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10화 (110/259)

34. 큰 말은 죽지 않는다 (3)

아키(安藝, 現 히로시마 현 서부) 국은 바다(세토 내해)를 면하고 있음에도 쓸만한 포구는 없었는데, 이는 지형보다는 사람의 문제였다. 모리 씨의 힘이 약하여 오우치와 아마고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본디 쓰이던 포구는 쇠락하고 새로 하나 조성할 여력은 없던 것이다.

대신 아키 앞바다에 있는 여러 작은 섬에 무라카미(村上) 수군의 일파가 터를 잡고, 말하자면 바다를 봉지로 받은 가신처럼 모리 씨를 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지간해서는 아키 앞바다까지 엉뚱한 배가 들어올 이유는 없었다.

허나 그것이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허, 천하인이라서 천하의 어디든 마음대로 쏘다닌다는 것인가.”

어느새 뭍에 내려서는 해안에 장막까지 쳐두고 기다리는 조선 천하인 하야시 쇼군을 보며, 모리 모토나리는 작게 탄식하였다.

본디 그들 일행을 가로막았어야 했을 무라카미 수군의 장수 몇몇 역시 옆에 서 있었는데, 주머니는 묵직하고 얼굴에는 피멍이 한 군데씩 들어 있었다.

“면목 없습니다, 주군.”

“면목이 없기는. 보아하니 매 맞은 값은 적잖이 받은 듯한데.”

나름 밥값은 하겠답시고 조선 천하인의 배를 가로막았다가, 그대로 불려가서 한 대씩 쥐어박히고 금은 한 주머니씩 받은 다음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길을 가로막기는커녕 길잡이가 되어버렸으리라.

“...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되었다. 어차피 너희가 막을 수 있는 분도 아니었으니.”

히라도 앞바다를 피와 연기로 메운 흑염룡의 이야기는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허나 모토나리는 그것을 떠벌리는 사카이 상인에게 적당한 값을 치르고서 그 흑염룡 소리 대신 진짜로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까지 세세히 들어 알고 있었다.

모토나리는 손짓하여 그들을 돌려보내고, 그를 기다리는 하야시 쇼군과 그 일행 향해 걸어갔다.

“조선의 천하인을 뵙소이다.”

“퍽 빨리도 왔다.”

모토나리 역시 한 사람의 무장으로서, 다른 무장의 기세를 알아보는 눈은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피식 웃는 거한은...

‘이 자리에서 나를 베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군.’

눈앞의 쇼군은 처음 만난 히라도의 영주 마츠라 타카노부를 곧장 납치하기도 한 작자였다. 더구나 여기서 무슨 짓을 저지르든 뒷감당따위 내팽개치고 조선으로 돌아가버리면 그만.

그러나 여전히 이렇게 단신으로 찾아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마음 한 구석으로 궁금함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 이름도 빌려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인데 그 값은 받아야겠지요.”

쇼군의 말을 옮겨주는 이 아리따운 여인이 바로 그 안사람일 테다. 문제의 호피 미간에 뻥 뚫려 있던 그 구멍이 눈앞에 선하였기에, 자색에 감탄하려 해도 감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이 자리까지 왔으니, 그 값을 셈하기에 앞서 우리네 제안을 들어보겠다는 뜻일 터.”

쇼군의 말이 옮겨지기 무섭게, 그 곁에 조용히 서 있던 조선 사내 하나가 한 발 걸어 나와 무언가를 펼쳤다.

“민주당 사업당 별감 서림이올시다.”

아들 타카모토가 철포 등을 사들일 때 상대하였다는 조선의 상인이었다. 어디 상인 따위가 무사 사이의 일에 끼어드느냐 딴지를 걸 만큼 민주당 사정에 무지하지는 않은 모토나리였으므로, 군말 없이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이것은 지금부터 오십일 년 전 단천에서 납으로 은을 불리는 방도를 창안한 양인(良人) 김감불(金甘佛)의 아들이 수결한 매매문기요.

