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40화 (140/259)

42. 기도하는 집 (1)

오스만 가문의 셰자데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합과 공존공영을 위하여 서방 여러 나라들을 순방한다는 소식은 곧 이탈리아를 거쳐 나머지 에우로파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호사가들은 호사가 나름대로 떠들고, 각국 궁정에서는 힘 빠진 교황과 역시 힘 빠진 황제 카를 5세, 그리고 이제야 겨우 일단락된 듯한 신교와 구교의 갈등 등에 미칠 파급에 대해 예의주시하였다.

클리스마(Clysma, 수에즈의 옛 이름) 운하 - ‘수에즈’라는 사라센 이름을 쓰자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라고 벌써 그럴듯한 가칭까지 붙은 운하가 정말로 뚫린다면, 지금껏 신대륙의 부를 독차지하는 카를 5세를 부러워하기만 하던 다른 나라들에게도 기회가 열리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신대륙의 부를 그러모으는 합스부르크의 편에 선 군주들도, 그것을 시샘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군주와 세력가들도 모두 그 귀를 로마 쪽을 향해 기울였다.

그 무렵, 베네치아령 크레타의 카네아(Canea, 하니아) 항에는 매우 기묘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쪽빛과 옥빛 어우러진 바다도, 그 바다와 면한 베네치아의 조선소와 요새도, 그 요새 위에 펄럭이는 성 마르코의 사자 깃발도 그대로였지만, 그 항구에는 줄피카르(Zulfiqar) 깃발 단 오스만 술탄의 배와 베네치아 공화국의 전선이 뱃머리를 나란히 둔 채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베네디크(베네치아) 놈들은 믿을 수 없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어머님도, 뤼스템 파샤 그 노인네도 몇 번이나 강조하셨는데, 그래도 지금까지는 저들이 장담한 대로 성의껏 우리를 대접하는 듯하구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그 풍경을 감상하던 셀림이 포도주 병 내려놓으며 물었다.

셀림의 어머니 휘렘 술탄과 매부 뤼스템 파샤가 셀림에게 당부한 것은 베네디크 놈들 믿지 말라는 것 외에도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술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헌데 꺽정이 생각에는, 술을 마시는 것은 장부의 마땅한 일이요, 다만 주량을 모르고 과음하여 체통을 잃는 것이 문제될 뿐이었다.

그리하여 꺽정이는 술은 마실수록 는다는 동방의 지혜를 셀림에게 전수해주었는데, 그 덕에 셀림은 서방에서 있을지 모르는 실수에 대비하여 주량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여태껏 꺽정이 일행과 매일같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기독교인 해적들이 워낙 기승을 부리니, 우리 배가 홀로 서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화를 당할 수밖에 없겠지요. 베네치아 함대가 따라붙는 것은 저들의 성의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봐야 할 겁니다.”

유독 술만은 주량이 따로 없었다(唯酒無量)라 전해지는 만세사표 공자를 본받아 곤드레만드레 즐기고 있던 이탁오가, 취중임에도 제법 두서 있게 말했다.

다른 해적들이야 셰자데가 타고 있는 배라 하면 알아서 눈치껏 달아나겠지만, 눈치 없는 몰타의 구호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은 오히려 더욱 광분하여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옆에 베네치아 전선들을 끼우고 가는 쪽이 여러모로 안전을 도모하는 셈이었다.

그리하여, 미리 파견된 베네치아 전선들과 만나기 위해 셀림과 꺽정이 일행은 루멜리아(오스만령 발칸) 해안을 따라가는 대신 이쪽 크레타 쪽으로 우회하여 이곳 카네아 항에 기항한 것이었다.

“운하가 파여야 활로 트이는 베네치아 아닙니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가장 곤란한 것도 그치들이겠지요. 당장 저 전선들도 제법 기세가 정예한 것이, 베네치아 조정에서도 나름 그 휘하 수사(水師) 가운데 정예한 배만 모아 보낸 듯합니다.”

그 말 옳다고 추임새 넣기라도 하는 것처럼, 갈매기 몇 마리가 끼룩거리며 날아갔다.

