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13화 (113/259)

35. 춘추대의 (2)

몰래 찍어낸 책 몇 부가 조선 전역에 파란을 몰고 온 것은, 따지고 보면 절반쯤은 임꺽정과 그 무리의 자업자득이었다.

팔도의 가도는 널리 트였고, 은에 혈안이 된 사냥꾼들은 호랑이 잡아 목돈 만질 심산으로 산야를 누볐다. 심지어 남도 일부에서는 동래에서 흘러나온 조총으로 범을 잡는 포수도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더구나 몇 년 사이 나라 형편과 제도가 급변하니, 다른 고을에서 무슨 일 벌어지는지 모두가 귀를 열고 듣게 되었고, 소식 될 만한 것이 생기면 곧장 공보와 정론보가 그것을 퍼다 날랐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누가 무슨 책을 내든 말든 그것만으로 문제 삼았을 리 있겠는가. 다른 더 흉참한 일의 빌미라면 모를까.

“흉참한 일이라... 그렇지! 맞다! 민주당의 뿌리는 곧 의민당이요, 의민당은 난신적자의 무리 아니었던가!”

의민당이 한양에 입성하여 윤원형과 그 무리를 뜯어 없앴을 때만 해도, 사족들은 여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환호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벌써 다섯 해가 지났다. 윤원형은 정사를 농단하며 벼슬길을 틀어막을지언정, 사족들이 살아가던 방식 자체가 잘못이라며 이를 뜯어고치려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군왕의 마음과 국론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며, 선비를 멋대로 죽이곤 하였으나, 당장 문중의 앞날이 위태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많은 사족들은 그러한 전적을 편리하게도 잊어버리곤 했다.

“우리가 지금껏 『육신전』을 몰래 구하여 읽을지언정 바깥에서 논하지 않았던 까닭은 모두 열성조의 성덕(聖德)에 누가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그러한 염려는 털끝만큼도 없이, 오히려 무엄하고도 오만한 발문까지 달아 그 글을 펴내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저들이 지존과 나라의 위엄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이다!”

『육신전』 안에 담긴 선비의 충절에 대한 생각은 뒷전으로 밀리고, 감히 그런 언설을 마음대로 내놓은 자들의 무엄함에 대한 성토가 앞섰다. 이는 선비답지 못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비다움이 주는 명예와 전답이 주는 부 중 후자를 지키고자 이미 굳게 마음 먹은 이들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의권이니, 권점이니. 분표니 자본이니. 모두 난신적자와 그에 영합하는 무리에게서 비롯된 것이므로 곧 그릇된 것과 다름 없었다. 당당하게 주자(鑄字, 금속활자)로 찍혀 나온 『육신전』과 그 앞에 새로 증보된 발문이 이를 증명하였다.

“이번에야말로 뜻있는 이들이 모여야 한다! 저들이 결코 마음대로 전횡할 수 없음을, 이 나라에 아직 군신(君臣) 사이 도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야 한다!”

어떻게든 임거정과 그의 무리를 꾸짖고 성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그렇게 마음에 품은 바를 떠들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내놓다 보면, 언제부턴가 무엇이 본디 마음이었고 무엇이 아니었는지를 스스로 혼동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들고 일어날 명분이 급하였던 이들은, 이 계책을 내놓은 두리손과 달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지금껏 민주당 하는 짓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개는 무본사처럼 한량들이 소소하게 모여 신세 한탄이나 하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허나 이제는, 그러한 모임이 제법 번듯한 재지사족들 사이에서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근왕(勤王)이니 창의(彰義)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인 채로.

한 가지 기이한 것은, 문제의 『육신전』이 실제로 찍혀 나온 것은 소문이 돈 지 한두 달 뒤의 일이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누군가 헛소문을 먼저 퍼뜨리고 그 뒤에 근거를 꺼내든 것으로 의심할 법도 하였는데, 그런 의심 품는 이가 한둘쯤 있었다 한들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죄인들 중에는 저들의 죄목이 드러났을 때, 죽여주십쇼 하고 넙죽 엎드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는 놈도 있기 마련이다.

꺽정이는 사태의 진상을 파악코자, 이언적을 서둘러 내보낸 뒤 곧장 흑의군을 모두 시켜 사업당과 여타 민주당 사람 오가는 당청의 빗장을 모조리 걸어잠그고, 의심 가는 놈들은 하나씩 불러와 상냥히 심문하였다.

