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17화 (117/259)

36. 낙장불입 (2)

이흠례와의 악연은 전생의 꺽정이가 남쪽에 난리 났다는 소리 듣고, 기뻐하며 칼 차고 달려갔을 때부터 시작하였다. 당시 나주판관 이 아무개가 의병을 초모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준경이 이끄는 본대보다는 그쪽 유군(遊軍)이 더 공적 세우기 좋을 듯하여 꺽정이 역시 좋다고 그쪽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러니 꺽정이가 수급도 제법 취하고 용맹도 나름 떨쳤건만 모조리 빼앗긴 것도 이흠례 잘못이었다. 이흠례 솔하의 군관들이 저의 군공을 낚아챘음을 고변했더니, 그 군관들이 빼앗아간 공을 다시 빼앗아 저의 것으로 삼고는 입을 싹 씻어버렸다.

‘그랬던 놈이 이제는 제물포 노름판이나 전전하게 되었다니, 시원은 하지만 그래도 곡절을 알아보아야 할 일이다.’

이흠례 이름이 한온과 그 아비 한위의 장부에서 튀어나왔을 때부터 꺽정이 머릿속에 감돌던 생각이었다.

“등길랑이 대령하였습니다, 당수.”

문 밖에서 제법 유창한 조선말이 들려왔다.

“오, 네가 그놈인 게로구나.”

문지방 넘어 나가보니, 과연 주변 사람들 하는 말대로 딱 잔나비 사촌처럼 생긴 왜인 하나가 무릎 꿇고 있었다.

“그래, 조선에서야 등길랑이라고 부른다 치고, 너희네 말로는 무어라 하느냐?”

의외의 질문에 왜국 잔나비가 놀랐다. 허나 이미 하비에르며 니탕카이며 모리타네며, 온갖 나라 사람들의 기괴한 이름에 익숙한 꺽정이에게는 당연한 질문이기도 했다.

꺽정이 저도 ‘배도치’나 ‘임거정’이라 불리는 것은 썩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공자님 말씀대로 서(恕)의 마음 베풀어 어지간하면 남의 이름은 남들 스스로 부르는 대로 불러주려 하곤 했던 것이다.

“그, 저희 말로는 도키치로라고 합니다만... 쇼군, 아차, 당수님 원하시는 대로 부르시면 그에 따라 바꾸겠습니다.”

갑자기 조선말 억양이 어색해졌다. 그저 하늘 같은 쇼군께서 부르신다는 말 듣고 스스로 밤새 문답하면서 제가 해야 할 법한 답변만 달달 외우고 연습하였기에 유창하게 들렸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범위를 벗어나는 말이 나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꺽정이는 서림의 사람 보는 눈을 믿었으므로, 도키치로가 잠시 버벅이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 도키치로야.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꾸나.”

“예, 물론입지요.”

“그럼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자.”

꺽정이가 그리 말하고서 섬돌 아래를 보았는데, 저의 짚신이 사라져 있었다.

“아, 여기 있습니다, 헤헤.”

이제 보니 잔나비 녀석이 뭘 품에 안고 있었다. 곧 녀석이 무릎걸음으로 나아와 제가 고이 품고 있던 짚신을 섬돌 위에 올렸다.

“조선의 겨울은 춥지 않습니까.”

딴에 당수에게 아첨한다고, 꺽정이 신을 제 품 안에 넣고 데우고 있던 것이다.

“허, 이놈 보소. 자질이 있군그래.” 도키치로가 미소를 감추었다. 저의 잔머리가 먹혔다고 여긴 것이다.

허나 꺽정이가 눈여겨본 것은 그 잔머리가 아니라, 꺽정이 귀에 들리지 않게 감쪽같이 다가와 짚신을 품에 넣은 그 솜씨였다. 족히 큰 도적의 싹수라 할 만하였다.

그런 사소한 오해를 뒤로 하고, 두 사람은 곧장 만재루로 향하였다. 오와리 촌구석에 남아계신 어머니 봉양할 돈을 모으느라 이런 곳까지 올 여력은 없던 도키치로 눈이 곧 휘둥그레졌다.