꺽정이도, 셀림도 주량 늘린다는 핑계가 있다지만, 소위 귀빈들이 모여 술병 기울이는 모습이 서방 사람들에게 썩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아예 안 보이는 곳에서 술판 벌이면 그만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일행은 코스탄티니예에서 미리 마련한 평복 차려입고, 몰래 배에서 내린 뒤 항구 옆 여염집 옥상을 빌려 이렇게 포도주와 더불어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셀림의 신변 지키는 것이야, 몸 필요한 일은 꺽정이가 나서고 말 필요한 일은 이탁오가 나서면 그만이었다.

“해서, 지아웃딘 그대는 저 베네디크인들을 믿는 것이오?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진심으로 대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은 그렇지만, 사람이 스스로 선의라고 부르는 것은, 안타깝게도 대개는 저의 잇속 차리는 데서 나오기 마련이지요.

다시 말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만큼은 우리에게 성의와 도움을 아끼지 않겠지만, 그것을 넘어서게 되면 손 한 번 꿈쩍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우리가 출항한 뒤로 베네치아 사람들이 부쩍 말을 돌리기 시작했지 않습니까.”

셀림이 전대미문의 항해를 준비할 때까지는 제법 시일이 소요되었다. 그사이 베네치아 쪽으로 들어오는 서방 쪽의 사정이라든지, 운하 제안에 대해 저쪽에서 나름대로 논의된 바라든지, 분명 이야깃거리도 많이 생겼을 터였다.

허나 지롤라모 자네를 비롯한 베네치아 사람들은, 그러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올 듯하기만 하면 화제를 돌려버리곤 했다. 코스탄티니예를 떠난 이후에는 더욱 그것이 심해졌다.

“그러니 저하와 임 당수 모두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선 안 될 것입니다. 두 분이 대신 경계해 주셔야 제가 편하게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까.”

“참 편하게도 사시는구려.”

술병 기울이며 멀찌감치 떨어진 어딘가를 주시하던 꺽정이가 곁가지로 말했다.

“흉수(凶手) 있다 한들 셰자데 저하나 임 당수를 노리지, 그 옆의 비실비실한 서생을 노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꺽정이는 대꾸하지 않고, 엉뚱한 도키치로를 불렀다.

“야, 도키치로야, 너도 보이냐?”

“예. 그 지롤라모인가 하는 어르신 맞습니다.”

베네치아 대표로서, 꺽정이와 셀림 일행의 로마 순방에 길잡이를 자처한 지롤라모 자네가, 언제 그들의 배에서 슬그머니 내렸는지 항구의 번듯한 대로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 옆에 함께 걸으며 뭔가 얘기 나누는 것은, 딱 보아도 무반은 아닌 듯한 고관.

이 섬 전체가 베네치아의 것이요, 셀림 일행은 선실 안에 틀어박혀 있으리라 믿고서 저렇게 당당히 딴짓을 하는 것이리라.

“혹시 모르니까 도키치로 너는 여기를 지키고 있어라. 탁오 선생은 집주인한테 가서 웃돈 좀 두둑히 물려준 다음에, 좀 시끄러울 수도 있는데 저의 안녕을 위해서는 그냥 귀 막고 있는 게 나을 것이라고 일러주시고, 밧줄도 좀 마련해주시오.”

“그저 범상한 만남일 수도 있지 않소? 이를테면 이곳 항구에 머물고 있는 저의 친지라던가.”

느닷없이 심상찮은 말 나오는 데 놀란 셀림이 물었다.

“어차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소. 남의 눈 피해서 털기에는 마침 지금이 딱 좋기도 하고. 두 분이서 열심히 이야기하시지 않았소? 저것들이 어째 우리에게 숨기는 게 있는 듯하다고. 그러면 험담을 할 게 아니라 찾아가 물어봐야지.”

그러고서는 삼층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려 어딘가로 달려가는 꺽정이었다. 그제야 어떻게 림 파샤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저와 바예지트의 코스탄티니예 저택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는지 이해하게 된 셀림은, 절로 술이 확 깨는 듯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꺽정이가 지롤라모 자네를 옆에 끼고 옥상에 돌아왔다. 배 안에서 술판 벌이고 있으리라 여겼던 임꺽정이 갑자기 저의 옆에서 나타나 어깨를 붙잡으니, 지롤라모는 끽소리 한 번 못하고 이렇게 붙잡혀오게 되었다.

“자, 아는 대로 불으시오.”

“임 당수!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제야 조금 정신 차린 지롤라모 자네가 기세 좋게 물었다.

