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11화 (111/259)

34. 큰 말은 죽지 않는다 (4)

가을걷이로 바쁜 시절도 지나고, 전정공회가 열릴 때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제멋에 겨워 떠드느라 매일같이 모였지만, 그것도 여러 달 지나니 맥이 빠진 고로, 공회 파할 때 약조하기를 올 겨울에는 보름에 한 번씩만 모이자 하였다.

어차피 공회도 맨 처음 대훈(大訓) 받든 이래 논의가 지지부진하였으므로, 아쉬워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아쉬운 일이지. 아쉬운 일이야.”

논상원으로 걸어가던 도중 한탄하는 이황은 그러므로 별난 축에 들었다.

“거짓 선비와 거짓 군자들이 많은 게지. 자네 잘못도 있고.”

곁에서 함께 걷던 조식은 저의 성미대로, 주변의 사람이야 듣든 말든 툭 내뱉었다.

조식의 거친 말마따나, 공회가 공회(空會) 소리까지 듣는 까닭은 민주당과 탕평당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었다.

꺽정이와 이지함이 처음 사림 선비들에게 찾아가 당을 만들어달라 했던 것은, 공회 안에서 세력을 나누어 적당히 치고 박으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며 논의가 오래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물론이요, 사림의 영수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은, 각지 군현에서 올라온 사족들의 옹고집이었다.

“그 위군자 운운은 동의할 수 없으나, 이 사람 잘못 있다는 말은 참으로 옳으이.”

이황이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대훈이 내려진 이래, 두 당 사람들은 한전법의 대강(大綱)에는 동의하면서도, 이를 어찌 국법으로 정립할지를 두고서는 갑론을박 주고받고 있었다.

탕평당 좌장들의 면면을 보고 그 당에 우르르 들어온 사족들은, 한전법을 국법으로 정하되 그 한도를 정함에 있어서는 상속할 수 있는 전답의 결수(結數)를 한정하는 방식을 택하자 하였다.

무슨 변화든 급한 것은 싫어하는 이황 이하 사대부들 심리에는 이것이 합당하였다.

반면 민주당 아래 들어간 상민들은 법으로 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토지의 결수를 정하고 그 한도를 넘는 토지는 일시에 모두 처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양반님네들 말한 대로라면, 드넓은 농장 지닌 사람이 작고할 때 그 자식들에게 고루 분급해주기만 하면 그대로 농장이 유지되는 것 아니오?’

‘토지 분급할 때까지 차일피일 미룰 심산이겠지!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니 조금만 기다리면 한전법이고 무엇이고 풀리리라 믿고서!’

‘당장 전답을 팔더라도 우리네 소민(小民)들은 겨우 감당할 판인데, 일시에 전답이 모두 풀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여러 해에 걸쳐 자잘하게 팔면서 값을 올려받으려 할 것이오!’

상민들이 무작정 이렇게 내지르니, 넓은 농장 지닌 사족들은 도리어 속으로 의심하였다.

‘대대로 일궈온 문중의 터전이다. 상것들이 바란다 하여 고스란히 넘겨줄쏘냐?’

그래도 공회가 아예 효험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이렇게 으르렁대면서도 어쨌든 서로 얼굴 맞대고 계속 모이고는 있었다. 저들 뜻에 따라 뭉쳐서 버티다 보면, 상대가 결국 힘 빠져 무너지리라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 덕에 올해는 향전이고 무엇이고 없이 대체로 잠잠하였다. 같은 고을 양반들의 환심을 사서 탕평당 대열에서 빠지게 만들 궁리를 해야 할 판이었으므로, 그 양반들 머리통 겨누고서 돌 던질 이유는 없던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배운 사람들이니, 탕평당 당론이 한전법 대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정해지면 알아서들 전답을 처분할 줄로 알았네.”

이황이 씁쓸하게 말했다. 다른 탕평당 사족들도 눈치껏 저를 따라 전답을 청산하리라고 진지하게 믿었던 것이다.