나중에 큰돈을 벌면 히라도나 사카이에 이런 곳 하나 지어서 놀고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다만 건물이 너무 검소하니, 이왕이면 금박 기와에 붉은 비단으로 휘장 만들어 꾸미는 게 좋을 테다.

저의 옆에 당수 계심을 잠시 잊고 그런 삼매경에 빠진 도키치로였다.

“아버지! 당수께서 오셨습니다.”

“아, 오셨습니까요.”

엊그제 꺽정이가 힘을 보였을 때보다도 더욱 굽신거리는 한위 부자였다.

“그래, 오셨다. 자, 너희에게 일 하나를 주마. 한가 네가 이 투전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니, 투전으로 사람 속이는 법도 잘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으냐?”

꺽정이가 아는 한온 성품이라면, 그 아비 또한 얼추 비슷할 터였다. 과연 한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속임수 쓰는 객이 있으면 붙잡고자 고안했을 뿐입니다.”

“거짓부렁은 아니 해도 괜찮다. 우리네 사람에게만 손장난 안 치면 누가 뭐라 하겠느냐.

자, 그럼 이제부터 너희 부자가 고안한 모든 수법을 여기 이 도키치로에게 가르쳐주거라. 하루 주겠다.”

예상치 못한 지시였으나, 도키치로의 인상, 그리고 그 우스꽝스러운 낯짝 가운데서 비범하게 번뜩이는 눈빛을 보자 한가 부자도 꺽정이의 뜻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도 헤아리지 못할 눈치라면 노름판 전주 노릇은 언감생심이요, 그저 눈 대신 옹잇구멍 달고 다녀야 할 터였다.

재주꾼이 좋은 스승은 못 되는 법이라지만, 한온과 그 아비가 작정하고 이 도키치로라는 왜인을 가르치니 그날 해가 저물 무렵에 어느새 가르칠 것이 없어졌다.

이는 스승의 공이라기보다는 배우는 사람의 덕이었다.

손재주가 특별히 빼어난 것은 아니나, 그 눈치는 실로 귀신같았으니, 저의 용모와 어설픈 조선말을 역으로 이용해 상대를 방심케 하고, 그렇게 경계하는 마음 풀린 것을 사정없이 이용하곤 했던 것이다.

사람의 눈 대신 그 상전인 사람 마음을 속이니 오히려 두 부자의 손장난이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그리하여 해질녘에는 기어이 한위와 한온 두 사람이 후학(後學) 도키치로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지경이 되었다.

“잘 되었다. 이제 이흠례 그놈 올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그런 사정 따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꺽정이가 예사로운 말투로 말하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정말로 만재루 단골 이흠례가 색주가 골목에 들어섰다.

이흠례는 효령대군의 4대손으로, 금양부정(金壤副正) 이경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강직하였으나 노는 것을 좋아함이 흠결이었다. 다만 호군(護軍) 벼슬을 지낸 김수증(金壽增)의 둘째 딸을 아내로 맞이한 뒤로는 작심하고 붓을 잡았다.

그러나 문장에는 능할지언정 경의(經義)에는 밝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가 과거를 준비할 무렵 어디선가 『삼국지연의』와 같은 못된 서책이 들어왔으므로, 수불석권(手不釋卷)은 하였으되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언감생심이라. 마침내 문과는 관두고 무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말 타고 활 쏘는 재주는 있어 곧장 무과에 급제하였고, 위의 네 형이 보내준 재물로 이곳저곳 적당히 인정(人情) 바친바 처음부터 선전관으로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다. 기유년(1549)의 일이었다.

역적도당이 황해도에서 난을 일으키니, 조정은 오만 대군을 일으켰다. 이흠례는 선전관으로서 한 발 앞서 황해도로 향하여, 신계 쪽에서 적당의 동정을 감시하고 그 뒤에는 강원도 관군과 함께 서흥 읍내로 진군하였다.

군부(君父)의 은혜를 갚고 저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당연히 후자가 본심이었다 - 하는 마음 한가득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이 들어왔다.