“우리에게 실토할 것 많지 않소? 방금 전 만난 사람은 누구인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우리네를 두고 베네치아 쪽에서 마련하고 있는 노림수가 무엇인지 등등.”

“임 당수! 제 명예에 맹세코 임 당수나 셰자데 셀림께 해가 될 일을 꾸미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야 못 말할 것 무어 있겠소? 다시 청하겠소. 아는 대로 다 말씀해주시오. 우리네가 이번에 로마로 향하는 것 두고 반드시 말도 많이 나왔을 테고, 개중에는 어르신네 나라 쪽까지 들려온 바도 적지 않을 텐데, 혼자서만 알고 있으면 그게 무슨 재미요? 좀 같이 들읍시다그려.”

“들려오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허나 지금 말씀드릴 만한 것이라면 도저히...”

“아, 그러니까 말하기 싫다, 이 뜻이군.”

“그것이 아니라···”

꺽정이가, 방금 전까지 제가 앉아 있던 방석을 들어 북 찢었다. 개중 길쭉한 조각 하나를 묶어 재갈을 만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중하다 여기는 사람이오. 남에게 무언가 물을 때, 거짓 위세로 어르기보다는 진짜 큰일 낼 것처럼 윽박질러야 비로소 참된 답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안타깝게도 명예라는 것은 본디 허(虛)에 속하니, 그것에 걸고 맹세하는 말을 어찌 함부로 믿겠소?

자, 한 번 더 여쭙겠소.”

“임 당수, 이럴 것이 아니라···”

“거 고집도 참. 잠시 내려갔다 오시면 생각이 바뀌실 것이외다.”

자네가 무어라 항변하려 하였으나, 꺽정이의 무지막지한 손은 인정을 몰랐다. 곧 그 입에 급조한 재갈을 물리고, 그 발목은 밧줄로 칭칭 감은 다음, 옥상에서 휙 밀어버렸다.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머리부터 떨어진다면 조금 얘기가 다르지.

이것 참, 집주인이 인색해서 그런가, 밧줄이 좀을 먹었네그려. 이 밧줄이 어르신 몸무게를 얼마나 견뎌줄지는 모르겠는데, 뭐, 알아서 마음 정하고 알려주시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자네는 ‘읍-읍’하는 소리만 낼 수 있을 뿐. 하필 대로 면한 쪽이 아니라 그 반대편, 뒷골목 쪽으로 자네를 밀쳤기에,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탁오 선생, 거문고를 좀 타시오?”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알지요.”

“이 밧줄 좀 튕겨보시오.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그렇게 이탁오가 몇 번 ‘거문고를 타니’, 아래에 매달린 사람에게는 그 진동이 마치 밧줄 끊어지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 결과, 이탁오가 이 엉터리 음률에 슬쩍 몸을 맡기려던 차, 앞서보다는 조금 더 힘찬 ‘읍’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헉, 허억···”

“자, 이제 조금 몸에 혈기가 도시오?”

피가 쏠려 얼굴이 온통 시뻘게진 자네에게 꺽정이가 태연히 물었다.

“으으··· 좋습니다.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작 그랬어야지.”

어디 가서, 시나 황제의 대리인과 술탄의 아들 앞에서 이런 꼴 당했다고 털어놓은들 누가 믿겠는가. 억울함은 마음 속에만 담고 견뎌야 하리라.

“방금 만난 이는, 10인 의회 쪽에서 파견된 관리였습니다. 이번 로마행에 대한 본국의 방침을 전달받았지요.”

“계속 말씀해 보시오.”

숨 몇 번 고른 자네가 말을 이어나가니, 언제 거문고 연주를 했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경청하는 이탁오를 비롯하여 좌중의 이목이 모두 자네에게 쏠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황제에게 금은을 모두 빌려주었기 때문에 그 운하 공사의 자금을 댈 수 없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우리 베네치아 혼자서도 능히 자금을 대려면 댈 수 있지요.”

베네치아는 상인들끼리 세운 나라로, 임금은 없고 저들끼리 돌아가면서 사람을 추대한다고 하였다. 상인들의 나라라면, 그러니까 나라의 우두머리가 위아래 막론하고 서림 같은 이들로 채워져 있다 보아도 무방할 터.

그러므로 베네치아 자리에 서림 앉혀두고 생각해보니, 얼추 그 속내가 짐작이 되었다.

