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황금률 (2)
종교재판소의 주된 무기는 기습과 공포일 뿐, 학술토론은 아니었다.
“지구와 행성들이 태양을 돈다니, 그 무슨 말인가?”
“이곳의 이교도 학자들 중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이가 있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광장의 소란을 듣고 뛰쳐나온 신부와 수사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아니, 그자들은 다섯 행성들만 태양을 돈다고 주장하고 있더랬소. 태양과 달은 지구를 돌고.”
“근래 알프스 이북의 몇몇 학자들이 비슷한 가설을 언급했다고도 하였는데... 이름이 코르넬리우스였던가?”
“코페르니쿠스일 겁니다. 아마도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그것도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가정하고’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는 새로운 기법을 제시한 데 불과했습니다.”
‘동방의 로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성직자들이 많은 고아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학을 나온 지성인들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여러 해 전 고아를 거쳐 동쪽으로 향한 하비에르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은 이들의 전공이 아니었다.
“여러분, 지금 그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흠흠, 그렇지.”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괜찮았다. 그것이 주장으로 끝나는 한, 비웃음을 살지언정 그 외에 다른 해악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장을 펼치면서, 동시에 나머지는 틀렸다고 말한다면, 심지어 그 주제가 다른 것도 아니요, 바로 창조주의 불변하는 섭리와 맞닿은 천체의 운동에 관한 것이라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저 ‘그 경전이 틀린 것이다’ 운운하는 소리도 - 차마 떠올리기도 싫은 생각이었지만 - 억지에 억지를 거듭하여 밀어붙이면,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의 싸움에서 해와 달을 멈추는 기적을 보였다는 것도 거짓이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던가.
이처럼 중대한 일이었으니, 반드시 대응하여야만 했다. 눈앞의 동양인이 이단심문관 파우상이 맡은 사건의 관계자임을 알아본 몇몇이, 역시 함께 뛰쳐나온 파우상 본인에게 곁눈질을 하였다.
“동 림의 동료분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계시는지요?”
파우상이 헛기침 한 번 하고 다가가 말을 붙였다.
“소란이 아니라, 그대들이 무지몽매하여 사리분별을 못 하기에 깨우치고 있는 것이오.”
딱히 그럴 마음 없을 때도 사람 속 긁는 데 일가견 있던 이탁오가 작정하고 집적거리니, 파우상의 평정심은 말 한 마디 들을 때마다 깎여나갔다.
“건곤(乾坤)의 이치가 명백하니,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오. 이는 『역』에도 나와 있소이다.
주공께서 『역』을 지으시고 오백 년이 지나 우리 공부자(孔夫子)께서 다시 전(傳)을 지으신바 세상의 문명한 이들이 이를 깨달은 지도 이천 년을 넘겼는데, 유독 그대들 서방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있으니 한 사람의 선비로서 어찌 가르치지 않고 지나칠 수 있겠소?”
“이 지구 위에는 다양한 민족과 배움이 있고, 비록 옳고 그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논증 없이 함부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어찌 스스로 옳고 나머지는 틀렸노라 공언하는 것입니까?”
“함부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그대들은 함부로 우열을 가리고 다니던데? 저기 뒤에 있는 종교재판소가 바로 그것 위해 만든 관청 아니던가?”
“그것은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신앙의 옳고 그름은 세속의 학문과 같이 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들이 믿을 뿐이지. 중원의 배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대들도 오랑캐에 지나지 않고, 그대들이 진리라 내세우는 것도 그저 배움의 한 갈래에 지나지 않소.
정녕 그대들이 내 말에 반박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들 믿는 바가 유일하고도 항상 참된 것임을 내게 보여보시오. 그리하면 내 말을 거두리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파우상에게 저 거만한 이방인과의 대화에 대해 들은 다른 성직자들도 하나같이 분개하면서, 논리로써 이교도를 설복시키고야 말겠노라 다짐하였다.
지구상의 만물은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고, 이들이 각각 지닌 성질에 의하여 세상의 모든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지구는 불변하는 천구(天球)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항상 변화하는 영역, 인간이 머물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 지구라면, 저 하늘 바깥은 오직 영원불변하는 에테르(Aether)의 세계였다.
이는 이교도 학자들이 처음 제시하고, 이어서 믿음을 지닌 위대한 선학(先學)들이 완벽에 가깝게 가다듬은 자연철학의 이치였다.
