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낙장불입 (1)
본디 작은 수군 병영과 포구 하나씩만 있던 제물포는 불과 두세 해 만에 흥성하는 항구가 되었다.
그러나 호랑소인가 불났소(프랑스)인가 하는 나라의 속담에도 ‘장안이 하루 만에 낙성되었겠느냐’ 하는 말이 있다지 않던가. 그러므로 두세 해 만에 지은 항구의 모습은 매우 볼썽사나웠다.
사업당에서 공들여 지은 전각과 그저 인부들에게 세 주려고 대충 만든 집, 본래 마을 사람들이 급히 확장하여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집 등등이 섞여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족히 흉물스럽지 않다 여겼는지, 국외인들도 합세하였다. 핀투가 그사이 인천과 말라카를 두어 번쯤 오갔는데, 핀투의 꼬드김을 받거나 그 과정에서 핀투가 늘어놓은 허풍을 귀동냥으로 듣고 철썩같이 믿은 이들이 제법 따라온 것이다.
대개는 포르투갈인 아비와 현지 어머니 사이에서 나와, 딱히 서쪽에서는 미래를 구할 수 없던 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조선공도 있지만 건축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었는데, 제게 떨어지는 보수에 따라 때로는 공들여서, 때로는 대충 집을 짓곤 했다.
또한 한쪽에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서 데려온 예수회 사람들이 성당과 학교가 될 건물을 짓고 있었다. 『천주실의』 짓는 일에 관여한 역관들 중 두셋이 얼마 전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도 종종 인천으로 와서 참견을 놓곤 하였다.
그로 인하여, 이쪽 역시 지으면 지을수록 피렌체 사람 단테 알리기에리가 상상한 연옥에 조금 더 어울리는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뭐, 내가 보기엔 좋기만 하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장사만 잘 하면 되었지, 기와 올리고 단청까지 멋들어지게 칠해서 벌이가 좋아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물포 저자를 걸어가는 거한 하나와 호리호리한 아전 하나의 대화였다. 그 거한이 임꺽정임을 알아챌 만큼 한가한 사람은 주변에 없었으나, 덩치가 비범하였으므로 설령 가다가 어깨 부딪히는 이 있더라도 차마 욕지거리를 주워섬기지는 못하였다.
“그 콧대 높은 송도 상인들도 한 번 찾아오면 그 옛날 벽란도(碧瀾渡)의 번영도 이와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답니다.”
꺽정이는 이런 쪽 풍류에는 별 흥취가 없고, 그나마 풍류를 알 만한 서림은 그것보다 이곳 제물포를 드나드는 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는 상인이라면 다 비슷하였다. 그들 역시 이 흉물스러운 외양 이면에 있는, 이미 엄청나지만 아직도 매일같이 더 거세지고 있는 부(富)의 흐름을 눈치채곤 했던 것이다.
“헌데 곧장 수락산으로 아니 가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수락산이 청석골 있던 멸악산에 비하면 동네 언덕이라지만, 그래도 작정하고 숨거나 도망치면 잡을 수 없잖소.
그 심가 놈이 두리손 그놈을 끄나풀로 부리고 있든, 아니면 두리손이가 용케 패거리를 모아서 수락산 주인 노릇하고 있든, 그 패거리 중 만만한 놈 하나를 호구 잡아서 앞잡이를 시켜야 할 것이오.”
산적의 수법은 산적이 알고, 산적 토벌하는 방법도 산적이 가장 잘 알기 마련이었다.
전생에도 그랬다. 임꺽정 패거리가 청석골과 구월산 등지에 산채 두고 있는 것을 황해도의 그 누가 몰랐겠는가.
섣불리 관군이 출병한들, 허탕으로 끝나면 다행이요, 대개는 애꿎은 목숨까지 잃고 끝나므로 그 누구도 앞잡이를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까지 꺽정이가 말하니, 서림도 순순히 수긍했다.
