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52화 (152/259)

45. 있음이냐 없음이냐 (3)

메리 여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그의 통치를 열성을 다해 돕는 충신들은 없지 않았다. 허나 그들의 열의는 튜더 집안이나 메리 본인보다는, 선왕 헨리 8세 치하에서 ‘엇나간’ 영국 교회를 바로잡는 데 초점이 있었으므로, 군주에 대한 충심을 불태우기보다는 이단들을 불태우는 데 대체로 더 열중하곤 했다.

더구나 그런 신하들 역시, 헨리 8세 아래에서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낸 탓에 신이 허락한 수명이 거의 다한 상태였다. 곁가지로나마 충성을 바치던 이들마저 이렇게 떠나갔으니, 왕명의 무게 또한 옛날과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동방의 사절들을 체포하고 즉시 엘리자베스의 행방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그 뜻이 이루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 본인이 스스로 글을 보내 자신의 ‘실종’ 이유에 대해 밝히고, 이어서 잠시나마 엘리자베스를 ‘감금’했던 범인들이 자수한 다음 여왕 뵙고자 하는 뜻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왕이 임꺽정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윈저 궁에 임꺽정 패거리와 졸지에 그 패거리 신참이 된 엘리자베스가 제 발로 출두하기에 이르렀다.

“엘리자베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을 보낸 거니?”

서로 애증을 주고받는 사이인 동생 엘리자베스가, 납치당한 사람치고는 너무나 태연하게, 심지어 자신을 감금한 자들까지 대동하고 윈저 궁에 걸어들어오는 것을 본 메리 여왕은 끝내 체통을 잃고, 그들을 맞이하자마자 대뜸 묻고야 말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나라의 왕관이 네게 돌아가게 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 않니? 갑자기 이 나라를 떠나겠다 하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러다가, 자신보다 한참 손아래인 배다른 동생이 아직은 사랑을 꿈꿀 나이임을 새삼스레 깨달은 메리 여왕은 무심결에 물었다.

“잠깐, 너 설마?”

그 말까지 눈치 없이 옮긴 타고스 박사로 인하여, 엘리자베스 대신 엉뚱한 꺽정이 입에서 먼저 답변이 나왔다.

“그런 것 아니오! 아무튼 아니라고!”

세상에 무서운 것 없는 듯하던 사내에게서 나오는, 예상치도 못한 절박한 외침. 엘리자베스가 먼저 입가에 손 올려 웃고, 메리 여왕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여왕은 놀랐다. 얼마 만의 미소인가. 쓰지 않던 입가의 근육이 환희 어린 비명을 내지르는 듯했다.

“나라 바깥 사람들 앞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듯하네요. 저들을 내쫓아 주신다면, 모든 것을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 대군, 그 공명첩에 이름 써넣었으니 굳이 따지면 대군 마님은 내 아랫사람 아니오? 대체 이놈의 나라는 위아래가 없으니, 원.”

“자꾸 그러시면, 인디아와 시나 너머까지 뻗어나갈 만한 아주 진한 염문을 퍼뜨려 버릴 겁니다, 임 당수.”

“에라이, 정말.”

동방 말로 투덜대는 소리는 임꺽정과 그 무리 등 뒤로 문 닫힐 때까지 한참 이어졌다.

마침내 평온이 돌아오자, 메리가 물었다.

“그사이 저들과 무척 친해진 듯하구나.”

“친해졌다기보다는, 서로 눈이 맞았다(see eye to eye, 뜻이 맞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묘하게도 그 말이 임 당수의 나라에서는 남녀 간에 정분이 났다는 뜻이라고 하지만요.”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했기에, 네게 돌아갈 왕관조차 포기하게 된 거니? 그리고 그가 말한 ‘아랫사람’이라는 건 또 무슨 얘기고?”

여왕의 물음에 ‘대군(Tycoon)’ - 들을수록 어째 마음에 드는 칭호였다 - 엘리자베스는 자초지종을 그대로 고하였다.

