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03화 (103/259)

33. 하늘 싸움꾼 (1)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은 산등성이를 타고, 사람의 함성이 메아리쳐 울린다.

“저쪽이다!”

“쫓아라!”

흑의군 여럿이 창 흔들며 외친다.

대저 범이라는 짐승은 산의 임금이라, 쫓을지언정 쫓기지는 아니하건만, 사람의 임금조차 우습게 여기는 상대 앞에서는 한 마리 얼룩 산토끼 되어 도망칠 따름이었다.

산세를 아는 사냥꾼은 고작해야 창과 그물에 의존할 뿐이요, 제대로 무리를 이루고 그나마 날이 선 병장기를 다루는 관군은 산세를 모르는데, 어찌하여 저들은 기세도 날카로우면서 산세도 잘 안다는 말인가.

두발짐승을 여러 해간 노략질하며 그런 이치를 얼추 체득한 노호(老虎)로서는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하하, 죽어라!”

창 하나가 날아와 호랑이 옆 나무에 박히니, 헐떡이던 범은 화들짝 놀라 산기슭 향하여 달아났다.

“당수, 영 어설프십니다!”

“시끄럽다, 이놈아. 내가 정말로 잡으려고 한 줄 아느냐? 야, 밤아! 얼른 가라!”

“예, 당수!”

늙고 지친 범 정도야 금방 다리로 제칠 수 있는 임밤이가 뛰어내려가, 산 아래쪽 지키는 패에 범의 행방을 전하였다.

“다들 채비 하세요! 알려준 것 잊지들 마시고!”

“예, 아씨!”

아직 앙상한 나무 사이사이로 얼룩이 휙휙 지나오기 시작했다.

“범 내려온다!”

얼룩이 조금씩 커지다가, 마침내 장림(長林)이 끝나고 벌판 열리는 곳에 닿자 그 형상을 온전히 드러냈다. 꼬리는 한 발이 넘고, 머리는 하얗게 세었으니 실로 백액대호(白額大虎)라.

“왔다!”

“몰아라! 아씨 쪽으로 몰아라!”

터전에서 쫓겨난 산 임금이 급히 주변을 살피니, 사방이 모두 사나운 두발짐승이라.

어찌할까 고민하다 저 들판 한쪽을 보니, 딱히 날카로운 것 들고 있지도 않은 두발짐승 여럿이 있었다.

심지어 개중에는 암컷도 있었으니, 저곳이 포위망 중 그나마 약한 곳일 터였다.

활로 찾았다 여긴 늙은 범이, 힘을 짜내어 달려나갔다.

두발짐승들이 무어라 소리치니, 갑자기 창 든 자들이 나타나 앞으로 나왔다. 거기에 눈길 쏠린 범은, 그 암컷을 비롯해 창 든 자들 뒤편에 선 놈들이 길쭉하고 가느다란 대롱을 저를 향해 겨누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별안간, 쾅 하는 천둥소리가 진동했다.

“잡았다!”

천지가 뒤집어지고, 사지의 힘이 빠진다. 마침내 늙은 범은 눈을 감았다.

이것이 바로 고양과 과천 일대에서 사람과 우마를 수없이 살상한 대호(大虎)가, 한 장 가죽이 되어버린 사연이었다.

“... 그러한 사연이 있으니, 본디 범의 가죽이 귀물이라지만 이것은 그중에서도 더욱 귀한 것이오.”

서림이 저의 이야기솜씨가 마음같지 않음을 스스로 한탄하며 말을 마쳤다.

“약속한 조총과 사기그릇에 더하여 이것을 얹어드리겠소.”

“그... 당나라 물건(唐物, 중국 문물의 일본식 통칭), 아니, 대국의 물건은 정녕 구하실 수 없는 것입니까?”

자유민주당의 배를 빌려 제물포로 건너온 모리 타카모토(毛利隆元)가 난색을 표하였다.

하야시 쇼군과 그 정실께서 손수 잡은 요괴 호랑이의 가죽이라 하면, 확실히 값진 보배였다. 그러나 타카모토가 온 까닭은 대국의 귀물을 구하는 데 있었으므로, 마음속 저울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요동의 상황이 다소 어지럽소이다. 일본만 난세인 것은 아니오. 하다(哈達) 부의 니칸 와일란이 예허 추장 나라 추쿵어를 죽이고 칙서를 모두 빼앗았다지 뭐요.”