정론보를 차린 이래 이황의 지닌바 전답은 닥나무밭으로 거의 다 바뀌었다. 노비들은 저들 뜻에 따라, 삼십 년 기한 동안 땅값을 나누어 갚는 조건으로 저들이 경작하던 논밭을 사들이거나, 아니면 닥나무밭에서 삯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다.

한전법의 논의에서 다루는 것은 오직 곡식 자라는 논밭뿐이었으므로, 이미 이황은 저의 논밭을 진작에 처분한 조식과 매한가지로 한전법의 대상에서 미리 빠져나온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황이 장사의 수완과 더불어 높은 인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비들은 상전의 인품을 믿고, 상전은 사람의 선량함을 믿었으므로, 서로 삼십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딴마음 품지 않으리라 여기면서 순순히 따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족들은 사정이 그와 같지 않았다.

“이 사람이 여태껏 선비라면 오직 문장과 학식만으로 호구지책 마련해야 한다고 떠들었건만, 자네를 포함하여 아무도 듣지 않았지. 공자께서도 벼슬은 구하실지언정 식읍(食邑)은 구하지 않으셨거늘, 우리가 무엇이라고 농장을 꾸리겠는가?

허나 자네조차 문명(文名)에 어울리지 않는 장사를 하는 판국이니, 향촌의 사족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한편으로는 그들 사정도 이해는 한다네. 모든 사족이 스스로 현달할 수는 없으니, 지닌바 토지에 의지하여 문중의 위엄과 체통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겠지.”

몇 해 동안 겨울만 되면 백성들이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다 보니, 각지 수령방백들도 어쩔 수 없이 청렴결백하게 되었다. 탐관오리가 기댈 만한 뒷배는 모두 저승으로 갔고, 반면 그 탐관오리의 곳간을 노리는 자들은 이승에, 그것도 아주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탐관오리라 손가락질 받는 이들과 청백리라 찬양받는 이 사이 중간에도 사람이 있었다. 대개 벼슬살이 하는 이들은 그 중간에 들었으니, 설령 본인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그 부정의 소산은 벗들 사이의 정이라는 명목으로, 또는 문중의 가산이라는 명목으로 한몫씩 얻어 누리곤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툭 끊어졌다. 그나마 있는 문중의 재산이라도 지키려면 결국 토지를 꽉 부여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의민당이든 민주당이든 장사치들이 크게 일어난 것이 차라리 잘 된 일 아니겠는가.”

조식이 너스레 섞어 말했는데, 이황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우리네 가산에 보태지는 바는 생기게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닐세.”

두 사람이 이렇게 논상원으로 향한 까닭은, 사업당 분표를 사들이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 사업당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이 궤짝째로 여럿 나와서는 제물포에 정박한 내선에 실린 일이 있었다.

얼마 후 배 여러 척이 강남을 다녀왔는데, 놀랍게도 은이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사업당 사람들이 공공연히 떠들기를,

‘서 별감께서 일본을 가시더니, 산 하나가 통째로 은광인 곳을 찾아 사들이셨다 합디다. 그 소문 먼저 들은 대국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 사업에 한몫 끼고자 이렇게 은을 보내는 것이지요.’

하였다.

서림이 말하는 자본 어쩌고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눈앞에서 손짓하는 은을 보니 어설프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하면, 우리도 은이든 무엇이든 들고 오면 거기 낄 수 있는 것이오?’

‘이미 논상원에서 분표를 팔고 있지 않습니까?’

‘아!’

한편, 사림의 인사들은, 나름대로 항주와 천주 등지에서 문장으로 이름난 이들도 가산의 일부를 내어 사업당 분표를 사들인다는 데 마음이 동하였다.

대국의 배운 사람들조차 사업당 분표를 믿음직하다 여기고 있다 하니, 정말로 서 별감이 일본국에서 그럴듯한 이익의 근원을 얻어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전과 달리, 사업당 분표를 의심하며 아니 사들일 이유는 전혀 없고, 오히려 서둘러 분표를 사들여 그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여야 할 터였다.

