 데 노비들이 마냥 상전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노비들 가운데서 상전 앞잡이 하는 자들, 집안의 서얼들, 그리고 어떻게 잘 꼬드긴 양민들까지 믿을만한 자는 모조리 모아서 세워두었을 테다.
“놈들이다! 놈들이 왔다!”
한참 가까이 다가가서야 저쪽에서도 꺽정이 무리를 보았는지 때늦은 소란이 일어났다.
“햐, 육진 사람들이나 무섭지 남쪽으로 내려오니 정말 별 것 아닙니다그려. 저렇게 날 과녁으로 삼아줍쇼 하고 나돌아다니니. 저거 여차하면 그냥 확...!”
여진 사람 하나가 가볍게 말했다가, 니탕카이의 사나운 눈매를 맞고 입을 다물었다. 때마침 저쪽에서 급히 의관 차려입고 나온 서생 하나가 활을 들어보이며 외쳤다.
“이놈들! 조상께서 물려주시고 우리 집안이 일군 이 전장(田莊)을 너희 반민(叛民)들에게 순순히 넘겨줄 수는 없느니라!”
“네가 남가냐?”
꺽정이가 눈 꿈쩍 안 하고 소리 높여 되물었다.
“그렇... 소만?”
그 외침 한 번에 저쪽은 제법 기세가 죽었다. 상대가 음성이나 충주 등에서 우르르 몰려온 무지렁이들이 아니라, 최소 제대로 무장한 마적떼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리라.
“야, 글줄깨나 읽은 것 같으니 네가 한 번 답해보거라. 국법 어디에 이렇게 마음대로 목책을 쌓고 무장을 하라고 되어 있더냐? 너야말로 모반하는 것 아니냐? 누가 누굴 반민이라 부르는 건지, 참.”
그 무례한 말에 저쪽은 안도하면서도 더욱 겁을 먹었다.
국법 운운하는 것을 보면 범상한 마적떼는 아닌 듯하니 안도하고, 저렇게 행색 기괴한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데 마적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하는 자들인가 하는 생각에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하, 하지만... 당장 지금도 읍내에서는 난민들이 모여서 간악한 짓을 획책하고 있소이다! 그놈들이 바로 반민이오. 우리는 그저 스스로 지키고자 이렇게 뭉쳤을 뿐이외다!”
“그래서 스스로 지킬 수는 있을 것 같으냐? 보아하니 한 각 안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각이 무엇입니까? 그냥 저 목책 앞에 가서 ‘어흥’ 한 번씩만 하면 절로 무너질 듯한데.”
“와하하!”
어느새 ‘암바 버일러’ 뒤에 모여든 자들이 조선말과 여진말로 떠드니, 말로만 듣던 오랑캐 모습에 놀란 남문 사람들은 한결 더 겁을 먹었다.
“아서라. ‘아직은’ 이르다. 거기 남가 놈아. 당장 문 열고 나와라. 네놈 쪽 사정이나 제대로 들어보자꾸나.”
이제 와서 ‘싫다’ 소리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곧 얼기설기 만든 목책 한쪽에서 마찬가지로 어설픈 문짝이 열리고, 남씨 서생이 쭈뼛쭈뼛 걸어나왔다.
“우리는 충주 일대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급히 달려왔다. 필시 민심을 어지럽힌 근원이 따로 있을 터.”
잔뜩 주눅 들었는데, 일전보다는 덜 험상궂은 말투가 들려오니 서생도 조금은 기운을 되찾았다.
“장사의 말씀이 참으로 맞소이다. 충주 고을 유림이 정미년 화변으로 모두 쓸려나간 이래 상놈들만 남게 되었는데, 그들 중 못된 꾀를 내는 자가 있어, 성현의 말씀을 비틀어 간악한 말을 꾸며내니...”
“헛소리는 관두고, 이것만 말해라. 네놈들이 시작했느냐, 아니면 저놈들이 시작했느냐?”
곧 알게 된바, 누가 먼저 일을 벌였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충주에서 그 ‘경자유전’ 소리가 나온 이래 음성 관아 앞에서 잡인들이 난동 벌인 것과, 충주에 남은 유생들로부터 급보 받고서 음성의 사족들이 저들끼리 이렇게 대책 강구하게 된 것은 그 선후를 가릴 수 없었다.
