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31화 (131/259)

40. 황금률 (1)

선의로 시작한 일이 더 많은 선의를 만난 끝에 크나큰 악으로 귀결되는 일은 예로부터 드물지 않았다.

고아 종교재판소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 발단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고아와 말라카를 거쳐 동방으로 향하던 중, 선교의 후원자 주앙 3세에게 보낸 서신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비에르는 포르투갈의 동방 교두보에서 수많은 해악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량함에 따라 신앙에 귀의한 옛 이교도들이, 그들보다도 신앙심이 부족한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박해받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은 방탕함과 사악함에 물들고, 새로운 교인들은 보호받기는커녕 에우로파의 기독교인과 현지의 이교도 양쪽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을 목격한 하비에르는, 가감없이 이렇게 글을 써서 보냈다.

“경험이 제게 준 교훈은 이렇습니다. 폐하께서는 인도 땅에 있는 모든 속세의 재물을 긁어모을 힘은 용케 지니고 계시면서, 정작 그리스도의 신앙을 퍼뜨릴 힘은 가지지 못하고 계신 듯합니다.

(...) 저는 지금까지 폐하에 대해 제가 보고하였던 것을 철회하고 또 그렇게 쓴 것을 회개하고픈 지경에 거의 이르렀습니다. 특히, 폐하께서 지금까지 선교를 후원해주심으로써 주님의 법정 앞에 조금은 더 떳떳하게 서실 수 있으리라 하였던 대목이 그러합니다.

(...) 폐하께 가장 진실한 마음을 담아 말씀 올리건대, 만일 제가 이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이 죄짓는 일이 아니라고 저 자신을 털끝만큼이라도 설득할 수 있었더라면 이러한 글을 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비에르가 언급하는 ‘보고’란 곧 교황청과 로마에 머물고 있는 그의 벗 로욜라에게 올라가는 서신을 말했다.

처음 이 서신을 받아본 포르투갈 국왕 주앙 3세는 이 경고를 그리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인도는 머나먼 땅이었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머지 에우로파의 사람들은 그리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왕가의 소득이나 국가의 안녕에 위해가 갈 만큼 중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굳이 손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곧 그 이유가 생겨버렸다. 그 선교사가 정말로 동방에 닿은 뒤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조금씩 전해진 것이다.

하비에르가 동방에 닿을 무렵, 해적들이 하비에르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억류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동방에서 시나 다음으로 강대한 왕국 디오시온의 원수(Mareshal)가 스스로 함대를 이끌고 나타나, 해적들을 무너뜨린 뒤 하비에르를 그들의 도성으로 모시고 갔으며, 그 뒤로 하비에르의 선교에 있어 물심양면으로 모든 도움을 주었다 하였다.

또 다른 소문에 따르면, 그 뒤로 동방박사 카스파르(Caspar)와 사제왕 요한의 후손이었던 타타르의 대족장이, 하비에르가 거하는 곳까지 찾아와 세례를 받았다 하였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족장은 타타르의 땅으로 돌아가, 믿음의 적들을 무너뜨리고 동방에 기독교도의 왕국을 다시 세웠다는 것이었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러한 소문들이 부풀려졌을지언정 아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비에르의 서신을 직접 받아보는 예수회 신부들에 따르면 그러하였다.

그렇게 하비에르의 이름이 교황청 안팎에서 자주 언급될수록, 주앙 3세에게는 수 년 전 그 하비에르가 자신에게 보내온 그 경고의 서한이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급히 명을 내려, 고아와 말라카 등지에서 선량한 개종자들을 보호하고 올바른 신앙을 널리 퍼뜨릴 방책을 구하라 하였다.