“다만 모두에게 이익되는 것을 굳이 혼자서 맡기가 싫을 뿐이겠지.”

“··· 그렇습니다. 비록 근년 사이 지중해 무역이 침체되기는 했지만, 그사이 모인 기반이 어디 가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카스티야와 저지대(벨기에 및 네덜란드), 그리고 신성로마제국과 기타 여러 나라의 군주인 카를 5세는, 주로 귀금속 광산과 금융에 손을 대어 큰 부를 모은 푸거(Fugger) 가문으로부터 빌린 자금으로 군비를 충당하곤 했다.

푸거 가(家)가 사적으로 황제에게 대출해준 자금만 해도 오십오만 플로린(Florin, 금 1.9톤)에 달했다.

“ 그러나 황제가 진 빚은 적어도 근시일 내에는 상환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자조차 제대로 내기 어렵겠지요.”

‘상인들의 군주’라 불리는 안톤 푸거(Anton Fugger)와 그 아래의 푸거 가는, 성공에 취해 있었다. 황제에게 지운 빚을 내세워, 그의 손이 닿는 신세계 전체에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일은 황제가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황제는 이탈리아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노리고자 합니다.”

베네치아와 합스부르크는, 함께 오스만 투르크에 맞서는 입장이었으나, 그 속내는 상당히 달랐다. 베네치아에게 합스부르크는 우군인 동시에 잠재적 적이었고, 따라서 완전히 오스만 투르크를 물리치기를 원하는 합스부르크 쪽과는 달리 양측이 절묘한 균형을 맞추면서 베네치아에게만 유리한 구도가 유지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황제 역시 그것을 알았으므로, 결코 베네치아 금융계에 자신의 금고 열쇠를 넘겨주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황제는 우리의 믿음 전체를 대변하고 보호한다고 자처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비록 교황청과의 사이는 극도로 나쁘지만, 우리가 로마에서 기독교 세계 전체를 향하는 포고령을 받아낸다면 황제조차 무시할 수 없는 명분이 되지요.”

그리고 베네치아는 푸거 가로부터 합스부르크령 카스티야의 채권을 헐값에 인수한 뒤, 교황의 핑계를 대며 황제에게 조속한 상환을 요구할 심산이었다.

“그런 뒤, 이탈리아 내의 다른 세력들에게 그 채권을 조금씩 나눠주고, 대신 운하 공사에 댈 재정을 분담시키는 것입니다. 확실히 언제 상환한다는 기약이 없을 뿐, 신대륙의 금은으로써 결국에는 상환될 국채이기는 하니까요.”

운하가 완성되면, 에우로파 안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쪽이 바로 베네치아일 것이요,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향료무역의 큰손 포르투갈과 슬슬 동인도 제도로의 진출을 노리는 에스파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부담하기는 한사코 싫으니, 그 부담을 여기저기 나누고, 에스파냐 쪽에서 제 손으로 바친 금은으로 운하 공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서림이 자기 같은 작자만 모아서 나라를 세운다면 이와 같을 터였다. 꺽정이 생각에는 그러하였다.

“잠깐, 그런데 그대들의 교황이 반드시 그대들 베네디크의 뜻대로 해준다는 보장은 없지 않소?”

출항하기 전 서방의 정세에 대해 뤼스템 파샤의 속성 강의를 들었던 셀림이 물었다.

“현 교황이신 바오로 4세께서는, 어부의 반지를 끼시기 전부터 황제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지고 계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황제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일이라 하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우리 제의를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황제의 영토는 광활하였고, 그만큼 적도 많았다. 특히 주님의 해 1527년에 황제의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한 이후로 교황은 완전히 황제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고, 이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숨기려던 것을 말해보시오. 지금까지는 다 우리 뜻대로 될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소? 필시 그렇게만은 안 될 사정이 있었던 것이겠지.”

꺽정이가 밧줄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자네의 눈이 몇 번 상하좌우 오가더니, 결국 닫혔던 입이 큰한숨과 더불어 도로 열렸다.

“당수님으로부터의 요청만 없었더라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황제로부터 빚 독촉하는 일에 이름과 얼굴을 빌려주는 대가로 꺽정이가 요구한 두 가지 사안은, 실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하비에르의 서신. 그것으로 인해 핀투 선장이 고아 종교재판소에서 옥고 치르게 되었고, 종교재판소는 그보다 조금 더 심한 수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서신에 적힌 내용이 교황청으로부터 온당하다는 평을 받아야만 비로소 당수님 청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셈입니다. 허나···”

“허나?”

