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큰 말은 죽지 않는다 (2)
느닷없이 사업당을 쪼개어 판다 하니, 능히 그 값을 감당하지 못할 이들도 사연을 궁금해할 만한 일이었다.
“사업당이 망했나? 어째 판다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네.”
“이 사람아, 다 파는 게 아니라, 쪼개서 조금씩 판다고 하지 않았나. 서 별감이 어떤 사람인데, 손해날 짓 하진 않겠지.”
허나 도성 사람들 마음가짐도 몇 해 사이 조금은 달라졌으니, 옛날에는 궁금해하는 것으로 끝냈겠지만 이제는 이 기회에 어떻게 가산을 더 불려볼 수 있을까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이때 은조각이나마 모아서 그 분표를 사놓으면, 사업당이 이득 볼 때마다 우리는 계속 공돈을 챙긴다는 말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금 지켜보는 게 상책일세. 멋모르고 은을 내밀었다가 떼어먹히면 어찌하려고. 경제사나 좀 거창한 대갓집이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본 다음 잽싸게 움직이면 되겠지.”
한편, 임꺽정이 도성에 돌아오니 또 뭔가 심상찮은 일 벌인다는 말을 들은 탕평당 사람들도 화들짝 놀라, 그들 중 가장 이재에 밝은 것으로 정평이 난 이황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하여 이황이 논상원에 처음으로 찾아오고, 이어서 경제사 곳간 열쇠 관리하는 제조(提調) 박한종(朴漢宗) 이하 내관 몇몇이 찾아왔으며, 그 외 벌열가 몇몇에서도 집안일 맡아보는 서얼 한둘씩은 보내왔다.
상대하는 서림으로서는 진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꺽정이를 혼자 세워놓았다가는,
‘별 건 아니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사업당과 얽히게 만들어, 나중에 사업당이 경제사 재정 빼돌려 저들 밑천으로 삼을 때 뒷말 못하도록 하려는 심산이외다.’
하고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소리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서림이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흠흠, 공고를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사업당의 일을 맡아보는 서 별감이올시다.”
나름대로 단정한 옷 차려입은 서림이, 마루에 모여앉은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분표를 파는 것을 논하기에 앞서, 그 본의는 무엇이며 이로써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말씀 올리겠습니다.”
서림이 고갯짓하니, 기다리던 사업당 이방의 서원(書員) 하나가 미리 가져온 두루마리를 펼쳐 벽에 걸었다.
사업당 사람들이야, 이제 어지간하면 산가지로도, 주판으로, 심지어 암산으로도 수를 곧장 다루지만 - 그러지 못하는 자들은 누가 말하기도 전에 못 버티고 제 발로 나가곤 했다 - 바깥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하면 어떻게 저의 구상을 드러낼 것인가? 고민 끝에 서림은 이전에 임 당수네 처갓집에서 태산(胎産) 요결을 드러내면서 그림을 그려 이치를 밝혔던 것을 떠올렸다.
“좌측의 그림이 오늘날 동래에서 만들고 있는 내선, 가운데가 지금의 판옥선, 그리고 우측이 불랑기라고도 하는 포르투갈의 대선(大船) 되겠습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것만큼 실제로도 크기의 차이가 나지요.”
어디선가 막대기까지 꺼내어 짚어가며 설명하는 서림이었다.
“비록 서양 대선이 크기는 하나, 동래에 있는 복건 선공(船工)들에 따르면 저들도 충분한 시일과 재정이 있다면 능히 저만한 배를 만들어 대양을 누비게끔 할 수 있다 합니다.
이미 영락 연간에 정 태감(정화)이라는 이가 황명 받들어 그렇게 천하 열국을 다녀왔다 하니, 금세(今世)에 다시 못할 것은 없다 하겠습니다.”