왕명을 받은 고아 부왕령의 고위 관료와 성직자들은, 그들끼리 모여 어찌하면 이 훌륭한 방침을 더욱 훌륭하게 보완하고 시행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그렇다면 개종한 현지인과 그렇지 않은 현지인들을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만 개종하고 실제로는 여전히 이교도로 남아 있는 자들을 가려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토의 이단심문과는 사정이 다르지요. 조금 더 강력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그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런 자들은 영적으로도 가장 질 나쁜 무리이거니와, 또 언제 내륙의 다른 이교도 군주들을 위해 첩자 노릇을 할지 모르는 것이니, 미리 솎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근래에 소위 ‘개종한’ 유대인(Converso)들이 상인을 자처하며 이주해오고 있는데, 그들 중에서도 여전히 개심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악덕의 근원이니, 모조리 색출하는 것이 선량한 개종자들을 돕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고아 종교재판소가 설립되고, 이단심문이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탔으며 - 그나마 자비를 베풀어, 화형을 하기 전 목을 매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 부왕령의 힘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힌두교 사원은 철거되었다.

개종하지 않은 자라면 그 누구도 공직에 나설 수 없었으며, 재판에서는 증인이 될 수 없었고, 부모의 재산을 상속할 수도 없었다.

부왕은 직접 함대를 이끌고 남쪽의 실론 섬에 쳐들어가, ‘붓다’라는 악마를 섬기는 사악한 신전을 불태웠다. 그 악마의 이빨이 담겨 있다는 유골함을 전리품으로 챙겨온 부왕은, 고아의 광장에서 그것을 불살랐다.

이처럼 올바른 조치가 널리 시행되니, 이단과 이교도로 인한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질서와 평화가 찾아왔다. 높은 사람들 눈에는 그러하였다.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평화라 부르니 (Ubi solitudinem faciunt, pacem appellant), 옛 로마의 기풍을 물려받았다 할 만하였다.

말라카를 떠난 상 투메 호는, 그 다음 기착지인 고아를 향해 나아갔다.

류큐에서 말라카까지 항해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바람은 순풍 일변도였다.

그러다 하루는, 순풍이 지나쳐 돛이 찢어지고 돛대가 부서질 뻔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풍향은 꾸준히 그들의 등을 떠밀어주고 있었다.

“어차피 고아에서는 좀 오래 머물 계획 아니었소? 그동안 고치면 그만이지, 무어.”

갑판 오가며 뱃사람들이 열심히 그들의 명줄 그 자체인 배를 수선하는 것을 구경하던 꺽정이가 말했다.

고아에서 아프리카 동쪽 해안을 옆에 끼고 희망봉을 도는 것에 비해, 서쪽으로 죽 나아가 홍해로 들어가는 것은 그 거리가 훨씬 짧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준비할 것이 적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해적이나 적대적인 토후와 조우할 경우에 대비하여 대포의 상태를 점검하고, 화약도 여차하면 교체해야 했다. 사람과 배가 자주 오가며 얽히는 곳을 항해하는 것은, 때로는 암초 가득한 얕은 바다나 무풍지대를 항해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 어려울 수 있었다.

“말씀대로입니다. 그때 고쳐야지요. 그 다음에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다만...”

핀투가 말꼬리를 흐렸다.

“다만?”

“아무래도 말라카에서의 일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뭐 걱정할 게 있겠소? 알라우딘 술탄 그 어르신은 제법 수완 좋은 사람인데, 알아서 도시를 잘 장악하겠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산타 루치아 주교님 말입니다. 너무 순순히 그 일을 넘겨주신 듯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고아 부왕령에서 이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계신 듯하기도 했고요.”

그날 주교 앞에서 신성모독적인 언사를 끝내 몇 차례 입 밖으로 낸 뒤, 곧장 주교를 다시 찾아가 저의 마음속 짐을 일부나마 털어놓은 핀투였다.

차마 부에 대한 욕심과, 이미 내지른 거짓말과 허풍에 대한 뒷수습을 위하여 임꺽정을 따른다고는 말할 수 없던 핀투는, 이렇게 합리화를 하곤 했다.

임꺽정은 선량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자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하비에르 신부를 도아 왔으며, 스스로 밝힌 것처럼 임꺽정의 패악질은 결국 올바른 신앙에도 득이 되었다.

