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12화 (112/259)

35. 춘추대의 (1)

“내 일찍이 하늘의 운수를 따져본즉, 올 을묘년(1555)에 왜인들로 말미암아 큰 변이 일어날 조짐이 있었네. 이제 그 일이 맞게 되지 않았는가.”

남사고가 저녁 하늘을 보며 한탄하였다. 개밥바라기는 지고 있건만 어찌하여 저는 퇴청을 못 한다는 말인가.

“예? 소인네가 무에 자루모토 하얏사무니까?”

그 앞에서 책을 잔뜩 들고 지나가던 왜인 하나가 ‘왜인으로 인한 변’ 소리를 알아듣고 화들짝 놀라, 어설픈 조선말로 물었다.

“자네 보고 한 말은 아닐 걸세. 걱정 말고 가던 길 마저 가게.

아, 그리고 ‘자루모토’가 아니라 ‘잘못’. ‘하얏사무니까’가 아니라 ‘하였습니까’. 조선말 음운이 일본과 같지 않으니 조심하여야 하네.”

남사고 옆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홍순언이, 놀란 꼬마 녀석에게 상냥히 짚어주었다.

“아, 가무샤, 아차, 감사합니다.”

그사이 눈치껏 ‘가무샤하무니다’도 올곧게 말하려면 ‘감사합니다’라 해야 하리라 짐작하고서, 그럭저럭 똑바로 인사 올리는 왜인이었다.

남사고가 자세히 보니, 왜인은 연소한 사람치곤 얼굴이 자글자글하고 못났다. 잠시 자신이 난쟁이 노인에게 실례를 하였는가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왜 애먼 사람을 놀라게 하십니까. 밤에 남아서 일하는 것이 격암(남사고) 어르신 혼자도 아닌데.”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왜국에서 나오는 은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는데.”

“분표도 적잖이 챙기셨다 들었습니다. 왜국 은의 덕을 보시는 분께서 불평하시면 안 되지요.”

지난날 분표 소동 이래 도는 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은덕(恩德)은 곧 은(銀)의 덕이라 하였는데, 남사고와 홍순언 두 사람 모두 그런 ‘은덕’ 도탑게 입은 사람이었다.

허나 남사고 불평도 일리는 있었으니, 대국 강남과 조선, 일본 사이에서 은만 오가는 게 아니라 서책도 오갔으며, 그 서책을 가운데서 찍어내는 일은 고스란히 두 사람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미 은광과 분표의 일로 인하여 대국을 오가는 자유민주당에 딸린 가왜(假倭)들 - 본디 대명의 사람이었으므로 포구를 제멋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 중에는 글을 아는 자들도 없지 않아, 팔면 제법 벌이가 좋을 듯한 책들을 구하여 제물포로 가져오곤 했다.

한양의 민주당 내에도 이미 서책 찍어낼 기반이 모두 마련되어 있었던지라, 그것을 그대로 찍어내어 팔기 시작했다.

그것만 해도 벅찰 지경인데, 해가 넘어갈 즈음부터 갑자기 일감이 마구 늘어났다.

“율곡 도령의 『천주실의』와 『격몽요결』만 해도 숨 넘어갈 판에 갑자기 서책들이 더 들어오니 이게 큰 변란 아니면 무엇인가?”

“그래도 온갖 서책을 조선국 여느 서생보다 먼저 읽을 수 있으니 그 재미는 있지 않습니까.”

홍순언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지함의 서신을 받은 강남 서생 오승은이, 은 대신 자신이 쓰던 잡문(雜文)을 보내왔다. 그것을 꼬박 밤새워 읽은 이지함은, 곧장 그 원고를 남사고에게 보내어, 소위 『서유기』라는 제목으로 찍어내게 하였다.

거기에 더불어 이이까지 『천주실의』와 『격몽요결』을 얼추 완성하여 역시 남사고와 홍순언 두 사람에게 보냈다.

