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08화 (108/259)

34. 큰 말은 죽지 않는다 (1)

다점(茶店)에 앉아 향긋한 차 한 잔과 더불어 점심(點心)을 즐기니 이것이 신선의 경지라.

“들으셨습니까? 조만간 북경 조정에서 해금(解禁)을 푼다는 말이 있답니다.”

“하! 자네는 그런 헛소문을 믿는가? 조정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해금을 푼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백성들이 휘왕사에 제물 바치던 것이 효험이 있지 않고서야.”

“그래, 엄숭 그자라면 모를까, 서 수보께서는 청렴하시니 우리 같은 상인들 사정 따위 보아주시지 않을 것일세.”

천주(泉州)의 어느 다점에서, 상인들이 와글거리며 장사 논하는 것을 홀로 앉아 바라보며 서생 이지(李贄)는 생각하였다.

거인(擧人)까지만 오른 뒤 장사에 뛰어든 신사들과 처음부터 장사로 업을 살던 이들이, 은을 향한 욕심만으로 뭉쳐 저토록 마음 터놓고 교류한다.

서로 편 가르고 짓밟으며 아첨하고 모함하는 조정의 사람들이 장사꾼보다 못한 것 아니겠는가?

이지의 눈앞, 모락모락 김 올라오는 찻잔 옆에는 문방사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어지간한 문인(文人)이라면 이토록 잡인 오가는 곳에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므로 퍽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 또한 기이한 서생 아닌가.’

이지가 혼자 웃었다. 그가 찾아와 이상한 언동 하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므로 주변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지는 어려서부터 총명함과 더불어 괴팍함으로 이름을 떨쳤다. 글공부에 힘써 향시에 급제할 무렵에는 그 기행이 조금 줄어들었는데, 근래 조선 사람들과 더불어 먼바다를 한 번 다녀오더니 오히려 괴팍함이 소싯적보다도 늘었다.

허나 이지의 눈에는, 오히려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괴팍하고 어리석을 뿐이었다.

사시사철이 여름과 같다는 그곳에서, 이지는 조선 사람들과 더불어 천하의 이치를 고민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그 자리에도 함께하였다.

그러고서 돌아와 보니, 소위 도학이라는 것은 고루하고 시시할 따름. 이지함과 같은 선비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없었다. 그 이지함도 결국 어쩔 수 없이 꽉 막힌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이지 주변의 ‘도학군자’들에 비하면 성현과 같았다.

성현의 발자취를 좇는다는 자들은 그 발자국만 보느라 앞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느니, 차라리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 자들을 찾아 바다로 나아감이 마땅하리라.

며칠 전, 이지는 조선국의 수산 선생 이지함이 보낸 글을 받았다. 해금령을 우회하여 강남의 신사들과 교역 아닌 교역을 할 심산인데 혹 거들 생각 있느냐는 게 그 골자였다.

아마 일전에 조선의 ‘대양서생’들이 항주와 천주에 들렸을 때 시문을 주고받은 바 있던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글이 갔을 것이다.

세상은 바다요 사람은 물고기라면, 호걸은 그 중의 고래일 터. 고래를 만나려면 먼바다로 나가야 하고, 호걸을 만나려면 별천지로 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붓 들어 써 내려갔다.

“수산 형님께 아우 굉보(宏甫, 이지의 字)가 글을 올립니다.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생지(生知)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까닭은 소위 겉치레 의리(義理)에 구애받기 때문이니, 밝고도 밝은 성정에 티끌이 켜켜이 쌓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우 굉보에게 더없이 재미있는 일을 겪게 해주신 수산 형께, 그처럼 티끌과 같은 말을 감히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닐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품은바 뜻을 직고(直告)하려 합니다.

귀하게 얻은 교유의 기회를 장삿일에 쓰려 하신다니, 이 아우는 참으로 실망하였습니다...”

장마철도 지나고, 이제 여름이 슬슬 끝날 기미를 보일 무렵이었다.

북변에서 큼직한 일 여럿 벌이고 돌아온 꺽정이는 명희와 오붓한 한때를 보내고, 꺽정이와 돌아오는 대신 북방에 남은 하비에르 때문에 멈춰 있던 이이의 『천주실의』와 『격몽요결』 작업은 같은 예수회의 알카소바(Pedro de Alcaçova) 신부가 하비에르의 청을 받고 급히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재개되었다.