수 년 전에는 대뜸, 무슨 허황된 소리를 하느냐며 면박이 날아올 법한 얘기였다. 허나 그사이 사람들 생각이 꽤 변하였으니, 꺽정이와 그 패거리가 사람들 굳은 머리를 열심히 두들겨 열어젖힌 덕이었다.
이 무렵에는 어지간한 선비들도 대비만이(大鼻蠻夷, 코쟁이 오랑캐)들과 남양(南洋)의 사정에 대해 얼추 들어는 알고 있었다. 하도 정론보와 공보에 글이 많이 실리기도 했거니와, 조금씩 선비들 가운데도 그들에 대해 글을 남기고 더 알기를 원하는 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말라카를 오가는 포르투갈 카락들은 류큐와 히라도를 거쳐 동래 또는 제물포에 들리곤 했다. 류큐와 히라도에서 물건을 팔고 남은 칸에 일본인 노예 대신 구리와 유황을 채우고, 그것을 조선에서 인삼과 차, 비단 등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말라카에서도 유명한 떠벌이 핀투의 호언장담에 따르면 장차 중국의 모든 재보도 제물포를 거칠 것이라 하였는데, 굳이 그 허풍을 믿지 않더라도 이 경로는 이익이 제법 쏠쏠했다.
그리하여 상 투메 호 외에도 산타 바르바라(Santa Barbara), 노사 세뇨라 다 그라사(Nossa Senhora da Graça) 등의 카락이 오간 바 있었는데, 조선 관헌들은 포르투갈 뱃사람들이 심문당한다고 오해할 만큼 그 배의 사정을 꼼꼼하게 문정하여 글로 남기곤 했다.
더구나 대양서생 이정이 고경명의 병구완을 위해 말라카에 머물던 중, 저들이 인도라고 부르는 천축 땅에서 염초가 무한하게 난다는 말을 듣고 한양에 돌아와 떠벌렸는데, 각미사 통하여 그 소문 들은 병조에서도 자연스레 회가 동하였다.
허나 포르투갈 사람들은 동래에서는 제물포에서든 대개 사업당 사람들만 만날 뿐이니, 속으로는 저들 오랑캐와 그들이 가져오는 귀물(貴物)을 궁금하게 여길지라도 점잖은 선비로서 내색은 하지 못하곤 했다.
“... 하여, 끝에 이르러서는 저들이 우리 땅에 와서 교역하듯 우리도 저들의 애우로파 땅에 닿아 교역하고자 함이 본 사업당의 뜻입니다. 이를 위하여 막대한 밑천, 본 별감이 쓰는 말로는 자본이 수용(需用)될 것인즉, 위로는 경제사부터 아래는 민서(民庶)까지 원하는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한데 모아 밑천으로 삼고자 합니다.”
화살표가 여기저기 나왔다 들어가는 그림을 가리키며 서림이 말을 이어갔다.
설명하는 김에 사업당에서 지금까지 벌이고 있는 각종 사업과 그 수익까지 그림으로 간략하게 보여주었는데, 이미 거기서 박한종 한 사람을 제한 나머지는 모두 눈이 한 번쯤 빙 돌아갔으므로 아직까지 딴지 거는 이는 없엇다.
“그리 되면 마침내 뜻을 이룰 때 그 이익을 모두가 나눌 것이요, 설령 도중에 손실이 있더라도 모두가 나눌 것이니 그 누구도 패가망신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업당에 미리 알리기만 한다면, 이미 사들인 분표를 분주(分主) 사이에서 매매하는 것 역시 하등 제한하지 않을 것이니, 말하자면 곡식 대신 이익이 자라는 전지(田地)와 같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서, 서림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경제사 제조 박 아무개가 별감께 여쭙고자 하오,”
박한종이 손을 들고 공손히 물었다. 민주당에서 보내온 경제사 서리들이 하도 서 별감을 높게 여기다 보니, 나름 성상의 총애 받는 내관인 박한종도 서 별감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에 박혔던 것이다.