“지금 격암 선생께서 맡고 계신 이 일을 공짜로 대신 할 사람을 구한다면, 조선국은 물론이요 저 일본국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 농은.”

투덜대면서도 부지런히 책장 넘기며 오탈자 없는지 확인하는 남사고였다.

“정말입니다. 아까 지나간 그 젊은이 - 이름이 등길랑이(藤吉郎, 도키치로)인가 했을 겁니다 - 가 말하기를, 평호(히라도)에서도 그 『서유기』가 인기랍니다. 방금 전에도 그것을 여러 질 들고 가고 있었지 않습니까.”

일본의 글 아는 사람이라면 대개 경전이나 훌륭한 문장의 멋은 알지 못하고 그저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므로, 서림이 지시하여 미리 몇 질 찍어 히라도에 넘기게끔 하였는데, 그것이 벌써 종이모서리 해질 지경이 다 되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젊은이가 맞았군. 언뜻 보니 주름이 자글자글하여 노인인가 했더니.”

“생긴 건 그래도 왜국 자민당에서 벌써 으뜸가는 심부름꾼으로 정평이 났답니다. 워낙 일머리가 똑 부러져서, 자민당 쪽에서 상행 올 때면 항상 데려오곤 한답니다. 저 볼품없는 생김새도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으니,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나름 괜찮은 자질 아니겠습니까.”

오와리((尾張) 촌동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도키치로는, 히라도 장사가 흥성하면서 덩달아 흥성하게 된 사카이 상인들을 통해 자유민주당 얘기를 들었다.

조선의 하야시 쇼군을 모시면서 천하 바다를 누빈다는 말을 듣고서 솔깃하여, 우여곡절 끝에 히라도에 닿은 지 고작 일 년 만에 나름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었다.

“잔나비를 닮았든 코끼리를 닮았든 누가 와서 일손만 보태주면 그것으로 고마운 일이겠네.”

“주변을 둘러보십쇼. 이미 보탤 일손은 다 와서 거들고 있지 않습니까.”

홍순언이 꼬박꼬박 대꾸하며 남사고를 무난케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공보의 일 맡는 이들은 죄다 모여들어 책 펴내는 것을 거들고 있었고, 얼마 전부터는 바깥에서 일꾼까지 더 들여와 부리고 있었다.

“말이나 못하면. 되었네, 일단 지금 보고 있는 것이나 마저 살피고 석반(夕飯)이나 들러 가세나.”

“좋지요.”

두 사람은 그렇게 내리 쫑알대며, 오늘도 밤 지샐 채비를 하였다.

그 일꾼 사이에 끼어들어온 기이한 사내 하나는 유독 눈빛 번뜩이며 그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일에 바쁜 홍순언은 물론이요 남사고도 알지 못하였다.

천기는 읽을지언정 사람의 일은 헤아리지 못하는 노릇이었다.

이량이 어디선가 장자방(張子房, 장량)을 얻었다는 풍문이 무본사에 파다하였다. 무본사의 어지간한 한량과 마찬가지로 그 지모가 변변치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제법 그럴듯한 계책을 술술 읊어 사돈댁의 큰 어르신이기도 한 심통원의 마음까지 얻은 것이다.

이량을 아끼고 친애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계책을 논할 때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거나 부들부들 떠는 것을 눈여겨보고서, 그가 얻은 것이 장자방이 아니라 사마중달(사마의)임을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본사 사람들은 모두 저의 욕심에 겨워 모여든 작자들인 고로,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하였다.

심통원도 성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량 뒤에 누군가 있음을 깨닫고서, 그를 걱정하기에 앞서 어떻게 이량을 거간삼아 그 배후의 모사 되는 이를 만나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던 것이다.

이량이 두려워하면서도 따르는 ‘그이’가 흔쾌히 이를 수락하여, 포천에 있는 심통원의 시골 집 - 말이 ‘시골 집’이지 그 윤원형조차 탐내었음직한 저택이었다 - 에서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자네가 공거(이량)의 모사로구만.”

“그렇습니다, 대감. 두리손이라 합니다.”

