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21화 (121/259)

37. 계절존망 (1)

꺽정이와 명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명을 바우(巖于)라고 지었다.

‘개똥이’니 ‘말똥이’니 하며 아명을 천하게 짓는 것이 반가의 통례지만, 이는 천하지 않은 본명을 후에 따로 지을 때나 가한 일이므로 백정들 사이에는 그런 법도가 없었다.

그러므로 꺽정이는 이왕 짓는 아명도 좀 그럴듯하게 짓기를 바라고, 신씨와 명희는 천한 아명 짓지 않기가 더 께름칙하여, 사위와 처갓집 사람들 사이 사소한 언쟁이 벌어졌다.

그때 여전히 꺽정이네에 머물고 있던 병해가 어디서 들은 풍월을 읊었다.

‘어쨌든 하비에르 그이가 찾아와 치성 올리는 일에 보태주었으니 그 공도 있지 않으냐? 내가 듣기로, 그 교에서는 예수 문하 십이철(十二哲, 열두 사도)을 기리는데, 그중 으뜸인 자의 이름이 베드로요 그 뜻은 바윗돌이라 하더라.’

꺽정이 생각에 바우라는 이름은 무슨 똥 운운하는 것보다는 덜 상스러웠고, 명희 생각에는 ‘바우’가 충분히 천하였으므로, 부부 듣기에 병해의 제안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바우가 저의 첫 이름을 얻자마자 명희는 쓰러졌다.

정한수 공덕인지 열은 나지 않았으나, 도저히 기력이 나지 않았다. 아이 여럿 낳아본 신씨에 따르면, 이는 바우가 그 아비를 닮아 기골 장대하였기에 명희의 몸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한참을 앓아누워 있었는데, 그때 퇴계 선생의 유명한 활인심방을 떠올린 신씨가 딸에게 권유하기를 자리보전만 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일어나 부드럽게 몸을 움직여보라 하였다.

그랬더니 정말로 몸에 생기가 돌고, 보름이 지나자 흑의영 - 마침내 공회가 끝나 흑의군 품에 돌아왔다 - 까지 가서 활도 몇 순 쏘고 올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몸을 움직이면 건강해지고 기력이 샘솟는다는 것이 신씨 부인과 이언적에 이어 또 한 차례 징험되었다.

“... 이러한 전초로 제가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랍니다.”

어느새 아이 낳기 전만큼 쌩쌩해진 명희가 저의 앞에 모여든 흑의군 사람들 여럿을 돌아보며 말했다. 편한 옷으로 모이라 하였기에, 다들 차림새는 제각각이었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미 이때 불길함을 깨달았어야 했다.)

“여러분 모두 제 부군 임 당수를 따라 먼 길을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풍토가 다르니 반드시 중간에 몸져눕는 일이 생길 것인데, 이때 단번에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짐덩이와 다를 바가 없지요.”

“걱정 마십시오, 아씨. 저희는 지금껏 잔병치레 한 번 해보지 않은 몸입니다.”

여기 서 있는 흑의군들 중 앳된 모습과는 달리 가장 고참인 밤이가 웃으며 답했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오막손이와 노모 봉양하는 양벽은 빠졌으므로, 흑의군의 굵직한 이들 중 밤이 홀로 꺽정이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게는 충분치 않답니다. 여러분에게는 당수요, 제게는 지아비신데, 모시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요.”

“설령 앓아눕는 한이 있더라도 온마음 한데 모아서 임 당수를 따르겠습니다!”

기민한 머리 덕에 몇 달 사이 어지간한 조선 사람보다 조선말을 더 잘하게 된 도키치로 - 일확천금의 기회가 되리라 여기고 선뜻 꺽정이 따라가겠노라 나섰던 것이다 - 가 기운 차게 외쳤다.

“그 마음은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기세와는 별개로, 오로지 평소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만 만병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간 흑의영이 공회에 쓰였으니 그간 단련을 게을리하였을 테고요.”