“바오로 4세 성하께서는, 그, 조금 완고하신지라.”

바오로 4세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외골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교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시기에, 외골수 성격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웠다.

그는 카를 5세 이상으로 이교도들을 증오하였다. 그러나 만만한 유대인들 - 이미 그의 지시에 따라 로마 시의 좁은 한 구역에 모조리 강제이주를 당하고, 중고 의복과 식료품 소매 외 모든 직업을 금지당하였다 - 과 달리, 루터교도들은 황제조차 막아낼 수 없는 너무나 강력한 이단이었다.

그리하여 교황은, 조금 더 쉬운 방법을 택했다. 자신 주변에 있는 ‘루터교도 첩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이었다. 대개는 자칭 신교도들과의 타협이나 대화, 화합 등을 거론하던 교황령의 성직자들이 첩자로 몰려 옥고를 치르곤 했는데, 알프스 이북의 강력한 신교 제후들에 비하면 훨씬 손쉬운 상대였다.

“교황 성하께서는 여러 미덕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중 관용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 분 앞에서 그 서신을 꺼낸다면··· 운하(Canale)의 ‘C’ 자도 꺼내기 전 추방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화국 정부에서는 장고 끝에, 우선 임 당수의 도움을 빌린 다음 대가는 나중에 드리기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즉 임 당수의 청을 들어주면서 저들 이익까지 챙길 방도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으니, 우선 이익만 챙긴 다음 나머지 부분은 질질 끌다가 유야무야시키겠다는 뜻이었다.

꺽정이가 그 외 여러 참신한 방법으로 자네의 말문을 더 뚫어보려 했으나,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으로 나오는 바는 없었다.

결국 일행은 영 찝찝한 뒷맛을 남긴 채 - 그리고 엄청난 양의 포도주 술병을 집주인네 옥상에 남긴 채 - 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도시(Urbs Aeterna). 교황령의 수도이자 이탈리아, 그리고 (자칭) 기독교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전하는 바에 따르면, 주나라 평왕(平王)이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지 십여 년 후에 노씨(魯氏, 로물루스)가 이곳에 성읍을 쌓았다는데, 그러므로 낙양에 비하면 조금은 덜 영원한 도시가 이곳 로마인 셈이었다.

허나 영원하다 함은 조금 뒤틀어 말하면 케케묵었다는 뜻이다. 코스탄티니예로 인하여 이미 너무 눈이 높아져버린 꺽정이 일행에게 로마는 영 볼품없었다.

이게 다 ‘카를 어르신’ 아랫것들 패악질 때문이라 하였는데, 꺽정이 일행과 함께 이곳 로마에 닿은 에스파냐 사람 레가스피 듣기엔 영 민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레가스피에게는 다행히도, 일행의 눈에 테베레(Tevere) 강이 닿자마자 바티카노 언덕으로부터 손님 맞이하는 성직자들이 나왔으므로, 꺽정이 일행은 도시의 모습을 그리 오래 구경하지는 못했다.

이 무렵 바오로 4세는 어떻게든 프랑스를 다시 끌어들여 에스파냐에 점령당한 나폴리를 탈환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던지라, 일정이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교도 사신들이 닿자마자 뜸 들이지 않고 곧장 그들을 불러들였는데, 이는 꺽정이 성정에도 맞는 처사였다.

바티카노 언덕 오르는 도중, 일행은 저들끼리 말을 맞추었다.

‘무릇 도적이 되어서 남의 뒤통수는 때릴지언정 제가 먼저 남에게 뒤통수 맞아서는 아니 되는 법이오. 베네치아 놈들이 장난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겠소.’

보다 올바르게 말하자면, 꺽정이가 저의 뜻 밝히고 나머지가 모두 목소리 큰 놈 말에 따르기로 한 것이었지만.

허나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지만, 모든 악수 앞에 장고가 있지는 않은 법.

“망했네.”

“망한 것 맞는 듯합니다.”

터덜터덜 걸으며 한 마디씩 하는 이탁오와 꺽정이었다.

그들 생각에는 이러하였다.