그간 한양과 동래, 제물포 등지에서 먼지를 벗삼고 있던 조선과 일본의 물산은 의주대로 타고 만포로 향하고, 동래에서는 복건 선공들이 조선 사람들과 힘을 합쳐 처음으로 배를 바다에 띄웠다.

대저 중원의 선공들은 그 배를 만든 지역에 따라 배의 종류에 이름을 붙이니, 복선(福船)을 바탕으로 하되 조선의 배 만드는 기법도 조금은 들어간 이 새로운 배의 이름은 내선(萊船)이 될 것이었다.

학당에서 주학 배운 선인들은 자유민주당에서 보낸 사람들과 함께 그 내선을 몰고 서쪽 바다를 누비고 있었는데,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삼남 전역의 대동미(大同米)를 실어 올 준비 하랴, 운료(運料) 받고 제주도 오가랴 바빴다.

“뭐, 얼추 만사형통 아니겠소?”

명희와 함께 흑의영에서 즐거운 단련의 한때를 보낸 - 물론 두 사람에게 쌍으로 괴롭힘 당하는 조총수들에게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 꺽정이가, 화약 더 사 달라고 서림에게 조르고자 사업당 찾아온 길에 사형 이지함을 만났다.

“헌데 사형도 그렇고, 서림이도 그렇고 어째 다들 낯빛이 어둡소.”

“꺽정이 네 주변의 일이야 만사형통일지 몰라도, 나머지 일에서는 영 소득이 없으니 말이다.”

“소득이 없다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이 사제가 친히 북방까지 가서 길을 뚫고 왔는데.”

“그래, 네 덕에 그런 낭보라도 있으니 낯빛이 어두운 정도로 끝났지. 안 그랬더라면 앞날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며 대책 마련코자 또 다들 모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흑의영 마당을 흑의군들이 다시 쓰게 된 것은, 그곳을 빌려 쓰던 전정공회가 농번기를 맞이하여 일시 해산하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거의 반 년을 꼬박 논쟁 벌였음에도 큰 성과가 없었으니, 성상께서 황공하옵게도 대훈(大訓) 내리신 이래 한전법에 따라 사족들의 농장을 처분한다는 큰 방향 하나만 겨우 합의하고 그 세칙에 있어서는 진척이 하등 없었다.

“전정공회야, 애초에 답 없고 누구 하나는 삐질 수밖에 없는 일을 저들끼리 싸워서 해결하라고 만들어놓은 자리 아니요?”

“그건 그렇지만, 끝내 아무런 소득 못 내면 탕평당만큼이나 우리도 곤란해지지 않겠느냐.”

탕평당 쪽에서도 나름대로 한전법 취지에 대해 지방의 사족들을 설득하고자 애썼지만, 애초에 멀쩡한 저들의 전장(田莊)을 왜 처분해야 하느냐며 강짜 부리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으므로 애를 먹고 있었다.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전정공회 일 하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사업당 전체가 영 침울해 보이던데. 서림이까지 얽힌 일 같은데, 내게도 좀 알려주시오. 서림이한테 뭐 하나 청하러 가는 길인데, 영 때가 좋지 않다면 눈치껏 후일을 기약하든가 해야지.”

이지함이 잠깐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서 별감과 다소 언쟁을 벌였다. 어쩌다가 조금 나도 평정심을 잃었는데, 그 때문에 서 별감도 노기를 띄었으니 아랫사람인 사업당 서리들도 따라서 숨죽이고 있는 것일 테다.”

“아니, 나이들도 다들 드신 분들께서 뭔 언쟁을 그렇게...”

넋의 나이로 따지면 서림과 이지함 두 사람보다 더 늙은이지만, 하는 짓거리는 딱 제 몸의 나이와 걸맞는 꺽정이가 뻔뻔하게 말했다.

“다 이 서한 때문이었다.”

이지함이 서신 한 통을 내보이며 변명하였다.

“선비님네들이 작정하고 쓰는 글은 읽기 어렵소. 사형이 대신 읽어주시오.”