그제야 흑의군 고참들 눈에, 그들 뒤에 놓여 있는 익숙한 쌀섬이 들어왔다. 영 반갑지 않은 재회였다.

그렇게 눈이 돌아갔다가 원위치에 돌아오니, 그사이 명희의 눈빛에는 어느새 지아비 닮은 살벌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공대하기를 관두겠다. 너희는 오늘부터 출항의 그날까지, 본인의 명에 따라 매일 단련을 할 것이다. 알겠는가?”

“예?”

“‘예’? 그딴 목소리로는 병마는커녕 잡귀도 못 쫓겠다. 다시 묻겠다. 알겠는가?”

박력 있는 목소리 - 명희도 소리를 지르면서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 에 답변이 절로 돌아왔다.

“예! 아씨!”

그리하여 쌀섬 짊어지고 앉았다, 일어났다, 엎드렸다, 도로 일어났다. 저리 달리고 이리 뜀박질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청석골과 아랫말 오르내리며 꺽정이의 조련과 조련 빙자한 두들겨패기를 실컷 당한 바 있던 고참들은 그나마 이 악물고 버텼지만, 신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개중 유독 느릿느릿하고 비실거리는 자가 있어 명희의 눈에 띄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백면서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칼 들고 싸우면 신씨 부인은커녕 오라버니 이이와 겨우 백중세일 듯하였다.

“그만!”

“그만하시랍신다!”

“거기 너! 흑의군은 맞느냐? 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것이냐?”

다른 사람한테 하는 말인 줄 알았는지,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자가 새삼스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몇 번 손짓발짓 허우적대더니, 저의 발로 모래 위에 갑자기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손님 맞이하는 조선 법도요?’

그 서생은 바로 임 당수가 멀리 서쪽으로 배 타고 여행 떠난다는 풍문 듣고 바다를 건너온 천주 사람 이지였다.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모르는 주제에, 조선 사람 행색을 하고서 몰래 제물포를 빠져나와 용케 흑의영까지 왔다가 이런 참변(?)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안사람 시키는 대로 당하고 있었다고?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머리를 어디 구름 속에 따로 떼어두고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군그래.”

엉뚱한 사람이 흑의영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는커녕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기만 했던 녀석들을 한바탕 갈구고 돌아온 꺽정이가 툴툴대었다.

“꺽정아, 너무 그러지 마라. 암본도 다녀올 때도, 또 우리 사업당 분표 낼 때도 우리와 여러모로 엮였던 젊은이다.”

서생의 정체를 듣고 놀란 명희는 곧장 이지를 사업당으로 보냈다. 그 이름 들어 알던 이지함이 그를 맞이하였는데, 지금은 며칠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더랬다.

‘정말 맛있었소, 이 밥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두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땀을 흘린 덕이오. 상무(尙武)의 기풍이 엄준하니 과연 당태종마저 물리친 나라답다 하겠소이다.’

뭔가 팔랑거리기에 살펴본즉, 밥을 모두 먹은 이지가 어디서 또 지필묵을 꿍쳐왔는지 그새 종이 한 장에 이렇게 써서는 흔들고 있었다.

이지함이 내어준 조선 옷으로 갈아입고는, 저의 집에 들어온 양 천연덕스레 이까지 쑤시고 있으니, 꺽정이는 간만에 역지사지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멀쩡한 역관 냅두고 뭐하고 있소?”

“복건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역관들도 알아듣지 못하더라.”

“정말 아무 대책도 없이 왔구만. 거 참.”

이지함과 함께 항해하던 시절 귀동냥으로 대충 배운 조선말로 얼추 오가는 대화 알아들은 이지가, 미리 써둔 듯한 종이 한 장을 또 내보였다.

‘내 임 당수의 서유(西遊) 따라가고자 이리 왔소. 이래 봬도 제법 머리가 비상하니, 책사 둔다 생각하고 데리고 다니면 당나라 스님(현장법사)이 손행자(孫行者, 손오공)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많은 덕을 보실 것이외다.’