그렇다면 의도가 선하지 못하지만 결과는 선한 일에 함께하는 것도 죄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핀투는 임꺽정과 자신에 대해 최대한 좋은 쪽으로 돌려 말하면서 - 고해성사를 하면서 그리하면 안 되는 것은 알았지만, 저도 저의 입을 주체할 수 없었다 - 산타 루치아 주교에게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받을 것이라’ 하는 미묘한 답변. 어떻게 들으면 결과가 선한 만큼 죄도 줄어든다는 뜻이요, 또 다르게 들으면 어쨌든 그 잘못에 맞는 대가 치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이후로 영 석연찮은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핀투였다.

“겪어야 할 탈을 미리 겪지 않으면, 반드시 이자를 덧붙여서 나중에 겪게 되는 법입니다. 당장 우리도 말라카까지 가는 길에 폭풍 한 번 안 만났더니 이번에 돛대가 부러질 뻔하지 않았습니까.”

“하기야, 말라카의 무슬림 노인네들도 하나같이 크리스텐 놈들은 고개 빳빳할수록 더 속이 구려진다고 합디다.”

상 투메 호가 말라카를 떠나기 직전까지, 뭣이 그리 재밌는지 일레르와 사바의 무슬림들을 두루 만나고 다니며 이야기 듣던 이탁오가 거들었다.

“그건 대국이나 조선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고아 외에 우리가 찾아갈 곳도 딱히 없지 않소.”

“그건 또 그렇습니다그려.”

이지는 맞장구치고, 핀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르투갈 배들이 인도의 주변 바다를 장악한 이후로, 인도 바닷가의 모든 왕과 토후들은 화포와 배를 장만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의 놀라운 항해술과 화포술을 받아들여, 이방인들은 물론이요 저의 주변에 있는 다른 경쟁자들 - 방점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찍혀 있었다 - 을 누르고 강성한 세력을 일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고아가 아닌 다른 항구에 함부로 배를 대었다가는, 다시는 출항하지 못할 위험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상 투메 호는 도중에 항로를 바꾸는 일 없이 그대로 실론 섬을 지나 고아로 향했다.

마침내 해가 슬슬 등 뒤로 저물 무렵, 말라카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대읍(大邑)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경이나 한양에는 못 미쳐도, 개성이나 평양과는 제법 자웅 다툴 법한 규모였다. 기우는 햇빛을 맞아, 빼곡하게 성벽 안을 메운 누각의 하얀 벽들이 붉게 빛났다.

“딱히 걱정할 건 없는 듯한데. 저것 보시오.”

그런 번화한 성시(城市)의 한쪽 면을 가득 차지한 포구에, 그들을 환대하는 듯한 행렬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동방에서 오신 귀빈을 환영합니다!”

얼추 보아도 성직자인 사람 하나와, 부왕령의 관료인 듯한 젊은이 하나가 동시에 외쳤다.

“부왕 각하를 대신하여 동 림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프란치스쿠 바레투(Francisco Barreto

)입니다.”

“주님의 천한 종 알레이수 파우상(Aleixo Díaz Falcão)이 동방선교의 후원자인 동 림을 뵙습니다.”

“허, 수고들 많소. 내가 조선국 임꺽정이오. 자, 여기 이게 천자의 칙명인데...”

미리 준비해온 천자의 칙명 - 슬슬 소금기와 손때가 묻고 있었다 -을 꺼내려 하였는데, 바레투가 곧장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그에 대해서도 말라카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고아의 그 누구도 동 림의 신원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려. 그러면 우리가 여기 뭐 하러 왔는지도 들으셨겠소?”

꺽정이가 대놓고 묻자 두 사람이 또 차례로 답하였다.

“물론이지요. 귀빈들께서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그 어떤 불편함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은 날이 늦었으니, 숙소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택 하나를 비워두었습니다.”

개종을 거부하던 현지인들은 모두 추방되었고, 개중에는 굵직한 인물도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고아 시내에는 남는 것이 저택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리하여 해질녘 이국(異國) 풍광을 감상하며, 가마 타고 그 저택으로 향했다. 저녁까지 미리 준비되어 - 입에는 안 맞았지만, 그래도 시장이 밥반찬이었다 - 말라카 떠난 이후 간만에 편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하룻밤‘만’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도키치로가 오만 소란을 다 떨며 안뜰로 뛰쳐들어왔다.