이에 따라 그대들이 회취법이라 부르는 이 방도는 곧 우리 당의 것이 되었으니, 장차 이와미 은광에서 은을 캘 때는 마땅히 그 값을 내야 할 것이외다.”

사람이 창안한 제도나 기법 자체에 값을 매긴다는 것은 조선과 일본을 막론하고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모토나리 본인을 이곳으로 끌고 오는 데는 성공하였으므로, 핑계를 댄 값은 족히 한 것이었다.

“허나 이 값을 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소이다.”

“그것이 무엇이오?”

“우리와 함께 은광을 운영하는 것이지요.”

서림과 명희가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였다. 그사이 서림은 어느새 또 종이 한 폭을 가져와 펼쳐놓고 있었다.

“공(公)께서는 다른 무장들과 달리 이재와 교역에 밝으시다 들었소. 그러니 금방 이해를 하실 것이라 믿소이다.

함께 운영한다 함은 이런 것이올시다...”

서림의 말은 허언은 아니었다. 모토나리 역시 자신의 모략만큼이나 영지를 경영하는 수완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종이가 한 폭 한 폭 넘어가고, 서림이 그 조그만 막대로 이곳저곳 짚으면서 설명하는 것을 따라가는 데는 심력이 부쳤다.

“... 그러므로 이곳 일본국 안에서만 은을 쓰는 것은 거의 은을 바다에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고, 이 땅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면 그 값어치가 열 배 넘게 뛰는 것이오.

그리고 우리 민주당은 그러한 판로를 마련해줄 수 있으며, 더불어 막대한 재정을 끌어와 피폐해진 은광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소.”

이와미의 은은 대국 강남으로 넘어간다. 강남에서 뛰어난 물산과 재주 있는 공인을 사들인다. 그것으로 조선에 선소(船所, 조선소)를 세우고, 거기서 나온 배로 멀리 말라카와 천축, 그리고 그 너머까지 항해한다.

그곳에서 교역하여 얻은 이익은, 일부는 나누고 일부는 다시 더 크고 훌륭한 배를 만들고 물산을 독점하는 데 쓴다. 그리하여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은이 스스로 돌면서 불어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 하여, 말라카 이동(以東)의 모든 물산을 오로지 우리 민주당을 통해서만 오가게끔 하는 것이 우리의 대계(大計) 되겠소이다.”

마침내 마지막 장, 핀투 선장의 해도를 거금 주고 베낀 뒤 역시 거금을 주고 조선과 그 일대 지도와 합쳐 만든 천하전도(天下全圖)를 펼쳐보이며 서림이 말했다.

이런 지도를 당당히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저의 이익을 위해 모토나리와 같은 국외인에게 함부로 보여주었다는 것을 조선의 누군가 알게 된다면 길길이 날뛸 일이었으나, 날뛰기만 하고 따로 다른 수를 쓰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지도를 본 모토나리의 머릿속에는, 조선국 형세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지도 속의 조선은 일본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그리고 그 조선의 천하인은 눈앞에 있었다.

허나 천하인과 그 벗들은, 고작 조선 따위로 어떻게 만족하겠냐는 듯, 더 욕심을 내어 말뿐인 천하 아닌 진정한 천하를 경략하겠노라는 포부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젊었을 적, 저도 천하인이 되겠노라고 멋모르고 떠들던 시절이 모토나리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만 해도, 이곳 주고쿠(中國)를 넘어서면 곧 천하가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보니, 하야시 쇼군과 그 민슈토(민주당)이 노리는 것에 비하면 일본의 사람들이 말하는 천하도 고작 우물 바닥일 뿐이었다.

만약 모토나리가 지금 저 지도 한 장만을 보았다면, 이 사실을 깨닫고 한탄하면서도, 그의 대에 그 천하의 한 조각이나마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데서 만족을 겨우 찾았을 테다.

하지만 지금 모토나리의 눈앞에는 지도뿐 아니라, 그 지도를 두고 어떻게 재물로써 이 천하를 경략할 것인지를 논하는 사람이 함께 있었다.

