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순수한 피 (1)
천주 서생 이지가 수산 선생 이지함에게 별 생각 없이 보낸 편지 한 통이 발단이 되어, 말라카 동쪽의 모든 부를 장차 민주당 손에 넣으리라는 거창한 목표가 세워지고, 그 뒤로 역시 거창한 운하 계획이 세워지고, 다시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흉흉하고도 해괴망측한 난리통이 유럽 여러 나라를 덮쳤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국가들은 하나로 뭉치게 되고, 교황은 느닷없이 곧 재개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신앙의 자유를 논하기로 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국왕이 바뀌고, 잉글랜드에서는 왕자가 새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사이, 처음에는 그저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작자 하나의 발상이었던 운하 계획에도 뼈대가 생기고 살점이 붙었다.
클리스마(수에즈) 운하 부지 사전답사 및 인도양 무역 수익성 검토를 위해 미리 그 일대를 둘러보고자 하였던 이탈리아 연맹 대표들은, 코우지오니스 일행이 프랑스로 떠나기 전 그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했다.
“당수께서도 겪어 아시겠지만, 홍해의 모카까지는 우리 베네치아의 손길이 닿습니다. 다만 그 뒤로는 저희에게도 미답의 영역이지요. 대양을 가장 먼저 누빈 것이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임을 고려했을 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십자군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던 시절 이래로 신앙보다 금전적 이익을 중시하는 전통을 간직해 왔던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 기회에 홍해의 상권까지 아예 장악해버리고 여차하면 인도까지 진출할 생각이었으므로, 이 사전답사에 제법 많은 투자를 하려는 차였다.
“그래서 내게 청하려는 것이 무엇이오?”
“프란치아(프랑스)로 가시는 길에는 예수회의 로욜라 신부께서 함께하실 것이라 들었습니다. 더구나 셰자데 셀림의 수행원들도 모두 외교관으로서의 경력과 역량이 충분하지요. 그렇다면 핀투 선장이 굳이 당수 일행을 수행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 측에서 그이에게 의뢰하고자 하는 계약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의뢰란, 홍해로 건너간 베네치아 사람들이 바로 인도까지 갈 수 있도록, 포르투갈에서 함선 여러 척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리스본에서 희망봉을 돌아 모카까지 가려면, 적어도 일고여덟 달은 잡아야 했으므로,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꺽정이 생각에도 핀투 본인이 싫다고만 하지 않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슬슬 모카 항에 계류되어 있을 상 투메 호가 걱정되던 - 그리고 배만큼은 아니지만, 그곳에 머물고 있을 저의 선원들도 약간 걱정되던 - 핀투 선장은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얼추 계산해보면, 그가 리스본에 머물며 배와 선원을 구하는 사이에 고아로부터의 소식을 들고 희망봉을 돈 배가 항구에 돌아올 공산이 컸지만, 이미 교황청에서 사실상 저의 죄를 사하여 준 것과 같았으므로 핀투는 이를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포르투갈 사람 본인이 괜찮을 것이라 했으니 괜찮을 게요. 마침 그 나라 국왕 되시는 분도 요새 몸 편찮으시다 하니, 리스본에서는 그냥 조용히 며칠만 머물다 가십시다.”
이러한 사정이 있었으므로, 리스본 도착을 앞두고 꺽정이가 하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엘리자베스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괜찮을 것이다’라는 말부터 먼저 나왔느냐고 이탁오에게 물었다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고아에서의 천문학 토론 이야기를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하기야, 그대로 인해 가장 해를 많이 입게 될 나라에 손님으로서 신세를 지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겠지.”
포르투갈은 굳이 따지자면, 꺽정이와 민주당의 대계로 인해 가장 큰 해를 입을 나라였다. 리스본의 궁정도, 의회도 모르는 사이, 인도 동쪽에서는 서림과 그 손에 들린 막대한 은의 힘으로, 서쪽에서는 지중해로부터 건너올 베네치아 두카트의 힘으로 양쪽에서 짓눌릴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사정을 얼추 헤아린 셀림이 제멋대로 짐작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꺽정이가 곧장 딴소리를 하였으므로, 넘겨짚은 보람도 없이 무안해졌다.
