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띠 한 줄, 길 한 가닥 (2)
꺽정이가 두 번 살면서 깨우친 이치가 하나 있었다.
날 때부터 다른 사람의 위에 있던 자들은, 그런 아랫것들 중 하나가 저의 머리 위에 서 있음을 깨닫는 순간 흔들리기 마련이다.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것이 순리이다 보니, 과연 이역만리 모카 항에서도 그 이치 비슷한 듯하였다.
“그,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베네치아 사람 주스티아니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젊은 리드완의 목소리에는 당황이 서려 있어, 패기 넘치던 지난번 만남과는 자못 달랐다.
“무슨 말이냐니. 양쪽에서 동시에 제의를 했으니, 더 높은 값 부르는 쪽 손을 잡겠다 하는 말이지. 이 나라엔 흥정이란 말이 없소? 아까 총독 나리가 보낸 아랫사람은 금방 알아듣고 헐레벌떡 제 상전께 고하러 뛰어가던데.”
꺽정이가 방석인지 의자인지 모를 푹신한 가구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어지간하면 이것은 들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 위에 가로로 누워서, 주전부리나 우적거리고 있으면 극락이 따로 없을 듯하였던 것이다.)
“한쪽은 그 맘루크인가 하는 양반들 손을 잡고 잠상 짓을 하자고 하고, 그대 집안에서는 이왕 장사하는 것 떳떳하게 하면서 이문은 반반씩 나누자고 하는데, 나는 둘 다 내키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왕이면 이문은 이문대로 늘리고 싶고, 또 굳이 잠상 노릇 안 하고 그대들 술탄의 보증 받으면서 떳떳하게 장사를 하고 싶다 이 말이오.”
차라리 외즈데미르 한 사람만 모카에 있어, 저와 맘루크들를 통하지 않고서는 지중해로 나아갈 수 없으니 그리 알라 하였더라면 꺽정이도 뭔가 다른 수를 강구하여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총독과 재무관이 편을 나누어 다투고 있으니, 이를 이용해먹지 않는다면 도적의 이름에 먹칠하는 격 아니겠는가.
물론 이용을 당하는 입장에서야, 양자택일을 하라 했더니 둘 다 내놓으라 하는 것이 그저 황당하고도 분할 뿐이었지만.
그렇게 꺽정이는 뻔뻔하게 발 뻗고 편히 있고, 집주인 주스티아니와 재무관 나리는 전전긍긍할 무렵, 외즈데미르 파샤도 도착했다.
“잘 오셨소. 얘기는 오시는 길에 들었으리라 믿소이다. 여기 호방(재무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벌써 나리 아래서 딴살림 차리고 있던데, 뭐, 이번 일 끝나면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시오.”
리드완에게 태평하게 손가락질하며 외즈데미르를 맞이하는 꺽정이었다.
“림 파샤, 그대는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려. 일국의 황제를 대리한다 자처하는 사람이...”
“우악스럽다? 뭐, 그런 얘기 자주 듣소. 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이나 말해보시오. 내게 뭘 더 주실 수 있으시겠소?”
미스르 땅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맘루크들, 그런 맘루크들 중에서 우두머리는 아닐지라도 제법 영향력 있는 사람이 외즈데미르였다.
그쯤 되는 고관이 나서서, 비록 밀무역이기는 하지만, 또 저들을 통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기꺼이 무역을 돕겠노라고 제의하였으니, 어지간한 상인이라면 오히려 천금을 내고서라도 그 제의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러나 논상원에서 나오는 상학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익힌 사람이라면, 그저 교역을 하며 이익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남을 호구잡아 그 이익을 극한까지 늘릴지를 고민하기 마련.
그나마 꺽정이였으니 대놓고 이렇게 언질이라도 주지, 서림이었더라면 베네치아 사람들도 혀 내두를 만한 농간질을 부렸을 터였다.
“대체 이 사람이 무엇을 더 약속할 수 있겠소?”
“그건 어르신이 스스로 고민할 일이지. 다만 조금 도움을 드리자면, 예컨대 운하 파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
“운하라니, 그 무슨 말이오?”
“어르신이 간밤에 보여주신 그 지도 말이오. 그것을 보니까 짤막한 운하 하나만 야무지게 파면 여기서 바로 지중해까지 갈 수 있겠더이다. 그 운하까지 파주겠노라 약조한다면 내 어르신 제의에 응하겠소.