“참으로... 훌륭하구려.”

모토나리의 마음속, 이미 식은 줄 알았던 불꽃이 다시 지펴진다.

그러나 모토나리도 이제 나이가 반백을 한참 넘었다. 불꽃은 튈지언정, 그것만으로 다시 불타오르지는 않는다.

“허나 우리 집안 홀로 은광을 점유하며, 그대 당과의 교역에만 쓰는 방편도 있을 것이오.”

“그럴 수도 있을 게요. 우리 당이 가진 재산을 침탈하여 도둑질하는 격이기는 하겠지만 말이오.

허나 내 물건을 훔쳐간 도둑과 더불어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외다. 근래 오토모(大友) 씨가 그렇게 화포를 원하고 있던데...”

‘흑염룡’이 명성을 떨친 이래 여러 다이묘들이 화포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모리 씨만큼 조선과의 교역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더라도, 민주당에서 슬쩍 제의하면 곧장 반갑게 그 미끼를 물 태세가 되어 있는 집안은 허다하였다. 바다 건너편 분고(豊後)의 오토모 요시시게(大友義鎮, 오토모 소린)처럼 야심 있는 다이묘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 쳐도, 그대들은 엄연히 조선의 사람들 아니오? 아무리 쇼군께서 명망이 높다 하지만, 우리 일본 땅의 재보를 다른 나라 사람에게 맡긴다 하면 반드시 이를 빌미삼아 우리 모리 씨를 공박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오.”

“히라도에 이미 자유민주당이 있지 않소? 그들은 우리 조선국과는 무관한 무리이니, 은광의 일에 관여한다 한들 어떤 뒷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오.”

자유민주당은 임 당수가 잠시 찾아갔다 간 뒤에 - 스스로 우기기로는 - 제 발로 모인 이들로, 이름부터 조선의 민주당과는 아무런 연이 없음을 보이고자 굳이 앞에 ‘자유’ 두 글자를 붙였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헛소리였지만, 조선을 뒷배로 둔 소 씨나 마츠라 씨가 은광 일에 관여하는 것과 조선인이 직접 개입하는 것에 분명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이 우리 당이 맡긴 재물을 이용하여 이와미 은광을 재정비하고, 거기서 나오는 은은 모두 우리 당, 아차, 자유민주당- 말이 번거로우니 그냥 자민당이라 하겠소이다 -에 넘기는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자민당 통해 받아온 그 은을 굴려서 더 큰 이득을 거두고, 그중 공의 몫을 떼어드릴 것이오. 그리하면 본디 이와미에서 나갔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재물이 공에게 돌아오게 될 터, 이것이 바로 소생이 자본이라 부르는 것의 이치이올시다.”

만약 일본 땅의 다른 상인이 은을 불려서 더 많은 은을 만든다는 말을 모토나리 앞에서 했더라면, 설령 그자가 사카이의 이름난 호상(豪商)이라 할지라도 감히 상인이 무사를 농락한다며 크게 꾸짖고 벌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앞의 사람은 조선 천하인과 그 오른팔. 이미 욕심으로 한 번 흔들린 마음은 평정을 잃었다.

“후, 좋소. 말씀하신 바를 따라, 은광을 함께 운영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하겠소. 하루 말미만 주신다면 가신들과 논의하여...”

그나마 남은 평정심으로 신중함을 기해보려 하였으나, 무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매서운 협격(挾擊)이 좌우에서 들어왔다.

“거 퍽 답답하게 만드는구만. 할 거냐, 말 거냐? 그것만 답하면 되는 일이다.

누가 들으면 은광 주인이 모리 네 녀석이 아니라 가신들인 줄 알겠다. 네가 잘나서 차지한 은광인데 누구 눈치를 더 볼 심산이냐? 굳이 눈치를 본다면 너에게 큰 도움을 준 이 몸과 여기 안사람의 눈치를 보아야지.”