“말씀하시지요.”
“이미 경제사에서 적잖은 재정을 사업당에 대고 있는 것으로 아오. 그것까지 쪼개어 민간에 팔 심산이오이까?”
“말씀드린 것처럼, 말이 나누어 파는 것이지 실제로는 밑천을 불리는 데 가깝습니다. 이미 우리가 벌이고 있는 각종 사업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이미 약조한 대로 그 수익도 나눌 것입니다.”
서림이 공손히 설명하였다. 비록 경제사의 어지간한 일을 사업당이 사실상 좌지우지한다 한들, 어쨌든 물주는 물주였고, 장차 분표를 낼 때도 가장 많은 분급을 경제사에서 사들여야 할 것이었다.
지금 조선 땅에서 호조를 제외하면 가장 재정이 풍족한 곳이 경제사였을 뿐더러, 경제사가 나서서 가장 먼저 분표를 받아가야 민간에서도 비로소 믿고 사업당 분표를 사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서림도 조심스레 박한종의 눈치를 살폈는데, 다행히 그 설명을 잘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별감도 잘 아시겠지만, 성상께서 크고도 어진 마음으로 내수사를 혁파하고 경제사를 세우신 뜻은 오직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였소. 지금까지 잘 해주었으니, 앞으로도 충군(忠君)과 봉공(奉公)을 이어가 백성의 삶을 풍족하게 하기 바라오.”
박한종이 공치사로 문답을 마쳤다. 일전에 박한종이 이런 말을 저자에서 했더라면 헛소리 관두라며 돌 맞기 딱 좋았겠지만, 요새는 백성들 살림살이 나아지며 민심도 제법 좋아졌기에, 광통교 한복판에서 크게 외친다 한들 별 나쁜 소리는 아니 들을 터였다.
그리하여 서림도 조금은 안도하였는데, 이황이 헛기침을 하니 또 한 차례 긴장하였다.
“비록 상(商)이 말업이라 하나, 이 또한 도리를 지킨다면 능히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그대들은 지난 여러 해 동안 보인 바 있소. 이제 그 이익을 나눌 방도까지 이렇게 정교하게 궁리하니, 한 사람의 선비로서 찬탄하지 아니할 수 없소이다.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천성이 순량한 이황으로서는, 분표를 발급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업당 앞길 막을 놈들을 한편으로 미리 엮어버려 군말 막으려는 데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멀리 서양까지 가서 교역하겠다는 그 뜻은 다소 우려스러운 바가 있소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서림의 원대한 구상을 반박하는 말이 나왔다.
종국에는 차라리 조식이나 임 당수처럼 전면에서 바로 들이박는 말투가 더 나았으리라 생각하게 될 지경이었다.
“해서, 우리네 분표는 아니 사겠다, 그런 것 아니오?”
꺽정이가 팔짱 끼고 서림에게 물었다.
“아예 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같은 뜻이기는 합니다.”
두 사람은 논상원 마당 한 편에 서서 분표 사려는 이들이 길게 늘어선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분급하기로 한 분표는 총 삼만 분(分). 그러나 저렇게 찾아온 이들은 고작 일이 분을 사들이고 좋다며 돌아가곤 했다.
그럴듯하게 찍어낸 분표에 그들 이름까지 현장에서 써서 나누어주니, 마치 일확천금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을 테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그것은 속담일 뿐. 많은 경우 티끌을 암만 모아도 그냥 티끌 더미로 끝나곤 하였는데, 작금 상황이 그와 같았다.
“경제사 쪽도 말은 거창한데 아직 소식은 없다 했고, 거 참. 여차하면 내 입궐하여 임금님 용안이라도 간만에 뵙고 오리다. 원자 그 꼬맹이 잘 크고 있는지도 간만에 구경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꺼내는 꺽정이었는데, 서림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당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지금 저렇게 찾아오는 이들도, 대개는 경제사와 여타 벌열가들이 공공연하게 우리 분표를 사들이리라 믿고 찾아오는 것일 텐데요.”