“염치없는 도적놈이 뭔 도리를 따지겠소? 그냥 굳이 여기서 소일할 까닭이 없는 게 더 크다오. 노닥거리려면 면식 있는 사람 있는 에스파냐에서 노닥거리는 게 낫지.”
얼마 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제국의회(Reichstag)에서 공식으로 퇴위를 인정받은 카를로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우로파에서 목소리 큰 사람 꼽는다면 열 손가락 안에 들 터였다.
더구나 느닷없이 손주 하나를 더 얻게 되어, 당황스럽게 여기면서도 의심을 내려놓지 않고 있을 카를로스와 그 아들 펠리페를 생각하면, 직접 찾아가서 해명 아닌 해명을 조금 해줄 필요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장인들 구하는 일도 여기 대군 마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기로 하지 않았소? 그러니 체면치레 위해 궁에 얼굴 한 번 들이밀고, 핀투 그 사람 잘 지내나 눈도장 한 번 찍고 가면 그만이겠지.”
동방 사절들을 만나고자 찾아온 무역회사 사장이라는 겉치레 핑계를 위해 만들었던 동인도 회사가 민주당 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장인들을 모아 동방으로 보내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잉글랜드와 저지대에서 치솟는 물가와 그대로인 임금으로 인해 불만 가득한 장인들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지닌 엘리자베스 이름을 내세워 모집하니, 성공은 불 보듯 뻔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계획 아닌 계획을 논의하는 동안, 런던을 떠나 비스케이 만을 가로지른 배는 이미 타구스(Tagus) 강 하구에 접어들고 있었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어귀 양옆으로 제법 번화하게 펼쳐진 리스본 시가지가 보였다.
이 작은 나라가 바다에서 얻은, 그리고 지금도 얻고 있는 엄청난 부를 입증하듯, 각양각색의 배들이 그 모양새만큼이나 다양한 깃발을 휘날리며 항구와 그 앞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에스파냐에 비하면 영 국력 달린다는 부르투갈(포르투갈)도 이토록 성세 구가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은 셀림은 감탄하고, 외교관 집안의 피를 이은 사람답게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의 언어와 문물을 공부하였던 엘리자베스는 생전 저의 눈으로는 처음 보는 이국 풍경을 빠뜨리지 않고 눈에 담고자 바쁘게 고개를 돌렸다.
반면 속세에 물든 도둑놈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런 거창한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서 핀투 선장 찾는 것도 일이겠는데 말입니다.”
경치 감상하다 관둔 도키치로가 저의 두령에게 말했다.
“이렇게 포구가 번화하니, 사람 하나 작정하고 몸 숨길 것 같으면 못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핀투 그자는 이곳에서 배와 뱃사람 모은다 하였으니, 숨기는커녕 내 여기 있노라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 테다. 더구나 그자도 어디 가서 가만 있을 성품은 아니지.”
하필 함께 돌아다니는 이들이 임꺽정과 그 무리라 그렇지, 핀투 역시 당대의 멀쩡한 사람들로부터는 조금 벗어나 있었다. 그런 성품이니 저의 태어난 땅에 안주하지 못하고, 늦깎이로 뱃일 배워 바다로 나와 머나먼 이방을 돌아다닌 것 아니겠는가.
미답의 땅과 바다를 헤치고 다니며 깃발 꽂는 것이야, 재주와 그에 걸맞는 명예욕을 지닌 이 시대의 에우로파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런 미답의 바다에 닿자마자 그곳 주인 노릇하는 도적놈과 결탁하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사이 항구에 새로 들어온 이 배를 알아본 항만 관리들이 소선 한 척을 띄워 다가왔다.