읍내의 군중 사이에서 점차 험악한 말이 나오더니 당장 농장으로 쳐들어가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도, 사족 집안의 서얼들과 힘 좀 쓰는 노비들이 선수를 쳐서 그 군중들을 일시 쫓아낸 것도 역시 남가 서생의 말만 들어서는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었다.
충주에서 사달이 벌어져 인접 고을로 퍼진 것은 맞지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는 셈이었다.
“영 도움은 아니 되는구나.”
“흠흠, 송구하오이다. 허나 이 사람의 이름을 걸고 단언컨대...”
꺽정이가 서생의 말을 단번에 끊었다.
“시끄럽다. 내 다른 놈들 말도 들어볼 테니 너희는 여기 가만히 있어라. 어쭙잖게 다른 고을 사족들까지 끌어들인다든가, 여기 모인 장정들 데리고 허튼짓 한다던가 하면 가만 내버려두지 않겠다.”
그리고 말 위에 도로 오르며 덧붙였다.
“네놈들처럼 농장 지키고 있는 다른 사족들에게도 전해라. 명일까지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거라. 먼저 소란을 일으킨다면 양반이고 상놈이고 병신을 만들어줄 테니.”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도 아니요, 범상하게 말하였을 뿐이었다. 허나 지금껏 남씨 서생이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도 더욱 소름 돋치게끔 하는 위협이었다.
가만 얼어붙어 있는 서생을 내버려두고, 꺽정이가 외쳤다.
“자, 읍내로 가자! 사족들 말을 들었으니, 이제 상것들 말도 들어봐야지!”
“달려라!”
그렇게, 돌개바람 몰아치듯 달려온 자들은 역시 돌개바람 휩쓸듯 멀어져갔다.
음성은 산과 산 사이에 사람이 옥작옥작 모여 살고 있는 작은 현이었다. 조그만 고개 하나를 더 넘으니 곧장 읍내가 나왔다.
이만하면 음성현감이 나와서 문정을 할 법도 하였으나, 동헌이 니탕카이의 눈에 들어올 때까지 그 누구도 꺽정이와 백정여진 무리를 막지 못하였다.
이유인즉, 동헌 앞에 족히 삼사백은 될 법한 장정과 아낙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릇 농(農)은 천하의 근본이라! 그러나 이 나라는 근본을 근본으로 모시지 않으니 큰 잘못이오! 우리가 그것을 고쳐줍시다!”
“그 말 옳다! 땅은 땅을 일구는 자에게!”
양반이든 백정이든 뭉쳐서 목청만 높이면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게 요즘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머릿수 많은 백성들이 머릿수 적은 양반들을 내쫓고 그 땅을 빼앗는다 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 양반들 아래에서 땅 부쳐 먹는 작자들 또한 농군이라는 점은 다들 편리하게도 잊고 있었다.
“음성현에 농장은 의령 남가와 경주 김가 놈들 것이 전부이니, 우리가 다 빼앗고 우리끼리 말을 맞추면 감사도 판관도 손을 못 쓸 테요!”
현감이 뻔히 있는 동헌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황해도 난리 이후로 백성이 날뛸 때 관은 그저 수수방관만 하였으므로, 용기백배하여 그런 무엄한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떠들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멀리서 흙먼지 일며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에워싸라!”
“모두 그 자리 가만 있어라!”
가만 있으란 말 무색하게도, 놀란 백성들은 비명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도망쳤다. 애초에 그것을 노리고 외친 것이었으니, 백정여진들도 따로 쫓지는 않았다.
제때 내빼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무리 가운데서 목청 높이던 자들만 둘러쌀 뿐.
동헌 문이 잠깐 열리고, 현감인 듯한 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흉흉한 기세를 보고 도로 숨었다.
지금 동헌 안의 군사를 모두 내어본들 저들을 당해낼 여력이 되지 않으니 나름 올바른 결정이었다.
“네놈이 우두머리냐?”
꺽정이가 겁먹은 음성 양민들 중 나름 두렵지 않은 시늉하려 애쓰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물었다.
“그렇습니다. 학당에서 사람들 가르치고 있는 유눌(柳訥)이라 합니다.”
나름 예의 바르게 답하니 나오는 말도 그럭저럭 예를 갖추었다.
“민주당 당수 임꺽정이다.”
“아, 당수님! 이렇게 직접 오시다니 참으로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저희를 도우러 오신 것이로군요!”
유눌이 반색하였다.
“그럴 리가.”
“예?”