(실제로는 조선에서 모은 은으로 대국 강남 사람들을 홀리고, 그렇게 강남에서 모은 은으로 다시 조선 사람들을 홀리는 격이었으나, 나름 이재에 밝다 자부하는 이황조차 그런 진상은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황은 조식까지 끌고 이렇게 논상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식은 그의 벗과 달리, 소소하게 몇 분(分) 정도만 살 여력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황은 장담하기를 정녕 서 별감이 대국 사람들까지 듣고 솔깃해할 만한 은광을 얻어내었다면 분표를 조금이라도 미리 사놓는 쪽이 마땅하다 하였다.

허나 막상 논상원 앞에 당도하니, 선객이 제법 많아 줄이 꽤 늘어서 있었다.

대개는 손해와 이익을 엄밀히 따지기보다는, 그저 옆집 사람이 가보를 털어 분표 사러 간다는 말 듣고 따라서 나온 이들일 테다.

“엿! 맛 좋은 엿이 있소!”

“허, 벌써 엿장수까지 나왔구만그래.”

엿이라면 점잖지 못한 식물(食物)이었다. 일전에 이지함이 저의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였던 그 가수저라인지 카스테라인지 하는 서양 떡이라면 모를까, 저자에서 파는 그런 엿에는 두 사람 모두 별 감흥이 없었다.

“구경하러 오시면 엿을 공짜로 드리오!”

그제야 엿장수 뒤에 멀쑥한 사람 서넛이 장막 하나 쳐두고는 무슨 물건을 자랑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궁금한 마음 이기지 못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퇴계와 남명 두 분 선생 아니십니까! 실로 광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 뒤에 가만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사람이 튀어나와 인사를 올렸다. 서자로 태어나 역관으로 일문(一門) 이루고 문명 또한 떨친 어숙권(魚叔權)이었다.

“야족당(也足堂) 선생께서 이곳에는 웬일이시오? 장막 쳐두신 것을 보니 사업당 분표 사러 오신 것은 아닐 테고.”

“허허, 분표의 일은 맞습니다. 다만 사는 게 아니라 팔고자 할 따름이지요.”

“분표를 팔다니?”

“그 사업이라는 것을 사업당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소생이 나라의 은혜를 입어 사행(使行)을 거들던 시절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는데, 마침 이 분표의 제도가 세인의 눈길을 끌기에 시류(時流)를 틈타 후생(厚生)에 힘쓰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 보시지요.”

어숙권이 손짓하니, 젊은이 하나가 나무 궤짝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두 사람 앞에 가져왔다. 요새 상인과 규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 그 근원은 보나마나 서 아무개와 신 모 부인일 테다 - 소위 서양수자(西洋數字, 아라비아 숫자)의 여덟 ‘8’ 자와 닮은 형상의 무언가였다.

“이것이 바로 안경(眼鏡)입니다. 대국에서는 왜납(矮納)이나 애체(靉靆)라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에게 팔 생각이다 보니 조금 더 쉬운 이름을 지었지요.”

“무엇에 쓰는 물건이기에...”

이황이 용도를 묻기도 전에 조식이 먼저 그것을 받아들고는 눈에 가져다 대었다. 이름이 안경이니 당연히 눈에 대는 것이리라 단정한 것이다.

“이야, 이것 참, 기물(奇物), 아니, 귀물(貴物)이군그래! 퇴계 자네도 얼른 대어 보게.”

조식이 워낙 큰 소리로 떠들다 보니, 엿장수가 엿 나누어주는 것보다 더 주변 이목이 끌렸다.

벗을 무안케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눈앞에 그 물건을 가져다 대었는데, 과연 기묘한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금방 눈앞이 환해지는 듯하더니, 마치 스무 살 때처럼 만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허어.”

“헌데, 이 기이한 것과 분표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소이까? 언뜻 떠오르는 바가 없는데...”