“당수, 당수! 큰일입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그 능글맞은 녀석이 이렇게 호들갑 떨 정도면, 여간 큰일이 아닐 터. 무엇이냐 물었더니, 나오는 답이 놀라웠다.

“핀투 선장이 이곳 화상들에게 붙들려갔습니다!”

꺽정이가 하비에르와 여타 신부들을 ‘화상’이니 ‘스님’이니 부르다 보니, 민주당과 흑의군 사람들 중 말의 뜻에 그리 주의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그대로 저들 우두머리 말버릇을 따르게 되었다. 그들로부터 조선말 배운 도키치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상들에게 붙들려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밤사이에 절간에 들어가서 기생이라도 불렀다더냐?”

“그게 아니라...”

도키치로가 발 동동 구르며 사정을 설명했다.

영 께름칙한 마음을 끝내 떨치지 못한 핀투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두로 향했다. 그 옆에는 잔심부름이나 하며 용돈벌이나 할 심산으로 따라붙은 도키치로도 있었다.

부둣가에 닿은 핀투는, 저택에 초대받지 못하고 그냥 부둣가 아무 여관에서나 잠 청하는 저의 선원들을 깨워서는, 혹시 모르니 얼른 배를 마저 고치고 물자를 서둘러 쟁여두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다 시키고 도로 여기 저택으로 돌아오려던 차, 선장 앞을 가로막는 작자들이 있었습니다. 아, 글쎄, 그 우두머리 면상을 보니 어제 해질녘에 우리네를 맞이하였던 그 파우상 화상이지 뭡니까.”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꺽정이 코골이에 밤을 새다시피 했던 이탁오가 소리 듣고 옆에 다가와서는, 눈 비비며 물었다.

“그들 말로 무어라 몇 마디 하니, 핀투 선장의 안색은 곧장 백지마냥 하얘지고, 두 손은 순순히 오랏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핀투는 잡아가고 네 녀석은 고대로 도망치게 내버려두었단 말이냐? 뭔가 조금 이상한데.”

“오는 길에 보니, 이곳 저택 주변에 따로 포위하는 군사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핀투 선장 한 사람만 잘못을 범한 것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와 직접 낯 붉힐 일 안 만들면서 발목만 잡으려던 심산일 수도 있겠지.”

이탁오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 발목을 잡으려는 것인가? 세 사람이 머리 맞대던 차, 답이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

“동 림께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귀빈들께는 어떤 불편도 없을 것이니 안심하시지요.”

어제 보았던 파우상 화상이었다. 놀랍게도 그 옆에는 대국 사람인 듯한 자가 있었는데, 파우상의 말을 유창한 복건 말로 옮겨주고 있었다.

“다시 인사 올립니다. 주님의 헌신적인 종이자, 고아 종교재판소의 이단심문관인 파우상입니다. 핀투 선장은 이단적인 언행을 방조한 혐의로 지금 우리 재판소의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단적인 언행이라니, 그게 뭔 소리요?”

“종교재판소의 권고에 따라, 부왕령에서는 그 어떤 이교도도 공직을 맡을 수 없음을 최근에 선언했습니다. 말라카에서 벌어진 일은 여기에 위배되며, 따라서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지요.”

“핀투 그 사람은 내 아랫사람이고, 우두머리는 나 임꺽정이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내게 와서 따져물으면 될 일이지, 뭣하러 애먼 사람을 잡아가두는 것이오?”

“통상의 절차에 따라, 이단 혐의로 심문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흔 날에 걸쳐 고백의 기회를 줄 것입니다. 피고인이 이 기간 동안 죄를 고백한다면, 심문을 면할 것이며, 함께 이단을 범한 자나, 이단의 증거를 지닌 이가 먼저 나아와 고변한다면 각각 형벌을 경감해주거나 상응하는 포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단의 증거라. 그것을 노리는 것이겠군요. 우리가 무슨 증거를 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이탁오가 파우상의 속뜻을 금방 간파하고서 따져물었다.