“충주와 인근 백성들이 헛바람 들어서 허튼소리 한다기에, 관이 나서서 긁어부스럼 만들기 전에 진압하러 왔다.”
“허나 임 당수, 당수께서는 우리 백성들의 편...”
“양반은 백성 아니냐?”
“양반 사족들은 나라와 관의 비호를 받는데, 우리 백성은 오직 민주당과 우리 자신을 믿을 뿐입니다. 마땅히 도와주시시라 믿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가운데서도 나름 당당한 말투가 나왔다. 꺽정이 딴에는 콧방귀만 나올 일이었지만.
“그래서 대낮부터 멀쩡한 다른 사람 땅을 맘대로 빼앗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던 게냐? 우리 민주당이 지켜주리라 믿고서?”
“말씀하신 대로 양반도 저희와 같은 양민입니다. 그런데도 그토록 거들먹대고 다니니, 말이야 저들이 성현의 글을 배우고 벼슬을 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실지로는 그저 논밭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저들과 우리가 같은 사람이 되려면, 이때를 틈타 본때를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유눌이 저의 이름과 달리 달변을 내어놓자, 주변의 다른 이들도 조금씩 어깨를 폈다. 그들 모두, 저들이 잘못한 것은 별로 없다 여기는 눈치였다.
사족들 중에는 정말로 인품 좋은 이들도, 개차반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속했다. 그저 글 배우신 양반님네라고 고개 숙이고, 윗사람으로 모셔주기만 하면 별반 해코지당할 일도 없었다.
허나 그러던 것이 몇 해 전부터 달리 보이기 시작하였다. 누구든 욕심껏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일진대, 저들은 벌써부터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 않던가? 이쪽이든 저쪽이든 다 같은 사람인데, 어찌하여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고개 숙여야 한다는 말인가?
“... 그러던 차에 충주 고을에서 몇몇 사족이 작당하여 양민의 전답을 빼앗으려 한다는 말이 나돌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제멋대로 충주 백성의 재산을 빼앗는다면, 저희의 전답이라고 남아날 리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나서서 제압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미 학당의 일과 향전으로 인하여 감정의 골은 제법 깊어졌다. 물론 여전히 그 옛날 서로 그럭저럭 살아가던 시절 기억하던 자들도 많았으나, 새로이 깨달은 저의 욕심을 차리기 위하여 기꺼이 옛일 잊으려는 자도 많았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한쪽 뺨을 맞았으면 저놈 귀싸대기도 똑같이 한 대 올려쳐 주는 게 이치지. 겸사겸사 평소에 고깝던 것도 앙갚음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백정이고 여기 이놈들도 대충 출신은 비슷하다. 평소에 양반들이 너희를 아랫것으로 대해서 고까웠으니 이제 족치겠다고? 그러면 너희에게 평소 개돼지 대접받은 우리도 너희를 개돼지로 대해도 되겠구나.”
“예?”
“마음에 안 든다고 제멋대로 굴 것 같으면 가장 힘센 놈이 임금 노릇하는 법 아니겠느냐?”
유눌의 입이 벌어진 채 닫힐 줄 몰랐는데, 더 나오는 말은 없었다.
“우선 우리가 이 난리통 정리하는 동안은 헛소리 접어두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이 난리 근원을 색출하는 대로 주변 고을에 소식 전해줄 터이니.
만에 하나 여기 음성을 넘어서 청안(現 괴산시 청안면)이나 진천에 네놈 내놓는 그런 날강도 소리가 전해지게 된다면 네놈의 잘못이다. 알겠느냐?”
그렇게 엄포를 단단히 놓고, 이 마적떼 무리는 다시 동남쪽 괴산 쪽으로 빠졌다. 그제야 음성현감이 문 열고 나와 어찌 된 영문인지 물으려 하였는데, 넋이 나간 표정의 유눌만 남아 있었으므로 끝내 전말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괴산, 연풍까지 진압하고, 청풍으로 넘어가기 전 눈 좀 붙이고자 신풍역(新豐驛)에 들어갔다. 소문 들은 찰방이 나와서 정성껏 역을 소제해둔 덕에 제법 방이 말끔하였다.
허나 조금 누웠나 싶을 무렵 말발굽 소리 들려오니, 바로 충주에 미리 가 있던 이지함이 보내온 졸개였다.
“모주께서 뜬소문 발원한 곳을 찾으시다가, 아예 그 주모자 붙잡으셨습니다.”
꺽정이가 하품 한 번 하고는 나머지 무리를 모두 깨웠다.