반대로 리드완 이 친구네가 먼저 약조한다면, 맘루크고 뭣이고 우리네 민주당이 퍼나르는 동방의 물산과는 영영 작별이고.”
운하의 이야기는, 미스르 땅이나 그 주변에서 좀 지냈다 싶은 이들은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리드완의 아버지 무스타파는 가자(Gaza) 산작(Sancak, 에얄레트 바로 아래의 행정단위)에 제법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에, 리드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먼 옛날 이교도 파라오들의 시대부터 홍해와 나일 강을 잇는 운하는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나일 강이 범람할 때마다 운하에는 모래가 쌓였고, 결국 조금만 관리가 소홀해지면 곧장 막혀버리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홍해도 조금씩 남쪽으로 물러났기에, 결국 미치광이 칼리프 알 하킴(Al-Hakim)의 시대를 끝으로 그 누구도 운하를 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림 파샤’의 무지막지한 요구에 외즈데미르와 리드완 모두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림 파샤에게 헛바람 불어넣은 사람으로 지목받게 생긴 주스티아니는 난색이 아니라 사색이 되었다.
“못하겠다 싶으면, 조정에 사신이라도 보내서 그쪽 관리 하나쯤 내려오라 하면 될 일 아니겠소? 이 나라는 제법 대국(大國)이니, 호부상서나 공부상서쯤 되는 사람이라면 능히 천자의 대리인과 대면해도 딱히 격은 안 떨어지겠지.”
코스탄티니예에 사람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에얄레트의 베일레르베이인 외즈데미르 한 사람이었지만, 리드완 역시 산작베이(산작의 수령)로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 대신 코스탄티니예에 기별 넣어달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보내는 사람에 따라 ‘숭고한 문(오스만 정부)’ 너머에서 이 이방인들의 방문과 행패에 대해 가지는 인식 역시 달라지게 될 터.
리드완과 외즈데미르 두 사람이 열심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돌리고, 이쯤 되자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게 된 주스티아니는 창 밖의 푸른 하늘이나 보고 있었다.
그나마 경륜 있는 외즈데미르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이보시오, 림 파샤. 그대도 교역을 위해 이곳까지 온 것 아니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요, 이 사람과 연 닿은 맘루크들의 협력 없이 지중해로 넘어갈 수는 없음도 뻔히 알 터인데...”
“하하하! 이보시오. 겁박이라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오. 내 어제는 나름 예의 갖춘답시고 말을 아꼈는데, 이거 안 되겠구만.”
대체 어제의 연회에서의 그 언행이 예의 갖춘 것이라면, 그 예의 버렸을 때는 어찌 될 것인가. 외즈데미르와 리드완 두 사람 모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나야 그냥 돌아가면 그만이오. 돌아가서는, 오스만인지 오승만인지, 이 오씨국(吳氏國)은 청진교 좌장을 자처하는 주제에 순 쫌생이들만 가득하니, 장차 청진교 믿는 놈들에게는 물건 팔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란 말이오.
포르투갈 놈들이야 교회보다 장사를 좋아하니, 내가 그렇게 말하고 아주 살짝 미안하다 한 마디 덧붙이면 금방 좋다고 내 손을 잡을 테고.
그렇게 되어서 굴러들어온 황금 걷어찼노라 알려지게 된다면 그대들 임금님이 아주 기뻐라 하시겠군. 어떻소?”
이 이방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부풀려진 소문을 퍼뜨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게 만듦으로써 그 수족을 속박하려는 수작을 부린 것은 외즈데미르 파샤 본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저쪽만큼이나 이쪽도 똑같이 속박당하는 셈이었다.
소문은 무성한데 정작 그 소문의 당사자들은 모카에 닿자마자 도로 동쪽으로 돌아가버린다면, 불똥은 모카에 그대로 떨어질 것이다. 분명 저들은 기독교인들에게는 크나큰 아픔을, 복종하는 이들(무슬림)에게는 크나큰 기쁨을 줄 계획을 가지고 왔다 하였거늘, 그것을 베일레르베이가 발로 걷어찬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즈데미르가 아랫사람들을 모두 동원해 입단속을 시킨다면 곤경을 조금은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아래의 리드완도 저의 눈길 아래서 딴짓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아랫사람도 함부로 믿을 수 없었다.