“일전에 천주에서 몰래 상 투메 호에 탔던 이지라는 대국 젊은이가 있었는데, 이번에 강남 쪽 장사길 뚫는 일 때문에 글 보냈더니 답장한 바가 이와 같았다.”

시작부터 이지함에게 실망하였다며 거창하게 운을 떼는 그 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 아우가 핀투 선장의 해도를 보니, 지구 만방에 사람 살지 않는 곳이 없어, 배 타고 나아가면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이미 이 아우의 칠대조 임 선생(林駑)께서는 대식국(大食國, 아라비아 반도)까지 상행을 나가시어 배필을 구하신 바 있습니다. 대식국에서 바다를 따라 깊게 들어가 좁은 땅 한 줄을 거치면 곧 서양 사람들이 지중해라 자칭하는 작은 바다가 나오고, 그곳을 건너면 바로 애우로파 땅입니다.

천하가 이처럼 좁아 하나의 마을과 같은데, 어찌하여 수산 형께서는 고작해야 마당과 울타리 사이에서 오가려 하십니까? 핀투 선장의 나라 불랑기(포르투갈)는 나라가 작고 사람은 적어 우리 복건성 하나보다도 궁벽한데도 대선(大船)을 만들어 온 지구를 오가니, 바로 이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운남(雲南)의 찻잎과 사천(四川)의 비단, 그리고 절강(浙江)의 도자기는 애우로파에서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게 팔린다 합니다. 우리가 귀한 인연을 얻었으니, 이로써 자금을 모아 중원과 조선, 일본의 귀물을 사들이고 큰 배를 건조하여 직접 나아가 저들에게 파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거기까지 들으니, 무엇으로 언쟁 벌였을지가 꺽정이 눈앞에도 선했다.

보나마나 그의 사형은 이 글을 받자마자 참으로 옳다면서 사업을 더 크게 벌이자 하고, 서림은 지금도 이미 사업당이 벌려둔 일이 적지 않고, 더구나 임 당수 말대로라면 언제 두리손과 그 일당이 또 무슨 수를 쓸지도 모르는데 무리한 짓을 하면 안 된다며 말렸을 테다.

다른 일은 몰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일에 있어서는 쇠고집인 이지함이었으므로, 서로 물러나지 않고 꿋꿋하게 저의 얘기만 하다가 결국 언성이 높아졌으리라.

“그래도 재정에 관한 일이라면 서림이 말이 어지간하면 더 맞지 않소. 두리손 그놈은 나도 겪어보고 사형도 아주 가까이서 겪어보았으니 잘 알 테지만, 설령 큰일은 못 벌여도 우리가 하는 일 꼬아버리는 것 정도는 능히 할 수 있을 것이오.”

꺽정이가 말리는 시누이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꺽정이가 속 긁는 것을 한 두 번 겪어본 것은 아니었던 이지함은 딱히 노여워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이와 꺽정이 두 사람을 함께 겪으며 눈치 없는 사람 앞에서 평정심 잃지 않는 데는 도가 튼 덕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꺽정이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가뜩이나 요새 균역법으로 각지 병영에 편입된 아병(牙兵) 군관들이 간혹 저들끼리 모이거나 친족들을 만나서는 민주당 흉을 본다는 말이 돌고 있었는데, 한두 곳이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비슷한 말이 나오고 있었으므로 심상치는 않았다.

“마저 들어보거라, 꺽정아.”

이지함이 꺽정이 말문 막으며, 글을 마저 읽어내려갔다.

“또한, 근래 세간의 말에 따르면, 왜구가 소탕되어 바다가 평온해졌으니 해금(海禁)도 곧 풀릴 것이라 하는데,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산 형의 당은 마땅히 조처하여야 할 것입니다. 복건과 절강, 광동의 사람들이 마음대로 바다를 오가게 된다면, 서양과 일본의 물산을 조선 통해 파는 일에 무슨 이익이 남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 하는 말은 능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라, 해금이 풀리면, 사형이랑 서림이가 장삿길 뚫으려고 했던 것을 저쪽 조정에서 대신 해주는 격 아니오? 실컷 장사도 할 수 있고 좋을 듯한데.”

“조선의 물산을 대국에 파는 일이라면 그렇겠지. 허나 사업당이 노리는 바는 그것만이 아니지 않으냐. 해금에 대한 소문이 만에 하나 진실이라면, 실로 큰일이 될 테다.”