서림이 그 소식이 마치 이것과 관련 있는 양 포장하여 허풍을 떨었다. 일본국의 큰손 모리 씨 앞에서, 당분간 요동 통하여 교역하는 것은 꿈도 못 꾸게 되었노라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도 평양부 아전 시절부터 엉뚱한 소리를 그럴듯하게 꾸며 둘러대는 데는 통달한 서림이었다. 하다고 예허고 금시초문인 타카모토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습니까? 확실히 저 호랑이 가죽도 대단히 값진 보배지요. 요동의 사정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말씀하신 대로 이 가죽을 대신 받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타카모토의 아비 모토나리(毛利元就)는, 스에 하루카타(陶晴賢) 토벌에 앞서 오우치 씨의 옛 가신들의 환심을 사고자 하고 있었다. 한때 오우치 씨에게 인질로 보내진 바 있던 장남 타카모토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허나 모신(謀神, 모략의 신)이라는 아첨 섞인 평도 듣는 모토나리라면, 대국 귀물 대신 저 호랑이 가죽으로도 뭔가 좋은 수를 낼 수 있을 터였다.

“양해해주시니 고맙소이다.”

“저희야말로, 천하인의 오른팔이신 서 별감께서 이렇게 나와주신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서림의 돌려막기는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었다.

허나 멀어져가는 타카모토의 배를 바라보며 한탄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왜놈들이 임 당수 이름에 껌뻑 죽는 것을 생각하면 몇 곱절은 더 남겨먹을 수 있었는데...”

요동에서 급보가 전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부 자문이 한양에 도착했다. 그 내용은 미리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의민당이 들어서기 전부터 조선인들이 압록강 건너가 장사로 재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요동총병과 의주부사, 평안도 병사 등등이 한통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잘 아는 장거정이었기에, 인정(人情, 뇌물) 끊기는 만큼 대가를 챙겨주고 그 대신 무역을 막게 하자는 발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서림이 꺽정이를 통하여 이준경에게 통사정도 해보았건만, ‘그러게 얌전하게 살지 왜 그랬느냐’ 하는 말을 최대한 체통 차려서 점잖게 꾸민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간 저지른 일이 있으니, 무어.’

당수라는 사람이 멋쩍게 웃으면서 한다는 말이 이러하였다.

비록 근래 사업당이 조총과 배 만들고 사업 벌이려는 이들에게 밑천 알선해주는 등 여러 일을 맡고 있다지만, 개중 수익 낼 준비를 마치고 꾸준한 벌이가 되어주고 있는 일은 몇 없었다.

이미 아전들이 꽉 잡고 있는 공납이 하나요, 의민당 시절부터 이어온 요양에서의 장삿일이 둘째였다.

나머지 일들은 이제 막 자리잡혀가는 정도거나, 『공보』처럼 규모에 비해 실익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자리 잘 잡은 일이 갑자기 난국을 맞이하고, 대국과 엮인 다른 사업도 꼬이게 되었다.

이토록 심란하였므로 옆에서 이지함이 다가와 물었을 때 저도 모르게 날선 대답이 나왔다.

“어째 아니 오는가 싶더니만 여기 계셨구려. 왜 그리 울상이시오?”

“굳이 물어보실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때 이야기한 방도가 있지 않았소? 그것을 서둘러 준비한다면 숨통이 조금은 트일 텐데.”

“그것은 그렇지만...”

“다들 기다리고 있소. 들어가서 얘기하십시다.”

이지함과 서림은 앞서 모리 씨를 맞이하였던 망양당(望洋堂)으로 향하였다. 사업당에서 먼바다 관련 일을 모두 다루는 데 어려움이 있어 차려둔 곳이었는데, 오가는 이들 맞이하는 데 쓰고, 또 행랑은 뱃사람들 숙소로도 삼고 있어, 상량이 얼마 되지 않았건만 꽤 쓰임이 잦았다.