언니지만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여왕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사절들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던 일, 그리고 그 누명이 실은 실제로 건넨 제안임을 뒤늦게 깨닫고 졸지에 감금당하게 된 일. 억지로 붙잡기보다는 제 발로 따라오도록 설득하는 쪽이 남는 장사임을 깨달은 임꺽정 일행이 엘리자베스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게 된 일까지.

이미 그 솔깃한 제안을 받아들인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언니라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는 언니를 대하였던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내 뒤에서 모략을 꾸민 것까지 모두 털어놓을 정도이니, 네 말이 진실임은 족히 알겠구나. 그렇지만 림 경 그자가 제안한 그 온갖 이권들이, 왕관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폐하의 피를 ‘이은’ 남자 후계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분명 우리 잉글랜드에 크나큰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이지요. 만약 제가 거기에 협조하기만 한다면요.”

왕위를 계승할 사람은, 합스부르크의 피가 섞이지 않은 엘리자베스, 그리고 잉글랜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두 나라의 피를 이은 스코틀랜드의 메리뿐이었다.

그러니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말을 지켜 이 나라를 떠나게 된다면, 지금껏 프랑스의 카트린이 밀서를 통해 보내온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거리낄 것이 조금, 아니, 제법 많이 줄어드는 셈이었다.

자칫 저지대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는 스페인 쪽에서는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오겠지만, 그래도 양자택일을 강요당한다면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측에게 잉글랜드가 넘어가는 것보다는 저들의 피가 ‘섞인’ 후계자가 나타나는 쪽을 선호할 터였다.

물론, 그만큼 메리가 사랑하는 펠리페로부터 평생 벗을 수 없는 의심과 불신을 사게 될 것이요, 어쩌면 그보다도 더 나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마침내 결정을 미루고 미루게끔 만들었던 여왕 마음속의 천칭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나라의 이익이지, 너의 이익은 아니지 않니?”

“글쎄요. 저들이 제게 약속한 것의 가치를 산정한다면, 잉글랜드의 왕관을 두세 번은 팔아야 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리고···”

“그리고?”

그러나 여왕의 채근에도, 엘리자베스의 입은 열리다 만 상태를 유지했다. 신나게 떠들다가 이야기해서는 안될 것까지 털어놓았을 때의 그 어릴 적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이를 알아보는 것은 언니이자 엘리자베스의 시녀였던 메리 하나뿐이었지만.

“엘리자베스. 감정을 내려놓고 말한다면, 네가 잉글랜드를 네 발로 떠나고, 더 나아가 이번··· 계획에 협조해 주는 것만으로도 너는 내게 큰 도움을 주는 셈이야. 내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네 마음을 털어놓을 권리는 얻었다고 생각한단다.”

“그래도 될까요? 진실은 때로는 거짓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법인데요.”

“네가 잉글랜드를 떠나게 되면, 어쩌면 돌아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 전에 마지막으로, 네 하나뿐인 혈육에게 진실 한 번쯤은 털어놓을 수도 있지 않겠니.”

지금껏 별 거리낌 없이 할 말을 모두 털어놓던 엘리자베스도, 이번에는 심호흡을 한 번은 해야 했다.

“좋아요. 그러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일로 왕위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답니다.”

“뭐라고?”

“군주의 자리는 군주의 혈육이 이어야지, 농부의 자식이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는 법 아니겠어요?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한동안 이 나라를 벗어나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면 그만이지요. 저들이 제게 약속한 이권으로 저는 엄청난 부를 얻을 것이고, 그 부를 이 나라 안에 남김없이 흩뿌릴 거에요. 백성들은 저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제게 매이게 되겠지요.”

엘리자베스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강둑이 무너지고, 풀어놓으려던 진실에는 그간 묶여 있던 감정이 섞여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부모조차 알 수 없는 빈민 중에서 몰래 데려온 고아라면, 그 저열한 품성을 쉽게 고칠 수 있을까요? 폐하께서 아무리 노력하신다 하더라도, 결국 한계가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신의 은총으로 진정한 왕재가 저 템즈 강가의 진흙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도박에 당연히 따르는 위험이라 여기고 감수해야겠죠.