일본의 물건을 자유민주당 통해 조선으로 들여오고, 사업당이 그러모은 조선과 북변, 서양의 귀물과 함께 중국 강남에 판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로 강남의 물산을 들여와 조선과 일본에 판다.

이것이 꺽정이네 혼사에 소 모리타네와 니탕카이가 찾아온 이래 사업당이 꾀해 온 방향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이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해금으로 인해 대국 사람들이 바다에서 떳떳한 장사를 못 하기 때문.

일시에 해금령이 풀려, 절강과 복건, 광동의 상인들이 우르르 바다로 나오게 된다면, 장사 수완으로도, 그 머릿수로도 사업당이나 자유민주당은 상대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리 되면, 바다의 판도가 한바탕 뒤집힐 것이다. 그나마 조선 땅에서 벌이는 사업으로나마 호구할 수 있는 민주당은 조금 사정이 낫겠지만, 사카이 상인들과 손잡고 일본에서 밖으로 나가는 통상을 꽉 잡고 있던 히라도는 절반쯤 무너질 것이요, 아예 그렇게 가운데서 이익 취하는 것만을 업으로 삼던 남쪽의 류큐 같은 곳은 나라가 통째로 무너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면, 헛소문이기만을 바래야 하겠구려.”

“천주는 예로부터 호상(豪商, 대상인) 많기로 이름났다 하였다. 그런 곳에서 도는 말이라면 저자의 헛소문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

그래서 굉보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동래의 선공들에게 더 많은 재정을 불어넣고, 그와 더불어 핀투 선장을 통해 큰 배 몇 척을 여러 해 동안 빌려보자는 제안을 서 별감에게 했다. 우리가 대국 상인들보다 앞선 것이라면, 미리 여기저기에 발을 걸쳐두었다는 것 아니겠느냐.”

장사는 잘 모르는 꺽정이가 듣기에 이 또한 그럴듯한 말이었다. 꺽정이 그의 판단으로도 서림과 이지함 양쪽에 모두 일리가 있으니, 두 사람 갑론을박이 끝내 결착을 보지 못하고 감정만 상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잠깐, 설마? 사형, 장거정 그놈이 뭔가 또 수작을 부린 건 아닌가 싶소. 의주 잠상을 막고, 이어서 해금을 풀어서 남쪽 바닷길까지 사실상 막는다면, 우리 당이 곤란하게 되는 것 아니겠소?”

“바닷가 백성을 위한다는 뜻도 있을 테니, 속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왕직 그자가 죽으면서 나라 때문에 해적이 일어났다고 떠들었다 하지 않았더냐. 누군가 그것을 감명깊게 들었을 지도 모르지.

당장 내가 천주에 들렸을 때도, 그곳의 많은 선비들이 해금으로 인하여 복건 사람들의 삶이 어렵다면서 아쉬워한 바 있었다. 그 관헌 중 애민(愛民)하는 자가 있다면, 능히 그것을 서 수보에게 고하여 국법을 고치려 할 수도 있을 터.”

어느 쪽이든, 명 조정에서 해금을 풀 만한 이유는 충분했고, 굳이 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요새 좀 편하다 했더니, 거 참.”

“이제 와서 팔자 탓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다 우리가 사서 하는 고생인데.”

이지함이 뼈 있는 자조(自嘲)를 하였다.

그때, 밖에서 서림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주님, 모주님 계시오? 앞서 언성 높인 것은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우리가 긴히 논해야 할 일이 생겼소!”

딱 보아도 급한 일인 듯했다.

“마침 나도 여기 있으니, 얼른 털어놓아 보시오.”

서림이 껑충 마루 위로 올라오더니, 털썩 앉았다.

“대국 예부에서 자문이 내려왔는데, 아무래도 해금을 푼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오.”

예조에서 일하는 서리는 물론이요, 도성 안의 역관들 중 사업당과 연 없는 이가 드물었으므로, 서림에게도 곧장 그 비보가 전해진 것이었다.

“여기 사형으로부터도 얼추 얘기는 들었소. 하면 여기 이 편지 보낸 그 이지인가 굉보인가 하는 서생 말대로, 큰 배를 만들어서 더 멀리 가면 될 일 아니겠소?”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당수.”