“공께서 이 문기에 서명만 하신다면, 은광을 재정비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곧 자민당 쪽에서 마련해 보내드릴 것이오. 당장 손해보는 바는 전혀 없으니 무엇을 더 고민하겠소?”

그 뒤로는, 천하의 모리 모토나리조차 무엇이 벌어졌는지 잘 알지 못하였다.

결국 이기지 못하고 등 떠밀려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눈앞에 종이 여러 장이 또 나타났다.

“이러한 일은 전례가 없으니, 후일 분란에 대비하여 하나하나 절목(節目)을 마련하여야 하는 것이외다. 자, 이곳 보시면 장정(章程)이 여럿 있는데, 차근차근 읽어보시고 말미에 서명을 한 번 더 해주시기 바라오...”

저 민주당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조선국 풍조는 상인을 농사꾼이나 공인(工人)보다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참 어리석은 나라라고 모토나리는 속으로 비웃곤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상인을 천대하는 것에도 나름의 일리가 있지 않았는가 싶었다.

“하하, 걱정 마시오. 만에 하나 오늘 서명하신 장정에 문제가 있다면, 히라도의 자민당 통하여 수정하실 수 있소이다. 여기 이쪽 보시면 그 내용이 나와 있소.”

‘수정할 수 있다’고만 적혀있을 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라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모토나리가 알지 못하는 바는, 이 모든 일이 모리 본인의 자업자득이었다는 것이었다.

모토나리가 모략으로 이름났다는 것을 전해들은 바 있던 서림은, 명희와 함께 이곳까지 오는 내내 어찌하면 모토나리가 빠져나갈 구석 하나 남기지 않고 옭아맬 수 있을지만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그간 모략으로 이름 떨친 것의 업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미 여부(與否)를 본인 뜻에 따라 발설한 마당에 뭐 더 뜸 들일 것이 있느냐? 당장 서명하여라.”

돌이켜보면, 이미 저들이 자기들 땅인 것처럼 상륙하여 당당하게 펼쳐놓은 그 장막에 들어설 때부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끝에 얼떨떨해진 모토나리는 끝내 마지막 한 장에 저의 손으로 이렇게 쓰게 되었다.

“이와미 은광은... 자유민주당과 모리 씨가... 함께 운영한다... 텐분(天文) 23년(1554) 모리 모토나리.”

“하하, 잘 하셨소이다!”

“암, 진작 이렇게 했어야지.”

기껏 찾아온 일본국에 만 하루도 다 머물지 못하고 다시 떠나게 되었건만, 서림은 그저 흡족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모리 그이가 비록 이번에는 멋모르고 우리 뜻에 따랐다지만, 나중에 원한을 품고 다른 짓을 꾀할지도 모르는데요.”

바닷바람 쐬는 서림에게 명희가 다가와 물었다.

“나중이 아니라, 아마 우리가 닻 올리자마자 바로 정신 차리고서 그런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나름 사람 여럿을 겪어보며, 그 사람의 인품이나 재주는 몰라도 믿을 만한 사람인지, 잔머리 얼마나 굴리는지는 파악할 수 있게 된 서림이 웃으며 답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한 대 후려 갈겨주고 올까? 그게 낫지 않겠소?”

그저 일본의 산과 바다, 그리고 아내 자태 구경이나 하고 있던 꺽정이가 대화를 듣고 어기적 걸어와서는 주먹을 들여보였다.

“아무리 장정의 문구를 교묘하게 꾸몄다 한들, 때에 따라서는 한낱 종잇장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물론 잘만 쓰면 여느 차꼬와 고랑보다도 더 절묘하게 사람 손발을 묶을 수 있겠지만요.”

저 장정을 응용하여 조선국 안에서도 써먹을 생각을 하고 있던 서림이 말했다.

“재물에 있어서는 지모가 제갈공명과 같으신 우리 서 별감께서는 반드시 방도가 있겠지요?”

명희가 슬쩍 서림을 띄워주며 물었다.