그날 이황이 지적하였던 문제는 여럿이 있었다. 절차의 허술함이야 오히려 짚어준 것에 감사 올리며 고치면 될 일이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분표를 사들였을 때, 그것이 같은 값의 땅과 같거나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준다는 보장이 아직 없었다.
물론 사업당이 조선국 국내에서 손대고 있는 일도 적지 않으므로, 분표가 한낱 종잇조각으로 화하는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서림이 주장한 것처럼 머나먼 바다까지 나갔을 때 막대한 이익이 돌아오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대국 운남성이나 조선의 지리산 자락에서 자라는 차가 서양에서 아주 값지게 팔린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핀투 같은 이들 한두 사람의 주장이었다. 막상 애우로파에 당도해 보니 그 나라에서 국외인의 통상을 불허할 수도 있고, 어쩌면 먼 바다까지 가서 장사하는 것의 수익이 변변치 않을 수도 있었다.
“의심만 많아서는. 그래서 돈벌이나 하고 살겠나.”
“그러니까 양반님네들이 다들 장사 대신 전답만 끼고 살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이왕 이렇게 된 것 도로 북변 올라가서 니탕카이와 함께 요양성이나 털어오겠다는 둥, 바닷길 대신 땅 위의 길로 서쪽까지 가보겠다는 둥, 실없는 소리로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저놈, 모리타네 아닌가?”
“번뜩이는 걸 보니 맞는 듯합니다.”
왜상투(촌마게) 한 소 모리타네가 이지함과 담소 나누며 논상원에 들고 있었다. 머리 미는 것이야 그 나라 풍속이니, 탓한다면 하필 지금 그 머리에 비추는 햇빛을 탓해야 하리라.
“복선의 명성은 말로만 들었는데, 내선은 그것보다도 더 훌륭한 듯합니다. 서로 내다보이는 사이인 동래와 대마도 사이를 느릿느릿 오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요.”
“우리 뜻대로만 된다면, 천하의 뛰어난 선공들을 모두 모아 그 옛날 정 태감의 보선(寶船)을 다시 만들 수도 있을 것일세.”
‘좀처럼 그리 되지 않으니 문제지만’이라고 말을 덧붙이며 이지함이 말했다.
그렇게 걸어들어온 두 사람이 꺽정이 앞에 섰다. 모리타네가 곧장 인사를 올렸다.
“임 당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북변에서 또 한 차례 무공을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거 자주 보는구만.”
“하하, 서 공이 말하기를, 대국에서는 ‘사해가 모두 동포다(四海同胞)’ 하는 말도 있다 합니다.”
조선 자주 오가면서 이제 꺽정이 대할 때 슬슬 너스레도 부리는 모리타네였다. 민주당 사람들과 정분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 사람들의 괴악한 기풍에 물드는 것인지는 모리타네 본인도 알지 못했다.
“실은, 분표의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소 씨와 마츠라 씨에서도 사업당 분표를 가문의 보배이자 기반으로 삼으려 하더군요. 하여, 두 집안을 대신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득을 볼 심산이라기보다는, 이 난세 속에서 나름대로 안전한 자산으로서 사업당 쪽에 주목한 것일 테다. ‘흑염룡’과의 연줄을 늘리는 것은 덤이었다.
그러나 두 집안은 일본 안에서도 그리 잘 나가는 축에 들지는 못하였으므로, 설령 그들이 기둥뿌리를 뽑아 분표를 사들인다 하더라도 꺽정이네 성에 찰 만큼은 되지 않을 터였다.
“아, 그나저나 요괴를 잡으셨다는 것이 참말인지요? 요새 규슈와 주고쿠(中國, 혼슈 서부)에 그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범상한 호랑이인 줄 알았지 뭡니까.”