“당수의 심산이 그러하다면 이곳 제물포에 오신 것이 참으로 명안이라 하겠습니다. 꼬리를 잡으려면 이곳에서 시작하는 게 최선입지요.”
도성과 그 인근에서는 이미 은과 더불어 대국에서 들어온 동전도 쓰이고 있었다. 그런 은과 동전이 어디서 들어오는가 따져보면, 대개는 이곳 인천을 통해서였다.
또한 여러 대에 걸쳐 한양의 벌열들과 연을 튼 상인들 많은 한양과 달리, 인천의 상인들은 대개 여기저기서 모여든 근본 없는 작자들이었다. 평양이나 송도에서 - 그들이 쓰는 표현으로는 - ‘내려온’ 이들은 물론이요, 논상원에서 상학(商學)의 논변 한두 구절 얻어듣고서 뛰어든 망둥이 같은 작자들, 그냥 뭐라도 얻어걸리겠거려니 여기고 달려든 꼴뚜기 같은 작자들이 한가득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들이 굳이 심통원의 청송 심문이든 아니면 수락산에 있는 패거리든 간에 굳이 그들 눈치를 볼 이유가 없음을 뜻하였다.
“거기 비키십쇼!”
“쌀 지나갑니다!”
누가 저더러 비키라 하는가 돌아보니, 쌀섬 가득 실린 달구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부딪히면 저의 손해이므로, 주변 사람들도 썰물처럼 좌우로 흩어졌다.
“미곡도 제법 팔리는 모양이오? 사업당에서 그런 장사도 했던가?”
“우리 사업당은 저런 일까지 손대진 않습니다. 몇 번 말씀드렸잖습니까, 자본 장사라고.”
일본의 은은 히라도나 동래를 거쳐 인천으로 오고, 이곳에서 다시 항주나 천주, 또는 북변으로 빠졌다.
허나 인천에서 나가는 은이 모두 그렇게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큰 거래를 할 때에는 은을 주고받게 되었다.
특히나 흥하는 것은 은을 팔아 미곡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삼남의 욕심 많은, 또는 용기 있는 사족이나 호농(豪農) 중에는 한 해 농사를 오로지 저의 말에 따라 짓는다는 조건을 붙여 전답을 골고루 흩뿌리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민주당 아전들에게도 제법 은을 흩뿌리고서는, 사람 부려 제방을 쌓고 물길을 낸 뒤 모내기까지 하곤 했는데, 그 결과 그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소출이 늘었다.
그리고 그 남는 만큼의 쌀은 조창으로 나가 배에 실린 뒤, 이곳 인천으로 오곤 했다.
“... 조창에 모으지만 세곡은 아니요, 배도 비록 경강(京江) 근방까지 오지만 조운선은 아닙지요.”
“그러면 어느 배를... 아.”
“그렇습니다. 다 그게 우리 당에서 부리는 배가 되겠습니다. 근래 크게 늘어난 조운선도 요새는 동래의 선소에서 만들곤 하지요. 따지고 보면 이게 다 그 옛날 왕직 잡으러 가던 시절 벌인 일이 결실 맺은 셈 아니겠습니까.”
마치 그간 자신이 열심히 일한 성과를 뽐내는 듯하였으므로, 서림의 말투도 조금은 들떴다.
동래에서 복건 사람들이 조선 선공들과 함께 만드는 배는, 제법 날래면서도 먼바다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 재주를 배운 이들이라면 굳이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태안 앞바다를 거치지 않고서도 멀리 빙 돌아 제물포까지 올 수 있었다.
“또한 미곡만 싣고 오는 것이 아니라, 대동법에 따라 위에 바칠 공납의 물목도 여기저기서 걷어서 올리곤 하지요.”
“아무리 그래도 바닷가 고을이 아닌 이상에야 땅 위로 옮기는 쪽이 낫지 않소?”
그런 행렬을 전생에 여러 차례 털어본 바 있던 꺽정이가 궁금하여 물었다.