“며칠 전, 본 종교재판소는 예수회에 소속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이름을 빌린 가짜 서신이 핀투 선장의 수중에 있다는 익명의 신고를 받았습니다.

동 림께서는 핀투 선장과 함께 여러 달 동안 항해를 하셨으니, 그 서신의 향방을 아시겠지요? 배에서 서신을 찾아 저희에게 넘겨주신다면 핀투 선장의 형벌 또한 감경될 것입니다. 포르투갈 왕국 및 그 속령으로부터 영구히 추방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겠지요.”

고아의 종교재판소처럼, 지금 꺽정이 일행이 당한 곤경도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하비에르의 위험한 발상이 로마에 그대로 전해진다면, 그로 인한 파란 속에서 선교에 대한 지원이 툭 끊기고 하비에르 본인은 소환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겨우 싹을 티운 동방선교의 씨앗이 그대로 말라죽을 것을 두려워한 산타 루치아 조교가 겨우 생각해낸 방안이 이것이었다.

“그걸로 끝이오?”

“그렇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동 림과 다른 귀빈들께 - 핀투 선장은 명백한 예외지만요 - 어떤 위해도, 또 불편도 가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름 자자한 핀투 선장이 이단심문을 당하였다는 소식이 퍼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직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의지할 구석이 많은 꺽정이와 사업당의 구상에는 큰 차질이 생길 것이었다.

“잊지 마십시오, 동 림. 고백 기간은 사십 일입니다. 그 사이 성문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으시는 한 고아의 모든 사람은, 신앙의 벗으로서 동 림을 대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동 림의 앞을 막지 않을 것이며, 이곳 저택에서의 환대는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호의를 시험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 이만.”

그렇게 파우상은 제멋대로 하직 고하고서 사라졌다.

꺽정이와 이지 두 사람이 생각에 빠져 굳어있는 동안, 도키치로는 벌떡 일어나서는 쭐레쭐레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역시나, 밖에 감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 거 참 대단한 호의로구만. 그나저나 된통 당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안타까워한들 별 소용은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꺽정이가 편하게 뒤로 몸을 눕히며 말했다.

“이제 와서 핀투 그자만큼 쓸만한 선장을 새로 구할 수도 없고.”

“이곳 노름이나 배워볼깝쇼? 도박빚 제대로 씌우면 호구 하나쯤 잡을 수도 있겠지요.”

“아서라. 그러다가 도박 귀신 씐 노름꾼 있다고 고변 당할라. 핀투야, 그놈 없이는 배를 몰 수 없으니 이렇게 구할 방도를 찾고 있지만, 솔직히 네 녀석은 배 모는 데는 쓸모가 없지 않으냐. 굳이 하나만 구한다면 아무래도 핀투겠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 말씀 들으니 충심이 절로 우러나는 것 같습니다.”

꺽정이 마음 사는 데는 그저 굽신거리기만 하는 것보다 때때로 넉살부리는 쪽이 더 효험 있음을 아는 도키치로가 농담으로 빈정거렸다. 그 덕에, 꺽정이와 이지 입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흔 날이나 여유를 주었으니, 파옥을 하기에는 족하다. 그사이에 어떻게 저 화상들 눈길 피해서 항해를 준비하고, 마지막 날 즈음하여 핀투 한 사람만 빼내어 도망치면 그만이지.”

꺽정이가 나름대로 머리 굴린 결과를 내놓았다.

“돌아올 때는 어찌하시려 그러십니까? 제가 해도를 보니 이곳 고아 외에는 주변에 딱히 들릴 만한 곳이 없던데...”

“여차하면 배 버리고서는 말 타고 돌아오지 뭐. 하비에르 어르신이 그러는데, 옛날에 몽고 달단(韃靼, 타타르) 놈들이 그렇게 말 타고 에우로파 언저리까지 쳐들어갔다더라. 그 길 거꾸로 되짚어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렇게 실없는 농담따먹기가 또 몇 순 오갈 무렵. 두 사람 제쳐두고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이탁오가 외쳤다.

“하하! 그렇지! 녀석들, 하하!”

“뭐가 ‘그렇지 녀석들’이오?”