악적의 수괴 임거정은 황해도를 벗어나, 고작 일천여 명 병력으로 도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이 뒤집혔다.

외척으로서 조정을 뒤흔들던 서원군 윤원형은 죽음을 맞고, 역적 임거정은 조정 중신들 앞에서 역적 아님을 공언 받았다.

임거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 당을 꾸린 뒤 전국을 손에 넣어가기 시작했다. 팔도에 민주당 자처하는 아전 없는 고을이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업당이라는 미심쩍은 장사치들 역시 곳곳에 발을 뻗었다.

임거정 본인도 조선 한 곳은 비좁다는 양 이리 날뛰고 저리 들이받았다. 느닷없이 배를 만들더니 바다를 건너가 왜구 두목을 잡아오고, 또 북쪽으로 가서는 야인들을 모아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고 했다.

나라의 선비와 선비 자칭하는 유생들은 그것을 두고 한탄을 하든, 옳고 그름을 따지며 허송세월하든 하였으나, 일신의 무예를 나름대로 뽐내는 군관들 마음속에는 은연중 시기가 깃들었다.

‘고작 백정놈의 자식이 일신의 조그만 힘으로 저만큼 올라갔는데, 나라고 못할 것은 무엇인가?’

‘나라의 도성은 고작 일천 군세에 함락될 만큼 허술하였다. 그 뒤로 임거정이 강짜를 부리니 곧이곧대로 받아줄 만큼 조정은 또한 문약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시기가 마음을 좀먹고, 눈길은 임거정과 민주당이 누리는 권세에만 쏠렸다. 임거정과 사림 중신들이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협의하며 나라의 제도 바꾸고 있다는 데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민주당이 결성될 무렵 모친상을 당하여 한동안 시골에 머물다가 두어 해 전 상경하여 세태를 마주한 이흠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때마침 임거정을 미워하고 민주당을 고깝게 여기는 이들이 무슨 모임을 꾸렸다 하기에, 이흠례 또한 솔깃하여 수소문 끝에 그들을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량과 심통원이 무본사 뒤에 있음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하여 광영 얻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무본사는 이량과 이름 알 수 없는 그의 모주의 덕으로, 이흠례 저와 비슷한 생각 품은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량이나 서얼에 비하면 이미 선전관 벼슬까지 올랐고 지금도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감영의 판관쯤은 할 수 있을 이흠례는, 개중에서 금방 두각을 드러냈다.

소의 꼬리보다야 닭의 부리가 낫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 닭이 언제고 봉(鳳)이 되어 날아오를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무본사 쪽에서도 저를 알아보았는지, 어디선가 재물을 구하여 그에게 마치 녹봉 주듯 은을 나누어주곤 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지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량이 심통원의 집을 들락거리고, 또 어디선가 묘한 계책을 가져와 무본사 세력을 점점 퍼뜨려나가는 것은 좋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행하는 바는 금방 나라를 뒤엎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로는 그저,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 그 자체가 본뜻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저의 재주를 썩히며 한양에서 소일하던 차, 함께 한양에 기거하는 한량 아무개가 그에게 제의하였다.

“문보(이흠례의 字) 형, 요새 날도 좋은데 뱃놀이나 하러 가십시다.”

“서강(西江, 한강 하류 일대) 뱃놀이? 자네가 시문을 지을 줄도 아는가?”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배 타고 제물포나 놀러 가자는 것이지요. 오랑캐 도깨비들 면상 구경도 하고, 노름판에서 운수도 좀 점쳐 보고, 기생 옷고름도 좀 풀고. 그런 별천지가 지척에 있는데 호한(好漢)으로서 안 가고 배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 꼬드김에 혹하여, 이흠례는 그 패거리와 함께 마포에서 조각배 한 척 빌려 제물포 구경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 가본다’는 ‘한 번 더 가보자’가 되고, 이어서 ‘돈만 들어오면 또 가세나’가 되었다.