“우리 의민당 시절에 봉산 오가던 행상들처럼, 소소하게 등짐 짊어지고 물건 파는 것이라면 모를까, 공납의 물품은 그 양이 제법 많습니다.
아무리 전국의 대로가 널리 닦였다지만 수레로 산길 넘어 다니기는 난망하니, 대신 가까운 포구까지만 수레로 옮기고 그 뒤로는 배에 싣고 다니는 것이지요.”
“허, 거 참. 누가 들으면 서림 그대가 호조판서쯤 되는 줄 알겠소. 막힘 없이 나오는구만.”
“우리 당 사업인데 별감이 잘 알고 있어야지요.”
“아니지, 말을 다시 하겠소. 서림 그대가 호조판서 해도 되겠소.”
한참 이어지던 달구지 행렬이 멀어지다가 다시 사람의 숲에 가리는 것을 바라보며 꺽정이가 농담을 던졌다.
“오는 길에 저 몰래 약주라도 하셨습니까?”
“나 같은 놈도 하는 게 조선국 당상관인데 서림이 그대가 못할까. 정말로 나랏일 매사를 백성 뜻 따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겠소? 내가 여염집 범상한 사내라면야 제 손으로 돈벌이 안 해본 어디 대갓집 나리보다야 서림 그대가 호판 하는 걸 더 좋아라 할 듯한데.”
허나 농담이 이어지다 보니 어째 저절로 속에서 뼈가 자라났다.
아닌 게 아니라,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백정 가운데서 꺽정이 자신도 나오고, 또 같은 부모 두었건만 성실하기로는 여느 양민 두셋에 맞먹는 저의 형 가도치도 나오고 - 그러고 보니 지난 공회 모임 이후로 겁 먹고 양주로 내려가버렸다고 들었다 - 평양 아전 사이에서 서림도 나왔다.
전생에는 그 재주를 가지고도 고작해야 도적놈 와주 노릇으로 끝났다. 허나 같은 서림이 이번 생에서는 벌써 일국을 운영하기에 족한 재정을 마음대로 놀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제가 호판으로 빠지면 우리 당은 어찌하겠습니까?”
“뭐, 그러면 나라 전체를 우리 당으로 삼으면 그만이지. 서림이 그대는 호판 하고. 나는 뭐 대원수니 대장군이니 하는 자리나 하나쯤 만들어서 거기 앉고. 우리 모주님은 정승 시켜드리고.”
“거기서 그칠 것 있겠습니까? 아예 더 밀어붙이지시요. 율곡 도령은 문형(대제학) 시켜드리고서 아예 탕평당 당수까지 하시라 하고, 당수님 안사람께서는 조총에 능하시니 군기시 제조 제수하고...”
서림이 짓궂은 농을 농으로 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이 아는 밤골 도령이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여 뭔가 한다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일이었으므로, 꺽정이도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해서 당을 꾸린다 한들 그 당이 얼마나 갈까.
“그래도 우리 안사람이면 벼슬 할 법도 한데. 당장 우리 장모님도 기세만 따지면 나보다도 더 대장군감이잖소. 길가 장승도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는데 뭐.”
“흠흠, 당수, 듣는 귀도 많거니와 우리가 농담따먹기로 소일하러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봉산 시절에 신씨 부인에게 시달린 것이 아직도 선한 서림이, 대장군 자리에 앉은 신씨 부인을 상상하자마자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시답잖은 소리나 주고받으며 제물포 부둣가를 한 바퀴 돌 무렵.
“하, 역시 남정네들 오가는 곳이 다 이렇지. 이곳 정도면 딱 좋겠소.”
꺽정이가 암만 보아도 색주가임이 명백한 골목길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저 ‘골목길’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규모가 컸다. 나름 여인 손길이 닿다 보니, 그저 난잡하기만 한 다른 골목보다 꽤 말끔해 보이기도 하였다.