“저놈들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관대한지 알 것도 같다 이겁니다.”

이지가 저의 궁리한 바를 털어놓았다.

주변 사정을 놓고 생각해보면, 고아 부왕령과 종교재판소 있어 꺽정이네는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없었다.

꺽정이 한 사람이 암만 장사라지만, 도시 하나를 고작 그 자신과 한줌 흑의군으로 이겨낼 수는 없을 터. 더구나 말라카에서와 달리 조선이나 대명과의 교역에 명줄 달린 이들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당장 바깥에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순순히 오라 받으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앙의 벗이니 호의니 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네 체면을 살려주면서 동시에 우리를 정중히 쫓아내려 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잘못하여 하비에르 신부께 해가 가게 되면 곤란하니까요.”

이미 한껏 그 명성이 높아진 하비에르다. 문제의 서신이 로마에 닿게 된 뒤라면 모를까, 적어도 지금은 로마의 어지간한 성직자들은 모두 그를 주님의 훌륭한 종이자 뛰어난 선교사로 알고 있을 터.

이곳 고아에서 동 림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그런 하비에르가, 또 기껏 생긴 동방의 신도들이 박해받게 된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그냥 우리를 살인멸구하면 될 일 아닌가?”

“영 수틀리면 그렇게 하겠지요.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라는 것일 테고요.”

이미 말라카까지 동양인들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조호르의 술탄을 따라, 지금껏 조호르 라마에서 근근이 교역하던 시나 상인들이 말라카를 오가게 된다면, 말이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뭐,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요. 우리네 호의 시험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우리가 손 하나 까딱하자마자 달려와 우리를 가차 없이 휙 죽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영 신뢰가 가지 않는 한 마디를 끝내 덧붙이는 이탁오였다. 허나 순간 질색하는 낯빛 드러내는 도키치로와 달리, 꺽정이는 도적답게 흐흐 웃었다.

“하지 말라는 건 꼭 해보고 싶기 마련이지. 호의 시험하지 말라 하였으니, 우리 성정에 그 꼭 시험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흐흐.”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 선장 잃은 배 한 척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은 최대한 써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 장점 중 하나는, 그들이 무슨 귀족의 자제인 줄로 아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꺽정이 패거리는 도둑놈 또는 그에 준하는 자들 뿐이라는 점이었다.

도둑놈이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뻔뻔한 짓을 못할까. 해 뜰 무렵 시작된 궁리는 그 해가 중천에 닿을 무렵 얼추 윤곽이 잡혔다.

이튿날 아침. 페르낭 멘데스 핀투의 이단 혐의가 포고되고, 물증을 지니고 있거나 증언을 할 자가 있다면 언제든 종교재판소로 찾아오라는 내용의 공고문이 광장에 붙을 무렵.

그 종교재판소 앞에 이탁오가 섰다. 옆에는 꺽정이와 흑의군이 죽 늘어섰고, 종교재판소의 끄나풀들은 무리 지은 이방인들을 경계하느라 저들의 정체 들통나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포르투갈 말도 틈틈이 배워놓았지요.”

“나는 그냥 항해하는 내내 심심해서 소일거리로 배우는 줄 알았는데.”

“뭐, 그것도 있었습니다.”

“하여간 머리 좋은 사람은 좋겠소. 그래서, 놈들 눈길 확 끌 만한 그런 논변은 준비했소?”

“소생이 이 말을 꺼내는 순간, 이곳 고아의 모든 판관들은 이 논변 반박할 궁리를 하느라 핀투 한 사람은 까맣게 잊게 될 것입니다.”

이탁오가 짓궂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하비에르 신부께서 처음 조선국 조정 닿으실 때 하신 말씀이 있다지요?”

“그렇지. 나도 거기 조금 거들었소.”

하비에르가 듣는다면, ‘그게 자랑이오?’ 하고 한 소리 할 법한 말을 당당히 꺼내는 꺽정이었다.

“천주교 경전에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과 상통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 뜻은 사실 조금 다릅디다.