“림 파샤 그대는 부르투갈(포르투갈)인들에게 큰 모욕을 주고 도망쳐온 것 아니었소?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향한들 그 길이 순탄할 리 없지.”
“아니, 아주 순탄할 게요. 내가 이래 봬도, 저기 동쪽에서 천주교인들 명줄을 꽤 잡고 있거든. 내가 몸 성히 돌아가지 못하면 그 열 십(十) 자 섬기는 작자들도 그날부로 끝이다. 그렇게 단언을 해 두었으니 어지간히 간이 붓지 않고서는 막지 못하겠지.”
실제로는 고아에 ‘동 림’에게 이 가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외즈데미르나 리드완은 알지 못했다.
“비록 그대가 빌린 부르투갈 배가 크고 강하다 하지만, 한 척 배일 뿐이지 않소? 그리고 이 도시, 나아가 예멘 에얄레트 전체는 나의 명을 따르고 있지. 내 멀리서 찾아온 객에게 이렇게 위력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대가 본관을 이토록 모욕한다면...”
“어이고, 그러다 한 대 치겠소? 뭐, 맘대로 해 보시오. 듣기로 그대 나라는 한 줌 포르투갈 인들도 당해내지 못해, 침탈 한 번 당하니 그것을 삼십 년 걸려 겨우 수복했다던데. 그 포르투갈 놈들 득시글대는 고아에서 난리 일으키고 온 우리가 이 도시 하나쯤 못 벗어날 것 같소?
그리고 가뜩이나 소문 부풀린 것 뒷수습도 난망한데, 거기에 이방인들 잡으려다가 놓쳤다는 소문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되겠소? 하기야, 그쯤 되면 더 구겨질 체통도 없으니 괜찮으려나.”
핀투야 이미 할 긴장은 모두 다 하였으므로 더 두려워할 것도 없었고, 도키치로나 이탁오는 그들의 우두머리 하는 짓거리를 누차 곁에서 보았으므로,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이 벼랑 끝 협박 놀음을 싱글벙글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이 느닷없이 내지르는 협박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리드완과 외즈데미르에게는 ‘림 파샤’의 목숨 내놓은 겁박이 거짓으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자, 그러니 결정하시오. 상대편보다 먼저 내게 더 좋은 제안을 들고 오거나, 그 운하 파는 일을 기꺼이 맡겠노라 확언을 하거나, 둘 중 어느 것도 안 되면 그대들 윗전에 있을 조정의 대신을 하나쯤 데려오시오.
어제 외즈데미르 어르신이 내게 생각할 겨를을 주겠다 하였지. 그러니 나도 드리겠소. 그러나 서두르는 게 좋을 게요. 머뭇거리다가 다른 한쪽이 먼저 손을 써버리게 되면, 혼자 피를 볼 수도 있으니 말이오.”
꺽정이가 껄껄 웃으며, 저의 집도 아니건만 축객령을 내렸다.
주스티아니의 집을 나서자마자 외즈데미르와 리드완 두 사람은, 그들의 명예를 걸고 동방에서 온 이방인의 치졸한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을 약조하였다.
두 사람 모두 오스만 가문에 대한 충심을 지니고 있고, 또 나름대로 신의 있는 이로 정평이 나 있었으므로, 그 약조 또한 앗샴(다마스쿠스)의 강철과 같았다.
그러나 강철도 결국은 쇠다. 알-신(중국)의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서는 철도 녹을 수밖에 없었다.
부르투갈인들이 바다를 점령하다시피 한 이래 처음으로 그들을 뚫고 찾아온 동방의 이방인들. 그들이 내세우는 교역의 이익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그날 밤, 모카 항을 급히 떠나는 배 한 척이 있었다.
“떠나려는 배를 급히 잡아세운 뒤 행선지를 물었더니, 아카바(Aqaba)로 향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카바라면 가자의 지척이 아닌가? 리드완 이 애송이 놈이 기어이...! 어쩔 수 없다! 우리도 배를 띄운다!”
그러한 보고가 들어오자, 배신감에 치를 떨며, 외즈데미르도 즉시 저의 펜을 놀리고 밀랍을 녹였다.