높은 확률로 저는,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을 받으며 이 땅에 돌아올 수 있을 거에요. 언니 폐하의 왕관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력으로 얻은 명성과 부로써 백성들이 바치는 왕관을 쓰게 되겠죠.”

마치 메리 자신의 왕관은 그리 정당한 것도, 값진 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눈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눈물 젖은 담담함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메리의 마음속 한 구석에 박혀 있던 못 하나가 빠지고, 그 곁에 새로운 못이 박혔다. 눈앞의 배다른 동생이, 저를 언니로서 사랑했을지언정 군주로서는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그러나 누가 엘리자베스를 비난할 수 있을까. 결국 메리는, 동생과 마찬가지로 몰래 흘린 눈물을 숨기며 말했다.

“고맙다.”

“저야말로요.”

한참 뒤에 허락을 맏고 돌아온 꺽정이는, 그간 자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지 않을 만큼의 눈치는 갖추고 있었다.

경이로운 이국으로부터의 사절들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런던 사람들에게 족히 몇 년 동안 질리지 않고 떠들 수 있을 법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투르크 왕자 셀림과 시나 사람들의 기묘한 행색, 그리고 그사이를 못 참고 런던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 투르크 사절단 사람들이 남긴 일화들까지.

너무나 이야깃거리가 많았기에, 오히려 세인트 제임스 궁에 조용히 나타난 엘리자베스가 조용히 감금되었다가 다시 조용히 사내 여럿과 함께 윈저 궁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묻혀버렸다.

그보다 며칠 전, 멀리서 온 사절들을 여왕이 친히 맞이하였다는 사실이 소문의 바다 사이에서 물결 하나 못 일으키고 가라앉았던 것처럼.

그러나 언제 떠난 지도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정확히는, 굳이 알려 하지 않았던- 여왕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제법 빠르게 런던 시민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템즈의 부둣가부터 이스트엔드(East End)의 빈민가까지, 하필 가장 누추하고도 못된 심성의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직접 행차하여 백성의 삶을 살피겠노라 하였던 것이다.

다만 이야깃거리는 될지언정 그 어조가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마침내 폐하께서 자신의 백성은 스페인이나 로마가 아닌 이곳 브리튼에 있음을 깨달으신 모양이로군. 그런데 정작 살펴야 할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듯허이.”

“그분 곁에 런던의 길잡이를 해줄 이가 없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심지어 그 행차에, 외국인 사절들까지 대동하겠다 하였으므로, 런던 시민들은 여왕의 부족한 식견을 더더욱 비판하고 또 조롱하였다.

물론 이미 조선에서 보낸 두 번의 삶을 통해 밑바닥 인생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꺽정이에게는 이스트엔드의 누추함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지만.

“뭐, 그래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소. 적어도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는다거나, 굶어 죽은 이들이 널려 있다던가 하지는 않는 듯하니 말이오.”

다행히도 런던의 모든 관료와 그 식솔들, 그리고 런던 내의 카톨릭 교도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시체나 비렁뱅이는 아주 잘 찾아보지 않는 한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먹고살 방도를 모두 잃어 런던으로 밀려들어온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귀하게 자란 이들의 비위 상하게 할 만한 풍광은 어쩔 수 없었다.

헌데, 말 탄 꺽정이 옆의 마차에 탄 여왕이 영 말이 없는 것은, 눈앞의 지저분함 때문만은 아닌 듯하였다.

“걱정 마시오. 이 나라가 프랑스니 이탈리아니 하는 다른 동네보다 살림 궁핍한 것은 알고 있으니, 이것 가지고 딱히 더 흠을 잡는다거나 업신여기지는 않을 것이외다.”

마침내 마차는 한 작은 교회 앞에서 멈췄다. 이곳 이스트엔드 일대의 교회들은, 대부분 나름대로 자선을 베풀고는 있었지만, 주로 종교적 다툼에 휘말려 재산을 잃은 이들이나, 선왕 시절 이탈리아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불우한 노병들, 아니면 천재지변의 피해자 같이 ‘자선을 받을 만한’ 이들에게만 이를 베풀고 있었다.