‘거문고’를 당하였던 자네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는 않은 듯했으나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지도 않은 듯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바다 위를 오가는 사이 베네치아인들이 또 무슨 다른 술수를 고안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꺽정이는 바오로 4세가 셀림을 접견한 직후, 자신의 차례가 되자마자 합장 한 번 하고서는 저의 품은바 뜻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 솔직함에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은 바오로 4세는, 솔직함에 솔직함으로 답해주었으니, 그 자리에서 ‘간악한 이교도’ 호통을 치며 바로 그들을 내쫓았던 것이다.

“일이 이리 되었으니, 수습이 급한 베네치아 쪽에서 뭔가 수를 내기는 하겠지만···”

“그 전에 우리가 쫓겨나거나 할 수도 있겠지요. 설령 베네치아 사람들이 꾀를 낸다 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저지른 것이 있으니, 그 계책을 빌리는 값은 톡톡히 내야 할 것이고.”

이탁오와 도키치로가 한 마디씩 보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거하게 역정 부리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할 줄은 몰랐지. 하비에르 어르신이 그러는데, 원래 여기 큰스님들의 조사(祖師) 되시는 분께서 원래 거절하고 부정하는 데는 일가견 있으신 분이었다고 했던데.”

천국의 열쇠를 지닌 베드로 상 아래를 지나면서, 그 성 베드로에 대해 신성모독을 범하는 꺽정이었다.

다행히도, 하비에르의 친우라는 그들 일행을 이끌고 바티칸의 주된 구경거리들을 보여주고 있던 이냐치오 로욜라 신부는 굳이 지금 ‘돈 림’이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를 묻지 않았다.

허나 얼추 그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을 이끌고 북적이는 대로 - 그 북적임의 상당 부분은 이들 이방인을 구경하는 현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를 걸어가던 로욜라는 한탄하였다.

“친애하는 벗 프란치스코 형제가 이곳 로마를 떠날 때, 그에게 나아가 모든 세상에 불을 붙이라(Ite, inflammate omnia) 당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모든 세상에 이곳 에우로파도 포함되는 것이었던 듯합니다.”

“하비에르 신부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들었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분께도 화가 미칠 수 있을 터인데, 어떻게 도와주실 수는 없으실지요?”

이탁오가 조심스레 물었으나, 로욜라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성하께 복종할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형제가 그러한 서신을 쓴 데는 나름의 이유와 깊은 생각이 있었으리라 믿지만···”

무언가 잠시, 깊은 고민을 하는 듯하던 로욜라는 다시금 고개를 휘휘 젓고, 일행을 이끌었다.

“우선은 이곳 바티카노의 경관을 모두 둘러보고 생각하십시다. 그대들은 어쨌든, 이 사람이 알기로 처음 로마에 닿은 동양인들이고, 여타 세속의 사정도 있으니, 설령 그··· ‘청’으로 말미암아 추방령이 내린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가혹한 조치가 수반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셰자데 셀림의 체통을 고려해서라도, 바티카노 한가운데서 이단의 언설 행하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즉각 처벌할 수는 없는 판국이었다.

허나 그렇다 해서 뭔가 뾰족한 수가 꺽정이네 손에 나타날 기미가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꺽정이네 스스로 힘으로 바오로 4세의 마음을 움직이든, 아니면 그 손을 붙잡고 강요하든 하지 못한다면, 곤경을 빠져나가기는 난망하였다. 허나 이왕 이리 된 것 어찌하리오. 우선 구경이나 하자는 로욜라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일행은, 아직 열심히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러나 지금까지 축조된 것만 하여도 실로엄청난 규모의 궁궐(성 베드로 대성당)에 닿았다.

“와.”

일행 중 가장 촌놈이라 할 만한 도키치로 입이 가장 먼저 떡 벌어졌다.

“하, 사내라면 이 정도 궁궐은 짓고 살아야지.”

저의 이름 앞에 궁궐과 저택 여럿 거느린 셀림이, 톱카프 궁이나 아야소피아 모스크와의 크기를 비교하는 사이, 정작 궁궐은커녕 처갓댁 옆 집 한 채가 가진바 전부인 꺽정이는 이렇게 말했다.

“궁궐이 아니라 성당이랍니다.”

“이게 절간이라고? 이야, 거 참.”