그 안광(眼光) 날카로워 굶주린 들개와 같으나, 행색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나름의 체통을 갖추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서슴지 않고 답이 나왔다.

“고 서원군의 얼자입니다.”

“허...”

여러 감상이 담긴 ‘허’ 소리였다. 심통원이 그윽한 눈빛을 가장하며 두리손의 면면을 살폈다.

“임거정을 도모하려 하신다 들었습니다. 그 대업에 거들고자 할 따름입니다.”

불공대천의 원수를 갚기 위함인가? 아니면 임거정을 고꾸라뜨리고 권세와 명성을 얻기 위함인가?

심통원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을 마치 두 귀로 들은 것처럼, 두리손이 재차 말을 꺼냈다.

“소인이 무엇을 뜻으로 삼든, 그것이 어찌 중하겠습니까? 중한 것은 임거정과 그 당을 무찌르고 나라를 올바르게 되돌리는 데 있을 뿐입니다.”

심통원 듣기에 참으로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도리를 아는 이를 간만에 만나니 반갑지 않겠는가! 근래 허명을 얻은 유자들조차 교묘한 말에 속아 잘잘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이 많거늘, 서얼의 가운데서 자네와 같은 이가 나왔다니 기꺼운 일일세.”

“소인 또한 대감께서 나라의 근본을 올바르게 되돌리는 대업(大業)의 뜻을 품으셨다 듣고, 흠모하는 마음을 오래토록 품어 왔습니다.”

아첨이라면 윤원형의 아래에서 많이 들었고, 또 두리손 저의 입으로도 많이 해보았다. 두리손이 경멸하는 마음을 교묘히 감추고 그런 입발린 소리를 하니, 흡족히 여긴 심통원은 그대로 넘어왔다.

“하하, 오늘이 어찌 길일이 아니겠는가!”

두리손도 함께 웃고, 동석한 이량도 두 사람 웃는 것을 보자 그제야 따라서 웃었다.

그렇게 가볍게 술잔도 두어 순배 돌 무렵, 심통원이 재차 물었다.

“그래, 자네가 그처럼 기특한 마음을 품고 왔을진대, 마땅히 이 사람 앞에서 헌책(獻策, 계책을 바침)하려는 바가 있을 터.”

“역시 대감이십니다.”

두리손이 마음 속에 품고 온 의제를 꺼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대감께서는 근래 도성에서 오가는 소위 분표며 은정고 등등의 소식에 대해 어찌 여기고 계시는지요.”

“그야 안타까울 따름일세. 간악하고 그릇된 풍속에 성상 곁의 폐행(嬖幸)이 놀아나니, 귀중한 내탕(內帑)을 그 분표의 놀음에 붓게 되었지 않은가.

경제사가 앞장서서 분표 장사를 권하는 것처럼 되었으니, 절로 사풍(士風)마저 못된 물이 들어 그 퇴계 선생조차 잘못된 길에 들고야 말았지.”

이황이 은정고를 열어 그 곳간에 은을 보탤 마음 맞는 선비를 널리 모으는 한편, 장차 그렇게 모은 은으로써 한전법에 따라 토지 매매하는 일을 보수(保授, 보증)해주겠노라 정론보 통해 공고한 지 벌써 한 달 넘게 지났다.

한전법이야말로 나라에 켜켜이 쌓인 폐단을 해소할 명안이라 보는 몇몇 서생들은 앞장서서 동조하였다. 또한 탕평당의 영수라 할 수 있는 이준경조차 이황의 설득 끝에 은정고 세우는 일을 가로막지 않겠노라 공언하였고, 이언적은 제자와 몇 번 논쟁하였다는 소문은 돌았으나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향촌의 사족들도 그러한 뜻은 거의 마찬가지일 터입니다. 다만 사림의 거두들이 드러내어 말하지 않으므로, 논리가 궁색하여 뜻을 펴지 못할 뿐이지요.”