“하하, 물론이지요. 지금쯤이면 그 대책이 반쯤은 성사되어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제갈공명 시늉을 내려는 건 아닐 테고, 뭔 수로 대책을 성사시키고 있다는 게요?”

“그야, 한양에 모주님께서 남아계시지 않습니까.”

서림이 간만에 일을 쉬고 이렇게 - 서림 딴에는 - 유람을 나올 수 있던 데는, 이지함이 돌아온 덕이 컸다.

한 해 내내 자신이 좋아하는 항해를 그렇게 실컷 하였다면, 이제 서림 본인처럼 한동안 죽어라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주님 앞에서는 발설하지 못하는 서림의 심리였다.

그 제자보다 훨씬 눈치가 있는 이지함은 스스로 찔리는 바가 없지 않았으므로, 서림이 저 없는 동안 곁가지로 일 하나 해주시라 청하니 차마 거절하지 못하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우리가 포섭하고자 애쓰고 있던 대국 강남의 서생들에게 연통이 갔을 것입니다...”

북경에서 쏜살같이 남경으로 전해지고, 이어서 모든 바닷가 고을에 전해진 소위 해통(海通)에는 해금(海禁)을 푸는 것 외에도 이런저런 곁가지 법도가 많이 붙어 있었다.

예컨대 바닷가 백성들이 사사로이 바다로 나가 교역하는 것은 허용하되, 바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오랑캐가 중원의 포구에 들어와 사사로이 교역하는 데는 제한이 많이 붙었다.

영락 연간에 그리하였던 것처럼 절강성 영파, 복건성 천주, 광동성 광주 세 군데에 시박사(市舶司)를 다시 두고, 국외인들이 시박사를 통하지 않고 교역하는 일은 엄금하였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기껏 기뻐하던 외국 상인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특히 중국 해안에 통상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몇 년 간 뇌물을 엄청나게 바쳐가며 지방 관헌과 협상하고 있던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다 성사되어 가던 협상이 하루아침에 조정의 방침에 따라 무위로 돌아가 버렸으니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허풍선이 멘데스 핀투가 조선을 통한 판로를 마련해두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허나 그렇게 한숨 쉬는 이들은 소수요, 환호성 지르며 황상 폐하 만세 외치는 이들은 훨씬 많았다. 왜구가 날뛴 이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좋은 시절이 새로이 당도한 것이다.

그 와중에 장삿속 밝은 이들은, 벌써부터 마조각(媽祖閣) 옆에 스리슬쩍 휘왕사를 세우고 지전(紙錢. 종잇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땅 위의 장사는 관왕(關王, 관우)께서 보우하시고 바다 위의 장사는 휘왕(왕직)께서 지켜주신다는 그럴듯한 말도 퍼지고 있었다.

“배가 마련되는 대로 바로 상행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황상의 뜻을 받드는 충직한 백성의 자세지.”

“휘왕사에 지전(紙錢)이나 불사르러 가세나.”

그렇게 실컷 떠들던 이들은, 늘상 다점에 와서 앉아 있던 서생이 주머니 불룩해진 채 다점에 들어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보았다.

“허허, 굉보 아닌가. 늘 여기서 허송세월하던 사람이 안 보이길래 의아히 여기고 있었는데 이제 나타나는군그래. 자네도 휘왕사를 다녀왔는가?”

이지가 학문 닦으러 남경 응천부로 올라가지 않고 이상한 짓이나 하면서 고향에 머물고 있는 것을 은근히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는데, 지금 슬쩍 떠보는 말투로 이지에게 시비 거는 신사도 그러한 축에 들었다.

“휘왕사가 무엇입니까?”

“어허, 이 사람! 해금의 법이 풀리는 데 휘왕의 감응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는가? 좋은 기운이라도 받으러 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구만.”

“그런 사당이 무엇이 중합니까. 장사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하! 자네가 장사를 다 아는가? 이제 보니 글공부 할 시간에 장사를 공부한 게로구만!”

“조선에서 온 배가 포구에 당도하였기에, 그쪽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따지고 보면 무슨 사당을 다녀오는 것보다 훨씬 귀중하게 한때를 보낸 셈이지만요.”