핀투 선장과 소 모리타네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민주당 사람들을 맞이하였다.

“그, 다들 오셨으니 얼른 회의를 시작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서림만큼이나 몸이 달아 있던 핀투 선장이 대뜸 재촉하였다.

민주당 및 그와 엮인 이들 중, 이번 금령(禁令)으로 처지 곤란해진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핀투 선장도 그중 하나였다.

말라카에 들렸을 때, 그의 상관 수자(Leonel de Sousa)에게 조선에서의 교역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다 못해 허풍에 가까운 보고를 올린 핀투였다.

품질 좋은 차와 만드라고라의 일종인 듯한 ‘인삼(Yinn-sam)’, 각종 수공예품 등 훌륭한 교역품이 많이 나오는 조선 왕국은, 무엇보다도 중국 황제의 으뜸가는 봉신(封臣)이자 ‘작은 중국’으로서 중국으로 향하는 으뜸가는 통로라 할 수 있었다.

공무역으로만 따져도, 일본은 고작 10년에 한 번 하는 상행을 조선은 1년에 세 번이나 한다니, 중국과의 교역에 있어서의 가치는 서른 배에 달하는 셈이었다.

그런 엄청난 기회를 얻어내고, 그 땅의 유력자들과 고루 교류하였으며, 신앙의 빛을 그들에게 인도해주기까지 한 사람은, 페르낭 멘데스 핀투라는 아주 훌륭하고 모범적인 선장이었다.

...라는 것이 지금쯤 고아를 지나 희망봉 어귀쯤 돌고 있을 그 보고서의 요지였는데, 리스본에 닿기도 전에 그 보고서 내용을 뜯어고칠 일이 생긴 것이다.

“자유민주당이 용선(傭船)을 하게 되었으니, 그에 맞추어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자 하려던 차였소. 대국으로 향하는 물산이 갈 곳 잃고 곳간에서 먼지와 벗하는 작금의 난국을 벗어날 단초가 될 것이외다.”

“그렇습니까!”

“다른 길이라니요?”

핀투는 우물에 빠졌다가 동아줄 붙잡은 사람마냥 대뜸 탄성 내지르고, 반면 모리타네는 궁금함에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우리 대양서생들이 항주와 천주 등지에 들리면서, 강남의 독서인(讀書人)들과 널리 교우를 맺었소이다. 일세(一世) 전만 하여도 불가하였을 우정이 이제 서로 이어지게 되었거늘, 어찌 세월의 흐름 속에 다시 끊어지도록 방치하겠소?

때마침 능히 오갈 수 있는 바닷길이 열렸으니, 그 편에 소식 주고받을 수 있지 않겠소?”

“그러나 여전히 해금(海禁)의 법이 남아 있습니다. 어찌 통상을 하겠습니까?”

모리타네가 물었다.

“통상이라니? 우리를 통하여 대국 서생들과 연분 맺기 원하는 아국 선비들이 있다면 소개해 줄 것이요, 가끔은 서로 생각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선물’을 주고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비의 교류일 뿐 장사는 아니외다.”

물론 장사가 맞았다. 항주와 천주에서, 유생이라는 자들이 고루하게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손수 생의(生意)에 나서기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이지함이었다.

문명이 천하제일이라는 대국에서도 사풍(士風)이 그리할진대, 조선이라고 선비들이 (또는 선비의 이름 빌린 누군가가) 장사에 나서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허나 지난날 여기 핀투 선장과 조선의 여러 선비분들께서 남양(南洋)에 다녀오신 것은 천하의 이치를 밝힌다는 대의가 있었기 때문 아니었는지요?”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지 않소?

예컨대, 해외(海外)에 아홉 오랑캐(九夷)가 있다 하였는데, 조선과 일본, 여진 외 다른 여섯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고증할 수도 있겠고, 어찌하여 이 땅이 둥근데 옆이나 아래쪽에서는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는가, 그것을 탐구하러 다시 적도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오.”