(색주가가 그나마 멀쩡하게 보인다는 말은, 제물포의 현 상태에 대해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화담 선생 문하에서 이름난 사람이 여럿 나왔다는 것은 조선 사람 모두가 아는 바였다. 임 당수와 수산 선생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그 임거정이 사형이라 부르는 병해 대사 역시 보우와 더불어 팔도 석문(釋門)이 폐함을 면하게 해준 큰스님이었다. 또한 팔도 기생이 모두 흠모하는 송도 명기 황진이도 있었다.
민주당이 - 정확히는 꺽정이가 - 기생 대하기를 조심스레 한다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떠들곤 하였다. 실제로는 사업당이 그런 일까지 굳이 손대어본들 귀찮은 일만 생기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으나, 팔도에 발 아니 걸친 곳 없는 천하의 민주당과 그 산하 사업당이 유독 물장사와 여인 웃음 장사에는 손 안 대는 것은 호사가들 입담에 오르내리기 딱 좋았다.
이는 곧, 색주가가 범이 영영 오지 아니하는 골짜기로서 여우 놀기에 딱 좋은 곳임을 뜻하였다.
“당수, 아니 됩니다.”
서림이 느닷없이 꺽정이 팔을 붙들었다.
“뭐가 말이오?”
“지난번에 아씨께 말 함부로 하셨다가 제 집에 며칠이나 신세 지셨던 것 벌써 잊으셨습니까? 이제 저까지 종범(공범)으로 끌어들이려 하십니까? 두 분 부인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되면 그날부로 사업당은 한양에서 여기 인천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날 뭘로 보는 게요?”
꺽정이가 짐짓 언짢아하며 팔을 휙 내두르니, 서림이 몇 보쯤 비틀거리며 옆으로 밀려났다.
“이쪽으로 와 보시오. 내 계책이 떠올랐소. 심통원 그 양반이든 두리손 그 놈팽이든, 한량들을 데리고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놓칠 수밖에 없는 곳이 있단 말이오.”
지난 십 년 사이 조선국 안에 나도는 부는 크게 늘었다. 윤원형이 거두어 곳간에서 썩히던 보화는 민주당 또는 도성 백성 손에 들어갔고, 양측 모두 이를 기탄없이 마구 흩뿌렸다.
동래와 요양을 오가는 잠상들은 사업당의 비호를 받으며 더욱 뻔뻔하게 장사를 했고, 해금이 풀린 이후로는 강남 상인들도 인천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그런 부를 쓸 곳도 늘었다. 금궁과 거족들의 저택, 그리고 잘하면 육의전 정도에서만 나돌던 귀물(貴物)들이 요양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왔다.
류큐에서 들여오는 사탕(沙糖, 설탕)이 그 좋은 예였다. 조선 천하인의 위명을 등에 업은 자유민주당이, 그나마 남은 경쟁자 시마즈 씨를 갖은 악랄한 술수로 견제한 덕에 류큐의 물산이 조선까지 값싸게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컨대 왕직이 붙잡힌 이후로 ‘부득불 오봉도(고토 열도)에 머물며 죗값을 치르는’ 서해가 대명 조정에 고하기를, 왜구는 이제 모조리 쓸려나갔으며 장차 절강과 복건 해안에 왜구가 나타난다면 이는 같은 천조 백성이 왜구의 시늉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간악한 도진씨(島津氏, 시마즈)의 농간이라고 글을 보낸 바 있었다.
이것만 해도 억울한 노릇인데, 마츠라 당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그 글의 사본이 절강순무 앞으로 가는 대신 시마즈 다카히사(島津貴久) 앞으로 전해지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간악한 술수를 부리니 과연 도적의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시마즈 씨는 통한의 피눈물을 흘렸으나, 저쪽은 한 다리 건너면 천자에게까지 닿을 수 있다는 흑염룡 쇼군을 등에 업고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좌우지간 이처럼 돈이 조선국 민간에 널리 풀리고, 옛날에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던 귀물들 또한 이제는 주머니만 도톰하면 능히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천하진미 가수과(嘉壽菓, 카스테라)는 도성의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한 번쯤은 맛을 보아야 하는 것이 되었고, 대국의 능라비단은 한때 나라에서 그것의 유통을 금하였던 것도 같았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힘 닿는 대로 사서 치장하는 데 쓰곤 하였다.