“야, 이놈들아! 잠은 나중에 자라!”
마침 보름 지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밤은 제법 밝았다.
도로 서쪽으로 달려가 물이 제법 줄어든 달천(達川) 개울을 넘은 뒤, 그 물길 따라 충주 쪽으로 향했다. 마침내 검암산 자락이 눈에 들어올 무렵에 날이 밝았다.
제법 인적 있는 산길 따라 한두 리쯤 오르내리니, 반대편 산자락 골짜기 따라 밭 몇 두락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밭두렁에서 기슭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제법 그럴듯한 산장 한 채가 있었다.
곧장 달려가니, 이지함이 멀찍이서 인마 오는 것을 보고서 마중을 나왔다.
“왔느냐.”
“사형이 고생이 많으셨소. 헌데 의외로 쉽게 찾으셨구려?”
분명 충주 현지의 동정만 파악하러 왔건만, 어느새 난리 일으킨 범인까지 붙잡은 것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이미 밤새도록 심문을 하였는지, 간밤에 잠은 대략 꺽정이만큼만 잔 모양이었다. 주먹과 옷자락에는 이지함 본인의 것이 아닌 사람의 피가 제법 묻어 있었는데, 꺽정이는 사형을 생각하여 거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대체 어떤 놈이었소?”
“정미년 옥사의 원인이 된 그 역모고변을 기억하느냐? 그때 고변하였던 이홍남이 누군가의 꼬드김을 받고 화를 피한 충주 사족들에게 은밀한 연통을 돌리고 있었다.”
저의 아비와 동생을 모략하여 죽인 이홍남은, 그간 충주에 계속 발 붙이고 살았으나 사람 대접은 받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 세상이 한 차례 뒤집혔고, 기껏 고변한 역모는 그 판결이 뒤집혔다. 그러니 이홍남도 읍내 가까운 곳에 있던 집을 버리고 이곳 산장에 쥐죽은 듯 숨게 되었다.
“저의 이름을 숨기고, 근래 충주의 옛 노비들이 흉계 꾸민다면서 여기저기 떠보기만 했던 모양이다.”
“이름을 숨겼는데 사형은 어찌 아셨소?”
“누가 배후에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없어도, 누가 가장 먼저 그 수상한 연통을 받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죽은 이약빙의 집안과 교분이 있던 최문과 홍문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글을 받았고, 다시 거기서 안씨, 배씨 집안 등으로 소식이 퍼졌다 하였다.
그리고 충주에서 이름 숨기고 그런 짓 꾸밀 만한 이약빙의 일가붙이는 단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충주 사정에 밝은 이지함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추리였다.
그러고서는 이약빙의 집에서 집사노 하던 이를 찾아, 혹시 근방에 작고한 상전이 분급해준 산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충주 파옥할 때 빠져나왔던 이지함이 물으니 집사노도 그리 경계하지 않고 이실직고하였다.
“나도 간만에 무예를 뽐낼까 생각했는데, 네 ‘일가붙이’들이 여간내기가 아니어서 싱겁게 제압하였다. 벼락처럼 들이친 덕에 서한 같은 것도 숨길 틈이 없어서, 증좌란 증좌는 모두 구해낼 수 있었지.”
그러나 그 증좌라는 것도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무본사가 뒤에 있다는 것이야 금방 드러났지만, 그 외에는 별 내실이 없었다.
“충주의 화 당하였던 사족들이 하나둘씩 돌아오니, 언제 자기가 숨어있는 것이 들통나 벌을 받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었겠지. 그러던 차에 두리손 그자가 찾아온 모양이다. 언제고 기별을 할 테니 그때 민심을 뒤흔들라고.”
허나 이 모든 것이 지금은 혼절해 있는 이홍남 그놈을 두들겨 패서 나온 말과, 증좌라고 있는 서한 몇 통의 문구를 짜맞추어 유추해낸 일에 지나지 않았다. 두리손이라는 이름조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으니, 겉으로 드러난 문의(文意)만 보면 무본사의 몇몇 유생들과 안부만 서로 묻고 답했을 뿐이었다.
“이홍남 그놈이야, 무본사에서 저에게 동아줄이라도 내려주리라 믿고서 이런 짓을 했겠지. 헌데 무본사 놈들은 이렇게 시끄러운 일을 벌여서 좋을 게 무어란 말이오?”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끔 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느냐. 백성들 사이에 난언 퍼뜨린 놈을 찾으면 나머지 진상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정랑의 집은 꺽정이가 감영 파옥하기 전 찾아갔을 때와 그 모습이 거의 똑같았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조금 초라해지고 여기저기 거미줄이 눈에 띄기는 했다.