헌데 어째 꺽정이 앞에만 불려오면 다들 울며불며 이구동성으로 살려달라고만 하니, 죽여달라고 했다가는 정말 죽여버리는 일이 있을 성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외라면, 조선말 아직 미숙한 왜놈 등길랑이였는데, 녀석은 꺽정이의 험악한 기세를 보자마자 주변의 의심가던 정황을 샅샅이 고해바쳤다. 조선말은 어색하지만 눈썰미는 날카로웠던 것이다.

“한두 놈이 제멋대로 벌인 일이 아니더이다.”

아무래도 도둑질은 꺽정이 저도 일가견 있는 고로, 그렇게 나온 단서 몇몇을 끼워맞추니 금방 전모가 밝혀졌다.

“하나는 저의 문집을 싸게 찍어내려는 선비로 위장하고, 또 그 패 몇몇은 우리 당이 급히 늘린 일꾼들 사이에 끼어들어와, 그렇게 찍어내는 것들이 저 남가나 홍가 녀석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감추었던 듯하오.”

공보 찍어내는 이들이야 문자를 얼추 알지만, 저들이 찍어내는 것이 무엇이며 바깥에 풀리면 어떤 소리 나올지는 일일이 헤아리지 않곤 했다.

오탈자가 있는지, 또 혹여 잘못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은 남사고나 홍순언처럼 글줄깨나 읽는 이들의 몫. 그들의 눈만 잘 피하면 몰래 책 몇 부 찍어내는 일은 불가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서는 찍어낸 책을 훔쳐내어 밖으로 넘겼겠지. 내가 붙잡은 그놈은 설레발 떨다가 괜히 덜미 잡힌 것이고.”

분표의 일과 이와미 은광에 밑천 대는 일 등등으로 인해 오늘도 늘 그렇듯 퇴청 못하고 있던 서림, 그리고 소식 듣고 급히 달려온 이지함과 이이, 명희 등을 앉혀두고서 꺽정이가 말을 마쳤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회재 어르신은 이 책이 엄청나게 위태로운 구절을 담고 있다 합디다.”

이지함이 심각한 표정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재 선생 말씀이 맞다. 다만 위태로운 구절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책 자체가 화약과 같다 해야 할 터.

다들 암암리에 읽으면서도 공공연히 드러내지 못한 글이니, 우리 당에서 이런 책을 발간한다는 풍문만 돌아도 큰 파란이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저렇게 오만하게 사람 도발하는 발문까지 앞에 붙은 채라면 어떻겠느냐.”

하필이면 그 발문 끝에는, ‘을묘년 정월 한양의 이 아무개’가 썼다고까지 적혀 있었다. 꺽정이 주변의 이 아무개라 하면 이지함과 이이, 이명희, 이원수(물론 그 누구도 수운판관 이원수를 의심하지는 않겠지만), 이정 등등.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중 하나가 써서 퍼뜨렸다는 의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누가 나서서 우리가 누명 썼노라 밝히면 괜찮지 않을까요? 공보 낼 때 맨 첫 줄에 그 기사를 싣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눈여겨볼 수밖에 없게끔 언문으로 큼직하게 쓰면 족하겠지요. 이왕이면 그냥 줄글로 쓸 게 아니라, 낭군께서 직접 글 쓰는 사람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해도 좋겠고요.”

가만 듣던 명희가 제안하니, 서림이 그럴듯한 발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 오라버니가 금방 반론을 꺼내버렸다.

“다만 그러한 글을 쓰려면 어떻게든 스스로 변론하는 뜻을 담아야 할 터입니다. 당수께서 그 책 낸 것은 우리 뜻이 아니었노라 공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예컨대 우리 민주당은 추호도 군상(君上) 위엄을 훼상할 뜻이 없노라, 그렇게 단언해야 할 것인데...”

“당수가 그것을 원치 않겠지.”

“사형 말씀이 맞소.”

일전에 충주에서 꺽정이 속내를 들었던 이지함이 말하자, 꺽정이가 바로 찬동하였다. 꺽정이가 윗전에 임금 모시는 것 자체를 원치 않음을 모르는 이들도, 꺽정이 성미는 알았으므로 그러려니 여겼다.

“하지만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장 몇몇 사족들이 들고 일어난다 한들, 저들이 우리 당을 해코지할 방도는 아직 없소.