그리고 오가는 길에, 항주와 천주 등지에 들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미 황명으로 인가받은 전례가 있는 일이거늘 누가 함부로 막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만한 일을 하려면 준비할 일이 한둘이 아닐 듯합니다. 대국 강남이야, 장사하기를 꺼리지 않는 풍속이 신사(紳士)들 사이에 이미 자리를 잡았다지만, 조선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도 히라도와 고토에서 마츠라 당과 서해의 딴 짓 감시하는 데 이골이 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딴지부터 걸고 보게 된 모리타네였다. 임 당수 앞에서는 그 버릇을 능히 감출 수 있었으나, 여기서는 절로 튀어나왔다.

돕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발목이나 잡는 모리타네를 핀투가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이지함이나 서림이 뭔가 반론해주기를 기다렸는데, 헛된 기대였다.

“소 공(公)이 잘 짚으셨소. 요동을 통한 상행은 이미 수십 년 넘게 이어져 왔기에 우리 당이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이 바닷길 상행, 아니, 교유(交遊)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당의 손으로 이어야 하는 것이오.

아무리 빨라도 여러 해가 걸릴 것이외다. 그리하여 행여 이 기간을 줄이거나, 바닷길이 자리를 잡는 동안 이를 갈음할 만한 방책이 있는가 싶어 이렇게 모임을 청하게 되었소.”

그사이에 고아나 리스본에서, 저의 보고서를 지나치게 감명 깊게 읽은 뒤 엉뚱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무리 빨라도 여러 해’라는 말을 듣자 핀투의 이마에 식은땀이 서렸다.

“돈 소(모리타네), 방법이 없겠습니까? 듣기로 귀국 사람들은 그렇게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도 무역을 잘 해 왔다고 들었는데...”

핀투가 멋모르고 그 얘기를 꺼내니, 이번에는 모리타네도 당황하였다.

이미 이지함과 서림 두 사람도 그 말을 옮겨듣고서 모리타네만 바라보는 상황. 그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모리타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송구스러운 부탁입니다만, 다른 사람, 특히 규슈 사람들에게는 제가 이런 말을 했음을 알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도적들이 날뛰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견선(歲遣船)이 막히고 난 뒤, 종종 일본국왕이나 유구국왕의 사신들이 찾아오곤 했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정말로 교토의 하타케가와(畠山) 씨가 쇼군을 대신하여 보내거나, 류큐의 쇼(尙) 씨가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오우치나 쇼니 씨가 적당히 꾸며서 보내는 사절이었습니다. 간혹 오스미(大隅) 국의 시마즈 씨도 한몫 거들곤 했지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절대 발설하지 않았을 비밀이었다. 그러나 이미 모리타네는 대마도 그 좁은 섬을 벗어나 뜻을 펼치고 있었고, 또 눈앞의 조선인들이 여간 조선인이 아님도 잘 알고 있었다.

“거짓 사절(僞使)이 있다는 것은 아국에서도 알고 있었다 하오. 다만 그렇게 올 때마다 예의를 어겨가면서까지 우리를 상국으로 추켜세우고, 또 가져오는 물산 중 귀물이 적지 않았기에 받아들이고 사여품을 내렸을 뿐이라지.”

모리타네가 잔뜩 각오하고 고백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싱거운 답이었다.

“그것이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일본이야 국군(國君)의 위엄이 떨어지고 각지 태수들이 할거한 것이 여러 해니 그렇다 쳐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핀투만큼은 아니어도 꽤 답답한 지경이었던 서림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대신 지금 우리에게는 여진 야인들과 통하는 바가 있지 않소?”

“허나 야인들 중에서도 대국에 귀부한 부족들은 모두 위소(衛所) 제도에 따라 봉해져 있다 합니다. 칙서가 없으면 요동은커녕 북경까지 직접 나아간다 한들 교역할 수 없을 텐데요.”

“어차피 몇 해만 견디면 될 일이오. 또 그사이 요동에서도 끝내 우리 민주당이나 다른 조선인들과 교역하며 이익 취하던 것을 잊지 못하고 금령을 도로 풀 수도 있는 노릇이고.

오래 갈 계책이 아니라, 그저 몇 번만 통하면 되는 속임수를 고안하는 일 아니오?”

그러고 보니 이지함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억지 수작은 우리보다 더 능숙한 이가 있지. 한양에서 마저 이야기합시다.”