이것을 차근차근 설명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이교도라도 그 합리성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겠는가?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였다.
“반드시 그를 설복시켜야 하오! 고아의 모든 믿음의 형제들이 이 일에 몰두하는 한이 있더라도!”
파우상이 외쳤다.
“옳습니다!”
“당장 천문학과 자연철학에 대한 모든 서적을 모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비슷한 선례가 있는지, 기록을 모두 뒤지도록 하겠소.”
그때, 신고를 받고 급히 달려온 부왕의 오른팔 바레투가 파우상을 발견하고서는, 다른 신부들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동 림의 동료 중 하나가, 우리에게 시험을 제시하였습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진지하게 저자를 상대하실 생각이십니까?”
파우상은 답변하는 대신, 바레투를 데리고 재판소 안쪽 구석으로 슬며시 들어갔다.
“저희로서는, 제대로 상대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합니다. 타고(탁오)인지 타코인지 하는 그 불신자가 저희 종교재판소를 공공연히 거론하였지 않습니까?”
“명예의 문제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명예도 명예지만, 바로 우리 종교재판소의 권위가 달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
그제야 바레투도 이해하였다.
종교재판소는 이단을 가려내고, 그들이 올바른 믿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그런 종교재판소가, 정면에서 그들의 권위에 도전한 자를 방치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종교재판소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수모였다.
“오히려 저희 쪽에서 부왕 각하께 협조를 요청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논쟁에 종교재판소의 사람들이 모두 동원되는 동안, 이단 혐의가 있는 현지인 이교도들을 관리하는 일을 누군가 맡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 알겠습니다.”
바레투가 마지못해 응낙하였다.
한편, 종교재판소의 벽 반대편에서는, 이탁오와 꺽정이 두 사람이 헤벌쭉 웃고 있었다. 저 서양 중들이, 그 자리에서 병사를 모아 자신들을 해코지하는 대신, 저들끼리 뭉쳐서 논쟁을 이겨보자고 다짐하는 것을 뻔히 보았던 것이다.
“흐흐, 제법 제대로 논쟁을 해보려는 모양이로군그래.”
“어깃장 놓는 데는 자신 있으니, 당수께서는 걱정 마시지요.”
“앞으로 남은 한 달여 동안 준비할 일이 널리고 널렸으니, 걱정할 여력은 없을 듯하오.”
도적의 눈으로 종교재판소와 주변을 흩어보며 꺽정이가 말했다.
종교재판의 통상적인 절차는 이러하였다. 먼저, 페르낭 멘데스 핀투에게 그랬던 것처럼, 처음 죄인이 체포된 뒤 사십 일간의 자수 기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죄인에 대해서는 심문이 이어졌다.
기소된 죄인이 심문 끝에 죄를 인정하게 되면, 그에게는 참회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를 ‘신앙의 실천(auto-da-fé)’이라 부르곤 했다.
신앙의 실천 전날, 죄인이 회개하기를,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에게 용서 있기를 기원하는 철야기도회가 광장에서 열렸다. 동이 트면 미사를 바치고, 이어서 함께 기도 올린 모든 시민을 위하여 풍성한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그렇게 모두가 배불리 육신의 허기를 달래면, 비로소 죄인이 그의 죄를 드러내는 우스꽝스러운 복식을 한 채로 광장에 나타난다.
높은 단상 위에서, 종교재판소의 성직자들은 최종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죄인은 그토록 자비로운 판결 - 실제로 자비로운지와는 별개로 - 을 내려준 데 감사하며 무릎 꿇고 저의 죄를 참회한다. 이어서 죄인은 회개를 위하여 기꺼이 수난을 ‘자청’한다.
이때 그 죄질에 따라 참회의 방법은 다양하였다. 때로는 채찍질이 선고되기도 하고, 여타 고통스러운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였으며, 가장 악질의 경우 - 예컨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간악한 이단 - 화형이 언도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종교재판소 앞 광장에는 구경꾼도 있고 이단심문관도 있었지만 신앙의 실천은 아주 엉뚱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이처럼 주전원(周轉圓, epicycle)에 따라 행성이 큰 원을 따라 움직이면서 동시에 작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도 하므로, 지구에서 보았을 때 종종 행성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대학 시절에 배운 천문학이 전부였던 성직자들이었다. 며칠간 밤새 학창시절 하였던 - 또는 못했던 - 공부를 다시 하였으므로, 다들 눈이 퀭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애써 준비한 설명은, 아주 성의 없는 질문 한 번에 힘을 잃곤 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그런데 꼭 그렇다는 증거는 어디 있소?”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교도 철학자들이 언급한 바이며, 우리 에우로파의 훌륭한 학자들이 근래에 관측으로써 증명하고 또 보완한 것입니다.”