여차하면 가만 내버려두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이오. 『육신전』을 공공연히 출간하고 무엄한 발문 덧붙인 것은 잘못이라 여길지언정 그 글의 내용 자체는 옳다 여기는 선비들이 많으니.”

허나 한 가지 방책일 뿐, 상책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를 바탕으로 헤아리면, 이름을 훔쳐 책을 발간한 것은 민주당을 직접 공략하기 위한 모략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것만으로 민주당을 역적 무리로 몰아가기에는 민주당의 세가 너무 강하였다.

“선비가 화를 당하지 않고 마땅히 누려야 할 의권을 누릴 수 있도록 통의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죄 없다는 판결 받아내는 것은 어떨지요.”

“동고 대감을 비롯해 여러 조정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못이 없다고 여기겠느냐? 그들 또한 사육신의 절개를 몰래 흠모할지언정 그것을 공공연히 드러내 군왕의 위엄을 훼손하는 것은 잘못이라 여길 터.”

“아...”

이이가 다른 발상을 꺼냈으나, 곧장 스승 말 듣고 풀이 죽었다.

그 이후로도 뾰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거의 상대의 뜻대로 되어버렸으므로 수습하기는 난망하고, 또 어떻게든 무리해서라도 대책을 낼 만큼 민주당이 위태로운 지경에 당장 처하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거 한 사람 잘못 때문에 여러 사람 골치 아프게 되었소.”

꺽정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 사람이라뇨?”

차마 감당하지 못할 답이 돌아올 줄 모르고서 이이가 물었다.

“지금 임금님 할아비의 할아비(세조)가 못된 짓 해서 이 꼴이 났으니.”

“...”

“꺽정아, 그런 말은 부디 이런 자리에서만 하고 다른 데 가서는 하지 말거라.”

“노력은 해보겠지만 확답은 못 드리오.”

그때, 굳게 닫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서림이 나가보니 같은 당 사람은 아니요, 그럼에도 어디선가 본 인상이었다.

“임 당수가 여기 있소? 긴히 임 당수 찾으시는 분이 계신다오.”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일전에 분표 사는 일 때문에 논상원 찾아왔던 경제사 제조 박한종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박한종을 부려 사람 데려올 만한 사람이라면...

서림의 눈이 절로 커졌다.

“어째서 대궐로 아니 가고 이쪽으로 빠지는 것이오?”

순순히 따라나온 꺽정이가 툴툴거렸다. 전생에 한양 지리를 훤히 꿰었던 꺽정이가 알기로, 지금 그가 박한종 따라 걷고 있는 이 밤길은 경복궁은 물론이요 다른 어느 궁궐로도 향하지 않았다.

“궁으로 몰래 들어가는 그런 길이 있어서 이리로 오는 것이라면 모를까.”

“임 당수, 부디 체통을 지켜주시오.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 않소.”

인정도 친 지 오래라, 물금첩(勿禁帖, 야간통행증) 든 이들이나 주머니 두둑한 이들 아니고서는 누구도 감히 돌아다니지 못할 때였다.

“체통 없는 사람이 뭔 체통을 지키나. 일전에 내가 금군 별장 할 때 어찌 처신했는지 모르시오? 그리고 밤말을 암만 잘 알아들어도 쥐는 그냥 쥐요.”

결국 박한종도 말로 상대하기를 관두고, 꺽정이가 뭐라 투덜대든 아예 대꾸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인달방(仁達坊) 어디께 있는 큼직한 저택에 닿았다.

“허, 꽤 털어먹을 것 많아보이게 생긴 집이로고. 뉘 댁이오?”

“제발 조용히... 에휴, 되었소. 덕흥군 대감의 사저(私邸)요. 지금은 군 대감보다 훨씬 귀하신 분께서 잠시 빌리셨으니, 바라건대 임 당수는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할 것이오.”

과연 문 열고 한참 들어가 어느 마루에 오르니, 그 ‘훨씬 귀하신 분’의 용 낯짝(龍顏)이 보였다.

“이런 데서 다 뵙소이다. 그 새 신수가 훤해지셨는데, 옷이 날개인가 싶기도 하오.”

곤룡포 벗고 평복 차림을 한 임금에게 ‘옷이 날개다’라고 하면 이것은 무슨 뜻인가. 꺽정이 딴에는 상냥한 인사였건만 결코 상냥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대는 끝내 그 성정을 고치지 못하는구나.”