꺽정이 있는 한양 쪽을 바라보며 이지함이 씩 웃었다.

신(Deus)을 어찌 이 땅의 말로 옮길 것인가? 그와 비슷한 뜻의 낱말은 여럿 있되, 거룩한 은총을 담아낼 그릇으로 삼을 만한 낱말은 찾기 어려웠다.

하비에르는 처음에는 ‘데우스’ 음역을 원했는데, 언문이라면 모를까 진서로는 그대로 옮기기가 곤란하였다.

이윽고 음이 비슷한 ‘뎨(帝)’ 자를 넣어서 ‘상제(上帝)’로 옮기는 안을 떠올렸는데, 그것이 대략 어떤 뜻으로 통용되는지를 ‘돈 리’에게 들은 이후로는 영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말일지언정, 하비에르 생각에 상(上)은 너무나 막연하고 멀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땅의 사람들이 야만인이라고 낮추어 보는 타타르 사람들(여진족)으로부터 해법을 얻었다.

하비에르가 지난날, 사지 꽝꽝 얼려가며 포교했을 때 생긴 몇몇 여진 교인들이, ‘데우스’라는 낯선 발음 대신 저들 마음대로 압카 어전(Abka ejen)이라는 말을 쓰고 있던 것이다.

진서로 옮기면 천주(天主). 천(天)이란 유학자들 사이에서 그나마 신과 가깝게 쓰이는 말이요, 주(主)란 곧 주님(Dominus)을 가리키니 참으로 좋은 역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비에르가 역관들에게 구술하고 이이가 검수하는 교리서의 이름은 『천주실의(天主實義)』가 되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굳이 하비에르가 창작할 것도 없이, 그간 하비에르를 찾아와 심문에 가까운 문답 주고받던 조식과 여타 조선 선비들과의 대화를 떠올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언어 또는 사고의 차이로 인하여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밤에 애먼 이불이나 걷어차곤 했는데, 이렇게 재반론의 기회가 오니 하비에르로서는 여러모로 기쁜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토록 하비에르에게 큰 도움을 준 북쪽 땅의 신도들이 그 믿음과는 별개로 성직자가 없어 제대로 미사도, 성사도 거행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북쪽 땅에 머물면서 신도들을 이끌기에는 아직 한양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라 곳곳과 멀리 북쪽을 누비고 다니는 임꺽정의 아랫사람들, 그 ‘하얀 타타르(백정여진)’ 사람들 중에도 믿음의 길로 찾아오는 이들이 한둘씩 생겼다. 이들이 한양에 머물 때는,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소소하게나마 미사도 집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손님 한 사람이 찾아와서 그것을 구경하였다.

“오늘도 오셨군요.”

임꺽정 바로 아래에서, 그 사나우면서도 일면 순박한 자들을 통솔하는 기병대장 니탕카이였다.

“안으로 드시지요. 북쪽의 추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날이 춥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비에르는 그사이 조선말이 제법 늘었다.

『천주실의』 검토할 때를 비롯하여 틈틈이 돈 리와 다른 총명한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하거니와, 북변의 추위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나마 통하는 말인 조선말을 열심히 숙달하였기 때문이었다.

중국 문자는 여전히 그의 눈에는 지렁이 기어가는 자국이었고, 그 경전을 인용하거나 거기서 유래된 어려운 낱말을 쓰는 선비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선비가 아닌 다른 이들과 일상적인 대화 나누는 정도는 이제 능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도 저희들 사는 육진에 오실 생각이십니까?”

니탕카이가 나름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 니탕카이가 부드러운 말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상대는 하비에르 하나뿐이라, 그가 이런 말투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바깥에는 없었다.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어찌 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쁘신 와중에 좋은 말씀 해주러 오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니탕카이 눈이 하비에르의 방 한편의 관세음보살상에 가서 닿았다.

니탕카이가 갑자기 말수 적어지게 된 그날, 하비에르가 다 불탄 마을의 어설픈 불당에서 챙겨온 물건이었다.

“무언가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이 있으신 듯하군요.”