반대로 그저 이곳에 어쩔 수 없이 흘러들어온 빈민들 대부분은,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음에도 정직한 벌이를 추구하지 않는다 하여 대체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기는커녕 도와달라는 이들마저 내치곤 하였다.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밴 여인들은, 책임질 마음도, 여력도 없으면서 육신의 쾌락만을 탐했다 하여 개중에서도 가장 대접이 좋지 않았다.

허나 어디를 가든 괴짜와 착한 사람도 있기 마련. 이 교회에는 한때 그런 착하면서도 괴짜인 신부가 있어, 갈 곳 없는 임산부와 고아들을 돌보아주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몇 달만에 버리고 간 아이로 교회가 가득 차면서, 선량하였으나 물정 몰랐던 신부는 인간의 선의를 함부로 믿은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실망과 주변의 비난에 직면한 신부는 그대로 앓아누워, 여왕이 찾아왔는데도 맞이하지 못했다.

몇 남지 않은 교회지기(churchwarden)들은 이 방문의 목적을 알지 못하였기에, 고아들을 모조리 본당 옆의 이런저런 건물에 쑤셔넣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끔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북적여야 할 교회는 윈저 궁이나 세인트 제임스 궁의 예배당만큼이나 조용하였다.

“그때 윈저 궁에서 임금님 아우분께서 퍽 사나운 말씀을 하셨나 보오. 그렇지 않소?”

“하, 그대도 원할 때는 이토록 통찰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었구려.”

마침내 꺽정이가 정곡을 찌르니, 그제야 여왕도 침묵을 깨뜨렸다.

“내가 아니라 여기 탁오 선생이 눈치챈 것이오. 칭찬은 이쪽에 해 주시오. 그런데 대체 엘리자베스 그이가 무슨 말을 했기에 이리도 표정이 어두우시오? 군주가 양자 들이는 것이 에우로파에선 드물지 몰라도, 우리 동방에서는 아주 흔하고도 당연한 일이오. 그러니 그이가 뭔 허튼소리를 했든 깊게 마음에 담아두진 마시오.”

양자로 들일 고아를 찾을 때, 비밀리에 아이를 들여오는 대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방문하여 남들-특히 스페인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자는 것은 바로 엘리자베스의 발상이었다. 그 곁에 꺽정이까지 따라붙었으니, 설령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바깥에 알려진다 한들,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이방인과 관련이 있다 여길 뿐, 여왕이 뭔가 은밀한 일을 꾸몄다고 의심하진 않을 터였다.

그와 더불어 엘리자베스는, 이왕 빈민촌을 찾아가는 길에 빈민을 구제할 법도도 하나쯤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의했다. 여왕 메리가 말할 때는 건성으로 듣던 신하들이, 엘리자베스가 그러한 말을 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곧장 밤샘을 하게 되었다던가. (그러한 밤샘의 보상으로, 그 신하들은 곧 새 임금으로 즉위하는 대신 먼 바다로 떠나가는 엘리자베스를 보게 될 것이었다.)

바닥으로 쓰이는 낡은 판자를 능히 꿰뚫을 수 있는 묵직한 한숨과 더불어, 메리가 마음 속 짐 일부를 꺽정이 쪽에 휙 던졌다.

“림 경, 군주의 재목이 세상에 얼마나 흔하게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짐도 짐꾼에게 던져야지, 엉뚱한 이에게 던지면 엉뚱한 말만 돌아올 터였다.

“그야 드물겠지. 하지만 임금 노릇을 임금다운 사람만 할 것 같으면 지금쯤 세상에 임금이 얼마나 남아 있겠소? ”

터무니없는 말에 여왕 입에서 웃음이 나왔다. (임꺽정이 템즈 강가에 당도한 이래 부쩍 늘어난 웃음이었으나, 메리 본인은 이를 알지 못했다.)