“이미 사업당에서 경제사 자금을 끌어와 대국 공인들 여럿을 동래에 데려왔다 들었습니다. 사업당만 대국 공인을 데려오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허나 그만한 자금이 땅에서 나오지는 않을 터. 그리하여 일전에 소생이 북경에서 가져온 이 안경을 내세워 분표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 나오기 무섭게, 앞서 조식에게 그 안경을 가져다 준 젊은이가 이번에는 종잇장 뭉치를 꺼내 들었다.

“아서라, 퇴계 선생께서 원하신다면 우리 분표를 모두 사들이실 수도 있으실 터인데, 어디 저자 백성들에게 내줄 때처럼 하려 하느냐.”

어숙권이 곧장 만류하며 이황에게 말했다.

“행여 원하신다면 나중에 언제든 사람을 보내주시지요.”

이름난 두 사람이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뒤에도 어느새 사람 여럿이 따라와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어숙권을 생각하여 이황과 조식은 슬쩍 자리를 비웠다.

몇 발짝 더 걸어 논상원 언덕배기를 올라가니, 어숙권 외에도 비슷하게 분표 장사를 하러 나온 이들이 여럿 있었다.

허나 대개는 허무맹랑한 것을 장삿거리라고 내걸고 있었다. 간혹 기화가거(奇貨可居)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사업 제안도 있었으나, 사람이 미덥지 못하여 솔깃함이 반감되곤 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라의 으뜸가는 장사꾼 서 별감조차 본디 아전 잡배(雜輩)와 어울리는 신세였으니, 장사판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무리는 대개 그 한미함이 비슷할 터였다.

이황 본인이나 어숙권처럼 선비의 가운데서 장사하겠노라 나서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장사 밑천을 끌어오겠다며 분표를 내는 일을 했다가는 설령 윤원형일지라도 욕심 과하다는 비판을 여기저기서 받았을 터.

“이보시오! 어찌 이렇게 사민(士民)을 공히 기망한다는 말이오? 이 못된 짓을 당장 관두시오!”

큰 소리가 나기에 고개 돌려본즉, 배천에서 전정공회 참석차 상경한 참견쟁이 서생 김택(金澤)이 논상원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저 만물이 생육하는 것은 곤덕(坤德, 땅의 덕)이 있기 때문이오. 헌데 곡식도, 초목도 아닌 은이 스스로 불어난다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이오?”

김택과 그에 동조하는 서생 여럿은 논상원 대문 앞에 자리까지 깔아놓고 이 분표 장사의 해악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었다.

곡식은 만민을 먹일 수 있으니 귀하고, 곡식은 토지에서 자라니 토지 또한 귀하다. 허나 금은보화는 오로지 사람의 사치하는 마음에서 귀함이 덧붙여지는 것이니, 이것으로 장사 벌이는 일은 실로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 하물며 이 분표는 종잇조각에 불과한데, 곡식이나 전답을 팔아 구한 은으로 이 분표를 사게끔 한다 하니, 어찌 이것이 가당한 일이오? 어리석은 백성이 여기에 현혹되어, 오로지 그 값이 오르내리는 것만 믿고 생업을 폐한다면 이 얼마나 큰 폐단이 되겠소?”

“옳소! 옳소!”

대문 밖에서 저러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안으로 들어가 꾸중을 하려다가 쫓겨난 모양이었다.

그때, 한참 논상원 대문 향해 소리 지르던 김택이 무슨 바람 불었는지 고개를 돌렸는데, 하필 이황과 조식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때 만나도 솔직히 귀찮은 사람을, 그것도 분표 사러 온 길에 만났으니 난감한 노릇.

허나 때맞추어 이황과 조식 두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두 사람 대신 김택에게 손길이, 그것도 아주 우악스런 손길이 닿은 것이었다.

“거 장사 좀 합시다. 떠들 사람 떠들라고 저기 흑의영까지 빌려주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뭔 행패요?”

“임 당수?”