“잠깐, 조선에서 배가 왔다고? 시박사 쪽에서는 들은 바가 없었는데?”

시박사가 홍무(洪武) 연간에 설치되었다가 일곱 해 만에 폐지된 이래 천주에 시박사 또는 비슷한 구실하는 관아가 생겼다 없어진 지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다 보니 현판만 떼고 사람은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아, 조정의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금방 다시 시박사가 생기게 되었다.

“그야 교역을 위해 온 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제가 지난날 조선 선비들과 더불어 먼 남쪽 다녀온 것은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조선 사람들이 빌렸다는 그 크기만 한 오랑캐 배가 사라질 무렵 이지도 함께 사라졌는데, 몇 달 뒤 돌아와서는 이런저런 헛소리를 한창 한 바 있었다. 천주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하, 그렇지. 그러면 이번에는 조선 사람들과 만나 또 무슨 기담이라도 나누고 온 겐가?”

“혹시 모르지 않소? 이번에는 저 하늘의 달까지 다녀올 심산일지도.”

“기담이라뇨, 상담(商談)이었습니다.”

“상담? 푸하하하!”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사람 구실을 하려면, 거인(擧人)이 되어 제대로 벼슬살이를 하거나 장사를 벌여 집안의 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천주 독서인(讀書人)들의 상식이었다. 헌데 저 반편이는 둘 다 못하지 않는가.

“정말입니다. 조선 민주당에서 은을 나눠주고 있는데요.”

“무어라?”

이지가 정말로 은량을 꺼내보였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은 사람과 달리 거짓을 말하지 않는 법이었다.

“일전에 조선의 수산 선생에게 이 ‘사업’ 얘기를 듣고 가산을 조금 쪼개어 그 일에 밑천으로 댄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수익이 막 나오기 시작하여, 이렇게 전해받은 것이지요.”

“그게 말이 되는가? 자네 집안 사정은 나도 얼추 아네. 그런 거창한 장사에 밑천을 대었다고?”

“조선에서는 이를 자본 장사라고 한다는데, 대국의 상인이라는 이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니 답답한 일입니다. 일본에 은산(銀山)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삽으로 은을 퍼 나르듯 한답니다. 그곳의 은광에 밑천을 대기만 하면 그 뒤로는 거의 공짜로 은이 쏟아지는 것과 다름이 없지요.”

이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들이 도대체 무슨 장사를 말씀하십니까?”

교역하는 외국 배는 모두 시박사를 통해야 하지만, 반대로 교역을 위하지 않는 배는 굳이 시박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설령 관헌 한둘이 시비를 걸고자 한다 해도, 자유민주당 배에 실린 은을 보면 - 그리고 그 은의 일부를 저의 눈동자 대신 소맷자락에 넣고 나면 - 그런 생각이 사라질 터였다.

그리고 그날 다점에서는 이지의 말을 믿지 않았던 이들도, 며칠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조선을 거쳐 온 배가 정말로 은을 가득 싣고 있는데, 그것을 몇몇 서생들에게 그대로 전해주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난날 천주에 닿은 조선 서생들과 교류하였던 이들이었다. 그 수산 선생 이지함이 벌이는 ‘사업’을 통해 은이 새끼를 치게 만들었다는 이지의 말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몰랐다.

그 결과, 며칠 뒤 이지가 늘 그렇듯 다점에 나타나자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보게, 그... 자네 말이 참이라면 말일세, 혹시 그 수산 선생께 나중에 내 이름을 전해줄 수 있겠는가?”

“흠흠, 은으로 밑천을 대면 그 은을 불려서 돌려준다... 그 장사가 거짓이 아니라면 선점하지 않는 치가 바보겠지. 굉보 자네가 그간 이 사람의 말 때문에 서운하였다면 기꺼이 사과하겠네. 언제고 우리 집에 와서 차라도 한 번 하지 않겠는가?”