그 옛날 모수(毛遂)가 저 자신을 천거할 때도 이렇게 뻔뻔하지는 않았을 듯했다.

“사형, 내 말 좀 옮겨주시오. 손행자가 아니라 제갈공명 할애비라 하더라도 조선말 안 통하면 못 데려간다고.”

또 한 차례 붓질이 오갔다.

“가르쳐주면 성심껏 배워서 배 떠나기 전까지 조선 사람보다 조선말을 더 잘할 자신이 있단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한 번 맡겨보는 건 어떻겠느냐?”

“에휴, 알겠소. 역관이나 하나 붙여두면 족할까.”

“이미 암본 오갈 때 몇 달간 조선말을 들었으니, 가르치면 금방 배울 것이다. 굉보(이지) 이 사람 성에 찰 만큼 총명한 이를 붙여주면, 꺽정이 너 떠나기 전에는 얼추 결실 거두지 않겠느냐.”

그러고 보면 지닌바 재간과 흠결이 이지와 얼추 비슷한 사람이 꺽정이 주변에 하나 있었다.

“잘 되었네. 사형 제자놈 좀 빌립시다. 어차피 역관 데려와도 말을 못 알아듣는다니, 머리 빠릿하기가 비슷한 사람 데려다 앉혀놓는 쪽이 낫겠지.”

그때, 이번에는 돌아가는 말을 잘못 알아들은 이지가 종이 한 장을 또 품속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대체 언제 저렇게 많은 종잇장에 글을 써서 품에 넣어두었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었다.

‘내 임 당수께 좋은 계책 하나를 지금 바쳐, 적어도 뱃삯만큼의 도움은 됨을 보여드리겠소.’

“... 라고 한다.”

‘바닷길 끊기기 전에는 대식국과 파사국까지 우리 대국의 사람들이 서쪽을 오갔고, 그 이후에도 태감 정화가 보선(寶船)을 이끌고 천축 너머까지 갔던 바 있소. 그러니 그곳 나라 사람과 관원들은 아직 우리 대국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오.

임 당수의 신분을 보증하는 글을 우리 조정으로부터 받아온다면, 여기 조선에서 마련하는 것보다 확실히 큰 도움이 되지 않겠소?’

“허... 꺽정아, 할 수만 있다면 아닌 게 아니라 괜찮겠구나.”

꺽정이와 이지함 두 사람도 마침 비슷한 궁리를 하고는 있었다. 다만 대국 조정까지 끌어들일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고, 어떻게 임금을 잘 꼬셔서 글월이나 한 줄 받아볼 심산이었다.

다만 조선은 엄연한 천조의 번국이므로, 제멋대로 꺽정이에게 사절의 자격을 주어 보내거나, 격식을 갖춘 국서를 들려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하면 꼼수를 써서 이것을 피하면서도 그럴듯한 보증을 받아낼 수 있을지를 한참 고민하던 차였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대국 조정으로부터 신원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제법 솔깃하였다. 이미 북경을 한 번 다녀오고, 더구나 조정의 두 실세 서계와 장거정 양측과도 안면 있는 꺽정이다. 그러한 연줄이 있다면, 어떻게든 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이 문제지. 장거정 그이가 우리 민주당 곱게 아니 보는 것 알고 계시지 않소? 더구나 서계 어르신도, 그, 내가 늙은이 대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던지라.”

‘내게는 능히 그리할 수 있는 실로 놀라운 기책(奇策)이 있소이다. 다만 종이의 여백이 부족하여 이를 적지는 않’

정말로 여백이 부족했는지, 마무리도 짓지 못한 채 문장이 툭 끊겨 있었다.

이지함이 사람을 불러 종이 몇 장을 더 가지고 오게 시켰다. 닥나무 농사가 삼남의 연안과 산지 도처에서 흥성하였으므로 요새는 그 정도는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종이가 당도하니 이지가 결연하게 팔짱을 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꺽정이 네가 어찌하겠노라 확답을 주어야 할 것 같다. 데려갈 것이냐, 말 것이냐?”