서림이 단언하였다.

“요새 제가 자본으로써 장사하는 일에 심혈 기울이고 있음을 잘 아실 겝니다.”

“여전히 그 자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일전에 한 번 말하기는 했었지.”

“결국 장사라는 것은 밑천이 많이 들어갈수록 이익도 더 크게 내기 마련이요, 반대로 밑천이 없으면 조금만 흔들려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업당에서 다루는 자본은, 그간 교역과 여타 다른 사업으로 벌어들인 바도 적지는 않지만, 대개는 경제사에서 받아와 굴리는 것이지요.”

장사를 할 때, 그것이 위태로울수록 이익이 더 많이 남는 사정은 이미 논상원 통하여 널리 퍼진바 어지간한 조선국 식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간 서림이 살핀바, 배를 타고 오가며 장사하는 일도 그와 같았다.

심지어 핀투 선장이 말하기를, 암본에서 저들의 포르투갈 본국까지 오가는 길에 배 열 척 중 아홉 척이 가라앉더라도 남은 한 척으로 능히 이익을 남길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이는 그만큼 교역의 이익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열 척 중 아홉 척이 가라앉을 만큼 위험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열 척의 배를 내어야 이익이 날 것을 장담할 수 있을 테다. 지금 사업당이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재정에 그만한 여력이 있던가?

“하면 경제사에서 더 받아오면 될 일 아니오?”

“비록 실제로는 경제사 서리들이 모두 민주당 아전들이기 때문에 티가 잘 나지는 않지만, 우리가 경제사의 재물을 받아와 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사를 대신하여 이익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워낙 별 생각 없이 다루어서 그렇지, 아닌 게 아니라 경제사는 본디 임금의 내탕이었다. 빼돌리는 것은 쉬워도, 그렇게 빼돌린 재정이 폭풍이라도 한 번 만나서 남해 용왕 곁으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영 흐리멍덩한 임금이라지만, 저의 재산이 그렇게 사라진다면 가만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설령 그가 가만 있는다 하더라도, 좋은 빌미를 잡았다며 무본사인가 뭔가 하는 괘씸한 놈들이 나서서 사업당 탓을 할 테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밑천을 많이 부어넣어야 하는데, 그 밑천을 융통해올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런 말이구려.”

“그렇습니다. 여차하면 성공하기만을 고대하면서 경제사의 재정을 당겨올 수는 있겠으나...”

그 뒷감당이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 서림이 말을 마치지 않았건만 꺽정이와 이지함 모두 그 이어지는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수사를 혁파하고 경제사를 만든 다음 그것을 사실상 사업당 곳간처럼 써 왔음에도 아직 군말이 나오지 않은 까닭은, 의민당 및 민주당 출신 아전들 외에 그만한 장삿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지난 여러 해 동안 딱히 탈내지 않고 이익을 남겨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역의 이익이 툭 끊기더니, 그것을 벌충한다면서 오히려 당분간 밑천을 더 대어야 한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민주당이 말업(末業)의 이익으로 혹세무민을 하다 못해, 마침내 기군망상 하기에 이르렀다며, 사업당 하는 일을 곱게 보지 않던 이들의 탄핵이 비 오듯 쏟아질 것이다.

“더구나 지금 벌이고 있는 일만 하더라도 이미 지출이 적지 않습니다. 흑의군이나 동래의 장인들에게 주는 늠료는 물론이거니와, 소소한 곁가지 사업들을 처분하고 나온 자 본을 다시 각지 군현의 상고(商賈)들에게 인자(引資)해주기도 하는지라...”

“인자가 무엇이오?”

어느새 점점 넋두리로 화하는 서림의 말을 꺽정이가 끊었다.

“밑천을 댄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장사나 다른 사업을 벌이고자 하는데 밑천이 부족한 이들에게, 사업당 쪽에서 밑천을 대어주고 그 대어준 만큼의 수익을 받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자가 아니라 투자(投資) 정도가 맞는 말이겠지만, ‘밑천을 대다’라는 말을 이두에서 쓰는 것처럼 그대로 옮기다 보니 ‘인자’가 되었다.