“요괴라니,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왕주 와일란 그놈이 좀 못 생기긴 했어도 요괴 소리 들을 만큼은 아니었다. 꺽정이가 궁금함 못 이기고 물었다.
“호랑이 요괴 말입니다. 사람 백 명을 해쳐서 털이 하얗게 센 괴호(怪虎, 요괴 범)를 임 당수와 부인께서 단번에 잡았노라, 그렇게 소문이 퍼졌습니다.”
꺽정이와 이지함이 모두 서림을 돌아보았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제야 모리타네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제야 뒤늦게 감을 잡은 것이다.
“아, 어쩌면 모리 씨가 일부러 퍼뜨린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얼마 전에 조총 받아오면서 대국 물건 대신 그 호피를 받아가지 않았습니까.”
모리 씨가 퍼뜨린 소문이 대마도 거쳐 조선까지 들어오게 된 셈이었다.
소문이 퍼진 것은, ‘모략의 달인’ 모리 모토나리가 조선의 천하인과 그 아내가 잡은 요괴 호랑이의 가죽을 손에 넣으면서부터였다. 그 사람 백 명 잡아먹은 호랑이라는 말도, 모토나리가 지어냈든 중간에 덧붙은 것을 방치했든, 분명 농간 부린 결과일 테다.
그것을 하야시 쇼군의 안사람 되시는 메이히메(明姬)께서 일격에 잡았다니, 그 역시 비범한 일. 가죽 주인인 호랑이도, 그에 얽힌 사연도 하나같이 대단하였으므로 실로 절세의 보배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이 모토나리 공의 계책이었다면 말이 됩니다. 그렇게 모두가 호피를 탐내게끔 만든 다음 대단한 모략을 부렸거든요.”
그렇게 여기저기 헛소문 퍼뜨려 호피의 값을 올린 뒤, 이웃한 아마고(尼子) 씨를 이간질하고자 그 호피 팔겠다는 제안을 스리슬쩍 넣은 것이다.
이즈모(出雲)의 아마고 씨는 ‘모성(謀聖)’ 아마고 츠네히사(尼子經久) 아래에서 오우치와 대적할 만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야심은 가득하나 힘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리 모토나리에게는 실로 거대한 강적이었다.
그에겐 다행히도, 츠네히사가 작고한 뒤 아마고 씨는 가독을 물려받은 츠네히사의 손자 하루히사(晴久)와 정예부대 신구토(新宮黨)를 물려받은 츠네히사의 차남 쿠니히사(國久)의 다툼으로 반쯤 쪼개져 있었다.
모토나리는 양쪽에 그 호피 넘기겠다는 제안을 동시에 하면서, 교묘하게 양측을 이간질했다.
“천하에 이름난 이즈모의 신구토. 그 무용에 걸맞은 보배가 바로 이 호피 아니겠소? 그러나 세상에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는 자들이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
“무릇 보배는 이름난 집안에 있어야 그 빛을 발하는 법이오. 그런데 집안의 주인이 둘이라면 그 빛도 둘로 쪼개질 수밖에 없겠지. 이것은 규슈와 주고쿠의 식자들이 하는 말인데, 반드시 이 호피를 공에게 보낸 뒤에도 비슷한 말이 떠돌 것이외다.”
결국 쿠니히사는 하루히사가 선을 먼저 넘었다고 생각하고, 하루히사는 신구토를 쳐낼 때가 마침내 왔다고 여기게 되어, 거하게 싸움이 붙었다.
그리고 그사이, 모토나리는 슬쩍 군사를 일으켜, 이전에 하루히사가 오우치에게서 뜯어냈던 이와미(石見) 은광을 날름 집어삼켰다.
“... 그리고 호피는 결국 양쪽 어디에도 넘어가지 않고, 모토나리 공의 손에 그대로 남았지요. 쿠니히사와 신구토의 원혼까지 서렸다며 ‘일백팔 원혼의 호피’라고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였답니다.”