“허, 이놈이 이 임꺽정이를 잘 모르고 있군그래.”

꺽정이가 심상치 않은 기세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조선말도, 복건 말도 통하는 곳보다 안 통하는 곳이 천하에 더 많지만, 저 주먹만은 만국에 통용되는 것인지라, 이지도 금방 알아들었다.

종잇장을 챙겨와 붓을 놀리니, 제법 그럴듯한 발상이 나왔다.

‘수산 선생께 동쪽 바다의 교역을 모두 거느리시라 발의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외다. 기실 이것만 하여도 임 당수에게 이 사람의 계책이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는 명백하다 하겠소.’

“그건 그때 일이고.”

영락없는 도적놈 심보로 꺽정이가 잡아떼었다. 혹시나 싶어 운을 떠보았던 이지는 본전도 건지지 못한 채 글을 계속 써내려갔다.

‘좌우지간 이 사람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해외 제국(諸國)의 고사(古事)와 동향을 면밀히 살펴왔소.’

대국 조정에서 장차 모든 조세를 하나로 통합하고, 현물 대신 오로지 은으로만 조세를 걷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므로 은값도 크게 뛰었는데, 바로 그 은을 무한정 뽑아내는 듯한 은광이 조선국 사업당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분표 값도 나날이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지가 하라는 과거 공부는 안 하고, 그저 케케묵은 고서나 들춰보고 동네의 늙은 상인들이나 찾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무어라 하는 이는 천주 어디에도 없었다.

‘만랄가국(말라카 술탄국)은 본디 천조에 입조하던 나라였는데, 지난 신미년(1511)에 불랑기(포르투갈) 무리가 쳐들어와 망국(亡國)에 이르고 그 말예(末裔)가 수백 리 떨어진 곳에 유불국(柔佛國, 조호르 술탄국)을 새로 세웠다 하오.

임 당수는 이미 왕직을 토벌한 전력이 있으니, 이제 만랄가로 향하여 불랑기를 꾸짖고 유불국을 달래겠노라 명분을 내세운다면 조정에서도 이를 기쁘게 여길 것이오. 물론 약간의 설득과 재물을 요하는 일이겠지만 말이오.’

“그러니까 조서(詔書) 비슷한 것을 대충 받아낸 다음, 그것을 핑계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다, 그런 말이로군. 제법 마음에 드는데.”

배 한 척, 그것도 아무리 은에 눈이 멀었다지만 어쨌든 같은 포르투갈 사람인 핀투 선장이 모는 배 한 척으로 말라카를 ‘탈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저 말라카로 가서 적당히 타이르는 정도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정말로 조칙을 받들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임꺽정이라는 자가 천자의 이름을 내걸고 다닐 만큼 대단한 사람임을 바다 밖 오랑캐들에게 드러내기만 하면 족할 뿐.

‘만랄가는 어차피 서양으로 가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곳이오. 그곳의 불랑기 태수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상관인 고아의 자사(刺史)에게까지 가야 할 것이고, 그자 역시 괘씸한 짓을 할 것이니 역시 어쩔 수 없이 고아의 불랑기인들과 적대하는 대식국과 파사국 사람들에게까지 찾아가야겠지.’

과연 이어지는 이지의 설명을 보아하니, 그 또한 꺽정이와 비슷하게 괘씸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지함 또한 그저 괴짜인 듯한 이지가 제법 해외 사정에 밝을 뿐 아니라, 권도(權道) 택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음을 보고 제법 감탄하였다.

“다만 만랄가, 그러니까 말라카는 여기서 멀어도 너무 멀지 않소? 느닷없이 우리가 그 나라 위해서 나서겠다고 하면 누구든 의심을 할 텐데.”

이지가 속 편한 표정 지으며 마저 글을 썼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대국 사람들은 대개 나라 바깥의 일에는 무지하여, 소위 배웠다는 자들 중에도 아직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줄 모르는 이들이 있을 지경입니다. 그 정도로 어리석고 꽉 막혔으니, 우리가 속인다 한들 속는 쪽의 잘못이겠지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도적다운 말이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인지 아니면 근묵자흑(近墨者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조선국 임 당수가 서쪽으로 간다는 소문이 포구란 포구마다 파다하니, 어쩌면 그럴듯한 명분이 스스로 찾아올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조금 기다려 보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겠지요.’