꺽정이가 머리 한 번 벅벅 긁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해도 되지 않겠소?”

“무엇을 말입니까?”

“지금처럼 알음알음 경제사에서 재정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경제사 인자를 받아오고, 수익을 나누자 이 말이오. 그리고 이왕이면 시끄럽게 굴 법한 저 탕평당 사림 대감님들도 끌어들이고.

어차피 그치들도 농장 처분하고 나오는 재산을 어딘가에는 박아두어야 할 것 아니오?”

서림이야 사업당을 저의 자식처럼 아끼지만, 꺽정이에게 사업당은 그저 더 큰 도둑질 하기 위한 기반에 불과하였다.

판만 더 키울 수 있다면, 사업당이 절반쯤 남의 것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리오.

“서 별감도 말하지 않았소. 밑천이 많을수록 이득도 늘어난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 사업당 밑천을 확 늘려버리고 여기저기 그것을 댄다면, 해금이야 풀리든 말든 계속 수익을 낼 수 있겠지.”

“그 무슨 허황된...”

서림이 입을 허 벌렸다 닫기를 반복하였다..

“아니, 잠깐... 그게 말이...”

사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꺽정이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도저히 마음 한 쪽에서 인정할 수 없었다.

“됩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저 말이 이치에 딱히 안 닿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의 아무개 생원이 소소하게 풍구 따위 기구를 들여와 빌려주는 장사를 하는 것이나, 사업당이 큰 배를 만들어 천하를 누비는 것이나,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장사 아니겠는가.

두어 달쯤 뒤, 공보에 대문짝만하게 공고가 실렸다.

‘장차 사업당을 나누어 팔고자 하니, 사업당의 분주(分主) 되기 원하는 자는 논상원으로 오라.

은이나 토지문기를 가져오면 그 값을 헤아려 분표(分表)를 발급할 것이다.’

--- *** ---

중국 사상사의 이단아 이지는 중년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한 사람의 유학자로서 그럭저럭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국자감을 거쳐 말직에 겨우 오를 무렵, 양명학 좌파에 속하는 태주학파의 사상과 불교 등 다양한 갈래의 사상에 심취하면서 본격적으로 ‘삐딱선’을 타게 되지요. 후대의 루쉰을 방불케 하는 이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로 나는 쉰 살이 되기 전까지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앞에 있는 개가 짖는 모양새를 보고 따라서 짖었을 뿐이니, 만약 소리 내어 짖은 까닭을 누군가 물었다면, 벙어리마냥 홀로 웃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속분서(續焚書)』 <성교소인(聖敎小引)>)’

작중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지함을 만나서 다른 쪽으로 일탈하고 있습니다. 허나 이지의 지인들이 평한 것처럼, 그 이전에도 이지는 이른바 ‘바른생활 사나이’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지인들이 이지의 결함으로 종종 언급하던 오만방자한 성격과 입방정, 그리고 관심받기를 원하는 성정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장 그의 호 ‘탁오(卓吾)’부터가 ‘잘나신 이 몸’ 정도의 뜻이지요.

원 역사의 명은, 왕직·서해 등 굵직한 왜구 수장들이 연달아 죽고, 호종헌·척계광 등의 활약으로 왜구의 피해가 감소하자, 1567년 해금령을 일부 완화합니다. 교역으로 생계를 잇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해안의 주민들이 밀무역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더구나 해금 정책과 함께 진행된 조공무역이 후왕박래(厚往薄來)의 원칙상 상당한 예산 부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지요.

그 결과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등지의 중국인들은 다시금 활발한 해상무역에 나서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남아 곳곳에 진출하여 상업활동에 종사하게 됩니다. 개중에는 보르네오 섬의 난방공화국(蘭芳共和國)처럼 자치적인 집단을 이루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요. 반면 류큐와 같이 중계무역의 이익을 보던 측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여러 상인들이 지분을 공동으로 출자하여 수익을 분배한다는 개념은,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기 해상무역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온 바 있습니다. 이후 상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생적으로 비슷한 개념이 등장하곤 했고, 개중에는 주식회사에 가깝게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나 조식을 공개적으로 발행하여 거래한다는 개념은 1602년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꺽정이네가 훔쳐온 ‘세계 최초’의 목록에 한 줄이 추가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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