“응어리라. 맞습니다. 평소 품고 있던 응어리보다 더 큰 것이 갑자기 얹혔지요.”

“말씀하시고 싶으실 때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 오늘 아침에 암바 버일러, 그러니까 임 당수께서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서두부터 그렇게 창대하니, 뒤에 어떤 놀라운 말이 이어질지 벌써 기대되는군요.”

처음 이 나라에 당도했을 때, 임꺽정의 완력만큼이나 남의 사정 따위 신경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날뛰는 그 심보도 여러 사람을 곤란케 할 수 있음을 아주 잘 겪은 하비에르였다.

남의 험담을 즐기는 것은 세상 모든 민족의 공통점이라, 니탕카이도 저의 말 따라 살짝 웃을 줄 알았는데, 니탕카이는 그저 진지할 뿐이었다.

“요동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아느냐 물으시더군요. 그것을 해결할 방도가 있는데, 저와 제 동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하셨고요.”

“허어, 대체 무슨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기에.”

하비에르가 맞장구를 쳤다.

“말씀하시기를, 저더러 나라 하나 세워 보지 않겠느냐 하시더군요.”

하비에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나라’라는 조선말의 뜻에 자기가 아는 뜻 외에 다른 것이 있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그만 맞장구할 때를 놓치고야 말았다.

--- *** ---

조총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생긴 한 가지 변화는, 호랑이 사냥이 훨씬 간편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총 등장 이전의 호랑이 사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완전히는 알 수 없지만, 대개 다른 산짐승을 사냥하듯 활과 창 따위로 몰이사냥을 하거나, 아니면 작중에도 언급된 함기 등 덫에 의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호랑이 사냥은 어렵고 위험할 뿐 아니라, 상당한 인력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종 연간에는 관에서 설치한 함정에 호랑이가 걸려든 것을 신고하기만 해도 포상을 줄 정도로 민간의 호랑이 사냥을 권장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명종 연간에는 국기가 문란해지면서 그나마 관에서 주도하던 사냥마저 끊겨, 선조 즉위 초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과천에서 날뛰며 가축 4백여 두를 잡아먹는 등 경기도 일대에서도 호환이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형세는 조총이 등장하여 민간에서도 (비교적) 간편하게 호랑이를 잡을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바뀌게 됩니다. 조선 후기, 조선인들이 빠르게 산림을 개간하고 농지를 늘려나갈 수 있게 해준 숨은 공신 중 하나가 조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전에 언급된 것처럼, 한때 서일본 유수의 세력을 일구었던 오우치 씨는 다이네이지의 변으로 순식간에 몰락하게 됩니다. 그간 일궈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우치 요시타카가 문치파를 중용하면서, 무단파 가신들이 불만을 품고 결국 주군을 살해한 것이지요. 무단파의 행동대장이자 명장으로 이름 높던 스에 타카후사는 이후 꼭두각시 주군을 옹립했는데, 문치파 가신들은 동조하지 않았고, 오우치 세력은 빠르게 공중분해됩니다. 스에 하루카타 역시 1555년 모리 모토나리와의 싸움에서 패해(이츠쿠시마 전투) 전사하게 되지요.

모리 모토나리는 오우치의 가신으로 시작하여 오우치 씨와 아마고(尼子) 씨를 모두 멸하고 모리 씨를 일으켜 세운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의 대를 거치며 모리 씨는 그 손주 테루모토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총대장을 맡기도 하는 등 ‘전국구’ 세력이 되었고, 패전 후에도 조슈(長州) 번을 맡아 근대까지도 그 존재감을 유지하게 됩니다.

원 역사에서 ‘천주’라는 역어는 마테오 리치보다 몇 년 앞서 명에 도착한 루지에리(Ruggieri, 나명견) 신부의 『천주실록』(1584)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북경에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마테오 리치는 이후 『천주실록』의 내용을 보완하여 보다 유교 지식인들에게 익숙한 표현과 논리를 사용한 『천주실의』를 저술하게 되고, 이는 다음 세기에 조선으로도 전해지게 됩니다. 중국과 조선 양쪽에서 익숙했던 ‘상제’라는 표현을 두고 ‘천주’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이 역어가 당시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만족스러웠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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