“그래, 내가 임 당수요. 이제 보니 구면이구만. 해주인가 배천인가 살던 서생 아녔소?

우리네 사업당 장사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오. 원하는 대로 당장 사업당 분표를 종잇조각으로 만들었다가는 사람 여럿 다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소? 이미 경제사 박 제조(박한종)도 다녀갔는데.”

“...”

“계속 재미없는 짓 하면 나도 재미없게 굴 것이니 그리 아시오.”

황해도 사는 유생이라면 꺽정이의 ‘재미없게’가 무슨 뜻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택이 꼬리를 말고 조용히 사라지니, 그 뒤에서 악 쓰던 치들도 금방 사라졌다.

그러나 꺽정이가 사람 겁박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듣고 보았던 두 사람은, 오히려 의아할 뿐이었다. 구면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곰살맞은 사이는 아닌 듯한데, 꺽정이 말투가 어째 (꺽정이 치곤) 온화했던 것이다.

갸우뚱할 겨를도 없이, 꺽정이가 금방 아는 체를 했다.

“오, 두 분 어르신 오셨구려. 언제 오시나 싶었소. 자, 얼른 안으로 드십시다. 날도 아직 추운데 연세도 있으신 분들을 앞에 세워둘 수는 없지.”

꺽정이는 두 사람을 논상원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바깥이 소란스러운 만큼이나 안쪽도 부산스러웠는데, 그래도 꺽정이까지 손수 나서서 이곳저곳 단속한 보람이 있어 안뜰 한쪽에 그나마 조용한 구석이 있었다.

“언제 또 돌아왔군그래.”

마루에 앉자마자 조식이 말을 꺼냈다.

“돌아온 지 보름은 족히 되었소. 잠깐 안 지키고 있었더니 또 그사이 귀신같이 찾아와서는 이렇게 난리를 피우더군.”

“오늘따라 신수가 훤해 보이는구만.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김택 그 작자만 귀신같은 줄 알았는데, 어르신도 마찬가지구려. 선비라면 귀신 시늉은 안 해야 하는 것 아니오?”

꺽정이가 늘 그렇듯 심통 가득한 말투로 대꾸하였으나, 거기에도 어째 너스레가 섞여 있었다.

조선 땅을 다시 밟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꺽정이에게는 좋은 소식이 여럿 있었다. 서림의 계획대로 강남 서생들을 홀려 은 그러모으는 계책도 성공하였고, 그것을 모리 모토나리에게 보내 은광 밑천으로 쓰면서 은근히 기를 죽이는 것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와 비할 수 없는 좋은 소식이 더 있었다.

“안사람이 요새 속이 많이 안 좋은 듯하였는데, 장모님께 여쭤봤더니 입덧이라 합디다. 그래서 잠깐 집에 다녀왔던 게요.”

“오오, 축하허이.”

“하하, 천하의 임 당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만그래.”

사림의 중진들 중 민주당과 사사로운 연분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미운 정 들어버린 이윤경과 이준경 형제는 물론이요, 이황과 조식 역시 꺽정이가 한양 뒤집지 않았더라면 큰 고초를 겪었을 것이었다.

더구나 이황은 활인심방을 만들어 스승 이언적의 몸에 활력 북돋은 뒤, 비슷한 방법으로 효험 보았다는 신씨 부인과도 종종 서신을 주고받곤 하였다.

신씨 부인이 검무로써 울화(鬱火) 다스렸다는 얘기를 듣고, 이황은 역시 마음에 아픔이 많았던 자신의 처 권씨를 떠올렸다. 어쩌면 활인심방을 개량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도움 되는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분이 두터우니, 축하하는 마음도 진심이었다.

(그리고 차마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 임꺽정과 ‘그’ 이씨 부인 사이에서 도대체 어떤 아이가 나올 것인가 궁금한 마음도 약간은 있었다.)

“고맙소.”

짤막하면서도 묵직한 말 한 마디 툭 던지고서 꺽정이가 다시 본론을 꺼냈다.