어찌 국왕 앞에서 보기에 따라 모욕이 될 수도 있는 말을 입에 함부로 담느냐 탓하기에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에 얽힌 사이였다. 오히려, 그저 떠나면 그만인 사람이었기에 더욱 대하기 쉬운 면도 있었다.

“누구나 다 임금을 할 수 있다 하였소? 여기 이 사람이 그 반례가 아닐까 싶소.”

“그게 무슨 상관이오? 동방의 지혜로운 사람이 옛날에 이르기로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하였소이다 (王侯將相寧有種乎).”

“하! 그게 동방의 지혜라면, 동방의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는 묻기조차 두렵군. 그 말 한 사람은 나중에 어찌 되었소?”

“왕 해보겠다고 반란 일으켰다가 쫄딱 망하고서는 길가에서 죽었다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역적질하는 놈들은 죄다 그 고사를 읊기 마련이었으니, 어찌 현인(賢人)의 말이 아니라 할까.”

그사이 시종 하나가 교회지기를 불러다, 미리 지시해준 말을 읊었다.

곧 나라에서 의회를 통해 소위 빈민법(Poor Law)을 만들 것이요, 몸과 마음이 멀쩡한 빈민은 스스로 일함으로써 빈곤에서 구제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스트엔드 빈민촌의 고아와 갈 곳 없는 이들을 여왕께서 직접 살피시는 것이니, 이 교회에서 돌보고 있는 고아들을, 특히 한 살 이내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둘러볼 수 있도록 준비하라.

그렇게 지시가 제대로 전해졌는지, 창가 너머로 황급히 뛰어다니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 여럿이 보였다.

“마님께서 지금껏 임금 노릇 하는데 어려움 많으셨다는 얘기는 들었소. 헌데 지금까지 임금 노릇이 팍팍했다면, 앞으로는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으면 그만 아니겠소? 괜히 혼자서 어려운 일만 하려다가 앓지 마시고.”

“도움이라?”

“우리나라 임금님도 사실 사람됨은 착하지만 재간은 그럭저럭 범상한 정도인데, 나 같은 놈 말도 귀기울여 들으십디다. 내가 천하를 돌면서 보니, 그것만 할 줄 알아도 임금 노릇 절반은 하는 것이었소.

뒤집어 말하면,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주변에 사람 좀 두어서 나라 다스리는 데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겠소? 물론 그러려면 임금의 위엄을 좀 많이 쪼개서 나누어주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메리는, 세상에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믿었다. 올바른 믿음, 올바른 나라, 올바른 정책. 그것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고, 곧 밝혀진 바 메리에게 주어진 능력은 그러한 올바름을 구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잘못 분간한 탓에, 다들 누리는 행복을 눈앞에 두고 스스로 벽을 쌓아올린 것은 아닐까.

“폐하,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메리를 따라온 시종이, 생각에 잠긴 그의 주군을 일깨웠다. 그의 안내를 받아, 비좁고 지저분하지만 나름대로 공들인 티 역력한 건물 사이로 메리는 걸어갔다.

그리고 곤히 잠들었거나 칭얼대거나, 또는 앵앵 우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의 눈을 잡아끄는 아이 하나를 찾았다.

눈앞의 사람이 국왕인지 아닌지 알아볼 리 없는 갓난아기는, 누군가 저를 번쩍 들었다는 것만 알 뿐.

꺄르륵 소리와 함께 아이가 눈 뜨며 웃었다.

그리고, 메리의 마음속 무언가가 움직였다.

신의 섭리일까. 아니면 이미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린 여왕의 마음이, 눈앞의 확실한 것 하나라도 붙잡기를 원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인지는 메리 본인은 물론이요, 잉글랜드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할 터였다.

“찰스. 네 이름은 찰스란다.”

여왕은 아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찰스. 헨리나 리처드와는 달리, 아직까지 이 땅의 그 어떤 군주도 그런 이름을 지니지는 못했다.