“배 한 척이 급히 항구를 떠났는데, 출항하기 직전 배에서 베일레르베이의 수하가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노인네가! 역시 뱃놈들은 믿을 수 없구나!”
리드완 또한 외즈데미르와 비슷하게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며 펜을 놀렸다.
다음날 해가 밝자마자 배 두 척이 각각 미스르의 아이답 항과 가자 산작 남쪽의 아카바 항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어찌 된 영문인가? 그제야 두 사람은 베네치아 상인 주스티아니에게 의심의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약조한 지 하루도 지나기 전 배신을 할 만큼 신의 없는 자라면, 그런 의심을 하게끔 얄팍한 속임수를 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두 사람 모두 서로 경계할지언정 비난의 화살을 함부로 시위에 재지는 못하였다.
그동안 아예 주스티아니 집에 눌러앉은 - 그런 짓을 하고서도 외즈데미르가 내어준 숙소에 머물 만큼 양심 없지는 않았다 - 꺽정이는 맘 편히 이 ‘카와’라는 묘하게 향 좋은 차나 즐기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밥 먹고 이 쑤실 때 숭늉 대신 이 차를 마시면 딱 어울릴 듯하였다.
모카에서 가장 입김 센 두 사람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는 간악한 계책을 꺽정이 위해 마련해준 이탁오 역시 천하태평으로 모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진교 도사(이맘)들을 만나고 다녔다.
또한, 여전히 상 투메 호에 갇혀 있던 에스파냐 사람 레가스피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서는 저 막무가내 이교도들의 간악함이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무슬림들도 평등하게 괴롭힌다는 사실에 아주 소소한 위안을 얻었다.
한편, 모카 항에 기묘한 이방인들이 닿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카의 베일레르베이와 재무관 두 사람으로부터 각각 해명과 변명 가득한 서한 한 장씩을 받게 된 숭고한 문의 재상(Vizier / (터) Vezir)들에게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대체 동방의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했기에 그들을 맞이하자마자 이러한 난리가 일어나며, 또 갑자기 운하 얘기는 왜 나온다는 말인가?
“만약 그자들이 정녕 스스로 주장하는 대로 알-신 황제의 대리인과 그 수행원들이라면, 마땅히 자랑스러운 우리의 수도에서 그들을 맞이하여야 할 것이오. 장사꾼들과 이교도들이 오가는 그런 변방 항구에 그들을 붙잡아놓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겠소?”
애초에 그의 전임자였던 하듬 쉴레이만이 파디샤를 꾀어 예멘을 점령한 것 자체를 고깝게 여기던 대재상(Grand Vizier / Sadr-i azam) 뤼스템 파샤의 주장이었다.
“지금은 믿을 만한 사람 하나가 아까운 시국이다. 대재상의 건의가 타당하니 그에 따르겠다.”
장엄한 파디샤(Padishah, 황제) 쉴레이만과 디반(Divan, 내각)의 재상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격변하는 서쪽의 정세였다.
서쪽 기독교도들의 황제가 과연 그의 이름을 훔쳐 비준된 그 ‘화의(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혹여 더 큰 전쟁이 벌어져 저들끼리 더 다투게 되면, 그사이 그들의 위대한 나라는 숙원의 도시 비야나(빈)를 점령하고 더 서쪽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터였다.
파디샤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재상들은 오직 따를 뿐.
우선 동양인들을 코스탄티니예로 초빙한 뒤 대충 재상 중 신참 하나를 시켜 그 운하 어쩌고 하는 일을 처결토록 하기로 합의하였다.
“거 보시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모카의 주스티아니네 집 디반 위에서 카와 마시다가 - 여간 덩치가 아니다 보니 자주 앉는 자리가 움푹 파였다 - 소식 들은 꺽정이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노림수가 이것이었던 양 이죽거렸다.
운하야 파든 말든, 그사이 그 누구도 교역하는 일을 막지도, 그 이문을 탐내지도 못하게끔 못만 박아놓으면 그만이었다.
주스티아니를 시켜서 그날 밤에 배 띄우는 시늉을 했을 때, 외즈데미르든 리드완이든 더 좋은 안을 들고 찾아왔다면 되었을 테지만, 굳이 저들이 이렇게 일을 키우고자 하니 사양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 수중에, 그들이 꺽정이에게 제의한 것 이상으로 무언가 더 내줄 수 있는 패가 없었다는 점은 꺽정이 안중에 없었다.)