“헌데 여긴 무슨 일이시오? 저 김택처럼 꼬장 부리러 온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성품에 있어서는 꺽정이와 닮은 점 있는 조식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보게, 여기 퇴계가 이재에 얼마나 밝은지 뻔히 알면서 그런 걱정을 다 하는가? 이 분표가 장차 큰 재보의 근원 될 것이라 장담하기에 철석같이 믿고 따라왔다네.”

“걱정할 만 하니까 걱정을 하지. 그래서, 어느 쪽이오?”

“무엇이 말인가?”

“우리네 분표 장사 말이오. 이미 언덕 올라오면서 보셨겠지만, 우리 따라하는 장사꾼들도 여럿 있소. 개중에는 내가 보아도 영락없는 헛소리도 있던데, 가뜩이나 우리가 말업을 높인다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선비님네들 보기엔 더욱 안 좋게 보이겠지.

퇴계 어르신이 분표 사들이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탕평당 여론은 또 다른 이야기 아니겠소? 궁금하여 여쭤보는 게요. 매도 미리 맞는 게 나으니.”

꺽정이 말에 일리가 있었으므로, 조식과 이황 모두 잠시 웃음을 거두고 생각에 빠졌다.

사업당 분표에서 시작한 일이 아주 거창하게 커졌으니, 반대로 사업당만 예외로 짚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금법을 제정하는 것도 불가한 일은 아니었다.

“자네 말마따나, 이 나라의 근본을 지키고자 한다면 금하는 것이 옳겠지. 당장 이 분표도 한 번 분급한 뒤에 다시 매매하지 못하게끔 해야 할 터.”

이황이 장고 끝에 운을 떼었다.

“물론 농사도 풍흉에 따라 그 소출이 크게 달라지곤 하지만, 그래도 곳간을 만들고 평소 수리(水利)에 힘쓴다면 능히 백성을 먹여살릴 수 있네. 반면 장사는 그렇지 않지. 더구나 먼바다에 나가 교역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자네 당이야, 그 수완이 이미 여러 해에 걸쳐 드러났으니 그나마 걱정하지 않지만, 다른 백성들은 또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는가? 자칫하면 지난 이백 년의 풍교(風敎)가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일세.”

“그 말씀, 동고 대감 댁에서도 똑같이 하실 심산이시오?”

꺽정이가 정면으로 이황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김택 같은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오. 지금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것도, 선비라는 자들은 언젠가는 다 떠올리겠지.

퇴계 어르신께든 조식 어르신께든, 의중을 묻는 후학들도 여기저기서 나올 테요. 그때가 되면, 가부(可否)를 정해 말씀하셔야만 하겠지.”

지난 여러 해의 변화, 그리고 이제 목전에 닥친 새로운 시류.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 위태로움을 감수하며 흐름을 타고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제라도 어떻게든 뒤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을 칠 것인가?

어숙권과 김택 두 사람의 모습이 이황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이황은 결정하였다.

“자네들처럼 은을 이곳저곳에 놀려 그것을 불리는 데 힘쓰는 쪽이 있다면, 반대로 은을 모아 필요한 곳에 빌려주고 거두기만 하면서 그것을 지키는 데 힘쓰는 쪽도 있어야겠지.”

말을 하다 보니, 이황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무언가가 그려졌다.

이미 지난번 경장으로써 사창의 제도를 국법으로 정한 뒤, 민간에서 곡식을 모아 그것을 빌려주고 가을걷이때 돌려받는 것이 조금씩 정착되고 있었다. 대개는 향약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행실이 바람직한 이들에게만 빌려주도록 되어 있었는데, 비록 몇 해만에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그 취지는 그대로였다.

사창이 향약과 맞물려 올바른 행실을 권면하고 잘못된 풍속은 고치는 데 일조하는 것처럼, 사치스러운 풍조와 허황된 사업을 배격하고, 정직한 장사를 권장하는 일을 누군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반드시 누군가 그런 일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그렇게 모은 은을 빌려주고 걷는 일을 할 수도 있겠지. 예컨대, 한전법에 따라 토지를 매매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무언가가 번뜩였다.