그러니 이 아이만큼은, 부모와 그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어지럽고도 쓸데없이 복잡한, 그러면서도 사람의 피를 흐르게 하는 구질구질한 일들로부터 자유롭게, 깔끔한 새 시작을 할 수 있으리라.

아니,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메리 자신의 힘으로. 또 힘이 부친다면, 다른 이들의 믿음을 얻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리하여, 사랑스러우면서도 가증스러운 엘리자베스마저도, 자신이 틀렸음을, 결코 쉽게 이 아이를 사람들 마음에서 몰아낼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들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허상만을 쫓다 마침내 무엇도 붙잡지 못하였던 여왕은, 눈앞의 아이를 붙잡았다.

이쯤 되면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군주들이 연합하여, 동방인들이 나타날 때 ‘사절(使節) 사절(辭絶)’의 기치를 높이 들기로 약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판국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에우로파 정복의 의지를 드러내는 지척의 오스만 투르크 상대로도 단합이 잘 되지 않는 기독교 국가들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동쪽에서 에우로파를 찾아온 객들의 이력을 따져보면, 훈족의 아틸라나 칭기스 칸의 손주 바투 칸 등등, 시나 황제의 대리인 코우지오니스는 그나마 얌전하고 예의바르다 할 만한 자들이 많았다.

잉글랜드에 당도한 동방 사절단의 행적만 보아도, 그들이 그렇게까지 간악하고 우악스러운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서도 뭔가 무지막지한 범죄를 저지르리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스부르크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사절 중 한 사람인 타고스 박사가 그의 의술로써 날 때부터 병약하여 아직 그 탄생 사실조차 공개하지 못했던 어린 찰스 왕자의 목숨을 구하였다는 소문이 곧 해협 건너 에우로파 본토로 퍼져나갔다.

런던에 있던 에스파냐 첩자 몇몇은, 그사이 메리 여왕이 윈저 궁에 잠시 칩거한 것이나, 레이디 엘리자베스의 행적이 잠시 묘연해졌던 것을 본국에 보고하긴 했으나, 갑작스러운 왕자의 출현이 가져온 파장에 묻혀 별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로 갔소? 듣기로는 이미 런던을 떠났다 하였는데.”

바닷길에서 폭풍을 만나 스코틀랜드에 표착하였다가, 어째서인지 먼 나라에서 온 사절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갈 길 가게 내버려 두라는 그 나라 섭정 마리 드 기즈의 지시가 내려왔기에, 금방 풀려나 잉글랜드로 올 수 있었던 오시프 네페야(Osip Nepeya)가 물었다.

“동방 사절들 말씀이시오? 레이디 엘리자베스와 함께 스페인으로 떠났다오. 중간에 포르투갈에 기항했다가, 스페인을 거친 뒤 바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간다나 뭐라나.”

네페야는 멀리 모스크바라는 도시에서 찾아온 사절이었다. 일찍이 무스코비(Muscovy) 회사라는 곳에서 찾아온 잉글랜드 사람들 덕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는데, 스스로 밝히기로는 이 나라와의 무역에 관심이 많다 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이라면, 그 이교도 술탄의 도시 아니오?”

“말씀 조심하시오! 사절단 중에는 술탄의 자제분도 있었고, 우리 현명한 레이디 엘리자베스 덕분에 그들과의 무역로가 곧 열리게 되었단 말이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시프 네페야를 기다리던 무스코비 회사 사람들마저 그 숲속의 보잘것없는 나라보다는 강대하고도 부유한 동방의 여러 나라들과의 교역에 더 관심이 많았다.

술탄의 나라와의 교역이라는, 꿈과 같은 이야기와 더불어, 어쩌면 저 얼음으로 가득한 북쪽 바다를 거치지 않고서도 시나 땅의 막대한 부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 그 이상의 달콤한 이야기까지.

그러니 그 누구도 얼음 가득한 바다를 헤치고 북동쪽 항로를 개척하는 데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 동인도회사 아래로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할 뿐.