“아니지. 그들은 그저 하늘의 별이 운행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지 않소? 지구가 움직이고 나머지 행성들도 몇몇은 지구보다 빠르게, 또 몇몇은 느리게 움직인다고 해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현상이오.”
“지구는 그렇게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둔중합니다. 에테르로 이루어진 천구와 나머지 네 원소로 이루어진 지구의 움직임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대들의 학설일 뿐이지. 만물이 기(氣)로 이루어진 채 같은 리(理)를 따른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소? 그대들만 맞고 우리 중원의 학자들은 틀렸다는 증거를 대 보시오.”
이단심문관들이 무엇을 가져오든, 눈앞의 이탁오가 이단임을 증명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지금껏 믿어왔던 진리가 사실은 그렇게까지 불변하는 진리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심만 늘어났다.
적어도, 이단심문관들과 동양의 학자들이 광장에서 벌이는 이 토론을 구경하는 이들 눈에는 그러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동양인이 시답잖은 말꼬리만 잡는다고 여겼던 고아 사람들은, 그것이 이틀째가 되고 사흘째가 되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저 시나 사람 말대로, 증거를 대면 되는 일 아닌가?’
‘어째서 저렇게 많은 훌륭한 이들이 그 결정적인 증거 하나를 내놓지 못한다는 말인가?’
사람의 심리를 읽는 것을 그 업으로 삼는 이단심문관들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말은 빨라졌다.
종교재판소에는 죄인 대신 서책만 드나들었고, 고아를 드나드는 이교도들뿐 아니라 동 림과 그 동료들까지 감시하는 일을 그대로 떠맡게 된 부왕령의 관헌들도 덩달아 입에서 하품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보시오! 부둣가에 도박 귀신 쓰인 듯한 이교도가 있소! 저의 용모를 대가로 악마로부터 노름 재주를 받은 것이 틀림 없소!”
“선장 나리,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이단심문관 분들께서 모두 바쁘신지라... 다음에 오시거나, 차라리 치안관(ouvidor) 나리께 찾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귀신이 아니라 그냥 사기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 치안관 나리들께서도 이교도들과 드잡이질하느라 모두 바빠서, 나 같은 뱃놈 사정은 아니 들으시더이다! 이단심문관이 이단을 안 잡고 무얼 하는 게요?”
“다들 바쁘시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만 돌아가시지요.”
그 선장은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원숭이 닮은 동양인에게 노름빚을 지게 되었는데, 빚을 변제하는 대가로 계획보다 며칠 일찍 닻을 올리라는 기묘한 요구를 받았더랬다.
그러나 암만 하소연해도 저의 말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불평 가득한 선원들에게 삯 얹어줄 것을 약속하며, 예정보다 보름이나 일찍 닻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상하긴 하군그래. 그렇게나 신앙심도, 학식도 깊으신 분들께서 이교도 하나를 설득을 못 시켜서 이렇게 끙끙대고 있으시다니.”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우리는 그냥 여기 재판소 지키면서 봉급이나 받으면 그만이지... 엇, 동 림 아니십니까, 헤헤.”
재판소 지키던 병사들 앞에, 우람한 팔뚝과 두둑한 주머니를 드러내며 이제는 익숙한 거한 하나가 나타났다.
“어이, 수고들 많군그래. 오늘도 왔네.”
“아이고, 들어가시지요. 핀투 선장에게는 늘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대접을 하고 있습죠. 동 림처럼 훌륭하신 신사분과 어울리는 사람 중이라면야, 정말로 이단일 리 없을 테지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관두게. 자, 여기 받으시게들.”
처음 한양을 떠날 때도 제법 두둑하게 금은을 챙겨왔지만, 이왕 생색낼 것이라면 남의 재물이 낫지 않은가. 엊그제 도키치로 녀석이 한가득 따온 것을 빼앗아 - 물론 도키치로도 적당히 딴주머니 차려서 그쪽에도 챙겨두었기에, 그렇게까지 불만 품지는 않았다 - 이렇게 흩뿌리고 있었다.