“잠깐, 은광? 은광이라 하셨소?”
서림이 갑자기 눈을 번뜩였다. 그 옛날 임 당수 혼사에서 꺽정이가 모리타네 쥐어팰 때 종종 보였던 그 서늘한 눈빛이었으므로, 모리타네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였다.
“그, 그렇습니다. 이와미 은산(이와미 긴잔 石見銀山)이라 하면 유명하지요. 특히나 조선에서 회취법(灰吹法, 연은분리법)이 들어온 이후로는 소출이 늘어서, 주고쿠 모든 다이묘가 노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오우치 씨가 그간 동래부에서 그토록 교역을 할 수 있던 것도, 영파(寧波)까지 가는 상행을 꾸릴 수 있던 것도 모두 그 덕이 컸지요.”
조선에서 들어온 은 소출 늘리는 방법이라면, 곧 연철(鉛鐵, 납)로써 은을 불리는 단천(端川) 광부들의 비방일 테다.
단천에서 은 많이 나던 시절은 곧 평양과 의주 오가는 잠상들이 ‘좋았던 시절’이라고 회고하곤 하는 때였으므로, 그런 잠상들을 자주 대하던 서림 또한 들어 아는 바가 있었다.
“허, 그런 비법이 언제 일본까지 들어갔는가.”
서림의 부연하는 말까지 들은 이지함이 한탄하였다. 그러나 서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임 당수,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처한 난국을 헤쳐나갈 방도를 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모리타네 이 사람이 말한 것처럼, 사해가 모두 한 가족 아니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일본국을 한 번 다녀오심이 어떠할지요.”
모리 모토나리는 한때 천하를 노렸다.
그러나 그는 야심찬 만큼이나 총명하기도 하였다. 천하에 그보다 뛰어난 이들이 많다는 것쯤은 금방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말하기로는 계속 천하를 노린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저 집안이 이 난세를 버티게끔, 그 뒤에 어떤 멍청이가 가독을 물려받아도 결코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확실한 기반을 마련할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갔다.
“은광은 어떻다 하더냐.”
이와미 은광을 시찰하고 온 타카모토에게 모토나리가 물었다.
“은광을 둘러싸고 다툼이 여러 해 동안 이어져, 사람은 흩어지고 일대는 피폐해졌습니다.”
“그런 것은 상관 없다. 다이에이(大永) 연간에 들어온 비법을 익힌 자들만 남아 있으면 된다.”
‘일백팔 원혼의 호피’의 털을 만지작거리며 모토나리가 말하니,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어렵게 여기는 타카모토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인부는 흩어졌지만 채광을 감독할 이들은 여전히 주변에 숨죽이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들 중 비법을 기억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 사람은 구할 수 있고 땅은 일굴 수 있으니. 다만 조금 더 여유와 끈기를 가지기만 하면 될 터. 모든 것이 대개 그러하다.”
그때, 모토나리의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吉川元春)가 급히 들어왔다.
“아버지, 큰일입니다!”
형과 달리 성정이 불과 같은 둘째아들이었다.
“호들갑 떨지 말고 말하거라. 무엇이 큰일이더냐?”
“조선의 하야시 쇼군이 찾아오겠노라고 친서를 보내왔습니다!”
“무어라?”
조선이 그렇게 가까운 곳이었던가?
“지금 어디에 있다 하느냐?”
모토하루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이미 하카타 앞바다를 지났다 합니다! 빠른 배를 통해 먼저 서한을 보내왔습니다.”
모토나리는 급히 서한을 펼쳐보았다.
자유민주당 소 모리타네가 대신 받아적었다고 맨 앞에 명시되어 있는 그 서한은, 순 날강도와 같은 내용을 품고 있었다.