이미 아덴과 모카, 코스탄티니예와 로마, 런던 등등 여러 항구에서 비슷한 절차를 겪었으므로, 꺽정이 일행 역시 얼른 저치들이 배에 닿아 번거로운 일을 마치고 뭍에 내릴 수 있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 정체에 놀라고, 그 정체와 어째 영 맞지 않는 듯한 일행의 모습에 놀라고, 그러다가 뒤늦게 그 놀라움을 낯으로 드러내고 있었음을 깨닫고서 황급히 얼굴 돌리고, 항구에서 귀빈 맞이할 준비를 하는 동안 어색하게 반나절 정도 멀뚱멀뚱 서 있고.
이번에도 그러한 상궤(常軌) 크게 벗어나지 않아, 부두 바로 뒤편 광장에는 술탄의 아들과 시나 황제의 대리인, 그리고 잉글랜드 국왕의 배 다른 아우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런던에서 떠나기 전 빠른 배를 먼저 보내 기별을 넣었으니,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광장에서 그리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는 사이, 부두 한 구석에서 작은 배 한 척이 슬쩍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소선이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사람 서넛 탈 만한 쪽배였는데, 부두를 지나자마자 뭐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쁘게 노를 저어 나아오는 것이었다.
“얼레? 저기 저거, 핀투 선장 아닙니까?”
“그러게?”
도키치로가 먼저 그 생김새를 알아보고, 이어서 꺽정이와 이탁오도 그 말 옳음을 깨달았다.
“아이고! 당수! 저 핀투입니다! 저 좀 살려주십쇼!”
외지타향에서 듣는 반가운 조선말이었으나, 사람도, 그 내용도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꺽정이는 리스본에 관심이 없지만 리스본은 꺽정이와 그 패거리에게 제법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동방에서는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올 때 비단옷을 입곤 한다는데, 핀투는 그런 것 대신 귀한 비단과 동방의 물산 몇 점을 챙겨서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상 투메 호를 투르크인들에게 맡겨두고 지중해로 넘어올 때부터 나름 성의껏 선정한 물품들이었다.
“··· 이왕 사람을 모으는 것, 제대로 꼬실 심산이었습니다. 동쪽 바다를 제패한 민주당인데, 카락선을 고작 상 투메 한 척만 거느리고 있는 것은 영 체면이 안 사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는 저의 이름 아래에 배 여러 척 거느려서, 저 서해나 모리타네 놈처럼 두령 정도 대접은 받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겠지.”
“그게 그것 아니겠습니까, 헤헤.”
정곡 찔린 핀투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선뜻 베네치아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왕 희망봉을 넘어 인도양으로 갈 배라면, 그것 한 번으로 끝낼 게 아니라 아예 저의 아래에 두어 선단 하나를 꾸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해서, 제가 들고 온 동방의 귀물(貴物)도 여기저기 자랑하고, 당수 앞에서 말하긴 좀 민망합니다만 우리 당수님 존함도 약간 팔고··· 그렇게 사람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딴짓 안하고 저의 할 일만 정직하게 하는 청렴결백한 사람을 모을 것 같았으면 당장 나부터 도적질은 안 하지 않았겠소? 지금 얘기한 것만 가지고는 딱히 탓할 구석은 없는 것 같은데.”
그 말대로, 그때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책잡힐 만한 부분은 그 다음부터였다.
“그러던 차에··· 고아로부터의 소식을 들고 온 배가 이곳 리스본에 닿았습니다.”
고아 종교재판소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꺽정이 패거리와 고아 부왕령 당국의 입장이 확연히 갈렸다.
꺽정이 쪽에서 보기에는, 난데없이 저들 사람을 잡아가두지를 않나, 억지 주장을 하지를 않나, 먼저 황당한 일을 가한 쪽에 대해 어쩔 수 없이 한 방 먹여주고 온 것이 사건의 본질이었다.
알라딘의 후손 지아웃딘 알 시니와 그의 동료들이 교회를 폭파시킨 이야기가 너무나 거창하게 부풀려져 이슬람 세계에 퍼지고 있기는 했지만, 당사자들에게 묻는다면,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며 저들은 결백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입에 침 한 번 안 묻히고 뻔뻔한 거짓을 늘어놓는 것도 재능이라 할 만했다.)