“에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요. 고작해야 시랑(侍郎)쯤 되는 사람 하나쯤 나와서 맞이하면 잘 풀리는 것이리라 여기고 있었잖습니까.”
다 죽을 상 되어 소식 전하러 온 리드완 앞에서, ‘지아웃딘 알 시니’가 더불어 이죽거렸다.
“걱정은 마시오.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서 흉보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 쾌속선을 준비했소이다. 나와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그대들의 배는 안전하게 지키고 있을 테니, 그것을 타고 내일 모카를 떠나도록 하시오. 지협 반대편, 이스칸다리야(알렉산드리아)에도 빠른 배 한 척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오.
이 사람과 외즈데미르 파샤 모두, 그대들에 대한 인내심이 거의 동나고 있으니, 출발이 지체된다거나, 도중에 다른 소란을 일으키거나 해서는 한 될 것이오.”
“에이, 우리 동네에,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였소. 좀 참고 사시오.”
끝까지 속을 긁는 ‘림 파샤’였다.
그러나 숭고한 문에서 이 사악한 동양인들을 손님으로 초빙한다는 말이 나온 이후부터, 이곳 모카는 물론이요 미스르와 예멘의 그 누구도 이들을 해칠 수 없게 되었으니, 가여운 리드완은 그저 참고 견딜 뿐.
꺽정이와 이탁오도 지켜야 할 선이 있음은 알았다. 그 선을 절묘하게 건드리며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은 물론 재밌는 일이요, 말 그대로 절묘한 심술(心術)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자칫 지나쳐서 누구 하나 적으로 돌리게 되면 이곳 이역만리에서 살아돌아갈 수는 없을 터.
그리하여 상 투메 호에 잠시 이별을 고하고서 모카를 떠난 이후로, 언제 그렇게 여러 사람 속을 긁었냐는 듯 꺽정이와 그 일당은 - 딴에는 - 유순해졌다.
그사이 배는 바람과 사람의 힘으로 - 핀투와 달리 이런 배에 한 번도 타본 적 없던 레가스피는 선창 아래서 고난 겪는 기독교인 노예들을 걱정하며 성호를 누차 그었다 - 달려나가, 코스탄티니예 코앞에 닿았다.
“확실한 우군을 얻기 전까지는 당분간 몸을 사려야 하오.”
곧 도착할 것이라는 선장의 통보를 받은 꺽정이가, 패거리를 모아놓고 말했다.
“그게 당수께서 하실 말씀이십니까?”
“돈 림 한 사람만 처신을 잘 한다면 위해를 당할 일이 극히 드물어질 것이오.”
배를 옮겨타면서 말만 포로지 거의 자유의 몸이 된 레가스피가, 같은 이베리아 사람 - 근래 부쩍 동질감 느끼는 일이 늘어났다 - 핀투 선장의 말에 동조하였다.
“그나저나 그 이교도들이 상 투메 호를 잘 돌봐줄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차하면 선장네 나라에서 새로 한 척 뽑아서 그것 타고 돌아가면 되지.”
“아니, 고아에서 그 난리를 쳐놓고...”
“그러면 그 감옥에서 계속 썩고 계시도록 내버려 둘 것을 그랬나 보오.”
꺽정이 말에 핀투 입이 닫히자, 이탁오가 맞장구를 침으로써 그 입을 단단히 봉하였다.
“우리네 계획대로라면, 희망봉 돌아서 리스본에 소식이 닿기 전에 고아에서의 사소한 ‘오해’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니 걱정 마시지요.”
이미 한배를 탄 몸이니, 군말 붙인들 무슨 소용 있으랴. 그렇게 두 이베리아 사람들은 지난 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이후로 대부분의 에우로파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다르다넬스의 풍광을 감상할 뿐이었다.
“도성을 바다 가까운 데 지었다 하여 의문스럽게 여겼는데, 땅과 바다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오히려 금성탕지(金城湯池)와 같겠습니다그려.”
그 감상하는 무리에 금방 끼어든 이탁오가 한 마디 했다. 그러나 그 말 받아줄 선비가 없으니 이 또한 허사라.
“글쎄요? 저기 해안가에 대군 상륙시키면 금방 수도까지 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이,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그것을 눈 뜨고 보고만 있을까.”