만재루. 그곳에서 이흠례는 자신이 그간 갈구하는 줄도 몰랐던 그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재물이 있으면 있는 대로 향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빌려서 달려갔다.

그나마 가산을 탕진하지 않을 만큼의 양식은 있었으므로, 아예 빚더미에 앉는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 요새는 사치스러운 풍조에 빠져 그렇게 패가망신하는 작자들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였다 - 뜻밖의 재물이 들어올 때면 백이면 백 제물포로 향해 흩뿌리고 왔던 것이다.

임거정 패거리 모함하는 책략에 한몫 거들어, 글 한 편 써주고 후한 보수를 받은 뒤에도, 어김없이 이흠례는 만재루로 향하였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신세를 고칠 수 있게 될 기미인지, 그날따라 손덕(끗발)이 좋았다. 은을 잔뜩 들고 마포를 떠났는데, 만재루에서 나와 마포로 돌아올 때에는 그 은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으며, 심지어 서생 한 사람을 호구잡아 그가 들고 다니던 사업당 분표며 은정고에서 발행한 은표(銀標)며 알뜰하게 뜯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 또 가서 운을 마저 시험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고, 어르신, 이제 그만 찾아오시지요. 이대로 몇 번 더 오시면 저희 만재루는 거덜나게 생겼습니다.”

한가 녀석이 곧장 달라붙어 너스레 떨며 은근히 아첨하였다.

“하하, 그럴 리가 있는가. 내 그저 운수를 점치고 소소한 낙을 얻고자 오는 것이지, 재물을 탐내는 것은 아닐세. 여기 만재루가 거덜나는 일은 없을 것이야. 어찌 여러 사람 즐기는 곳의 문을 닫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내 지난번처럼 운이 따른다면, 금일은 만재루에 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술 한 잔씩 돌리도록 함세.”

곳간에 그득 쌓인 채 생쥐와 들쥐만을 기다리던 미곡은 은이나 비단 따위로 바뀌었고, 또 저의 힘으로 논밭의 소출을 늘리면 그것이 저의 것으로 모두 돌아오는 세상이 되었으므로, 조선 팔도 시중에 돌아다니는 쌀의 양은 크게 늘었다.

그리하여 술값도 절로 헐해졌으니, 노름꾼뿐 아니라 술꾼들에게도 호시절이 아닐 수 없었다.

“나리께서는 정말 하늘이 내리신 귀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요.”

“자, 그러니 걱정 말고 목 좋은 자리나 마련해 주게. 여간내기들처럼 저기 평상이나 멍석 위에 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헤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흠례는 곧 한온을 따라, 자신이 그간 들기를 원하였으나 한 번도 들지 못하였던 별채의 가장 좋은 방에 들었다.

구들장은 뜨뜻하고, 한쪽에는 서화 한 폭, 저쪽에는 난초 한 촉. 그 외 호사스런 기물이 이곳저곳에 있으니, 마치 대갓집 사랑방과 같았다.

“자, 여러분. 마지막 한 분까지 오셨습니다. 이분께서는 선전관 벼슬까지 지내신 이씨 어르신입니다.”

미리 들어와 술상 하나씩 받고 앉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머릿수를 헤아려보니, 돌려대기(투전 도박의 일종) 하는 방이 틀림없었다.

“허어, 신수 훤하시오.”

“만재루에 이처럼 훤칠하신 군자께서 찾아오실 줄은 몰랐소.”

다른 이들도 지체가 얼추 있는 자들인 모양이었다. 마침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이흠례는 자못 흡족히 여겼다.

“아, 반가웁니다.”

그런데 개중 한 사람은 유독 모자라 보였다.

“‘반갑습니다’요.”

“반갑스므니다.”

생김새로 보나 복식으로 보나 영 추레한 왜인 하나가 자리를 흐리고 있었는데, 곁에 두둑히 쌓인 동전을 보고서 이흠례는 찌푸린 눈살을 도로 폈다.

“흠흠, 여기는 왜국 미장주(오와리)에서 온 등길랑이라 하는데, 차림새는 소박하여도 왜국 땅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호상(豪商)이라 합디다.”