한편 느닷없이 뺨 맞은 격이 된 고아 종교재판소 쪽에서는, 간악한 이교도들이 정당한 재판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실로 사특한 짓을 범했다며 노발대발하였다. 사람의 뺨이야 한쪽을 맞으면 다른 쪽을 내밀어도 무방하지만, 건물은 이야기가 달랐다. 한쪽 벽이 무너졌을 때 다른 쪽도 무너뜨리라 내주면 그대로 건물 전체가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종교재판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부왕령은, 최대한 종교재판소의 입장을 반영하여 보고서를 올렸다.
“그렇지만 제가 먼저, 떡하니 그때 벌어진 ‘사소한 충돌에 관한 오해’를 지양해 달라는 교황청의 서신을 들고 이곳 리스본에 닿았으니 애써 희망봉을 돌아온 이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애초에 종교재판소가 핀투를 잡아 가두고 꺽정이 일행의 발목을 잡으려 했던 것은, 만에 하나 신앙의 자유 운운하는 이야기가 서쪽으로 그대로 갔다가 어떤 파란이 들이닥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허나 꺽정이 자체가 그런 혼란의 덩어리와 다름없었으므로 - 고아 사람들은 너무나 뒤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 오히려 신앙의 자유는 논쟁 끝에 기독교 세계에 자리잡을 발판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종교재판소 쪽에서만 난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조금 잘못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때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서로 좋게 넘어가자고 했으면 그만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때 고아에서 그런 고초를 겪게 된 핀투는, 도저히 그 입을 가만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보람찬 삶이 기다리는 동방으로들 오시오! 그곳에는 저 잘난 줄만 아는 작자들 - 누구라고 얘기는 안 하겠지만 여러분이 주일마다 종종 보곤 하는 분들이라오 - 도 없고, 여러분과는 무관한 크나큰 이야기를 핑계로 사람을 잡아 죽이거나 여러분 지갑의 귀한 금과 은을 빼앗아가는 자도 없소!’
홍보 반, 흉보기 반으로, 배와 선원을 모으는 길에 이렇게 사족을 덧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짓도 그만한 바보짓이 없었지요. 엄연히 이곳에도 종교재판소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관헌도 아니고, 그냥 좀 위세 부리는 스님들일 뿐이지 않소? 물론 먼저 나서서 심기 거스른 게 잘한 짓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어느날, 종교재판소에서 신부 한 분이 찾아오시더니, 그렇게 교회와 종교재판소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을 보니, 어떤 흉악한 저의가 있는 게 틀림없다는 고발이 들어왔다고 알려주시더군요.”
“남의 험담하는 게 흉악한 저의라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일 게요. 아, 그래서 천주도에서 만인이 모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던가.”
“예, 저도 당수의 그 신성모독이 참 그리웠습니다.”
핀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옛날 같았으면 벌벌 떨며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 했을 사람이 오히려 힘없는 웃음으로 대꾸하는 것을 보니, 더 어려운 지경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곤경에 처한 모양이었다.
“그 고발에 따르면, 저는 겉으로만 개종한 유대인이라더군요.”
페르낭 멘데스 핀투라는 이름 한가운데 들어가는 ‘멘데스’라는 성이 문제였다.
멘데스라는 성을 쓰는 이들이 모두 유대인은 아니겠지만, 분명 멘데스라는 성을 쓰는 유대인은 있었고, 개중에는 유명한 배교자들도 있었다. 특히 한때 후추 무역을 독점하였다가 유대인 개종자(콩베르수Converso)에 대한 탄압 조치가 발표되자 제 발 저리듯 안트베르펜과 베네치아, 콘스탄티노폴리스 등지로 도망친 유대계 멘데스 집안의 사연은 잘 알려져 있었다.
“만약 제가 그 멘데스 집안의 후손이었다면야, 그렇게 뼈빠지게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것을 판별할 권한이 바로 제게 감정 좋지 않은 종교재판소에 있으니 어떻게 판결이 날지는 뻔하지요.”