용안은 잔뜩 굳어, 언짢음이 절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만일 같은 표정을 임금의 먼 선조, 예컨대 송헌거사(松軒居士, 이성계) 같은 분이 지었더라면 천하의 꺽정이도 일순 주눅들었을 것이었다.

“안사람과 장모 어르신께서 일전에 태산(胎産)에 대한 책을 섭렵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의 자질은 태중(胎中)에서 결정된다 하더이다. 그러니 세상 빛 본 지 스무 해 훌쩍 넘긴 이놈의 성정이 바뀔 리 있겠소?”

“희언(戲言, 농담) 주고받을 때가 아니로다. 내 어찌하여 임 당수 그대를 불렀는지 정녕 알지 못하는가?”

“그 『육신전』인지 칠신전인지 하는 책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소?”

“내 그대의 무엄함을 지금껏 받아주었으니, 그대가 비록 예를 모르고 성정은 거칠지언정 결코 범상(犯上)의 뜻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대가 지금까지 천하 도처를 돌아다니며 큰 공을 여럿 세웠고, 근래에는 국정의 폐단을 고치는데 민의(民意) 모으는 일을 조정 대신 해주기도 하였다. 공이 과를 넘었으므로, 그대의 언행이 도를 넘었다며 벌하라는 말이 나왔건만 나는 참았다.

이를 생각하여 이렇게 그대에게 변론할 자리를 주는 것이다.”

“거꾸로 여쭤봅시다. 나나 우리 당이 그놈의 책을 정말로 내었으리라 믿으시오?”

“그렇다면 세간의 말이 모두 요언(謠言, 뜬소문)이라는 말인가?”

“당연히 뜬소문이지. 만일 내가 정말로 임금님 욕을 하고 싶었더라면 그렇게 빙빙 돌려서 했겠소?”

꺽정이가 우림위 별장 노릇하던 시절, 자주 임금 마주칠 때였더라면 이쯤에서 임금도 수긍하였을 테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임금은 오히려 발끈하였다.

“그대는 대체 인군(人君)을 무엇으로 아는가! 나 또한 기업을 물려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감히 『육신전』을 권하는 신료가 있어 이를 읽어보았다. 딱 그대와 같은 품성 지닌 간악한 죄인이 우연히 문자를 배웠을 때 쓸 만한 글이었다.”

임꺽정과 흑의군도 떠나고, 나라의 재상을 오래토록 맡고 있는 이준경과 그의 무리도 국사를 점차 중추부에서 논하는 마당.

그렇게 빈 자리에 남은 것은 심통원과 그의 무리였다. 유약하고 줏대 없는 임금의 귓가가 비었으니, 어찌 욕심 있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겠는가.

임거정을 은근히 친하게 여겨, 공신으로 책록해주기도 하고, 공회에 찾아가 대훈(大訓)까지 내려주었던 임금이었다. 그러나 엄연히 나라의 외척인 심통원이 작정하고 그 곁에서 임거정이 하해와 같은 은덕을 오히려 배신으로 갚으려 한다고 슬슬 꼬드기니, 의심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백번 양보하여 그대가 직접 그 요망한 글을 내도록 시키지 않았다 치자. 허나 이미 그대가 나라의 기풍을 크게 무너뜨려 군신(君臣)의 도리를 어둡게 하였으니, 어찌 그대의 책임이 없다 하겠는가?”

“그래서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임금님? 내가 여기서 엎드려 싹싹 빌기라도 할까? 그러면 직성이 풀리시겠소?”

참다 못한 꺽정이가 한 소리 하였다. 곁에 있던 무관 여럿이 ‘네 이놈!’ 호통을 쳤으나, 꺽정이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네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쓸모가 없다. 애초에 네놈들이 일을 똑바로 했더라면 임금님이 이리 망신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낯짝을 잘도 들고 다니는구나.

일본 군관들은 저의 맡은바 소임을 제대로 못하면 곧장 저의 배를 가른다고 하더라. 너희도 그런 미풍양속을 실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꺽정이는 저의 칼조차 들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태연하게 검과 궁시 찬 무관들을 놀리니, 그들이 오히려 기세에 짓눌렸다.

정말로 칼을 아니 차고 왔을까? 어딘가 숨겨 온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이쪽이 찬 칼로 저쪽의 맨주먹을 당해낼 수 있을까? 그들이 달려들기 전에 임거정이 불궤(不軌) 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들 또한 이러한 일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어서, 솜씨 좋은 이들로만 골라 여럿 데려왔다. 허나 저 허세인지 기세인지 모를 것을 직접 대하니 절로 위축되었다.