병사들도 군말없이 은화 챙겨넣고는 감옥 문을 열었다.
첫날, 그러니까 광장 앞에 그 ‘타고스’라는 학자가 나타나 이단심문관들에게 도전장 던진 날 저녁에 처음 찾아온 ‘동 코우지오니스 림’은, 저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아주 상냥하게 대해주었는데, 어찌나 그 솜씨가 좋은지 그 뒤로 그 누구도 동 림을 막지 못했다.
그저 때리고 던지기만 했다면 누군가는 원한 품고 다른 데 알렸겠지만, 그렇게 줘팬 뒤 매맞은 값을 눈 돌아갈 만큼 후하게 주었으므로 오히려 다들 좋다며 동 림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병사들도 이단심문의 무서움은 알았으므로, 그들 중 한 명을 우두머리로 내세워 이 일을 보고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한없이 바빴던 이단심문관들 중 그 누구도 병사들의 보고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암만 방침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알아서 감시하고, 정말로 수상한 일을 할 때만 찾아와라’ 하는 퉁명스러운 답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으므로, 이제는 다들 좋은 게 좋은 것이려니 여기며 이렇게 동 림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병사들은 일곱 대죄(大罪) 중 나태와 탐욕을 동시에 달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보름이 더 지났다.
핏줄 선 눈을 비비며 오늘도 광장으로 향하는 이단심문관 파우상을 바레투가 가로막았다.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동 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타고스 박사의 언변도 심상치 않소. 그자 말에 따르면, 시나와 디오시온에서는 자신처럼 언변과 문장에 능한 자들만 골라서 행정관으로 삼는다는데, 여간 끔찍한 일이 아니외다. 그와 같은 자들로 우글거리는 나라라니!”
이제는 한탄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가볍게 자조하며 파우상이 걸음을 재촉하려던 차.
“핀투 선장의 심문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요?”
“그것은 이단심문소 소관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대로라면 한 해가 다 가도 동 림을 동쪽으로 돌려보낼 수 없을 듯하니 여쭤보는 것이지요. 계속 소득 없이 이렇게 언쟁만 이어간다면, 저희 역시 강제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제력이라면, 즉 고아 부왕 휘하의 군대를 동원하여 동 림과 타고스를 체포하여 본국으로 압송하든 처형하든 하고, 그 배는 압류하는 것을 의미할 테다.
“그렇지만... 동방선교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을 계속 이곳에 두면서 생기는 위험도 있지요. 가뜩이나 저들 동양인들이 수상한 짓을 하면서 고아 곳곳을 누빈다는 보고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인력이 부족해서 더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인력이 부족하다’ 하는 대목에서 파우상을 유달리 원망스레 바라보는 바레투였다.
“하하, 그 고민 내가 해결해주겠소!”
두 사람이 고개 돌려보니, 동 림과 타고스였다.
“얼마 전에 배 한 척이 예정보다 보름쯤 일찍 말라카로 떠난 일이 있었을 게요.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배에는 편지 두 통이 실려 있었다오. 하나는 우리 조선국 임금께 올리는 것이었지. 내가 만약 기한 안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해코지당한 것이니 나라 안의 모든 포르투갈 사람과 그들의 도 따르는 교인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라고 말이오.
다른 하나는, 대국 천자께 올리는 글이었소. 말라카에 천자의 봉신인 술탄이 돌아가 거하게 되었는데, 장차 포르투갈인들이 그를 해코지할 수도 있으니 부디 잘 보아주시라. 그렇게 보냈다오.”
당연히 그런 편지는 없었다. 허나 도박 빚 뒤집어쓴 선장의 배 한 척이 급히 부두를 떠난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몰래 동양인들을 체포하면 동방선교에 불똥 튀지 않게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뿌리를 끊어버렸으므로, 바레투와 파우상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기는 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끝내 반쯤 단념한 바레투가 물었다.
“말라카의 술탄이 개종하지 않고 시장 자리 앉는 것을 인정해주시오. 핀투 선장도 당연히 석방해주시고. 이왕이면 그간 미안했다면서 짭짤하게 보상해주는 것도 좋겠군. 뭐, 거기까지 바라면 도둑놈 심보가 좀 과한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오.”
“불가한 일입니다. 이교도가 공직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은 본 종교재판소의 확고한 방침입니다.