그러나 이정랑과 그 일가만은 옛 청석골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던지라, 이홍남을 감영에 임시로 넘기고서 찾아온 꺽정이와 이지함 일행을 환대하였다.
백정여진 놈들은 관찰사에게 이야기하여 병영에 잠시 신세를 지게끔 하였다. 관찰사는 난색을 표했으나, 꺽정이가 한편으로는 동고 대감 이름을 대고 다른 한편으로는 넌지시 자신이 일전에 감영 찾아왔을 때의 ‘추억’을 암시하니 결국 꺽정이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끝내 못 찾겠구나.”
이지함이 장인댁에 돌아가던 중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정미년 화변 이후 향안에 새로 이름 올린 이들을 수소문하고, 달래보기도 하고, 또 겁박도 해보았으나, 그들 뒤에 딱히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놈들도 모르는 사이 두리손이 계략에 놀아났다거나, 그랬을 수도 있지 않소?”
꺽정이가 따라 앉으며 물었다.
“그보다는, 이미 여러 달 전부터 의권론을 어설프게 접한 자들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가, 갑자기 이홍남이 여기저기 연통을 돌리면서 여론을 일으키니 놀라서 떠들기 시작하였다 보는 게 맞을 테다.
만약 두리손 그놈이 저들을 이용했더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경자유전 소리 내놓은 것은 이곳 충주 사람들이 스스로 궁리하여 한 말이 맞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거 영 곤란하게 되었구려.”
어느 한두 사람이 끄나풀 노릇을 하여 여론을 이끈 것이 아니라, 그저 여러 사람이 우르르 저의 말 내놓다 보니 자연스레 공론이 한쪽으로 치우친 셈이었다.
그것을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 물론 꺽정이와 백정여진들이 힘을 쓴다면 능히 할 수는 있겠지만, 그 후과는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어째 두리손 그놈이 손 썼다 의심되는 것치곤 좀 허술하다 싶기는 했소. 그놈이 의민당 뒷조사할 때 사형 내력도 함께 알게 되었을 텐데, 사형이 이곳 충주 사정에 빠삭한 것을 몰랐을까.”
이지함이 한숨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내지르기만 하면 어떻게 수습을 하든 민주당에게는 골치 아프기만 할 것임을 익히 알고서 그런 짓을 벌였으리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 경자유전 소리는 글러 먹었으니 재론치 말라고 엄포를 놓거나, 반대로 경자유전의 논변이 옳으므로 사족들이 그간 마련한 농장을 처분하여야 할 것이라 하거나. 둘 중 한 쪽으로는 결론을 지어야 했다.
어영부영 빠져나가려 했다가는 차라리 충주로 달려오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리라.
“이렇게 된 김에 그냥 경자유전 그 말을 아예 조정에 전해서 공론에 부쳐보는 것은 어떻겠소? 여기 감사또 시켜도 되고, 아니면 내가 도성 돌아가서 동고 대감 찾아가도 되고.”
“그 유눌이라는 음성 사람 말이 마음 속에 남은 것이냐?”
“그렇지 않다고는 못하겠소. 내가 대꾸는 좀 퉁명스럽게 했지만, 그래도 그놈 말이 나름 일리가 있는 듯해서.
사족들이 지닌 논밭 모두 빼앗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컨대 체통에 필요한 몇 마지기 정도만 남기고 모조리 팔게끔 한다던가, 그렇게는 안 되겠소?”
“이미 선대왕 시절에 기묘명현들이 한전법(限田法)이라 하여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허나 그때도 실패한 일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있지 않소.”
“그건 그렇지만...”
이지함이 또 한 차례 한숨 내쉬고는 한전법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명분이야 이미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정전제 이야기까지 꺼내지 않더라도, 이미 내수사와 윤원형 등 훈척(勳戚)의 농장을 처분한 전례가 있으니 지방 사족들의 농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허나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어디로 빠지든 난국일 뿐이었다.