그러므로 말 많은 자들은 농으로 떠들기를,
“윤원형이 있을 때는 재물로써 벼슬을 능히 살 수 있었고, 임거정이 일어난 뒤로는 재물로써 벼슬 뺀 나머지 만물을 능히 살 수 있게 되었다,”
라 하였다.
그렇다면 그 재물을 도저히 벌 여력 되지 않는 치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능히 벌 수는 있겠지만 그게 귀찮아서 도무지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 한량들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
도적질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의민당이 일어난 뒤 그에 감명을 받아 맹수 대신 도적 때려잡는 것으로 돈벌이하는 자들도 생겼으므로 여의치 않았다. 더구나 잘못하여 사업당이나 그에 연 닿은 자를 건드리게 되면 대송인을 부를 겨를도 없이 끔찍한 죽음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옛날 의민당에 합류하길 거절한 황해도 도적들의 운명은 남은 일곱 도 불한당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은 원하지만 부지런히 일하여 부를 쌓기에는 너무나 게으른 자들에게 열린 길 중 그나마 수월한 것은 결국 노름뿐이었다.
개중 조금 꾀가 있는 자들은 자신이 노름을 하기보다는 노름판을 열고 멀쩡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궁리를 하였다.
잠시 인천에 머물면서 다음 항해 전까지 짧은 시일 안에 바짝 놀다 가고픈 뱃사람들, 한양에서 뱃놀이하러 나왔다가 별천지 제물포에 들리는 한량들 등등이 모두 끼어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제물포 색주가 한가운데, 가장 번듯하게 성업하고 있는 곳은 기루(妓樓)도, 주점도 아니요, 당당하게 저들은 노름집이라 밝히고서 영업하는 ‘만재루(萬財樓)’였다.
“하하! 잡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오늘 이후로 투자(주사위)를 한 번 더 잡으면 이 놈의 손목을 잘라내고야 말 게다.”
“아직 해 질려면 멀었네. 한 번 더 하세.”
아직 겨울바람 매섭고 땅은 차건만, 누구는 평상 위에 앉아서, 누구는 바닥에 돗자리 깔고서 도끼자루를 썩히고 있었다.
“어디 보자, 저것은 쌍륙(雙六)이고... 저기 저 놈팽이들은 뭘 하고 있나 모르겠소.”
개중 이상한 놀음이 눈에 띄어 꺽정이가 서림에게 물었다. 다시 보니 앉은 이들 중 열에 일고여덟은 똑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정 서방, 그 패 봐봐. 혹시 장(將)이야?”
“아이고,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더니!”
그리고 그만큼 시비 거는 작자도 많고, 웃는 자, 우는 자, 화내는 자, 그저 술만 들이키는 자 등등, 노름판에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었다.
“저것이 아마 요새 유행한다는 마조(馬弔)일 겝니다.”
서림 또한 일에 바빠서 옛날 평양부 시절처럼 놀음 따위에 기울일 심력은 없었다.
“하하, 틀렸습니다, 선다님들. 저것이 바로 투전(鬪牋)인데, 저희 아버지께서 마조를 더 다듬어서 훨씬 재미지게 만드신 놀이입지요. 마조는 순전히 운으로 승패가 갈리지만, 우리 만재루 투전은 재치와 눈치만 있으면 언제고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답니다.”
어느새 쪼르르 나온 어린것 하나가 묻지도 않았는데 입을 털었다.
“인사 올립니다. 제가 바로 한 자 위 자 쓰시는 이 집 주인댁 아들, 한온(韓溫)입니다.”
“한온?”
전생에서 익숙했던 이름에 꺽정이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옙, 그게 제 이름 맞습니다. 두 분 선다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 여쭈어도 될지요? 저희 만재루는 자주 찾으시는 분들께는 자주 찾으시는 대로, 처음 오시는 분들께는 처음 오시는 대로 후하게 대접해드리고 있습죠.”