여러 해 동안 조선국 방방곡곡을 돌며 그 사정을 알게 된 두리손이 몰래 냉소를 담아 말했다.

전답 없는 청렴한 선비가 될 것인가, 선비 소리는 버리더라도 전답 지닌 부호로 남을 것인가?

후대에 이름을 남길 만큼 학식 깊고 문명 높은 이들은 당연히 전자를 고를 것이로되, 나라의 사족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 이름값 못하는 작자들은 조용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선비 놀음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토호로 행세하며 사람 위에 서서 살고 싶다’, 아니면 ‘우리는 성정이 고루하고 어리석어 도저히 변하는 세상에 맞출 깜냥 되지 않는다’ 하는 말을 그놈의 체통 때문에 하지 못할 뿐.

그리하여 한쪽은 목소리가 크고, 다른 한쪽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니, 그간 전정공회에서 민주당 이름 내건 상민들과 팽팽하게 기싸움 하던 탕평당 여론은 한쪽으로 금방 기울었다.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이들은 실망만을 품은 채,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정공회는 마침내 그 목적을 거의 다 이루었으나, 정작 만백성의 뜻과 생각을 고루 모은다는 본래의 취지는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인(士人)의 가운데에서 옥석(玉石, 옥과 돌)을 가리고, 아직 자신이 옥의 반열에 든다 모르는 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뭉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면, 그것을 어찌 이룰 수 있겠는가?”

이미 두리손의 말을 빨아들이듯 듣게 된 심통원이 물었다.

“어두운 밤에 옥석을 가리려면, 촛불을 들어 주변을 밝혀야 하는 법입니다. 지존의 위엄을 능멸하고 국사를 농단하는 간악한 무리와, 그에 영합하여 헛된 이름과 부귀를 탐하는 무리들을 남김없이 드러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촛불이라. 그런 촛불이 될 만한 계책이 자네에게는 있겠지?”

두리손이 물음을 물음으로 받으니, 심통원은 저도 모르는 사이 숨을 들이켰다.

“대감께서는 『육신전(六臣傳)』을 읽어보셨는지요?”

출사하여 정사 거들기를 바라는 선비 중 『육신전』을 읽어보지 않은 자가 있을까? 추강(秋江) 선생 남효온(南孝溫)이 지었다고 알려진 그 글은 세조대왕의 성덕(聖德)에 지극한 누가 될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육신전』은 이른바 사육신의 충절을 절절하게 담은 글로써, 계유년의 일(계유정난)을 되돌리고자 공모하였던 여섯 사람이 어떤 곡절로 모의하게 되었으며, 그 모의가 어찌하여 실패하였으며, 그 이후 친국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절개를 지켰는지를 (과하게) 상세히 적고 있었다.

그 사육신이 도모하고자 했던 분의 현손(玄孫)께옵서 용상에 앉아계신즉 비록 일백 년 전의 일을 담은 글이었으나 여전히 사람을 죽이기에 족한 것이었다.

허나 몇 년 전 『화담자의』가 여실히 증명한 것처럼, 금할수록 읽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앞에서는 모르는 체하면서도, 뒤에서는 의기 있는 선비라면 마땅히 그 글을 읽어야 한다고 떠들곤 했는데, 심통원 역시 소싯적에 형 심연원을 통하여 몰래 구해 읽은 바 있었다.

“... 내 철모르던 때 그 요망스러운 책을 잠깐 들춰보고 바로 덮기는 하였네. 그것을 어찌하여 묻는가?”

“『육신전』의 폐단이 오늘날 세태의 폐단과 닮은 점이 있지 않습니까?”

잠시 머리를 굴린 심통원이 그제야 두리손의 노리는 바를 깨닫고 탄성을 내질렀다.

“근래 민주당에서 갑자기 온갖 서책을 펴내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하여 이곳저곳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떤 선비가 사사롭게 문집 몇 부만 내줄 것을 청탁하고, 그것이 어지러운 와중에 잘못 들어가 섞일 수도 있겠지요.”