다시 한 번 청하겠습니다. 핀투 선장이 위조했다고 추정되는, 하비에르 신부의 서신을 본 재판소에 넘기십시오. 그리고 여기 타고스 박사께서는 이전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십시오.”
향시 통과한 이탁오의 수재(秀才) 칭호가 어쩌다 보니 박사(Doutor)가 되었는데, 그 어감 좋다 여기는 이탁오는 이를 굳이 고쳐주지 않고 있었다.
“싫소.”
“싫습니다.”
두 동양인이 동시에 대꾸했다.
“그러면... 오늘도 이 지루한 대치를 이어가는 수밖에요.”
파우상 입에서 며칠 전에 마른 줄 알았던 한숨이 푹 나왔다. 파우상에 비하면 그나마 동양인들에게 덜 시달렸던 바레투는 꺽정이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잊지 마십시오, 동 림. 설령 배를 어떻게든 띄워 이곳 항구를 벗어나신다 한들, 말라카부터 상 세바스티앙(모잠비크 섬)까지, 일대의 바다에는 우리의 주군이신 주앙 3세의 손이 뻗어 있지요.
그러니 동 림께서 이곳 고아를 벗어나 에우로파로 향하시든,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든, 반드시 우리와 타협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하하! 날 겁박하는 것이오? 그러면 나도 겁박 한 번 하겠소. 보름 뒤까지 지금 내 제안에 대해 확답을 주시오. 그러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만들어드리겠소.”
꺽정이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그렇게 또 보름이 지났다.
바레투는 모자란 인력을 쪼개어, 상 투메 호의 선원들이 항해에 필요한 물자를 사들이지 못하도록 막으라 하였다.
비록 화약을 보충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물과 식량은 언제든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지 충분히 마련해두지 않았던 듯했다. 바레투의 부하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령 어떻게든 그들의 방해를 뚫고 상 투메 호가 출항한다 하더라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할 터였다.
희망봉은커녕 상 세바스티앙까지 가기도 전에 식량이 동날 테니, 동 림이 여간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험은 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슬슬 동 림도 현실을 깨닫고 타협에 응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종교재판소 앞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논쟁에 한쪽 귀를 기울이는 바레투였다.
구경꾼들은 처음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아예 없어지지도 않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토록 고매하시고 훌륭하신 성직자들께서 이교도 박사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즐기는 고약한 무뢰한들도 많다고 했다.
“... 하여, 그대들이 오늘 내세운 논변도 그 자체로 참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오. 그런 말로써 나는 옳고 너희는 그르다 단언해 왔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구려.”
아리스토텔레스를 들고 와도, 『알마게스트(Almagest)』와 같은 천문학의 고전을 꺼내와도 반응은 똑같았다.
마침내 참다 못한 파우상이 언성을 높혔다.
“지난 한 달간 그대는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 의심만을 제기하였을 뿐이오! 스스로 어떤 진리를 입증하려는 노력은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지!
그대야말로 먼저 말해보시오. 어찌하여 그대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돈다고 그토록 단언하는 것이오? 무엇을 근거로 나머지는 모두 틀렸노라 공언하는 것이오? 말해보란 말이오!”
그러나 타고스는 그 사람 속 긁는 미소를 버리지 않은 채 능글맞게 답했다.
“사실 증거는 없소. 『주역』에 나온 글귀를 해석한 것을 듣고, 그것이 이치에 닿다 여겼을 뿐이지. 그런데 말이오, 이제 보니 그건 그대들도 마찬가지인 듯하구려?”
“무어라? 지금 무어라 하셨소?”
“일찍이 조선의 화담 선생은 말하였소. ‘내가 스스로 천하의 사리를 궁구하니 비로소 천하 가운데 내가 있노라.’
일찍이 하비에르 신부가 조선국에 찾아와 이 땅의 형상이 둥글다 하였을 때, 우리는 이를 증험하기 위하여 먼 바다까지 항해하였소. 그리고 두 눈으로 보아 비로소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었지.
이러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는 옳고, 『주역』은 틀렸다고 그 누가, 또 무엇으로써 단언할 수 있겠소?”