설마 그러겠느냐, 꺽정이와 이지함 모두 의심하였는데, 그로부터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지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미 그 무렵에는 이지가 꺽정이와 이이를 반반씩 섞어놓은 뒤 조금 더 묵힌 듯한 작자임이 여실히 밝혀졌으므로, 모두들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것이라 여길 뿐이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기에, 이지도 딱히 무어라 더 말하지는 못하였다.

제 발로 찾아온 명분이란, 느닷없이 찾아온 유구국(류큐)의 젊은 상인이었다.

자신이 유구의 호상(豪商, 거상)인데 사업당 구경을 하고 싶다면서, 설탕과 호초(胡椒, 후추)로 값을 치르고 들어와서는 당당히 저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실은 이 사람이 바로 중산왕(中山王, 류큐 국왕의 칭호) 전하의 다섯째 아들, 환(尙桓, 쇼 칸)이라오.”

그 놀라운 소식을 바로 앞에서 들은 임 당수의 대꾸는 이러하였다.

“그러시구려.”

꺽정이야, 조선국 임금 앞에서는 그 고조할아비 욕도 하는 사람이요, 천자는 숫제 저의 발밑에 두어봤던 사람이므로, 유구국 왕자쯤 찾아오는 것은 그저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 그렇소이다.”

상대가 놀라기를 내심 기대였던 칸 본인이 오히려 머쓱해지고야 말았다.

“임금의 자제분께서 장사 다니시는 건 유구국 풍습이오?”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당연히 흉중에 큰 뜻을 품고 바다를 건너온 것이오!”

그래도 명색이 왕자는 왕자라, 금방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몰래 임 당수를 만나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니, 여기까지 와서 대사(大事)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흠흠, 임 당수께서 장차 서방으로 먼 길 떠나신다는 소식이 남쪽 바다에도 널리 퍼졌소이다.”

왕직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 왕직을 단번에 붙잡은 임꺽정의 이름도 모를 수 없었다.

더구나 이번 항해에 있어서 영 제 발이 저렸던 핀투가, 포르투갈 혼혈이나 말라카 출신 선원들을 죄다 인천에 내려놓고 히라도와 고토에서 새로 선원을 구하고 있었으므로 소문이 금방 류큐까지 퍼진 것이다.

“이 사람이 청하고자 하는 바는 별것 없소. 가시는 길에 복건이나 광동을 거치지 말고, 우리 류큐를 거쳐주시기를 바라오. 사례는 미리 후하게 해드리리다. 지금 제물포에 이 사람이 몰고 온 배에 실린 온갖 재보가 모두 당수의 것이오.”

“이보쇼, 왕자님. 내 당수니 뭐니 하지만 본디 출신은 도적이오. 도적이 되어서 미심쩍은 제안을 걸러내지 못하면 삶을 관두든 도적질을 관두든 해야겠지. 속뜻이 뭐요?”

류큐는 천하 모든 나라를 배로 잇는 나라, 만국진량(萬國津梁)을 자처하곤 했다. 이는 곧 모든 나라가 언제든지 쳐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므로, 류큐 왕족들은 사츠마의 시마즈 씨든 고토의 해적들이든, 저들 앞에서 무례 범하는 이들에 대해 원한은 품을지언정 딱히 볼멘소리는 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시마즈 씨와 고토의 왜구들보다 한참 위에 있는 이 임 당수 앞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젊은 왕자가 잠깐 멈칫하더니, 거한 한숨 한 번과 더불어 저의 사정을 토로하였다.

대명의 해금이 풀리고, 항주와 천주, 광주의 뱃사람과 상인들이 모두 바다로 뛰쳐나오면서 류큐는 실로 곤란한 지경에 처하였다.