탕평당의 당론이, 민주당이 벌이는 그 자본의 장사를 가로막기보다는 그 시류에 올라타 장차 인정(仁政)과 도리에 도움 되는 쪽으로 이끌어나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이래, 그것을 마뜩잖게 여기는 이들은 논리가 궁색하여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한데 모을 빌미를 만들어주고, 더불어 한 번 모인 자들이 그 무리를 벗어날 수 없도록 올가미까지 만든다면 어찌 될 것인가?

두리손이 저의 계책을 절반만 드러내어 심통원에게 설명하니, 한 차례 더 탄성이 나왔다.

“그렇지! 과연 자네가 장자방과 같네! 하면 이 사람이 무엇을 도우면 되겠는가?”

“이미 계책의 대강은 마련되었고, 그 준비도 거의 끝났습니다. 대감께 소인이 감히 청하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입니다.

금번 일과 그 뒤의 여러 비슷한 일을 위하여 문중의 곳간과 이름을 빌려주시기를 원할 뿐입니다.”

“기왕 자네의 계책을 취한 이상, 마땅히 그것을 위하여 힘을 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계책의 절묘함에 빠진 심통원은, 그 뒤의 일에 대해서 물을 생각은 품지 못하고 덜컥 승낙하고야 말았다.

여차하면 그 뒤의 다른 계책들, 예컨대 서얼 출신이 많은 관군의 군관들을 끌어모으는 일까지 넌지시 언급하여 심통원의 마음을 제게 끌어오려던 두리손에게는 일이 싱겁게 풀린 셈이었다.

불 꺼지지 않는 민주당 당청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연락 받은 꺽정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후다닥 달려왔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곳에서 만날 일 없으리라 여겼던 사람이 떡하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재(이언적) 어르신이 이런 곳에는 웬일이시오? 군자라면 이렇게 잡스럽고 누추한 곳에는 발걸음 아니 하여야 하는 것 아니었소?”

명희와 알콩달콩 깨 쏟아지는 한때를 보내다가 불려 나왔으므로, 꺽정이 말투에 평소보다 가시가 돋아 있었다. 허나 가시 돋친 것은 꺽정이 말투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네 집에 찾아가기도 무엇하지 않은가. 비례물시(非禮勿視)를 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작은 비례(非禮)만 겪는 쪽이 나을 터.”

임 당수 집에서 만난다면 보나마나 그 안사람이 함께 나올 것이었다.

“이미 낙향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한양을 떠나기 전 그렇게 내외 법도 무너지는 것을 더 보고 싶지는 않았다네.”

“낙향을? 정정하신 분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낙향을 하신다는 말이오?”

“무슨 바람이기는. 자네가 일으킨 못된 바람 아니겠는가.”

의민당 막 일어나던 시절 단양 고을에서 만난 이래로 서로 감정 썩 좋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선비가 전답을 지니고, 그것을 항심(恒心)의 토대로 삼아 안으로 도학을 밝히고 밖으로 왕정(王政) 돕는 것이 고래로부터의 상도(常道)였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몹쓸 풍조가 생겨, 그것이 오히려 권도(權道)요, 기회와 여력이 된다면 오히려 전답은 농사짓는 백성에게 맡기고 오로지 배움으로써 생업 영위함이 상도(常道)라면서 앞뒤와 본말을 뒤바꾸는 괘씸한 말이 나돌게 되었지.”

선비가 저의 몫 전답과 노비를 지니고 이로써 문중을 경영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이 바뀌었다. 선비라면 마땅히 노비도, 전답도 마다해야 하며, 오히려 말업에 종사하는 것이 정직한 일이라는 기괴한 논변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 반박하는 자들은 없었고, 찬동하는 자는 늘어났다.

급기야 이언적의 가장 아끼는 제자였던 이황마저도 그쪽으로 돌아서고야 말았다. 스승은 제자가 중도(中道)를 잃었다 여기고, 제자는 자신의 길이야말로 중도라 여기니, 아무리 말을 주고받은들 그 사이가 좁혀지지 못했다.