제법 사람깨나 보았다 자부하는 이흠례가 보기에는 호상이 아니라 그저 운 좋게 천금을 득한 뜨내기였다. 하기야, 조선국에서는 백정놈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는데, 상것이 일조일석간에 일확천금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윽고 선수(딜러)가 들어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 이는 귀인들만을 받는 이곳 별채에서만 행하는 예법이었다 - 패를 나누어주기 시작하였다.

투전패 여든 장 중 네 목(目) 마흔 장만을 가리고, 이흠례 이하 다섯 판꾼에게 돌아가며 한 장씩 나누어주니, 곧 한 사람 손에 다섯 장이 들렸다.

속인(俗人)들과 함께하는 다른 자리에서라면, 패를 두고 눈치싸움 할 때 ‘영산홍록에 봄바람’ 운운하는 격 떨어지는 노래를 부르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그저, 지난번 정론보에 실린 논쟁에 대해 가볍게 논한다던가, 시문(詩文) 이야기를 한다던가 할 뿐이었다.

“... 이는 이러한 자리에서 함부로 논할 일은 아니지만, 소위 사단과 칠정의 논변이라는 것 은 실로 흥미로워 선비된 자로서 일시라도 마음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외다.”

그렇게 운을 뗀 서생이 싱긋싱긋 웃었다.

“허나 칠정 밖에 어찌 사단이 따로 있을 수 있겠소이까? 이 사람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오이다.”

한량인지 선비인지 아리송한 다른 유생이 따라 웃으면서 저의 손에 들린 칠땡을 내보였다. 어찌 끗발 좋다고 단언하겠느냐만, 딴에 눈치껏 살핀즉 주변 사람들은 저보다도 더 형편없을 듯하였다.

과연 그 뜻대로, 이번에는 칠정 안에 사단 있다고 말한 서생이 동전을 한아름 챙겨가게 되었다.

이렇게 속되고도 천박한 노름판에서 사단칠정을 운운한다 하면, 이황은 탄식하며 정론보 폐간을 고민하고 조식은 그 자리에서 횃불 들고 만재루를 불태우러 올 것이었다. 이 논쟁에 불을 붙인 대양서생 기대승은 숫제 전선 한 척을 훔쳐와 만재루에 총통을 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의 발단은, 사육신의 신원이 이제는 그저 ‘공회’라 불리게 된 전정공회에서 논의된 것에 있었다.

매죽헌(성삼문)의 충(忠)과 희현당(신숙주)의 충은 같은 것인가? 둘을 같이 본다면 마땅히 사육신은 신원하는 것을 넘어 그 절의를 포장해야 할 일이요, 같지 않다고 한다면 누구를 앞세울 것이냐에 따라 역시 그 함의가 클 것이었다.

이때 이황이 바쁜 와중에 조식 통하여 정론보에 글 싣기를, 사단은 리(理)가 발한 것이요 칠정은 기(氣)가 발한 것이니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따라서 같은 충의라 하더라도 옳고 그름은 같지 않을 수 있노라 하였다.

공교롭게도, 이지함 통해 뜯어낸 『기하원본』을 탐독하면서, 땅이 둥근데 반대편 사람이 떨어지지 않는 이치와 더불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기대승도 이번 『육신전』 소동을 보고 느낀 바 있어 글 한 편을 정론보 쪽에 보냈다.

그 내용은 졸지에 이황의 논변을 정면으로 비판하게 된 것이어서, 순식간에 도성 식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흠례는 그러한 것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고, 저의 맞은편에 앉은 잔나비 닮은 왜인의 낯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만을 보았다.

“그, 저는 잘 모르게수, 모르겠습니다.”

등길랑이가 영 변변찮은 저의 패를 내보이며 말했다.

과연 생긴 것처럼 못난 작자인지, 끗발이 좋으면 얼굴이 펴고 개패(좋지 않은 패)를 들게 되면 낯빛도 푸르죽죽해지곤 했다.