설령 개종하였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기독교도였던 이들에 비하면 혈통상으로 열등하며, 따라서 그것만으로도 차별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소위 ‘피의 순수성(Limpeza de sangue)’를 검증하는 일을 자임하고 있는 종교재판소의 최근 입장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조상이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 역시 종교재판소의 몫이었다.
“언제고 제게 출두하라는 명령이 내려올까 두려워, 지난 며칠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수께서런던을 떠나 이곳 리스본으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배를 준비했다가 이렇게 겨우 도망쳐온 것이지요.”
“유대인?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뭐 큰 죄라도 지은 사람들인가?”
“야후디(유대인)는 그들 사이에서 예언자 이사가 나타났을 때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하오. 그래서 전능하신 신의 벌을 받아 그들 땅에서 쫓겨나 방랑하고 있다고 하지. 우리 잘 보호된 나라(오스만 투르크)는 항상 관대하기 때문에, 그들을 어쨌든 책의 백성 중 하나로 간주해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대우해주고 있지만, 이들 서방인들은 그렇지 않다고들 하오.”
이 사연을 흥미롭게 듣고 있던 셀림이, 간만에 자신이 잘 아는 얘기가 나오자 바로 끼어들었다.
“내 아내가 베네디크(베네치아)에서 도망친 야후디 출신이라고 음해하는 자들이 많아서, 어쩌다 보니 이런 일에 대해 그럭저럭 알게 되었소. 코스탄티니예의 술친··· 아니, 벗들 중에도 야후디가 몇몇 있다오.”
그의 총애를 받는 누르바누(Nurbanu)의 출신이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셀림도 살짝 눈치는 채고 있었다. 스스로 밝히기로는 붉은 수염 하이레딘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 베네치아 귀족 집안 출신이라고 했는데, 셀림이 뒷조사를 시켜본 바 그는 이탈리아 본토 출신은 아니었다.
허나 어디를 보아도 아우 바예지트가 보낸 첩자는 아니었던 고로, 아마 유난(그리스인) 사람이 어쩌다 베네디크 집안의 시종이 되었다가 그 주인과 함께 포로 신세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셀림은 그렇게 단정하고 조사를 마쳤다. 그 뒤로는 누르바누에게 푹 빠져, 출신이 베네디크가 아니라 서쪽 신대륙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이 바뀌지 않을 지경이 되었으니 아예 상관이 없어졌다.
“셰자데 저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유대인들은 설령 개종을 했다고 해도 항상 의심을 받기 마련이고, 사실 저도 이렇게 억울한 모함을 당하기 전만 해도 그들을 썩 좋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구린 구석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거든요, 유대인들은.”
“그렇게 치면 핀투 그대도 구린 구석이 있으니까, 유대인 맞지 않소?”
“아마 정부에서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도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핀투였다.
아무리 포르투갈 정부와 의회(Cortes)가 향료 무역이 가져오는 막대한 이익에만 눈이 멀어, 그 기반이 조금씩 침식되고 있음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동방인들을 가만 내버려둘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아직 그 디우시옹(조선)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한다던가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저들의 하수인을 자처하고 있는 이 핀투라는 자가 자신의 경솔한 언행으로 인해 이곳에서 벌을 받게 된다면, 그 또한 포르투갈 입장에서 큰 손해는 아닐 터였다.
“잠깐, 지금 유대인들에게 구린 구석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핀투 선장 그대는 그걸 어찌 아시오?”
함께 핀투의 사연을 듣던 이탁오가 물었다.
“그야, 그런 콩베르수들을 자주 보았으니 알지요. 이곳 본토에서는 산티아고 기사단 시절에 많이 보았고, 또 고아나 말라카에도 본토에서 돌 맞기 싫어서 도망쳐 온 작자들이 한가득이라 종종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치들은 저들이 자신이 아니라 머나먼 조상 대에 진작 개종하였다면서 이런저런 서류를 내밀지만, 어째 그런 서류들은 잉크가 마른지 십여 년도 되지 않은 것 같은 것뿐이지요.”