그러나 제자의 반대편에 있는, 머리는 많으나 떳떳한 논설 하나 내놓지 못하는 향촌의 소위 사족들 또한 마뜩잖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므로 이언적은 그저 물러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자네가 처음 나를 만나러 찾아왔을 때, 선비 또한 도적과 다름없다 하였지. 이제 자네 뜻대로 되었네.

세태가 그러하다면, 이 사람은 그저 세태에 뒤쳐진 퇴물 되어 산림에 묻히며 여생 보내길 바랄 따름이라네.”

“아, 그렇다면야, 우리 당 탓하는 것도 일리는 있겠소.”

나름대로 의분을 눌러담아 말하는 이언적이었는데, 임거정이 순순히 고개 끄덕이니 맥이 빠지고야 말았다.

“어르신께는 미안한 소리지만, 기실 선비들이 앞으로 어찌 되든 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말이오. 내 주변 사람들만 잘 되면 그만이지.

그 옛날 의민당 시절에야, 윤원형이 때려잡는데 선비들 힘이라도 빌려볼 요량이었고, 지금은 나라 돌아가게 하는 데 동고 대감이나 어르신 제자 되는 퇴계 같은 이들 공이 크니까 함께 미운 정 고운 정 쌓고 있을 뿐이오.

허나 그뿐이니, 다른 선비들이야 지지고 볶든, 선비(鮮卑) 대신 거란(契丹)을 칭하든 내 알 바 아니외다. 그들이 내 알 바가 될 만큼 스스로 쓰임새를 만들거나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에야.”

이언적이 무언가 항변하려던 차, 꺽정이가 갑자기 그 말문을 막았다.

“음? 어르신,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그러고서는 대뜸 질풍처럼 달려나갔다.

무언가 번쩍 하더니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았으므로, 임 당수 무재를 말로만 듣고 실제로는 처음 본 이언적은 아연실색하였다.

허나 멍하니 있는 것도 잠시였다. 꺽정이가 기다려달라 말한 것이 무색하게, 이언적도 궁금한 마음 못 이기고 그 뒤를 밟았다.

“이놈,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아이고, 임 당수! 살려만 주십쇼!”

“우선 이실직고부터 해라! 그래야 죽이든 살리든 마음 정할 것 아니냐?”

꺽정이와 이언적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던 전각은 다른 곳보다 조금 지대가 높았는데, 그러다 보니 덩치 큰 꺽정이 눈에는 딴에 조용히 움직이려는 녀석의 수상한 거동이 그대로 들어왔다.

남의 눈 피해 은밀히 움직이려던 녀석은, 이 시각에 누가 이쪽에 있으리라 여기지 않았기에 이쪽으로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 저희가 근래 책 찍어내느라 밤낮없이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서생이 그 와중에 찾아와서는, 은을 두둑히 줄 테니 그 속에 다른 책 한 권만 끼워서 함께 찍어달라 청했습니다.

그것이 며칠 전 일이었는데, 이제 슬슬 다 되었을 듯하여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이고, 임 당수! 다음에는 꼭 미리 고하고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쇼!”

잔뜩 험악해진 꺽정이 모습 보고 지레 겁 먹은 녀석이, 이실직고하다 말고 애걸복걸 목숨 청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일어나라. 당장 보아야 하겠다.”

“그것이... 본디 훨씬 많이 찍혔어야 했는데 소인네보다 먼저 찾아간 사람이 있었는지, 중간에 흘린 딱 한 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가 먼저 왔다 갔는가 수소문하러 돌아다니는 길이었습죠.”

그때, 뒤에서 이언적이 헛기침을 하였다.

“어르신 일은 아니오.”

“저 치가 놀라서 달아나다가 떨어뜨렸는지, 오는 도중에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어 전해주러 왔다네. 그런데 책의 제목이... 흠. 이 사람은 조용히 하겠지만, 만약 이곳에서 이 책을 냈다는 사실이 바깥에도 알려진다면 장차 큰 풍파가 일어날 지도 모르겠네.”