사람도, 땅도 턱없이 부족한 류큐가 믿을 수 있는 방패란 오로지 무역으로 얻는 부(富) 뿐이었다. 대국 상인들이 직접 교역에 나선 것은, 지금껏 해금 덕에 가운데에서 교역의 이득을 취하던 류큐에게는 마른하늘 날벼락이요 한겨울 태풍이었다.

그나마 왜구와 시마즈 씨가 용케도 조선의 임 장군 덕에 기가 팍 죽었기에, 유황과 설탕 등을 조선에 좋은 값으로 팔 기회가 열렸다. 류큐가 선대의 번영을 그나마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이 덕분이었다.

“... 이로 인해 국론이 둘로 갈렸소. 한쪽에서는 그나마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사츠마의 시마즈 당과 합의하여, 그 아래로 들어가되 가능한 한 좋은 대우를 보장받자고 하고 있소.”

“부왕(父王)께서는 이미 병이 깊으시오. 내 둘째 형 되시는 구미중성왕자(쿠메나카구스쿠 오우지久米中城王子, 쇼 겐尙元)께서 이대로라면 왕위를 물려받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형님께서는 그러한 주장에 찬동하는 것을 넘어 아예 좌장 노릇을 하고 계신다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일본의 난세였다. 그 불똥이 류큐로 언제 튈지는 알 수 없었으며, 그리고 임 당수의 민주당과 히라도의 자유민주당 역시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그나마 유리할 때 시마즈 씨와 담판 짓자는 쇼 겐의 입장은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왕자님께서는 그 반대쪽이시겠고.”

“그렇소. 나는, 그리고 이 사람을 지지하는 국인(國人)들은 이때야말로 시마즈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보오.”

칸이 솔직하게 저들 나라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지금껏 그의 형제들이나 시마즈 씨의 가신들 등 그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자들은 많았는데, 눈앞의 이자가 보이는 무례함은 어째서인지 불쾌하기는커녕 사람을 편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아마도 그 무례함에 저를 업신여기고 깔보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일 테다.

“우리네가 힘 빌려주기를 바라시오? 미안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바쁜데.”

“아직 나라 안의 부는 충분하오. 국론이 하나로 모이기만 한다면, 굳이 바깥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소. 다만 동래에서 나오는 조총과 내선, 화약 등을 사는 것만은 막지 말아주시오.”

“제값만 낸다면야.”

사츠마의 시마즈 씨 사람들이 듣는다면 안타까움에 가슴을 칠 일이었다.

허나 이제 와서 조선을 해코지하려 했다가는 모리 모토나리가 혈안이 되어 - 이와미 은광에서 갓 나온 은의 값어치가 바다 건너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을 보고 개안(開眼)하였던 것이다 - 먼저 쳐들어올 일이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바는 딱히 없었다.

“우리 쪽에 필요한 것은 단 하나요. 임 당수께서 우리의 국도 슈리(首里)에 찾아와주시기만 하면 되오.”

“말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내 이름을 주인 대신 열심히 팔고 다닐 테지. ‘보아라, 이 어르신께서 부르니 천하의 임꺽정이도 유구국으로 오지 않더냐.’ ‘조선의 민주당이 우리 뒤에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노라.’ 대충 이런 식으로.”

꺽정이가 툭 던지는 말이 왕자의 의표를 찔렀다.

“그, 그것도 맞소.”

“소문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임꺽정이는 이름값을 따로 받는 사람이오. 값을 어찌 부를지는 내 잠시 다른 이들과 함께 의논해본 뒤에 다시 말씀드리겠소.”

조용히 옆에서 듣고 있던 서림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 발짝 나와서는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하, 사업당 서 별감이라 합니다. 그, 괜찮으시다면 이 틈을 타 잠시 장사의 일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류큐에서 나오는 유황과 설탕에 대해 저희 사업당과 아주 유익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듯하온데...”

고개 숙인 서림의 눈빛은 먹잇감 찾은 스라소니와 같았다.