걸린 동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희로애락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니, 칠정(七情)의 발현이 과연 리(理)와 어떤 연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도박판의 이익(利)과는 밀접한 연이 있었다.

과연 그렇게 몇 차례 놀음이 돌고 나니, 다른 서생들은 더는 사단칠정을 논하지 못하고, 그저 얼굴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 보일 뿐이었다.

정말로 오늘도 운수가 좋아서, 패가 들어오는 족족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되었다. 안 들어와도 저는 갑오(구끗)요, 반대로 나머지 네 사람은 망통(0끗)마저도 툭하면 나오니, 이흠례 쪽은 어느새 동전이 산을 이루고 저쪽의 언덕은 가차없이 깎여나갔다.

특히나 등길랑이는 가면 갈수록 애처로운 울상을 지었다.

“으으, 얼른 다시 따고 싶습니다. 다시 하시지요.”

등길랑의 조선말은 조금씩 유창해지고 있었는데, 이미 그의 옆에 아직 제법 남은 동전을 앗아올 생각에 눈과 귀가 쏠린 이흠례는 이를 알지 못하였다.

“하하, 좋네. 예의지방 조선국에 왔으니 남을 위해주는 어진 마음도 보고 가야겠지.”

“참으로 호걸이십니다. 허나 이제 저도 슬슬 다시 딸 때가 되었습죠. 거기 옆에 두신 그 동전은 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등길랑이 조금씩 이흠례를 살살 건드리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정 그렇다면 도로 가져가 보게. 저의 운과 재간으로만 겨루는 것이 노름판 법도 아니겠는가?”

이흠례가 호기롭게 운을 떼었다.

“이보시오들, 여기 등길랑이와 이 사람만 좀 놀아도 되겠소이까? 아무래도 이 사람이 가장 많이 득하고 등길랑은 가장 많이 잃었으니 말이오.”

선수 또한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에게 패를 나누어주었다.

“헤헤, 때가 되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하, 맞네. 자네도 한 번쯤 딸 때가 되긴 했지.”

첫 판은 등길랑이 제법 땄다.

“아이고, 호걸님, 감사합니다.”

“흠흠, 한두번쯤 잃고 따는 것 정도야.”

두 번째 판은 등길랑이 더욱 크게 땄다.

“그래도 아직 멀었습니다. 판돈을 좀 늘려보아도 될지요? 승기를 잡았을 때 마구 질러야 할 듯한데요.”

“흥, 좋네. 어디 한 번 해 보세나. 이 사람도 이제부턴 진심으로 대할 터인즉 각오해야 할 것이야.”

세 번째 판도 등길랑이 가져갔다. 그러나 자신이 시종일관 우습게 여기던 저 잔나비가 이죽대는 꼴에 이미 눈이 돌아간 이흠례는, 내리 지던 작자가 갑자기 내리 이긴다는 데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만재루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 이름 그대로 만금(萬金)을 들고 온 듯하였으나, 이제 이흠례의 쌈지에는 동전은 동나고 그저 구리 냄새만 남아있었다.

“하, 아직 봄도 아니 되었건만 이 무슨 일장춘몽이란 말인가.”

쌈지가 가벼우니 입꼬리는 무거워져, 절로 아래로 쳐졌다.

“안타깝게 되셨습니다, 어르신.”

“자네마저 나를 놀리는가?”

옆에 슬쩍 다가온 한온에게 날선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정말로 하늘이 어르신을 망하게 하려 작정하였던 듯합니다. 저도 종종 들려서 문너머로 귀동냥을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안 좋은 패만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는지 영문 모를 일입니다.”

이흠례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한온이었다.

“그러니 다음 번에 오신다면 얼마를 들고 오시든 이번처럼 별채로 모셔드리겠습니다.”

“되었네, 당분간은 인천부 지경에 발도 못 들여놓게 되었는데.”

“하면, 빌리시면 되지 않습니까?”

“무어라? 지금 장리(長利, 고리대금업)를 말하는가?”

“굳이 말한다면 단리(短利)가 맞을 것입니다. 그냥 은과 동전을 그대로 넘겨드렸다가 고스란히 받는다고 생각하지면 됩니다.”