그사이 꺽정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임금님, 들어보시오.

내가 정말로 임금님 자리를 탐냈더라면, 일전에 임금님께서 윤원형이랑 같이 도성에서 내빼던 때, 그 자리에서 모조리 참살을 하고서는 윤원형 그놈이 발악하다가 끔찍한 짓을 했다면서 싹 입 씻을 수도 있었소.

물론 여러 사람의 눈과 귀가 있으니, 반년도 지나지 않아 그 진승(陳勝)이나 오광(吳廣)이 꼴이 났겠지만, 어쨌든 백정놈의 자식이 용상에 앉을 수는 있었을 것이란 말이오. 그런 내가 뭣이 아쉬워 그딴 서책 가지고 장난질을 치겠소?”

밖에 새어나갔다는, 국주(國主)께서 이런 말 듣게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여러 사람 벼슬을 날릴 수 있는 험상궂은 폭언이 마구잡이로 날아왔다.

그러나 눈치 없는 임금은, 여전히 자신이 베풀어준 정과 성은이 배덕으로 돌아왔다 여기므로 아쉬운 말을 아끼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한들, 우리 광묘(光廟, 세조)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신 것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모독하지 않았느냐?

크나큰 성은(聖恩)은 마치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듯 하면서, 불공대천의 역적들을 오히려 충신이라 우기니, 그러한 글이 세상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너의 뜻이 아니었다 한들 너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남의 계책에 넘어간 것도 짜증나는데, 이제 임금이란 작자도 저를 불러다 이렇게 싫은 소리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제멋대로인 성정에 조금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두 소절로 끝나는 것도 아니요, 임금이 나름의 서러움을 가득 담아 장장 한 각 넘게 떠드니 꺽정이의 얼마 안 되는 인내심도 곧 동이 났다.

“이보시오, 임금님. 그렇게 이것저것 잘못 다 따질 것 같으면, 임금님네 조상분들이 못된 법도를 만들어서 세상에 양반을 정하고 백정을 따로 정한 것도 임금님 잘못이겠습니다그려? 나한테 그간 우리 조상들이 큰 잘못 범했다고 사과라도 하신 적 있소?

아니, 그리고 정말 잘못을 따진다면 임금님 조상분들 잘못이지. 이왕 귀한 몸으로 태어났으면 그냥 서로 잘 대해주고 곰살맞게 살 것이요, 난리를 일으킬 것 같으면 아예 성삼문이고 신숙주고 양반의 씨를 말려버렸어야지. 난리 일으키고 뒤처리는 제대로 못했으니 이렇게 후대에까지 여러 사람 곤란해지는 것 아니오?”

“뭐라? 당장 그 입 닫아라! 닫지 못할까?”

“싫소! 오밤중에 불려와서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욕받이 노릇하는 것도 서러운데.”

한쪽은 줏대가 없어 남이 한 말을 철석같이 믿고서 할 말만 하고, 다른 한 쪽은 쇠고집이라 남이 무슨 말을 하든 제멋대로 언행을 하니, 좀처럼 뜻은 모이지 않고 언성만 올라갔다.

고성이 몇 차례 더 오간 뒤, 마침내 임금이 외쳤다.

“물러가라! 당장 나가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네놈을 다시 보지 않으리라!”

“나도 마찬가지요!”

벌떡 일어난 꺽정이가 걸어나가다 되돌아섰다.

“안녕히 계시오. 임꺽정이는 하직 고하겠소.”

임금이 부들대며 뭐라 하려 하였으나, 끝내 그 분기로 말미암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만인지상 지존께옵서 옥음을 내리지 아니하시니,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임꺽정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하였다.

꺽정이가 돌아가서 임금 뵙고 온 이야기를 하니, 이지함과 명희는 기함하고 서림은 제물포에 지금 어떤 서양 배가 머물고 있는지를 급히 떠올렸다.

하다못해 그 이이조차,

“임 당수는 도대체 눈치라곤 없으니 누이동생이 참으로 걱정됩니다.”

하였으니 꺽정이에게는 실로 큰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나도 좀 욱해서 못할 말을 좀 하긴 했소. 하지만 임금님께서 어디 가서 이 임꺽정이에게 욕을 당했노라 말씀하실 수 있겠소? 당당하게 궁에서 뵌 것도 아니고 몰래 미복하고 나오셨는데?”