야소자(耶蘇子, 예수) 가라사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할지니라. 그러니 우리 또한 하비에르 신부께서 하신 대로 저들에게 베풀어줌이 마땅하겠지요.”

제멋에 겨워 사설을 먼저 늘어놓던 이탁오가, 마침내 목청을 가다듬고 포르투갈 말로 외쳤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것은 헛소리다!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모두 태양을 돈다! 그렇지 않다고 어디 경전에 나와 있다면, 그 경전이 잘못된 것이다!”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느냐며 뛰쳐나온 이들이, 곧 지금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자의 얼굴과, 그가 내뱉은 말의 의미심장함을 깨닫고 곧장 저들 나온 문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단심문관들, 성직자들 등등이 이탁오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소란 속에서 이탁오가 끝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희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래도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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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인용된, 주앙 3세에게 보내는 하비에르의 서한은 실제로 그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보낸 서한을 발췌하여 옮긴 것입니다 (Conrod, 2012. “From the Roman Baroque to the Indian Jungle: Francis Xavier’s Letters from Goa, or the Construction of a God.” Laberinto Journal 6, p.98에서 재인용). 막 설립되어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 동방선교를 후원해준 주앙 3세에게 그런 서한을 보낸 것을 보면, 하비에르에게는 작중에서 그의 숙적(?)으로 등장한 조식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던 듯합니다.

다만 하비에르의 이러한 서한이 이미 17세기에도 그 악명이 자자했던 고아 종교재판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데는 - 작중에서와 달리 -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설령 하비에르의 서한이 명분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종교재판소 설립을 주도하고 가혹한 탄압을 가능케 했던 것은 하비에르가 아니라 고아 부왕령의 관헌과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종교재판과 이단심문의 잔혹성은 후대에 부풀려진 면이 없지 않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단심문의 ‘원조’ 격인 이베리아 반도의 종교재판에서 사형이나 잔혹한 고문의 대상이 된 ‘심각한’ 이단 고발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다만 비록 드물었다지만 실제로 화형과 같은 극형이 구형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고, 그 집행은 공개된 장소에서, 또 대중 앞에서 벌어졌기에, 당대와 후대에 걸쳐 ‘잔혹한’ 종교재판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형성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단심문의 잔혹성은, 당시 유럽의 사회와 정치에 내재되어 있던 잔혹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온건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대에 볼테르가 『관용론』을 통해 통렬히 비판한 것처럼, 다른 종교 또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에 대한 폭력과 불관용은 카톨릭 성직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그것을 발휘해야 할 수요가 있을 때면 언제든 표출되곤 하였습니다.

이베리아 국가들이 전세계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설치된 여러 종교재판소 중 유독 고아 종교재판소가 잔혹한 종교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던 것은, 비교적 빠르게 동화가 이루어진 아메리카 대륙에서와 달리 이교도의 존재가 보다 확연하고 구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파냐에서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역시 자국 내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했고, 개종한 이후에도 그들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무형의 탄압과 차별을 피해 이러한 유대인 개종자들 중 상당수는 고아와 같은 해외 식민지로 이주하곤 했는데, 이는 다시 당국의 경계를 불러왔습니다. 더구나 고아 부왕령은 소수의 포르투갈인들이 절대 다수의 인도 현지인들을 지배하는 구조였고, 알부케르크에 의해 정복된 직후부터 현지 세력들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과 힌두교도들은 고아 부왕령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고, 결국 1560년 고아 현지로부터의 청원에 의해 종교재판소의 설립이 인가됩니다. 작중 언급된 각종 탄압조치들은 실제로 종교재판소 설립 이후에 시행되었으며, 실론 섬에 보관되고 있던 진신사리 중 일부가 파괴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1561년부터 1774년 사이에 고아 종교재판소에 기소된 사람의 수는 총 16,172명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화형이 선고된 경우는 그중 105건에 불과했고, 그 외 다른 실형이 선고된 것도 4천여 건 정도였습니다. 이는 포르투갈 본토의 종교재판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까지 가혹하다고 보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고아 종교재판의 악명은 가혹한 형벌보다는 종교적 불관용과 강압적인 차별정책에서 말미암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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