그 아비 한위도 듣자하니 아들놈과 비슷하게 싹수 노란 작자였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러니까 전생에서 저와 어울렸을 테다.
그러나 나중에나 더 생각할 일이었다. 꺽정이는 옛일과 옛정은 금방 머리 뒷전으로 밀어두고서 저의 용건을 꺼냈다.
“나는 한양서 벼슬하던 임가고, 여기는 벼슬은 아니지만은 제법 그럴듯한 장사 하고 있는 서 처사라고 한다.”
“임 선다님... 서 처사님...”
한온 녀석이 슬쩍 되뇌었다. 전생에도 머리는 비상했던 녀석이니, 보나마나 기억해두었다가 어디 적어두던가 할 테다.
“되었지? 그러면 우리를 네 아비에게 데려가다오.”
“하하, 임 선다님. 저희 만재루는 바깥 속세에서의 권세며 무엇이며 다 내려놓고 오로지 정직한 노름판만 벌이는 곳입니다.”
보통 그렇게 말하는 놀음판일수록 바깥 속세의 권세며 무엇이며 죄다 찾아오는 곳이었다. 꺽정이는 자신이 잘 찾아왔음을 내심 깨닫고 기뻐하였다.
“네 아비에게 데려가다오. 세 번은 아니 말하겠다.”
꺽정이가 한온의 어깨를 잡으며 빙긋 웃었다. 눈앞의 면상의 웃음이 절간 사천왕의 찡그림보다 험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졸지에 수난당하는 어깨뼈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나고 있었기 때문인지, 한온의 눈에 금방 두려움이 가득 찼다.
“흐, 흑.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하고서 후다닥 달려가니, 보나마나 이 집 노름판 지키는 주먹패들을 한데 모으기 위함일 테다.
모든 게 꺽정이 뜻대로 되고 있었다.
이윽고 한온이 후다닥 달려간 것처럼 다시 후다닥 돌아와서는 두 사람을 모시고 안쪽으로 향했다.
들어갈수록 보이는 모습은 점입가경이라. 기생과 서생이 마주 앉아 내기바둑을 두지를 않나, 서너 번 고쳐보아도 왜놈처럼 생긴 녀석이 영 까무잡잡한 녀석과 왜말로 다투지를 않나, 참으로 재물 앞에 모두가 형평(衡平, 평등)하였다.
“아버지, 데리고 왔습니다.”
곧 가장 깊숙한 곳, 눈에 안 띄는 문을 열고 한온이 말했다. 곧장 한 어깨 하는 자들이 우르르 나와 꺽정이와 서림 뒤를 막아섰다.
“아직 내 얼굴 모르는 자들이 조선에 많은 걸 보니, 갈 길이 먼 것도 같구만그래.”
“선다님께서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만재루는 민주당 임 당수를 모시고 있소.”
제 새끼 함함하다 여기는 고슴도치처럼, 한온의 아비 한위가 아들 어깨를 한 손으로 끌어앉으며 말했다.
“임 당수?”
“그렇소. 이곳 인천은 민주당이 세우다시피 하였으니, 이곳에서 장사하는 모든 사람은 임 당수를 모시는 것과 다름없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임 당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소이다.”
의외의 이름에 꺽정이가 놀라 서림을 보았는데, 서림 역시 금시초문이라 고개를 살짝 저었다.
“여기 만재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천하의 임 당수도 모를 것 같은데.”
“흥, 이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알릴 수 있소.”
“잘 되었네. 알려라. 얼른.”
“무어라 하셨소?”
“내가 임꺽정이다. 네가 네 입으로 나를 모신다고 하지 않았느냐? 만재루 안에서 벌어지는 일 들으러 왔으니 얼른 고해바쳐라.”
한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 꺽정이가 저의 뒤 막고 있던 녀석의 멱살을 잡고서는, 한위 옆을 향하여 냅다 메다꽂았다.