이탁오가 벌떡 일어났다. 파우상 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종교재판소 전체를 한눈에 담는 듯했다. 그가 눈앞의 거대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로는 종교재판소 옆 담장을 응시하는 것이었으나, 주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이탁오 따라 눈길 돌렸더라면, 담장 넘어가는 인영 여럿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대들은 천하의 이치를 말하면서도, 그 이치가 어찌하여 참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소. 동방에만 있는 병통으로 알았건만, 이제 보니 어디를 가든 우활하고 오만한 무리는 있는 모양이외다.
허나 그 병통의 깊고 얕음을 따진다면, 그대들이 더 심하다 하겠소. 그저 자신이 옳다는 눈먼 믿음만으로 스스로 거룩하고 참되다 일컬을 뿐이지 않소? 그리고 나머지는 그르다 단정하며, 눈앞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티끌만을 지적할 뿐이지.
자, 이제 내가 그대들 경전에서 한 구절 인용하겠소.”
이탁오가 두 팔 쭉 뻗어, 종교재판소를 가리켰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
그리고 폭음이 광장에 울렸다.
“이 어찌 된 일인가!”
“폭발! 폭발이다!”
돌 부서지며 잔뜩 일어난 먼지가 곧 걷혔다. 이탁오의 단언과 달리, 실제로는 돌 위에 돌 여럿이 아주 멀쩡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감옥 한쪽만은 성하지 못하였다. 상 투메 호로 간 줄 알았던 화약은 그대로 종교재판소 담장으로 옮겨지고 있었고, 핀투를 면회하는 줄 알았던 동 림은 대충 어디쯤을 부숴야 핀투를 꺼낼 수 있을지 눈대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옥이... 감옥의 벽이 부서졌습니다!”
“죄인들이 달아난다!”
“모두 붙잡아라! 동양인들을 붙잡아라! 당장!”
그러나 모두의 이목이 종교재판소에 쏠리자마자 이탁오는 쏜살같이 도망쳤으므로, 그 누구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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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라는 지리적 중심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였던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땅이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처럼, 불변하고 완벽한 천상계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신학적인 관념에 얽매일 수밖에 없던 유럽인들은 지동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하던 16세기 중반의 기술로는 지동설을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육안관측의 ‘끝판왕’이었다고 할 수 있을 티코 브라헤조차 천동설을 기각하지 못했던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17세기 초, 망원경의 등장으로 지구 대신 다른 천체를 공전하는 천체들(갈릴레오 위성)이 발견되고, 천동설 모델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금성의 위상변화가 관측된 뒤에야 지동설은 실증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지요. 지동설의 가장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연주시차는 1838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관측되었습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는 실증적 증거 대신 관념의 차원에서 지동설을 주장해야 했습니다. 특히 그가 내세운 강력한 근거는, 관측을 통한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바로 완벽한 천상계에서는 등속원운동만 있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념이었지요. 지구와 다른 행성의 공전주기 차이 및 타원궤도로 인한 각 행성의 겉보기 운동속도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천동설은 주전원을 비롯해 각종 보조적인 모델을 제시해야 했는데, 그 결과 행성의 궤도가 ‘완벽한’ 원과는 한참 멀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비롯한 모든 행성이 완벽한 원궤도를 그리는 지동설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록 보기에 좋을지언정 현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천동설보다 더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즉 초기 버전의 코페르니쿠스 모델은, 통념과 달리 신학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언정 천문학적으로는 딱히 더 낫다고 보기 어려운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일컬어 세간의 관심을 끌고자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는 돌팔이 점성술사라고 비난한 것도 나름의 맥락이 있는 셈이지요.
한편, 육안관측이 점차 정교해지고 관측 데이터가 쌓이면서,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의 한계도 점차 명백해졌습니다. 근세에 들어설 무렵에는 지동설 외에도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각종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소위 티코 브라헤 모델로 지칭되는 천지동설(geoheliocentrism), 즉 달과 태양은 지구를 공전하고, 나머지 모든 행성은 태양을 공전하는 모델은 그중 하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론적 시도는 유럽보다 인도, 그것도 고아 바로 남쪽에 위치한 케랄라-후추의 주요 산지였기에 고아와의 교류도 활발했습니다-에서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케랄라 학파의 천문학자 닐라칸타 소마야지(Nilakantha Somayaji, 1444~1544)는 그의 저서에서 약 백여 년 뒤 브라헤가 창안한 것과 거의 유사한 모델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비록 남인도 외부까지 퍼지지는 못했지만 케랄라 학파 내에서는 정설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