전답 보유의 한도를 정하되, 당장 한도 이상의 전답을 모두 처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사들이는 것만을 막고 그대로 수십 년을 버틴다면, 마침내 균전(均田)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 작정하더라도 수십 년 동안 법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민주당이라고 가하겠는가? 이미 불길처럼 일어난 충주 민심이 그것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한도를 넘는 전답을 모두 처분토록 하되, 그것을 사들이는 농군들이 그만한 가산 가지고 있을 리 없으므로 수십 년에 걸쳐 차근차근 값을 내도록 하는 방도도 있기는 할 터였다. 이미 전국의 어지간한 군현에 사창이 널리 세워졌으니, 그들로 하여금 거래를 보증토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농군들이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그것을 갚는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또 그 수십 년 기한이 다 지난 뒤 그간 받아낸 값만으로 사족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서림은 이미 몇몇 사족들이 이재(理財)에 눈을 뜨고 있다 하였으나, 뒤집어 말하면 여전히 대다수 사족들은 꺽정이가 보았던 음성의 남씨 집안처럼 그저 울타리를 치고 문을 꾹 닿고서 돌개바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백년대계를 세우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사족들이 선비로 남을 수 있게 할 준비를 병행한다면, 아마 사족들도 농장을 서서히 해체하고 전호(佃戶, 소작농)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고작해야 열에 예닐곱이 동의하는 정도요, 반발하는 이들 중에는 차라리 그 땅에 묻힐지언정 상것의 손에 넘겨줄 수는 없노라 하는 작자도 분명히 있을 테다.
그러니 아무리 지금 나라의 전토(田土)가 균등하지 못해 폐단이 켜켜이 쌓여있다 한들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아버리게 된다면 이 또한 잘못이니 말이다.”
이지함이 장탄식으로 저의 한탄을 마무리지었다.
그것을 끝으로 밤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저 별과 달만 조용히 빛날 뿐.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개 한 마리 짖지 않는데, 문득 꺽정이가 웃었다.
“재밌구려.”
“무엇이 말이냐?”
“여기 이 자리 말이오. 정미년에 내가 사형 구해냈던 그날 밤에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 길 아니오?”
그제야 주변을 달빛 의지하여 둘러본 이지함에게도 옛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하룻밤 일이, 이지함 그가 꺽정이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빠져들어, 지금까지 이토록 우여곡절 거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쇠뿔 바로잡다 소 잡는 것 말이오. 문득 생각을 해 봤는데, 그건 그냥 쇠고기 먹고 싶어서 들이댄 핑계 아녔을까 싶소.”
뜬금없이 꺽정이가 농을 던지니, 이지함도 피식 웃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소. 쇠뿔 잘못 바로잡아서 소가 죽어버릴 것 같으면, 우리 손으로 하지 않고 남에게 시킨 다음, 우리는 고기만 챙겨가면 되지 않겠소?”
“참 도적놈다운 심보로구나. 대체 그것을 어찌 하겠다는 게냐?”
“애초에 향회에서 이 난리가 시작되었으니, 그놈들끼리 부딪히며 해결하게 하십시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우리가 감당하려 할 것은 없지 않소?
다른 놈들이 저들끼리 발끈하며 싸우느라 여기저기 불똥이 튀었다면, 그놈들이 스스로 불길 잡고 재 치우도록 해야지. 우리가 나랏님도 아닌데.”
이 나라에서 근래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은 따지고 보면 민주당 또는 그 이전의 의민당이 벌여둔 데서 시작하였으므로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도적에게 무책임하다 비난하는 것은 닭이 새벽녘에 운다고 모가지 비트는 것만큼이나 헛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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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형태를 띄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려의 행정구역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종종 발생했는데, 인구밀도가 높고 주거의 역사가 오래된 한반도 남부 지역의 행정구역 구분이 대체로 더 엉망이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목이나 도호부처럼 행정상 기능이 큰 지역단위의 경우 이것이 심했지요. 그렇게 여러 이유로 인해 삐죽 튀어나와 다른 지역 안쪽까지 깊이 들어가는 영역을 조선시대에는 ‘견아상입’이라고 불렀습니다.
토지보유에 상한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전법은 우리에게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익의 주장을 통해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 이전부터 꾸준히 발의되어온 제도였습니다. 작중 언급된 것처럼 기묘사림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 바 있는데, 스스로도 지주층이었던 사림의 한계상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상한에 합의하는 데 실패하였고, 더 논의를 진행하려던 차 기묘사화가 발생하면서 결국 더 진척되지 못하였지요. 그 이후로 나왔던 비슷한 논의들 역시, 어떻게 상한을 초과하여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지주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현실적으로 토지보유의 균등에 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