지금까지 전정공회에서 두 당 사람들이 끝내 팽팽한 대립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전답의 값을 나누어 내는 데 있지 않았던가.

일반 백성들은 전답의 값을 감당할 수 없어 여러 해에 나누어 낼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그들이 꾸준히 값을 갚는다는 보장도, 그들이 값을 마침내 다 내었을 때 순순히 땅을 넘겨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전례없는 일이었으니, 서로 믿지 못하고 대립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

허나 여러 뜻있는 사람끼리 재산을 모아, 보증을 해준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썩어 없어지고 쥐가 파먹는 만큼 꾸준히 채워넣어야 하는 곡식과 달리, 은은 한 번 모아두면 상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생각이 그에 닿은 이황이, 꺽정이와 조식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체통 지키는 선비답지 않은 경망스러운 움직임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정론보를 운영하는 퇴계 선생이 장차 그 일을 남명 선생에게 도맡기고, 본인은 은정고(銀政庫)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여러 선비들의 뜻을 모아, 은을 두고 사람을 속이거나 사치스러운 풍조에 낭비하는 일을 막겠노라는 취지를 선보였는데, 그것이 설립되면 첫 번째 일로써 전답을 매매하는 것에 대하여 은을 빌려주겠노라 하였다.

퇴계 선생의 뜻에 감응하여, 또는 저들도 농장 처분하고 분표를 사거나 새로 사업을 일으킬 생각으로, 문중의 농장을 처분하고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대양서생으로 이름난 기대승이나 고경명 등이 그러하였다.

허나 반대로, 퇴계 선생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며 우려 섞인 말을 공공연히 꺼내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이황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그 수효가 많았으나, 이미 은정고 일에 몰두하고 있던 이황은 이를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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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제나라에 머물 때, 제나라 경공이 늠구(廩丘) 땅을 식읍으로 주려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자는 경공이 자신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식읍은 내리려 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겨, ‘너무나 나를 모르는 일이다’라 하면서 제나라를 떠나버렸다고 하지요. 정작 『논어』에는 적히지 않은 이 일화가 『여씨춘추』 등 후대의 다른 여러 문헌에 전하는 것을 보면 선진시대부터 유명한 이야기였던 듯합니다.

의민당이 나오던 시절에 잠시 등장하였던 황해도 유생 김택이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실록』에 짤막하게 이름을 올렸는데, 주세붕이 세운 해주서원에 사액을 해달라는 상소부터 순회세자 사후 왕위 계승에 대한 상소까지 이런저런 상소를 계속 올렸다고 합니다. 일개 유생의 신분으로 그런 상소를 올렸다는 데서 그 성미를 엿볼 수 있는데, 나중에는 하도 열심히 상소를 올리다 보니 그 정성이 갸륵하다는 이유로 - 아마 상소를 그만 올리라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 참봉 벼슬이 내려지게 됩니다.

어숙권은 좌의정을 지낸 어세겸의 서손(庶孫)으로, 역관이면서도 문장에 밝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고사촬요』, 『패관잡기』 등 여러 저작을 남긴 바 있습니다.

안경이 조선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말로 전해집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 안경인 김성일의 안경은, 그가 북경 사행길에 구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유리공예가 발달한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왔기에, 페르시아어 아이낙(Ainak)을 당대 중국어로 음역한 왜납, 애체 등의 낱말이 그대로 조선으로도 들어오게 됩니다. 17세기 중반 경주에서 나는 수정으로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널리 보급되었지요.

지나가듯 언급되는 이황의 죽은 아내 권씨는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조부 권주(權柱)가 이세좌와 함께 폐비 윤씨에게 사약 가져가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그 일가가 후에 갑자사화에 연루되고야 말았는데, 이 일로 충격을 받아 성격에 문제가 생겼다는 후대의 추측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황은 권씨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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