“그러는 꺽정이 너부터 몹시 켕겨하고 있지 않으냐. 얼굴에 훤히 드러나 있다.”

한숨으로 마룻바닥 뚫기를 시도하던 이지함이 툭 말했다.

꺽정이 말에도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꺽정이처럼 일국의 군주 앞에서 말 그대로 막말을 한 사례가 없었을 뿐더러, 그것을 증언할 사람이 있다 치더라도 차마 그 말을 다 옮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하루이틀 정도는 어쩌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나흘쯤 지나면 갑자기 의금부와 형조의 모든 관헌이 꺽정이네 집을 둘러싸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모두 때려눕히고 도망을 치려면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따지고 보면 네가 금군에 있을 때 고쳐주어야 했을 못된 버릇을 방치했으니 내 잘못도 있구나.”

“잘못을 제때 아시니 군자가 아닐 수 없소.”

“이놈아, 네가 그런 말 할 때냐?”

그러나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고, 이미 튀어나온 말은 도로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헛되이 머리 맞대고 있었는데, 마침내 아침이 되자 곧 모두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소식이 전해졌다.

꺽정이만큼이나 씩씩 콧김 내뿜으며 궐로 돌아간 임금은, 밤새도록 이불 걷어차며 뒤척이다가 끝내 무언가를 떠올렸다.

임금의 위엄을 위태롭게 하는 자가 있을 때, 선대왕들 또한 종종 택하였던 종실의 비기(祕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은 아침 되자마자 지필묵 대령하라 명을 내렸다.

곧이어 비망기(備忘記) 내려가기를,

“아아, 삼가 생각건대, 유약하고 어리석은 내가 열성조의 기업을 물려받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때를 놓치고 위엄을 잃었으며, 정사를 그르쳐 오늘에 이르렀다. 마침내 흉험한 서책이 나와 선대에까지 누를 미치게 되었은즉, 내 어찌 종묘의 영령을 뵙겠는가?

지난밤 내 민주당 당수 임거정과 독대하여 근래 정국을 논하였는데, 그 말에 일리가 있어 뒤늦게 크게 깨우치게 되었다.

대개 과인(寡人)은 국왕이 스스로 겸칭(謙稱)하는 말이지만 내게는 실로 어울리는 이름이로다. 이에 지금이라도 허물을 뉘우치고자 한다.

정묘(靖廟, 중종)의 성덕은 지극하여, 나라를 중흥케 하는 덕이 있었다. 덕흥군 초는 그 영묘함을 물려받아 동기 중의 으뜸인데, 오로지 사양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흥군은 능히 국운을 일으키고 종사를 만세토록 안녕케 할 임금의 재목이니, 바라건대 제경(諸卿)은 선위(禪位)에 관한 일을 거행할 준비를 하도록 할지어다.”

유난히 임거정 세 글자에 먹물이 많이 묻어 글씨가 굵었는데, 굳이 거기에 주목하지 않더라도 읽는 대신들 모두 사태의 근원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게끔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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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전』이 조선 전기에 금서로 취급되었던 이유는, 지난 화에 언급한 것처럼 세조 집권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공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군주의 정통성뿐 아니라, 계유정난 이후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훈구파와도 깊게 관련되는 사안이었지요. 이는 반대로 말하면, 사림 세력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비교적 『육신전』에 대한 금기의식이 약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선조 연간 초 『육신전』을 두고 발생한 소란은 언제고 일어날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광해군~인조 대의 문신이었던 김시양(金時讓)이 지은 『부계기문(涪溪記聞)』에 따르면, 명종 연간 초에도 윤해평(尹海平)이라는 문관이 비슷한 건의를 하였으나, ‘그’ 명종이 격노하여 끝내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중 언급된 인달방 저택은 원 역사에서는 후대에 도정궁(都正宮)으로 불리게 되는 덕흥군(덕흥대원군)의 사저였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하성군이 선조로 즉위하면서, 마침내 도정궁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 이후로도 덕흥대원군의 사손(嗣孫, 대를 잇는 후손)들이 기거하게 됩니다. 선조 이후 모든 조선의 국왕들은 덕흥군의 후손이므로, 조선 왕실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지요. 다만 궁 자체는 1588년 화재로 소실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고, 덕흥대원군의 후손들도 점차 손이 귀해지는 조선 왕실의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계속 양자를 들여야만 했습니다. 역모에 연루되어 죽은 사손만 해도 셋이나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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