한온이 이어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은정고에서는 이름 그대로 은을 빌려주고 또 대신 불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빌릴 때 그 이식(利息, 이자)이 턱없이 낮을 뿐더러, 역으로 은정고에 은을 맡기면 사업당 분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조금씩 그 은을 불려주겠다고 공언하였으므로 세간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만재루 역시 시운에 따라 은을 잃고 얻는 이들이 많으므로, 그렇게 저렴한 이식으로 은전 빌려주는 일을 이번에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식은 고작 십분지일입니다. 말 그대로 푼돈인데, 다만 은정고와 달리 오직 저희 만재루에 자주 드나드시며 호걸의 풍모 드러내신 분들께만 그런 혜택을 드릴 뿐입니다.”

솔깃하게 여긴 이흠례는 곧장 그 미끼를 물고야 말았다.

그렇게 보무당당하게 잔나비 왜놈에게 찾아가고, 몇 번 딴 뒤에 귀신같이 다시 한두 판 만에 모두 잃는 일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흘 뒤.

“후, 이보게. 내 참으로 무안하게 되었네. 조금만 더 은을 빌릴 수 있겠는가?”

“제가 어찌 어르신께 아니 된다 감히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간 밀린 이식만 돌려주시면 곧장 더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십분지일이라 하였겠지.”

그러자 한온이 갑자기 낯빛 바꾸며 차갑게 대꾸했다.

“어르신, ‘한 시진에’ 십분지일입니다. 그때 이후로 족히 삼십 시진은 지났으니, 본전 제하고 이식만 따져도 이미 열여섯 곱절을 넘었습니다.”

“무, 무어라? 그런 도리가 어디 있는가?”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 허나 저희도 장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새 한온 주변에 주먹패 여럿이 모여들었다.

“다만 어르신의 운수가 아직 다하지 않아, 구명하실 방도가 없지 않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흐흐, 저를 잠시 따라오시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나리를 절실히 기다리시는 귀한 분이 하나 계신데, 찾아뵙고 그분께서 물으시는 것에 답만 몇 마디 하시면 됩니다요.”

한온의 주먹패 사이에서 잔나비 왜놈이 슬쩍 나타났다. 어찌하여 자신이 이러한 처지로 전락하고야 말았는가. 한탄한들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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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잠시 몇 번 언급되었던 이흠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흠례는 벼슬이 수사(수군절도사)에 이르렀건만 정작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적이 전하지 않았는데, 1999년 서울 영등포에서 그의 묘소 터가 발견되면서 청자로 만든 지석(誌石)도 함께 발견되어 그 삶에 대해 보다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중 언급된 이흠례의 어린 시절 성격은 이 지석에 적힌 대로입니다.

조선 후기 투전이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유행한 것은, 화폐경제의 확산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전은 간편한 교환의 수단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도박의 현장에서는 매우 강력한 흥분을 주는 매개체로서 - 카지노의 칩과 유사합니다 -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유혹했지요. 풍속화에 묘사되는 투전판의 모습에 거의 항상 동전꾸러미가 함께 놓여 있는 것은 이를 방증합니다. 투전이 처음 개발된 뒤 수투전(數鬪牋)처럼 보다 얌전하고 도박성이 낮은 형태의 놀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되고 짓고땡 - 이 역시 투전에서 비롯되어 후에 화투로 넘어온 도박입니다 - 등이 큰 인기를 끈 것은, 화폐의 유통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하겠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머니 오만도코로(大政所, 본명 나카)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다는 것은 실제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반면 그가 오다 노부나가의 시종 시절, 한겨울에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에 안고 데웠다거나, 다른 시종들보다 시장에서 더 싼 값에 물건을 사들이는 재주를 부렸다는 것은 당대에도 이미 널리 퍼진 이야기였으나 그 진위는 알 수 없습니다. 작중에서는 이제 막 오와리 국의 후계 다툼에 열중하고 있는 노부나가 대신 꺽정이를 상대로 같은 일화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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