만약 그렇다면, 이만큼 대웅전(大雄殿)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전당도 없으리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저승 풍경까지 보고 온 꺽정이조차 스스로 경탄 자아내는 엄청난 위엄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생각 끝에, 그래도 아야소피아 쪽이 조금 더 큰 것 같다고 결론 지은 - 자존심도 그러한 판단에 한몫했을 것이다 - 셀림은 편안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오, 오오! 그렇지! 그래!”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인 곳에 닿았는데, 어디선가 늙은이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이쪽으로 좀 와보게! 거기 그 이상하게 생긴 덩치, 자네 말일세!”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두리번거리기도 잠시, 곧 꺽정이 앞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추레한 늙은이가 하나 있었다.

“나를 이르는 말인가?”

‘주정뱅이’나 ‘금발’ 소리는 들어보았어도, ‘이상하게 생겼다’ 하는 것은 처음이었던 셀림이 갸우뚱하였는데, 곧 답을 얻었다.

“아니, 거기 뚱보는 비키고. 자네 말일세! 자네!”

그제야 이 노인이 저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은 꺽정이가 한 발 나섰다.

“그래! 완벽해! 자네, 혹시 싸움을 좀 하는가? 채찍 휘두르는 자세 좀 취해보게.”

“거 생면부지 사람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요? 이게 이 나라 예법이오?”

어지간하면 나이 많은 사람 공경하는 꺽정이었지만 느닷없는 청을 들으니 고운 대꾸가 나갈 리 없었다.

그제야 눈앞의 사람을 알아본 로욜라가 가운데를 막았다.

“흠흠, 부오나로티(Buonaroti) 선생. 이분들은 멀리 동방에서 오신 사절들입니다. 그러한 요구는···”

“하지만 놓치기 아깝다는 말이오! 사흘! 사흘만 있으면 여기 이자를 모델로 삼아 완벽한 조각상 하나를 만들 수 있소! 교황 성하께 바칠 조각상 말이오!”

꺽정이가 듣자하니, 눈앞의 노인은 퍽 다재다능한 자로, 대목장에 도편수는 물론이요 사람 손으로 뭔가 꾸미는 일은 하나같이 재주 빼어나다고 하였다.

특히나 지금 이곳 대웅전을 짓는 일의 도편수 노릇도 하고 있다 하니, 갑자기 꺽정이 머릿속이 번뜩하는 듯하였다.

“이보시오, 어르신. 뭘 하시려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어르신이나 다른 이 동네 사람들처럼 도를 따로 믿지는 않소. 그래도 괜찮으시겠소?”

“물론이지!”

“그렇다면 좋소. 내 어르신 하자는 대로 해 드리리다.”

곧 이탁오와 도키치로도 얼추 꺽정이 머릿속을 짐작하였는지 심상치 않은 웃음을 지었다. 속임수와 못된 짓에는 곁의 동양인들만큼 밝지 못한 로욜라와 셀림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어느새 꺽정이는 명(名)을 미켈란젤로라 하는 이 도편수 노인 따라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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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의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1564년 향년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교황령에 머물면서 지금의 바티칸 시국에 전해지는 수많은 문화재와 건축물을 직접 축조 또는 설계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령에서 활약하던 데는, 사코 디 로마로 이미 기울어가던 교황권이 철저한 타격을 입은 시대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모든 주요 세력들의 연합에 맞서 싸우던 카를 5세 휘하의 용병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끝에 통제를 잃은 상태로 로마 시에 난입, 엄청난 약탈을 하였던 사코 디 로마 사건 이후, 실추된 권위를 되찾는 것은 그 방법에 대한 이견과는 별개로 후임 교황 모두의 시대적 과제가 되었지요.작중 등장하는 성 베드로 대성당 - 그 앞의 성 베드로 광장은 한참 뒤인 1667년에야 완공됩니다 - 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전문적인 관료제와 재정 제도가 완비되기 전 근세 유럽 국가들의 재정은, 대체로 ‘작은 정부’를 유지하면서 필요시 민간 영역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꾸려졌습니다. 예컨대 빈(1973)의 고전적인 통계를 인용하면, 1560년대 에스파냐의 1년 세수는 평균 은 210톤(6백만 두카트)에 달했습니다. 오현제 시기 로마 제국의 평균 세수가 연간 은 500~1,000톤 사이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간소한 재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Bean,1973. “War and the Birth of the Nation Stat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33; Hopkins, 1995. “Rome: Taxes, Rents, and Trade.” In Scheidel & von Reden (eds.) The Ancient Economy. New York: Routledge. pp.190-230 ).