쇼 칸은 ‘제값만 낸다면야’라는 말이 그리도 무섭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서림과 독대하게 된 쇼 칸이 임 당수의 무례함을 그리워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왕자님, 내 벗들과 이야기 나눈 끝에, 이름값을 어찌할지 정하였소. 들어보시겠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임꺽정이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지함과 이이, 그리고 이지였다.

“별것 아닌 일을 청하셨으니, 우리도 별것 요구하진 않겠소. 북경에 사신으로 가 주시오.”

“북경? 그... 저기 대명 천자께서 계시는 그 북경 말씀이시오?”

“그렇소. 가서 번국 유구가 도탄에 빠졌으니, 바라건대 조선국 임꺽정이로 하여금 구원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표문인지 뭣인지만 올리시면 되오.

그리고 거기에 몇 마디 더 보태주시오. 때마침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이 바다 밖에 여럿 있으니, 임꺽정이가 한 번 나간 길에 이곳저곳 훑으면서, 말 통할 법한 놈들은 타이르고 때려부숴야 할 놈은 미리 점찍도록 해 달라. 이렇게 말이오.

번거롭게 사신 여러 번 오갈 것 없도록, 이 사람도 왕자님 따라가도록 하겠소.”

“표문을 쓰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생도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이지가 거들었다.

뒤늦게야, 뭔가 잘못 걸린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이니 저 자신 외에 또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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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몇 번 언급된 말라카 술탄국은 명에 조공(을 빙자한 무역)을 하던 나라였습니다. 1511년 포르투갈의 콩키스타도르 아퐁수 디 알부케르크에게 말라카가 정복당하자, 술탄 마흐무드 샤는 도주하여 명 조정에 구원을 요청했지요. 이에 대해 명은 광동으로 접근하는 포르투갈 선박을 나포하고 교역을 거부하는 정책을 취했지만, 딱히 군사력을 투사하여 말라카 탈환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결국 마흐무드의 아들인 알라우딘 리앗 샤는 말라카 술탄국의 한 지방이었던 말레이 반도 최남단의 조호르에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 조호르 술탄국을 건국하게 됩니다.

류큐는 조선과 그나마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몇 안 되는 국가이자 같은 조공국으로서 조선 지식인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국궁의 주 재료인 물소뿔과 화약의 재료인 유황이 나기도 했고, 또 제주도와 남해를 오가는 어민들이 종종 류큐까지 표류하고, 반대로 류큐의 뱃사람들이 제주도로 표류하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실무적 접촉의 필요성도 적지 않았지요. 16세기 초 중국 사신들이 류큐를 다녀온 뒤 저술한 『사유구록(使琉球錄』이 조선에서 널리 간행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1609년 류큐가 사츠마 번의 침공을 당해 끝내 속국이 된 뒤에도 사츠마가 몰래 중국과 교역하는 창구로서 류큐의 대청 조공은 계속되었는데, 그로 인해 청의 지식인들이나 조선의 연행사들이 류큐인들과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류큐인들은 대체로 상인으로서 실용적인 기풍을 가지고 있었고, 사신이라면 당연히 명승절경을 감상하며 시를 주고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청과 조선의 문인들에게 이는 매우 낯설었던 듯합니다 (구지현. 2016. “청나라 문사의 유구 경험과 조선으로의 유전: 이정원과 유득공을 중심으로.” <연민학지> 25). 작중 류큐의 왕자 쇼 칸이 꺽정이 상대로 그리 기겁하지 않고 저의 용건을 곧장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쇼씨 제 2왕조의 4대 국왕(중산왕)이자 쇼 칸의 아버지인 쇼 세이(尙淸) 왕은 1555년 7월 사망합니다. 그의 사후 계승을 두고 분쟁이 일어났는데, 원 역사의 경우 최후의 승자는 쇼 세이의 둘째 아들 쇼 겐이었습니다. 그는 시마즈 씨와의 우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사절을 보내는 한편, 시마즈 측이 도를 넘는다고 판단될 때는 무력시위를 주저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시마즈와의 외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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