“서류? 족보 같은 것 말이겠구려.”
“보통은 그런 식이지요.”
그 말을 들은 이탁오 입가에 뭔가 간사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당수, 우리가 리스본에서 할 일이 하나 생긴 듯합니다. 이득은 이득대로 얻고, 괜히 괴롭힘 당하는 양민들도 도울 수 있으니 어찌 공덕 쌓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흐흐.”
누가 보아도 백성을 돕고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선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편, ‘동 림’ 일행의 배에 행방이 묘연하던 핀투 선장이 나타난 것을 본 관리는 급히 사람을 보내어 이를 당국에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왔던 것보다는 조금 더 지위가 높은 듯한 관료 하나가 배에 올랐다.
“동 림께 우리의 국왕이시자 주군인 동 주앙 3세 폐하의 환영을 대신 전합니다.”
그리고 셀림과 엘리자베스에게도 비슷한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린 뒤 - 똑같은 환영사를 다른 말로 돌려서 전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 다시 꺽정이 앞에 와 말했다.
“이 배에 페르낭 멘데스 핀투라는 이가 승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이는 동 림께서 고용한 선장이라고 들었는데, 최근 몇몇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우리 리스본에 소재한 종교재판소에서 출두를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공식으로 맞이하기도 전에 이러한 청을 올리게 되어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만, 그를 저희 쪽에 인도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아, 그 일에 대해서는 핀투 그이에게 익히 전해들었소. 참으로 안타까운 누명을 썼더군.”
“다시 한 번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그것이 누명인지 아닌지는, 한없이 공정하고 또 권위 있는 이곳 리스본의 종교재판소에서 판별할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누명이 맞소. 여기, 그대들이 타고스 박사라 부르는 이탁오 선생이 이를 밝혀줄 것이오.”
지금껏 곁에서 꺽정이 말을 옮겨주던 이탁오가, 새삼스레 헛기침 한 번 하고는 또 한 차례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페르낭 멘데스 핀투 선장의 혈통에 유대인의 피가 섞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엄연히 우리 화하(華夏)의 후손입니다. 하북성 맹씨(孟氏) 문중의 사십칠대손인데, 먼 옛날 조송(趙宋, 송나라)이 병화(兵禍) 입었을 때 바다로 도망쳐 천하를 떠돌다 이곳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였던 듯합니다.”
“하다못해 여우도 저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데, 명색이 천하에서 가장 문물 뛰어나다는 천조 대명(大明)이 어찌 그 백성의 후손을 잊을까. 여기 핀투 선장은 중국 사람이니, 그대들이 어떤 벌을 주든 간에 대명에서는 환영을 받을 것이오.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과 달리, 대명국을 마음대로 오갈 수도 있을 것이외다. 이것은 나 임꺽정이가 천자 대신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오.”
장거정과 서계가 해금령을 풀면서, 외국인들이 중국 해안에서 통상하는 것은 막았지만, 그저 오가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꺽정이 또한 ‘통상’ 어쩌고는 입에 담지 않았으니 거짓말을 하진 않은 셈이었다.
물론 맹씨 문중 어쩌고는 새빨간 거짓말이 맞았지만.
“그런데 여기 핀투 선장이 중국 사람의 후손이라면, 어찌 그런 이가 이 땅에 이 한 사람만 있겠소? 이렇게 연이 닿아 우리가 리스본에 닿았으니, 비슷한 사정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족보가 어찌 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오. 그대 조정이 양해해주기를 바라겠소.”
거기까지는 저의 권한이 아니라며, 방금 전까지 핀투 내놓으라 하던 관헌은 말을 얼버무리곤 후다닥 사라졌다.
“당수, 그,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그제야 정신 조금 차린 핀투가 물었다.
“어차피 들통날 족보라면, 이곳에선 절대 검증 못할 족보를 사들이고자 하겠지. 그렇지 않소?”