“집주인이 청맹과니인 것을 못 알아보았으니 너희 죄도 있다. 억울하게 여기지 마라.”
또 한 놈 붙잡은 뒤, 허리채로 휙 던져올리고는 발로 뻥 걷어찼다.
눈앞의 거한이 장정을 공깃돌처럼 이리 던지고 저리 차는데, 여러 사람 을러대보았을 주먹패들은 마치 범 앞의 노루처럼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그, 그만! 임 당수! 임 당수! 소인이 귀하신 분을 못 알아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끝내 견디지 못한 한위가 무릎을 꿇었다. 눈앞의 사내가 저만한 용력 지녔다면, 제가 임꺽정이 아니라 명나라 천자라고 해도 그렇다고 수긍해줘야만 명줄 붙인 채 오늘밤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자, 불어라.”
“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보아하니 이곳에 나름 번듯한 한량들도 제법 드나드는 듯하더라. 그중에서도 근래 갑자기 거금을 들고 나타난 놈이 하나쯤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네 아들놈까지 보내어 호구들 드나드는 걸 살피고 있었으니 네가 모를 리 없겠지.”
만약 정말로 모른다 하면 어쩔 수 없이 괘씸죄로 손찌검 몇 번만 해준 뒤 다른 노름판 찾아가려 했는데, 다행히 오늘 다칠 사람은 주먹패 둘로 족한 모양이었다.
“그...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곧 한위가 장부 하나를 급히 가져왔다. 드나든 이들의 이름과, 얼추 얼마나 들고 온 듯한지를 간략히 적어둔 것이었다.
서림이 그것을 받아들고 휘적거리는 사이, 꺽정이가 말했다.
“시쳇말에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하였는데, 꼭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굳이 재물을 바치지 않아도, 충분한 힘만 있다면 누구든, 또 무엇이든 맘대로 부릴 수 있는 법. 한가야, 그렇지 않으냐?”
“아, 예. 헤헤, 물론입죠.”
한위가 금방 가져온 장부를 서림이 살피는 동안, 꺽정이가 살벌한 농담을 하였다. 꽁꽁 얼어서 여전히 꿈쩍도 못하는 주먹패들은 웃어야 할지 말지를 두고 참으로 진지하고도 중대한 고민에 빠졌다.
“너희는 나를 모신다고 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 어딘가로 새어나간다면, 그때는 내가 너희를 친히 부려주마. 마침 니탕카이 그놈이 화살받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한위와 주먹패들에게는 다행히도, 서림이 곧장 원하던 것을 찾았으므로 더 살벌한 말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당수, 의심스러운 이름을 찾았습니다. 자주 찾아오는 단골인데, 항상 ‘하(下)’였다가 하필 그놈의 책이 나온 직후에 ‘특상(特上)’으로 올랐더군요.”
“그분, 아차, 그치는 그날 하필이면 운도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본전까지 털렸습니다.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과연 전생의 담력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용기를 낸 한온이 눈치껏 말을 붙였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생각하며 만재루를 나서던 차, 서림이 조용히 물었다.
“어찌하시렵니까?”
“우선 그놈을 확실하게 호구 잡고 심문을 해야겠지. 만약 그놈이 정말 두리손이든 심통원이든 누구 아래 있는 놈이라면 좋고, 아니면 다른 의심스러운 놈을 불 때까지 그놈을 계속 족치고.”
“호구를 잡는다 하심은...”
“마침 노름집 단골이라 하지 않았소? 노름빚 씌워서 어딘가 으슥한 곳으로 끌고 나오면 되겠지.”
전생의 한온에게 배운 수법으로 전생의 다른 원수를 갚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묘하지 않은가.
장부에 적혀 있던 그자의 이름은 전생에는 지금쯤 막 나주에서 판관 벼슬 하고 있었을 이흠례(李欽禮)였다.