“이와미 은광의 새 주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이를 위하여 나와 안사람의 이름을 빌렸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마땅히 이름값을 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은광에서는 조선에서 들여온 비법으로 은을 제련한다 하였는데, 우리 사업당에서 그 비법 창안한 이의 후손을 만나 비법 자체를 사들였으니, 앞으로 너희도 비법 쓰는 값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순 억지 트집이 아닐 수 없었다. 오우치 씨나 쇼니 씨도 아니요, 지금껏 몇 번 통상한 것이 전부였던 모리 씨에게 이 무슨 터무니없는 요구란 말인가?
“허나 때마침 우리 당과 너희에게 모두 이익되는 방도가 생겼다. 바닷가로 나와 우리를 맞이한다면, 그 방도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싫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리한다면 이름값과 비법 값은 내야 할 것이다.”
서한의 마지막에는, 자신은 그저 하야시 쇼군의 말씀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며, 결코 격식 없는 말로 모리 씨의 체통에 누를 끼칠 의도는 없었다는 모리타네의 중언부언하는 글이 붙어 있었는데, 모토나리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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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 작가의 말에서 언급된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VOC)는, 선발주자 포르투갈을 추격하는 한편 후발주자인 영국의 추격 - 영국 동인도회사의 설립은 의외로 VOC보다 2년 빨랐습니다 - 을 따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16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이 독점하던 향료무역에 뛰어들면서 막대한 이익을 경험하였던 주요 자유도시의 거상들과 네덜란드 공화국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정부가 후원하는 거대한 독점기업이 출범하게 된 것이지요. VOC가 상장된 직후 채권 및 주식거래가 금방 활성화된 데에는 향료무역의 수익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정부에 의한 직·간접적인 보증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 결과 1602년 VOC의 공동창립자 중 하나였던 디르크 판 오스의 암스테르담 자택에서 소박하게 시작된 주식시장은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된 시장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1688년에는 유대계 상인 데 라 베가(Joseph de la Vega)가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식에 관한 최초의 투자조언 서적을 저술하기도 했지요. 여담으로, 오늘날에도 유효한 여러 통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착각 중의 착각(Confusión de confusiones)』인데, 주식시장의 생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던 듯합니다.
16~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만큼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원양항해가 가능한 수준의 조선술을 보유한 국가/지역은 여럿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16세기 초, 처음 자바에 당도한 유럽인들을 그 크기로 위압했던 자바의 종(Djong) 선이나, 이전부터 종종 언급되었던 중국의 복선 등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유럽이 시종일관 대항해시대를 주도할 수 있었던 근원은, 조선술 자체의 우월함보다는 지속적으로 대형함을 건조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복건성 일대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청대까지도 내려오며 나름대로 꾸준히 발전하였는데, 1846년 영국 선주가 몰래 구입한 800톤급 복선 기영(耆英) 호가 세계일주를 한 바도 있습니다.
이와미 은광은 한때 세계 유수의 은광으로서, 모리 씨가 서일본 최대의 세력이 되는 데 일조하는 한편, 17세기 중반 동아시아 국제무역망에도 큰 영향을 준 바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는조선의 단천 은광에서 개발된 연은분리법이 밀무역망을 통해 일본까지 흘러들어간 것이 크게 공헌했습니다. 한때는 이와미 광산 한 곳에서 전세계 연간 은 생산량의 15분의 1이 산출되었다는 유명한 통계도 있지요.
원 역사에서 모리 모토나리는 아마고 씨가 내분에 휩싸여 있는 사이 스에 하루타카를 기습하여 패배시키고, 그 뒤에야 아마고 씨 공략에 들어갑니다. 비록 신구토를 숙청하여 가문의 힘이 상당히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마고 하루히사도 그렇게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고, 결국 1561년 하루히사가 급사한 뒤에야 아마고 씨를 무너뜨릴 수 있었지요. 작중에서는 호피 한 장의 나비효과로 아마고 씨가 먼저 한 대 거하게 얻어맞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