“좌우지간 먼길 오시느라 고생은 많으셨지만··· 안타깝게도 처음 기대하셨던 것만큼의 환대는 드리기 어려울 듯하오. 우선은 최대한 여왕 폐하와의 접견을 위해 노력해 보겠소이다.”

“고맙소이다.”

그닥 성의는 없는 ‘노력해 보겠다’에, 그래도 겉으로나마 성의를 갖추어 감사 표하는 네페야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이미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페야의 주인, 모든 루스의 차르 이반은, 카잔 칸국을 멸하고 아스트라한까지 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반은, 아스트라한의 이교도 칸 뒤에 갈망의 도시, 팔레올로고스의 상속인이자 제3의 로마 모스크바의 주인인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도시를 감히 점령하고 있는 술탄이 있음을 깨달았다.

네페야의 진정한 목적은, 나머지 예프로파(유럽) 국가들의 사정을 시찰하고, 그들 중 루스의 우군이 될 만한 이들을 찾는데 있었다.

그러나 갖은 고생 끝에 바다를 건너 당도한 이곳 잉글랜드마저, 이미 투르크의 손이 닿았다 하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네페야는 어떻게 이 비보를 그의 주인인 차르께 고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우리 모스크바를 통해 키타이(중국)까지 가는 수로를 찾겠다는 귀사 측의 계획은 어찌 되는 것인지요?”

“동방 사절단의 말에 따르면, 그런 길은 없다더군. 그저 광활한 대지만 펼쳐져 있을 뿐이라, 먼 옛날 캄비우스칸(Cambyuskan, 칭기스 칸)의 사람들이 그 길로 우리 유럽까지 왔다 합디다.”

그 말을 들은 네페야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그렇다면 아직 루스에게도 기회는 있는 셈이었다. 예프로파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동방으로의 길. 어쩌면 멀리 동쪽, 우랄 너머 시비르 칸국을 지나면 그 길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 길이 먼 바닷길보다도 더 훤히 뚫리게끔 할 수만 있다면, 모스크바는 비로소 크게 번영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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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타이쿤(Tycoon)의 어원은 일본어 ‘大君’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에도 막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이 쇼군을 지칭한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작중 시점의 조선어에서 아직 ‘ㅐ’는 단모음(/ɛ/)이 아닌 이중모음(/aj/)이기 때문에, 꺽정이가 엘리자베스를 ‘대군’이라 칭했을 때 그가 이를 ‘타이쿤’으로 들은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작중 등장한 빈민법은 원 역사에서는 17세기 초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제정되어, ‘엘리자베스 빈민법’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도시의 자치조직이나 교회를 중심으로 빈민에 대한 구제가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빈곤했고 농촌에서 유입되는 빈민이 많았던 잉글랜드는 그러한 전통적인 구제책에 기대는 데 있어 금방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빈민법은, 노동이 가능한 빈민을 강제로 구빈원에 입소시켜 산업인력으로 활용하고, 고아들은 그러한 현장에서 도제로 일하도록 하는 법률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교회를 통한 기부가 아닌, 지방에서 조달하는 세금으로 운영되었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한계를 맞이하기 전까지 영국의 경제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숨은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전 화에 지나가듯 언급된 모스크바 회사는, 중국으로의 항로를 찾던 중 ‘발견’된 러시아 - 당시에는 모스크바 공국 - 와의 교역을 추구하는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 소속 탐험가들이 모스크바에 닿자, 차르 이반 4세는 오시프 네페야 사절단을 답례로 파견하게 됩니다. 유럽 측 기록에는 이들이 모두 상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오랜 세월간 러시아와 단절되어 있던 서유럽의 상황을 시찰하고, 현재 러시아 남부에 남아 있던 무슬림 칸국들과 그들의 후원자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북해의 폭풍을 맞아, 총 3척으로 - 모두 모스크바 회사에서 대절한 배였습니다 - 이루어져 있던 사절단 중 네페야가 탄 한 척만이 브리튼 섬에, 그마저도 런던이 아닌 에딘버러 옆에 표착했고, 그곳에서 여러 달간 감옥살이를 한 뒤에야 겨우 런던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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