도키치로와 꺽정이가 그렇게 시답잖은 문답이나 나누는 사이에도 배는 끊임없이 나아가, 마침내 두 번째 로마를 자처하던 도시에 닿았다.
이탁오는 선비로서, 핀투와 레가스피는 기독교인으로서 형언하기 어려운 감상에 빠졌는데, 그 성정이 선비보다는 그 옛날 선비족에 가까울 꺽정이와 도키치로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모카에서 맛 본 가와인지 카와인지가 참 기억에 남던데, 여기에는 또 무슨 맛난 먹거리가 있을까. 그런 소리나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나마 순박한 축에 드는 도키치로는 배가 부두에 닿을 무렵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광경에 끝내 눈을 빼앗겼지만, 꺽정이 머릿속에는 저만한 도시라면 반드시 털어먹을 것도 많으리라는 생각뿐.
“오, 과연 누가 환영하러 나왔구만. 저기 보시오.”
그렇게 두리번거리던 꺽정이 눈에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여럿이 띄었다.
그쪽을 본 무슬림 선장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으니, 이 동양인들이 소문만큼의 거물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었다.
마침내 배가 뭍에 닿자, 뛰어내리듯 내려온 꺽정이가 인사를 건네었다.
“고생들 많소.”
“흠흠. 술탄이자 칼리파이자 파디샤이시며, 장엄한 군주이시자 흠결 없는 입법자이시며, 룸(로마)의 카이사르이시자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보호자, 두 성지와 쿠뒤스(예루살렘)의 수호자이신 쉴레이만 폐하를 대신하여, 그분의 충성스러운 종복이자 이 나라의 세 번째 재상으로 복무하는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Sokollu Mehmet Pasha)가 인사를 올립니다.”
칙명에 적힌 온갖 거창한 칭호로 따지면 대충 저것과 비슷한 길이로 읊을 수 있는 꺽정이였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으므로 간결하게 답했다.
“조선국 임꺽정이오.”
동쪽 변경에서의 싸움에서 두각을 드러내, 겨우 올해 초에 재상으로 임명된 - 그가 이번 일을 전담하게 된 것도 신참이기 때문이었다 -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는 그 간결함에 너무나 감탄한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그도 재상 자리를 도박으로 딴 사람은 아니요, 함대를 맡을 때는 함대의 일로, 루멜리아 속주의 통치를 맡을 때는 지방의 통치로서 재능을 드러난 사람이었다.
곧 당황함을 이겨내고, 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파디샤 접견할 준비를 갖추게끔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미리 준비한 숙소에 당도하자마자 림 파샤가 불쑥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보다 그 운하의 일을 마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오. 모카에서 만난 놈들은 외즈데미르고 리드완이고 다 시원찮고 미덥잖은 놈팽이들이어서, 이런 일을 더불어 논할 수 없었소.”
양쪽 중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조에 충실하게, 양쪽을 동시에 헐뜯는 꺽정이었다.
“아, 소식은 들었습니다. 알현이 끝난 뒤에 논의코자 하였는데...”
잠깐 고민하던 메흐메트 파샤는, 곧 이 이방인들이 파디샤 앞에서 다른 소리를 늘어놓지 않도록 저의 선에서 정리하는 쪽이 마땅하리라고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와 더불어, 예멘 에얄레트를 담당하는 고관들의 복무 상태에 대하여 전반적인 재검토를 수행할 것을 그의 머릿속 ‘해야 할 일’ 목록 위쪽에 올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앙의 재정으로는 현재 그러한 대공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 한 사람으로서의 의견입니다. 물론 그곳에 운하를 판다는 것은, 길게 보았을 때 매우 큰 효용이 있겠지만요.”
‘다른 재상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라던가, ‘재고의 여지는 없겠소?’ 하는 정도의 반론이 나오리라 여겼는데, 상상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아니, 운하 팔 때 꼭 그 재정이 운하 임자네 곳간에서 나오라는 법은 없지 않소? 남한테 덤터기 씌우고, 그래도 정 부족하다 싶으면 어디 손 벌려서 빌려오면 그만이지.”
잠깐 고민하던 메흐메트 파샤는, 조금 더 지적이고 외교적으로도 현명한 수사를 찾는 데 끝내 실패하였다. 기가 막혀 떡 벌어진 입에서 나오는 답변은 이러하였다.