“그간 내가 한 말은 모두 농담이었다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허나 세상 사람들의 험담하는 바가 무서우니... 자, 여기 내 성의일세.”

은과 함께 이지함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대로 거짓말을 하였더니 모두 이렇게 주렁주렁 낚이는 것을 보며, 이지는 실소를 삼켰다.

“... 그렇게 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혼슈와 규슈 사이 간몬(關門) 바닷길을 지날 무렵 서림의 이야기가 그쳤다.

“아니, 은이 대체 어디서 나왔길래...?”

“그간 분표를 조금씩이나마 팔지 않았습니까. 들어오는 대로 족족 은으로 바꾸었지요.”

떡 벌어진 꺽정이네 부부의 입가에 소금기 머금은 바람만 불어왔다.

“그것을 절반 넘게 대국에 풀었으니, 이제 뿌린 것 이상으로 거두어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저 이와미 은광에 퍼부을 것입니다. 모리 그자에게는 은의 출처까지 밝혀줄 심산입니다.

항주의 서생 아무개, 천주 거인 아무개 등등 수많은 이들이 저의 이름 걸고 자본을 모았다... 개중 유력한 집안 하나 없겠습니까? 모리 그자가 양식이 있다면 감히 그 은을 떼먹을 생각은 못할 터입니다.”

허세에 허세를 더하여 모리 모토나리가 딴짓 못하게 묶어놓는 계책이었다. 미친 척하고 딴짓을 할 만큼 사리가 어두운 모토나리는 아니었는데, 이제 그 꾀바른 성정이 그의 발목 묶는 족쇄가 되리라.

“그러니까... 아랫돌 빼어 윗돌 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돌 대신 은덩이로. 그것도 아주 많은 은덩이로요.”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 속이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누구에게도 딱히 손해는 주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없는 재물을 있다고 속이는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꺽정이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보면 서림 그대도 본디 도둑질의 명수였지. 나와 달리 평양부 곳간을 털어먹었을 뿐.”

“평양 드나드는 장사꾼들 보따리도 털어먹었습니다. 남의 공적을 깎아내리지 마시지요.”

주력하는 곳이 다를 뿐, 다 같은 도둑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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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의 히로시마 일대는 모리 씨가 강성해지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됩니다. 모리 씨는 히로시마 시가 위치한 해안 삼각주의 간척을 추진하였고, 마침내 모토나리의 손자 테루모토의 대에 이르러 히로시마 성을 쌓고 가문의 본거지를 히로시마로 옮기게 되지요. 이후에도 히로시마는 지역의 중심 도시로 기능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1945년 8월, 역사에 영 좋지 않은 쪽으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마조는 복건·광동 일대에서 널리 추앙받던 항해의 여신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마카오(Macau)라는 이름도 그 일대에 있던 마조각의 이름을 지명으로 오해한 것이 그 어원이라고도 하지요. 이미 1520년대부터 포르투갈 배들이 종종 기항하던 마카오 일대는 1554년 광주의 지방 관헌들과의 협상 끝에 포르투갈 측에 정식으로 개항되었고, 1557년 첫 포르투갈 상관이 마카오에 문을 열게 됩니다. 작중에서는 해금령이 훨씬 일찍, 그리고 원 역사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풀려버리는 바람에 협상이 뒤집히게 되었지만요.

촉한의 장수 관우는 남북조 시대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처음으로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된 이후, 송대에 ‘전국구’ 신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이후 시대에 따라 공식적인 지위는 왕후 사이를 오가다가 만력 연간에는 마침내 황제의 칭호를 받게 되지요. 그러나 조선에 처음 관우 신앙이 들어온 임진왜란 시기까지만 해도 민간에서는 ‘관왕’이 더 유력하였던 듯합니다.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관우를 ‘관왕’으로 계속 모셨는데, 여기에는 관우가 황제가 될 경우 조선 국왕보다 더 지위가 높아진다는 문제 또한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대한제국 선포 이후 관우에 대한 칭호도 왕에서 황제로 격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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