따라서 근세에 접어들며 전쟁의 비용이 크게 상승하자 국가재정에 대한 부담 역시 비약적으로 커지게 되었지요. 카를 5세는 12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운영되던 국채 제도를 도입하여 자신의 세계제국 운영(≈전쟁)을 위한 재정을 충당하였는데, 로마 멸망 후 유례없는 규모의 재정지출을 해야 했던 에스파냐는 이로 인해 곧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이는 반대로 보면, 그만한 빚을 지고도 국가가 운영될 만큼 에스파냐의 재정이 비교적 체계화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는 카스티야와 저지대(현 벨기에 및 네덜란드) 등을 상속받으면서 4천만 두카트에 조금 못 미치는 부채도 함께 상속받았고, 이때는 이미 일년 세수의 절반 이상이 부채 상환에 투입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이 미발달된 상태에서 에스파냐는, 국내 지방도시들의 세수를 담보로 발행하는 상대적 저리의 장기국채(후로Juros)와 독일과 이탈리아의 ‘큰손’들을 상대로 하는 고리 단기국채(아시엔토Asientos)로 부족한 예산을 차입했습니다. 재정수지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카를 5세의 통치 말기에는 이미 후로스를 통해 아시엔토를 돌려막기하는 것이 고착되어버렸고, 펠리페가 즉위하자마자 지방 도시들이 더 이상 후로를 발행하지 못할 지경이 되면서 결국 악명높은 채무불이행 사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후로 역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발행되면서, 결국 공권력을 동원해 본디 연 10%였던 이율을 절반으로 낮추고, 또 지방 도시들과의 타협을 통해 과격한 증세를 펼치는 수밖에 없었지요. 후로는 이미 레콩키스타 말기부터 발행되면서 상당한 신용을 지녔고, 또한 남미로부터의 금과 은 유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기에, 아시엔토의 채권자들에게 원금과 이자 대신 후로 채권을 지급하는 형태로 타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카를 5세의 돈주머니와 다름없었던 푸거 가문은 큰 타격을 입었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금융은 제노바(제노아) 금융계의 손에 넘어가게 되지요. 그 결과 제노바는 합스부르크의 재정 담당으로서 기울어가던 국운을 어느 정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에스파냐 재정에 더 큰 독이 되었습니다. 펠리페 2세의 세계제국은 그만큼 많은 군사적 개입을 요했고, 오스만 투르크, 네덜란드, 영국 등과의 전쟁으로 인해 전비지출은 늘어만 갔습니다. 재정개혁과 증세 정책으로, 에스파냐의 일년 세수는 1570년경 평균 493만 두카트에서 1590년경 평균 752만 두카트 (1565년 두카트 가치 기준)로 증가했지만, 그사이 부채는 4천만 두카트 가량 늘어났습니다 (Drelichman & Voth, 2010. “The Sustainable Debts of Philip II: A Reconstruction of Castile’s Fiscal Position, 1566-1596.”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70(4)). 이어서 부유한 네덜란드가 독립하고 약 1천만 두카트 가치를 지녔던 것으로 평가되는 무적함대가 ‘적 없는 함대(無敵艦隊)’에서 그냥 ‘없는 함대’가되어버리면서, 펠리페 2세가 사망할 무렵 에스파냐의 국채는 1억 두카트까지 늘어나게 되지요.

교황 바오로 4세는 작중에 묘사된 대로 매우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로, 프로테스탄티즘과 카를 5세 및 펠리페 2세, 그리고 교회의 개혁 모두에 대해 독선적이면서도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투철한 신념이 그 자체로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고, 막 합스부르크와의 휴전에 합의하였던 프랑스를 다시 부추겨 나폴리를 공격하게끔 했다가 펠리페 2세의 선제공격에 대패하는 등 수많은 실책을 범한 바 있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1559년 그가 선종하였을 때, 교황령 시민들 사이에서 너무 여론이 나빴기 때문에 암매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무덤을 찾지 못한 로마 시민들은, 대신 캄포돌리오 궁 앞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넘어뜨린 뒤 테베레 강에 던져버렸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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