이언적의 말투에 걱정이 묻어나왔다. 꺽정이와 민주당 걱정보다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벌어질 소란과 그 후과를 걱정하는 것일 테다.

“그 정도요?”

“다른 것도 아니고, 『육신전』이지 않은가.”

이언적이 언뜻 펼쳐보니, 심지어 그 앞에 누가 발문(跋文)까지 새로 써서 붙여두었다.

“아아, 정축년(1457)의 애사(哀史, 단종의 죽음을 말함)보다 슬프고 서러운 일이 국조에 있었는가? 그러나 일백 년간 언로가 막혀, 애통하게 여기는 신자들 중 그 누구도 신자(臣子)라면 누구나 애통하게 여기면서도 드러내지 못하였다.

다만 김 문간공(文簡公, 김종직의 본래 시호)께서 비유하는 글(조의제문을 말함)을 남기셨으나 이마저도 참혹한 사화를 낳았으니, 군신(君臣)의 도리가 어그러지고 뒤집힘이 이보다 심할 수 없었다.

『육신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때를 걱정하여 후대 앞에 충절을 표창(表彰)코자 추강 선생 남 공(남효온)께서 지으신 글이다. 끝내 거짓 앞에서 올바름을 추앙하였다 하여 문간공과 함께 참변을 당하였으나, 그 밝은 뜻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자께서는 『춘추(春秋)』로써 직필하셨고, 굴원(屈原)은 『이소(離騷)』로써 비유하였다. 지금은 붓을 굽힐 때인가, 세울 때인가?

오늘날 천하의 운수가 크게 돌아, 비로소 잘못을 바로잡을 때가 왔다. 이미 기묘년의 일은 올바름을 되찾았으니, 무오년의 일(무오사화)인들 어찌 되찾지 못하겠는가?

을묘년 정월, 한양의 이 아무개는 쓰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에서 새로 찍어냈다는 『육신전』이 곳곳에 퍼졌다. 하필이면 그 자체(字體)가 공보 등에 쓰여 널리 알려진 자체라, 이제 와서 시치미 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임 당수조차 차마 주먹 꺼내들지 못할 엄청난 명분이 생겼다 여긴 치들이 슬그머니 그 떡밥을 물고서, 불씨에 부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임거정이 범상(犯上)의 뜻을 품고 실제로도 행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실로 심하다! 마땅히 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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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지나가듯 등장한 키노시타 도키치로는 원 역사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오늘날의 나고야 일대인 오와리 국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18세 무렵 집을 떠나 - 일설에 따르면 양아버지의 학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 오와리의 영주 오다 노부나가의 시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똑 부러진 일처리와 여러 기발한 잔머리 덕에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노부나가 휘하의 무장이 되었고, 그를 따라 일본 전역을 누비며 명성을 얻게 되지요. 그는 성공한 다음 여러 차례 이름을 고쳤는데, 말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한국에도 (좋지 않은 쪽으로) 널리 알려진 그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되겠습니다.

사육신의 생애와 단종 복위운동의 전말, 그리고 거사가 발각된 뒤 세조에 의한 참혹한 고문 장면 등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육신전』은 사료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술된 이후 암암리에, 나중에는 공공연하게 퍼지면서 사육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사림 세력이 전면에 나선 선조 연간에는, 어느 젊은 관료가 선조에게 『육신전』을 일어볼 것을 권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이를 읽은 선조 - 가뜩이나 정통성에 결함이 있었기에 더욱 민감했을 것입니다 - 가 노발대발한 것이 실록에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당시 대신들은 노기탱천한 선조를 말리면서, ‘여염 사이에 드물게 있는 책’이자 ‘세월이 오래되어 점차 없어져 가는 것’이라고 『육신전』을 애써 평가절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숙종대에 이르러 단종이 제대로 복권되면서 『육신전』에 담긴 사육신에 대한 기록도 사실상 공인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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