“지금 사업당 주변에 있는 자들 중 잔머리 굴릴 줄 아는 자 하나쯤 찾아와 주시오. 이왕이면 생긴 게 우스꽝스럽고 모자라 보일수록 더 좋겠소.”
마침 그런 자 하나가 『서유기』 초판본 들고 인천으로 와서는, 히라도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긴 것은 잔나비요 출신은 왜놈 중에서도 상놈인데, 머리는 비상하고 잔머리는 출중한 도키치로가 귀인 아닌 귀인을 만나게 느닷없는 중임(重任) 맡게 된 까닭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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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하루 만에 지어지지 않았다’라는 속담은 12세기 말 중세 프랑스에서 처음 그 용례가 확인됩니다. 학창생활을 파리에서 하였던 하비에르가 이 속담을 조선에 가져온 것은 그러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원 역사의 일본에서도 예수회 선교사들은 현지 성직자 양성을 목표로 교육기관 설립까지 추진한 바 있습니다. 규슈의 여러 다이묘들의 후원을 받은 예수회의 선교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여, 1580년에는 시마바라(島原)에 일본인 성직자 양성을 위한 종합 교육기관(세미나리요セミナリヨ)을 세우기에 이르렀지요. 오토모·아리마·오무라 등 크리스천 다이묘들이 공동으로 교황청에 파견한 덴쇼(天正) 소년사절단 또한 이 세미나리요 1기생이었던 일본인 소년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땅과 인구가 모두 부족한 류큐에서 중계무역 외에 내놓을 만한 특산품은 사탕수수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6세기 말, 해금령이 풀리고 중국과 유럽 상인들이 남중국해 무역에 뛰어들게 되면서 결정타를 입은 류큐 왕국은 점차 사츠마의 시마즈 씨에게 침탈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진왜란의 선봉으로서, 또 그 이후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편을 잘못 서게 되면서 큰 피해를 입은 사츠마의 시마즈 씨는 류큐을 쥐어짜 피해를 벌충하려 하였고, 결국 1609년 사츠마 번은 류큐 왕국의 수도 슈리성을 점령하고 속국으로 삼게 됩니다. 가혹한 조공 요구 속에서 사탕수수 재배는 그나마 류큐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인 동시에, 사츠마가 류큐를 놓아주지 않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카스테라(가수저라加須底羅, 계란병鷄卵餠 등등으로 불렸습니다)는 원 역사에서도 한중일 3국 사람들의 입맛을 널리 사로잡았습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만들어 고관들에게 뿌리는 카스테라를 만주족 고관들이 별미로 먹었다는 기록이 조선 측에 전하고, 또 조선 사신과 그 일행도 서양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카스테라를 많이 먹곤 했지요. 조선통신사들 역시 카스테라를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다만 설탕과 밀가루, 계란이라는 귀한 재료가 들어가는 특성상 진귀한 별미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작중 등장한 투전은 원 역사에서는 원대부터 중국에서 성행한 카드놀이 마조(馬弔)를 장희빈의 당숙이었던 역관 장현(張炫)이 들여와 개량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개량된 투전패는 여러 놀음과 보드게임에 널리 쓰였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투전을 활용한 놀음은 화투가 들어오자 그에 맞는 형식으로 변형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중적인 오락이자 도박으로서 널리 퍼졌기에, 본편의 제목인 ‘낙장불입’이나 ‘장땡’, ‘끗발’ 같은 속된 표현들로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우리 입말에도 남아 있지요. 작중에서는 동아시아의 국제적 교류가 훨씬 활발해지면서 그에 따라 투전 역시 먼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온은 벽초의 『임꺽정』에서는 대대로 한양에서 범죄조직의 뒷배인 와주 노릇을 하였다고 묘사되지만, 『실록』에서는 그저 임꺽정과 함께 도적질을 하였던 자로만 등장합니다. 다만 1561년 의주목사 이수철이 가짜 임꺽정을 붙잡았을 때 가짜 한온도 함께 붙잡은 것을 보면, 그 이름이 제법 널리 알려져 있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