“순임금도 본디 동이(東夷) 사람이었다 합디다. 화이(華夷)의 분별이 이처럼 흐리고 사해가 모두 동포와 같으니(四海同胞) 유대인이라고 한인(漢人)이 되지 못하겠소? 다만 맨입으로 하긴 좀 무엇하니, 찾아오는 이들에게 우리가 주는 도움만큼의 무언가는 받을 심산이라오.”
돌이켜보면 이미 저의 조상까지 팔아서 알라딘의 후손 지아웃딘 소리를 들었던 이탁오였다. 남이 저의 피로 말미암아 핍박받는 것을 면하게 해주고자 없는 족보 만들어내는 것 정도야 예사로운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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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의 선구자로서, 동방과의 무역, 특히 향료 무역과 노예 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성기를 맞이한 국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러한 성공 이면에서는 몰락의 단초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지요. 망원경도, 정밀한 기계식 시계도 없던 시절의 원양항해는 상당한 위험을 수반했고, 포르투갈이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동안에도 숙련된 선원은 계속 손실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본적인 국력 자체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오스만 투르크, 인도 아대륙의 제후국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현지 세력들을 언제까지 억누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고, 결국 17세기로 넘어가면서 포르투갈은 고아와 모잠비크 등 몇 곳을 제외한 거점을 모두 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적법한 군주의 부재도 포르투갈 몰락의 한 가지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전 화에서 지나가듯 언급된 것처럼 포르투갈 국왕 주앙 3세의 후손은 그의 손자 세바스티앙 하나뿐이었는데, 능력과 개혁의 의지는 있었으나 야심이 앞섰던 그는 모로코에 親포르투갈 정권을 세우겠다는 목표로 자국의 역량을 총결집해 원정을 떠났다가 1578년 알카세르 키비르(Alcacer Quibir) 전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주앙 3세의 아우였던 엔리케 추기경이 급히 환속해 왕위를 이었지만 이미 나이가 많았던 그는 후사 없이 곧 사망했고, 결국 포르투갈의 왕위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에스파냐-포르투갈 동군연합 하에서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와 동등한 국가가 아닌, 일개 자치령으로서 많은 권리를 제약당했고, 펠리페 2세와 그 후계자들은 붕괴하는 포르투갈 해외제국을 지키기보다는,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가장 부유했던 포르투갈 본토를 에스파냐 현지에 종속시키는 데 더욱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삼십 년에 육박하는 독립전쟁 - 에스파냐를 괴롭히는 데 진심이었던 영국의 지원이 컸습니다 - 을 통해 1668년 포르투갈은 독립을 되찾지만, 이미 16세기의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요.
이전 화에도 몇 번 언급된, 셀림의 총애를 받은 누르바누 술탄은 스스로 베네치아의 상류층 집안 출신이라 자처했지만, 정확히 어떤 집안 출신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당대 및 후대 투르크인들 사이에서는 사실은 그가 유대인 출신으로 술탄 앞에서 잘 보이고자 출신을 꾸몄다는 소문이 돌았고, 또 그가 실은 그리스 코르푸 섬 출신이라는 주장도 나온 바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여러 설을 섞어 채용했으나, 사실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마라노(Marrano, 불결한 자들)라는 멸칭으로도 불린 이베리아 유대인들은, 레콩키스타 이후 지속적인 차별을 받았습니다. 개종하지 않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가장 먼저 추방령이 내려졌고, 그 뒤로는 개종한 유대인(콘베르소/콩베르수)들에 대한 차별이 이어졌지요. 인구가 부족했던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에스파냐에 비해 유대인 탄압에 있어 온건한 입장을 취하곤 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 종교재판소의 설립과 ‘피의 순수성’ 검증절차 도입 등, 포르투갈 본토에서의 탄압이 에스파냐에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격상되면서 많은 유대인들은 포르투갈을 떠나게 됩니다. 포르투갈은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보전한 채 다른 나라나 식민지로 이주하는 것은 허용했고, 실제로 많은 유대인이 고아와 말라카, 브라질 등으로 이주하여 식민제국 유지에 도움을 주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콩베르수들은 위조한 서류와 족보 등을 통해 신분세탁을 하기도 했지요.