“예?”
“우리는 장사만 하면 그만이고, 운하는 파이기만 하면 그만 아니겠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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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이집트를 정복한 오스만 투르크는 효과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미 현지의 강력한 봉건귀족이자 군사력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던 맘루크들을 회유하면서도 복속시키는, 모순된 목표를 동시에 추진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서쪽으로는 발칸 반도에서 유럽 세력과 충돌하고, 동쪽으로는 사파비조 페르시아와 열전과 냉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오스만 투르크를 이집트를 완전히 복속시킬 만한 여력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맘루크들에게 독자적인 의회(디반)을 마련해 주고 일정한 자치권을 보장하는 등 유화책을 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반란을 겪어야 했고, 이집트에 설치된 에얄레트의 베일레르베이는 현지 세력과의 충돌 아니면 유착으로 인해 거의 매년 교체되어야 했습니다. 18세기로 넘어오게 되면, 이집트 현지 세력들이 군벌화되어 러시아나 영국, 프랑스 같은 외세를 끌어들이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 강역 내에서 항상 일정한 독자성을 지닌 채 중앙과의 묘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고, 19세기에 들어서는 무함마드 알리라는 걸출한 인물의 출현으로 사실상의 독립과 (비록 종국에는 실패했지만) 독자적 근대화를 추진하게 됩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발칸 반도의 기독교인 가정에서 소년들을 징집한 뒤 이들을 군인 또는 관료로 육성하는 데브시르메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작중 등장한 리드완 파샤의 집안도 마찬가지로, 그 아버지 무스타파는 본디 보스니아 출신이었지만 파디샤의 총애를 받아 고관의 대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 이후 이른바 ‘리드완 왕조’는 대대로 가자 지역의 호족이 되어 18세기 중후반까지 팔레스타인 일대를 사실상 지배하게 되지요.
작중 막판에 등장한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현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일대에서 세르비아인 정교도 집안 추신으로 태어난 그는, 데브시르메 제도에 의해 징집되어 개종한 뒤 발칸과 중동 곳곳의 전장을 누비며 군인으로, 또 그 뒤에는 뛰어낸 행정가로 두각을 드러내게 됩니다. 1555년 내각에 들어선 후, 뤼스템 파샤 사후 쉴레이만의 총애를 받으며 차기 파디샤가 되는 셀림의 딸과 혼인하기까지 하였지요. 이후 셀림 2세 사후 무라트 3세 시기까지 대재상직을 역임하며 오스만 투르크의 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원 역사에서는 대재상 재임 중 잠시 수에즈 운하 건설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이미 사방에서 적을 맞이하는 오스만 투르크 입장에서 과중한 비용이 요구될 것을 깨닫고 이를 포기하였습니다.
작중 언급된 것처럼,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도 시나이 반도 서쪽 어딘가에 운하를 굴착해 나일 강 수운과 연계한다는 발상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특히 수에즈-포트사이드 사이 지협은, 토사가 퇴적되어 해안선이 후퇴하기 전에는 더욱 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고대(이집트 기준으로는 그렇게 고대는 아닌, 기원전 19세기경)부터 운하가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나일 강과 연결된다는 것은, 나일 강이 범람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토사가 퇴적된다는 뜻이기도 했지요. 결국 10세기경을 끝으로 운하 굴착·준설은 더 이상 시도되지 않았고, 대신 홍해 해안의 적당한 지점(작중에 언급된 아이답 항 등)에 짐을 하역한 뒤 나일강 수운을 이용해 알렉산드리아까지 이동하는 교역로가 자주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교도와의 무역보다는 제국 내에서 자급자족 경제권을 구축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던 뤼스템 파샤 집정기에는, 아예 홍해 대신 중앙의 권력이 잘 닿지 않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바스라(이라크 남부)에서 육로로 레반트까지 가는 교역로가 잠시 운영되기도 했지요.
이후 19세기 초에 잠깐, 지중해와 홍해 사이에 수위 차이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관측 결과가 유포되면서 지중해와 홍해를 직접 잇는 형태의 운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가, 마침내 새로운 측량 결과가 나오면서 (이집트와 인도에 대한 기득권 침해를 우려한 영국의 방해를 뚫고) 1869년에 이르러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